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지음

 

정유정씨의 작품 <7년의 밤>을 읽을 때 말 그대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네 심장을 쏴라>를 읽었으며,

오늘은 최근의 <28>을 읽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손을 뗄 수도, 눈을 뗄 수도 없는 굉장한 흡인력을 가진 소설이다.

 

사상 유래가 없는 전염병으로 고립도시가 된 화양, 그 도시는 철저히 버림을 받은 도시가 되었다. 이 와중에 복수를 꿈꾸는 미치광이 박동하, 그 박동하를 미치광이로 기른 그 부모, 또 하나의 복수를 꿈꾸는 야수가 있으니, 링고...

지난 날의 자신의 쉬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서재형은 그 끔찍한 악몽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죄없는 사람들이 생존의 기로에서 무참히 버림을 받는 지옥의 아가리...그 아비규환 속에서 드러나는 동물과 같은 인간성들...

먹먹한 느낌... 말로 할 수 없는 참담한 느낌은 애써 글을 멈추게 한다. 

움베르토 에코 장편소설/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은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를 읽기전에는 알지 못했었다. 그 이후에야 뉴욕타임즈지가 추천한 100권의 책 중에도 <장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단한 철학적 논의가 들어있다는 점과 아울러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작품이란 것은 한층 더 흥미를 끄는 것이었다.. 

 

중세시대 1300년대 한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이 차례대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으로는 이 사건을 의뢰받은 수도승 윌리엄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론 그 당시 중세 세계의 모습이 그려진다. 교리논쟁, 이단논쟁, 마녀재판, 그리고 황제 루트비히와 교황 요한22세의 대립, 청빈교리에 대한 프란체스코회와 베네딕트회 및 교황측의 대립의 모습을 통해 중세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종교 권력의 어두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윌리엄,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을 지키려는 호르헤, 이 둘 사이의 치열한 철학적 논쟁. 독자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진리의 가치는 뭇 생명을 초월한 것이라 생각하는 호르헤, 그리고 그 어느 진리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윌리엄. 호르헤는 독단적 교조주의에 빠져 비합리적인 광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윌리엄은 합리주의적 사고, 철학적인 태도를 보인다. 움베르토 에코는 광신적 종교 행위의 불합리성을 드러내며 그 자신 윌리엄으로 대표되는 합리성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나의 종교적 신념이나 믿음은 윌리엄과 호르헤 사이의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호르헤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강한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으며, 윌리엄은 절대진리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윌리엄은 이단 심판관으로 여러 이단 사건을 처리하던 중 어느 것이 이단이며 어느 것이 정통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함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이단 논쟁 및 종교 재판등은 진리를 옹호하는 최전선이 아니라 일종의 권력과 관련된 싸움임을 깨닫는다. 프란체스코회의 청빈교리를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교황청의 의도는 무엇인가? 진리를 옹호하려는 순수한 마음이라기 보다는 당시 교회가 장악하고 있던 재산, 권력등을 보호하려는 은밀한 욕망이 그 동기임을 윌리엄은 알아채게 된다. 청빈교리를 인정하는 순간 교회는 모든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호르헤의 자세는 교황청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종교의 근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웃음은 종교를 훼손하는 사악한 것이라 생각한 호르헤는 수도승들이 웃음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표명한 아리스토텔레스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수도승들의 손으로 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려는 계책을 꾸미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게 되는데...

 

윌리엄의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방법론은 좀 낯선 철학으로 표명된다. 즉 오류를 통해 진리에 접근한다는 그의 말에 그 방법론의 철학이 드러난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오류는 불필요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진실에 다가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진리만이 아니라 거짓도 필요하다는 이율배반적인 논리가 거기에 들어있다.

 

또한 진실, 또는 진리가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시된다.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마적 모습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과연 그 진리는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인가? 진리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불행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리인가? 

 

과연 진리란 무엇인가? 그 실체가 있는 것인가? 호르헤 노수도사가 진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진리인가? 웃음에 대한 그의 판단은 진리인가? 아니면 이단적인 생각인가? 때로는 명확히 밝혀진 계시가 없어 그 진위를 판단하는 것을 유보하는 것이 옳을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계속 주장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올바른 태도인가?

 

