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risham

 

한 법률회사에서 발생한 인질극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사건의 범인은 사살되고 상황은 무사히 종료되지만, 이 상황으로 큰 충격을 받은 주인공은 왜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자신이 속한 회사도 이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노숙자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된다. 노숙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도우려던 3명의 아이를 포함한 노숙자 가족이 동사하는 비극적인 일을 겪게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유망한 법률회사를 그만두고, 노숙자들을 돕는 일에 뛰어든다. 그리고 거대한 법률회사와의 무모한 싸움이 시작된다...

 

살아감의 의미를 찾은 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현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엿보는 한 편, 나 자신의 살아감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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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료헤이 / 다께모도 고노스께 / 최영혁 옮김/ 청조사

 

활자중독인? 연체되어 10일간 도서대여금지란 철퇴를 맞고 보니, 읽을 거리를 찾아 집안에 책장을 이리저리 뒤져 본다. 어라 처음 보는 책인데...

집어든 책이 '우동 한그릇'이다. 그리고 '마지막 손님'이라는 작품도 함께 실려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속-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우동 한 그릇>을 주제로 삼아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파헤쳤다한다.

일본경제 신문이 '울지 않고 배겨날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 읽어 보라'고 추천한 작룸이 바로 <우동 한 그릇>이다.  

저녁 늦게 세모자가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한다. 단 한그릇만을 주문하여 행복하게 나누어 먹는 가족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주인장. 해마다 그 날이 오면 그 가족을 기다리는데... 우동 한그릇에 담겨있는 감동적인 이야기

 

법정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서 <마지막 손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빵가게에 일하는 한 소녀는 진정 손님에 대한 사랑으로 고객을 대한다. 늦은 저녁 문을 닫고 퇴근하는 길에 급하게 빵가게를 찾는 고객을 만난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가 먹고 싶어 하던 빵을 사기 위해 방문한 손님이다. 마지막 순간에 자기네 가게의 빵을 생각해 준 그 고객의 진심에 감동한 그녀는 그 고객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다...

 

일본 사람 특유의 국민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일본 국민성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긍정적인 면도 사실은 가면을 쓴 위선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진솔한 마음을 지닌 일본인의 마음을 보여준다. 가면을 쓴 듯한 모습은 실상은 그들 일본인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아주 짧은 이야기이기때문에 30분정도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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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지음/ 예담

 

GEB처럼 오랫동안 읽은 책도 없을 듯 하다. 거의 3주에 걸쳐 읽었다. 하권은 어떻게 읽나하는 걱정이 슬며시 들기도 한다. 덕분에 대출기한을 넘겨 근 10일간은 대출금지이다. 아쉽지만 집에 있는 책을 읽는 것으로 대신하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집사람이 사놓았던 책을 들었다. 그 책이 바로 김형경의 <사람풍경>이다. 제목이 어쩐지 마음을 끌어당긴다. 처음 몇장을 읽어가면서 이 책이 심리학 또는 정신 분석학과 맥이 닿는구나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작가도 여성임을 알게되면서 그 문체와 내용도 여성다운 면이 있구나 느껴진다.

 

김형경씨는 유럽과 오세아니아 지역을 혼자서 여행하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한다. 친절한 사람들, 적대적인 사람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풍경을 그린다. 그러면서 그 풍경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또한 많은 예술작품들을 보면서의 느낌과 작가의 심리를 추적해 보기도 하고, 자신의 심리를 다시 돌아보기도 한다.

 

이 에세이의 첫번째 부분은 기본적인 감정들을 소개한다.

하나 - 무의식, 사랑, 대상선택, 분노, 우울, 불안, 공포

그리고 이어서 선택된 생존법도 소개한다.

둘-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 분열, 투사, 회피, 동일시, 콤플렉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가치들

셋-자기애, 자기존중, 몸사랑, 에로스, 뻔뻔하게, 친절, 인정과 지지, 공감, 용기, 변화, 자기실현

 

우리네 인간들의 거진 모든 행동들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이 무의식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감정들 및 이미지, 또는 억압되어 있는 것들이 일상생활에 어떻게든 투사되어 나타난다. 작가는 20대부터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관련 책을 읽었으며 실제 자신이 정신분석상담을 받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던 많은 심리적 요소들을 여행중 만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관찰하게 된다. 또한 그들에 대한 자신의 반응에도 심리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행동에 대한 작가의 심리적 설명이 때로는 지나치다고 생각되며 거부감이 드는 부분도 더러 있다. 특히 친절을 논할 때, 보상심리나 방어기제로써 설명하는 지점에 있어, 모든 친절의 행동이 그런 것은 아닐터인데, 때론 심리학적 지식이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회를 보다 냉소적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읽은 내용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 보기도 하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추어 보기도 하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더 나아가 도대체 '나'란 무엇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일으키기도 한다. 

 

작가가 소설가라서 그럴까? 소설은 아니지만 나름의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걸까?  심리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는 초반부, 그리고 작가의 진단이 다소 진부해지며, 다소 나의 견해와의 갈등이 존재하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긍정적이며 훈훈한 느낌으로 글을 마무리하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느낌이 드는 마무리.

 

그녀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제 나는 내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며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며.....

 

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심리를 치유할 수 있었다.

문득 이 구절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라는 작품에서 싯다르타의 깨달음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말도 생각이 난다.

