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탄생 / 이희재 지음/ 교양인 출판사

 

뉴욕타임지 선정 100권의 고전을 몇 권 읽고서 이 책들은 참 어렵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어려운 까닭도 있었지만, 때로는 번역이 난해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번역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의 탄생>은 20여년간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 이희재씨가 실제 경험을 토대로 현장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낸 역작이다. 예전에 읽어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도와주었다. 이 책은 <번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신선한 답을 던져 줄 것이다. 왜 '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이라고 그럴까? 훌륭한 번역이란 어떤 것일까?   

 

번역의 탄생

 

번역이란 단지 외국어와 한국어의 일대일의 대응이 되어서는 안된다. 원문에 얽매인 번역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원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커다란 틈이 있기때문이다. 이러한 틈을 메워주는 역할이 번역자에게 달려 있다. 번역자는 독자가 원문의 의도를 쉽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번역의 탄생>은 번역 기술을 다루고 있다. 수동태는 능동태로 바꾸어 준다든지, 불필요한 주어는 과감하게 없애준다든지 하는 등의 기법 말이다. 하지만 좋은 번역은 단순히 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외국어와는 다른 특별한 개성이 있다. 한국어는 프랑스어나 영어에 비해 훨씬 동적이며 구체성이 강하다. 영어는 명사와 형용사를 중시하지만 한국어에는 동사나 부사가 잘 발달해 있다. 그래서 이러한 한국어만의 특징을 살려 표현할 때 독자들에게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번역의 탄생>을 읽으면서 얻게된 또 하나의 소득은 글을 잘 쓰는 방법에 생각할 점을 많이 던져준다는 것이다. 간결한 문장을 쓰는 비결- '군살을 뺄 수록 아름답다'. 아름답고도 정겨운 표현 - '느낌이 사는 토박이 말'. 이제껏 내가 썼던 글은 번역체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자연스럽게, 쉽게, 간명하게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번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또한 이 책은 장차 이루어야 할 중대한 과제를 던져준다. 우리말을 사랑하고 발전시킬 책임과 특권은 바로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번역자들은 이 일을 위해 일선에 서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전은 한 언어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전,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는 사전, 우리의 삶이고스라히 담긴 사전이 아직 없다는 것이 슬프다. 이런 사전을 만드는 것은 시대의 과제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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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생각의 나무

 

율리시스

 

뉴욕타임지 선정 100권중의 하나. 율리시스는 20세기 문학의 이정표인 동시에, 현대 세계 소설사의 한 분수령이며,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와 함께 가장 혁신적이며 창의적인 노력을 대표하는 수작이다. 오늘날 이 작품은 20세기 최대의 문제작인 동시에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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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1904년 6월 16일 하루동안 레오폴드 블룸과 스티븐 데덜러스에게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사건들이 전개된다. 스티븐은 초등학교에서 시와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의 일을 그만두고 예술가의 삶을 꿈꾸는 젊은이이다. 그리고 레오폴드 불룸은 신문사의 광고 영업원이다. 블룸은 아침에 친구 디그넘의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나가면서 우연히 아내 몰리가 그 날 오후 다른 남자와의 밀회 약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블룸은 스티븐과 여러번 이리 저리 엇갈리면서 더블린 시를 방랑하다가 그날 저녁 늦게 홍등가에서 낭패에 처한 스티븐을 도와준다. 그리고 밤 늦게 스티븐을 데리고 집으로 귀환한다. 다음날 새벽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스티븐은, 자고 가라는 제의를 거절하고 떠나가고 블룸은 밀회의 흔적이 있는 아내의 발치 침대에 거꾸로 누워 잠이든다. 언뜻 잠이 깬 몰리는 젊은 시절의 추억들로부터 현재에까지 이르는 장황한 회상에 잠긴다.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그 날 1904년 6월16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블룸즈데이(Bloomsday)'로 알려져 있다. '율리시스'는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라틴식 이름이다. 오디세우스는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 장군이다. 그는 아내 페넬로페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귀환하는 도중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해야만 하였다. 블룸도 하루종일 더블린 시를 방황하여 결국 아내 몰리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이 작품에서 오디세우스는 블룸에, 몰리는 페넬로페에, 그리고 스티븐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 상응하는 구도로 나타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을 이해하면서 읽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읽기는 하나 무엇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한마디로 난해하다. 이 책이 미국에서 외설 시비에 휘말렸을 때 이를 변호하던 변호사는 이 책의 불가해성을 그의 논지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텍스트의 불가해성은 몇가지 요인들에 기인한다.

첫째,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 그의 기법은 창의적이며 혁신적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머리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연속적인 또는 비연속적인 생각들의 파편들은 그 생각의 주인공의 내면을 밝혀주는 귀중한 정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모두 논리적,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냥 그대로 읽어 나가는 것이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  블룸은 알고 있지만 독자들은 알지 못하는 더블린 시의 수많은 소시민들이 사전 정보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들의 목소리들과 의식의 흐름이 함께 섞여서 복합적으로 서술되면서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불확정성 상황이 전개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보조 설명을 먼저 읽고 익숙해진 후에 이 작품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먼저 읽고나서 <율리우스>에 도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율리우스>에 나오는 스티븐은 '젊은 에술가'인 조이스 자신의 모습이기때문이다.

 

세째, <율리우스>는 예술적 표절이 난무하는 뒤범벅 잡탕같은 느낌이 든다. 수많은 텍스트들에서 인용된 표현들, 은유들이 정신을 사납게 한다. 주석이 달린 책을 읽을 때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주석이 없으면 그것이 인용인지 조이스의 표현인지를 가늠하기조차 힘들 수 있다. 가장 많이 인용 및 인유된 것은 <성서>이며, 그 밖에 그 당시 아일랜드의 문학, 가사등에서 수많은 표현들이 '표절'되었다. 어떤 비평가는 말하기를 '율리시스는 읽는 독자에게는 그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탐구하는 독자들에게만 그 진모습을 드러낸다'라고 하였다. 

