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표랑하던 영웅이 돌아오다

 

17장 두 아들을 죽게 만든 요부 여희

18장 천하를 얻으려면 지략이 뛰어난 참모를 얻어라

19장 은헤를 원수로 갚는 진혜공

20장 한원대전

21장 수신제가치국평천하

22장 천하를 노리는 송양공과 초성왕

23장 천하를 주유하다

24장 형수를 빼앗고 왕이 된 망나니

 

3권의 주요인물

 

백리해, 진나라의 모신, 원래 우나라 출신이었으나 벼슬길이 열리지 않아 천하를 유랑하면서 70세가 될 때까지 궁핍하게 지내다 초나라에서 염소가죽 다섯장에 진나라로 돌려보내는 바람에 명성을 떨친다.

건숙, 백리해와 쌍벽을 이루는 진나라의 모신, 신선같은 사람으로 백리해를 위해 진목공을 돕다가 은퇴한 뒤 송 명록촌에서 일생을 마침

중이, 진헌공의 아들. 여희의 음모로 세자 신생이 죽자 모든 신하가 왕으로 떠받들려고 한 어진 인물, 여희로 인해 쫓겨나 19년동안 기나긴 망명생활을 하다 마침내 진문공이 되어 제환공의 뒤를 이어 천하의 패권을 잡는다.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

조쇠, 진문공이 망명생활을 할 때 가신, 진문공이 천하를 정복하는데 일조

개자추, 진문공이 굶주릴 때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일 정도로 충성스러운 가신, 진문공이 금의환향하자 상을 받지 않고 면산으로 들어간다. 그를 불러내기 위해 불을 질렀으나 타죽고 만다. 찬밥을 먹는 한식을 유래

호언, 진나라의 맹장, 중이를 따라다니며 표항

도안이, 자객이 되어 역적 동관오와 이오를 죽이고 진나라 정권을 바로 잡는데 일조. 한원대전에서 진나라의 맹장 백을병과 꼬박 하루동안 싸우다 죽는다.

진혜공, 중이의 배다른 동생, 해제와 탁자가 죽자 어부지리로 왕이 된다. 중이를 따르는 충신들을 죽임으로 덕을 잃는다. 한원대전에서 진나라에 패하여 포로가 된다.

진목공, 건숙과 백리해를 거느리고 백을병과 맹명시등의 맹장과 함께 진군을 크게 격파하고 이름을 떨친다. 말년에 서융을 완전히 평정하여 중국 서쪽의 패자가 된다.

수조, 제환공의 총신, 자신의 남성을 거세하고 궁중에서 일하다 제환공이 늙어 병들자 배신한다.

역아, 제환공의 요리사, 제환공이 사람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자신의 아들을 요리해서 바친 비정한 인물, 관중이 죽자 수조와 함께 제환공을 배신한다.

안아아, 제환공의 어린 첩, 수조와 역아의 배신으로 비참한 상태가 된 제환공과 함께 죽는다.

태숙 대, 주나라 주양왕의 동생, 형수인 후숙외와 간통하고 나라를 찬탈하려다 진문공의 토벌을 받는다.

후숙외, 적주의 딸, 주양왕에게 시집온 후 태숙 대와 밀애를 나눈다. 결국 진문공에게 목이 잘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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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제왕의 도

9장 관포지교

10장 어진 부인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11장 신하가 임금을 죽이다

12장 관중에게 패자의 길을 배우다

13장 산융대장정

14장 오패의 첫째가 되다

15장 두 영웅의 대결

16장 나라를 망치는 요부들

 

2권의 주요인물

 

관중, 이름은 관이오, 포숙아의 절친, 관포지교의 유래자

제환공에게 발탁되어 지략과 병법으로 천하를 제패하여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되게 한다. 제왕의 도를 가르치는 <관자> 라는 유명한 책을 남긴다. 

제환공, 용인술이 뛰어나 관중, 포숙아, 영척, 습붕등 쟁쟁한 인물을 거느리고 천하를 제패한다.

포숙아, 관중의 절친, 위기때마다 관중을 구해주고 제환공에게 그를 천거,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

남궁장만, 송나라의 역사, 송민공이 자신을 우롱했다고 시해

조말, 제환공이 맹회를 열때 단신으로 제환공에 칼을 겨누고 위협하여 땅을 되찾은 노나라의 장수, 협객, 유협, 임협이라는 말이 이때부터 유래

위의공, 학을 좋아하여 정사는 돌보지 않고 오로지 학만 키우다가 적족이 쳐들어와 나라는 망하고 자신은 죽임을 당한다.

광연, 위나라의 충신, 위의공의 처참한 시긴을 관에 모셔야 한다며 위의공의 간을 찾아 자신의 배를 가르고 관대신 그 안에 모신다.

문부인, 식나라 왕의 부인으로 미모와 부덕이 뛰어난 여인, 강제로 초문왕의 부인이 된다. 어질고 현명한 여인으로 미망인이라는 말이 유래

초성왕, 문부인의 아들로 초나나를 강성하게 하여 중원으로 진출한다.

