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민음사

 

1968년 체코슬로바카아의 수도 프라하의 봄은 두브체크의 개혁정책으로 또 다른 봄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곧 뒤이은 소련의 침공은 모든 것을 무산시키고, 철저한 통제사회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유명한 외과 의사이며 바람둥이인 토마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그의 아내 테레사. 사비나는 토마스의 숨겨놓은 여자 친구? 그녀는 화가이다. 그녀는 토마스와 헤어진 후 대학 교수인 프란츠를 만난다. 테레사의 애완견 카레닌도 꽤 비중을 차지한다. 이 여러 등장 인물 사이의 사랑과 갈등이 이 소설의 뼈대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좀 당황스럽다. 이 소설의 첫부분은 니체의 무한회귀 사상과 그에 따른 존재의 무게가 가벼우니, 무거우니 하는 일견 쓸 데 없는 또 다른 한편으론 뭔가 심오한 논의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치고는 좀 생뚱맞다고 해야 할까? 이어지는 토마스와 테레사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토마스와 사비나와의 만남은 좀 소설답다. 하지만 이 소설적 진행에도 난해함이 숨어있다. 수시로 끼어드는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궁금하다. 또한 일종의 영화 기법과도 같이, 같은 상황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구성은 흥미로우면서도 어떤 의도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텐데...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의 삼각관계의 이야기는 더는 토마스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것은 테레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사비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동일한 이야기이지만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한 상황에 대한 합리적 이해는 종합적이어야 하며 단편적이어서는 안된다는 뜻일까? 또는 그 순간의 상황은 어떤 연속적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한 상황에 대한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느낌이 교차한다. 심오한, 비정상적인, 난삽한, 어지러운, 더러운, 놀라운 느낌들 그리고 가벼움과 무거움, 정조과 배신, 사랑과 정사, 영혼과 육체, 신과 똥, 존경과 경멸 등 수많은 대립적 생각의 편린이 스쳐간다. 쿤데라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여러 요소들을 대비시키면서 그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려고 내내 힘겨운 투쟁을 시도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때론 번뜩이는 섬광처럼 범인들을 놀라게 하는 경구들로 나타난다. 쿤데라의 놀라운 이성의 편린들!

 

토마스는 프라하의 봄이 짓밟히던 당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나쁘다고 인식하지 못한 채 정권의 명령을 받아 또는 자의적으로 타인을 해치는 일을 자행한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쓴다. 즉 '모르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을 벌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논하면서 오이디푸스를 언급한다. 오이디푸스는 모르고 행한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자신의 눈을 뽑아버린 신화속의 인물이다. 후에 소련 공산 당국으로 부터 그 기사를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토마스는 이를 거부하는데, 그 거부하는 이유도 모호하다. 타협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경멸적인 눈길이 무서워 그랬는지, 아니면 압박을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알량한 자존심의 발로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마음도 명분도 없었기 때문인지...아리송하다. 그의 결정은 여러 가능성 중에 선택된 하나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뭉뚱거려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어쨌건 이 거부로 인해 외과 의사로서의 그의 경력이 끝나게 된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고, 비천하게 보이는 유리창 닦는 일을 하게 된다. 그가 얻은 것은 체코의 시민들로 부터의 존경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면으로는 존경을 받을 만 할 지 모르지만 도덕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의 여전히 바람둥이 기질은 그칠 줄 모르고, 그는 도덕적으로는 경멸을 받을 만한 행동을 지지르기 때문이다. 그는 존경과 경멸이라는 양 극단이 서로 마주치는 교차점에 위치해 있는 존재이다.  

 

그는 한 기자로 부터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선언문에 서명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그 선언문으로 인해 정치범들이 석방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자는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이야기하며 그를 촉구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그래야만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그래야만 한다'는 외부의 도덕적 의무 또는 명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구속받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스탈린의 아들과 똥, 똥과 신학, 똥은 더러운 것인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인간의 똥이 더러운 것이라면 신도 이미 더러운 것이 아닐까? 만일 신이 거룩하다면 똥도 역시 더러운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논리는 한편 어이가 없으면서도 흥미롭기도 하다. 거룩함과 혐오스러운 것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려는 또 하나의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쿤데라는 때로는 신과 성서의 대척점에 서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 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펴나가기도 한다. 이것 역시 무경계 개념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리라.

 

두 극단의 마주침이 발생시키는 현기증, 신과 똥의 조화, 가벼움과 무거움의 혼란, 경계가 모호한 개념들, 무수한 개념들 사이의 혼란. 그의 주제인 가벼움과 무거움에 기본적인 혼란이 숨어 있다. 무게가 없는 추상적인 것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논한다는 자체가 모호하다. 그 뿐아니라 어떤 것이 중요성에 있어 가볍다고 해야 할 지, 어떤 것이 더 무거운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지 판단도 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이 원운동처럼 회귀성을 가지고 영원속에 무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라면 그것은 무거운 것일까? 가벼운 것일까?  그와는 다른 직선적인 역사관으로 볼 때, 그 직선적인 역사에서 단 한번 발생하는 일회성의 역사적 사건은 무거운 것일까? 가벼운 것일까? 단 일회만 발생하는 일이기때문에 그것은 소중하다는 면에 있어 무거운 것이라 할 수 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겁의 세월 속의 일점으로 그냥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라고도 생각한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무한 반복되는 사건은 존재의 확실성으로 무거운 것이겠지만, 무한 반복이 의미하는 희귀성의 부재로 본다면 가벼운 것일텐데...

 

아마 쿤데라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혼란상이 아닐까? 세계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란,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키치란 본질적으로 동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에서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사비나는 공산주의가 뒤집어 스고 있는 아름다움의 가면, 달리 말하자면 공산주의라는 키치를 혐호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도 키치는 존재한다. "키치는 백발배궁 두 방울의 감동적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첫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 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 아이를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다워지는 것은 오로지 이 두번재 눈물에 의해서이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환상이며 키치로 인해 아름다워 보일 뿐인 그런 존재?... 위선이랄까? 세계는 뒤죽 박죽이며 때로는 우리의 이해가 옳을 수도 그럴 수도 있는 그런 세계라는 것? 쿤데라는 두 극단의 마주침 속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는 가벼운 것이 좋은 것인지,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인지 판단을 내릴 입장에 있지 않다. 그가 가벼운 것을 긍정적으로 무거운 것을 부정적으로 보더라도 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벼운 것은 무한대 속의 한 점처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세상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쿤데라는 존재의 의미는 비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다. 그것을 그는 참을 수 없는게다. 이 책은 또 다시 읽고 싶은 마음 반, 몸과 정신을 황폐시키는 책마냥 그냥 버리고 싶은 마음 반.... 묘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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