윌리엄 수도사는 진실에 접근했으나,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그리고 올바른 경로를 통해 결론에 이른 것도 아니었다. 그의 추리에는 적지 않은 오류들이 있었으며, 결정적 실마리는 합리적인 추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며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오류는 진리로 인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윌리엄 수도사의 말은 개연성이 희박하다. 진실에 접근하는 무한한 경로가 있음을 생각할 때 그의 생각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되어 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진실에 도달하는 건실한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오류에 접어든 추리를 진실의 방향으로 물줄기를 바꾸어 주는 것은 오류일 수가 없다. 오류 더하기 오류는 진실이 될 수 있을까? 2+3+5 라는 계산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2+3 =5 라는 진실의 과정과 5+5=10이라는 진실의 과정이 연이어져야만 한다. 2+3=6 이라는 오류와 6+5+10 이라는 두가지 오류가 합해져서 정답에 이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진리에 이르는 올바른 경로가 아니다. 오류 더하기 오류는 더 큰 오류도 이어진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단 오류를 포함할 수도 있는 여러가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의 합리성 및 진실성을 시험하여 오류가 포함된 가설들을 버리는 과정을 통해 올바른 가설을 찾아낸다는 것은 합리적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 방법도 이러한 과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합리적 방법은 철학이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방법과 상응한다. 하지만 과학이 그렇듯이 철학은 결코 절대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단지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에 무한히 접근할 뿐이다. 수많은 철학들이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 철학은 뒤이은 철학에 의해 비판받고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철학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렇다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이러한 철학적 방법을 수용해야 하는 것일까? 계시의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철학적 방법이야 말로 단 한가지의 합리적 방법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은 윌리엄수도사와 호르헤 노수도사의 설전에서 보여지듯이 서로의 지적 우위를 증명하고자 하는 논쟁에 불과한 것은 아닐런지... 진리에의 탐구는 희미해 지고, 고도의 지적 유희, 또는 지적 우위를 돋보이게 하려는 투쟁의 장은 아닐런지....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철학은 지적능력이 뛰어난 할 일없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지적 유희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진리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본다. 진리란 사실들, 거짓이 아닌 진실인 것들의 집합이라고 정의를 내려야 할까? 이렇게 정의된 진리가 인간의 생명 및 행복에 디딤돌이 아니라 거침돌이 된다면, 이런 경우에도 그것을 진리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진리란 참이거나 거짓이거나에 상관이 없이 인류의 생명과 행복에 기여하는 모든 것들의 집합을 말하는 것일까? 이 후자의 견해는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이란 책에서 언급한 바가 있기는 하다만... 이 또한 진리의 정의로서는 부족하지 않은가?

 

역사는 진리인가? 역사는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가가 선택한 과거의 사실이라는 정의로 판단해 볼 때, 진실에 근접하기는 하나 그 선택된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의 머리에서 구성된 흐름상에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 절대적 진리성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저서를 남긴 E.H 카아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정의에 의하면 그 과거의 사실들은 시시각각 변화는 현재의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대적 사실이라는 면에서 그 역사의 진리성 역시 훼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백과사전식의 발생한 모든 사건들의 집합이라는 역사에 대한 정의는 어떠한가? 애초에 그러한 역사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역사관을 실제로 구현해 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면 진리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가?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자신의 진리를 옹호하려는 자, 권력을 추구하는 자, 지식을 탐하는 자, 다양한 대상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엮어내는 세상의 모습을 <장미의 이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3  -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유홍준 지음/ 창작과 비평사


 

답사기 3권에서는 어떤 문화유산을 볼 수 있을까?


서산 마애불의 잔잔한 미소

저물 무렵이 아름다운 섬진강을 끼고 있는 구례 연곡사

양반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북부 경북의 의성, 안동, 풍산, 하회,예안, 도산서원, 임하,

이루어 지지 않은 왕도의 꿈을 지닌 익산미륵사터

수난의 경주 불국사

서울, 공주, 부여에 남아 있는 슬픈 백제의 회상

 

예전에 하회마을의 화산 너머에 있는 병산서원에 갔더랬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느껴지는 여행이었다. 병산서원에서 만루대를 통해 보이는, 병산 절벽 앞을 흐르는 강과 드넗은 모래사장의 풍경은, 병풍에 걸린 산수화같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서 병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 다음 기회가 된다면 나의 발과 다리에 수고로움을 끼쳐야겠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 배를 타고 부산항에 들어서면 눈 앞에 확 들어 오는 산, 그 산의 모습이 가마처럼 보인다고 가마부를 사용하여 부산이라 불렀단다.  내가 살았던 망미,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옛적에 유배지에서 임금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던 곳이란다. 지명에는 그 역사가 숨쉰다. 공주. 공주의 옛 이름은 곰나루, 고마나루라고 불렸다. 이 곳에 곰 설화가 곰 나루 전설로 전해지고 있단다. 이 고마나루는 한자로 웅진,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웅주라 하여 혹은 곰주라고 불렸는데, 이를 한자식으로 바꾸면서 곰주가 공주로 고쳐졌다고 한다.

 

공주의 주요 답사처는 송산리 고분군에 있는 무녕왕릉이다. 왕릉의 주인이 확실한 기록과 물건으로 알려진 것은 무령왕릉이 처음이었다. 이런 점에서 무녕왕릉은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또한 그 가운데 출토된 유물들은 백제의 '검이물루 화이불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준다. 이 무녕왕릉도 방문해 본 장소이다. 하지만 돌이켜 본건데 큰 감명을 받지 못한 것은 사전 공부가 없었던 탓이라.

 

아름다움이란 감각적으로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가운데 숨어있는 비례, 조화등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감각적으로 느끼는 감성적 아름다움은 첫인상의 아름다움이라 한다면, 인식되는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발견하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 바 그 안목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부대끼고 부딪혀가며 정이 들 듯 안목도 그렇게 세월의 흔적들이 아닐런가? 하지만 세월의 안내로 조화로움을 인식하게 된다면 초심자에게는 아름다움의 인식은 언감생심이겠지. 여기에 뛰어난 안목을 가진 누군가의 친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세월을 아낄 수도 있지 않을까? 

