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답사 일번지 유홍준 지음 / 창작과 비평사 2012 10 15 ~10 19 읽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가볍지만 즐거움을 주는 놀라움을 느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딪는 설레임, 다만 이것은 가볼 만한 방문지에 대한 설레임만은 아니다. 우리 건축, 서예, 사상등 우리 문화에 대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을 엿보는 듯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유홍준씨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마 이 두가지가 아닐까 한가?
첫째,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둘째,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만큼 보인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남도답사 일번지를 읽으면서, 내 마음속엔 보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일렁거린다. 남도의 풍광이 보고 싶어 지는 것이다. 난 이미 마음속에서 여행을 떠난다.
1. 강진, 해남
강진은 정약용이 십수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지역이다. 유명한 땅끝마을이 그 곳에 자리잡고 있다. 너무나 매력적으로 묘사한 남도, 그 곳은 장차 나의 답사여행의 첫번째 방문 후보지가 되었다. 그 부근의 답사지로는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터, 무위사, 영랑생가, 다산초당, 만덕산, 백련사, 녹우당, 윤고산 유물 전시실, 두륜산 대흥사, 일지암, 미황사, 땅끝 등이 있다.
정약용이 머물렀던 다산초당을 중심으로 혜장,초의가 있었던 절, 남도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그 풍광을 찾아보고 싶다. 예전에 다산에 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그와 혜장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경험은 강진, 해남을 소개한 이 글과 어우러져, 그 곳이 아주 낯선 곳임에도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듯 하게 하니, 과연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인가?
"올바른 답사를 위해서는 먼저 자연지리 즉 그 땅의 성격을 알아야 하고, 둘째로는 그 땅의 역사 즉 역사지리를 알아야하며, 세째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야 한다. 이런 바탕위에 이루어지는 문화지리 답사를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하나니, 아는 만큼 보이도다."
2. 예산 수덕사와 가야산 주변
내포평야/수덕사 대웅전/ 정혜사 불유각/남연군묘/보부상 유품/해미읍성/개심사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는 수덕사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700년을 살아온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으로 알려져 있다. 수덕사 대웅전의 특징은 단순성이 보여주는 간결한 것의 아름다움이 그 첫째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형식을 한 건물'인데...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하나의 즐거움은 이러한 낯선 표현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되는 지적 만족의 즐거움이다. 또한 배흘림기둥, 마름모꼴 사방연속무늬의 창살무늬... 다음에 누구랑 함께 여행을 가면,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 줄 수 있으리라.
3. 경주
선덕여왕과 삼화령 애기부처
첨성대/황룡사 구층탑/삼화령 미륵삼존/감실부처님/여근곡
감포가도/대왕암/감은사탑/고선사탑/석가탑
성덕대왕신종
천년의 고도 경주...
경주 박물관장을 역임한 소불 정양모 선생이 말하기를 "자네, 경주를 말하려면 꼭 이 세가지를 잘 음미해야 할 걸세, 신라문화의 품격을 알려 주는 것은 바로 이 세가지 일세." 이 세가지란, 진평왕릉,장항사지, 에밀레 종소리인데,...- 진평왕릉은 7세기 전반, 장항사절터는 7세기 후반, 에밀레종은 8세기 중반 신라문화의 특질을 반영하는 것이라 한다.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 정말로 감은사탑은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 있단말가?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는 감포가는 길, 경주에서 감은사로 가는 길이란다. 추천 드라이브 코스이다.
신라의 석탑은 백제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여 오층석탑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러던 것이 감은사에 이르러 삼층석탑으로 변신하게 되고 석가탑에 이르러 삼층석탑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무슨 연유로 오층석탑에서 삼층석탑으로 변신을 해야만 했는지, 그 당시의 시대정신에 입각한 설명은 흥미롭다. 감은사 3층석탑은 삼국통일 이후에 건조된 탑으로 당시의 필요정서인 안정위에 상승이라는 시대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이라 한다. 신라의 대표적인 삼층석탑인 감은사탑, 원효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탑, 그리고 석가탑을 비교해 감상해 보는 것도 흥미있다.
에밀레종은 성덕대왕신종 또는 봉덕사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장중하고 맑은 종소리는 현대과학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라는데...이제 더는 타종하지 않는다고 하니, 왠지 소중한 것을 잃은 슬픔이 느껴진다.