 

<율리시스>를 읽으면서 조이스의 탁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몇가지 점들도 있다. 먼저 다방면에 대한 그의 엄청난 지식들 - 신학, 역사, 언어, 과학, 예술, 의학 - 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 도덕적 검열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침없는 표현력도 대단하다. 마음대로 써 내려간 듯하나, 사실은 치밀하게 계획된 상황들, 스티븐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이야기의 배경이 어느듯 블룸의 이야기의 전경이 되고,  이렇듯 배경과 전경이 날실과 씨실이 되어 교차하는 소설적 기법은 입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같은 상황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서술하는 방식들이 발견되는데 , 이러한 서술의 원형이 바로 <율리시스>인가?

 

결론은? 이 소설은 일반인을 위한 것은 아닌듯하다. 하지만 소설지망가들은 이 소설의 형식이나 표현등을 탐구함으로 글을 쓰는데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연구자들은 이 텍스트에서 엄청난 연구의 보고를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평범한 독자들은 이 대작을 한 번 읽어 봤다는 만족감에 만족해야 할 듯하다. 나 역시 이해불가한 이 책, 1300여페이지에 달하는 이 작품을 읽고, 다 읽었다는 뿌듯함을 가지고 나의 사투에 자찬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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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까치출판사  

 

좀 어렵네...

이 책을 집어들면서 '과연 역사란 무엇일까?'라고 생각과 함께, 어떻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 많은 지면에 풀어놓을까 궁금증이 들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고전으로 선정될 만한 자격이 있다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카는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차 있으며, 인간의 역사는 이 이성의 힘에 의해 계속 진보해 나갈 것이라고 낙관주의적 견해를 취하고 있다. 비록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역사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지성인들은 미래의 암울함에 비관주의 내지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은 구성은 이러하다.

1. 역사가와 그의 사실

2. 사회와 개인

3.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4.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5. 진보로서의 역사

6. 지평서의 확대

 

이 책을 읽고 나의 머리에 정리되는 부분은 이렇다.

 

첫째 역사와 과거,

역사란 '과거에 발생했던 사실들의 모음이다' 이러한 생각이 역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모든 과거의 사실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historian)가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선택한 사실들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역사사는 자신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에 근거하여 역사적 사실을 선택하고 이를 구성하여 역사를 기술한다.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 즉 역사적 사실과 역사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다.

 

둘째 역사와 현재,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historian)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다. 역사가는 역사또는 사회에서 분리된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는 없다.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historain) 자신은 현재의 상황이나, 현재의 사회, 이념등에 의해 제약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장 객관적인 역사가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가(historain) 자신이 바로 이러한 제한된 입장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전제된다.

 

세째 역사와 미래 

카는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들의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힘- 그 힘이 무엇이든간에- 에 긍정적이다. 역사는 순환한다는 토인비등의 주장 또는 역사란 목적지 없이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배와 같다 주장, 나아가서는 역사는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주장과 같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며 비관적인 견해가 아니라, 역사는 계속 진보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굳은 낙관주의적 희망을 버리지 않고 견지하고 있다. 

 

흥미있는 또 다른 점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역사도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켜야한다는 논의가 눈에 띄인다. 그는 역사학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역사학이 과학이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또한 역사에서의 우연의 역할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배여나온다. 그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건들의 인과관계는 역사가의 이성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또는 납득하기 어려운 우연의 요소들이 역사에 미치는 역할에 대해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우연의 요소는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기때문이다. 

 

그는 공산화된 소련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듯...그래서 '소련사'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는데... 당연히 마르크스와 레닌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예언자적 역할에 심정적 동조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사망할 당시까지도 서방세계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자본주의가 영향을 미치지 않던 지역 또는 자본주의가 영향을 미치기 막 시작했던 지역에서 그러한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의 예상과는 판이하다. 그리고 그의 사망 후 구 소련의 몰락등은 사회주의나 혁명에 의한 진보의 개념이 현실과는 맞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의 저변을 넓혀준다는 면에서 이 책을 추천할 만하다. 서울대에서는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하였었는데,  균형을 잡기위해서라도 카와는 의견을 달리하는 역사철학서도 함께 필독서로 지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진보진영에서는 한국 근대화는 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 시대의 부름이었으며, 그 시대의 소산물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시대를 바꾸는 것은 민중의 힘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한 힘을 집결시키고 분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지렛대와 같은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면에서, 한 개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카의 인과론에 근거한 역사관은 우연의 요소나 한 개인의 영웅적 역할에 대해서는 다소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 근거해 볼 때, 진보진영의 그와 같은 논리는 카의 역사의식과 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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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을유 출판사

 

뉴욕 타임지 선정 100권중 하나인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한스 카스토르프는 사촌 요아힘을 방문한다. 요아힘은 스위스 알프스산에 있는 국제요양원 베르크호프에 있다. 해발 3000미터의 고산지대의 신선한 공기와 풍광은 결핵 치료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3주간의 방문은 예상치도 못한 일때문에 길어진다. 근 7년간을 한스는 베르크호프에 머물게 된다. 한스도 결핵에 걸린 것으로 판명이 난 때문이다. 이 7년간 국제 요양원에서 겪었던 다사다난했던 일들의 기록이 <마의 산>의 내용이다.

