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란트 러셀 저/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러셀은 서양철학사를 집필하면서 시대적 상황과 철학이 어떤 관련을 가지고 발전해 왔는지 통찰하고자 한다고 그 목적을 밝힌다. 그래서 그의 서양철학사를 읽으면, 철학외에도 서양 역사의 개괄적 흐름을 짚어 볼 수 있다.

러셀은 각 시대별로 저명한 철학자들의 주요 철학 사상을 소개한 뒤에 거기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는 철학자이기도 했지만 저명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다양한 수학의 분야중에서도 수리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원리]로 알려진 책을 집필했다. 러셀은 이 책을 통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수학체계를 구축하려 시도했다. 그가 해야 할 첫째 작업은 견고한 수학적 기초를 세우는 일이었다. 수학이 자체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면  그 수학체계는 논리성이 결여된 불충분한 체계가 될 터이다. 하지만 러셀의 역설로 알려진 그의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모든 수학체계를 파괴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구축하고자 하는 수학체계내에서는 이러한 모순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는 이것을 피하기 위한 체계를 고안해 낸다. 올바른 전제위에 쌓아 올린 수학만이 무너지지 않는 영구적인 체계를 갖게 될 것이었다. 유클리드가 자명한 진리로 판단한 다섯개의 공준을 전제로 그의 기하학 체계를 세워나간 것과 같이 말이다.

 

그의 이러한 경력은 철학을 바라보며 그 철학의 논리성과 진리성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가 보기에 많은 철학자들은 증명되지 않은 전제를 바탕으로 그들의 사상을 전개해 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전제에 사용된 개념이나 언어,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면서 사용했던 단어들, 개념들이 불분명하거나 자명하지 않기때문에 결국 그들의 철학논리와 체계이 허술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영향을 받은 비트겐쉬타인은 분석논리학이라는 새로운 철학분야를 창조하지 않았던가? 비트겐쉬타인은 의미분석만이 철학의 논쟁을 종식시켜 인간을 철학으로 부터 해방시킬 수 있음을 주장했다. 러셀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당대의 철학자들의 약점을 파고 들어 예리한 칼날로 헤집어 버린다. 그의 논리분석의 칼날아래 그 당당한 철학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그들 가운데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루소, 칸트등 이름만 들어도 철학사를 빛낸 당대의 인물들도 그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한다. 다만 그의 칼날에 사정을 둔 듯한 철학자가 몇 있는데, 스피노자, 로크, 존 듀이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가장 신랄한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된 철학자는 아마도 니체가 아닐까? 니체의 초인주의, 영웅주의는 많이들 알려져 있다. 니체는 힘의 논리를 앞세운 초인, 영웅을 내세웠는데, 이는 그의 두려움때문이었을 것이라 추론하면서 그를 풍자한 글은 커다란 카타르시스적인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철학적 사상 가운데 흥미로웠던 부분은 버클리와 흄의 사상이다. 이들은 로크가 시발점이 된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그들의 논리를 발전시켜나간다. 그런데 어떻게 경험을 기초로 한 철학에서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그러한 사상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하다.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각되는 것만이 존재한다."  버클리는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이 정말 터무니 없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양자이론에서 말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불리는 불가해한 이야기가 버클리의 사상과 유사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버클리는 '신이 모든 것을 보고 있기때문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그의 주장을 이용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또한 흄은 자명한 진리로 알려져 있는 인과원리를 부정한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그의 논리적 과정을 따라가는 일은 흥미로운 지적 산책이 될 터이다.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루소의 사상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에밀]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루소에게 친근감을 갖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루소로 부터 무정부주의 사상이 나왔으며, 히틀러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노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참 힘이 든다. 천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을 일독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거니와, 더 나아가 당대를 풍미하던 철학자들의 그 철학적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난해하다. 더군다나 그에 대한 러셀의 논리적 비판이라니, 책의 3분의 1을 제대로 이해나 했을까?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얻은 것이 있으니, 최고의 지성이라 할 철학자들이 몰두한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 그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자들의 기본 사상에 접할 수 있었으니, 차후 그들과 그들의 사상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에 접근할 때에는 먼저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고, 그 다음에 관심이 가는 철학자 개개인에 대한 책들을 읽어 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단 이 책을 일독하는 것 자체가 철학을 하는 것만큼이라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러셀의 철학사 구분

1. 고대철학

  1) 소크라테스 이전

  2)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3)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2. 카톨릭철학

  1) 교부철학

  2) 스콜라철학

 

3. 근현대철학

  1) 르네상스로부터 흄까지

  2) 루소에서 현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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