김훈 지음 2012 8 17
조선후기 정조를 뒤이은 순조때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박해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와중에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의 이야기가 뒤섞어 진행된다.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의 거봉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세 형이 있었는데, 첫째는 배다른 형인 정약현, 둘째가 정약전이고, 세째는 신유박해때 순교한 정약종, 그리고 정약용은 막내이다. 신유박해때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된다.
정약현의 사위인 황사영은 16세에 과거에 급제한 출중한 인물이었으나 정약전으로 부터 천주교에 대해 배우고 나서 신실한 신자가 되어 그도 역시 순교당하게 된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천주교를 일종의 학문으로 받아들였으나 정약종이나 황사영처럼 신실한 믿음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고, 조선의 미풍양속으로 전해졌던 조상숭배를 반대하는 천주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천주학을 부인하게 된다. 결국 죽음을 면하고 오랫동안의 유배생활을 떠나게 된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라는 책을 저술하게 되는데, 이는 흑산도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생태등에 대한 기록이다. 정약전은 흑산이라는 말이 한 줌의 희망조차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여 이를 '자산'이라는 말로 부르기로 한다. 여기에 '자' 역시 어둡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지만 보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래서 그의 기록을 '자산어보'라 한다.
끔찍한 신유박해에 직면하였지만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던 조선의 신자들, 대다수가 비천한 출신이었지만 내세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물론 배교하고 동료신자를 발고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장형으로 죽기는 매한가지. 발고하고 풀려나서 장독으로 죽거나, 끝내 입을 열지않고 장살되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나 할까? 천민들도 다 같은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교리는 들불처럼 천민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는데, 이들은 그 시대의 운명에 따라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 되어 버렸다. 끔찍한 국문현장은 조선의 피지배층에 대한 혹독함을 보여준다. 그 당시 천민은 사람축에도 들지 못하고 들짐승이나 가축처럼 대우받고 생활을 했다니, 그들과는 달리 평등사상이 확립된 이 시대에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생각하게 된다.
순교한 자나 배교하고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은 자나 모두 천주에게 가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을까? 황사영은 그렇기를 바랐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정말 불쌍한 인생이다. 당시의 천주교인들은 제사문제때문에 이렇듯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만 하였는데, 지금은...
전체적으로 김훈작가의 베스트 셀러 '칼의 노래'에 비할 바는 아니며, 때론 뜬 구름 잡는 듯한 애매하고 모호한 말로, 당시의 피지배층의 무언중의 바라는 세상이, 새로운 종교가 제시하는 바라고 말하고 있다. 그토록 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그 당시의 사회의 구조상 필연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의 시대상을 여실히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그의 바램이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