 

한스는 20대 초중반을 베르크호프에서 보내면서 정신적을 성숙해진다. 요양원 특유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쇼샤부인과의 만남과 사랑. 문필가이자 인문주의자인 세템브리니의 영향- 세템브리니는 한스에게 애정을 가지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세템브리니는 민주주의, 인간의 자유,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크게 평가한다. 그리고 인류의 진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이후에 알게 된 예수회 수도사 출신인 나프타는 세템브리니와는 상반된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한스를 사이에 두고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은 극을 향해 치닿는다. 한스는 이 두 스승으로부터 각각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한스는 폭설이 내리던 날 명상을 위한 홀로만의 자리를 대자연의 침묵가운데서 발견하기 위해 나섰다가 길을 잃고 헤맨다. 잠깐 창고 오두막의 나무 벽에 기대어 정신을 잃은 한스는 꿈결같은 아름다운 환영에 빠진다. 깨어난 그는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사상과는 다른 자기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스와의 사랑의 하룻밤을 보내고 요양원을 떠났던 클리브디아 쇼샤부인이 다시 요양원에 들어온다. 그녀는 페퍼코른이라는 네덜란드인과 함께 온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커피왕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인물이다. 그는 말이 어눌하지만 그의 풍모에서는 왕의 카리스마가 보인다.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은 힘이 있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만든다. 한스는 이 인물에게서 강함을 느낀다. 세템브리니나 나프타처럼 이론과 말을 앞세우는 사람과는 달리, 그는 현실적이며 행동으로 무언가를 나타내는 인물로 느껴진다. 한스는 페퍼코른을 그의 또 다른 스승으로 받아들인다.

      

세템브리니와의 격렬한 논쟁중에 모욕을 느낀 나프타는 결투를 신청하게 되고, 그 결투중에 나프타는 자신의 관자놀리에 총을 쏘아 자살을 하고 만다. 또한 쇼샤와 한스와의 관계를 알게된 페퍼코른 역시 독극물로 생을 스스로 끝내고 만다. 쇼샤와 한스와의 사랑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병으로 인한 초라한 죽음 대신 위엄있는 죽음을 택하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의 왕의 카리스마로 볼 땐 후자에 가깝지 않겠는가 추측해 본다.

 

이러한 와중에 유럽은 1차세계대전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한스는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소년병들과 함께 죽음의 전쟁터에 투입된다. 빗 속의 진흙탕속에 포탄이 터지고 주위에서 아우성과 비명소리, 피튀기는 전장에서 그는 유령처럼 넋이 나간 사람처럼, 초점잃은 눈으로 슈베르트트의 <보리수>노래를 부르며 죽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 총 7장의 <마의 산>의 전반부 1~5장은 다소 평이하여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나 하고 느꼈었다. 그러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토마스 만의 해박함이 드러나며 그의 문장들은 빛나기 시작한다. 특히 6장에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와의 설전은, 내가 이해하지 못할 철학적 논쟁들로 이어진다.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느끼는 바는 있어 한 사람의 사상의 전제 즉 기초가 어떠한가에 따라 세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얼마나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정말 놓쳐서는 안될 두 장면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마력적인 묘사...이 소설 <마의 산>의 백미가 되는 눈 장면. 알프스의 깊은 산 속에 자연은 위대한 침묵을 들려준다. 대자연 앞에 경건함. 폭설이 쏟아지고, 말 그대로 주위는 온통 하얗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밝음 속에 압도되는 하잘 것 없는 존재. 폭설속에 정신을 잃고 꾼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 행복한 청년들과 아가씨들. 그의 몽환적인 꿈은 나의 꿈인 듯 느껴진다. 그가 그 꿈들로 깨달았던 깨달음을 망각했듯이 나도 그것을 망각한다.

 

이 소설의 결말부, 한스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에 투입된다. 한스의 모습은 유령처럼 보인다. 한스의 모습은 그 당시 세계의 모습이었으리라.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이 허공을 떠도는 유령처럼 한스는 진흙탕을 철벅거리며, 쓰러진 소년병의 몸을 밟으며 빗속을 나아간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듯, 그의 눈은 허공을 향해 부유하고 있다. 눈의 묘사에 뒤지지 표현. 알 수 없는 깨달음, 아니 깨달음을 얻었을 것 같은. 비참함과 아우성 속의 명상, 무, 허탈, 허무. 한스의 운명에 대한 애달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아스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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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지음/ 한상숙옮김/ 삼성출판사

 

도서 반납을 연체하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책을 빌릴 수가 없어, 우리 딸애가 읽는 어린이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올리버 트위스트>인데...

 

이전에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읽을 때 그의 글의 매력을 느꼈었다. 그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독자의 관심을 붙잡는 힘이 있다.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 비밀이 풀릴 것인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는 내내 나를 붙잡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젊은 여인이 한 아이를 낳고 곧 죽게 된다. 이 아이가 올리버 트위스트이다. 이 아이는 고아원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다 런던으로 도망친다. 그리고는 페긴이라는 악당과 함께 생활한다. 하지만 정직한 올리버는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한편 멍크스는 올리버를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이 와중에 올리버는 죽을 위험에도 처하게도 되지만 친절한 브라운로와 로즈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단서가 등장한다. 브라운로의 집에 걸려 있는 초상화의 여자가 너무나 올리버와 닮은 것이었다.

 

혹 브라운로와 올리버사이에는 숨겨진 뭔가가 있는걸까? 멍크스는 왜 올리버를 범죄자로 만들려고 할까? 그리고 올리버를 도와주는 브라운로와 로즈는 어떤 사람들인가? 이야기는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로 좁혀들어간다. 올리버는 누구인가? 빈민구제원에서 올리버를 낳으면서 죽어갔던 그 여인은 누구인가? 과연 올리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독자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단숨에 이 책을 읽어 나갈 것이다. 단, 마지막 부분을 미리 보는 것은 반칙!

 

찰스 디킨스는 그의 시대상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있다. 빈민층의 비참한 생활, 반면에 부유한 사람들의 유복한 생활등이 비교된다. 우리 시대는 디킨스의 시대와는 다르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 빈부의 격차는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디킨스 시대와 다름없는 상황들이 존재하며, 심지어는 그 보다 더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 존재해 왔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스러운 마음이 정화되지 않는 한 그러한 나쁜 상황은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그러한 세계가 바뀌기를 바라겠지만...

