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 법기리에 있는 법기 수원지...일제시대인 1932년 완공되어 2011년 개방된 법기수원지의 명성을 듣고 찾아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상수도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었다가 근 80년만에 일반인에게 부분 개방되었습니다.

 

한 바퀴 돌아보는데 15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공원입니다. 

공원에 들어서니 쭉쭉 뻗은 나무들이 매력적인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덩치 큰 나무들이 하늘로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숲 사이로 난 길을 지나 돌면 둑이 보입니다. 저 둑 뒤로 저수지가 있겠지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계단을 따라 저 둑 위로 올라 갑니다.

백여년 묵은 반송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낮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한 눈 팔다가는 반송의 낮은 가지에 목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반송아래를 지나도록 해야 합니다.

 

 

 

 

반송 가지 사이로 보이는 수원지의 모습입니다.

 

 

 

 

 

 

 

 

 

둑의 중간에 서서 호수의 시원한 모습을 바라봅니다.

문득 소로우가 자연 생활을 했던 월든 호수가 이러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 호수너머의 넓은 지역은 아직도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전체 수원지가 개방된다면 상당한 규모가 될 듯합니다.

 

 

 

둑 위에서 아래로 숲을 바라다 봅니다.

저 숲길에 사람들이 걷거나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언듯 언듯 눈에 띕니다.

 

 

 

100여미터 남짓한 둑의 또 다른 한 쪽 끝 부분에 서서 호수를 바라봅니다.

이 풍경을 마지막으로 하여 이제는 둑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둑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 가다 가을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이 나무 가지 사이에 걸려 있습니다.

 

 

 

 

 

짧은 둑길 산책이 아쉬워 걸어보지 못한 숲과 둑 사이의 길을 걸어봅니다. 

 

 

 

밑둥치가 우람한 나무들...수령이 꽤나 오래 되었겠네요. 100년이나 될까요?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당시 일본의 황족 부부가 국빈방문차 부산에 왔답니다. 

새벽에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풍광 좋은 곳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안내한 곳이 바로 이 곳 법기수원지라네요.

아마도 부산 인근에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 여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 떠나야 할 때입니다.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법기수원지를 마음 한 켠에 담아 두고서 법기 수원지를 떠납니다.  

여행이란 무엇으로 정의할까? 여행이란 역사탐구란 느낌이 든다. 터키 여행은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를 돌아보는 길이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찾을 길 없는 사라진 인생들이 남긴 희미한 발자취를 통해 잠시나마 꿈같은 시간여행을 했었고, 카파도키아 지역의 황량한 들판과 계곡을 보면서 자연이 시간의 힘을 빌어 지표면에 남긴 흔적에 자그만 탄성을 내질렀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아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그 한계의 테두리를 넘어 서게 될 수 있다. 책속에서만 존재했던 역사가 눈 앞에 그 자취를 보이고, 다람취 체바퀴같은 일상의 공간은 그 문을 열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새로움에 익숙해질 즈음엔 다시 이제는 다소 낯선 것이 되어버린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행이란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인가? 돌아갈 집이 있기에 여행이라 하는 것일테지, 돌아갈 집이 없는 여행이란 방황일 뿐일테니까. 여행은 현재 삶의 뿌리를 찾으러 떠난 길이 다시 현재로 이어진 길일 것이다.   

 

여행은 자유의 느낌을 진하게 풍긴다.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란 또 다른 구속으로의 선택일 뿐이라 생각한다면, 여행은 상대적으로 더 작은 구속- 더 큰 자유를 향한 것일 것이다. 패키지여행은 자유여행에 비해 자유의 정도가 더 약하다.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상황을 자유라고 정의한다면, 패키지 여행은 선택의 가능성이 작은 자유이다. 가장 큰 자유를 주는 여행이라면 누가 뭐라해도 도보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제나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출 수 있기때문이다. 비록 한정된 시간에 더 멀리 가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의 선택의 폭은 넓을 수 밖에 없다. 도보여행과 자전거여행이 댕긴다.