 

어떻던 모든 심리적인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전한 콤플렉스와 나르시시즘, 공포, 질투나 시기심,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들이 있기마련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들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그것들을 조절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되었다. 작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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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지음/

 

사마천이 지은 사기는 음...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사기본기, 사기세가, 사기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사기본기는 주로 공식적인 왕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물론 여기에는 항우나 여태후와 같은 제왕이 아닌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긴하지만,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것이 사마천의 독특한 역사인식이라 한다. 즉 공식적 제왕은 아니지만 그들은 실질적 제왕의 역할을 했었다고 보는 사마천의 시각을 보여준다고. 어쨌든... 사기세가는 제왕의 아래에 있던 제후들의 역사, 그리고 사기열전은 제후들을 도왔던 여러 탁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이다. 이 세부분중 사마천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사기열전이라 하는데, 방대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지라 그 두께도 만만치 않고...아마 사기열전은 구입해서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사기본기로 돌아와서... 그 다루는 내용을 보자면, 오제의 시대로 부터 한나라 효무왕에 이르기까지의 공식적인 역사기록인데...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진본기, 진시황본기, 항우본기, 고조본기, 여태후본기, 효문본기, 효경본기, 효무본기

로 이루어져 있다. 초한지를 읽은 때문일까? 사기의 서술이 꽤나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그 때문일까?

 

누군가에게 권한다면 음...학술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그다지 읽기를 권하고 싶지 않다. 단지 진시황으로 부터 시작된 통일 진제국에서 초한전쟁을 거쳐 한제국의 성립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들여야 보고 싶다거나, 진시황이나 항우, 또는 유방등이 인물에 대한 개략적인 서술을 보고 싶다면 차라리 그 부분만 발췌하여 보는 것이 나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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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 지음

 

이지성 작가는 '꿈꾸는 다락방'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

창 밖으로 봄 비 같은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베란다 문을 여니 봄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는 날, 우산을 받쳐들고 쫓기듯 교보문고로 향했다. 그날 손에 잡힌 책은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2', 비내리는 풍경이 내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위인들은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무엇을 찾아낼 것인가는 독자에게 달려있다. 단지 일독으로 책을 읽었다는 것에만 의미를 둔다면, 잃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 생각하며 읽는 것은 그렇지 않았을 때 잃게 될 귀중한 것을 얻게 해 준다. 성공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는가? 책의 표면에는 나와있지 않은 점들을 캐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백독백습"이라는 것에 어느정도 공감이 간다. 2번 읽기는 책의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상징들이나 돌출적인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일독을 통해 전체 주제 및 저술의 의도를 파악한 후 다시 읽을 때 저자의 저술의 의도 및 방향등이 눈에 들어온다. 간 본 길을 다시 갈 때, 세부적인 풍경등을 보다 자세히 유심히 살필 수 있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백독백습"은 책에서 제시하는 것들을 체화하고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독서방법을 추천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 변화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인상적인 말, 감동적인 말등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그러한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읽고, 다시 읽으면서 책의 내용에 정통해 질 수 있다. 나자신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하면서 더욱 온전한 책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인상적인 것은 홍대리의 멘토인 '지후'라는 작가이다. 자신이 읽은 책에 정통해 있었기에 상황에 적절한 책을 추천해 줄 수 있었으며,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예리한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 가는 능력이 부러웠다. 자신이 먼저 올바른 책읽기방법을 알고 실천했기에 그런 것이 가능했겠지. 아마 '지후'라는 사람은 작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겠다.

 

마지막으로 천권읽기에 도전하도록 권유받은 홍대리, 그 후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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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란드 러셀/ 박상익 옮김 / 푸른 역사

 

이 책은 원래 <역사를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1943년에 처음 선을 보였다가 1957년 <역사의 이해>라는 책에 대표 에세이로 재수록된 글이다.

 

일반적으로 시험을 위한 역사 공부, 또는 전문가를 위한 역사 강의등은 따분하고 재미가 없다. 그러나 러셀은 역사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방법에 따라 재미나 흥미 더 나아가 쾌락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거시적 역사와 미시적 역사가 있다. 거시적 역사는 어떻게 세계가 오늘의 세계로 발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미시적 역사는 흥미로운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게 해주며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을 향상시켜 준다. 이 두가지 방법의 역사읽기는 읽는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러셀은 이 글을 통해 거시적 역사를 보는 방법과 미시적 역사를 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거시적 역사를 볼 때는 특히 역사의 거대한 진보의 시기인 세 시기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첫째, 농업이 시작되며 왕권이 강화되는 시기, 문자와 수학이 시작되며 건축이 시작된 시기

둘째, 위대한 문명, 그리스 문명의 시기

세째, 15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위대한 진보의 시기

 

<기록된 역사시대 전 기간을 통해 진보는 규칙이 아니라 예외였다. 그러나 일단 도래하자 진보는 신속하고도 단호하게 진행되었다.>

진보의 시기에 초점을 둔 역사읽기는 흥미를 더해 줄 수 있겠다.

 

러셀은 역사철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단행하면서, 그 대안으로 역사과학과 인물연구의 방법을 역사 읽기의 방안으로 제시한다.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투스의 주요 주제는 유럽과 아시아의 충돌이다. 마라톤 전투, 살라미스 해전등... 아시와와 유렵의 충돌은 역사의 흐름에서 꾸준히 등장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헤로도투스의 주제는 유효함을 보여준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세련되고 정밀하게 다루고 있다. 운명, 정의 또는 필연이라 칭하는 거대한 비인격적인 힘이 세계를 지배하는 모습을 서사시적 장엄함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대한 역사가들의 저술을 읽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전기와 회고록의 폭넓은 섭렵을 통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고 즐겁고 흥미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역사읽기의 최고의 쾌락은 우리가 특정시대를 좀 더 잘 알고 난 후에야 얻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에 이르러서야 조각그림 맞추기 퍼즐에서 새로운 사실들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러셀은 실제로 나폴레옹,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예카테리나 여제등의 예를 통해 역사란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제공해 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역사적 인물들도 작은 일에 집착하는 인간일 뿐임을 그러한 세부사항을 통해 알게 된다고 말한다.