투곡어도, 초나라의 충신, 초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다.

목이, 송환공의 서자, 송양공이 헛된 인의만 내세워 초나라와 싸우다 포로가 되자, 그를 구출하기 위해 왕위에 앉았다가 송양공이 돌아오자 다시 왕자리를 내어준다.

송양공, 초나라와 전쟁시 예의로 대하다가 대패, 맹주 노릇을 하려다 포로가 되는 비운을 맞는다. 송양지인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

순식, 진나라의 충신, 전헌공의 유명을 지키기 위해 여희의 두 아들 해제와 탁자를 보호하려다 비참하게 죽는다.

2012 11 22

열국지의 방대한 인물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권(신화에서 역사로)의 목차

1장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다

2장 주지육림의 향연

3장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4장 요부 포사의 미소

5장 전자의 시대에서 제후의 시대로

6장 천하는 대란에 빠지고

7장 정나라의 군위가 춤을 추다

8장 음부와 간부

 

1권의 주요인물

중국의 창조신화

반고, 여와

 

삼황오제시대

삼황 복희씨, 여와씨, 신농씨(염제).

오제시대의 막을 연 황제는 판천대전에서 신농을 패배시키며 천자가 된다. 그리고 이후 탁록대전에서 치우를 무찌른다.

그 이후에 전욱, 곡이 뒤이어 제위에 오른다.

곡의 아들이 제위에 오르니 이가 요임금이다. 요임금의 덕치는 함포고복이라는 고사성어를 유래시켰다.

요임금때 허유와 그의 친구 소부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요임금이 뒤를 이을 어진 사람을 찾아 허유를 추천받아 그를 천자로 삼으려고 하나, 여유는 영수뒤의 기산에 숨어버렸다. 그 후 요임금이 구주에 임명하려 한다는 말을 듣자 영수에 내려가 귀를 씻었다. 그 때 허유의 친구 소부가 소에게 물을 먹이러 왔다가 그 말 - 더러운 말을 들었기에 귀를 씻는다는 말을 듣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한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더러워진 자네의 귀를 씻은 물을 내 소에게 먹일 수 없지 않은가?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를 뒤이어 순이 다스리며 요순시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요임금의 딸로 순에게 시집간 두 딸 아황과 여영은 현모양처의 전형이 된다.

 

하,은,주시대

우왕은 중국 치수의 아버지

걸왕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폭군. 말희와 더불어 주지육림을 만든 왕. 도탄지고라는 고사성어가 유래.

탕왕, 현명한 재상 이윤의 도움으로 걸왕을 죽이고 중국의 지배자가 된다. '식언'이라는 말의 유래자

주왕, 달기와 함께 악정을 연 인물, 포락지형으로 충신을 학살

서백,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로 이름은 희창이다. 위수에서 강태공을 만나 주나라의 초석을 놓는다.

무왕, 강태공 여상과 함께 주왕을 몰아낸 주나라의 왕

강태공, 80세까지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낚시를 한 인물로 유명, 제나라의 제후로 봉해진다. 무경이라 불리는 최초의 병서 육도를 지었다.

복수불반분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포사, 유왕의 부인으로 거짓봉화에 속아 허둥지둥 달려온 제후들을 보고 웃었다고 한다.

석작, 위나라의 충신, 아들이 역적이 되어 임금을 시해하는 일에 가담하자 의를 위해 불의한 아들을 죽여 대의멸친이라는 고사성어를 남김

제족, 정나라의 지략가, 충신. 정장공과 제족이 함께 정나라의 강성기를 이루었다.

문강, 제나라 임금의 딸로 타고단 요부, 오빠와 간통한 뒤 노나라로 시집간 후 여전히 음탕한 짓을 되풀이

선강, 문강의 언니, 위나라 태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으나 시아버지인 위선공이 미색에 반해 첩으로 삼는다.

 

 

창업보다는 수성이 어렵다....중국을 통일한 대제국들 다수가 불과 몇십년만에 사라져 버리는 일이 있었다하니,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중국을 통일한 대제국 진나라가 그러하다. 이제 부터 진의 중원통일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이라 그냥 읽고 나면 모든 것이 허공으로 흩어져 버려 내 머리에 남는 것은 없어진다. 이후에 참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선 그 골격을 남겨놓아야 한다. 실제로 이러한 남겨진 자료들은 나중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이 지속되면서 통일에 대한 필요와 열망이 꿈틀거리면서, 결국 전국시대의 칠웅중 하나인 진왕 정은 나머지를 정복하고 통일의 대업을 완수한다. 천하를 통이란 정은 스스로를 '시황제'라 칭한다. 첫번째 황제라는 의미이다. 진시황제는 봉건제를 배척하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만든다. 그리고 각종 제도와 관습에 대한 통일도 이루어 진다. 글자체를 '소전체'로 통일하고, 반란시 신속한 이동을 가능하게 할 '치도'를 개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통일정책은 사상의 통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중앙집권적 정책에 반발한 이들이 시경과 서경의 내용을 인용하여 비판하자 이에 시황제는 진의 역사서,의약,점술,농업등의 실용서 이외에 모든 서적을 불태우고 고서에 대해 논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고 옛것을 찬ㅁ하고 진을 비방하는 자는 일족을 멸한다는 법령을 반포한다. 이른바 분서령이다. 다음 해 시황제가 선약을 구해 오라고 명을 내린 방사들 가운데 시황제를 비방하고 도망치는 자들이 나오자, 시황제는 유생과 방사들 가운데 죄가 있다고 생각되는 460여명을 잡아다 산채로 묻어 죽였다. 이것이 유명한 분서갱유사건이다.  

