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화자는 캐러웨이가문의 한 젊은이입니다. 이 부분은 화자인 캐러웨이가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이를 통해 개츠비에 대한 캐러웨이의 평가가 얼마나 공정한가를 암시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행간을 읽어내려는 것은 마치 범죄사건을 수사하는 추리극과 같은 흥미진지함을 선사합니다.
그러면 캐러웨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추리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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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mily have been prominent, well-to-do people in this Middle Western city for three generations.
나의 가족은 할아버지대때부터 이 중서부 도시에서 이름이 난, 잘 나가는 집안이었다.
(세 세대는 할아버지대로부터 캐러웨이까지의 세 세대일 것이다. 그리고 잘 나가는 집안이었다는 말로부터, 아버지가 캐러웨이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듯이 한 말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은 결코 가져본 적이 없다"라는 말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The Carraways are something of a clan, and we have a tradition that we're descended from the Dukes of Buccleuch, but the actual founder of my line was my grandfather's brother, who came here in fifty-one, sent a substitute to the Civil War, and started the wholesale hardware business that my father carries on today.
캐러웨이가는 버클루 공작 후손으로서 나름 전통이 있는 가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가계를 일으킨 분은 큰할아버지였다. 그는 51세에 여기로 이주해 왔다. 그리고 남북전쟁때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전쟁터에 보내고, 자신은 지금 아버지가 경영하는 철물 도매사업을 시작하였다.
(캐러웨이가는 퇴락한 명문가였지만,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 전쟁중에 부를 쌓으면서 다시 가문이 일어난 것 같다. 그러나 그의 큰할아버지는 정의나 의무를 실현하는 것보다는 부를 쌓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던 듯 하다.)
I never saw this great- uncle, but I'm supposed to look like him-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rather hard-boiled painting that hangs in father's office.
나는 이 큰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큰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될 거라고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아버지 사무실에 걸려있는 근엄한 표정의 초상화와 닮았기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캐러웨이도 외모는 큰할아버지를 닮은 듯하다. 그래서 주위 가족들은 캐러웨이가 큰할아버지와 같은 사업 수완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큰할아버지가 시작한 일을 이어 받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
I graduated from New Haven in 1915, just a quarter of a century after my father, and a little later I participated in that delayed Teutonic migration known as the Great War.
나는 아버지가 졸업한 지 꼭 25년후인 1915년에 뉴 헤이븐에서 졸업을 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 독일이 일으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미국이 1차세계대전에 1917년 공식 참전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캐러웨이가 1915년 고등학교 졸업후 자의로 참전한 것은 캐러웨이의 성향을 암시해 준다. 왜 "delayed Teutonic migration" - "저지된 독일인의 이동"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을까? 아마도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독일이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을 말하기 위함이 아닌지...그렇다면 캘러웨이가 참전한 것은 1915~1917년 사이, 미국이 공식 참전을 결정하기 전이라는 뜻이된다.)
I enjoyed the counter-raid so thoroughly that I came back restless.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나는 전쟁에서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Instead of being the warm center of the world, the Middle West now seemed like the ragged edge of the universe - so I decided to go East and learn the bond business.
나의 고향 중서부는 이런 나를 차분하게 해줄 따뜻함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나를 만족시켜줄만한 세계의 중심지도 아니었다. 단지 드넓은우주의 가장자리에 있는 낡아빠진 모서리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동부로 가서 증권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전쟁통에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 캐러웨이는 자신의 고향 중서부가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있는 낡은 세계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세계의 중심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Everybody I knew was in the bond business, so I supposed it could support one more single man.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증권업계에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나 자신을 부양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All my aunts and uncles talked it over as if they were choosing a prep school for me, and finally said, "Why - ye-es," with very grave, hesitant faces.
가까운 친척들은 모두 이래 저래 말이 많았다. 마치 나를 위해 어느 사립학교가 좋을까하고 논의하듯이 말이다. 그러다 결국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글세- 그럼 어쩔 수 없지"라고 마지 못해 허락했다.
Father agreed to finance me for a year, and after various delays I came East, permanently, I thought, in the spring of twenty - two.
아버지께서는 1년동안 재정적으로 지원해주기로 동의하셨고, 이런 저런 이유로 출발이 지체되다, 아마 내가 22살 되던 해 봄에 동부에 오게되었다. 그리고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캐러웨이가 고향을 등지고 동부로 가는 것을 가족들은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캐러웨이는 고향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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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러웨이는 그의 종조부를 닮아, 정의나 도덕을 불문하고 부를 추구할 사람으로 기대되고 있었으나 캐러웨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젊은 혈기에 불타오르는 정의감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며, 더 큰 세계를 경험하고 난 후에 오히려 관행과 관습에 찌들린 고향을 떠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더 큰 세계를 향했으며, 가슴속에는 정의의 승리로 앙양된 도덕감을 가득 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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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andfather's brother을 큰할아버지로 번역한 근거:
grandfather's brother 또는 great uncle은 할아버지의 형제를 의미한다. 손위인지 손아래인지는 이 표현으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마도 큰할아버지인 것 같다. 왜냐하면 캐러웨이가 전쟁후 동부로 간 때인 1919년은 그의 나이 22세였다. 그렇다면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15년에 그의 나이는 18세이다. 그 때로 부터 꼭 25년전 그의 아버지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기때문에 1890년경에 그의 아버지의 나이는 18세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캐러웨이의 아버지는 1872년경에 출생한 것 같다.
그의 종조부는 51세에 중서부에 왔고, 그 이후 남북전쟁(1860년)이 있었으니, 캐러웨이의 아버지가 출생한 1872년에 그의 종조부의 나이는 최소한 62세였을 것이다. 이 나이에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사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종조부는 캐러웨이의 큰할아버지였을 것이라고 추리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