 

유홍준씨는 초심자가 부여를 답사하는 것을 말리고 있다. 초심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때문이다. 백제의 모습이. 백제의 모습은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가 아니라, 없는 것과의 대화라고나 할까? 망국의 한이랄까 백제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나라이다. 통일신라의 경주, 고려의 평양, 조선의 한양등은 수도로서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건만,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 부여등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지역으로 남아있었으며 문화유산초차 태부족인데, 그 무엇을 보고 그 무엇과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가람 이병기, 육당 최남선등은 부여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던 것일까? 부여의 자연경관과 그 남아 있는 정림사 5층석탑의 아련한 모습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백제의 옛 수도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 대단한 감수성과 안목이다.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은 이렇듯 부여의 회상으로 끝을 맺는다.

유홍준씨의 백제의 문화유산에 대한 느낌은 '검이불루 화이불치' '소중현대' 이 두마디로 압축되어 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으며,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작은 것 가운데 큰 것이 들어 있다'

그는 백제 부여편을 통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경지를 벗어나 보이지 않아도 보는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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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미학 오디세이>

트로이 전쟁이 끝난후 오디세이는 신의 저주에 이끌려 이리 저리 방황한다. 고향으로 향하는 그의 귀환은 머나 먼 험란한 길이었다.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오디세이의 여행처럼 다사다난한 험로이다. 하지만 진중권씨의 <미학오디세이>는 미학이라는 셰계를 돌아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은 원시시대로 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 즉 미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은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즉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 <미학>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원시예술 - 가상과 현실

 

구석기 시대의 인간들은 추상적 개념적 사유가 발달하지 않아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정신능력이 발달하면서 기하학적 양식의 회화를 발전시키게 된다. 이 두가지 양식 자연주의적 양식과 기하학적 양식은 오랫동안 대립해 가며 미술사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고대 예술과 미학 - 가상의 탄생

 

이집트인들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현실의 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을 그려내는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러한 예술은 시각적 추상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자연주의적 양식이 아니라 기하학적 양식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스 예술도 이집트 예술의 영향으로 딱딱한 기하학적 양식에서 출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격한 비례를 중시하는 양식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함으로 정신과 물질의 행복한 조화를 추구하게 된다. 수학적 엄격함은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여기에 약간의 빗나감을 덧붙임으로 차가운 느낌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었다. 이 시기가 그리스 예술의 완성시기라 할 수 있으며, 본질보다는 보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던 예술 양식의 시기이다. 본질인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의 모방인 현실 즉 가상적 세계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실을 가상으로 생각하는 플라톤의 난해함이란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이 시기의 그리스 걸작품들은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으로 특징지워진다. 이후의 로마예술은 모방의 시대로 찬란한 그리스 예술이 종말을 고하게 된다. 

 

 

중세 예술과 미학 - 가상을 넘어서

 

그리스 예술이 보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면, 플라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기하학적 단순함과 수학적 비례의 모습이었다.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의 '실제로 아름다운 것'과 그 이데아의 그림자인 현실세계의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플라톤의 예술론은 신플라톤주의를 이끌었던 플로티노스에 의해 이어진다. 그리고 중세시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로티노스의 미학을 받아들인다. 그 결과 중세 예술은 플라톤의 미학- 본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그 골격을 이루게 된다.  

 

플로티누스 예술론은 비잔틴 에술에서 완전한 실현을 보게된다. 물질세계의 재현 대신에 인간의 '영혼'과 초월적인 '신성함'을 표현하려 했던 정신이 비잔틴 예술을 포함한 중세 예술에 잘 나타난다. 중세 회화는 눈에 보이는 외부세계의 재현을 포기하고 정신세계, 영적인 세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 그런 까닭에 '기하학적인 단순한 형태와 밝은 빛과 화려한 색채가 중세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하지만 13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고딕 예술은 자연주의적 경향을 띠기 시작한다. 이 때는 아우구스티누스보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이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이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현실과 경험을 중요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현실세계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 그래서 신이 지은 현실 세계를 묘사하는 것은 창조의 아름다움을 파악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대 예술과 미학 - 가상의 부활

 

근대 예술은 르네상스로 부터 시작된다. 르네상스의 두 거장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서로 대립적인 미적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다빈치는 최초의 근대과학자로 알려질 정도로 과학적 관찰과 실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때문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주의와 신비주의에 몰두해 있었다. 그래서 다빈치는 엄격한 자연 모방을 주장하는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내면의 형상에 따른 창조를 주장하였다.  