 

황제라는 위엄을 살리기 위해 시황제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어킨다. 아방궁, 병마용으로 유명한 능침인 리산(여산)능등...

아울러 북쪽 유목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5000리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완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역사는 결국 백성에 대한 수탈을 극에 달하게 함으로 나라의 패망을 앞당기게 된다.

 

천성과 우광의 최초의 반란이 있게되면서 옛 초나라 땅에서는 샹량(항량)과 샹위(항우)가 일어선다. 비슷한 시기에 류방(유방)도 기병하게 된다. 류방과 샹위는 진의 항복을 받은 이후 패권을 위한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한다. 열세인 류방은 샹위의 진영에 들어가 그를 대항할 뜻이 없음을 밝힌다. 이것이 유명한 홍문지회이다. 류방을 이 기회에 제거하자는 판쩡(범증)이 충고에 우유부단했던 샹위는 결국 류방을 놓치게 되어 천하를 두고 다투는 초한지전을 초래하게 된다. 초패왕인 샹위가 '사면초가'에 몰려 있을 때 그의 애첩이 자결하는 장면을 그린 '패왕별희'도 이 시기에서 유래된다. 류방이 최후의 승자가 되어 황제의 자리에 올라 한나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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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 - 고대 신화전설의 시대에서 신해혁명까지    조관희 지음/ 궁리출판사 2012 11 3 -

 

E. H. 카아가 말한 것 처럼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한 조관희 교수의 방식은 나름 흥미가 있다.

 

중국의 창조신화 와 삼황 오제 시대

중국의 창조신화인 반고이야기와 뉘와이야기에 이어 삼황 오제 신화가 등장한다. 삼황은 수인씨, 복희씨, 신농씨를 이른다고 하는데, 그러면 염제, 황제, 치우는 또 이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삼황시대 후에 오제가 등장하는데, 그 오제의 마지막 두 인물이 야오(요)와 순이다. 이런바 요순시대이다.

 

하,은,주 시대

순이후에 위(우)가 후계자로 승계하고 그 아들 치가 자리를 물려받음으로 세습왕조가 시작된다. 이리하여 '위'로 부터 시작되는 하나라가 등장하게 된다. 하나라는 아직 고고학적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그 신뢰성이 약하다.

 

그 뒤를 이어 '은'나라, '주'나라가 차례로 등장하게 된다. 갑골의 발견으로 그 실체가 의문시되던 은나라가 최초의 국가로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주나라의 문왕의 뒤를 이은 무왕은 은나라를 멸망시킨다. 은의 마지막 왕 주왕의 폭정은 '주지육림' '포락' 등의 단어에 나타난다.

 

주왕의 폭정에 항거한 무왕의 행동은 하늘의 뜻인 '천명'을 살핀 결과이고, 천명에 의해 왕이 된자는 '천자'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하를 다스린다는 사상이 확립된다. 무왕이 죽어 그의 어린 아들 성왕이 즉위하자 무왕의 동생인 주공 단은 섭정이 되어 충심으로 성왕을 보필했다. 그렇게 하여 왕조의 기틀을 공고히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쿵쯔(공자)를 비롯한 후대 사람들은 주공의 이러한 충심으로 조카를 보필한 행동을 칭송하여 찬사를 보내며 그 공을 기렸다. 주나라가 이웃의 소국들을 정복해 나가면서 나라가 커짐에 따라 봉건제도가 필연적으로 시작된다. 교통과 통신상의 문제로 그 넓은 영토를 직할 통치할 수가 없었기때문이다.  그리고 그 제후로는 혈연관계에 있는 자를 임명함으로 종법제도를 국가의 지배이념을 삼게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제도의 모순점이 표면화되면서 주 왕조가 쇠퇴하게 되고 이민족의 침입을 적절히 방어할 수 없어 수도를 동쪽의 낙읍으로 옮기는 이른 바 '주의 동천'이 있게된다. 이리하여 서주시대가 마감되고 동주시대가 시작된다. 이런 와중에 제후들은 주변의 토착민들을 신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어 지역신인 사와 농업신인 직의 제단을 제후의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종묘사직)와 함께 궁궐의 좌우에 안치하여 정신적으로 일체감을 형성하며 토착민을 위한 제도를 실행함으로 점차 세력을 강화해 나간다.

