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 - 고대 신화전설의 시대에서 신해혁명까지    조관희 지음/ 궁리출판사 2012 11 3 -

 

E. H. 카아가 말한 것 처럼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한 조관희 교수의 방식은 나름 흥미가 있다.

 

중국의 창조신화 와 삼황 오제 시대

중국의 창조신화인 반고이야기와 뉘와이야기에 이어 삼황 오제 신화가 등장한다. 삼황은 수인씨, 복희씨, 신농씨를 이른다고 하는데, 그러면 염제, 황제, 치우는 또 이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삼황시대 후에 오제가 등장하는데, 그 오제의 마지막 두 인물이 야오(요)와 순이다. 이런바 요순시대이다.

 

하,은,주 시대

순이후에 위(우)가 후계자로 승계하고 그 아들 치가 자리를 물려받음으로 세습왕조가 시작된다. 이리하여 '위'로 부터 시작되는 하나라가 등장하게 된다. 하나라는 아직 고고학적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그 신뢰성이 약하다.

 

그 뒤를 이어 '은'나라, '주'나라가 차례로 등장하게 된다. 갑골의 발견으로 그 실체가 의문시되던 은나라가 최초의 국가로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주나라의 문왕의 뒤를 이은 무왕은 은나라를 멸망시킨다. 은의 마지막 왕 주왕의 폭정은 '주지육림' '포락' 등의 단어에 나타난다.

 

주왕의 폭정에 항거한 무왕의 행동은 하늘의 뜻인 '천명'을 살핀 결과이고, 천명에 의해 왕이 된자는 '천자'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하를 다스린다는 사상이 확립된다. 무왕이 죽어 그의 어린 아들 성왕이 즉위하자 무왕의 동생인 주공 단은 섭정이 되어 충심으로 성왕을 보필했다. 그렇게 하여 왕조의 기틀을 공고히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쿵쯔(공자)를 비롯한 후대 사람들은 주공의 이러한 충심으로 조카를 보필한 행동을 칭송하여 찬사를 보내며 그 공을 기렸다. 주나라가 이웃의 소국들을 정복해 나가면서 나라가 커짐에 따라 봉건제도가 필연적으로 시작된다. 교통과 통신상의 문제로 그 넓은 영토를 직할 통치할 수가 없었기때문이다.  그리고 그 제후로는 혈연관계에 있는 자를 임명함으로 종법제도를 국가의 지배이념을 삼게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제도의 모순점이 표면화되면서 주 왕조가 쇠퇴하게 되고 이민족의 침입을 적절히 방어할 수 없어 수도를 동쪽의 낙읍으로 옮기는 이른 바 '주의 동천'이 있게된다. 이리하여 서주시대가 마감되고 동주시대가 시작된다. 이런 와중에 제후들은 주변의 토착민들을 신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어 지역신인 사와 농업신인 직의 제단을 제후의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종묘사직)와 함께 궁궐의 좌우에 안치하여 정신적으로 일체감을 형성하며 토착민을 위한 제도를 실행함으로 점차 세력을 강화해 나간다.

 

왕조말 나라를 망친 미인들

하나라 걸왕때 당시의 고가품이었던 비단을 찢는 소리를 좋아했던 말희(모시), 은나라 주왕에게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며 질러대는 비명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던 달기(다지)라는 여인이 있었고, 주나라의 유왕의 여인인 포사(바쓰오)는 평소에는 웃음을 보이지 않았으나,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에 놀라 달려온 제후의 군사들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한다.

 

춘추전국시대

동주시대는 명분에 따라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천자에 의해 근 514년간이나 지속된다. 이 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누어진다.

춘추라는 말은 쿵쯔가 엮은 '노'나라 역사 연대기인 춘추에서 나왔고, 전국은 당시 천하를 유세하던 사(선비)들의 담론을 모아놓은 책인 전국책에서 유래하였다. 춘추시대의 패자였던 진이 한과 위, 조 세나라로 갈라선 일을 기준으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눈다.

 

춘추시대중기에 이르러 변방의 제후국이었던 제,진,초 나라등은 대국을 이루어 패권을 다툰다. 동방의 대국인 제나라는 명재상 관중을 등용하여 나라가 강대해 지고 제의 환공은 패권을 향한다.그리고 남방의 신흥세력을 대표하는 초와 대립하는 형세를 취한다.

 

 제나라가 쇠락한 후 송의 양공이 패자를 자처하여 초와 일전을 벌인다. 송의 재상인 목이(무이)의 초가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는 건의를 무시하고 점잖은(?) 정공법을 택해 패하게 된다.

 

그 뒤 송의 패권을 이어받은 것은 진 문공이다. 그는 초나라에 오랫동안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망명생활시 졔즈투이(개자추)가 제 살을 베어 진 문공을 대접하기도 하였으나 왕위에 오른 후 논공행상에서 제외되자 실망하여 몐산(면산)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나중에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그를 불렀으나 나오지 않아, 그를 나오게 하기위해 산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나오지 않고 타죽고 말았다. 이에 진 문공은 그 날 불로 익히지 않은 찬밥을 먹었는데 이가 한식의 유래가 되었다한다. 진 문공이후 진나라와 초나라가 대립하는 형상을 띄고 있다가 이후에 초의 배후에서 오와 월이 초의 북상을 견제하게 된다.

