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 날은 공교롭게 일요일, 마지막 여름을 보내는 송정 바닷가를 둘러본다. 구덕포쪽에 차를 주차하고 나니 보드를 배우는 사람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넓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 바다물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해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와 놀고 있다.

 

 

 

 

 

 

 

 

 

 

 

 

 

멀리 송정 전경을 바라본다.

 

 

 

 

 

 

 

2014년 여름은 송정바닷가에서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세계 3대 허무명소중에 트로이를 포함시킵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상, 벨기에 브뤼셀의 상징 오줌싸개 동상과 함께 트로이는 그 명성에 비해 볼 것이 전혀, 아니 거의 없는 명소라 하여 세계 3대 허무명소라고 불린답니다.

 

그러나 <트로이>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화려함을 이야기한다면 트로이는 에페수스에 미칠 수 없습니다. 에페수스에서는 웅장하기도 하고, 정교하기도 한 유적들이 화려한 고대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트로이에서는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유적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고, 오히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돌들과 땅속에 파묻힌 성벽의 흔적들이 쓸쓸히 트로이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트로이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메로스는 그 장대한 이야기를 <일리아스>에 풀어 놓습니다. 오랫동안 신화속으로, 문학속으로, 명화속으로 파고 들어가 여러가지 형태로 회자되어 온 그 이야기의 절대적 힘 앞에서 관광객들 각자의 머리 속에 수천 수만의 트로이를 매일 새롭게 숨쉬게 만들고 있습니다. 트로이의 적막함과 황폐함은 오히려 상상을 더욱 자극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트로이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아래는 트로이 입구에 만들어 놓은 목마입니다.

 

 

 

 

트로이에서는 유적이라는 말보다는 흔적이 더 알맞은 것 같습니다. 

 

 

 

고대 트로이 시대에는 저 넓다랗게 펼쳐진 평원이 존재하지 않았고, 바다가 트로이 성 가까이 위치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화산활동으로 밀려든 토사들이 바다를 저 멀리 밀어내 버렸습니다. 수백척의 그리스 전함들이 바다를 메운 모습을 상상으로 그려봅니다. 저 평원에서 일전을 벌이던 그리스 병사과 트로이 병사들의 아우성이 귀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트로이로 오는 도중 버스에서 브래드 피트 주연의 <트로이>를 보았던 느낌이 쓸쓸한 트로이의 흔적과 어울려 상상을 자극합니다. 아킬레우스(브래드피트)와 헥토르(에릭바나)의 전투장면은 대단하였습니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를 패배시킵니다.  

 

 

 

트로이의 영웅이며 명장인 헥토르는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직감하면서도 명예롭게 아킬레우스와의 싸움에 나섭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두고서, 존경하는 아버지 프리아모스왕과 트로이 성을 뒤에 남겨두고 결연히 아킬레우스에 맞서는 헥토르는 영화 <트로이>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트로이는 전략적 요충지 및 무역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트로이는 시대를 달리해서 같은 장소에 반복적으로 도시가 건설되었습니다. 트로이는 기원전 3000년 청동기시대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9층으로 이루어진 복합 유적지입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배경이 되었던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60~1250년 사이에 있었던 전쟁으로 추정되며 트로이 제7기에 있었던 사건이라 합니다. 

 

트로이는 여러 시대의 유적들이 층층이 쌓이 복합 유적이라 처음 찾는 관광객들은 뭐가 뭔지 알쏭달쏭하기만 합니다. 안내 표지판에는 그 유적이 몇 기에 속하는지를 밝혀줍니다.

 

 

 

 

 

 

 

 

 

 

아래의 유적은 트로이 유적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폐허가 된 아래의 층 위에 새로운 트로이가 건설되었음을 보여주는 층층 구조가 눈에 띕니다. 