 

왕조말 나라를 망친 미인들

하나라 걸왕때 당시의 고가품이었던 비단을 찢는 소리를 좋아했던 말희(모시), 은나라 주왕에게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며 질러대는 비명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던 달기(다지)라는 여인이 있었고, 주나라의 유왕의 여인인 포사(바쓰오)는 평소에는 웃음을 보이지 않았으나,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에 놀라 달려온 제후의 군사들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한다.

 

춘추전국시대

동주시대는 명분에 따라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천자에 의해 근 514년간이나 지속된다. 이 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누어진다.

춘추라는 말은 쿵쯔가 엮은 '노'나라 역사 연대기인 춘추에서 나왔고, 전국은 당시 천하를 유세하던 사(선비)들의 담론을 모아놓은 책인 전국책에서 유래하였다. 춘추시대의 패자였던 진이 한과 위, 조 세나라로 갈라선 일을 기준으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눈다.

 

춘추시대중기에 이르러 변방의 제후국이었던 제,진,초 나라등은 대국을 이루어 패권을 다툰다. 동방의 대국인 제나라는 명재상 관중을 등용하여 나라가 강대해 지고 제의 환공은 패권을 향한다.그리고 남방의 신흥세력을 대표하는 초와 대립하는 형세를 취한다.

 

 제나라가 쇠락한 후 송의 양공이 패자를 자처하여 초와 일전을 벌인다. 송의 재상인 목이(무이)의 초가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는 건의를 무시하고 점잖은(?) 정공법을 택해 패하게 된다.

 

그 뒤 송의 패권을 이어받은 것은 진 문공이다. 그는 초나라에 오랫동안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망명생활시 졔즈투이(개자추)가 제 살을 베어 진 문공을 대접하기도 하였으나 왕위에 오른 후 논공행상에서 제외되자 실망하여 몐산(면산)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나중에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그를 불렀으나 나오지 않아, 그를 나오게 하기위해 산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나오지 않고 타죽고 말았다. 이에 진 문공은 그 날 불로 익히지 않은 찬밥을 먹었는데 이가 한식의 유래가 되었다한다. 진 문공이후 진나라와 초나라가 대립하는 형상을 띄고 있다가 이후에 초의 배후에서 오와 월이 초의 북상을 견제하게 된다.

 

춘추시대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군주의 혈족 그리고 귀족의 세력이 쇠퇴하고 신흥 호족의 세력이 정치의 실권을 쥐게되면서 이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결과 진나라는 세 나나로 나뉘게 됨으로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 주왕의 권위는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이른바 전국칠웅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게된다.

 

소도시 중심의 읍제국가의 형태인 춘추시대와는 달리 전국시대에는 패권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징병제를 실시하며 대병력에 군량을 도입하기 위한 새로운 수취방식의 필요가 있게되었다. 그래서 지방행정조직인 군현제를 실시하며, 관료를 파견하여 다스리는 중앙집권적 관료국가가 형성되게 된다. 봉건제도에서 관료제도로의 변화가 이 시기에 있게 된 것이다.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명분보다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제후들의 제 일 관심사는 나라를 강성하게 하는데 쏠리게 된다. 그래서 가문이나 신분의 상하를 불문하고 재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기풍이 확립된다. 아울러 몰락한 귀족들이 살 길을 찾기 위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살길을 찾게 되니, 이들은 통치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서로의 생각을 논박하는 과정을 통해 웅변술을 익히고 논리학이 발전하게 된다. 춘추시대의 체제와 질서와 전통의 몰락의 현장에서 보수주의자들은 회귀를 주장하고, 혁신적인 사상가들은 개혁과 쇄신을 주장하는 등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역사상 전무후무한 학술과 사상이 만개한 시기이다.'제자백가' '백가쟁명'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제자백가의 선두에 선이가 쿵쯔(공자)이다. 그는 유교적인 교양을 받은 관료제의 의한 문치적 봉건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그의 제자들은 여러 나라의 관료로 채용되면서 무력과 권력을 배제한 도덕과 예를 바탕으로 한 도덕 정치 곧 덕치를 주장하게된다.

 

이 덕치사상을 구체화한 인물은 그의 제자인 멍쯔(맹자)이다. 그와 양혜왕과의 대화에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난다. 부국강병병책을 묻는 왕에게 대답하기를 "왕께서는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만이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라고 합니다. 위와 아래가 서로 이익을 다투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라고 설파하다. 쿵쯔가 말한 '인'에 '의'를 더해 자신의 '왕도'정치를 완성하였다. 그의 사상은 '성선설', 민의에 의한 폭군이 교체를 합리화한 '혁명론'을 중심 기둥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도 이런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유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나라가 그의 사상을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춘추전국시대나 그 이후 현실정치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 한 것은 법가의 법치이었다. 전국시대 칠웅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위나라에서 등용한 리쿠이(이회)는 쿵쯔의 제자가운데 사회개혁의 의욕이 가장 강했던 쯔샤(자하)의 제자로서 법률개정 즉 변법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중국 최초의 성문의 형법 법전이라 할 만한 '법경'을 썼다. 법가의 주요인물중 한 명인 상양(상앙)은 법경을 바탕으로 진나라의 법률을 완성하였고, 이가 한나라와 당나라에 이어졌다. 이쿠이가 법가의 선구였다면 상양은 리쿠이의 성문법을 계승 발전시켜 변방의 별 볼일 없는 후진국에 불과했던 진나라가 후일 전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던 계승자라 할 수 있겠다.