 

러셀은 역사의 흐름을 알아채는 것의 흥미를 소개하고 있다. 군사사, 경제사, 종교사, 조직사의 분야를 언급하면서 자신이 나름 흥미롭게 이해한 점들을 소개한다.

 

군사사에 대한 흥미로운 점들, 귀족을 몰락시킨 대포. 궁수는 기사들을 제압할 수 있고, 대포는 궁수를 제압할 수 있다. 기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봉건귀족들은 대포의 등장에 의해 그 세력이 현저히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 프랑스 혁명은 새로운 종류의 전쟁을 도입했다. 전 국민이  무언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전쟁,...2차세계대전의 영국처럼...정부형태로서의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을 전쟁에 참여토록 만드는 장점이 있다고... 또한 공업화와 전쟁의 판도...

 

경제사에 대한 흥미로운 점들...비범한 개인이 아닌 보통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경제 상황을 살았을까? 예를 들면 피라미드가 전설되던 시기의 이집트 농민들은 충분한 음식을 섭취했는가? 중세에 번영했던 상업도시의 평균적 주민은 얼마나 유복하게 살았는가? 산업혁명 이전의 농민의 삶은 산업혁명 초기의 공장 노동자의 상황에 비하면 어땠을까? 이러한 문제들을 흥미를 자아낸다.

러셀은 또한 역사의 흐름에 따라 도시와 농촌의 대립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흥미롭게 살펴보도록 한다. 

 

러셀은 마르크스를 비판하면서 지성 또는 개인의 역사에서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과학적이라 자처하는 사회학의 한 분야는 인간의 내적 심리나 동기를 탐구하지 않고 개인이 아닌 사회를 관찰함으로  진정한 과학에 근거한 결론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반박한다. 역사에서 개인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큰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흥미있는 것 중 하나는 러시아 혁명에서의 레닌의 역할에 대한 러셀의 관점이다. 언젠가 읽은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카는 러셀과는 상반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러셀은 레닌의 귀환이 러시아 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는 일개인이 그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정신 및 상황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때문에 그 어떤 개인들도 다만 그 물줄기에서 작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뿐이라고.... 또한 카는 역사를 공히 인정받는 과학의 위치에 올려놓고 싶어했다. 그는 자연과학에 대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자연과학의 명확성과 객관성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내면서, 역사도 과학이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러셀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러셀과 카의 충돌이라...ㅋㅋ

선택과 가치판단이라는 제목하의 내용도 카의 주장과 비교할 만하다. 역사란 역사가가 선택한 사실들로 이루어 진다고 보았을 때, 그 선택과 가치판단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러셀은 <문화의 궁극적 가치는 과학 만으로 제공할 수 없는 선, 악의 기준을 제시하는데 있다>라고 말한다.

 

러셀은 종교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철학은 종교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에 의해 도입된 사상은 철학은 더 이상 세계를 이해는 정직한 시도가 아닌 도취를 통한 구원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플라톤, 그리스도교 신학자, 그리고 이어 루소와 낭만주의자에게까지 이르렀다고 ...무슨 말인지???

아뭏든 그리스도교는 유대인으로 부터 받는 유산에 그리스적 요소를 채용하여, 성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철학을 그리스도교 사상의 필수요소로 삼았다. 그러다가 11세기~13세기 말까지 교회는 급속히 권력, 규율, 학문에서 실력이 향상되었다. 특히 학문적 측면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기인한 바가 큰 데, 그 당시는 플라톤의 영향아래 있었다. 아퀴나스는 아랍의 영향하에 아리스토텔레스를 선호함으로 정죄를 당하기도 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그의 발언은 가톨릭 교육기관에 의해 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후 14~16세기 교회는 대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마무리 되던 시점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오른다.  꺼질 듯 하던 가톨릭은 종교개혁과 그 이후의 도전에 생존하여 아직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직사...<그 조직들은 당신이 어느 정도, 어느 수준까지 당신의 독자적 관심사를 추구할 수 있을 지를 결정한다.>

조직은 공적인 목적과 사적인 목적 두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 이 사적인 목적을 위한 조직의 부정적 활동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조직은 그 성질상 탈선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 대학살, 박해, 마녀사냥등 종교조직의 이름하에 행해진 탈선들이 그러하다. <조직의 발전을 연구하되 우리가 고찰한 바의 악행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예외적 개인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엔 미래가 없다.

 

정신의 시간적 영역을 확대해 주는 역사

<천문학은 정신의 공간적 영역을 확장시켜 준다면 역사학은 정신의 시간적 영역을 확대해 준다. 우리의 개개인의 삶은 종종 감정이 격앙되며, 때로는 참을 수 없으리만큼 고통스럽다. 그러한 개인적 격앙과 고통이 거대한 인류적 생애의 직극히 작은 단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균형감 있게 조감한다면, 피할 수 없는 개인적 불운을 견디기가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영속적인 것을 분별하는 안목

<역사의 전망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건과 어떤 행동이 영속적 가치를 갖는지를 좀 더 명료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수많은 사건들은 일시적으로 그것들이 갖는 진정한 중요성에 걸맞지 않게 엄청난 흥분과 동요를 자아낸다. 반면, 가장 위대한 사건들은 높은 산의 정상과도 같이 저 멀리에서 삼라만상을 압도하고 있으면서도 가까이에서 펼쳐진 풍경에 의해 가려진다. 역사는 건전하고 침착한 판단력을 갖는 데 도움을 주어, 동시대의 사건들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바라보는 습관과 그것들이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상상하는 습관을 얻게 해 준다.

