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더스의 개

위다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인디고


 

 

가난한 자의 슬픔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그려진 수작.


나이가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 예한 다스는 딸이 죽으면서 남긴 손자 넬로와 함께 산다.

또한 잔혹한 주인 밑에서 일하다 쓰러진 후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파트라슈는 할아버지의 극진한 돌봄으로 회복되어 행복한 가족의 일원이 된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 거동을 못하는 할아버지 대신 넬로는 파트라슈와 함께 우유통을 실은 초록색 수레를 끌며 우유를 배달한다. 

넬로가 간절히 소망하는 바가 있다. "안트베르펜 성당(성모 대성당)에 걸려 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싶다."

돈 많은 사람만이 볼 수 있도록 천으로 항상 가려져 있는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그 작품을 보고 싶다.


넬로는 아무도 모르게 자기만의 꿈- 루벤스와 같은 위대한 화가가 되는 꿈을 키워나간다. .

아무도 모른다. 다만 파트라슈만이 알 뿐,


어느날 넬로와 친하게 지내는 여자 아이 알루아의 모습을 그리다가 알루아의 아버지 코제씨에게 들킨다.

코제씨는 넬로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만 그림쟁이가 되려고 하는 넬로와 알루아가 사귀는 것을 반대한다.

그 이후 코제씨는 알루아와 넬로 사이를 억지로 떼어 놓는다. 


넬로는 아무도 모르게 헛간에서 여러 날을 공들여 목탄화를 그린다.

미술대회에서 상을 타게 되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도 벗어나고, 알루아와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온 정성을 다 쏟아 붓는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넬로는 코제씨 헛간에 불을 질렀다는 모함을 받고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냉대에 부딪히게 된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할아버지는 숨을 거둔다. 

설상가상으로 할아버지 장례식에 몇 푼 안되는 돈을 다 써버린 넬로에게 오두막집 주인은 집세를 내지 못하면 나가라고 윽박지른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미술 대회 발표일이다.

기대를 걸었던 미술 대회에서 상을 받지 못하게 된 넬로에게는 희망이 사라졌다. 


눈이 펑펑 내리는 밤, 차가운 바람이 휭휭 부는 밤, 허기진 넬로와 파트라슈는 갈 곳이 없다.

추위보다는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 더 무섭다, 


눈길을 방황하던 중 파트라슈가 눈 속에서 거액의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발견한다.

코제씨의 지갑이다. 넬로는 코제씨 집을 찾아가 지갑을 돌려준다. 

그 돈이 없으면 코제씨는 파산이다. 코제씨는 눈보라치는 밤에 다시 지갑을 찾으러 나섰다는 것이다.

넬로는 늙고 힘없고 가여운 파트라슈를 알로아 집에 부탁하고는 알루아와 그녀의 엄마가 잡을 새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지갑을 찾지 못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돌아온 코제씨는 넬로가 지갑을 돌려주고 갔다는 말에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런 착한 아이를 따돌리고 모함을 했으니... 코제씨는 다음 날 넬로를 찾아 사과하고 넬로를 잘 돌봐 줄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한다.


한편 알루아 집에서 몰래 빠져 나온 파트라슈는 넬로의 냄새를 더듬어 그를 찾아 성모대성당에 온다.

넬로는 차가운 성당 바닥에 쓰러져 있다. 배고픔과 추위와 낙담에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가고 있는 넬로의 눈 앞에 성당 벽에 걸린 천이 거두어지고,

달빛에 환하게 빛나고 있는 루벤스의 작품이 나타난다. 

넬로가 그토록 소망하던 하나의 꿈.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루벤스의 걸작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가 올려다 보이는 대성당 바닥에

차갑게 숨을 거둔 넬로와 파트라슈를 발견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냉정함에 울음을 삼켰고, 코제씨는 찢어지는 아픔을 견딜 수가 없다. 

뒤 늦게 넬로의 미술적 재능을 알게 된 유명한 화가가 넬로를 찾아 온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

  

이 이야기의 아름다운 슬픔 속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다.  

썩어빠진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그것이다.

"동물에게 지옥의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는 한 방법이었다."

이 말은 신교와 구교의 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기독교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냉소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안트베르펜 성당의 루벤스의 그림을 가리고 있던 천은 돈의 힘으로만 걷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묘사한 그림 앞에서 죽어가는 넬로와 파트라슈의 모습.

그리스도가 태어났다고 믿어지는 크리스마스날 발견된 시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생각이 응결되어 있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가난하지만 선량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온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리스도는 다시 죽었는가, 소년과 함께?

오늘날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잔인하게도 아름다운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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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지음/ 휴머니스트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르네상스의 부흥에 큰 기여를 하였다. 베네치아는 피렌체나 로마와 같은 이탈리아에 있었지만 비잔틴 문명과 더 가까운 동쪽에 위치한 까닭에 비잔틴 유산중 하나인 색유리 모자이크가 많이 발달했다. 그 덕분에 베네치아인의 그림은 피렌체나 로마보다 훨씬 더 색채가 곱고 선명하며, 화사하고 장식적이다.

