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윤상인 옮김/ 민음사

 

나쓰메 소세키가 누구인지 난 모른다. 일본 작가와 일본 소설과는 친하지 않다.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을 보자 웬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읽었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란 책때문이다. 아마 첫번째 사건과 관련이 있었지. 할머니가 소중히 여기던 책의 작가가 아마 나쓰메 소세키였던 것 같은데... 할머니가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였지, 아마... 

 

다이스케는 일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 간다. 그리고 다들 결혼하라고 하는 마당에 장가도 가지 않고 있다. 부유한 아버지와 형의 경제적 지원은 그의 생활이 쪼달리지 않게 해준다. 그런데 삼년 전에 미치요와 결혼한 후 헤어진 친구 히라오카를 다시 만나면서 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사실 히라오카와의 만남보다는 미치요와의 만남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어쨌든 뭐 큰 사건이랄 것도 없는 그들의 만남에서 시작되어, 당사자인 다이스케나 미치요 그리고 히라오카에게는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이 전개된다.

 

남의 부인을 빼앗는 것은 용인될 수 있는 일인가? 예전에 숨기고 있었던 사랑이 새살 돋아나듯할 때 그 사랑에 따라야 하는가? 자연스런 인간의 욕망은 사랑을 이루라고 그러고 사회의 법칙은 그것을 금지시키는 데, 그 어떤 것을 따라야 할 것인가? 일본의 급격한 서구화가 기존의 가치관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읽힌다. 나쓰메의 다음 작품에서는 전통적 가치관에 상반된 자연의 욕구에 따라 결정한 남의 부인과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는 자기 가책으로 번민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니, 사랑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과 사랑을 이룬 후 괴로워하는 것...둘 다 괴로움이라면 과연 어떤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 사랑은 괴로움인가? 행복인가? 아니면 관습에 얽매인 사람들의 불행인가?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다이스케는 감정에 치우지지 않는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미치요에 대한 사랑의 감정 앞에 한 순간 허물어져 버리고 만다. 오랫동안 숨어있던 사랑의 감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그 모습이 점점 분명해 질 수록 그 감정은 점점 힘을 얻는 열대성 폭풍과 같이 휘몰아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철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분명한 어조로 나타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문학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분명한 주장처럼 제시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의도를 다양한 장치속에 드러낸다. 때로는 독자가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행간에서 읽어내야 할 때가 많다.

 

어떤 장면을 상세히 묘사하는 부분을 읽을 때, 왜 이런 묘사가 필요할까? 이것은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나 인물의 심리상태등에 대해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가? 단지 묘사를 위한 묘사는 큰 의미가 없을텐데, 그렇다면 그것은 인물이나 상황등과의 관련성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터이다. 우리 주위의 사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특히 그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심리등의 주관적인 요인들은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물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비오는 날을 아주 낭만적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비오는 날에 대한 묘사로 부터 이끌어 낼 것이고, 슬픔에 젖은 사람에겐 그 비가 슬픈 눈물처럼 보일 것이다. 소설가의 묘사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리라. 작중 인물의 상황이나 심리, 마음의 상태가 그렇게 표출된 것임에 틀림없을 텐데, 그런데 아직 그 느낌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소설읽기 또는 작가읽기는 아직도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그만큼 철학이야기보다는 문학이야기가 더 읽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과연 나는 <그 후>에서 작가의 어떤 의도를 읽어내었는가? ??? 책을 읽게 되면서 부터 두번읽기의 장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읽기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글에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즉 작가의 마음과 의도를 읽어내기 위해서라면 두번읽기는 문학읽기에도 필요한 전략이 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 아니 문학은 세월이 지나 다시 읽을 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오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시간 두고 읽기가 나을런가?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의 역사1-성경속의 유대인들  (0) 2013.06.27
유가의 군주역할론  (0) 2013.06.26
중국의 아나키즘  (0) 2013.06.14
동서양 고전: 사상 고전을 중심으로   (0) 2013.06.08
러셀의 서양철학사  (0) 2013.05.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