 

르네상스를 뒤이은 17세기 예술을 바로크 예술이라 부른다. 바로크예술은 르네상스 예술과는 달리 윤곽은 뚜렷하지 않고, 묘사는 격정적이며, 구도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르네상스 회화는 평면적이지만 바로크 회화는 깊이감이 있다. 고전주의 예술과 바로크 예술은 둘다 자연주의적 묘사를 특징으로 하며, 본질의 세계보다는 가상 즉 현실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표현방법등을 통해 미적 취향은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미학이 체계를 갖춘 학문이 된다. 고전주의적 관점에서 미는 이성의 문제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인 관념이 등장한다. 즉 예술이 '감성'의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은 미학(aesthetica)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으로 인간의 '감성'을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 감성을 하나의 인식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칸트는 완전히 새로운 미학, 형식 미학의 선구자가 된다. 미는 '인식'이 아니라 '쾌감'이며, 예술의 본질은 '진리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있으며, 예술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상상력 유희'이며, 예술가는 고정된 법칙에 따르지 않고 '영감'에 따라 자유로이 창작을 한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관해서 - 아름다운 가상

 

고대인들은 아름다움은 대상의 '객관적 속성'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시대, 그리고 고전주의자들은 이러한 미학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상반되는 견해가 있다. 대상이 아름다우려면 플러스 알파 즉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파악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미적취향'이라는 것이다. 미의 존재 근거는 대상에 있으며, 판단 근거는 주관이 느끼는 쾌-불쾌의 감정에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와 같은 주관과 객관에 양다리를 걸친 미인식이론을 제시한다.

 

현대에 들어오면 미는 아예 완전히 주관화하기 시작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무엇이 아름답냐'고 물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언제 아름답냐'고 묻는다. 현대의 주관적 이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감정이입설'이란 게 있다. 우리가 우리 감정을 자연 속에 집어넣은게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거다. 자연의 아름다운 사물은 실은 우리가 그 속에 집어넣은 우리 감정이다. 물에 비치 제 모습에 도취해 한 송이 수선화가 되었던 나르키소스, 그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런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객관적인 미학에서 주관과 객관이 섞인 미학으로, 그리고는 주관적인 미학으로 그 중심축이 점점 이동해 가고 있다. 과연 미래의 미학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에셔의 그림의 끝도 없이 안과 밖이 바뀌며 돌아가는 듯한 '이상한 고리'와 같은 형태가 그 특징을 이룬다. 그런데 미와 예술의 본질을 밝히려는 시도는 이와 같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영원한 쳇바퀴와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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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살림

 

1부 - 이스라엘 사람들 (Israelites)

2부 - 유대교(Judais)

 

<이스라엘 사람들>편은 아브라함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지 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유대교>편은 바벨론 유수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다음의 인용문은 성경의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한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하는 폴 존슨의 말이다.

 

19세기 초에 독일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롭고 매우 전문적인 '비평적'연구방법이 나타나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역사기록이 아닌 종교적인 신화로 분류해 버리는 일이 있었다. 모세오경은 히브리 지파들로부터 전해진 전설이며 포로기 이후, 기원전 1천년대 후반기에 문자로 기록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비평적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전설들은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사회에 역사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고 하나님께서 그 사회가 지녔던 종교적인 신념, 관행 그리고 제의의식을 승인하셨다는 점을 나타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수정되고 편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경에서 묘사되고 있는 인물들은 실존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신화 속의 영웅들이었거나 지파를 상징하는 가공의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독일 성경학자들의 작업은 전반적으로 학문적인 전통이 되었으며 특히 율리우스 벨하우젠의 연구를 통해 고도의 설득력과 복잡성을 지니게 되었다. 1878년은 그의 유명한 저서인 <고대 이스라엘 역사 서언>이 출간된 해이다. 그로부터 약 1백년동안 벨하우젠과 그의 학파가 성경연구를 지배했으며,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역사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노트(M.Noth)와 알트(A.Alt)와 같은 20세기의 뛰어난 학자들도 기본적으로는 회의주의적인 이 연구방법을 사용하면서 과거의 정복 전승들을 신화적ㅇ니 것으로 처리하였으며,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의 토양 위에서 비로소 하나의 민족이 된 것이지 기원전 12세기까지는 민족으로 형성되지 못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성경에서 기록되어 있는 역사 중에서 <사사기>이전의 역사를 허구로 간주하거나 포기하고 있으며, <사사기> 또한 허구와 사실이 혼합되어 있는 잡동사니로 여긴다. 그들에 의하면 왕실의 역사와 기록이라는 현실ㅇ르 반영하고 있는 사울과 다윗때가 되어서야 이스라엘 역사는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적인 고고학이 발전하게 되자 이들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조사하여 그곳에서 상당한 분량의 법률과 행정 문서들을 발견해냈으며, 이를 번역하자 성경 앞부분의 책들이 단순히 젅설이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올브라이트(W.F.Albright)와 캐슬린 케년(K,Kenyon)의 연구는 우리에게 구약성경 앞부분의 책들에 기록된 장소와 사건들이 실제로 있었던 장소이자 사건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기원전 3-2천년대에 사용되던 문서보관소가 발견되믕로써 성경의 애매한 본문들에 지속적인 빛을 던져주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성경의 앞부분에 수록된 본문들이 대개는 신화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에 비해 몇몇 실제적인 증거가 발견됨으로써 관심이 정반대로 돌아서고 있다. 점차 학학들은 성경의 본문이 최소한 진실의 싹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을 가꾸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부 Judaism 에서는 성경내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사라져 버린 시기, 기원전 400년 경부터 예수의 탄생시점까지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그 시기에 구약성경의 정경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리스문화와 유대문화의 충돌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가운데 마카비 가문이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기원 70년에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전면적인 반란의 동인으로 그리스와 유대의 충돌을 제시하고 있음에 흥미롭다. 그리스도교의 탄생과 이슬람교의 탄생도 유대교를 모태로 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읽기에 꽤나 어려웠던 것은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개념과 폴 존슨이 접근하는 방향 및 개념이 상이한 데서 오는 이질감일까? 폴 존슨은 신학적인 관점보다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기에 종교적 색채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서문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이것은 역사에 관한 순수한 개인적 해석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아뭏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는 색다른 시각이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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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수 지음/ 신지서원