신학자들은 신이 모든 시대를 마치 현재인 것처럼 바라본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지극히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한,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지헤와 통찰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역사에 의해 사상과 감성이 확장된 인간은 후세에 무언가를 남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이러한 말로 러셀은 그의 글을 끝 맺는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깊이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부분-보다 상세한 역사적 사실들을 부가적으로 읽고 나서,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그 내용이 이해되고 흥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정리하기 위해 다시 살펴보면서, 러셀이 이 책을 쓴 의도와 그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는 어떻게 읽어야 하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흥미롭게 읽으며, 그리고 실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읽을려면 말이다.

때론 거시적으로 때론 미시적으로...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통찰을 갖게 해주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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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헤세의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는 인생의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하던 소년, 청춘의 방황기에 고뇌에 찬 소년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인생의 단계에 그 책을 읽었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나처럼 느껴졌다는 걸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헤세는 내 마음에 들어와 있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었지만 단지 '데미안'을 읽는 데 그쳤다. 그 당시에는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 '데미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한 상태였던 것 같다. 단지 길을 찾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보는 것같은 인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오십을 바라보며 헤세의 싯다르타를 집어들게 되었다. 그 청춘에 대한 회귀의 바람때문일까? 싯다르타를 읽으면서 다시금 청춘을 생각하고, 길을 찾는 젊은이가 되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의 작품에선 어딘가 젊음의 신선하면서도 앳된 느낌이 풍긴다. 그리고 아울러 편안한 느낌을 전해 준다.  그 옛날 10대의 느낌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하지만 오십대의 눈으로 바라본 '싯다르타'는 헛점이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글에서는 구도자의 향기가 풍긴다. 젊은이가 구도의 길을 떠나고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해탈의 경지에 까지 이르러 참으로 평화로운 미소와 얼굴로 그의 친구를 바라보는 여정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싯다르타가 발견한 도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일체이며 심지어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하는 일체를 깨닫는다. 그 깨달음 속에, 자신도 그 일체의 하나이며, 그러므로 어느것도 미워할 필요가 없으며,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양의 리개념, 그리고 조로아스트교의 선과 악을 아울러 가진 신에 대한 신앙이 절묘하게 숨어있으며, 사랑을 갈파한 그리스도교의 사상도 함께 어울려져 있다고 평론가들이 평하기도 한다.

 

싯다르타...

루소의 작품 에밀에서는 한 수도자의 신앙고백이 나온다. 그 가운데, 회의와 의심속에서는 만족과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한 수도자의 말이 생각난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싯다르타가 아주 평온한 미소와 얼굴을 보여주며, 열반에 도달한 고타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깨달음이 진실이라기 보다는 그 깨달음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싯다르타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 사랑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감정이나 느낌으로 느껴지는 사랑, 싫어하지 않고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의미에서의 사랑...

 

헤세의 사랑은 적극적 성질의 것이라기 보다는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성질의 것인 듯 하다. 헤세가 살던 당시의 혼란스런 사회상황등은 극복하거나 타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체념의 성질을 지닌, 아니 체념이라기 보다는 더 적극적이긴 하지만,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평화와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는 사상을 전해주는 듯하다.

 

어차피 모든 부조리와 악도 선한 것과 더불어 일체이며, 본질을 이루는 것이며, 하나라면 그 무슨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흘러가는 강물에게서 배우는 것처럼, 수시로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그 일체의 상황속에서 배운 것은 수용! 일체감! 동화!

그의 사상은 신비롭기는 하나, 그리고 평화롭기는 하나,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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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사기 이야기 초한지 1~10권 / 이문열/ 민음사  2012/11/1~2013/ 1/14

 

초한지와의 길고 긴 전투는 이제 끝이 났다. 꽤나 오래 이 책을 잡고 읽었던 것 같다.

 

진나라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한 장량(장자방)의 이야기로 부터 초한지는 시작된다.

그리고 한제국을 세운 유계(유방)의 젊은 건달시절, 그리고 그들 따르는 소하, 번쾌, 노관 등의 가신들과의 관계

유방을 도와 제국을 건설하는데 큰 기여를 한 한신의 젊은 시절...

 

진제국에 최초의 반란을 일으킨 진승, 그리고 이후에 등장한 항량과 그의 조카 항우의 반란, 강동 팔천을 필두로 거룩전투에서 피비린내나는 승리를 거둔 후 진나라의 장합과의 일전, 장합의 항복과 뒤이언 40만 진군의 생매장하게 됨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는 항우.

유방의 한군은 함곡관보다 상대적으로 경비가 약한 무관을 거쳐 관중으로의 들어가과 진왕 자영의 항복을 받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처를 취하여 민심을 얻는다. 한번 항우는 진제국의 주력과의 치열한 전투끝에 함곡관을 통과하여 함양에 진입하여 진왕 자영을 참수하고 약탈과 방화를 일삼아 민심을 잃게 된다. 

 

범증의 제안에 따라 유방을 제거하기 위하여 홍문에서의 모임을 가지지만 구사일생으로 유방은 항우의 칼끝을 피해 탈출하게 된다. 유방은 항우에 이해 서쪽의 구석진 파촉의 왕으로 한중으로 쫓기듯 들게되고, 항우를 떠난 한신은 천신만고끝에 소하의 강력한 천거로 결국 대장군으로 봉해진다. 한신의 지휘아래 고도를 통해 파촉을 나와 삼진을 휩쓸며 관중을 평정하고는, 함곡관을 나와 동진하면서 항우의 서초를 위협한다. 장량과 한신의 도움으로 큰 싸움없이 항복을 얻어내며, 민심을 다 잡으면서 동진에 동진을 거듭하여 점점 세를 불려가면서 50만 대군을 이루어 서초의 도읍인 팽성을 점령하게 된다.