4. 양양 낙산사
낙산일출/의상과 원효/원통보전 돌담/낙산사 그림
동해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관음신앙의 근본도량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의상은 성골 출신으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화엄종 체계를 배워왔다한다. 하지만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실천하였다. 신라가 통일전쟁을 마치고 새로운 국가체계를 갖추어 나갈 시점에서 신라왕실에게는 원효의 사상에 나타나는 자율성보다는 의상의 사상에 나타나는 체제질서가 더욱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안정을 위한 질서를 희구하는 당시의 정치권력 및 세력에 의해, 화엄10찰의 개창자인 의상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신격화되어진다. 반면에 원효는 항시 의상에 못 미치는 신통력, 별볼일 없는 승려로, 그리고 의상의 신격화된 전설의 그림자로만 나타난다. 그 당시 지배층이 필요로 했던 것은 의상의 정신인데 반해 대중들은 오히려 원효의 사상을 더욱 신봉하였으니, 이것을 견제하려는 지배층의 의도가 그러한 전설에 나타난 것이라한다.
5. 관동지방의 폐사지
설악산 진전사터/ 도의선사 부도/ 미천골 계곡/ 선림원터/ 흥각국사 부도비
진전사탑은 석가탑의 전통을 기초로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첫째로는 석가탑은 높이가 8.2미터, 진전사탑은 5미터로 축소되어 석가탑은 장중한 맛이 있지만 진전사탑은 아담한 맛을 보여준다. 그리고 엄정성이 강한 석가탑과는 달리 진전사탑에는 돋을 새김이 있어 친근감을 더해 준다.
둘째로는 불국사는 통일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에 있고 진전사는 변방의 오지에 있다는 것이다. 불국사의 가람배치는 다보탑과 함께 쌍탑인데 진전사는 단탑가람이다. 불국사는 중대신라 중앙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며, 진전사는 자방호족의 새로운 문화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진전사는 도의선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 도의의 사상은 당시의 사회변화에 미친 영향이 대단히 크다. 도의가 당나라에서 익힌 불법은 달마대사로 부터 유래한 선종이다. 그 중 선종의 8대조인 마조도일의 홍주종을 익혀 귀국하였는데, 이 가르침은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이라는 것이다. 서라벌에 돌아온 도의는 경전이나 해석하고 염불을 외우는 일보다 본연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변혁사상을 부르짖었다. 이는 인간의 평등과 인간성의 고양을 부르짖는 진보적인 세계관의 표출이었다. 당시 통일신라의 왕권불교의 근간인 왕즉불의 엄격한 체계에 따른 논리와 질서를 송두리채 흔드는 충격을 안겨주는 외침이었다. 서라벌의 승려와 귀족들은 도의의 외침을 '마귀의 소리' 즉 위험한 사상, 불온한 사상이라 부르며 배격하였다. 그래서 도의는 서라벌을 떠나 북쪽으로 향해 먼 곳에 가서 은거할 뜻을 세워 설악산의 진전사에 이르렀다.
이러한 도의의 가르침은 체계와 질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침의 능력이 중요하고 스스로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약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인 지방의 호족들은 다투어 지방에 선종사찰을 세우고, 호족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약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의 진행은 호족 중의 한 사람인 왕건의 승리로 이어지고, 불교는 선종 우위의 확고한 전통이 세워지게 된다. 이 진행의 출발은 도의와 진전사에서 시작되었기에 지금은 없어진 진전사의 역사적 의의는 대단한 것이다. 진전사터에서 이러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사상의 힘을 느껴보는 것은 한층 수준 높은 답사가 가능하도록 해 준다.
또한 부도의 탄생은 선종에서 유래되었다. 선종에서는 "본연의 마음이 부처"이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곧 부처와 동격이 된다고 하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선사의 죽음은 부처의 죽음에 못지 않은 것이 된다. 석가모니의 시신을 다비한 사리를 모시는 것이 곧 탑인바, 이제 성불했다고 믿어지는 대선사의 사리도 그 만한 예우로 봉안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진전사 뒷쪽 산등성에 도의선사의 부도가 세워지게 되었다.
답사에도 급수가 있다는데...