 

이 책에서 유가라 함은 선진유가를 가리키는 말로서,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고 통일국가를 이룬 진시황의 진나라 이전에 있었던 유가들인 공자, 맹자, 순자를 가리킨다. 유가의 대표적인 저술 중 하나는 대학이다. 잘 알려진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란 말이 이 책에 나온다. 대학이란 큰 학문이란 뜻으로 군주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알려주는 학문이란 뜻인데, 선진유가들은 군주는 군주가 되기 이전에 군자, 또는 대인,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만큼 선진유가들은 군주의 지위나 자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정치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 진다고 생각했을까?

 

선진유가들에게 정치란 무엇이었는가?

정치의 목적이란 군주가 지향하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군주의 해야 할 일은 세가지이다. 첫째, 백성의 안전을 지켜주는 보민, 둘째, 백성을 먹여주는 양민, 세째는 군주 스스로 모범이 되어 가르치는 교민을 포함한다. 즉 백성의 안전을 보장하고,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나아가 그들에게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것이 이상적인 군주의 해야 할 일이며 정치란 그 목적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선진유가의 정치론은 기본적으로 군주론이다. 어떤 군주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가하는 것에 그들의 관심이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정치의 성패는 군주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군주의 정치는 결국 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선진유가의 공통적 주장이다. 덕치를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군주가 성인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모범이야 말로 최고의 정치이며, 교육이라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군주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는가?

덕이 있는 인재를 찾아내고 훈련시켜 군주의 지위를 물려주는 선양, 후손에 물려주는 세습, 그리고 군주답지 않은 군주는 혁명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물론 순자는 선양을 인정하지 않았지만...하지만 그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군주는 수신을 통해 도덕적으로 자신을 완성하고 그를 바탕으로 덕치를 펼침으로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군주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순자는 말하기는 군주는 백성이라는 물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고 했다. 광포한 파도가 배를 뒤집을 수 있는 것처럼 포악한 군주는 백성에 의해 쫓겨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백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형태의 민주주의를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군주의 권력 오용 및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백성의 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군주론은 인간 본성에 의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유토피아적 사상에 가깝다. 성인군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최상의 시상적 정치이런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권력욕에 생각이 미친다면 어찌 그러한 사람만이 군주가 될 수 있겠는가? 권력에 눈먼 짐승과 같은 사람들이 군주가 되기 위해 뿌린 피는 얼마나 깊고 넓을까? 군주같지 않은 군주가 권력을 잡고 그 통치아래 신음하는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비단 그들의 사상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지역과 시기에만 들렸던가? 그렇다면 수천년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그들의 사상은 오히려 너무나 단순한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이 아니었는가 하는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선진유가들은 성선설, 또는 성악설로 대표되는 모든 인간의 본성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평민도 수양에 의해 군자나 대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평민도 그들의 수신여부에 따라 마땅히 군주가 될 수도 있다는 어떻게 보면 폐쇄적인 신분제도를 초월한 진일보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인간 본성의 평등을 근거로 한 그들의 군주론은 수천년간의 중국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그리고 한반도의 조선왕조들은 그들의 사상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하였지만, 특기 조선사회는 폐쇄적인 신분사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대부계층들만 온갖 특혜와 권리를 누리는 모순적인 상황이 존재해 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더구나 그들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은 학문의 궁극적 목표를 입신양명에 둠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영달과 성공을 위한 경쟁의 에너지를 사회에 불어넣어 오지 않았던가? 선진유가들도 그들의 정치사상을 펼친다는 미명아래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을 유랑하며 그들을 받아줄 군주를 찾아 주유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그들의 사상은 현 우리 사회에서 보는 여러가지 병폐의 기본이 되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고 그들의 사상을 올바로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상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즉 입신양명을 위한 학문을 지양하고 도덕적 수양과 그를 바탕으로 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을 지향하는 사고의 전환이 요청된다. 오늘날 유가의 저술들에 대한 현대적 해석등이 나오면서 그러한 풍토가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나쓰메 소세키/ 윤상인 옮김/ 민음사

 

나쓰메 소세키가 누구인지 난 모른다. 일본 작가와 일본 소설과는 친하지 않다.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을 보자 웬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읽었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란 책때문이다. 아마 첫번째 사건과 관련이 있었지. 할머니가 소중히 여기던 책의 작가가 아마 나쓰메 소세키였던 것 같은데... 할머니가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였지, 아마... 