 

인류에게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일까? 그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전히 그 희망은 유효한 것이라 믿어도 될까? 나는 그러한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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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 맨의 죽음  (0) 2014.01.03

진형준 지음/ 살림 출판사

 

프리메이슨! 세계 정복을 꿈꾸는 무서운 비밀결사단체! 세계를 뒤흔든 여러 세기적 사건들의 숨겨진 배후, 이른바 음모론의 중심에 프리메이슨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프리메이슨의 정체는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부터 프리메이슨이 시작되었을까? 그들의 비밀의식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들을 둘러싼 음모론은 사실일까? 그들은 왜 음모론의 희생자가 되었을까?

 

프리메이슨이란 말은 중세유럽의 석공 길드인 Free Stone Mason 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거의 3000년 전 지어진 솔로몬의 성전 건축 책임자인 티레 사람 히람에까지 이른다. 그가 죽임을 당했다가 다시 살아난 전설은 프리메이슨의 통과의식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프리메이슨은 ‘서구 신비주의 전통을 바탕으로 모든 종교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종교를 추구하며, 형제애를 강조하는 정신 또는 그 모임’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그 프리메이슨의 기본정신은 약 2500년전에 피타고라스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유래하였다.  기원전 6세기 크로톤에서 정치 개혁을 단행한 피타고라스학파는 엄격히 계급을 구분하였고 회원 간의 형제애와 비밀 체험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프리메이슨의 기본 정신과 통하는 부분이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신비적 전통을 이어받은 프리메이슨은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와, 사상적으로는 이성에 근거한 합리주의와 대립하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프리메이슨은 서구 유렵 주류의 관용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그 관용이 사라질 때면 템플기사단처럼 쫓기는 사냥감이 되고 말았다.

 

낭만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프리메이슨은 기지개를 편다. 자유분방한 정신, 주관적 체험, 감정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는 프리메이슨의 신비적 전통과 닮아있다. 낭만주의의 대가인 괴테도 프리메이슨에 이끌렸다. 프랑스 대혁명의 지도자인 당통도 프리메이슨의 일원이었으며, 많은 프리메이슨이 그와 함께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대혁명은 프리메이슨의 작품이라 주장하는 음모론은 거기에서 유래한다. 

 

근대 프리메이슨은 1717년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영국을 거쳐 미국에 이르른다. 벤저민 프랭클린, 조지 와싱턴을 비롯한 많은 미국의 대통령 및 셀 수 없이 많은 유명인사들이 프리메이슨이었다. 미국은 프리메이슨이 설립한 나라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음모론은 어떻게 된 일일까?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몇몇 추문들은 좋지 못한 소문을 증폭시켜, 사악한 집단 심지어 악마숭배 집단의 이미지를 갖게 했다. 또한 현대 세계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실세들이 프리메이슨이라는 것을 근거로, 프리메이슨이 세계를 움직이는 커다란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음모론은 몇가지 단서를 기초로 구성된 상상력의 소산인 듯하다. 오늘날의 프리메이슨은 더 이상 숨겨진 조직이 아니라 공개되어 있는 조직이다. 오히려 프리메이슨은 역음모론의 희생자인지도 모른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영원한 프리메이슨
1. 프리메이슨 단의 원조, 피타고라스

2. 프리메이슨은 어떻게 중세 석공들의 조합으로부터 시작되었는가?
히람 아비프의 전설
집을 짓는 것은 우주를 건설하는 것이다
다시 히람의 전설로
템플 기사단과 프리메이슨

3. 프리메이슨의 비밀은 통과제의에 있다
고대의 통과제의
통과제의 의식의 절차, 그리고 변용된 모습들
추락의 모티브 |
시련의 모티브
부활의 모티브

4. 프리메이슨 단의 상징들
프리메이슨의 연장들
프리메이슨 의식의 의미

5. 왜 그들은 비밀 결사단체일 수밖에 없는가?

 

제2부 역사 속의 프리메이슨
1. 프리메이슨의 비밀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2. 고딕 성당과 프리메이슨

3. 낭만주의자들은 프리메이슨 단이었다

4. 역사적 격변기의 프리메이슨
프랑스대혁명을 주도한 프리메이슨
나치는 왜 프리메이슨을 탄압했는가?
유럽에 몰아친 탄압 열풍

5. 프리메이슨이 세운 나라, 미국
미국 독립과 건국, 그리고 프리메이슨
미국의 건국 정신과 프리메이슨

 

제3부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들

1.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범죄들
모차르트의 죽음
윌리엄 모건 사건
살인마 잭 사건

2. 암흑 속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프리메이슨

3. 프리메이슨, 사탄을 숭배하는 악의 무리

4. 역 음모론: 프리메이슨 단은 로마 교황청이 감추고 싶은 비밀을 보호하고 있다

 

에필로그 : 오늘날의 프리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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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lliver's Travels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한상숙 엮음/ 지경사

 

조나단 스위프트가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보다 화나게 하려고 이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 당시 유럽사회 아니 더 나아가 인간세계의 탐욕적인 면들을 풍자적으로 꾸짖고 있다. [걸리버여행기]는 <소인국 이야기> <대인국 이야기> <하늘을 나는 섬나라 이야기> <말의 나라 이야기>등 네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이야기에는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적 비판이 드러나 있다.

 

제1편 소인국 이야기

소인국 나라 '릴리퍼트'왕국은 평화로워 보였으나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아주 사소한 문제들이 그 이면에 깔려 있는데...굽이 높은 구두를 신느냐, 낮은 구도를 신느냐. 또한 달걀을 먹기 위해 껍데기를 깰 때 넓고 둥근 쪽을 깨서 먹어야 하는가 아니면 뽀족한 쪽을 깨어야 하는가 하는 아주 어이없는 문제들 때문에 혼란과 싸움 급기에는 전쟁이 야기되는 상황이 있게 된다.  