 

한편 제나라 전영의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북으로 출정한 항우의 군은 항복한 제군을 생매장하는 등의 악명을 통해 오히려 제나라 민심을 충동질하게 되고, 패주한 제군은 항복하여 생매장당할 바에야 죽도록 싸우자는 비장한 각오로 항우의 초군을 대적하게 되어 항우는 예상치도 못한 고전을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항우는 동진하는 한군을 그냥 둘 수 밖에 없고, 결국 팽성을 내주게 된다.

 

제나라에서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팽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항우는 팽성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정병 5만을 움직어 56만의 한군과 제후연합군을 수수와 사수에서 섬멸하고 대승을 거둔다. 유방과 한신등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도망하게 되지만 다시 세력을 길러 항우를 대적하게 된다.

 

유방은 양왕 팽월, 회남왕 경포, 한신, 및 다른 맹장들을 분산시켜 초나라를 위협하며 초를 괴롭힌다. 팽월은 항우의 군대의 배후를 어지럽히며 병참선을 공격하여 군량미등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로 인해 한왕 유방과 오랫동안 대치하고 있는 항우의 초군은 굶주림끝에 초땅으로 군대를 거두게 된다.

 

한왕 유방은 이를 틈타 초군을 공격하지만 항우의 무서운 전투력에 오히려 목숨을 빼앗길 뻔한다. 하지만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한나라의 맹장들과 팽월, 한신등이 유방군과 합세하게 되어 항우는 쫓길데 까지 쫓겨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된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항우는 단 한 번의 패배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처음 진나라에 대항하여 봉기한 이후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항우, 그리고 패권을 다투는 초한전에서도 단 한번의 패배도 경험하지 않았던 항우가 마지막 순간의 단 한 번의 패배로 목숨까지 잃게 되는 과정이다. 항우의 군대는 서서히 말라비틀어지는 식물처럼 그 기력이 쇠하여지다 소멸되고 만 것이다.

 

출중했던 전투능력을 갖고 있으며, 범증이라는 걸출한 모사를 두고서도 천하의 쟁패를 차지하지 못했던 항우... 아니 나약한 듯 보이지만 교활한 듯 하지만 아니 유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유방...

 

과연 유방의 성공의 동력은 무엇이며, 항우의 패배의 원인은 무엇일까?

 

천하의 패권은 유방이 차지했건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항우라는 캐릭터에 더 매력을 느낀다. 패왕별희라는 경극은 바로 이 항우의 비극적 종말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항우의 애첩이었던 우희와의 비극적 이별과 죽음을 후세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여 이 경극이 생겼으리라. 항우의 실패...

 

초한지의 두 영웅은 항우와 유방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명의 영웅은 한신이다. 한 유방의 대장군이 되어 천하를 통일하는 위업을 돕게 된다. 수수,사수에서의 전투에서 단 한 번 패하지만 그 이후 연전연승으로 항우까지 물리치게 되지만 유방의 의심을 받아 모든 병권을 빼앗기고 연금상태에서 결국 유방의 첫번째 부인인 여희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싸움에서 승리한 항우와 한신은 죽임을 당하지만, 패배에 패배를 계속하던 유방은 천하를 잡게되니...하하하...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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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삼경은 널리 알려져 있는 유학경서들이다. 사서에는 논어,대학,중용,맹자가 있고, 삼경에는 시경,서경,주역이 있다.

사서를 공부하는 순서는 대학,논어,맹자,중용의 순서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경전이라는 말은 경과 전이 합해진 말이다. 여기에서 '경'이란 성인이 남긴 말이며, '전'이란 성인의 제자들인 현인들이 '경'을 설명한 내용을 이른다. 실제 대학의 경우도 '경'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 뒤에 '전'이 붙어 내용이 길어진다.

대학의 경우도 '경'은 공자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말들을 증자가 기록한 것이며, 

이후 주희나 왕양명등이 주석을 달아 '전'을 이루게 된다.  

 

대학의 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大 學 之 道는    (대학지도는

在 明 明 德하고   (재명명덕하고

在 親 民하며       (재친민하며

在 止 於 至 善이니라   (재지어지선이니라

 

 

知 止 而 后 有 定하니,    (지지이후유정하니

定 而 后 能 靜하며         (정이후능정하며

靜 而 后 能 安하고         (정이후능안하고

安 而 后 能 慮하며         (안이후능려하며

慮 而 后 能 得이니라       (여이후능득이니라

 

物 有 本 末하고    事 有 終 始하니    (물유본말하고 사유종시하니

知 所 先 後면    則 近 道 矣니라       (지소선후면 즉근도의니라

 

 

古 之 慾 明 明 德 於 天 下 者는    先 治 其 國하고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는 선치기국하고

慾 治 治 其 國는    先 齊 其 家하고     (욕치치기국은 선제기가하고

慾 齊 其 家 者는    先  修 其 身하고    (욕제기가자는 선수기신하고

慾 修 其 身 者는   先 正 其 心하고      (욕수기신자는 선정기심하고

慾 正 其 心 者는   先 誠 其 意하고      (욕정기심자는 선성기의하고

慾 誠 其 意 者는   先 致 其 知하니      (욕성기의자는 선지기지하니

致 知 제 格 物하니라   (지지제격물하니라

 

物 格 而 后 知 至하고   (격물이후지지하고

知 至 而 后 意 誠하고   (지지이후의성하고

意 誠 而 后 心 正하고   (의성이후심정하고

心 正 而 后 身 修하고   (심정이후신수하고

身 修 而 后 家 齊하고   (신수이후가제하고

家 齊 而 后 國 治하고   (가제이후국치하고

國 治 而 后 天 下 平하니라   (국치이후천하평하니라

 

自 天 子 以 至 於 庶 人이    壹 是 皆 以 修 身 爲 本이니라   (자천자이지어서인이 일시계이수신위본이니라

其 本 亂 而 末 治 者 否 矣며    其 所 厚 者 薄 而 其 所 薄 者 厚는    未 之 有 也니라   (기본난이말치자부의며  기소후의박이기소박자후는 미지유야니라) 

 

대학에는 삼강령과 팔조목이 있다.

