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대한민국 독서 환경 및 독서 경향을 보여주는 책.

그 동안 많이 읽혔던 책들을 소개하고 있어 좋은 독서 목록이 될 수도 있겠다.

 

박수밀 지음/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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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인류의 문명은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

우리의 세대는 번영하는 과학 물질 문명의 혜택을 받아 풍요로운 삶을 즐기고 있지만, 우리의 다음 세대도 우리와 같은 번영을 누릴 수 있을까?

제레미 러프킨은 이 질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현재와 같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의해 경제가 지탱되는 경제체제는 결국 붕괴할 수 밖에 없다. 석탄이나 석유 기타 광물질과 같은 재생불가능한 자원에 의지하는 경제체제는 곧 종말을 고하고야 말 운명이다. 우리가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해서 이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종말을 향해 돌진하는 이 세계의 바퀴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인류의 문명의 종말을 피하기 위해 아니 최소한 늦추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제레미 러프킨이 제시하는 해법을 들어보고 싶으면, 엔트로피를 읽어 보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와 인류의 문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보해 왔다고들 믿는다. 하지만 <동물의 침묵>에서는 그러한 정신적인 진보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엔트로피>에서는 인류의 물질적 진보 역시 진정한 진보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른바 문명의 진보는 오히려 퇴보이며 무질서만 가중시킬 뿐인 것이다. 이것은 우주의 기본 법칙이다. 물질문명이 발전할 수록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다시 말해 무질서의 정도가 증가한다. 


사실 현대의 소비 문명에 의구심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 한계가 분명한 자본주의 역시 인류의 존속을 위한 적절한 방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 책 <엔트로피>는 그러한 나의 생각이 일리가 있음에 힘을 실어 준다. 그리고 무엇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하지만 인류가 그 길을 갈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내가 할 바는 무엇인가 심각히 고민해 본다. 




목차

지은이의 말

제1부 세계관의 변화

서문
세계관
그리스인들과 역사의 다섯 단계 : 순환과 몰락
기독교적 세계관
현대적 세계관으로
기계의 시대
기계론적 세계관의 창시자들

제2부 엔트로피의 법칙

엔트로피의 법칙
우주론과 제2법칙
시간, 형이상학, 엔트로피
생명과 제2법칙
신체 외적 도구와 에너지

제3부 새로운 역사관의 틀로서의 엔트로피

역사와 엔트로피 분수령
최후의 에너지 분수령
기술
외부비용
기술의 수확 체감
제도의 발달
전문화
세계관과 에너지 환경

제4부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와 다가오는 엔트로피 분수령

에너지 위기
합성연료
핵분열 에너지
핵융합
광물
대체와 재생, 그리고 보전

제5부 엔트로피와 산업시대

경제학
농업
수송
도시화
군대
교육
보건

제6부 새로운 세계관으로서의 엔트로피

세로운 경제일노을 향하여
제3세계의 발전
부의 재분배
태양에너지 시대의 새로운 인프라
엔트로피 사회의 가치와 제도
과학의 개혁
교육의 개혁
제2의 종교개혁
엔트로피 위기에 처하여
절망으로부터 희망으로

후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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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출판사