 

 

 

 

그리스의 맹인 음유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트로이 10년 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서사시입니다. '일리아스'는 "일리오스의 이야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일리오스'는 트로이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일리아스>는 '트로이 이야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라고 말할 때의 '일리아드'는 그리스어 '일리아스'를 영어로 옮긴 말입니다. 그래서 호메로스의 작품은 그리스어로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영어로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라고 부릅니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는 신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만, 실리이만이라는 소년은 <일리아스>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실리이만은 성장하여 그의 꿈을 이룹니다. 트로이가 실제 존재했던 도시라는 것을 발굴을 통해 증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리이만은 전문적인 고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트로이를 발견하려는 꿈을 가진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그는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이를 발견하려는 열망이 지나친 나머지, 무리하게 발굴을 진행함으로 수많은 트로이의 유적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조심스럽게 하나 하나 찾아 나가는 방법을 썼다면 더 많은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는 수직으로 파내려가는 수직발굴을 감행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실리이만은 발굴 당시의 터키와의 약속을 어기고 발굴품들을 빼돌려 터키사람들로 부터 원성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도굴꾼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트로이를 발견한 그의 공로는 무시할 수 없었기에 고고학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문학작품은 물론이거니와 트로이를 소재로 명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세 여신 -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의 아름다움을 가리는 장면을 묘사한 루벤스의 명작 '파리스의 심판'입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 뒤로 방패와 갑옷이 보입니다. 공작새를 데리고 있는 여신은 헤라입니다. 공작새는 헤라의 상징이기도 하죠. 그리고 가운데에는 아프로디테가 있습니다. 황금사과를 오른손에 쥐고 있는 파리스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미의 여신들이 벌거벗은 채 파리스의 심판을 기다리게 되었을까요? 누가 황금사과의 주인이 될까요?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질투의 여신 에리스가 복수심에 불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를 새긴 황금 사과를 두고 갑니다. 그로 인해 서로 자기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고 다툼이 벌어집니다. 여신들의 후환이 두려웠던 제우스는 이 판정을 파리스에게로 미루어버립니다. 파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합니다. 그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나입니다. 파리스가 헬레나를 데리고 트로이로 도망쳐 버리자, 화가 머리 꼭지까지 돈 메넬라오스는 그리스 연합군과 함께 트로이를 공격하나 10년이 넘도록 트로이를 함락시키지 못합니다. 마침내 오디세이왕의 계략에 의해 트로이는 함락되고 불타 버립니다. 그 계략이 잘 알려진 목마의 계략입니다.

 

이 트로이의 멸망을 살아남은 트로이인들이 로마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테티스 여신의 아들이 아킬레우스라고 하니, 신화와 역사가 맞물려 돌아가는 카오스적 질서를 보고 있는 듯 합니다.  

 

트로이는 3대허무명소중의 하나라 하지만 그 무엇도 비견할 수 없는 상상의 여행을 가능하게합니다. 지금은 멀리 뒷걸음쳐 넓다란 평지 너머로 보이는 해안가가 바로 성벽 가까이 물결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과 이 널찍한 평원에서 격돌했을 트로이와 그리스의 전투를 상상하는 묘한 모순에 빠지기고 합니다.

 

수많은 이야기를 남긴 트로이, 말 없이 쓸쓸히 그 흔적만이 초목들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옛 시대의 영광은 전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쓸쓸함만이 그 곳을 지나치는 나그네의 상상력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트로이를 느끼고 나니, 무너진 절터에서 옛 향기를 찾는 사람과 폐허가 된 궁터에서 옛영광과 함께 사라진 비애를 슬퍼하는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나 알 것 같습니다. 부여를 찾아 옛 백제를 느끼는 그들처럼.

 

[에페수스/에페스/에베소]

에페수스의 유적을 찍은 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가이드의 설명을 듣지 않고 사진 찍느라 허둥대는 통에 정작 무슨 유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ㅋㅋ

시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흔적들이라 생각하는데, 무심한 고양이들은 그냥 늘어지게 자고 있네요. 

 

정말 여행의 고수라면 필름에만 사진을 박아넣는 일에 분주할 것이 아니라, 머리속에 영상과 그 분위기, 느낌과 향기등을 담았을텐데...여행 초보자는 표가 나게 마련인지라 여기 저기 분주히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그 통에 다시 볼 수 있어 좋기는 한데... 