 

법률에 의한 신상필벌을 강조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법치라고 하고 이와 같은 법치에 의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패도정치라고 한다. 중국역사를 돌리켜 보면 백성의 뜻을 중시하고, 제왕이 된 자의 덕망에 천하가 교화되어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는 왕도정치를 표방한다. 하지만 실제로느 권모술수와 잔혹한 형벌에 기대 어리석은 군주의 실정을 호도해 나가는 패도정치가 시행되었다. 왕도정치와 패도정치는 이후 펼쳐지는 역사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갈마드는 영원한 딜레마이다.

 

쑤친(소진)은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나머지 육국을 종으로 묶어 대항하는 합종책그 완성하여 육국의 재상을 겸하였다. 이 육국의 합종책에 대항해 나온 것이 연횡책, 연형책이다. 이것은 장이(장의)에 의해 주장되었으며, 육국을 설득해 진과 동맹을 맺게 만든다. 진의 재상 판쑤이(범수)원교근공의 계책을 채택하여 멀리있는 나라와는 친목을 도모하고 인접한 나라를 적극 공략하였다. 이후 창핑(장평)에서 조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40만 대군이 몰살당함으로 전국시대 열국들의 치열한 쟁패는 결전나고 말았다. 진의 천하통일로 인해 동주시대와 아울러 전국시대도 끝이 난다.  

 

이 책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고전들의 다수가 춘추전국시대에 나온 것으로 생각되는 바, 공자와 맹자...그리고 그의 제자들, 명재상들의 활동...수 많은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들이 이 시대를 배경을 펼쳐지는데, 아주 적으나마나 그 시대의 역사의 흐름을 볼 수 있어 차후의 책읽기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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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박에 모인 108명의 영웅호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

기억이 나는 인물은 노지심, 임충, 청면수 양지, 조천왕 조개, 적발귀 유당, 지다성 오용, 입지태생 완소이, 단명이랑 완소오, 활염라 환소칠, 입운룡 공손승, 운현성 급시우 송강, 백일서 백승, 무이랑 무송...그 외에 두천, 송만,주귀

청풍산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금모호 연순, 왜각호 왕영, 백면낭군 정천수, 청풍채 부지채였던 소이광 화영,진영, 황신, 석용, 소온후 여방, 새인귀 곽성, 신행태보 대종, 흑선풍 이규, 백리낭조 장순, 옥비장 김대견, 성수서생 소양, 장횡, 이준, 목홍, 주귀의 동생 주부, 주부이 창봉스승인 이운, ...

허나 이들의 영웅호걸의 풍모는... 어째 좀 호탕하다고는 하나, 의를 위하는 풍모는 없는 듯... 노름꾼에 불량배에 술주정뱅이들이 대부분이니까...

임충이나 송강은 조금 나아 보인다. 특히 송강은 인품으로 널리 강호에서 영웅호걸로 이름이 나 있는 사람이지만, ...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선인지...구별할 수 없는 혼탁한 세상, 뇌물이 횡횡하고, 사람죽이는 것을 업수이 여기니 세상이 말이 아니로다.

서로 영웅호걸이라 일컫는 자들을 서로 도와조고 공경하는 것은 좋은데, 그냥 평범한 사람들은 어쩌냐...

단지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공경이 깍듯하고 위하는 마음이 충성스럽기는 하다.

또한 널리 이름을 떨치는 이를 영웅호걸이라 불러주니...하지만 영웅호걸이 아니라 망난이같은 이도 호걸이라하여 우러르니, 이는 옳지 못한 처사..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 / 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추부밭  2012 10 24-26 읽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학자의 눈에 따라 역사는 달리 서술될 수 있구나 하는 점을 새삼 느낀다. 전통적인 역사서술과는 달리 진보적인 역사서술, 민중 중심의 역사 서술을 통해 본 역사는 사뭇 달라 보인다. 또한 이러한 기술은 역사를 보는 눈을 새롭게 해 주며,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탐욕이 어떻게 역사속에 투영되어 잔혹하고 더러운 역사가 진행되었는지, 더 나아가 현재의 역사의 흐름에 있어 그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며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과연 이러한 진보주의에 입각한 민중중심의 역사를 얼마나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갈등도 아울러 가져다 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는 이제까지 우리가 듣거나 배우지 못한 전통적인 역사 이면에 숨겨져있던 잔혹하고 더러운 검은 손을 드러내 주며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다.

