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다산 한승원장편소설 1, 2  랜덤하우스 2012-8-3

 

역사소설이 좋다. 소설 읽는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역사 기행의 기회를 갖게 되닌 일거양득인 셈이다. 널리 알려져는 있지만 나에겐 정약용이라는 인물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 소설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되었으나, 그의 사상과 그의 정신세계를 보다 만족할 만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18년간의 강진 유배생활을 생존할 수 있었던 그의 선비로서의 글쓰기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사상은 유학과 천주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세째 형인 약종은 천주교도임을 당당히 밝히고 참수를 당한다. 하지만 조상숭배의 유교적 전통을 부정하는 천주교교리에 반발하여 천주교를 버리게 된다. 과연 그것때문이었을까? 한 목숨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랬을까? 이 소설에서는 수긍할 만한 그의 고뇌가 보이지는 않는다. 어쨋든 그는 둘째형 약전과 더불어 유배를 떠나게 되고 그의 유배생활은 그를 죽이려는 노론의 위협아래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이러한 와중에 그는 글쓰기를 통해 이 시기를 이겨나간다. 방례초본, 나중에 경세유표라고 불리는 개혁서를 집필한다. 이 책에서 그는 양반제도의 타파를 주장하며 평등의 사상을 보여준다. 유배생활동안 400여권의 책을 쓰고,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도 흠흠신서를 비롯한 여러핵을 집필한다. 손가락이 마비되는 증세를 경험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글쓰기는 계속된다.

 

유학자들이 공부하던 대표적인 책은 [논어][맹자][대학]등인데, 여기에는 [주역]도 포함이 된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점쾌를 알아내는 점술의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큰 테두리에서 보면 우주의 운행원리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주자학에서는 우주를 존재하게 한 것은 본연지성(우주 본연의속성)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유학 경전의 거대한 중추신경을 좌우하는 '천명'(가장 큰 원리) 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벽의 새로운 해석이 약용을 천주교로 인도한다. "우주를 존재하게 한 것은 주자의 주장처럼 본연지성이 아니다. 주자의 주장대로라면 그 천명은 아무런 위엄이나 강제성도 띠지를 못한다. 성인이 말한 하늘은 천지를 창조한 저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이어야 한다." 그리고 주역의 오행(쇠,나무,물,불,흙 - 금, 목, 수, 화, 토)을 서구에서 들어온 사행(물,불,흙,공기)으로 재해석한다. 금과 목은 원래적인 것이 아니라 수,화,토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오행에서 빠져야 하며, 대신 공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고대그리스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동양의 고전에서도 우주의 근본 구성물질에 대해 비슷한 견해를 비치고 있음이 좀 놀랍다. 더구나 우주를 존재하게 한 것이 본연지성이라는 주장은 무에서 우주가 생겼다는 현대물리학의 주장과 닿아 있음이 놀랍다. 우리의 조상들은 본연지성에 의해 존재하게된 우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천주학이 들어오면서 하느님에 의한 창조라는 개념이 등장했을 때 그 당시의 지식인들의 충격은 어떠했을까?

 

아뭏든 다산의 형 약종은 천주학을 종교로 받아들였으나, 약용과 약전은 그것을 하나의 학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천주학에 대한 믿음을 부인한 후에도 그의 정신에는 하느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은 계속되었던 것 같다. 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 초반에 이르는 그의 생애는 주로 정조와 순조의 시기에 맞추어져있다. 숙종에 뒤이은 경종의 때이른 죽음, 그리고 노론에 의해 왕위를 이어받은 영조, 그리고 노론의 영향력아래 죽어간 사도세자, 그리고 영조를 뒤이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등극과 남인의 중용,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노론의 불안감과 남인을 제거하려는 노론의 음모, 이런 와중에 천주학에 대한 대대적 박해로 이어지는데, 특히 정조의 붕어이후 정약용을 제거하려는 노론측의 음모로 인해 18년간의 유배를 떠나게 된다.

 

이 시기에 서양에서는 걸출한 수학자들이 등장하는데, 오일러, 가우스, 리만등이 이 시기를 전후하여 활동하였을 거...ㅋ

 

이전에 읽었던 박경리의 토지와 비교할 때, 필체라든가, 그 사상의 깊이, 그 방대함에 있어 아주 밀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

역시 토지라는 대하소설의 위력을 다시 느낀다고나 할까? 토지를 읽을 땐 박경리 선생의 그 생각의 깊이와 넓이등이 아주 초월적으로 보였으며, 그 묘사등이 섬세하여 감탄을 자아내었었는데, 한승원의 다산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느껴져 아쉽다. 읽어보도록 추천하기는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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