 

 

 

 

 

 

 

 

 

 

 

 

 

 

 

 

 

 

 

 

 

소나기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 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걱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곽재구

 

 

광안리 바닷가,

넓고 조용한 바다

비오는 날

짙은 구름 하늘 아래

광안대교

그 너머

구름을 이고 있는

마린시티

 

 

 

 

 

 

 

 

 

 

 

 

 

 

 

 

 

고대 <에페수스>의 유적


에페수스는 성경에 에베소라고 나오는 도시입니다. 에페수스는 소아시아의 수도로 상업과 무역의 도시였습니다. 24~5만의 시민이 거주했으며, 유동인구를 포함하면 30만명에 이러렀을 것입니다. 현재 발굴율이 20%정도로 터키 최고의 유적지입니다. 현재는 터키의 도시 셀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3년동안 이 도시에 머물렀으며, 은으로 아르테미스 형상을 만들어 파는 장인들이 사도 바울의 활동에 반대하여 소요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아르테미스(아데미)를 주신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후에 아르테미스 축제에 반대하던 디모데가 이 곳에서 순교를 당하고 오네시모가 교회의 감독자로 왔다고도 합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의 기념무덤도 에페수스에 있다고 하네요. 성경을 보는 사람들에겐 에페수스란 도시는 아주 낯 익은 도시입니다. 


우리는 주로 에페수스의 크레테스 거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남겨진, 시간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유적들을 둘러봅니다. 크레테스거리는 에페수스를 관통하여 남북으로 뻗어있는 도로입니다. 이 거리의 남쪽 끝 오른쪽에 '오데온'이 있습니다. 온데온은 지붕이 있는 작은 극장이었습니다. 1500석정도 되는 오데온에서는 시낭송회나 음악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일종의 문화공간이었던 셈이군요. 


 


객석 좌석의 앉음판은 약간 앞으로 돌출되어 있어 작은 광장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말하는 사람의 귀로 반사되어 들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시청사 Prytaneion 은 BC 3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종교의식, 고관들의 공식리셉션 및 연회장으로 쓰인 곳입니다.


 


기둥의 잘라진 단면의 모습입니다. 사각형 구명과 옆으로 난 홈은 기둥들이 세워질 때 맞물리도록 해서 어긋나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Memmius Monument. 1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과중한 세금으로 인한 이오니아인들의 반란을 진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남쪽 언덕에 서서 북쪽으로 뻗어있는 크레테스 거리를 바라봅니다. 북쪽으로 완만한 내리막길은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으로 되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천년 이상이나 된 길과 건물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저 끝에 유명한 켈수스 도서관이 보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공중화장실입니다. 변기아래쪽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물이 흘러 나가게 되어 있어 변을 왼쪽으로 흘려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인 셈입니다. 물이 들어오는 오른쪽으로 갈 수록 냄새가 덜하므로 요금이 비쌌고, 왼편으로 물과 변이 흘러가는 쪽은 사용료가 더 저렴했다고 합니다.  아주 뜨거운 날씨나 차가운 날씨에는 벗은 엉덩이로 앉기가 힘들었겠죠. 그 때는 노예들이 먼저 앉아서 체온으로 온도를 적당히 맞춘 후에 주인들이 볼 일을 봤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켈수스 도서관입니다. 당시 세계 3대 도서관 중에 하나였습니다. 나머지 두 도서관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도서관이었습니다. 웅장한 건물의 일부가 우뚝 서 있습니다만 당시 소장하고 있던 책들은 어디가고 한 권도 남아 있질 않습니다. 켈수스 도서관 앞 계단에는 그늘이 져서 관광객들이 앉아 쉬고 있었는데,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하더군요.


 

 

 


켈수스도서관 옆 문을 통해 바라 보니 광장이 보입니다. '아고라'입니다. 에페수스에는 3개의 아고라가 있는데 남쪽 오데온 옆에 위쪽 아고라가 있었고, 이 곳은 아랫쪽 아고라입니다. 그외에 항구쪽에 아고라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아고라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 형성된 광장으로 이곳에서 민회와 재판, 상업, 사교들의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아고라는 시장으로 경제활동의 중심지였으며, 시민들이 사교 활동을 하면서 여론을 형성하던 의사소통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학문과 사상등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시민들이 민회를 열어 국방이나 정치문제를 토론하던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두산백과사전) 


 

  

 


에페수스에서 가장 큰 건물인 원형극장입니다. 2만5천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원형경기장입니다. 엄청난 규모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도시의 인구를 추정할 때 원형극장 수용인원의 10배로 계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페수스의 인구는 25만명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원형 경기장에서 바다쪽으로 뻗어 있는 아르카디안거리입니다. 항구도로라고도 부릅니다. 이 거리의 양쪽으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거리의 끝에 항구가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밀려내려간 토사로 인해 바다가 멀리 달아나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항구도시 에페수스는 상업과 무역의 도시로 크게 발전했지만, 항구가 멀어짐에 따라 쇠퇴했을 거란 말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아르카디안 거리의 왼쪽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북쪽 입구에 도착하니...크레테스거리의 남쪽에서 시작된 에페수스 유적의 관광도 막을 내립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은 오직 뜨겁게 내리 비치는 햇볕으로만 느껴지는 에페수스의 유적은 세월의 무상함만 안겨줍니다. 옛날 옛도읍지를 찾았던 길재의 느낌이 이러했을까요?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우리네 인생도 지나고 나면 한 낱 유적으로나마 남을 수 있을지...마냥 허허로운 공간속에 흩어져 버릴 것을...