이건 뭐지? 처음 몇 장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지인이 추천해 주면서 '진보'의 신화를 깨뜨리는 책이라고 이야기한 게 생각났지만 도대체 그레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다. 끝까지 다 읽고서도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그레이의 의도를 거의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읽기로 했다. 한결 내용이 쉽게 들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그레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손에 잡을 수가 없다. 다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진보'란 없다는 것만 잡힐 뿐. 물론 3부로 나누어져 있는 큰 줄거리를 희미하게 잡을 수 있었다고 느꼈지만, 그걸 느끼는 순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손에 잡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1장 [오래된 혼돈]에서는 진보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인류는 진보하고 있다.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인류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질서와 삶을 만들고 있다. 이른바 '진보'. 이것은 신화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레이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또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타난 미래사회는 진보란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말만 진보일 뿐 전혀 진보하지 않은 사회이다. 오히려 퇴보한 사회일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축적되지만 정치와 윤리는 축적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레이의 지론이다. 과거의 악덕 예를 들면 노예제 같은 것이 사라졌다고 믿을 지 모르지만, 다시 말해 인류 세상은 진보해 왔다고 믿고 싶겠지만, 그러한 악덕은 다른 형태로 우리 현대 사회에 침투해 있다. "지식에 있어서는 진보가 있지만 윤리에서는 진보가 없다." 인간은 역사로 부터 배우는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지식은 축적이 되지만 윤리는 한 사람이 죽으면 끝이난다. 새로 태어난 사람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2장 [마지막 생각의 너머로] 프로이드와 융의 심리학을 소개한다. 진보의 신화를 깨뜨리고 그 너머로 향하는 그레이의 생각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어딘지 동양 노자철학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생각들이 펼쳐진다. 서양의 주류 사상계에서 벗어난 생각들이 두서 없이 등장하는데, 한편으로는 서양의 비주류 사상가들이 합리주의나 계몽주의에 비추어 볼 때 신비적인 색채를 지닌 사상들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그러한 사상들 가운데 언어란 불완전한 것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언어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언어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나 종교, 혹은 자연세계에 빠져든다."그레이는 열렬한 독서광이다. 그는 조명받지 못한 작가들과 사상가들의 말에 기대어 자신의 생각을 넌짓이 제시하는 것 같다. 


3장 [또 다른 햇빛] 주류의 시각과는 관점이 존재함을 깨닫게 해 준다. 송골매를 쫓는 한 사람의 기록, 그의 기록은 송골매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 아닌, 송골매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본 기록이다. 왜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인간의 관점과 다른 동물들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유독 인간의 관점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선이다. "관점을 이동하니 또 다른 장소가 드러났다." "또 다른 햇빛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든다. 달라지는 빛의 수만큼이나 많은 세계가 있다." "인간이 만든 것들은 보통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인간이 만든 장소들도 숲속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이나 신비롭고 찰라적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세상을 인식하게 만드는 주문을 깨면, 탐험가들이 지도에 나오지 않는 곳을 다니면서 발견하는 것처럼 도시안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제레미 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고 있다. 동물들의 침묵과 엔트로피는 유사한 면이 있다. 진보의 신화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엔트로피를 읽다 보니 동물들의 침묵이 그리워진다. 난해한 문체가 아름다웠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동물들의 침묵에 비하면 엔트로피는 너무 심한 동의반복적이라 느껴진다. 그만큼 동물들의 침묵은 새로운 읽을 거리였다. 그 속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 생경한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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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도나휴 지음/ 고상숙 옮김/ 김영사


<천국의 소년>이란 소설을 추천받았다. 소설의 곳곳에 수학이 나온다고 하며, 추천받은 책이었다. 

북한에 살고 있던 자폐증을 앓지만 수학에는 천재적인 소질은 지닌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이 소년은 탈북하여 이곳 저곳을 떠돌다 나중에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게 된다. 이 때 사막을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하게 되는데, 이 소년은 전에 읽었던 <사막을 건너는 방법>중 첫번째를 이용한다. 지도를 보지말고 나침반을 보아라.


이 때 알게 된 책이었는데, F1963의 yes24 중고서점을 어슬렁거리다 딱 그 책이 눈에 띄였다. 다른 두권의 책과 함께 아주 저렴하게 사와서 보았는데,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다. 스티브 도나휴란 사람이 친구들과 어울려 사하라 북쪽에서 사하라를 지나 사하라 남쪽에 이르기까지의 자동차 여행을 모티브로 하여 거기서 얻었던 여행의 포인트를 인생의 사막에 비유하면서 사막과 같은 삶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할 지를 조언해 주는 형식의 글이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과는 다른 사막 횡단법. 산을 오를 때는 정상 즉 목표가 눈에 보이지만, 사막에서는 길도 없고 그 목표가 보이질 않는다. 삶을 살아갈 때에도 아마 이러한 사막과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을 것이다. 


첫째, 지도를 보지 말고 나침반을 보아라

둘째, 오아시스가 있을 때마다 쉬어가라

세째, 차가 모래에 빠지며 타이어에 바람을 빼라

네째, 따로, 함께 가기

다섯째, 캠프에서 멀어지기

여섯째, 국경선에서 멈추지 않기


조금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첫째, 사막에서는 수시로 지형이 변하기 때문에 지도를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을 보아야 한다. 인생에 사막에서도 자신의 속에 있는 나침반의 소리를 들어야한다. 