 

릴리퍼트에서는 도둑질보다 남을 속이는 것을 더 큰 범죄로 여겼다. 도둑은 조심하고 단속을 잘 하면 막을 수 있지만, 정직한 사람들은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기에 사기를 치는 사람은 언제나 사형에 처했다. 또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형벌을 가했지만,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이에게는 상을 주는 조항도 많이 있었다.

 

소인국 사람들은 남을 채용할 때 능력보다는 정직성을 먼저 보았다. 만약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 그것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하면 큰 비극을 가져 온다는 것을 알았기때문이다. 그들은 훌륭한 인품이야말로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 여겼다.

 

제2편 거인국 이야기

거인국의 왕은 유럽의 무역과 전쟁, 종교의 분열들에 대해 듣고는, 하찮은 벌레같은 사람들이 모여 살며 정치도 하고 무역도 하고 전쟁도 한다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배반한다고 조롱하며 비웃는다. 또한 영국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상원 의원에 선출되는 귀족은 진실로 훌륭한 사람들인가? 왕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은 아닌가? 하원의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월급도 없는데 그렇게 지원자가 많다는 것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큰 돈을 벌 수 있기때문이 아닌가?"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싸움이나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정치적으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키고 추방하다니, 참 더러운 역사가 아닌가!" 라고 말하며 "그대의 조국에 사는 사람들은 벌레들 중에서도 가장 나쁜 벌레들이야. 왜냐하면 그 벌레들은 생각할 줄 아는 머리를 가졌기때문이지." 라고 비판한다.

 

걸리버가 화약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제안에 거인국 왕은 "집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약을 만들어 내고는 잘난 체 하다니! 그대는 그런 약을 만들 줄 안다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야단치기도 한다. 또한 "정치를 하는 데 복잡한 기술은 필요 없다네. 수백권을 책을 읽고 백성들이 자기를 존경하게 하는 방법을 쓰는 사람보다는 곡식 한 포기, 풀 한 포기밖에 자랄 수 없는 땅에 곡식 두 포기, 풀 두 포기가 자랄 수 있게 하는 사람이 훌륭한 정치가라고 생각하네."라고 말하여, 영국이 정치한 책이 수백권이나 되는 문화 민족이며 학문이 발달된 나라라고 자랑하는 걸리버를 부끄럽게 만든다.

 

제3편 하늘을 나는 섬나라 이야기

하늘을 나는 섬은 '라퓨터'라고 불렸다. 이 나라 사람들은 늘 불안에 사로 잡혀 있었다. 대부분 천체의 움직임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 했는데, 예를 들면 언젠가는 태양이 지구를 삼켜 버릴 것이라든지, 태양이 계속해서 빛을 소모한다면 언젠가는 모든 연료를 다 써서 빛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들은 이런 여러가지 걱정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하였다.

 

라퓨타의 사람들은 수학과 음악을 제외한 다른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라퓨타의 수도인 지상의 라가도라는 도시에 내려왔을 때, 걸리버는 누더기 옷을 입은 사람들, 무너질 것같은 오두막집들, 황폐해 보이는 농지들을 보게된다. 라가도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라퓨타에서 수학에 대한 지식을 조금 배워온 이후로 그들은 농사일을 경멸하면서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수많은 연구소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연구소들에서는 황당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열사람 일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든다든지, 1주일에 새 궁전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든지. 심지어 대변을 다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드는 연구를 하기도 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한 현구소에서는 공부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가장 무식한 사람이라도 철학과 시, 정치학, 법률, 수학등에 관한 책을 쓸 수 있는 기계를 연구하고 있었다. 수많은 단어와 문법규칙을 적은 조각들을 다양한 배열로 바꾸어 가며 나타난 문장을 조사하여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이것은 엄청난 자료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의 학문과 과학 체계를 완전하게 만들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러는 동안 나라는 황폐해지고 말았다.

 

제4편 말의 나라 이야기

말의 나라는 휴이넘이라는 고상한 성품을 가진 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 나라에서는 사람과 비슷한 야후라는 동물이 있었다. 이들은 더럽고 야만적인 동물이었다. 인간 세상과 달이 휴이넘에게는 거짓말, 돈, 전쟁은 심지어 그런 단어 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휴이넘들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휴이넘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랑과 우정이었다. 그리고 절약과 근면, 건강과 청결등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휴이넘들의 생활과 생각을 알게된 후 걸리버는 그들을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휴이넘의 세계와는 다른 너무나 다른 자신의 세상, 영국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하지만 결국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 그는 한 동안 야후와 같은 모습을 한 인간들과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

 

여행후기

걸리버는 자신의 여행중에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하여 글을 쓰기로 작정한다. 그는 그가 경험한 일을 토대로 여행기를 쓰고자 결심한다. 이 여행기에 소개되는 소인국, 대인국, 하늘을 나는 섬, 말들의 나라등을 정복하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뿐더러 오히려 그들로 부터 명예와 정의, 진실과 도덕성, 충성과 순결, 우정과 사랑에 대한 정신을 배워 유럽사람들을 개화시키는 것이 더 좋은 생각일 것이라고 말한다. 