바다에 홀로 앉아


도동항 막걸리집 마루에 앉아

수평선이 까맟게 저물때까지

수평선이 사라질 때까지

바다만 바라다봅니다

두 눈이 파랗게 물들어

바다가 될 때까지 

다시 수평선이 떠오를 때까지.

(홍해리)


가벼운 차림으로 광안리 바닷가로

아주 짧은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부쩍 아름다워진 광안대교가 눈과 마음을 사로 잡습니다. 

저 뒤쪽으로 마린시티의 모습도 보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쏟아지더니

오늘 저녁에는 잔뜩 구름만 끼였습니다. 

시원해진 날씨에

어둑어둑해지는 저녁무렵에 

한가로운 해변을 마주하고 있는 광안대교입니다. 


 

 

 

  

  

 

 

 

  

 



한가로운 터키의 시골마을입니다. 여인네들이 푸른 터키석과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깔의 빛을 비추는 술타나이트등의 보석을 구경하는 사이에 잠깐 터키 시골 마을의 모습을 잡아 봅니다. 터키의 집들은 모두 붉은 빛 지붕을 하고 있더군요. 터키의 국기인 '월성기'의 바탕도 붉은 색인데, 터키인들은 빨간색을 좋아하나 봅니다. 아마도 모르긴해도 터키의 색은 빨간색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주인없는 개와 고양이가 눈이 많이 띕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들러 붙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개들의 귀에는 태그가 붙어 있던데, 아마도 국가에서 어떤 방식으로인가 관리를 하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광견병 접종과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일행중 초등 1학년 어린 학생이 고양이 발톱에 살짝 긁히는 일이 있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병원에 들려 주사까지 맞았답니다. 







예나 저나 꽃들은 피고 지고, 어김없이 자연은 그 생명력을 온 땅에 뿌려놓고 있습니다.

그냥 우리의 시골 골목에 피어있는 꽃이라 해도 될 듯 합니다. 






우리는 [쉬린제 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쉬린제 마을은 터키 속의 그리스마을이라고 불리더군요. 와인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우리 일행은 어느 가게의 지하실로 가서 와인과 다른 음료들을 시음해 봅았습니다. 쉬린제 마을도 오밀조밀 예쁜 모습이 매력적이지만 아쉽게도 포도주 시음하느라 제대로 둘러 보지 못했습니다. 혹 쉬린제 마을을 가시거든 포도주는 한 잔만 맛보시고 마을을 둘러 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쉬린제 마을 골목에서 더위를 피해 잠시 앉아있는 외국 관광객의 모습을 한 컷 찍었습니다.  





 

 

 

 

터키와 그리스는 서로 앙숙지간입니다. 종교도 다르죠. 터키는 이슬람교, 그리스는 기독교계통입니다. 인종도 다르죠. 정치적으로도 껄꺼로운

사이입니다. 그런 이유로 한 때 터키에 사는 그리스인들과 그리스에 사는 터키인들의 대규모 교환이 이루어진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쉬린제 마을에 사는 그리스인들은 그냥 남기로 한 모양이지요. 가이드 말을 얼핏 듣기로는 쉬린제 마을의 그리스주민들도 이주해 갔고,

그 자리에 이주해온 터키인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들은 것 같은데...헷갈리네요. 


실제로 터키와 그리스가 견원지간임을 보여주는 예는 키프로스섬의 경우입니다. 터키의 남쪽 지중해상에 있는 키프로스섬은 대한민국과 같이 남북이 분단된 상황입니다. 키프로스공화국은 그리스계 주민과 터키계 주민으로 국민이 구성되어 있었는데,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으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어져 터키계의 북키프로스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현재 터키는 터키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터키군을 북키프로스에 주둔해 두고 있습니다. 


서로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할텐데요, 아마도 쉬린제 마을은 그런 의미에서 터키계와 그리스계의 평화 공존의 모범을 보여주는 마을이

될 듯합니다. 