둘째.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오아시스를 만나면 언제든지 쉬어가며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인생의 사막에서도 마찬가지 쉬어가며 나아가자.

세째, 차가 부드러운 모래에 빠져 나올 수가 없을 때는 타이어에 바람을 빼면 된다. 그러면 흙과 접촉하는 표면적이 커져서 모래속을 빠져 나올 수가 있다. 인생의 사막에서 혹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자존심일랑 버리고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네째, 따로, 함께 가기. 두 대의 차량이 함께 사막을 건너다 보면 차가 고장나서 수리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 그럴 때 나머지 한 차도 함께 머물면서 차를 고칠 때 까지 기다린다면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 지 모른다. 그럴 때 수리할 차는 수리하고 나머지 차는 목적지를 향해 간다. 그리고 앞서 가던 차가 고장이 나면 그 자리서 수리하고 뒤 따라 오던 차는 또 추월해 간다. 결국 두 대의 차량은 비슷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다섯째, 캠프에서 모닥불 앞에 앉아 있으면 사막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다. 사막 원주민의 초대에 응했더니, 두려움을 극복하고서 초대에 응했더니 또 다른 만남이 이어졌고 즐거운 식사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때로는 낯선 상황으로 과감하게 발을 내밀어야 할 때도 있는 법, 그러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음이여.

여섯째, 국경에서 멈추지 않기. 인생의 사막을 건널 때 때로는 어떤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려 할 때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 한계에서 망설이지 말고 그것을 건너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가 있다. 


다소 억지로 사막의 경험을 삶에 적용시킨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한 번은 일독할 만한 책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삶의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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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기록한 책 100권

 

 

 

한겨레 신문 선정 20세기의 명저 100선 (1999)




출처 : 한겨레 1999-12-31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성의 정치학'까지한 세기가 저문다.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격랑의 연속이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컴퓨터 혁명을 낳았고, 이 혁명의 적자인 인터넷은 지구촌을 촘촘한 그물로 뒤덮었다. 과학기술의 어두운 면도 남김없이 드러났다. 대량살상무기 앞에서 인류는 종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파시즘의 발호는 '이성의 인간'을 잔인한 살육의 짐승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사회주의 실험은 한때 인류의 희망이었으나, 한 세기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는 중에도 인간은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반성하고 모색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 모든 기억은 책으로 남았다. 책은 인류의 희망과 절망, 열정과 좌절을 고스란히 문자로 담았다. (한겨레) 문화부는 지난 한 세기를 특징짓는 책 100권을 골라 소략하게 한 시대를 스케치한다. 책 선정은 영국의 서평지 (로고스), 일간지 (더 타임스) (뉴욕타임스), 국내 서평지 (출판저널) 등의 도움을 받아 자체 기준을 더해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편집자)

문학

세기의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영화와 컴퓨터 등에 밀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20세기 전체를 놓고 볼 때 문학은 역시 주도적인 장르였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등 풍부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도 역작이 나왔지만, 특히 영국과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주요한 작품이 출현했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엘리엇의 (황무지), 그리고 울프의 (등대로)와 함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창작 방법을 시대의 주류로 만들었다.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과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성이라는 주제를 세기의 화두로 부각시켰으며,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라이트의 (토박이), 아체베의 (무너져 내린다)는 저항문학의 전통을 이어 갔다. 카프카의 (심판)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카뮈의 (이방인) 등이 삶의 부조리에 눈을 돌렸다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웰의 (1984년)은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말로의 (인간의 조건),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조지프 헬러의 (캐치 22)는 20세기가 무엇보다도 전쟁의 세기였으며, 20세기 인간의 조건은 전쟁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였음을 웅변했다.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는 테네시 윌리엄스나 아서 밀러의 작품들과 함께 영어 희곡의 르네상스를 일구었으며, 만의 (마의 산)과 그라스의 (양철북),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와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는 각각 독일과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계승했다.