 

삼강령은 1)在 明 明 德하고    2) 在 親 民하며    3) 在 止 於 至 善이니라

- 밝은 덕을 드러내는 것,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 지선의 경지에 이르는 것 이며

 

이 삼강령을 이행하기 위한 팔조목은

古 之 慾 明 明 德 於 天 下 者는    先 治 其 國하고 

慾 治 治 其 國는    先 齊 其 家하고

慾 齊 其 家 者는    先  修 其 身하고  

慾 修 其 身 者는   先 正 其 心하고  

慾 正 其 心 者는   先 誠 其 意하고  

慾 誠 其 意 者는   先 致 其 知하니   

致 知 제 格 物하니라

 

1. 격물  2. 치지  3. 성의  4. 정심  5. 수신   6. 제가   7. 치국  8 평천하

 

많이 듣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이 대학에서 나온 말이란 것...그리고 대인의 길은 바로 그러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격물이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것을 말하며

치지란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성의란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며

정심은 마음을 바로 갖는 것이다.

수신은 자신을 닦는 것이며

제가란 가정을 다스리는 것(대부들이 자신의 영역을 다스리는 것)

치국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것(제후들이 자신의 봉토를 다스리는 것)

평천하란 천하를 태평스럽게 하는 것(천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보니 원래 대학이란 천자가 될 학문이란 뜻인듯 하다. 하지만 후세에 이것이 더 확장되어 대인이나 성인이 되는 길을 말하는 것이 되었다. 덕으로 통치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기 위해서는 깊은 학문으로 자신을 먼저 수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주 깊이 있는 말로써 오늘날의 위정자들이 마음깊이 새겨야 할 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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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 한길출판사 / 루소 / 김중현 옮김                      2012년 11월 14일 ~ 2012년 12월 30일

 

그 유명한 칸트가 에밀을 읽다가 그만 그의 산책시간에 늦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오랫동안 에밀의 명성은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읽을 기회가 닿지 않았었는데, 과연 난 칸트와 같은 흥미를 느끼게 될까?

 

에밀은 교육에 관한 글이다. 에밀이라는 아이를 성장에 맞추어 교육하는 과정을 기술한다.

교육에 대한 루소의 사상은 몇가지로 정리가 될 듯하다.

 

첫째, 아이들의 나이에 맞는 교육을 실행해야 한다. 

둘째, 아이들이 자연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서문

제1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양육-유년기의 에밀

제2부 신체와 감관의 훈련-다섯 살에서 열두살까지

제3부 지능과 기술 교육 - 열두 살에서 열다섯 갈까지

제4부 도덕과 종교교육 -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까지

제5부 에밀과 소피의 결혼- 스무 살에서 결혼까지

 

1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양육-유년기의 에밀

 

루소의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한 인간을 만드나냐 아니면 한시민을 만드느냐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

<자연의 질서 속에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므로 그들의 공통적인 천직은 인간이라는 바로 그 신분이다.>

<부모가 선택해주고자 하는 직업 이전에 자연은 먼저 그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사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그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직업이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때 그는 법관도 군인도 사제도 아닐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무엇보다 그는 먼저 인간일 것이다.>

이러한 루소의 말에 그의 교육목적이 잘 드러나 있다. 자연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그는 본다.

 

루소의 교육 사상의 중심 사상중 한 가지는 연령에 적합한 교육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유년기의 교육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양육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둔다. 건강은 자연인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건이기도 하지만 건강한 아이가 가지게 되는 신체와 감관은 다음 연령의 과정의 교육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때문이다.

특히 유아들이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며, 건강을 위한 모유수유등을 통해 신체발육을 도모해야 한다.  

어머니들의 과도한 보살핌은 끊임없이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자연의 작용을 방해하는 요소이므로 과보호를 경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들 중 한가지는 아이들의 언어인 몸짓의 언어 즉 표정, 그리고 최초의 목소리인 비명과 울음을 판단하는 일이다.

<아이들의 울음에 경솔히 반응하여 지배와 복종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한다. 아이들이 울음이라는 명령을 통해 어른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아이의 최초의 울음은 부탁이며 간청이다. 그런데 조심하지 않으면 그 울음은 곧 명령이 된다.>

 

유년기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어휘를 제한해야 한다. 형성되지 않은 관념,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어휘들은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그의 경험주의적 교육과 유용성에 근거한 교육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아이가 사용하는 어휘를 가능한 최대한 줄여라, 그가 관념보다 더 많은 어휘를 아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큰 지장이다.> <그는 살아있지만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다>

 

루소의 교육사상은 분명해 보인다.  자연으로 부터 배운다. 경험적으로 배운다. 자연인으로 성장시킨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자라도록 돕는다. 어떤 일정한 사회나 제도의 구성원으로 자라도록 돕는 일보다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가는 자연인의 모습을 추구한다고나 할까?

 

제2부 신체와 감관의 훈련-다섯 살에서 열두살까지

 

<당신의 학생을 그의 연령에 따라 다루어라>라는 루소의 교육원칙에 따르면 이 시기의 교육은 신체와 감각기관의 훈련에 있다. 여기서 훈련이라 함은 배움에 있어 지속적인 감각기관의 사용을 일컫는 것이리라. 루소의 말에 따르면 <말이 아니라 관찰과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하라>는 것이 이 시기의 핵심적인 교육방향이다.