 

자유를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쇼생크 탈출"이 떠오른다. 자유를 향한 갈망을 그린 영화. 교도소 안에서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아리아 '저녁바람 부드럽게'는 이상스럽게도 자유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한가로운 어촌에서 배를 손보고 있는 앤디의 모습... 그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자유의 느낌을 본다. 열려 있는 바다를 향한 작은 배, 앤디의 마음은, 그의 자유는 바다를 향해 있다. 자신이 만든 배로, 자기자신만의 힘으로 더 넓은 자유의 바다를 향하는 앤디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 쇼생크 탈출 마지막 장면 ->http://pann.nate.com/video/13820586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은 이스탄불에서 온종일 보냅니다.

아야소피아를 관람하고 블루 모스크를 본 후, 우리는 다시 아야 소피아 방향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아야 소피아 뒤쪽으로 <톱카프 궁전>을 방문하기 위해서 입니다. 웅장한 아야 소피아의 모습은 여전히 시선을 끕니다.

 

 

 

 

앞에는 아야 소피아, 뒤에는 블루 모스크...대단한 관광구역입니다. 거기다 톱카프까지 있으니 말입니다.

 

 

 

부근에 터키의 경찰이 특이한 탈 것을 이용하고 있어 색달라 보입니다. 

 

 

 

톱 카프 궁전이 보입니다. 톱 카프는 '대포문'이란 뜻이랍니다. 성루에 있는 구멍이 아마도 대포구멍인가 봅니다.

 

 

 

 

톱 카프궁전의 정원입니다. 톱카프궁전에는 여러개의 정원이 있습니다. 이 궁전은 보스포러스와 마르마라 해가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어

한 쪽에서는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돌마바흐체궁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톱카프궁전은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 

오랫동안 필요에 의해 개축, 증축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건축 양식이 어떻게 달라는 지 볼 수 있는 건물이라 하더군요.

하지만 사진을 찍을랴, 가이드를 쫓아갈랴,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통에 ...그것도 초심자의 눈에는 그저 그것이 그것일 뿐, 별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었죠.

문을 하나 지나 정원, 또 하나 지나 정원...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정원들,

하렘이라는 남성출입금지 구역도 있었다고 하는데, 술탄의 여자들의 거처였다고... 

 

무작정 찍은 톱카프 궁전의 정원, 건물, 관광객들의 모습입니다. 건축 양식이 서로 차이가 있는지 유의해 보면 좋을 듯도 합니다.

 

 

 

 

 

 

 

 

 

 

 

 

 

 

 

그렇군요. 톱카프의 건축물을 유심히 보니, 건축 양식이 조금씩 다르다는 느낌은 드는군요.

우리는 톱카프 궁전을 마지막으로 해서 터키 관광을 마치게 됩니다.

여행 초반부에는 여행을 마치는 날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더니, 어느새 7박9일의 여행이 끝나게 되는군요. 

생전 처음 패키지 여행을 하게 되니, 나름 패키지여행에도 큰 장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터키가 이런 종류로는 첫 여행이라 그런지 터키에 아주 정이 많이 갑니다.

언젠가 가능하다면 자유여행으로 와서, 마음껏 보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보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는 넓고 볼 것은 많은데, 다시 터키를 방문하게 될 날이 오게 될런지요...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는 서로 마주 서서 노려보고 있습니다. 아니 사이좋게 서 있는 걸까요? 앞을 바라보니 블루모스크요, 뒤를 돌아다 보니 아야소피아라...터키를 대표하는 두개의 건축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폼이 용호상박이라 하면 어색할까요?

 

아야 소피아에서 나와 바라본 블루 모스크입니다.