케루악의 (길 위에서)가 히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알렸다면, 루쉰의 (아큐정전)과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루슈디의 (악마의 시)는 '변방'의 목소리를 '중심'을 향해 타전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념과 독점적 진리의 해체라는 세기말 시대정신의 소설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인문 20세기 인류의 정신은 프로이트와 함께 열렸다. 1900년 태어난 (꿈의 해석)은 인간이 의식의 존재임과 동시에 무의식의 존재임을 '폭로'했다. 프로이트의 표현으로는, 의식이란 기껏해야 무의식의 바다에 떠 있는 섬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 안에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또다른 자기가 있다는 깨달음은 인류를 혼란에 빠뜨렸다. 지성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프로이트는 생략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는 거대한 폭약을 내장한 지적 폭발물이었다. 언어가 기표와 기의의 임의적인 결합일 뿐이라는 지적, 기표들의 자율적인 체계야말로 언어의 본질이라는 지적은 언어학을 넘어 인문학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구조주의는 소쉬르를 태반으로 삼아 자라난 20세기적 사유의 한 정점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인류학의 영역에서 '구조'를 드러낸 본격 저작이었다. 구조주의적 사유의 물결은 푸코의 (말과 사물)로, 푸코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록될 것"이라고 토로하게 만든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티 오이디푸스)로 이어졌다.

프랑스에서 '구조주의'가 잉태될 무렵 독일에서 후설은 '현상학'을 탄생시켰다. 현상학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통해 실존주의라는 또다른 20세기적 풍경을 착색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으로 이어졌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하버마스의 (소통행위이론)은 비판이론의 토양에서 자란 다채로운 꽃이었다. 그 한편에서 루카치는 사회주의 혁명의 열정으로 (역사와 계급의식)을 썼고, 포퍼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대항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썼으며, 보부아르는 (제2의 성)으로 여성해방의 횃불을 올렸다. 서양이 이렇게 격동할 때 동양에선 펑유란이 (중국철학사)를, 라다크리슈난이 (인도철학사)를 각각 지성의 전당에 들였다.

사회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은 20세기 사건의 맨 윗자리에 놓일 격변이다. 그 선두에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이 있었다. 그가 32살에 내놓은 (무엇을 할 것인가)는 혁명가라면 놓아선 안 될 필독서였다. 그람시는 감옥 안에서 쓴 (옥중수고)로 자본주의 국가체제가 안정된 상황에서 혁명의 가능성과 방략을 제시했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자본축적의 정신적 동력을 발견한((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자본주의는 위기를 겪었으나 수정주의라는 형태로 살아남아 번창했다. 케인스의 (고용.이자.화폐 일반이론)은 그 계기가 된 저작이었다. 그보다 먼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자본주의적 노동통제 방법을 과학의 이름으로 제출했다. 자본주의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내부의 모순을 완화시키려 했다 (베버리지의 (사회보험과 관련 사업)).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에 이르러 여성해방의 목소리는 한층 날카로워졌고, 킨지의 (남성의 성행위)는 음지의 성을 양지로 끌어냈다.

과학ㆍ예술ㆍ기타

20세기만큼 과학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혁명의 중심이자 극점이었다. (상대성 원리)는 250년간 부동의 진리였던 뉴턴의 역학적 세계관을 뒤엎었다. 시간과 공간은 더이상 불변의 좌표가 되지 못했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적 세계관의 단절적 변화를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에 담아냈다. 러브록의 (가이아)는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의 힘을 받아 과학의 영역으로 입장했다. 호킹은 (시간과 역사)에서 천체물리학의 최신이론을 소개했다.