 

독후감

우리 딸 아이의 동화책을 읽었다. 우리 딸애도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고 나도 이렇게 글을 썼다. 그런데 딸애가 보는 시선과 내가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른다. 나의 딸 아이는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읽는 기쁨에 이 책을 읽었다면, 오히려 나는 좀 더 어른의 시선으로 조나단 스위프트가 본 인간세계의 모순등에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스위프트의 예술, 과학, 수학, 학문등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아마 그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학문에 대한 비판이라 받아들이고 싶다. 혹자는 철학은 흥미로우며 인간 사회를 올바로 형성해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이상학적인 철학의 세계는 비실용적인 면이 없지 않다. 라퓨타의 연구소에서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완전한 학문과 과학체계를 완성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 당시 베이컨의 귀납적 방식, 온갖 종류의 실험적 사실들의 방대한 수집은 과학을 완전하게 만들어 가는 기초가 될 것이라는 사상을 겨냥한 것일까?아니면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인 기계론적인 세계에 대해 풍자일까? 순수 이성에만 기초를 둔 철학은 때로는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순수 이성으로 세계에 대한 진리에 이를 수 있을까? 만일 진리에 이르렀더라도 그것이 진리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수많은 사상들이 등장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회귀적인 상황이 끝없이 연출되는데, 그 어느 것이 절대 진리임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 있어서 현대 물리학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의 물리학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 수학적, 철학적 논의로 점점 빠져든다. 초끈이론은 아름다운 수학이론이지만 실증을 요구하는 과학의 범주에 넣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또한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나 양자론에 기반을 둔 다중 우주, 평행우주의 개념들도 그러한다. 또한 우주의 4%만을 파악할 뿐 나머지 96%는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단지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로 부르는, 우리에게 알려지 있지 않은 미지의 것으로 가득찬 우주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고 논쟁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너무 오만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우주의 기원이나 역사, 그리고 그 구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큰 경이로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천한 지식을 근거로 독단적인 우주론을 주장하거나, 자신들의 이론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는 우주를 존재하게 한 '신은 없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수가 아닐까?

 

학문에 대한 스위프트의 비판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반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도 있다. 쓸데 없는 것 같은 연구들이 실용성을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때문이다.  20세기 초 유명한 영국의 수학자 하디는<어느 수학자의 변명>이란 책에서 자신이 연구하는 수학의 순수성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즉 비실용적인 수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데서 크나큰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수학자들 자신도 소수 연구를 비롯한 정수론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순수수학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연구들이 실용적인 기술과 접목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소수의 연구와 컴퓨터 암호화기술의 상관관계. 리만가설의 소립자세계와 연관성. 유명한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는 이를 두고 '수학의 비합리적 효용성'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본다면 적어도 수학에 대한 스위프트의 비판은 빗나간 화살인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아이들이 즐겨읽는 동화이지만 그 속에 풍자된 것은 깊이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많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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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 맨의 죽음    아서 밀러 지음 / 강유나 옮김 / 민음사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떨고 있는 비극적 상황 속의 현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배경은 미국, 대공황이 발생한 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윌리 로먼, 60세에 달한 그는 근 30년간을 한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일해 왔다. 대공황전에는 세일즈로 다소 풍족한 생활을 영위했지만, 대공황이 발생하고 그의 나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그의 일은 점점 힘들어 진다. 결국 그는 사장 하워드를 찾아가 내근을 할 수 있도록 조처해 달라고 평생 처음 부탁을 하게 되나, 매몰찬 거절과 아울러 해고 통보를 받게 되자 절망에 빠진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다. 그의 친구 찰스가 그의 회사에서 일을 하도록 제안하지만 그를 거절한다. 항상 그는 찰스에 대한 우월감을 가져왔었는데, 이제서야 그의 밑에서 일을 하다니, 그의 자존심이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그의 자동차를 몰고 과속으로 달리다 사고를 낸다. 자살!

 

그의 큰 아들 비프 로먼은 항상 아버지의 기대속에 칭찬을 받고 자라난다. 우수한 미식축구 선수로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수학과목에서 F를 받고 졸업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되면서, 그의 인생은 구겨지기 시작한다. 그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남의 지시를 들으며 일을 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은 아들 해피 로먼은 모든 관심을 형에게 빼앗겨 버리고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에서 소외된 채 성장한다. 이로 인해 그는 받지 못한 사랑을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보충하려 한다. 또한 그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경향도 지니게 된다.

 

비프는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절망에 압도되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아버지와의 대립각을 세운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는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게 된다. 참으로 비참한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그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는 그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거친 논쟁중에 '우리 집 식탁에서는 단 한마디의 진실도 없었다'고 소리친다. 아버지의 기대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그만 하라고 외친 것이다. 그리고는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쏟는다.

 

윌리는 아들의 눈물은 윌리 자신을 사랑하는 증거라 생각하고, 비프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남기기로 작정한다. 그가 죽고 나면 받게 될 보험금으로 비프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를 몰고 돌진한다. 쾅!

 

아서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 자식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부성애, 버릴 수 없는 알량한 자존심, 열등감, 경멸스러운 속물 근성... 

 

윌리는 물질주의 사회의 희생자임에 틀림없다. 그를 형성한 그리고 그의 삶을 관통하는 원리는 그 당시 팽배해 있던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이었다. 물질적인 성공만을 진정 가치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풍조는 거대한 해일과 같아서 한 평범한 소시민이 그 것에 맞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는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 피해자는 자기 자신과 그의 가족들이었다. 그 경멸스러운 풍조를 저항할 정신적 힘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잘못이었다.

