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오랫동안 서가에 잊혀져 있던 [동서양 고전]을 집어들었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빌려 읽으면서 연체한 탓에 새로운 책을 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난 번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도 동서양의 사상에 대한 나의 시야를 더욱 넓혀주었기때문이다. 

 

동서양의 지성들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그들의 이성을 최대한 사용하였다. 그러면 과연 인간 이성은 진리를 발견할 능력이 있는 걸까? 인간 이성이 쏟아내는 수많은 사상들 중에는 진리의 편린들이 들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 진리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 주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인간 이성의 총아인 철학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임은 명백하나, 결코 진리에 이를 수 없는 영원한 전진일 따름이다.  

 

한국사상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일연의 삼국유사/정도전의 삼봉집/이황의 성학십도와 이이의 성학집요/허준의 동의보감/정약용의 목민심서/최한기의 기측제의

 

동양사상

주역/공자의 논어/노자의 도덕경/바가바드기타/사마천의 사기/왕수인의 전습록/마오쪄둥의 모순론

 

서양사상

플라톤의 국가/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데카르트의 방법서설/로크의 정부론/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루소의 에밀/스미스의 국부론/칸트의 순수이성비판/헤겔의 정신현상학/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다윈의 종의기원/밀의 자유론/마르크스의 자본론/뒤르켐의 사회분업론/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베르크손의 창조적 진화/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피아제의 아동지능의 기원/레비스트로스의 슬픈열대/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샤르트르의 존재와 무/쿤의 과학혁명의구조/ 롤스의 정의론

 

다양한 사상가들의 다양한 저서들에 대한 설명과 소개등은 인간 이성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때로는 그들의 사상은 난해하여 그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저작들과 힘겨운 싸움이 필요할 듯하다. 이러한 힘든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상의 불완전성때문에 절대적 진리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바라본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나 국가등의 가치관 또는 그러한 사회에서 자신만의 경험으로 형성된 자신의 가치관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만큼 사물에 대한 이해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성에 의해 태어난 사상들에 대한 앎은 자신이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물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이 고백록에 나오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라든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나오는 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전제를 바탕으로 논리를 펼쳐나가고자 하는 엄정함,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보여주는 상이해 보이는 두 대상을 창의적으로 결합시키는 신선함 등은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한가지 좋은 점은 우리의 두뇌의 작용을 활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시베리아에는 영구동토층이 있다고 한다. 영원히 얼어붙은 땅이다. 짧은 여름이 오면 땅의 표면의 얕은 부분은 녹지만 곧 겨울이 오면서 다시 얼어붙어 버리고 마는 땅이다. 그 땅의 표면아래는 결코 녹지 않는 얼어붙은 동토이다. 우리가 두뇌는 때로는 그러한 영구동토층과 같다. 하지만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집중하면서 보다 깊은 곳의 두뇌활동이 활성화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의 두뇌의 표면만을 운행하던 신경세포가 두뇌의 영구동토층을 뚫고 더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이 될까? 나의 사고작용이 보다 깊은 곳에서 작동함을 느꼈다는 것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1년에 책을 1000권 읽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어떤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 이후에 그는 한 달에 책을 2-3권을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하면서, 책읽기가 두뇌계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지 깨달았다고 한다.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아무튼 나의 책읽기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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