 

다이스케는 일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 간다. 그리고 다들 결혼하라고 하는 마당에 장가도 가지 않고 있다. 부유한 아버지와 형의 경제적 지원은 그의 생활이 쪼달리지 않게 해준다. 그런데 삼년 전에 미치요와 결혼한 후 헤어진 친구 히라오카를 다시 만나면서 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사실 히라오카와의 만남보다는 미치요와의 만남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어쨌든 뭐 큰 사건이랄 것도 없는 그들의 만남에서 시작되어, 당사자인 다이스케나 미치요 그리고 히라오카에게는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이 전개된다.

 

남의 부인을 빼앗는 것은 용인될 수 있는 일인가? 예전에 숨기고 있었던 사랑이 새살 돋아나듯할 때 그 사랑에 따라야 하는가? 자연스런 인간의 욕망은 사랑을 이루라고 그러고 사회의 법칙은 그것을 금지시키는 데, 그 어떤 것을 따라야 할 것인가? 일본의 급격한 서구화가 기존의 가치관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읽힌다. 나쓰메의 다음 작품에서는 전통적 가치관에 상반된 자연의 욕구에 따라 결정한 남의 부인과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는 자기 가책으로 번민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니, 사랑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과 사랑을 이룬 후 괴로워하는 것...둘 다 괴로움이라면 과연 어떤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 사랑은 괴로움인가? 행복인가? 아니면 관습에 얽매인 사람들의 불행인가?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다이스케는 감정에 치우지지 않는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미치요에 대한 사랑의 감정 앞에 한 순간 허물어져 버리고 만다. 오랫동안 숨어있던 사랑의 감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그 모습이 점점 분명해 질 수록 그 감정은 점점 힘을 얻는 열대성 폭풍과 같이 휘몰아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철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분명한 어조로 나타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문학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분명한 주장처럼 제시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의도를 다양한 장치속에 드러낸다. 때로는 독자가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행간에서 읽어내야 할 때가 많다.

 

어떤 장면을 상세히 묘사하는 부분을 읽을 때, 왜 이런 묘사가 필요할까? 이것은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나 인물의 심리상태등에 대해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가? 단지 묘사를 위한 묘사는 큰 의미가 없을텐데, 그렇다면 그것은 인물이나 상황등과의 관련성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터이다. 우리 주위의 사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특히 그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심리등의 주관적인 요인들은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물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비오는 날을 아주 낭만적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비오는 날에 대한 묘사로 부터 이끌어 낼 것이고, 슬픔에 젖은 사람에겐 그 비가 슬픈 눈물처럼 보일 것이다. 소설가의 묘사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리라. 작중 인물의 상황이나 심리, 마음의 상태가 그렇게 표출된 것임에 틀림없을 텐데, 그런데 아직 그 느낌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소설읽기 또는 작가읽기는 아직도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그만큼 철학이야기보다는 문학이야기가 더 읽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과연 나는 <그 후>에서 작가의 어떤 의도를 읽어내었는가? ??? 책을 읽게 되면서 부터 두번읽기의 장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읽기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글에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즉 작가의 마음과 의도를 읽어내기 위해서라면 두번읽기는 문학읽기에도 필요한 전략이 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 아니 문학은 세월이 지나 다시 읽을 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오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시간 두고 읽기가 나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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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수 지음/ 신지서원

 

아나키즘이란 무엇인가?

아나키즘이란 무정부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무정부주의란 정부의 존립자체를 부정하는 것인데...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정부가 없다면 사회는 어떻게 되는걸까? 무정부란 말에서는 혼란과 파괴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나키즘은 무정부를 지향하는 극단적인 사상으로 낙인 찍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왜 아나키스트들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조차 무정부사상을 실현하고자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지? 아나키스트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면 폭력과 혼란을 원하진 않을텐데...사건의 표면만을 보고 그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하는 것은 나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사람이란 한 번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그러면 아나키즘의 사상적 배경은 무엇인가? 왜 아나키스트들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는가?

사실 알고 보면 그들의 행동 이면에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간절한 바람이 존재한다. 모든 억압과 통제로 부터 벗어난 무한한 자유를 향한 낭만적 갈망이 거기에 있다.

 

인류 역사는 가진자의 역사이다. 오랫동안 다수의 민중은 소수 권력의 압제하에 착취당하며 신음해 왔다. 권력자, 가진 자들은 그들의 권력과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 법, 정치조직, 군대조직등을 만들어 민중 위에 군림해 왔다. 이러한 것들이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라 치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가진 자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민중의 권리를 억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하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용자와 노동자등 사이의 불평등이 심화된다. 아나키즘의 저변에는 이러한 기본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면 아나키즘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나키즘이 지향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세상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와 평등이다. 모든 압제와 억압으로 부터의 자유, 모든 불평등을 타파하고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는 사상이 아나키즘이다.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조직, 법, 군대, 사유재산등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나키즘은 반전통적인다. 전통도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으며, 계층을 확고히 하여 평등을 가로막는 것으로 파악한다. 또한 더 나아가 아나키즘은 반종교적이다. 종교도 도덕적 미신으로 사람을 속박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는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나키즘은 자유와 평등과 같은 고결한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을 통제하지 않고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은 가능한가? 법이나 전통, 종교가 없다면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기능을 가진 정부가 없다면 사회의 질서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아나키즘은 인간 본성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법없이도 서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서로 싸우는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의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면서도 어떻게 그런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내 던질 수 있는 지 궁금하기도 하다.