 

<어느 세일즈 맨의 죽음>은 인간 존재가 얼마나 연약한 가련한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이 시대의 조류에 휘둘리는 소시민이 겪어야 할 결말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도 보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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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민음사

 

1968년 체코슬로바카아의 수도 프라하의 봄은 두브체크의 개혁정책으로 또 다른 봄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곧 뒤이은 소련의 침공은 모든 것을 무산시키고, 철저한 통제사회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유명한 외과 의사이며 바람둥이인 토마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그의 아내 테레사. 사비나는 토마스의 숨겨놓은 여자 친구? 그녀는 화가이다. 그녀는 토마스와 헤어진 후 대학 교수인 프란츠를 만난다. 테레사의 애완견 카레닌도 꽤 비중을 차지한다. 이 여러 등장 인물 사이의 사랑과 갈등이 이 소설의 뼈대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좀 당황스럽다. 이 소설의 첫부분은 니체의 무한회귀 사상과 그에 따른 존재의 무게가 가벼우니, 무거우니 하는 일견 쓸 데 없는 또 다른 한편으론 뭔가 심오한 논의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치고는 좀 생뚱맞다고 해야 할까? 이어지는 토마스와 테레사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토마스와 사비나와의 만남은 좀 소설답다. 하지만 이 소설적 진행에도 난해함이 숨어있다. 수시로 끼어드는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궁금하다. 또한 일종의 영화 기법과도 같이, 같은 상황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구성은 흥미로우면서도 어떤 의도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텐데...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의 삼각관계의 이야기는 더는 토마스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것은 테레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사비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동일한 이야기이지만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한 상황에 대한 합리적 이해는 종합적이어야 하며 단편적이어서는 안된다는 뜻일까? 또는 그 순간의 상황은 어떤 연속적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한 상황에 대한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느낌이 교차한다. 심오한, 비정상적인, 난삽한, 어지러운, 더러운, 놀라운 느낌들 그리고 가벼움과 무거움, 정조과 배신, 사랑과 정사, 영혼과 육체, 신과 똥, 존경과 경멸 등 수많은 대립적 생각의 편린이 스쳐간다. 쿤데라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여러 요소들을 대비시키면서 그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려고 내내 힘겨운 투쟁을 시도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때론 번뜩이는 섬광처럼 범인들을 놀라게 하는 경구들로 나타난다. 쿤데라의 놀라운 이성의 편린들!

 

토마스는 프라하의 봄이 짓밟히던 당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나쁘다고 인식하지 못한 채 정권의 명령을 받아 또는 자의적으로 타인을 해치는 일을 자행한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쓴다. 즉 '모르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을 벌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논하면서 오이디푸스를 언급한다. 오이디푸스는 모르고 행한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자신의 눈을 뽑아버린 신화속의 인물이다. 후에 소련 공산 당국으로 부터 그 기사를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토마스는 이를 거부하는데, 그 거부하는 이유도 모호하다. 타협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경멸적인 눈길이 무서워 그랬는지, 아니면 압박을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알량한 자존심의 발로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마음도 명분도 없었기 때문인지...아리송하다. 그의 결정은 여러 가능성 중에 선택된 하나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뭉뚱거려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어쨌건 이 거부로 인해 외과 의사로서의 그의 경력이 끝나게 된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고, 비천하게 보이는 유리창 닦는 일을 하게 된다. 그가 얻은 것은 체코의 시민들로 부터의 존경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면으로는 존경을 받을 만 할 지 모르지만 도덕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의 여전히 바람둥이 기질은 그칠 줄 모르고, 그는 도덕적으로는 경멸을 받을 만한 행동을 지지르기 때문이다. 그는 존경과 경멸이라는 양 극단이 서로 마주치는 교차점에 위치해 있는 존재이다.  

 

그는 한 기자로 부터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선언문에 서명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그 선언문으로 인해 정치범들이 석방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자는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이야기하며 그를 촉구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그래야만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그래야만 한다'는 외부의 도덕적 의무 또는 명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구속받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스탈린의 아들과 똥, 똥과 신학, 똥은 더러운 것인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인간의 똥이 더러운 것이라면 신도 이미 더러운 것이 아닐까? 만일 신이 거룩하다면 똥도 역시 더러운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논리는 한편 어이가 없으면서도 흥미롭기도 하다. 거룩함과 혐오스러운 것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려는 또 하나의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쿤데라는 때로는 신과 성서의 대척점에 서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 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펴나가기도 한다. 이것 역시 무경계 개념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리라.

 

두 극단의 마주침이 발생시키는 현기증, 신과 똥의 조화, 가벼움과 무거움의 혼란, 경계가 모호한 개념들, 무수한 개념들 사이의 혼란. 그의 주제인 가벼움과 무거움에 기본적인 혼란이 숨어 있다. 무게가 없는 추상적인 것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논한다는 자체가 모호하다. 그 뿐아니라 어떤 것이 중요성에 있어 가볍다고 해야 할 지, 어떤 것이 더 무거운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지 판단도 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이 원운동처럼 회귀성을 가지고 영원속에 무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라면 그것은 무거운 것일까? 가벼운 것일까?  그와는 다른 직선적인 역사관으로 볼 때, 그 직선적인 역사에서 단 한번 발생하는 일회성의 역사적 사건은 무거운 것일까? 가벼운 것일까? 단 일회만 발생하는 일이기때문에 그것은 소중하다는 면에 있어 무거운 것이라 할 수 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겁의 세월 속의 일점으로 그냥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라고도 생각한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무한 반복되는 사건은 존재의 확실성으로 무거운 것이겠지만, 무한 반복이 의미하는 희귀성의 부재로 본다면 가벼운 것일텐데...