 

콜럼버서는 신대륙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콜럼버스가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악명높은 인디안 학살범으로 설명하고 있다. 평화롭게 지내던 신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내디딘 콜럼버스와 그 일행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던 인디언들에게 금을 얻기 위해 총칼을 들이대고 학살을 자행한 잔혹한 사람. 이 이후로 미국역사 전체를 걸쳐 인디언은 이 땅을 침입한 이방인들에게 속고, 강탈당하고, 뺏기고, 죽임을 당하는 치욕과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데, 그 누가 아니 그 아무도 이러한 역사를 가르쳐 준 사람이 없다.

 

미국의 흑인노예, 아프리카에서 잡혀와 기구한 노예로서의 생활을 감내해야 하였던 흑인들의 역사, 그리고 흑인노예만큼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가난한 백인들, 전통적인 역사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없다. 다만 가진 자들의 역사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의 집단이 더 추가되는데, 바로 여성들이다. 오랫동안 피억압자로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그 집단... 이 모든 힘없는 민중들의 역사가 바로 하워드 진의 <살아있는 미국역사>에서의 주인공들이다.

 

놀라운 것은 미국 헌법도 사실은 가진 자의 보호막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데, 그 헌법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 가진 자들이었으며, 인디언과 흑인과 가난한 백인 그리고 여자들은 아무도 그 가운데 속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헌법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경위는 과연 정의를 위한 것이었는가? 전쟁이 끝난 후 냉전체제가 시작되고 공고히 된 것은 실제 상황이 그러했기때문인가? 베트남 전쟁이나 걸프전등은 과연 인류애에 근거한 전쟁이었는가? 기타 등등 미국의 국내 정책이나 외교정책은 그 이면에는 탐욕,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늘리려는 가진 자들의 제국주의적인 행동이었음을 이 책은 고발하고 있다.

 

쿠르드 괴델이라는 수학자가 미국시민권을 얻기 위해 공부하던 중 미국 헌법이 독재 정권을 출현시킬만한 요소들이 있는 취약한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심사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줄줄이 설명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읽은 적인 있는데, 과연 미국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 핀 아름다운 나라인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진정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자 한다면 이러한 탐욕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겠지. 가진 자와 대항하여 깨어지고, 넘어지고, 억압을 당하면서도 계속 생존을 위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 놓고 투쟁한 그 민중의 역사를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민이 현재 누리고 있는 그 권리들은 이러한 피 흘린 민중들의 투쟁의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현재에도 여전히 가진자의 횡포가 법을 빙자하여 자행되고 있는 상황을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가진 자의 역사와 못 가진 자의 역사, 그 둘을 아울러 살펴보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작업은 역사가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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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아파한 조선 선비의 청국 기행 북학의  박제가 지음/ 박정주 옮김/ 서해문집 2012 10 21-23 읽음

 

'북학의'란?

 

'북학의'는 박제가가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조선에 실행하여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북학의'에 나오는 '북학'이라는 말은 원래 <맹자>에서 진량과 같은 남만의 지식인이 '주공공니지도' 곧 유학을 북쪽 중국에 가서 배운다고 하는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다. 1778년 박제가가 이부분을 인용하여 중국의 문물을 배울 것을 주장한 자신의 저서 제목을 <북학의>라 이름한 이후 북학은 청나라에 중화의 선진문물을 배운다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게 된다. ( * 참고: 중국 남북조시대에 북조는 경학을 중시여겼으나, 남조는 노장사상이 강하여 청담(명리를 떠난 맑고 고상한 이야기)가 성행하였고 문학과 예술을 중히 여겨 시인과  문학가가 속출하였다. 북조의 북학에 대하여 이를 남학이라 한다)

 

그리고 '의'라는 말은 원래의 문자적인 뜻은 '의논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나, '북학의'의 '의'는 일종의 한문의 문체를 일컫는 것이다. 

'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의'는 정도(正道)에 근거하여 이치를 밝히거나, 올바른 방향에서 정사를 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옳은 사례를 이끌다가 오늘의 잘못을 밝힐 수도 있고, 근원을 따져서 말류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도 있다. 번거로운 논리보다 분명한 사리로 펴내야 한다. 따라서, 글은 간결한 것을 으뜸으로 쳤고 번잡한 것은 잘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면 여러 신하들이 모여 의논을 하게 되는데,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워 떠들썩하게 되자 글을 지어 올리게 되었다. 그러자 학사들이 보는 바가 있으면 집에서 사사로이 의논을 하게 되어 이때부터 의가 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뒤 문인에 의하여 일정한 대상에 개인적인 생각으로 의논한 의가 많이 지어졌다.>

 

박제가가 그의 저서를 '북학의'라고 한 것은 중국의 선진문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 표현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개략적 내용

 