우리는 카파도키아에서 새벽에 열기구를 타고, 오전에 파샤바골짜기를 잠깐 들른 후, 이제는 긴 여정길에 오릅니다. 우리는 내륙고원도시 콘야를 경유하여 목적지인 안탈리아까지 근 8~9시간동안 달립니다. 하루 종일 버스에서 보내는 셈입니다. 

 

 

콘야는 해발 1000m에 위치한 내륙도시로 11세기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였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의 한 교파인 신비주의 수피즘의 창시자 메블라나 루우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수피교는 세마춤이라는 일종의 참선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종파입니다.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다른 한 손은 땅을 향한 채 한 방향으로 3시간동안 단순한 원형 운동을 반복합니다. 세마춤은 현재는 유명한 관광상품이 되었습니다. 


콘야를 지나 우리는 고도를 점점 낮추면서 안탈리아를 향합니다. 안탈리아로 가는 길에 펼쳐진 광경은 참으로 독특한 모습이었습니다. 밤이 되어서야 안탈리아에 도착하였는데, 바다의 습함과 더위로 카파도키아에서와는 다른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탈리아에서의 상쾌한 아침입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첨탑의 윤곽이 뚜렷합니다.

 

많은 길거리의 개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도 특이합니다. 이 개는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른 '오드아이'를 가지고 있어 신기합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안탈리아의 해변 마을입니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도 아름답습니다. 배를 타지 않는 일행는 안탈리아의 골목 골목 아름다운 길들을 여기 저기 둘러봅니다. 안탈리아에서 배 타고 지중해를 느끼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아름다운 안탈리아의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 합니다.

 

배를 타게 될 선착장입니다. 갖가지 배들이 다양한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탄 해적선은 선착장을 떠나 지중해를 30분정도 달려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를 향합니다. 푸른 바다에 시원한 바람, 지중해를 배경으로

작품(?)을 남기려 찰칵 찰칵 셔터를 연신 눌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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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물 속에 뛰어 들고픈 생각이 간절합니다. 빡빡한 패키지 여행에 단 하루라도 이런 곳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며 휴양할 수 있다면 멋질텐데...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배를 탄 후 선착장 주위의 골목을 걷습니다. 우리가 방문하는 터키의 마을의 골목들은 모두들 아름다운 산책길입니다.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안탈리아를 방문한 기념으로 건립한 하드리아누스문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걸은 길은 구시가지로, 옛날의 전통가옥을 레스토랑이나 호텔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거리였습니다. 사실은 하드리아누스 문을 통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지만, 우리는 거꾸로 길을 걸어 하드리아누스 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지중해에서 배를 타는 것도 좋았지만, 배를 타지 않고 선선한 아침 안탈리아의 구시가지 골목을 여기 저기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레스토랑에서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았을 듯합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우리 일행은 안탈리아의 맛만 보고 다시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합니다. 

유럽인들의 버켓리스트 2위는 무엇일까요?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는 것이랍니다. 그럼 1위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라네요. 어쨌든 우리 팀 32명 전원이 열기구를 즐기기로 합니다. 이 번에 못 타면 언제 다시 타 볼 수 있을까요? 

  

열기구는 새벽에만 탈 수 있습니다. 해가 나면서 대기가 점점 뜨거워지면 열기구가 뜰 수 없기때문이죠. 차가워진 공기가 무겁게 대기를 가득 채운 새벽녘, 강렬한 불꽃으로 데워진 가벼운 공기를 가득채운 풍선은 하늘로 떠 오르게 됩니다. 

 

새벽 4시에 기상을 한 우리는 열기구가 이륙할 공항(?)을 향해 어둠 속을 달립니다. 부근 레스토랑에서 따뜻한 컵라면을 하나씩 먹고서는 준비가 다 된 열기구를 터러 벌판으로 나갑니다. 무시무시한 불꽃이 쉭쉭 소리를 내면서 풍선안으로 따뜻한 공기를 채우면서 풍선은 점점 커져가고 공중으로 떠오릅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우리는 어느새 공중으로 떠 오르고 있습니다. 

 

공중으로 둥실 떠올라 높이 높이 올라가 온 몸으로 고도와 맞서는 것도 묘미이거니와, 여기저기 하나 둘 열기구들이 떠올라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모습의 열기구들이 하늘을 수 놓는 모습도 장관입니다. 카파도키아의 괴레메지역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저 멀리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일출과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에 빛나는 땅의 풍경도 잊을 수 없는 풍경입니다. 