"초급자는 어디에 가든 무엇하난 놓치지 안을 성심으로 발걸음을 빨리 움직이며 골똘히 살피고 알아먹기 힘든 안내문도 참을 성을 갖고 꼼꼼학게 읽어 나간다. 그러나 중급의 답사객은 걸음걸이부터 다르다. 문화재뿐만 아니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는다. 그러면서 다른 곳에서 보았던 비슷한 유물을 연상해 내어 상호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곧잘 비교해 보곤 한다.초급자는 낱낱의 유물의 개별적,절대적 가치를 익히는 과정이며, 중급자는 그것의 상대적 가치를 확인해 가는 수준이다. 그러난 고급의 경지에 다다른 답사객은 얼핏 보기에 답사에의 열정과 성심이 식은 듯 돌아다니기보다는 눌러앉기를 좋아하고 많이 보기보다는 오래 보기를 원한다. 지나가는 동네분과 시답지 않은 객담을 늘어놓고 가겟방을 기웃거리다가 대열에서 곧잘 이탈하곤 한다. 허나 그것은 불성실이나 타내함의 작태가 아니라 그 고장 사람들의 살내음을 맛보기 위한 고급자의 상용수단인 것을 초급자들은 잘 모른다. 고급자는 문화유산의 개별적,상대적가치에 대한 이해를 넘어 그것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싶어하는 단계인 것이다. "
6. 문경 봉암사
희양산/봉암사/지증대사 부도와 비
정진대사 부도와 비/ 마애보살상/야유암
희양산 봉암사를 창건한 분은 신라 말기의 지증대사였다. 최치원이 쓴 지증대사비에 지증대사의 일대기와 봉암사의 유래가 소상하게 실려 있다. 지증대사비는 1,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모든 글씨를 다 읽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하게 남아있어 "남한에 있는 금석문중에서 최고봉"이라 한다.
7. 담양의 정자와 원림
소쇄원 /석영정/서하당/환벽당/취가정/명옥헌
광주직할시 동북방향 무등산 북쪽 기슭과 맞대고 있는 담양군 고서면과 봉산명 일대에 있는 참으로 많은 누각과 정자, 그리고 원림
면앙정,송강정,명옥헌,소쇄원,환벽당,취가정,식영정등 조선시대 정자문화를 맛볼 수 있는 답사코스이다.
8. 고창 선운사
동백숲/상갑리 고인돌/낙조대/칠송대 암각여래상/백파선사비
4월말 5월초 최고 추천 답사지는 고창 선운사이다. 그때쯤 한창 만발한 동백꽃의 아름다움이 있기때문이다. 여기의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오백년 노목의 기풍을 자랑하고 있다.
선운사의 최대명물은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선사의 비문이다.
세상사람들이 추사체를 일러 '웅혼한 힘'을 보여준다고 표현들 하는데, 유홍준씨는 백파비문에서 그것을 처음 실감하였다 한다. '송곳으로 강판을 뚫는 힘'으로 붓끝을 강하게 내리 꽂았다고 한 것도 거짓이 아님을 확인했다한다. 이 비문의 글씨는 추사 말년의 최고 명작으로 손꼽히는 금석문이다.
유홍준씨가 황지우 시인에게 "지우야, 나는 이 비를 볼 때마다 추사보다 더 위대한 것은 석공의 손 끝이었다고 생각한단다. 글씨 획의 강약리듬에 맞추어 힘준 곳은 깊이파고 흘려내리듯 그은 것은 앝게 새겨 추사체의 울림을 남김없이 입체화 시켰잖니."
황지우 시인 말하기를 "세상엔 고수가 많아요, 잉, 형님, 그래도 나는 추사가 석공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네요. 석공은 입면에 리듬을 새겨지만 추사는 그것을 평면에 했잖아요."
이 책을 읽고 난 후....
대부분은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감상에 있어 아래의 몇가지 점들을 알게 되었다.
석탑을 왜 짓게 되었는가? 부도란 무엇이며 왜 그것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는가? 불교의 사상의 어떻게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는가?
건축양식의 변화등은 시대의 흐름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등등이다.
또한 수많은 문화재는 그냥 그대로의 볼거리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적 인물들과 얽혀 있어 그 배경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흥미로운 일임을 느낀다. 이러한 시각은 문화재의 예술적 감상만이 아니라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역사공부의 일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
수많은 정보를 다 외울 수는 없고, 나의 문화재에 대한,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일천하므로, 차후의 여행을 위한 안내서 및 지침서로 이러한 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개개의 문화재에 대해 흥미롭게 설명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감상도 적혀있어 간접적 감상의 경험을 하게 되어 좋았다. 더군다나 간간히 흑백사진이기는 하여도 사진들이 함께 있어 읽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고 느껴진다. 초반 남도일번지는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서정적인 글들이 심금을 자극하더니, 뒷부분에 이르러는 불교문화와 조선선비문화에 대한 지적 읽을 거리를 제공하여 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노무현정부시절 유홍준씨는 문화재청 청장을 역임했다하며, 문인들 사이에 말 잘하기로 소문난 말장이라 하더니만, 그의 박식함과 글 솜씨는 참으로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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