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글러 지음/ 유명미 옮김/ 해제 우석훈/ 부록 주경복 / 갈라파고스

유엔 식량 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수많은 어머니의 눈물, 수많은 아버지들의 무기력하게 처진 손.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아의 선상에서 먹을 것을 달라는 울음조차 울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들, 아이들 무덤!

 

'선별작업'으로 거부당한 아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 생존 가능성이 더 많은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거미같이 바짝 마른 팔다리를 한 아이를 안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 이야기를 읽을 때, 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기아라는 문제를 누누이 들어 왔었지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이 책에서 읽은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더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것은 '아옌데'와 '상카라'의 비극이다. 국민들을 굶주림과 가난에서 건져내려는 이상을 품고 투쟁한 사람들이 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만 하였는가? 그들의 이야기뒤에 숨겨진 더러운 진실, 추악한 현실은 너무 슬픈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어 왔고,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좌절과 절망만이 남아있다. 그들에겐... 

 

1970년 칠레의 인민전선은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 아옌데는 유아기의 비타민 및 단백질 부족, 소년소녀들의 건강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내건 공약이 분유의 무상배급이었다. 이 공약을 내건 아옌데가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분유와 유아식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 기업 네슬레가 이 지역의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네슬레는 우유공장을 경영하며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판매망도 장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옌데는 네슬레와의 원활할 관계가 필요했다. 하지만 1971년 스위스의 네슬레 본사는 칠레 민주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함으로 아옌데 정부의 공약을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왜 네슬레는 아옌데 정권에 협조하지 않았을까?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개혁 정책을 꺼리고 있었으며, 외국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나 칠레의 자립성을 높이고 국내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때문에, 키신저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칠레의 민주정부를 괴롭히려고 했다. 칠레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리고, 운수업계의 파업을 조종하고, 광산이나 공장의 태업을 부채질했다. 서구의 많은 다국적 은행이나 기업, 상사들처험 네슬레 역시 아옌데 정권의 개혁 정책을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결국 아옌데의 공약을 수포로 돌아갔다. 1973년 CIA는 피노체트의 군부쿠데타를 도왔다. 9월11일 대통령궁에서 마지막 저항을 하던 아옌데는 살해를 당한다. 피노체트의 무차별 탄압으로 수많은 대학생, 성직자, 노동조합간부,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기 전처럼 수만명의 아이들이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다.

 

토마스 상카라.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고자 노력했던 한 젊은이의 이루어지지 않은 꿈,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토마스 상카라이다. 4명의 젊은 장교들이 1983년 8월4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리더인 상카라를 비롯하여 블레즈 콩바오레, 앙리 총고, 장 밥티스테 링가이가 그들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등 외국의 사주를 받은 콩파오레가 1987년 다른 세명의 친구를 죽이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개혁은 끝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상카라의 인두세 폐지와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 등 개혁 정책에 있었는데, 이러한 정책에 의해 부르카나파소는 4년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정치부패로 권력을 유지하는 코트디부아르, 가봉, 토고등 인접국가들에게 이러한 변화가 퍼져나가는 것을 우려한 프랑스의 일부 세력은 상카라의 개혁 정책을 두려워했다. 아프리카가 정말로 자신들의 생산물로 어린이 기아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극심한 기아 속에서 선진국의 원조로 삶을 이어갈 것인가의 분기점에 놓였던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서른 아홉까지 살고 싶었던 상카라의 죽음과 함께 부르키나파소의 어린이들에게는 다시 굶주림이 찾아 왔고, 서부 아프리카에서의 변화는 끝내 찻잔 속의 태풍이 되고 말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리고 부패한 정치인들과 탐욕으로 가득찬 자본가들에 대한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지글러는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한다.'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 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에 대해 책임을 다히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속에 존재한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꺽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꺽을 수 없는 의지는 과연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이 의지의 발현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의지가 존재하는 한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극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탐욕, 거대자본의 횡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만큼 세계의 불행도 계속될 것이다. 이 부조리한 세상의 경제구조는 그 한계에 이르기까지 정의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시험할 것이다. 그 의지는 좌절을 경험할 것이나 또 다시 일어설 것이다. 눈물속에 피는 꽃처럼 거대한 힘 앞에 연약한 듯해 보이는 그것은 결코 뿌리채 뽑히지 않을 것이다.  

 

"오 여호와여, 도와 달라는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 눈물에 대해 잠잠히 계시지 마십시오." (시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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