 

또한 아나키즘에서 지향하는 바는 자유와 평등인데, 이 둘 중 어느 것을 더한 가치로 지향하고 있는지는 모호하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 병립하는 것 같으나, 또 달리 생각하면 서로 대립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아나키즘은 1907년 일본에서 발행된 <천의>, 파리에서 발행된 <신세기>등의 잡지등에 의해 표방되었다. 서구의 침탈에 무력한 청나라 정부의 모습과 사회의 혼란 중에 혁명이 기운이 무르익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의 아나키즘은 민족주의 혁명세력과 연합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아나키즘은 세계적 혁명을 지향하고 있다.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은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유치한 유아적 사고에 불과했다. 그들의 눈은 더 큰 규모의 세계적 혁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가와 민족, 사회적 신분과 계급등으로 나누어진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그 어떤 것으로도 차별을 받지 않는 원대한 평등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그들에게 민족주의는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원대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은 역사의 그 어느 토양에서도 그 꽃을 활짝 피울 수 없었다. 너무 이상이 큰 탓일까? 아니면 그들의 전제에 모순이 있음에 분명한 탓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 이상을 실현하는데 사용된 폭력적인 태도때문일까?

 

현실을 돌아 볼 때 아나키즘이 현대의 역사에 닻을 내리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대에도 그 영향은 여러 방면에 남아 있다. 오늘날에도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고 이를 실현하고자 투쟁하는 사람들은 아나키즘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보수적인 진영에 대립하여 진보적 태도를 보이는 진영이 바로 그러하다. 점점 심각해지는 여러가지 불평등문제를 직시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다. 환경문제, 인권문제, 노동문제, 여성문제...

 

아나키스트는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낭만파... 인간의 손으로 결코 이룰 수 없어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비록 그것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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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오랫동안 서가에 잊혀져 있던 [동서양 고전]을 집어들었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빌려 읽으면서 연체한 탓에 새로운 책을 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난 번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도 동서양의 사상에 대한 나의 시야를 더욱 넓혀주었기때문이다. 

 

동서양의 지성들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그들의 이성을 최대한 사용하였다. 그러면 과연 인간 이성은 진리를 발견할 능력이 있는 걸까? 인간 이성이 쏟아내는 수많은 사상들 중에는 진리의 편린들이 들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 진리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 주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인간 이성의 총아인 철학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임은 명백하나, 결코 진리에 이를 수 없는 영원한 전진일 따름이다.  

 

한국사상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일연의 삼국유사/정도전의 삼봉집/이황의 성학십도와 이이의 성학집요/허준의 동의보감/정약용의 목민심서/최한기의 기측제의

 

동양사상

주역/공자의 논어/노자의 도덕경/바가바드기타/사마천의 사기/왕수인의 전습록/마오쪄둥의 모순론

 

서양사상

플라톤의 국가/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데카르트의 방법서설/로크의 정부론/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루소의 에밀/스미스의 국부론/칸트의 순수이성비판/헤겔의 정신현상학/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다윈의 종의기원/밀의 자유론/마르크스의 자본론/뒤르켐의 사회분업론/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베르크손의 창조적 진화/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피아제의 아동지능의 기원/레비스트로스의 슬픈열대/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샤르트르의 존재와 무/쿤의 과학혁명의구조/ 롤스의 정의론

 

다양한 사상가들의 다양한 저서들에 대한 설명과 소개등은 인간 이성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때로는 그들의 사상은 난해하여 그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저작들과 힘겨운 싸움이 필요할 듯하다. 이러한 힘든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상의 불완전성때문에 절대적 진리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바라본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나 국가등의 가치관 또는 그러한 사회에서 자신만의 경험으로 형성된 자신의 가치관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만큼 사물에 대한 이해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성에 의해 태어난 사상들에 대한 앎은 자신이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물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이 고백록에 나오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라든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나오는 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전제를 바탕으로 논리를 펼쳐나가고자 하는 엄정함,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보여주는 상이해 보이는 두 대상을 창의적으로 결합시키는 신선함 등은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한가지 좋은 점은 우리의 두뇌의 작용을 활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시베리아에는 영구동토층이 있다고 한다. 영원히 얼어붙은 땅이다. 짧은 여름이 오면 땅의 표면의 얕은 부분은 녹지만 곧 겨울이 오면서 다시 얼어붙어 버리고 마는 땅이다. 그 땅의 표면아래는 결코 녹지 않는 얼어붙은 동토이다. 우리가 두뇌는 때로는 그러한 영구동토층과 같다. 하지만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집중하면서 보다 깊은 곳의 두뇌활동이 활성화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의 두뇌의 표면만을 운행하던 신경세포가 두뇌의 영구동토층을 뚫고 더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이 될까? 나의 사고작용이 보다 깊은 곳에서 작동함을 느꼈다는 것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1년에 책을 1000권 읽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어떤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 이후에 그는 한 달에 책을 2-3권을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하면서, 책읽기가 두뇌계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지 깨달았다고 한다.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아무튼 나의 책읽기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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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란트 러셀 저/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러셀은 서양철학사를 집필하면서 시대적 상황과 철학이 어떤 관련을 가지고 발전해 왔는지 통찰하고자 한다고 그 목적을 밝힌다. 그래서 그의 서양철학사를 읽으면, 철학외에도 서양 역사의 개괄적 흐름을 짚어 볼 수 있다.