<당신의 교육은 말보다는 행동이어야 한다>는 말에 나타난 것과 같이 주위의 상황을 보고 스스로 이해하고 깨치며 배우게 되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요, 참된 지식을 얻게 되는 방법이다. <자연이 오래 작용하도록 내버려두라> 그럼으로 배운다는 강박감없이 <행복하게 지내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이 시기를 행복하게 보내게 하는 최상의 방법이며, 자신도 모르게 배우게 되는 최고의 방법이다. <주위의 모든 것이 일종의 책>인 것이다. 플라톤도 그의 유명한 저작인 '국가론'에서 '아이들은 축제, 유희, 노래, 오락으로만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바와 같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 것 같으나, <무위를 두려워하지 마라, 시간을 즐겨라>는 모토 아래 교육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최고의 덕목이다. 어떤 관념들을 아이들이 이해하고 머리속에 형성시키기 위해서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아이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소유'관념을 형성시키기 위한 흥미로운 예가 있다. '소유'라는 관념을 형성시키기 위해 농작물을 직접기르는 경험학습의 예는 말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관념을 형성시키는 본을 보여준다. 아이는 노동이라는 활동을 통해 점유권리를 가지게 되고 이로 부터 소유라는 관념이 형성됨을 깨우친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스러운(사실은 교사에 의해 잘 조절된 상황) 경험을 통해서 소유관념으로 부터 약속 그리고 의무라는 관념에 이르기까지 명확한 이해를 형성시킬 수 있다. 또한 무언가를 부수는 성향을 가진 아이에게는 말로 그렇게 하면 안됨을 일깨우는 것보다는 <결핍의 불편을 주어 바로 잡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자연이 가르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아이는 이성이 없다. 판단능력이 없다. 그래서 가르쳐서는 안된다.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미리 생각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장래에 대한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언어교육은 관념이 앞서야 한다. 진정한 관념이 발생하고 난 후에 그 관념에 대한 언어로의 교육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념들은 두뇌에 새겨져 훗날 적합한 방식으로 행동하는데 이용된다. 말로써 이루어지는 또는 책이나 언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예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솝우화는 일반적으로 재미있고 쉽게 교훈을 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본 이솝우화가 주는 교훈은 어른들이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로 부터 아이들은 개미의 냉정한 거절과 조롱을 배우게나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아이는 절대로 당신이 바라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자하는 동기를 어떻게 불러 일으킬 수 있는가?

<어떤 동기가 아이들로 하여금 배우고 싶어하게 하는가? 그 도구가 그를 즐겁게 하는 일에 사용되도록 해보라. 배우고 싶은 욕망은 당장의 이익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글을 배우도록 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해서 '초대장'전략과 같은 것을 사용할 수 있다. 어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일에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다. 아이는 초대장을 읽을 수 없어 그 초대에 주어지는 좋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아이는 그 이익을 취하기 위해 읽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될 것이다. 교사에 의해 잘 다듬어진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아이들의 동기를 불러일어키며 더 나아가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한다. 달리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달리기를 하고자 하는 동기를 불러 일어키는 자연스러운( 이경우도 사실은 교사의 인위적인 상황설정이지만) 상황을 연출한다.

 

이렇듯 <훈계하지 않고 학생을 지도하는 기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하는 기술은 어려운 기술이다.> <자연의 지도 즉 경험에 따른 훈련>은 아이들이 타의에 의해 강제되는 배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배움을 가능하게 한다.

 

2부를 요약하자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교육해야 한다. 말로써 진행되는 교육은 이 시기에 맞지 않다. 보여주는 방법, 경험하여 알게하는 방법이 적합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자하는 마음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연이 가르치게 하라.

 

제3부 지능과 기술 교육 -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유아기의 자유로운 신체의 발달, 유년기의 감관의 훈련, 그리고 뒤이어 지능의 발달로 이어지는 교육이 이루어 진다.

<정신이 최초로 작용할 때에는 언제나 감각만이 정신의 안내자가 되게하라. 이 세상 왜의 책은 주지 말 것이며, 사실 외의 것은 가르치지 말라.>  정신, 지능등의 교육에 입문할 때는 반드시 경험을 통해 그것이 이루어 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신의 아이에게 자연현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곧 그를 호기심 많은 아이로 만들 것이다. 그런데 그의 호기심을 더욱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서둘러 그 호기심을 만족시키지 말라. 그의 능력 범위 안에서 문제를 내고, 그것을 스스로 풀게 하라. 당신이 그에게 이야기해 주어서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이해함으로써 배우도록 하라. 다른 사람의 지식을 배우게 하지 말고 그가 만들어 내도록 하라. 만실 당신이 그의 정신 속의 이성을 권위로 대치하면, 그는 더 이상 이치를 따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타인의 사고의 노리개가 될 뿐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의 감각적인 관념에서 또 다른 감각적인 관념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다음 관념으로 넘어가기 전에 오랫동안 동일한 관념에 익숙하도록 함, 또 우리의 학생에게 결코 강요해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지는 않>는다.