 

 

 

 

 

 

모스크의 첨탑은 일반적으로 4개입니다만, 블루모스크의 경우에는 특이하게 6개의 첨탑이 있습니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원래 블루모스크의 원래 이름은 <술탄아흐메드 모스크>입니다. 제14대 술탄 아흐메드 1세가 아야 소피아에 버금가는 모스크를 만들기 위해 만든 사원이죠. 그는 아야소피아를 능가하는 사원을 짓기 위해 첨탑을 금으로 지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금으로 입히라고 했겠지요.^^ 우리 송인찬 가이드님의 설명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런데, 그런 비용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술탄이 어디 먼 여행을 떠난 참에 건축가는 금으로 입히는 대신 첨탑을 6개를 만들었답니다. 술탄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는 야단을 치자, 건축가가 하는 말이, 자기는 술탄이 첨탑을 6개 만들라는 소리로 들었다고 변명을 했다고 하네요. 금이라는 말과 6이라는 말이 서로 발음이 비슷하답니다.ㅋㅋ 아뭏든 건축가의 지혜로 사원을 짓는 비용을 절약함과 동시에 6개의 첨탑을 지닌 특이한 사원이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블루 모스크를 향하다 뒤돌아서서 보니 웅장한 아야 소피아가 떡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야소피아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블루모스크는 아직도 이슬람의 예배가 행해지고 있는 종교 건물입니다. 블루모스크 내부를 관람할 때는 종교시설에 걸맞는 예의가 요구됩니다.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은 여성분들은 스카프를 허리에 둘러 치마를 만들어 입어야 하고, 머리에도 스카프를 쓰도록 요구된답니다. 신발도 벗어야 합니다. 블루 모스크 사원에 들어서니, 아야소피아와는 다른 느낌이 확 듭니다. 전체적으로 푸른색 빛이 감도는 내부는 아야소피아에 비해 훨씬 깨끗하고 단아한 모습입니다. 푸른색 기조의 타일로 내부가 장식되어 신비한 푸른 기운이 돕니다. 확실히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라 다르긴 다르네요. 집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다르다고 하더니, 블루모스크도 그런가 봅니다.

 

 

 

 

 

 

 

블루 모스크의 내부입니다. 푸른 기운이 느껴지나요? 아야 소피아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아담하고 정갈한 폼이, 아야 소피아를 남성적이라 한다면, 블루모스크는 여성적이라 할만합니다. 블루 모스크 내부를 관람하는 홍수같은 관람객에 밀려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맨발로 들어선 블루 모스크의 바닥에 깔려 있는 양탄자입니다. 붉은 빛과 푸른 빛의 조화가 아름답습니다.

 

 

 

 

 

블루 모스크를 나와 바깥 모습을 이리 저리 둘러 보았습니다.

 

 

 

 

 

 

 

 

아...터키 사람들은 참 잘 생겼더군요. 남자들은 영화배우같고, 아가씨들은 인형같고...

 

 

 

 

이제 블루모스크 관람을 마치고 톱카프 궁전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터키의 대표 문화재인 아야 소피아, 블루모스크, 톱카프궁전은 모두 한 지역내에 모여있어 걸어서 5분이면 왕래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일정상 블루모스크를 먼저 방문하기로 했습니다만, 줄을 서 있는 엄청난 관람객을 보고서는 즉각 일정을 바꾸어서 <히포드롬>과 <아야 소피아>를 먼저 관람하기로 하였습니다.

 

블루모스크를 빠져나오자 바로 히포드롬 광장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히드로폼은 로마시대 건축된 전차경주에 사용되던 경기장이었습니다. 영화 <벤허>의 인상적인 전차경기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러한 전차 경기가 로마시대때 여기에서 벌어졌다는 거죠. <벤허>는 1959년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지금 또 닷 보아도 그 감동이 가시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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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드롬의 원래의 크기는 450m×130m에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거대한 규모는 엄청난 것이었겠죠. 지금은 주위에 집들이 들어서서 옛날의 그 위용을 찾아 볼 수는 없습니다만, 아직 남아 있는 오벨리스크를 보면 어느 정도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에서 가져와서 히포드롬에 세운 오벨리스크입니다. 높이는 25.6m라고 합니다.

 

 

 

오벨리스크 하단부 대리석은 테오도시우스 황제때 만들어졌는데, 황제의 업적을 기리는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히포드롬을 잠깐 거닐다가 아야 소피아로 향합니다. 뒤를 돌아다 보니 블루모스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면에는 웅장한 아야 소피아가 자리를 잡고 있네요. 동로마 시대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투르크 지배하에서는 이슬람 사원(모스크)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야소피아 박물관에는 진열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이 거대한 박물관 건축물 자체가 관람물이기때문이죠.