20세기는 간간이 위인을 낳기도 했다. 현대의 성자 간디는 (자서전)에서 비폭력과 관용의 정신을, 말콤 엑스는 이슬람교에 기반한 흑인해방의 이념을, 남아공의 흑인 영웅 만델라는 피부색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설파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장차 유럽을 피로 물들일 광기의 집념을 피력했다.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서양의 예술 역사를 알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최재봉 고명섭 기자 bong@hani.co.kr  



I. 문학

1. 로렌스 (D.H. Lawrence),『아들과 연인』(1913)
2. 루쉰 (魯迅, 1881~1936),『아Q정전』(阿Q正傳, 1921)
3. T.S. 엘리어트 (Thomas Stearns Eliot, 1888~1965) ,『황무지』(The Wasted Land, 1922)
4.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1882~1941),『율리시스』(1922)
5. 토마스 만 (Thomas Mann, 1875~1955),『마의 산』(Der Zauberberg / The Magic Mountain, 1924)
6. 프란츠 카프카,『심판』(1925)
7.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In Search of Lost Times, 1913~1927)
8. 버지니아 울프,『등대로』(1927)
9. 헤밍웨이,『무기여 잘있거라』(1929)
10. 레 마르크,『서부전선 이상없다』(1929)
11. 올더스 헉슬리,『멋진 신세계』(1932)
12. 앙드레 말로 (Andre Malraux, 1901~1976),『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 1933)
13.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1939)
14. 리처드 라이트,『토박이』(1940)
15. 브레히트,『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41)
16. 카뮈,『이방인』(1942)
17. 조지 오웰,『1984』(1948)
18.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 1906~1986),『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53)
19.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롤리타』(1955)
20. 유진 오닐,『밤으로의 긴 여로』(1956)
21. 잭 케루악,『길 위에서』(1957)
22. 파스테르나크,『닥터 지바고』(1957)
23. 치누아 아체베,『무너져 내린다』(1958)
24. 귄터 그라스 (Gunter Grass, 1927~ ),『양철북』(Die Blechtrommel, The Tin Drum, 1959)
25. 조지프 헬러,『캐치 22』(1961)
26. 솔제니친,『수용소 군도』(1962)
27. 마르께스 (Gabriel Garcia Marquez, 1928~ ),『백년 동안의 고독』(Cien Años de Soledad, 1967)
28.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1980)
29.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
30. 살만 루쉬디,『악마의 시』(1989)



II. 인문

1.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꿈의 해석』(Interpretation of Dreams, 1899)
2. 페르디낭 드 소쉬르 (Saussure),『일반 언어학 강의』(1916)
3. 막스 베버 (Max Weber, 1864~1920),『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1904~1905)
4. 라다크리슈난,『인도철학사』(1923~1927)
5. 지외르지 루카치,『역사와 계급의식』(1923)
6.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 Sein und Zeit, 1927)
7. 풍우란,『중국철학사』(1930)
8. 아놀드 토인비,『역사의 연구』(1931~1964)
9. 마오쩌둥,『모순론』(1937)
10.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이성과 혁명』(1941)
11. 장 폴 사르트르,『존재와 무』(1943)
12. 칼 포퍼,『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
13. 아도르노ㆍ호르크하이머,『계몽의 변증법』(1947)
14. 시몬 드 보봐르,『제2의 성』(1949)
15. 한나 아렌트,『전체주의의 기원』(1951)
16.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철학적 탐구』(1953)
17. 미르치아 엘리아데,『성과 속』(1957)
18. E.H. 카,『역사란 무엇인가』(1961)
1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야생의 사고』(1962)
20.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m, 1917~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1962)
21. 에드문트 후설,『현상학의 이념』(1964)
22. 미셸 푸코,『말과 사물』(1966)
23. 노엄 촘스키,『언어와 정신』(1968)
24. 하이젠베르크 (Werner Heisenberg, 1901~1976),『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d Ganze, 1969)
25. 질 들뢰즈ㆍ펠릭스 가타리,『앙티 오이디푸스』(1972)
26. 에리히 프롬,『소유냐 존재냐』(1976)
27. 에드워드 사이드,『오리엔탈리즘』(1978)
28.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물질문명과 자본주의』(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ies /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15e~18e Siede, 1979)
29. 피에르 부르디외,『구별짓기』(1979)
30. 위르겐 하버마스,『소통행위이론』(1981)