 

아마 쿤데라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혼란상이 아닐까? 세계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란,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키치란 본질적으로 동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에서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사비나는 공산주의가 뒤집어 스고 있는 아름다움의 가면, 달리 말하자면 공산주의라는 키치를 혐호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도 키치는 존재한다. "키치는 백발배궁 두 방울의 감동적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첫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 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 아이를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다워지는 것은 오로지 이 두번재 눈물에 의해서이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환상이며 키치로 인해 아름다워 보일 뿐인 그런 존재?... 위선이랄까? 세계는 뒤죽 박죽이며 때로는 우리의 이해가 옳을 수도 그럴 수도 있는 그런 세계라는 것? 쿤데라는 두 극단의 마주침 속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는 가벼운 것이 좋은 것인지,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인지 판단을 내릴 입장에 있지 않다. 그가 가벼운 것을 긍정적으로 무거운 것을 부정적으로 보더라도 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벼운 것은 무한대 속의 한 점처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세상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쿤데라는 존재의 의미는 비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다. 그것을 그는 참을 수 없는게다. 이 책은 또 다시 읽고 싶은 마음 반, 몸과 정신을 황폐시키는 책마냥 그냥 버리고 싶은 마음 반.... 묘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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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환 지음/ 삼성출판사

 

이성계는 독로강 만호 박의의 반란을 진압한다. 박의의 기구한 사연은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박의는 원래 종이었지만 여진족에게 사로잡혔던 부녀자들을 구해내지만 집 주인 박좌수의 딸 현아와의 연분으로 관청에서 매질을 당한다. 다행이 그의 공이 밝혀지는 바람에 면천되고 말단 무관의 벼슬을 제수받게 된다. 현아의 도움으로 글을 깨치고 병법을 익혀 훌륭한 장수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를 질시한 사람들의 모함을 받아 반역의 죄를 뒤집어 쓰게 되고 결국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후 이성계는 변방에서 오랑캐와 왜구를 막아내며 장수로써의 경력을 쌓아 나간다. 중앙의 정계에서는 무고로 홍건적 격퇴에 공이 있는 장수들의 목이 달아나고, 요승 신돈으로 인해 정국이 어지럽지만, 이성계는 동북면 변방에서 그 풍파를 비켜나간다.

 

하지만 그에게도 위기가 닥쳐온다. 그의 사촌 이천계의 무고로 반역자로 목이 달아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최영과 경천홍의 도움으로 간신히 누명을 벗게 되지만 사랑하던 금란화는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금란화는 여진족 나하추의 여동생이었다. 이성계는 여진족의 세력을 규합하여 역적질을 도모하고 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이를 안 금란화는 이성계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떠나버렸던 것이었다.

 

바다에서 왜구가 출몰하고, 북쪽에선 오랑캐가 침범하고, 이성계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여기 저기 출정하여 적들을 물리친다. 그는 수많은 전쟁에서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서, 그리고 현실을 도외시하며 말만 앞서는 중앙 정치를 보고서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중 그는 첩 지화의 '용기는 일생에 꼭 한 번 내는 것이다'란 말을 듣고 마음에 간직한다.  

 

동북의 전장터에서 호발도와의 전투후 이성계는 또 다시 무고를 당한다. 동북에서 노략질을 하다 이성계에게 혼이 난 무리들이 임금앞에서 이성계를 모함하는 것이다. 이들의 모략에 최영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다행히 이 사건은 무마된다. 이 일을 알게 된 이성계는 자신을 해칠는 무리들에게 언젠가 복수하리라 다짐한다.

 

고려왕의 칭신과 세공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는 사사건건 고려의 굴복을 요구하며 마구 밟으려 들었다. 이에 고려는 최영의 주도로 요동정벌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성계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 생각한다. 결국 요동정벌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떠난 이성계와 조민수는 결국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을 최영을 실각시키고 권력을 잡는다. 하지만 곧 조민수는 권력에서 쫓겨나고 모든 권한은 이성계에게로 쏠린다. 최영은 이성계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난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에서 그런 것들을 돌볼 만한 여유가 없었다. 정의에 불타는 이성계였지만 권력 앞에서는 정의도 불의도 없었다. 다만 권력의 쟁취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성계의 세력은 고려의 왕들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커지게 되었다. 왕을 물러나게도 하고, 새로운 왕을 등극시키기도 하며, 고려의 왕은 이성계의 꼭두각시에 불과하였다. 결국 이성계의 줄에 서 있는 젊은 관리들은 공양왕을 밀어내고 이성계으로 추대한다. 이 때 이성계의 나이 오십팔세! 이후 새로운 나라의 길을 도모하기 위해 도읍을 개경에서 계룡산으로 옮기기로 하지만 풍수학의 대가인 하륜의 주장대로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처음으로 완성된 경복궁, 이미 이성계의 첫째부인 한씨는 죽었고, 이후 얻은 지화라는 둘째부인이 현비가 된다.

 

현비는 추운 한 겨울에 도성공사를 하는 비참하고 불쌍한 백성들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성계가 왕이 되는 과정에 수많은 무죄한 사람의 피가 뿌려진 것에 대해서도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전장을 돌아다닐 때는 불쌍한 백성들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이성계가 왕이 된 후 그러한 마음이 없어진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성계도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권력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랫사람들이 그의 권세를 믿고, 그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 어찌할 수 없다고... 이러한 고뇌로 죽을 병에 걸린 현비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현비가 죽고 이성계는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며 최영에 대한 회한에 젖는다. 아버지와 같았던 최영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을 뉘우치며 그를 복위시킨다. 최영은 무민공으로 불리게 된다.

 

태조 이성계가 늙어 병으로 위중할 때 그의 세째 아들 방원이는 이숙번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세자인 현비의 둘째 아들 방석을 지지하는 남은과 정도전등을 제거한 방원일당은 결국 현비의 자식들인 방번과 방석을 모두 죽인다. 그리고 한씨부인의 아들들인 방과, 방의, 방간, 방원등은 방과를 세자로 내세운다. 그런 다음 늙은 태조를 상왕으로 물러 앉히고 방과가 왕이 된다.

 

타의에 의하여 왕에서 물러난 태조 이성계, 한 때는 세상을 호령했던 그는 아들들의 반란에 속수무책, 형제들이 살육을 보면서 진노하지만 권력은 그의 손에서 떠나 버렸다. 스산한 개경으로 물러난 이성계는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며 이 모든 것의 업보였음을 생각한다. 지난 날의 그로 인해 빚어졌던 수많은 희생들에 뒤 늦은 후회의 감정이 밀려들지만 지나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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