 

춘추시대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군주의 혈족 그리고 귀족의 세력이 쇠퇴하고 신흥 호족의 세력이 정치의 실권을 쥐게되면서 이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결과 진나라는 세 나나로 나뉘게 됨으로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 주왕의 권위는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이른바 전국칠웅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게된다.

 

소도시 중심의 읍제국가의 형태인 춘추시대와는 달리 전국시대에는 패권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징병제를 실시하며 대병력에 군량을 도입하기 위한 새로운 수취방식의 필요가 있게되었다. 그래서 지방행정조직인 군현제를 실시하며, 관료를 파견하여 다스리는 중앙집권적 관료국가가 형성되게 된다. 봉건제도에서 관료제도로의 변화가 이 시기에 있게 된 것이다.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명분보다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제후들의 제 일 관심사는 나라를 강성하게 하는데 쏠리게 된다. 그래서 가문이나 신분의 상하를 불문하고 재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기풍이 확립된다. 아울러 몰락한 귀족들이 살 길을 찾기 위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살길을 찾게 되니, 이들은 통치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서로의 생각을 논박하는 과정을 통해 웅변술을 익히고 논리학이 발전하게 된다. 춘추시대의 체제와 질서와 전통의 몰락의 현장에서 보수주의자들은 회귀를 주장하고, 혁신적인 사상가들은 개혁과 쇄신을 주장하는 등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역사상 전무후무한 학술과 사상이 만개한 시기이다.'제자백가' '백가쟁명'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제자백가의 선두에 선이가 쿵쯔(공자)이다. 그는 유교적인 교양을 받은 관료제의 의한 문치적 봉건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그의 제자들은 여러 나라의 관료로 채용되면서 무력과 권력을 배제한 도덕과 예를 바탕으로 한 도덕 정치 곧 덕치를 주장하게된다.

 

이 덕치사상을 구체화한 인물은 그의 제자인 멍쯔(맹자)이다. 그와 양혜왕과의 대화에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난다. 부국강병병책을 묻는 왕에게 대답하기를 "왕께서는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만이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라고 합니다. 위와 아래가 서로 이익을 다투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라고 설파하다. 쿵쯔가 말한 '인'에 '의'를 더해 자신의 '왕도'정치를 완성하였다. 그의 사상은 '성선설', 민의에 의한 폭군이 교체를 합리화한 '혁명론'을 중심 기둥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도 이런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유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나라가 그의 사상을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춘추전국시대나 그 이후 현실정치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 한 것은 법가의 법치이었다. 전국시대 칠웅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위나라에서 등용한 리쿠이(이회)는 쿵쯔의 제자가운데 사회개혁의 의욕이 가장 강했던 쯔샤(자하)의 제자로서 법률개정 즉 변법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중국 최초의 성문의 형법 법전이라 할 만한 '법경'을 썼다. 법가의 주요인물중 한 명인 상양(상앙)은 법경을 바탕으로 진나라의 법률을 완성하였고, 이가 한나라와 당나라에 이어졌다. 이쿠이가 법가의 선구였다면 상양은 리쿠이의 성문법을 계승 발전시켜 변방의 별 볼일 없는 후진국에 불과했던 진나라가 후일 전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던 계승자라 할 수 있겠다.

 

법률에 의한 신상필벌을 강조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법치라고 하고 이와 같은 법치에 의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패도정치라고 한다. 중국역사를 돌리켜 보면 백성의 뜻을 중시하고, 제왕이 된 자의 덕망에 천하가 교화되어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는 왕도정치를 표방한다. 하지만 실제로느 권모술수와 잔혹한 형벌에 기대 어리석은 군주의 실정을 호도해 나가는 패도정치가 시행되었다. 왕도정치와 패도정치는 이후 펼쳐지는 역사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갈마드는 영원한 딜레마이다.

 

쑤친(소진)은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나머지 육국을 종으로 묶어 대항하는 합종책그 완성하여 육국의 재상을 겸하였다. 이 육국의 합종책에 대항해 나온 것이 연횡책, 연형책이다. 이것은 장이(장의)에 의해 주장되었으며, 육국을 설득해 진과 동맹을 맺게 만든다. 진의 재상 판쑤이(범수)원교근공의 계책을 채택하여 멀리있는 나라와는 친목을 도모하고 인접한 나라를 적극 공략하였다. 이후 창핑(장평)에서 조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40만 대군이 몰살당함으로 전국시대 열국들의 치열한 쟁패는 결전나고 말았다. 진의 천하통일로 인해 동주시대와 아울러 전국시대도 끝이 난다.  

 

이 책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고전들의 다수가 춘추전국시대에 나온 것으로 생각되는 바, 공자와 맹자...그리고 그의 제자들, 명재상들의 활동...수 많은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들이 이 시대를 배경을 펼쳐지는데, 아주 적으나마나 그 시대의 역사의 흐름을 볼 수 있어 차후의 책읽기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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