'북학의'는 박제가가 청나라에 사절로 방문하여 보고 듣고 본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그래서 기행문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차라리 일종의 과학기술소개서 또는 정책 건의서라고 보여진다. 예를 들면 경제의 혈맥과 같은 교통의 문제와 관련된 수레의 사용, 배의 사용, 그리고 도로등에 대해서 큰 비중을 두고 논한다. 그리고 경제의 기본이 되는 농사와 관련하여 농사짓는 방법, 농기구, 거름의 제조 및 사용등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벽돌을 제조하고 사용하여 성곽과 집을 건축하여 더 나은 주거생활을 장려하고 있다. 그리고 기타 중국의 발달한 기술문명등을 조선에 도입하여 백성의 가난을 물리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아울러 과거제의 폐단과 그 개선책을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읽고 난  후

 

첫째로 박제가의 사물을 통찰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박제가는 사물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단순히 벽돌이나 수레등의 유용성에 의거하여 이를 사용해야 한다고만 말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인프라, 즉 도로의 건설이나 표준화 문제등을 관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들이 경제에 어떠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인지도 통찰하고 있다. 그의 글 가운데 잘 드러나고 있는 중상주의 즉 상공업의 활성화를 염두에 두고 이러한 기술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북학의를 단순한 기행문으로 규정짓는 것을 곤란하게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행문이라기 보다는 경제서 또는 기술서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그 당시 조선 백성들의 생활상, 그리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한민족의 병폐등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백성의 의식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의 사상은 형이상학적인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상공업이나 먹고사는 문제등의 실학적인 기풍이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던 환경하에서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고 더군다나 대충대충하는 한민족의 지워버릴 수 없는 폐단으로 백성들의 삶의 기반을 이루는 정책 또는 인프라등이 조악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었다. 세종대왕시대의 과학의 장려와 발전등이 그 이후 세대에 이어지지 않고 그 명맥이 끊어진 상태로 조선의 과학기술문명은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여 아시아의 최빈국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 이와 같은 와중에서 가난한 백성들의 실정을 개선하여 의식주를 해결해 주며 국력의 신장을 꾀하고자 하는 그의 원대한 포부가 드러나 있다. 폐단이 많던 과거제를 개혁하여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인구의 증가를 꾀함으로 경제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세째로 박제가의 개방성과 혁명성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를 사대로 대하고 있었으나 그들을 오랑캐 나라라고 말하며 그들의 문화를 천시하고 멸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배우자고 주장하는 것은 조선을 문화국으로 자부하는 조선의 선비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며, 오랑캐의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의 조선의 상황은 이렇듯 청나라의 발전한 과학기술들을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더군다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극적으로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사상은 당시에 비추어 보아 혁명적이기도 하다. 중상주의적 그의 사상은 당시의 중농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혁명적인 발상이다. 특히 근검절약과 소박한 생활을 장려하던 당시의 풍속에 반하여 소비의 진작을 통해 생산을 촉진하며 도로의 건설과 수레 및 선박의 사용,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상공업을 발전시켜 백성의 의식주생활의 수준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른바 경제발전을 도모함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부여하며, 그 실천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이 당시 태동하고 있었던 실학사상과 아울러 실제 정책으로 실시되고 그러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었더라면 한민족의 치욕의 여가인 식민시대는 겪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사실 이 책에 나와 있는 벽돌, 수레의 제조, 선박의 구조 및 농기구의 사용등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큰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저서에 나타나 있는 그의 사상이다. 그의 개방적이며 혁명적인 사상, 실학적인 사상, 그의 통찰하는 방식등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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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답사 일번지  유홍준 지음 / 창작과 비평사  2012 10 15 ~10 19 읽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가볍지만 즐거움을 주는 놀라움을 느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딪는 설레임, 다만 이것은 가볼 만한 방문지에 대한 설레임만은 아니다. 우리 건축, 서예, 사상등 우리 문화에 대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을 엿보는 듯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유홍준씨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마 이 두가지가 아닐까 한가?

첫째,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둘째,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만큼 보인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남도답사 일번지를 읽으면서, 내 마음속엔 보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일렁거린다. 남도의 풍광이 보고 싶어 지는 것이다. 난 이미 마음속에서 여행을 떠난다.

 

1. 강진, 해남

 

강진은 정약용이 십수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지역이다. 유명한 땅끝마을이 그 곳에 자리잡고 있다. 너무나 매력적으로 묘사한 남도, 그 곳은  장차 나의 답사여행의 첫번째 방문 후보지가 되었다. 그 부근의 답사지로는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터, 무위사, 영랑생가, 다산초당, 만덕산, 백련사, 녹우당, 윤고산 유물 전시실, 두륜산 대흥사, 일지암, 미황사, 땅끝 등이 있다.

 

정약용이 머물렀던 다산초당을 중심으로 혜장,초의가 있었던 절, 남도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그 풍광을 찾아보고 싶다. 예전에 다산에 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그와 혜장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경험은 강진, 해남을 소개한 이 글과 어우러져, 그 곳이 아주 낯선 곳임에도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듯 하게 하니, 과연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인가?

 

"올바른 답사를 위해서는 먼저 자연지리 즉 그 땅의 성격을 알아야 하고, 둘째로는 그 땅의 역사 즉 역사지리를 알아야하며, 세째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야 한다. 이런 바탕위에 이루어지는 문화지리 답사를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하나니, 아는 만큼 보이도다."

