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김창석/국일미디어

-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꼭 읽어야할 책 100권 http://blog.daum.net/ccsj77/48

 

장황함과 난해함을 무기삼아 독자를 잠의 무자비한 손아귀로 끌고가는, 그러나 명료한 정신으로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맑은 에메랄드빛 바다속에 각양각색의 산호초와 그 사이로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열대어들이 노니는 바다속 풍경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책,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위대한 작품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결정체이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유독 독자의 시선을 끄는 정수 즉 백미가 있기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중 '눈(雪)'의 풍경이 그러합니다. 

 

알프스 산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요양원, 한스 카르도르프는 눈이 내리는 날 혼자서 스키를 타고 온 산을 돌아다닙니다.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경사진 전나무 숲은 눈으로 뒤덮여 온통 하얗습니다. 눈 외투를 두툼하게 걸친 자연은 절대 침묵으로 도도한 장엄함을 뿜어내고, 점차 심해지는 눈보라로 땅과 하늘은 물론 그 사이의 공간도 온통 하얗게 뒤덮여버립니다. 한 치 앞도 분별할 수 없는 백색의 어둠속에서 한스는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입니다. 마침내 아무도 없는 작은 오두막집을 발견하고는 통나무벽에 기대어 쉬는 순간 한스는 깜박 까무라치고 맙니다. 그 짧은 까무라침속에 한스는 밝은 햇살이 가득한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즐겁게 노래하며 뛰노는 꿈을 꿉니다. 

 

이 장면은 완전히 압도적인 힘으로 다가와, 조금 과장하자면, 나 자신이 거의 무아지경에서, 고요하고도 장엄한 그 눈의 풍경속에 한스가 되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나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알베르틴이 잠든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 때는 온 몸의 신경이 책의 지면을 뚫을 듯이 모아지면서,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며 영상을 그려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비 갠 투명한 대기속을 날아온 선명한 빛깔의 풍경이 망막에 꽂히듯이, 잠든 알베르틴의 모습이 내 마음의 막위에 생생한 모습으로 새겨졌습니다. 마르셀은 잠자는 알베르틴의 모습에서 수많은 알베르틴의 얼굴이 숨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Sleeping Beauty Colored by PinkParasol

 

오랫동안 마르셀는 지나간 시간속에 사라져 버린 시간의 기억을 찾아서 그것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기를 바랬지만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일로 인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되찾게 됩니다.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맛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레이나 고모집에서 먹었던 마들렌 과자의 맛이 되살아나는 동시에 그 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후에도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 하나 되살아나면서 그는 이를 형상화하기 시작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됩니다. 

 

마들렌 과자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다양하게 회자되고 재현되고 있습니다. 생쥐 요리사 이야기 <라따뚜이>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입니다만, 여기에서도 마들렌 과자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이 나옵니다. 라따뚜이의 요리를 맛 본 요리 전문 감식가의 눈이 순간적으로 휘둥레집니다. 순식간에 그의 기억은 어린 시절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죠.

 

☞ 라따투이 장면 감상 (주요장면 1:00 ~ 2:2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에는 마르셀의 유머, 재치, 위트가 반짝인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구절이 그 중 하나일까요?

 

어느 생면부지가 전재산을 자기에게 남겨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말라빠진 빵만 있는 식탁에 떨어뜨리는 눈물이 덜 나오는 가난뱅이와도 나는 같았다. 현실을 견딜만하게 만들려면,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서 뭔가 철없는 사소한 말을 이야기해야 한다. 92쪽

 

 

마르셀은 평생 천식으로 고생을 합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그에게는 계속되었습니다. 그에게 잠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날마다 24시간의 절반을 쪼개서 봉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주인이 나를 부르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기때문에. 우리를 속박하는 이 노무는, 우리가 눈 감으면 완수한다. 아침마다 또 하나의 주인에게 우리는 돌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밤의 강제 노무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641쪽

 

그는 공쿠르의 미간일기(未刊日記)를 읽고 커다란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예술적 감동이라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자문해 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예술의 감동은 어떻게 오는가? 평범한 사람들을, 보도 듣도 못한 매력을 가진, 방문해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고,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사람으로 만드는 놀라운 마법과도 같은 힘을 느낄 때 감동이 오는 것일까?

 

 

때로는 그의 글 가운데 동양의 노장사상과도 비슷한 생각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 세계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감촉하고, 생각하고, 이름을 붙이고, 그 두 세계 사이에 서로 부합하는 다리를 걸 수 있으나, 그 헤아리지 못할 간격을 메우지 못한다. 277쪽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전 7권으로 집필된 대작입니다. 번역자 김창석씨는 독자들의 요청에 부응하여 한권으로 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내 놓았습니다. 전체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원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하여 한권으로 꾸몄다고 합니다.