 

 

 

아래에서 위로 쳐다본 아야 소피아의 천장은 장관입니다. 지름 33m의 거대한 원형 지붕이 건물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2세때 처음 지어졌으며(325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때 개축되어(537년) 지금까지 이르고 있는데, 그 장대함에 감동된 황제는 "오 솔로몬이여! 나 그대를 이겼노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소피아 대성당을 건축할 때는 세계 여러곳의 신전에서 가져온 기둥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기둥들 모양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훨씬 빨리 이 건축물이 완성될 수 있었답니다.

 

 

 

 

터키는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이색적인 곳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만, 아야 소피아만큼 극적으로 그 공존을 보여주는 곳은 흔하지 않습니다. 성당으로도 사용되었고, 모스크로도 사용되었기에 두 문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천정은 이슬람 특유의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회칠한 부분이 떨어지면서 원래 천정에 그려져 있던 성화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투르크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성화위에 두꼅게 덧칠을 하고서 그들의 문양을 그려넣었던 것입니다.

 

이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슬람 문양을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진 성화를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슬람 무늬를 남겨둘 것인가? 어떻게 결론이 나게 되었을까요? 이미 회칠한 부분을 벗겨진 부분은 복원하지 않은 채 놓아두되, 벗어지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아야 소피아를 둘러 보다 보면 두꺼운 회칠이 벗겨져 그리스도교 성화가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야 소피아에는 두 문화가 함께 숨쉬고 있는 공간입니다.

 

 

 

아야 소피아의 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깨끗한 사진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카메라의 성능의 한계로 흐린 모습만을 올리게 되어 아쉽습니다. 그러나 카메라의 성능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직접 눈으로 본 그 웅장함을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야 소피아 본당에 들어서서 그 넓은 방과 그 높고 큰 원형 천장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온전한 느낌을 가지기가 힘들 것입니다. 과연 터키를 대표하는 건물임에 틀림없다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하행길, 영천 떠나 부산으로 오는 길에, 순간 차를 멈추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저 멀리 보이는 산허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옆으로 길다랗게 누워있는 산허리, 엎어져 있는 산등성이, 솟아있는 봉우리들이 구불구불하게 보인다. 

 

서로 달음박질하듯 멀어져 가는 산등성이들, 가장 멀리 달아난 산등성이는 희미하게, 가장 가까이 있는 녀석은 진한 뒷모습을 남기고 달아나고 있다. 멀리 달아난 녀석과 가장 가까이 있는 놈 사이엔 얼마나 깊은 대기가 자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깊이에 따라 어스프레한 희미함에서 시커먼 짙음에 이르기까지 마치 스펙트럼과 같은 층층구조를 보여준다. 산등성이간의 깊이가 깊을 수록 서로의 차이는 분명해지고, 깊이가 얕을 수록 서로의 차이는 희미해진다. 산등성이가 이루는 푸른색 계열의 스펙트럼은 멀어질수록 점차 희미해져 마침내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

 