 

 

 

1시간정도 비행을 마치고 열기구는 땅으로 점점 내려 옵니다. 우리의 열기구가 착륙할 트럭이 쫓아 옵니다. 착륙을 잘해야 할 텐데 하는 약간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의 열기구는 나무끝을 살짝 스치며 우여곡절끝에 바닥에 안착합니다. 즐거운 경험을 한 우리 모두는 무알콜 샴페인을 한 잔씩 마시며 열기구 탑승 수료증을 받고 아쉬움을 달랩니다.

 

이제 다시 호텔로 돌아가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으흘랄라계곡을 떠난 우리를 반겨주는 기암괴석이 있으니, 저 멀리 우뚝 솟은 성채(히사르)가 보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구멍이 쑹쑹 뚫린 괴상한

모습이 어디서도 보지 못한 진기한 모습입니다.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진 응회암이 오랜 세월 풍화과정을 통해 형성된 지형이라 날카로운 도구로 쉽게 파지는 통에 옛날 사람들이 굴을 파고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곳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기는 아마도 파샤바골짜기인듯 합니다. 송이버섯모양의 버섯바위가 특이합니다. 꼬마 요정 스머프의 아이디어가 이곳에서 유래했다는 말을 들

은 듯 합니다만...


 

우리는 파샤바를 거점으로 짚투어를 시작합니다. 일명 사파리투어라고 하더군요. 어떤 분들은 사파리투어라고 사자나 기린등의 동물들을 볼 수 있을거란 허망한 기대를 하지만, 이 투어는 괴레메지역에 산재해 있는 골짜기들을 탐방하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7대의 사파리차량들이 자욱한 흙먼지를 날리며 줄지어 달립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흙길을 마치 영화에서처럼 쫓고 쫓기는 추격장면처럼 마구 달려 마치 놀이기구를 탄 듯한 스릴을 느낍니다.


 

우리의 사파리투어의 첫번째 목적지는 러브밸리입니다. 계곡아래로 보이는 괴레메 특유의 지형들이 인상적입니다. 왜 사랑의 골짜기라고 했을까요? 암석기둥들의 모양을 보시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는 러브밸리를 떠나 우치히사르마을로 향합니다. 이 마을이 괴레메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지 좀 헷갈리네요. 마을 중앙에 우뚝 솟은 성채(히사르)가 보입니다.

 

 

우치히사르를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으로 집들이 들어서 마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어떤 집에는 아직 사람이 거주하는가 하면, 어떤 집들은 비어있다고 합니다.


 

깨끗한 창문 유리창이 달려 있는 집은 아직 사람이 사는 곳이고, 유리창이 없는 집은 비어있는 곳이랍니다.



 

우치히사르 다음 코스는 장미의 계곡입니다. 붉은 장미빛을 띠고 있어 장미의 골짜기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사진속에서는 색깔이 전혀 장미빛을 띠고 있지 못합니다만, 다른 지역보다 붉은 모습이 두드러져보입니다. 이 장미의 계곡은 사실 석양무렵에 와 보아야 절경을 더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장미의 계곡에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장소에는 드러누울 수 있도록 양탄자가 깔려 있더군요. 석양무렵에 이 자리에 누우면 해가 뉘엿뉘엿지는 서쪽 하늘과 장미 골짜기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석양에 물든 장미골짜기가 절경이라네요.

 

 

사파리 투어의 마지막 방문지는 동굴 교회입니다. 건축물의 모양을 내기 위해 기둥도 만들었군요.  

 

 

사파리투어를 마치고 파샤바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요정계곡의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괴레메지역의 여러 모습들입니다. 

 

 

괴레메지역의 특이한 지역은 지각의 융기,침하과정에서 생긴 지형이 아니라 오랫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아직 풍화되지 않은 평평한 높은 부분의 가장자리로부터 차례대로 풍화되어 쪼개어져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띱니다.


 

유네스코는 인류 전체를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산을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무형유산, 세계기록유산, 세계유산등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유산에는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등 세가지가 있습니다. 

 

카파도키아의 괴레메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보기드문 지형과 곳곳에 있는 동굴수도원과 성화들로 복합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면 터키에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11곳이나 있다고 하군요. 

☞  http://blog.naver.com/freestarstar/130180916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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