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미학 오디세이>
트로이 전쟁이 끝난후 오디세이는 신의 저주에 이끌려 이리 저리 방황한다. 고향으로 향하는 그의 귀환은 머나 먼 험란한 길이었다.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오디세이의 여행처럼 다사다난한 험로이다. 하지만 진중권씨의 <미학오디세이>는 미학이라는 셰계를 돌아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은 원시시대로 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 즉 미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은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즉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 <미학>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원시예술 - 가상과 현실
구석기 시대의 인간들은 추상적 개념적 사유가 발달하지 않아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정신능력이 발달하면서 기하학적 양식의 회화를 발전시키게 된다. 이 두가지 양식 자연주의적 양식과 기하학적 양식은 오랫동안 대립해 가며 미술사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고대 예술과 미학 - 가상의 탄생
이집트인들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현실의 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을 그려내는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러한 예술은 시각적 추상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자연주의적 양식이 아니라 기하학적 양식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스 예술도 이집트 예술의 영향으로 딱딱한 기하학적 양식에서 출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격한 비례를 중시하는 양식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함으로 정신과 물질의 행복한 조화를 추구하게 된다. 수학적 엄격함은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여기에 약간의 빗나감을 덧붙임으로 차가운 느낌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었다. 이 시기가 그리스 예술의 완성시기라 할 수 있으며, 본질보다는 보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던 예술 양식의 시기이다. 본질인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의 모방인 현실 즉 가상적 세계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실을 가상으로 생각하는 플라톤의 난해함이란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이 시기의 그리스 걸작품들은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으로 특징지워진다. 이후의 로마예술은 모방의 시대로 찬란한 그리스 예술이 종말을 고하게 된다.
중세 예술과 미학 - 가상을 넘어서
그리스 예술이 보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면, 플라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기하학적 단순함과 수학적 비례의 모습이었다.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의 '실제로 아름다운 것'과 그 이데아의 그림자인 현실세계의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플라톤의 예술론은 신플라톤주의를 이끌었던 플로티노스에 의해 이어진다. 그리고 중세시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로티노스의 미학을 받아들인다. 그 결과 중세 예술은 플라톤의 미학- 본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그 골격을 이루게 된다.
플로티누스 예술론은 비잔틴 에술에서 완전한 실현을 보게된다. 물질세계의 재현 대신에 인간의 '영혼'과 초월적인 '신성함'을 표현하려 했던 정신이 비잔틴 예술을 포함한 중세 예술에 잘 나타난다. 중세 회화는 눈에 보이는 외부세계의 재현을 포기하고 정신세계, 영적인 세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 그런 까닭에 '기하학적인 단순한 형태와 밝은 빛과 화려한 색채가 중세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하지만 13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고딕 예술은 자연주의적 경향을 띠기 시작한다. 이 때는 아우구스티누스보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이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이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현실과 경험을 중요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현실세계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 그래서 신이 지은 현실 세계를 묘사하는 것은 창조의 아름다움을 파악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근대 예술과 미학 - 가상의 부활
근대 예술은 르네상스로 부터 시작된다. 르네상스의 두 거장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서로 대립적인 미적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다빈치는 최초의 근대과학자로 알려질 정도로 과학적 관찰과 실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때문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주의와 신비주의에 몰두해 있었다. 그래서 다빈치는 엄격한 자연 모방을 주장하는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내면의 형상에 따른 창조를 주장하였다.
르네상스를 뒤이은 17세기 예술을 바로크 예술이라 부른다. 바로크예술은 르네상스 예술과는 달리 윤곽은 뚜렷하지 않고, 묘사는 격정적이며, 구도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르네상스 회화는 평면적이지만 바로크 회화는 깊이감이 있다. 고전주의 예술과 바로크 예술은 둘다 자연주의적 묘사를 특징으로 하며, 본질의 세계보다는 가상 즉 현실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표현방법등을 통해 미적 취향은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미학이 체계를 갖춘 학문이 된다. 고전주의적 관점에서 미는 이성의 문제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인 관념이 등장한다. 즉 예술이 '감성'의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은 미학(aesthetica)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으로 인간의 '감성'을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 감성을 하나의 인식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칸트는 완전히 새로운 미학, 형식 미학의 선구자가 된다. 미는 '인식'이 아니라 '쾌감'이며, 예술의 본질은 '진리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있으며, 예술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상상력 유희'이며, 예술가는 고정된 법칙에 따르지 않고 '영감'에 따라 자유로이 창작을 한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관해서 - 아름다운 가상
고대인들은 아름다움은 대상의 '객관적 속성'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시대, 그리고 고전주의자들은 이러한 미학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상반되는 견해가 있다. 대상이 아름다우려면 플러스 알파 즉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파악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미적취향'이라는 것이다. 미의 존재 근거는 대상에 있으며, 판단 근거는 주관이 느끼는 쾌-불쾌의 감정에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와 같은 주관과 객관에 양다리를 걸친 미인식이론을 제시한다.
현대에 들어오면 미는 아예 완전히 주관화하기 시작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무엇이 아름답냐'고 물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언제 아름답냐'고 묻는다. 현대의 주관적 이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감정이입설'이란 게 있다. 우리가 우리 감정을 자연 속에 집어넣은게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거다. 자연의 아름다운 사물은 실은 우리가 그 속에 집어넣은 우리 감정이다. 물에 비치 제 모습에 도취해 한 송이 수선화가 되었던 나르키소스, 그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런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객관적인 미학에서 주관과 객관이 섞인 미학으로, 그리고는 주관적인 미학으로 그 중심축이 점점 이동해 가고 있다. 과연 미래의 미학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에셔의 그림의 끝도 없이 안과 밖이 바뀌며 돌아가는 듯한 '이상한 고리'와 같은 형태가 그 특징을 이룬다. 그런데 미와 예술의 본질을 밝히려는 시도는 이와 같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영원한 쳇바퀴와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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