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지 선정 100권중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마음 속에 화학적 변화가 일으키는 책, 더 나은 인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도록 밀어붙이는 책. '책은 도끼다'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그런데 동양고전과 서양고전은 사뭇 다르다. 마음 속에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같다. 하지만 폭발력이 향하는 방향은 다르다.

동양고전의 힘은 자기 자신의 내부를 향한다. 서양고전의 힘은 외부 세계를 겨냥한다. 


동양고전을 읽고나면 행복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로 인해 스스로 수양하려는 마음을 갖게 한다. 하지만 서양고전을 읽고 나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문제가 많은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물안의 개구리는 우물이 세계의 전부인 줄 알지만, 그리고 우물 밖의 광대한 세계가 있음을 모르는 것처럼

서양고전을 읽기 전의 나는 바로 그러한 개구리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서양 고전을 읽고 나면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 된다. 적어도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100권의 책은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 수용소 군도도 그렇다.


스탈린이 소련의 권력을 잡은 후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인권 유린. 불시의 체포, 왜 기관원들은 항상 밤에 체포하는 것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야 누군가가 체포되어 갔다는 것을 알 뿐이다. 체포되어 가는 사람은 저항없이 체포된다. 왜 내가 체포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아마도 심문이나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무죄가 밝혀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순순히 체포되어 간다. 그러나 무죄로 풀려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스탈린 자신도 체포되면 그 법망을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이다.


체포되어 가는 사람의 부류는 다양하다. 하층민으로 부터 상층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솔제니친 자신도 촉망받던 포병대위가 아니었던가? 엄청난 사람들이 체포되고 심문받고 10년형을 선고 받고 수용된다. 끊임없는 유배의 흐름이 계속된다. 이런 일은 단순히 기관의 존속을 위해 자행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솔제니친은 가장 정당한 혁명으로 세워진 정부가 가장 부당한 방법으로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는 참혹한 사실 앞에서 그 진실이 진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솔제니친은 차라리 풍자를 통해 권력의 검은 마수를 표현한다.


심문은 고문으로 이어지고, 고문은 사람을 다치게 한다. 그래서 심문관 옆에서 반드시 의사가 함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지 않은 피의자가 참혹하게 두들겨 맞아 정신을 잃는다. 옆에 있던 의사는 재빨리 피의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눈을 뒤집어 보고 맥박을 잡아 보기도 한다. 다행이 기절한 피의자의 맥박은 정상이다. 의사가 말한다. "정상입니다. 더 때려도 됩니다."


조국 소련을 위해 싸웠던 병사들이 불쌍하다. 싸우다 포로로 잡힌 소련의 병사들은 조국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들은 조국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조국에 의해 배신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배신자들로 불리고 그런 대우를 받는다. 포로 수용소를 탈출하여 조국으로 돌아와 귀대 신고를 한 병사가 심문을 받는다. 어떻게 삼엄한 경비를 뚫고 탈출할 수 있었는지, 탈출한 병사들이 거의 없는데 어떻게 당신만이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는 독일과 내통한 스파이다. 더러운 배신자 같으니라고.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끝난 후, 스탈린의 잔혹한 숙청에 동원되었고, 참여했던 이런 바 부역자들을 색출하고 벌을 주는 일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떵떵거리고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 중 제대로 벌을 받은 사람은 없다. 이른바 적폐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 전범재판에서는 수많은 나치 전범들이 재판에 넘겨진다. 그러나 스탈린의 공포정치에 편승한 그 누구도 제대로 재판에 넘겨져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든다. 잘못한 자들을 색출하여 벌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후대에도 이런 것들이 전례가 되어 지나간 잘못을 벌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과연 정의로운 나라가 유지되기나 할까? 똑 같은 잘못들이 계속 반복되지나 않을까?


잘못된 권력이 무섭다. 그리고 잘못된 권력에 대해 소리치지 못하는, 항거하지 않는 것도 무섭다. 아마도 잘못된 권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항거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잘못된 권력이 계속 권력을 가지도록 묵인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항거하지 않음으로 오게되는 온갖 고통은 항거하지 못한, 아니 항거하지 아니한 자들의 몫이다.


<수용소 군도>를 읽고 기분이 나빠졌다. 화가 났다. 세상은 변해야 하는데, 변할 구석은 많은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무언가를 하고 싶다. 나의 화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마음 속에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조그만 폭발을 일게 했다는 점에서 <수용소군도>는 제 역할을 다 했다고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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