러셀은 각 시대별로 저명한 철학자들의 주요 철학 사상을 소개한 뒤에 거기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는 철학자이기도 했지만 저명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다양한 수학의 분야중에서도 수리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원리]로 알려진 책을 집필했다. 러셀은 이 책을 통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수학체계를 구축하려 시도했다. 그가 해야 할 첫째 작업은 견고한 수학적 기초를 세우는 일이었다. 수학이 자체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면  그 수학체계는 논리성이 결여된 불충분한 체계가 될 터이다. 하지만 러셀의 역설로 알려진 그의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모든 수학체계를 파괴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구축하고자 하는 수학체계내에서는 이러한 모순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는 이것을 피하기 위한 체계를 고안해 낸다. 올바른 전제위에 쌓아 올린 수학만이 무너지지 않는 영구적인 체계를 갖게 될 것이었다. 유클리드가 자명한 진리로 판단한 다섯개의 공준을 전제로 그의 기하학 체계를 세워나간 것과 같이 말이다.

 

그의 이러한 경력은 철학을 바라보며 그 철학의 논리성과 진리성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가 보기에 많은 철학자들은 증명되지 않은 전제를 바탕으로 그들의 사상을 전개해 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전제에 사용된 개념이나 언어,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면서 사용했던 단어들, 개념들이 불분명하거나 자명하지 않기때문에 결국 그들의 철학논리와 체계이 허술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영향을 받은 비트겐쉬타인은 분석논리학이라는 새로운 철학분야를 창조하지 않았던가? 비트겐쉬타인은 의미분석만이 철학의 논쟁을 종식시켜 인간을 철학으로 부터 해방시킬 수 있음을 주장했다. 러셀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당대의 철학자들의 약점을 파고 들어 예리한 칼날로 헤집어 버린다. 그의 논리분석의 칼날아래 그 당당한 철학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그들 가운데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루소, 칸트등 이름만 들어도 철학사를 빛낸 당대의 인물들도 그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한다. 다만 그의 칼날에 사정을 둔 듯한 철학자가 몇 있는데, 스피노자, 로크, 존 듀이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가장 신랄한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된 철학자는 아마도 니체가 아닐까? 니체의 초인주의, 영웅주의는 많이들 알려져 있다. 니체는 힘의 논리를 앞세운 초인, 영웅을 내세웠는데, 이는 그의 두려움때문이었을 것이라 추론하면서 그를 풍자한 글은 커다란 카타르시스적인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철학적 사상 가운데 흥미로웠던 부분은 버클리와 흄의 사상이다. 이들은 로크가 시발점이 된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그들의 논리를 발전시켜나간다. 그런데 어떻게 경험을 기초로 한 철학에서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그러한 사상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하다.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각되는 것만이 존재한다."  버클리는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이 정말 터무니 없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양자이론에서 말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불리는 불가해한 이야기가 버클리의 사상과 유사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버클리는 '신이 모든 것을 보고 있기때문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그의 주장을 이용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또한 흄은 자명한 진리로 알려져 있는 인과원리를 부정한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그의 논리적 과정을 따라가는 일은 흥미로운 지적 산책이 될 터이다.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루소의 사상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에밀]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루소에게 친근감을 갖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루소로 부터 무정부주의 사상이 나왔으며, 히틀러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노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참 힘이 든다. 천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을 일독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거니와, 더 나아가 당대를 풍미하던 철학자들의 그 철학적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난해하다. 더군다나 그에 대한 러셀의 논리적 비판이라니, 책의 3분의 1을 제대로 이해나 했을까?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얻은 것이 있으니, 최고의 지성이라 할 철학자들이 몰두한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 그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자들의 기본 사상에 접할 수 있었으니, 차후 그들과 그들의 사상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에 접근할 때에는 먼저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고, 그 다음에 관심이 가는 철학자 개개인에 대한 책들을 읽어 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단 이 책을 일독하는 것 자체가 철학을 하는 것만큼이라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러셀의 철학사 구분

1. 고대철학

  1) 소크라테스 이전

  2)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3)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2. 카톨릭철학

  1) 교부철학

  2) 스콜라철학

 

3. 근현대철학

  1) 르네상스로부터 흄까지

  2) 루소에서 현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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