희미한 구름으로 덮인 하늘 아래 멀리 달아나는 산들은 한폭의 동양 산수화의 모습을 닮았다. 오로지 담묵색의 농담으로 공간의 깊이를 드러내는 산수화를 보는 느낌처럼 마음은 담백한 색깔의 욕망을 갖는다. 편한 마음으로 산수화를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으로, 달아나는 산등성이들의 스펙트럼을 아무런 욕망없이 대면하고 싶어 차를 세워둘 만한 곳을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경부선 하행선, 건천과 경주사이를 달릴 때, 전방 먼 산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한 폭의 산수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느긋하게 바라보고 싶은 그런 풍경이다. 차마 고속도로에 차를 멈추지 못해 경주휴게소에 이르러서야,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려 저 먼 곳 하늘 아래 멀어져 가는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하지만 오롯이 그 느낌을 재현해 줄 풍경이 아니라 아쉽기만하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생각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절경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기억에 남는 길이 하나 있다. 언젠가는 다시 그 길을 달리면서 그 풍경을 대면하고 싶은 길이 있는데, 첩첩산중 산허리를 돌아 돌아 달리는 중앙고속도로, 아마도 중앙고속도로였을 것이다. 그것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사이로 비구름을 헤치며 달리는 길이다. 초행길이라 구간은 모르겠지만, 아뭏든 그 날 비오는 고속도로 하행선를 달렸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온 공간은 피어오르는 비구름으로 꿈결같이 몽롱한데, 희미한 산들이 마주 달려와 부딪힐 것만 같은 순간, 차는 산 사이의 길을 휘감아 돌아나가고, 다시 첩첩히 앞을 가로 막고 둘러싸는 산, 산, 산... 피어오르는지, 흐르는 지 알 수 없는 비안개는 희미한 산의 자태를 숨길 듯 말 듯 하며 연기처럼 흐르는데, 희뿌엿게 솟아오른 산 봉우리는 꿈 속 여인의 하얗게 피어오른 살결처럼 신비롭다. 산 사이로 질주하는 차는 점점 짙어가는 무릎사이를 몽롱하게 빠져들어간다. 

 

산수화가 따로 없다. 순간 순간이 여백으로 가득찬 산수화이다. 비와 구름은 동양 산수화만이 가지고 있는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하얀 비구름은 피어올라 산의 아랫도리를 어슴프레하게 베어낸다. 여백이다. 희뿌연 공간 위로 솟아있는 산봉우리, 그리고 그 너머 또 산... 억수같은 비는 희뿌연 비안개를 뿌려대고, 비안개는 사방으로 퍼져 흩어지면서 앞 산등성이의 존재를 선명하게 그려내며, 뒤쪽 산 가슴께에 다시 옅은 여백을 그려낸다. 빈 공간의 피어오르는 향연이다. 

   

산허리는 피어오르는 연기속에 수줍은 새색씨의 얼굴처럼 부끄러워하고, 우뚝 선 산봉우리는 무에서 피어나듯 솟아오른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언듯 언듯 드러난 산등성이는 마치 고운 천에 비치는 여인의 잘룩한 허리처럼 흐르고, 얼핏 보이는 봉우리는 여인의 벗은 어깨처럼 둥글게 올랐다가 흘러내린다. 눈 내리는 밤의 '먼 곳의 여인의 옷벗는 소리'를 비오는 산중도로 위에서도 본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것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여백의 정서를 넉넉하게 느끼는 그 순간에 대한 기약없는 기대를 마음에 고이 간직해 둔다. 

이기대엔 흐린 날도 좋다

오래전 기억이 난다

밤새 차가워진 대지와

솔사이로 부딪히는 서늘한 기운

나무줄기 사이의 이기대의 바다가 떠오른다 

 

 

오륙도가 내려다 보이는 

이기대 스카이워크 동산에서

벼랑아래를 내려다 본다

 

두 명의 기생이 왜장을 안고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이기대...

그래서 이기대라 한다는데,

어디쯤일까?

 

멀리 해운대를 바라보며

신선대를 뒤에 두고

나 여기 이기대에 서 있다

 

오륙도!

 

스카이워크

그리 아슬아슬해 보이지 않은데

스카이워크 유리판위에 서면

움찔, 발걸음을 내딛기가 무섭다

돌틈 사이로 퍼런 바닷물이

저 아래서 출렁인다

 

쏴 쏴아 철썩

 

손에 닿을듯한 오륙도의 첫번째 섬

방패섬이라든가?

 

짙은 바다물이

일렁인다

어른거리는 물결

 

섬그림자가

흔들린다

 

풍덩! 

빠져든다

 

해풍에도 

생명은 여지없이

이어진다

 

들꽃이 피어있다

소리없이

 

새벽 여명이 비칠 무렵 아침 노을을 보는 일은 게으름뱅이에게 과분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행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부지런을 떨어야 했습니다. 덕분에 조용한 아침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넓게 펼쳐진 밭은 온통 해바라기로 뒤덮여 있습니다. 차나칼레 해협을 지나 이스탄불로 들어오는 길에도 양변에는 끝없이 해바라기 밭이 이어지고 있더군요.