 

 

아름다움과 깊이를 소유한 그의 생각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다고 하건만, 나에게는 그저 희뿌연 안개속에 언뜻 언뜻 보일 뿐, 그것을 다 찾지는 못하였습니다. 언젠가는 또 다시 이 책을 집어들고, 아마 그 때는 한 권으로 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아니라 7권으로 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되겠지만, 일종의 보물 찾기를 할 기회가 찾아 오기는 하겠지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권중 각 권은 그 독자적으로도 하나의 완결된 작품처럼 느껴지기때문에, 때로는 한 권씩 읽어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고 하니, 천천히 기회를 내어 전권에 하나씩 도전해 보렵니다.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을유 출판사

 

뉴욕 타임지 선정 100권중 하나인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한스 카스토르프는 사촌 요아힘을 방문한다. 요아힘은 스위스 알프스산에 있는 국제요양원 베르크호프에 있다. 해발 3000미터의 고산지대의 신선한 공기와 풍광은 결핵 치료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3주간의 방문은 예상치도 못한 일때문에 길어진다. 근 7년간을 한스는 베르크호프에 머물게 된다. 한스도 결핵에 걸린 것으로 판명이 난 때문이다. 이 7년간 국제 요양원에서 겪었던 다사다난했던 일들의 기록이 <마의 산>의 내용이다.

 

한스는 20대 초중반을 베르크호프에서 보내면서 정신적을 성숙해진다. 요양원 특유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쇼샤부인과의 만남과 사랑. 문필가이자 인문주의자인 세템브리니의 영향- 세템브리니는 한스에게 애정을 가지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세템브리니는 민주주의, 인간의 자유,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크게 평가한다. 그리고 인류의 진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이후에 알게 된 예수회 수도사 출신인 나프타는 세템브리니와는 상반된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한스를 사이에 두고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은 극을 향해 치닿는다. 한스는 이 두 스승으로부터 각각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한스는 폭설이 내리던 날 명상을 위한 홀로만의 자리를 대자연의 침묵가운데서 발견하기 위해 나섰다가 길을 잃고 헤맨다. 잠깐 창고 오두막의 나무 벽에 기대어 정신을 잃은 한스는 꿈결같은 아름다운 환영에 빠진다. 깨어난 그는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사상과는 다른 자기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스와의 사랑의 하룻밤을 보내고 요양원을 떠났던 클리브디아 쇼샤부인이 다시 요양원에 들어온다. 그녀는 페퍼코른이라는 네덜란드인과 함께 온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커피왕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인물이다. 그는 말이 어눌하지만 그의 풍모에서는 왕의 카리스마가 보인다.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은 힘이 있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만든다. 한스는 이 인물에게서 강함을 느낀다. 세템브리니나 나프타처럼 이론과 말을 앞세우는 사람과는 달리, 그는 현실적이며 행동으로 무언가를 나타내는 인물로 느껴진다. 한스는 페퍼코른을 그의 또 다른 스승으로 받아들인다.

      

세템브리니와의 격렬한 논쟁중에 모욕을 느낀 나프타는 결투를 신청하게 되고, 그 결투중에 나프타는 자신의 관자놀리에 총을 쏘아 자살을 하고 만다. 또한 쇼샤와 한스와의 관계를 알게된 페퍼코른 역시 독극물로 생을 스스로 끝내고 만다. 쇼샤와 한스와의 사랑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병으로 인한 초라한 죽음 대신 위엄있는 죽음을 택하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의 왕의 카리스마로 볼 땐 후자에 가깝지 않겠는가 추측해 본다.

 

이러한 와중에 유럽은 1차세계대전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한스는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소년병들과 함께 죽음의 전쟁터에 투입된다. 빗 속의 진흙탕속에 포탄이 터지고 주위에서 아우성과 비명소리, 피튀기는 전장에서 그는 유령처럼 넋이 나간 사람처럼, 초점잃은 눈으로 슈베르트트의 <보리수>노래를 부르며 죽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 총 7장의 <마의 산>의 전반부 1~5장은 다소 평이하여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나 하고 느꼈었다. 그러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토마스 만의 해박함이 드러나며 그의 문장들은 빛나기 시작한다. 특히 6장에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와의 설전은, 내가 이해하지 못할 철학적 논쟁들로 이어진다.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느끼는 바는 있어 한 사람의 사상의 전제 즉 기초가 어떠한가에 따라 세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얼마나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정말 놓쳐서는 안될 두 장면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마력적인 묘사...이 소설 <마의 산>의 백미가 되는 눈 장면. 알프스의 깊은 산 속에 자연은 위대한 침묵을 들려준다. 대자연 앞에 경건함. 폭설이 쏟아지고, 말 그대로 주위는 온통 하얗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밝음 속에 압도되는 하잘 것 없는 존재. 폭설속에 정신을 잃고 꾼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 행복한 청년들과 아가씨들. 그의 몽환적인 꿈은 나의 꿈인 듯 느껴진다. 그가 그 꿈들로 깨달았던 깨달음을 망각했듯이 나도 그것을 망각한다.

 

이 소설의 결말부, 한스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에 투입된다. 한스의 모습은 유령처럼 보인다. 한스의 모습은 그 당시 세계의 모습이었으리라.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이 허공을 떠도는 유령처럼 한스는 진흙탕을 철벅거리며, 쓰러진 소년병의 몸을 밟으며 빗속을 나아간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듯, 그의 눈은 허공을 향해 부유하고 있다. 눈의 묘사에 뒤지지 표현. 알 수 없는 깨달음, 아니 깨달음을 얻었을 것 같은. 비참함과 아우성 속의 명상, 무, 허탈, 허무. 한스의 운명에 대한 애달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아스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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