<나의 교육정신은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두뇌 속에 정확하고 명료한 관념만 넣어주는 것임을 잊지말라.>

<그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학문을 사랑하는 취미를 갖게하여 그 취미가 더 커질 때 학문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확실히 그것이야말로 모든 좋은 교육의 근본원칙이다.>

<또한 같은 것에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도록 조금씩 습관을 들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대로 그것이 강제여서는 안된다. 그러한 주의를 유발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움이나 욕구여야 한다. 그것이 그를 괴롭힌 나머지 지겨워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할 일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를 기울여 그를 살펴보라. 어떤 일이 있어도 그가 싫증내기 이전에 그만두게 하라. 그가 무엇을 배우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하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당신에게 질문하면 그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답변이 아닌 오히려 호기심을 더 증대시키는 답변을 해주라.>

<나는 말로 설명하는 것을 종하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런 설명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기억하지도 못한다. 실제 대상을 ! 실제 대상을! 이 말에 아무리 중요성을 부여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수다스럽게 지껄이는 교육으로는 수다쟁이밖에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라고 아이에게 말해주기는 쉽다. 하지만 그를 납득시킬 줄 모르면 그런 일은 아무 소용이 없다.>

 

직업교육

<당신이 가장 마음을 써야 할 것은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사회적 관계들에 대한 모든 관념을 그의 정신으로 부터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의 연계성으로 인해 당신이 인간의 상호 의존 관계를를 보여주지 않을 수 없을 때, 그것을 도덕적인 면에서 보여주는 대신 그의 모든 주의를 먼저 서로를 유용하게 만드는 산업과 기계 기술로 돌리게 하라.>

<먼저 사룸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라. 그후에 그것이 우리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가르쳐라. 그렇게 하면 그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진실을 비교할 줄 알며, 대중의 통속적인 견해를 초월할 줄 알 것이다.>

<한 젊은이를 현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판단을 그에게 주입시키는 대신 그의 판단력을 잘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기술을 그렇게 필요로 하지 않는 기술 - 그것은 더 자유롭고 더 독립상태에 가깝기 때문에- 이 다른 기술에 의존적인 것보다 더 존경받을 만하다는 점을 말해 두고 싶다. 이상이 기술과 산업의 평가에 대한 진정한 기준이다.

 

<우리는 그의 신체와 감각의 단련부터 시작하여 그의 정신과 판단력을 훈련시켰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의 손발의 상요법과 그의 능력의 사용법을 연결시켰다. 우리는 그를 행동하고 생각하는 존재로 만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인간을 완성하기 위해 그를 자애심많고 다정다감하며 인정 많은 존재로 만드는 일만이 남아 있다. 말하자면 감정에 의해 이성을 완성하는 일이다.>

<우리의 학생은 처음에는 감각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느낄 뿐이었는데, 이제는 판단을 한다. 연속적이거나 아니면 동시적인 여러 감각의 비교와 그에 관하여 내리는 판단으로 부터 내가 관념이라고 부르는 혼합 감각 또는 복합 감각이 생겨난다.>

<나로서는 그가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를 자기가 믿는 모든 것에 대해 왜를 발견할 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목적은 그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그것을 획들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지식의 가치를 정확하게 가늠하도록 하는 것이며 특히 그가 진실을 사랑하도록 하는 일이다. > 

 

 

제4부 도덕과 종교교육 -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까지

도덕 교육과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다만 종교교육과 관련하여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신부의 신앙고백이 그것이다. 그는 신이 존재한다는 자신의 신앙을 담담히 고백한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목적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의 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개인적인 이유를 고백한다. 그는 움직임에 주의를 돌린다. 움직임에는 두가지가 있을 뿐인데, 그 하나는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수동적 움직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외부의 힘의 작용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능동적 움직임이다. 그는 이 능동적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능동적 움직임의 근원은 이성이랄까, 의지랄까, 지성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주적인 모든 움직임의 근원엔 그를 가능하게 한 애초의 의지가 있었음을 확신한다. 그의 자연신에 대한 믿음의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계시의 신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수많은 종교들이 나름 진리라고 주장하는데 그 중에서 진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면서 증명하거나 확증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논쟁은 뒤로 밀이내 버리고 종교의 도덕적인 면에 관심을 가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는 그는 복음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불가사의라고 평한다. 그 놀라운 가르침은 인간을 초월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 기록 가운데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계시의 신에 대한 모습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칸트가 에밀을 읽다가 자신의 산책시간을 놓쳤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들을 바 있는데, 아마 칸트는 그 때 이 부분을 읽고 있었으리라....

 

제5부 에밀과 소피의 결혼- 스무 살에서 결혼까지

이 부분에서 그는 여자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나름 흥미있다. 자연으로 보아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러므로 자연주의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둘 사이에 행해지는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교육사상인듯 한다. 특히 남성위주의 사회에 일원이던 루소는 여성의 교육은 어느정도 남성의 교육에 종속적인 성질을 지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듯 하다. 하지만 여성이 올바른 교육을 받게되면, 남성을 지배할 수 있음을 비친다. 남자는 세계를 지배하지만 여자는 그 남자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남자를 지배하기 위해 여자들은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할까? 어떠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남자를 지배할 수 있을까?

에밀이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졌다는 것은 이 부분을 일컫는 것이다. 에밀과 소피와의 연애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상황들이 소설적으로 펼쳐진다.

 

이 책은 거의 900여 페이지에 달한다. 루소는 정말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그 만큼 생각의 폭과 깊이가 있다는 것이겠다. 이러한 고전을 읽으면 인간 이성의 힘이 얼마나 큰 지 놀라게 된다. 가끔씩 순수한 인간의 이성으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위대한 인물들의 생각이나 사상을 폄하한 적도 있었다. 그들의 생각도 단순한 한 인간의 생각에 불과한 것인데, 나와 같은 사람의 생각에 그리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있겠느냐고...하지만 몇몇 고전으로 평가되는 책을 읽고서는 그 이성의 힘의 크기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근 50년을 살아온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러한 넓이와 깊이를 보여주고 있기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진리로 귀결되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의 이성은 인간사고의 한계를 더 넓혀주는 것이 분명함을 느낀다. 나의 사고도 더 넓고 깊은 힘을 가지게 되어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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