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은 15분 남짓 걷는 길이지만 봄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 길에서는 산수유나무, 매화나무, 동백나무, 벚꽃나무, 목련나무를 만날 수 있다. 날마다 죽어 있던 것 같은 나무가지에 꽃망울이 조금씩 올라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봄을 즐기는 나의 방식이다. 


올 봄 이 길을 걸으며 보게 된 바로는 동백꽃이 가장 먼저 첫 꽃을 피웠다.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아닐까들 생각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날마다 걷는 이 길에서 나의 두 눈으로 본 바는 그와는 달랐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동백나무에는 아직 피지 못한 꽃 몽우리가 있을 뿐이지만 양지 바른 곳에서는 이미 몇 일 전부터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동백나무의 두툼한잎은 갑옷 비늘처럼 번득이며 겨울의 찬 바람 맞으며 동백나무를 지켜왔다. 동백나무 잎은 겨울을 이긴 승장의 도도함이 있다. 하지만 봄이 오면 동백꽃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다. 봄 기운이 살랑이면 동백나무 가지 끝에는 마치 준비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조그만 연두색 몽우리가 부풀어 오른다. 봄 바람이 몽우리를 흔들면 몽우리 끝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봄 볕이 따사로워지면 꽃잎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불그스레 짙어져 간다. 붉은 빛이 짙어지면 온통 시선은 붉은 꽃에게로 모인다. 조명이 오롯이 무대의 주인공을 비치면 주인공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듯, 오로지 동백나무에는 붉은 꽃만 있는 듯 느껴진다. 밤을 지배하는 것은 까만 밤하늘이다. 그러나 그 밤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밤하늘에 총총히 박히 별들이다. 금모래를 뿌려놓은 듯 희뿌옇게 빛나는 별은 밤하늘의 주인공이요, 까만 밤하늘은 다만 배경일 따름이다. 동백꽃이 피는 그 때부터 동백나무는 새 신부를 위한 들러리요, 주인공을 위한 배경일 뿐이다.



매실이 매화나무의 열매라고? 정말? 그러고 보니 매실이란 매화나무 열매라는 뜻이 아니던가? 매화꽃은 동백꽃이 나올 즈음에 서로 앞서거니 뒤서니니 하며 거의 같이 피어난다. 화무십일홍이라고 꽃이 핀들 한 때이지만, 그래도 매화꽃은 동백꽃 보다 쉬이 진다. 강인해 보이는 동백꽃과는 달리 매화꽃은 섬세한 만큼 연약해 보인다. 부드러운 봄 바람에 매화향처럼 매화 꽃잎은 하늘거리며 떨어진다. 막 피어난 그 어린 꽃잎의 앙징맞은 모습이란...규중 처녀가 대문밖에 발을 내딛는 듯 하다.  


산수유. 매화꽃이 하나 둘 피어나면 그 때에 산수유 나무도 꽃 몽우리를 내민다. 끝에 노란 빛이 감돌다 어느새 피어나는 산수유. 산수유 꽃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 햇살에 선연한 노란빛깔은 마음 속에 봄 바람을 가득 불어 넣는다. 


한 켠에서는 솜털 가득한 목련 몽우리가 부지기수로 나무 끝에 매달려 있다. 우유빛 목편꽃이 피어난다. 꽃들도 피는 순서가 있나 보다.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산수유와 목련은 같이 올라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동백와 매화도 어울려 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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