 

또한 피렌체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 선을 잘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에 베네치아 출신의 화가들은 형태보다는 색채를 중요시하였다. 피렌체와 로마 화가들에게 풍경이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베네치아 화가들은 풍경 자체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좌) 조르조네 <폭풍> 1505년 - 조르조네는 베네치아의 유명한 화가이다. 그는 폭풍이 볼아치는 날 번개가 떨어지는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풍경이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전경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며 나타난다.

우) 라파엘로 <카니지아니 마리아>1507년 - 라파엘로의 그림은 시선이 배경인 풍경보다는 인물에 향하도록 그려져 있다.  

 

피렌체에는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로마에는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가 있었다면 베네치아에는 베첼리오 티치아노가 있었다.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형태와 티치아노늬 색채가 합쳐진다면 이 세상 그 누구의 그림보다 훌륭할 것이라고 말했다. 티치아노는 질감을 자연스레 표현하기 위해 붓이 아닌 손가락과 그림용 나이프를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은 목판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베네치아 화가들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 이 방법으로 훨씬 적은 물감으로 선명한 색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티치아노는 붉은 색 물감으로 전체 바탕을 칠한 뒤 연필이나 목탄이 아닌 붓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 대상들 위해 색들을 계속 덧입히면서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를 찾아내는 기법은 베네치아 특유의 방식이었다. 

 

라파엘로가 죽은 1520년부터 16세기까지의 미술은 '후기르네상스 미술' 또는 '매너질즘 시대 미술'이라고 부른다.  왜곡된 형태의 파르미자니노 그림이나 어긋난 구도, 탁한 색채의 틴토레토 그림등이 당시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앞선 거장들을 뛰어넘으려는 미술가들의 노력과 그 시대의 환란이 합쳐져서 색다른 방식의 미술이 형성된 것이다. 라파엘로보다 오래 살았던 미켈란젤로도 후기에 갈수록 매너리즘의 영향을 받아 <최후의 심판>이란 작품에는 복잡하게 얽혀 있고, 원근법에 맞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좌)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 원근법 및 좌우 대칭 구조가 잘 잡힌 구도

우)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1594년, - 어디가 중심인지 모호하고 대칭되는 느낌이 없는 구도에 어둡고 탁한 색상, 움직임이 크고 소란스러운 느낌이 든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바로크미술이 등장한다. '바로크'라는 말은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며, 바로크 미술은 고결함이 무너진 미술이란 뜻이 된다. 이는 르네상스를 높이 평가한 반면 그와 다르게 발전한 17세기 미술은 르네상스를 타락시킨 예술이라하여 '바로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간결하고 단순한 모양을 좋아했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화려하고 복잡한 장식물을 다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림도 보다 더 감정을 울리는 방식으로 그렸다.

 

이 시대의 유명한 화가는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이다. 그의 특징은 빛의 과장이 심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인물의 생동감이 더 돋보이게 된다. 또 다른 특징은 성경 속 인물들을 매우 평범한 당시 가난한 서민들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린다는 점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와 마찬가지였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르네상스때보다 더 현실감있게 그려서 차분하고 조용한 감정보다는 더 크고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 <마태를 부르심>, 1599~1600년, 캔버스에 유채, 예수님이 마태가 일하는 곳에 찾아와 제자가 되라고 명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밝고 어두운 부분의 차이가 두드러져 생동감이 있어보인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이 고요한 아름다움 즉 정적인 미를 특징으로 한다면 바로크 미술은 동적인 특성을 가진다.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것이다.

 

벨기에 북쪽 지역을 플랑드르라고 부르며 그 곳의 미술을 '플랑드르 미'이라 한다. 17세기 플랑드르의 유명한 화가는 피터 파울 루벤스이다. 루벤스는 카라바조처럼 명암의 대조가 현격하진 않지만 그림 속 인물들이 꿈틀거리듯 크게 느껴진다.

 

피터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6년, 아테나, 헤라,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파리스 앞에 나타나 서로의 미로를 뽐내고 있다. 파리스가 들고 있는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혀 있다. 구불구불한 선 때문에 그냥 서 있기만 한 세 여신의 몸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보인다.

 

플랑드르는의 북쪽 신교의 영향력 아래 있던 네덜란드에서는 교회 장식용 대형 그림 주문이 거의 사라졌다. 대신 상업의 발달로 부유해진 부르주아들은 개인 초상화나, 자신의 집을 꾸미기 위한 아기자기한 풍경화나 정물화, 민병단등의 단체에서 주문한 단체 초상화등이 주로 그려졌다. 렘브란트는 이 시대의 네덜란드화가이다. 

 

프랑스의 루이14세가 건축한 베르사이유 궁전은 화려한 장식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실내는 수정으로 만든 상들리에, 온갖 색의 대리석 계단과 바닥, 금이나 은으로 장식한 가구들로 가득차 있다. 엄청난 크기의 궁전과 호사스러움의 극치에 달하는 궁전은 바로크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루이 14세가 죽자 귀족들은 베르사이유를 떠나 파라의 저택으로 돌아와서 다시 그들의 저택을 꾸미기 시작한다. 그들은 앙증맞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좋아하여 미술도 이와 같은 취향을 지니게 되었다. 이 시기의 미술을 '로코코'라고 부른다. 바로크가 웅장하고 거대한 남성적이라면, 로코코는 작고 귀여운 느낌의 여성적이다. 

 

로코코 미술이 절정을 달리던 때 프랑스는 사치와 부패로 무너진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또 다른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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