호텔 정원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우리는 먼저 피에롯티 언덕을 방문합니다. 프랑스의 해군 장교 피에롯티가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한 몸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군복무를 마친 후 시인이 된 그는 다시 이스탄불을 찾아왔지만 그 여인은 이 세상을 떠난 후였고 그는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피에롯티언덕을 올라 갑니다.

 

언덕 초입에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이 있군요.

 

 

 

 

피에롯티 언덕을 올라가면서 나무들 사이로 골든혼과 그 주위 시가지 모습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보입니다. 

 

숲 속의 석조 구조물은 무덤입니다. 혐오시설이라 하여 멀리하는 우리와는 달리 죽은 사람들의 세계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곁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양쪽으로 무덤들이 즐비하지만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다만 향기로운 숲속을 산책하는 듯 합니다.

 

 

 

피에롯티 카페입니다. 아마도 피에롯티는 이곳에서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만나곤 했겠지요.

 

카페 밖 시원한 나무 그늘아래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언덕을 오르느라 고생한 다리를 쉬어 봅니다. 

 

그리고는 언덕 아래를 내려다 보며 시원하게 펼쳐진 이스탄불 시내와 골든혼을 사진에 담아 봅니다. 

 

 

 

땀을 식힌 우리는 언덕을 다시 내려가 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 톱카프 궁전으로 향할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이 있었더라면 이 피에롯티언덕에서 담소를 나누며 차라도 한 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햇살에 반짝이는 골든혼을 숲 사이로 본 깨끗한 느낌은 오래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트로이를 떠나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 이스탄불로 향합니다. 다르다넬스해협에서는 1차세계대전 패전국인 터키에서 영국군을 몰아낸 차나칼레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 때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군이 케말 무스타파입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을 뒤이은 터키 민주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터키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합니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꽤 오랜 시간을 달려 오후 늦게 이스탄불에 도착합니다. 이스탄불에 재입성하여 처음 들른 곳은 탁심광장입니다. 이 곳은 이스탄불의 교통,상업,관광의 중심지입니다. 다양한 공공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지며, 민주화를 위한 시위도 이 곳에서 벌어진다고 합니다.

 

광장 중앙에는 1928년 세워진 터키공화국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우리는 탁심광장에서 이어져 있는 번화한 거리로 들어섭니다. 젊은이들의 거리라고 할 만큼 활기가 넘치는 붐비는 터키의 거리를 보게 됩니다.

 

 

 

 

 

 

 

마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종업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군요.

 

어둠이 어슥해지면서 우리는 이스탄불 야경투어에 나섭니다. 갈라타 다리 아래의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주위의 야경을 찍어봅니다.

 

이제 내일 이스탄불의 유명한 명소를 방문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호텔로 향합니다.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부산의 명소는 해운대이다. 해운대의 떠오르는 지역은 센텀시티와 마린시티. 수영강 건너 센텀시티 맞은 쪽 갈맷길을 걸으며 센텀시티를 조망하다. 수영강 변에 보이는 파도모양의 지붕을 한 건축물이 '영화의 전당', 그 뒤쪽의 고층 건물에는 KNN이란 조명이 희미하게 보인다. 영화의 전당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신세계백화점, 가장 왼쪽의 은빛 원기둥형태의 건물이 보이는 지역은 마린시티.

 

 

 

 

수영 제2교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지역이 센텀시티 아파트단지.

 

 

 

갈맷길과 이어져 있는 휴식터...

 

 

 

점점 공간이 어두워져 감에 건물들의 조명은 더 밝아진다. 영화의 전당의 지붕은 파도 모양, 지붕을 현란한 색으로 물들이는 조명은 언제 켜질까?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신세계백화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센텀시티 아파트의 불빛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수영강변으로 나 있는 갈맷길을 걸으면서 센텀시트 부근에서 해질녘을 보낸다. 부산에도 가 볼만한 명소가 많은데, 좋은 카메라를 장만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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