III. 사회

1.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무엇을 할 것인가』(1902)
2.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과학적 관리법』(1911)
3. 안토니오 그람시,『옥중수고』(1926~1937)
4. 라인홀트 니버,『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
5.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용ㆍ이자ㆍ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
6. 윌리엄 베버리지,『사회보험과 관련 사업』(1942)
7. 앙리 조르주 르페브르,『현대세계의 일상성』(1947)
8. 알프레드 킨제이,『남성의 성행위』(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 1948)
9. 데이비드 리스먼,『고독한 군중』(1950)
10. 슘페터 (Schumpeter, 1883~1950),『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11. 존 갤브레이스,『미국의 자본주의』(1951)
12. 다니얼 벨,『이데올로기의 종언』(1960)
13. 에드워드 톰슨 (Edward Thompson, 1924~1993),『영국 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1963)
14. 마루야마 마사오,『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1964)
15. 마샬 맥루한 (Marshall Mcluhan, 1911~1980),『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1964)
16. 케이트 밀레트,『성의 정치학』(1970)
17. 롤즈 (John Rawls, 1921~2002),『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
18. 임마누엘 월러스틴,『세계체제론』(1976)
19. 앨빈 토플러,『제3의 물결』(1980)
20. 폴 케네디,『강대국의 흥망』(1987)



IV. 과학
1. 알버트 아인슈타인,『상대성 원리』(1918)
2. 노버트 비너,『사이버네틱스』(1948)
3. 조지프 니덤,『중국의 과학과 문명』(1954)
4. 토마스 쿤 (Thomas Kuhn, 1922~1996),『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5. 제임스 워트슨,『유전자의 분자생물학』(1965)
6. 제임스 러브록,『가이아』(1978)
7. 에드워드 윌슨,『사회생물학』(1980)
8. 칼 세이건,『코스모스』(1980)
9. 일리야 프리고진,『혼돈으로부터의 질서』
10. 스티븐 호킹,『시간의 역사』(1988)



V. 예술ㆍ기타

1. 헬렌 켈러,『자서전』(1903)
2. 아돌프 히틀러,『나의 투쟁』(1926)
3. 간디 (Gandhi, 1869~1948),『간디 자서전: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1927, 1929) (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 1927, 1929)
4. 에드거 스노우,『중국의 붉은 별』(1937)
5. 아놀드 하우저 (Arnold Hauser, 1892~1978),『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cial History of Art /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 1951)
6. 안네 프랑크,『안네의 일기』(1947)
7. 곰브리치,『서양미술사』(1948)
8. 말콤 엑스,『자서전』(1966)
9. 에른스트 슈마허,『작은 것이 아름답다』(1975)
10. 넬슨 만델라,『자유를 향한 긴 여정』(1994)

 

(출처: http://play987.blogspot.com/2011/05/20-100.html)

로마인 이야기 1~15

고흐- 영혼의 편지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2 산티아고 순례길

나는 걷는다 1

곽재구의 포구기행

여울물 소리

천국의 소년1,2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워즈워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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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변신>이라는 작품을 쓴 작가가 누구지? 카뮈 말고 누구더라, 몇일 전만 해도 카뮈는 생각이 나지 않고 이 소설가 이름만이 생각 났었는데, 

두 사람 자꾸 헷갈린다. 그래 '카프카'다. <변신이야기>를 집어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카프카의 <변신>이 생각났었다.

자고 일어나니 자신이 벌레가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변신이야기>는 오비디우스가 그 때까지 전해져 내려오던 '로마신화'를 정리한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이야기들도 서로 이리 저리 얽혀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거의 같은 그리스 신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따로 로마 신화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중해의 강자가 된 로마인들은 그들 민족의 기원이 단지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신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 세계를 다스릴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로마 신화를 다룬 책 제목이 <변신이야기>일까?

로마 신화의 많은 부분들은 신들이 인간으로 변신한 이야기, 또는 인간들이 신의 벌을 받아 동물들로 변신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신의 변신과 인간의 변신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신들은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변신을 시도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신에 도전한 벌로, 또는 신을 화나게 한 벌로 변신당한다. 


통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 오만과 질투가 가져오는 파멸등, 로마 신화에서 교훈을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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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문예출판사


저자 서문

Ⅰ. 문제
1. 종파와 계층
2. 자본주의「정신」
3. 루터의 직업개념ㆍ탐구의 과제

Ⅱ.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
1. 현세적 금욕주의의 종교적 토대
2. 금욕과 자본주의 정신


해설 - 앤터니 기든스
옮긴이의 말



현대 자본주의가 왜 하필이면 서양에서 시작되었을까?

자본주의에 비견할 말한 것들이 동양, 즉 중국이나 인도 또는 이슬람 국가들에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현대 자본주의는 서구 고유의 것으로 인정된다. 왜일까?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은 서구 유럽의 종교적 배경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종교 개혁으로 등장한 프로테스탄스 사상등이 자본주의 정신의 원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프로테스탄트 종파들은 루터주의, 칼뱅주의, 경건주의, 메소디스트, 청교도, 침례파, 퀘이크교 등이 있다.

칼뱅주의의 예정론과 의인론, 그리고 카톨릭의 비세속적 금욕주의에 대립하는 세속적 금욕주의, 소명으로서의 직업의식등이

어떻게 자본주의 정신으로 연결되는지, 아주 복잡한 논의가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어떻게 예정론과 의인론이 자본주의 정신과 관련이 있을까?

비세속적 금욕주의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합리적 자본주의 정신으로 연결이 될까?


현세적인 프로테스탄스의 금욕은 전력을 다해 재산 낭비적 향락에 반대해 왔고 소비, 특히 사치재 소비를 봉쇄해 버렸다.

반면에 이 금욕은 재화 획득을 전통주의적인 윤리의 장애에서 해방시키는 심리적 결과를 낳았으며, 이익 추구를 합법화시켰을 뿐 아니라 직접 신의 뜻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이익 추구에 대한 질곡을 뚫고 나왔다. 금욕주의는 목적으로서의 부의 추구는 비난받아야할 최악의 것이라 보면서도 직업노동의 열매인 부의 획득은 신의 축복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단하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세속적 직업노동을 최고의 금욕적 수단이자 동시에 거듭난 자와 그 신앙의 진실성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증명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정신이라 부르는 생활관의 확장을 위한 가장 강력한 지렛대이다.

소비의 봉쇄와 영리추구의 해방은 금욕주의적 절약 강박을 통한 자본 형성을 용이하게 한다.

도저히 연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파헤치는 베버의 사고는 꽤 복잡했을 것이다.

아마도 자본주의 정신이 출현하게 된 데는 단순히 종교적 사상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막스 베버는 다른 요인들은 일단 배제한 채 프로테스탄스 정신과 자본주의 정신과의 연결선을 집중적으로 파고 든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 자본주의에는 그 원류가 되었던 프로테스탄스 정신 즉 종교적인 면이 완전히 빠져 있다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 존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부가 증대될 때마다 종교의 내용이 그만큼 감소되었던 것을 염려한다. 종교는 필연적으로 근면과 절약을 낳을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바로 부를 수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가 증대하면 자만과 열정과 세속적 애착이 그 모든 형태로 증가한다. 종교의 형식은 그대로이나 정신은 점차 사라져 간다.

베버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국 순수한 종교적 열광의 정점이 이미 지나간 뒤 신의 왕국에 대한 추구의 투쟁이 점차 냉정한 직업적 덕으로 해소되기 시작하여 종교적 뿌리가 서서히 말라 죽고 공리주의적 현세주의가 나타났다.

막스 베버는 당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의 자본주의의 변질에 대해 말한다.


현재 영리 추구가 가장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종교적, 윤리적 의미가 박탈당한 영리 추구는 스포츠의 특성인 순수한 경쟁적 열정과 결합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에 근거하여 그는 미래의 자본주의에 대해 예언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래에 이 재화라는 겉껍질 안에서 살 자가 누구인지, 이 엄청난 발전의 마지막에 전혀 새로운 예언자나 혹은 옛 정신과 이상의 강력한 부활이 있을지, 아니면 일종의 발적적인 오만으로 장식된 기계회된 화석화가 있을 지는 누구도 모른다.  만일 후자가 옳다면 이 문화 발전의 최후의 인간은 정신 없는 전문가, 가슴 없는 향락가가 있을 것이다.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인류가 전례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렵게 어렵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도, 그것도 두 번이나 읽은 후에도 막스 베버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던 차에, 마지막 결론부에서 베버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주고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앤터니 기번스의 해설 부분은 베버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제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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