 

2. 예산 수덕사와 가야산 주변

 

내포평야/수덕사 대웅전/ 정혜사 불유각/남연군묘/보부상 유품/해미읍성/개심사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는 수덕사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700년을 살아온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으로 알려져 있다. 수덕사 대웅전의 특징은 단순성이 보여주는 간결한 것의 아름다움이 그 첫째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형식을 한 건물'인데...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하나의 즐거움은 이러한 낯선 표현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되는 지적 만족의 즐거움이다. 또한 배흘림기둥, 마름모꼴 사방연속무늬의 창살무늬... 다음에 누구랑 함께 여행을 가면,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 줄 수 있으리라.

 

 

3. 경주

 

선덕여왕과 삼화령 애기부처

첨성대/황룡사 구층탑/삼화령 미륵삼존/감실부처님/여근곡

감포가도/대왕암/감은사탑/고선사탑/석가탑

성덕대왕신종

 

천년의 고도 경주...

경주 박물관장을 역임한 소불 정양모 선생이 말하기를 "자네, 경주를 말하려면 꼭 이 세가지를 잘 음미해야 할 걸세, 신라문화의 품격을 알려 주는 것은 바로 이 세가지 일세."  이 세가지란, 진평왕릉,장항사지, 에밀레 종소리인데,...- 진평왕릉은 7세기 전반, 장항사절터는 7세기 후반, 에밀레종은 8세기 중반 신라문화의 특질을 반영하는 것이라 한다.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 정말로 감은사탑은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 있단말가?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는 감포가는 길, 경주에서 감은사로 가는 길이란다. 추천 드라이브 코스이다.

 

신라의 석탑은 백제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여 오층석탑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러던 것이 감은사에 이르러 삼층석탑으로 변신하게 되고 석가탑에 이르러 삼층석탑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무슨 연유로 오층석탑에서 삼층석탑으로 변신을 해야만 했는지, 그 당시의 시대정신에 입각한 설명은 흥미롭다. 감은사 3층석탑은 삼국통일 이후에 건조된 탑으로 당시의 필요정서인 안정위에 상승이라는 시대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이라 한다. 신라의 대표적인 삼층석탑인 감은사탑, 원효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탑, 그리고 석가탑을 비교해 감상해 보는 것도 흥미있다.

 

에밀레종은 성덕대왕신종 또는 봉덕사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장중하고 맑은 종소리는 현대과학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라는데...이제 더는 타종하지 않는다고 하니, 왠지 소중한 것을 잃은 슬픔이 느껴진다.

 

4. 양양 낙산사

 

낙산일출/의상과 원효/원통보전 돌담/낙산사 그림

동해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관음신앙의 근본도량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의상은 성골 출신으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화엄종 체계를 배워왔다한다. 하지만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실천하였다. 신라가 통일전쟁을 마치고 새로운 국가체계를 갖추어 나갈 시점에서 신라왕실에게는 원효의 사상에 나타나는 자율성보다는 의상의 사상에 나타나는 체제질서가 더욱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안정을 위한 질서를 희구하는 당시의 정치권력 및 세력에 의해, 화엄10찰의 개창자인 의상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신격화되어진다. 반면에 원효는 항시 의상에 못 미치는 신통력, 별볼일 없는 승려로, 그리고  의상의 신격화된 전설의 그림자로만 나타난다. 그 당시 지배층이 필요로 했던 것은 의상의 정신인데 반해 대중들은 오히려 원효의 사상을 더욱 신봉하였으니, 이것을 견제하려는 지배층의 의도가 그러한 전설에 나타난 것이라한다.

 

5. 관동지방의 폐사지

 

설악산 진전사터/ 도의선사 부도/ 미천골 계곡/ 선림원터/ 흥각국사 부도비

진전사탑은 석가탑의 전통을 기초로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첫째로는 석가탑은 높이가 8.2미터, 진전사탑은 5미터로 축소되어 석가탑은 장중한 맛이 있지만 진전사탑은 아담한 맛을 보여준다. 그리고 엄정성이 강한 석가탑과는 달리 진전사탑에는 돋을 새김이 있어 친근감을 더해 준다.

둘째로는 불국사는 통일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에 있고 진전사는 변방의 오지에 있다는 것이다. 불국사의 가람배치는 다보탑과 함께 쌍탑인데 진전사는 단탑가람이다. 불국사는 중대신라 중앙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며, 진전사는 자방호족의 새로운 문화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진전사는 도의선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 도의의 사상은 당시의 사회변화에 미친 영향이 대단히 크다. 도의가 당나라에서 익힌 불법은 달마대사로 부터 유래한 선종이다. 그 중 선종의 8대조인 마조도일의 홍주종을 익혀 귀국하였는데, 이 가르침은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이라는 것이다. 서라벌에 돌아온 도의는 경전이나 해석하고 염불을 외우는 일보다 본연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변혁사상을 부르짖었다. 이는 인간의 평등과 인간성의 고양을 부르짖는 진보적인 세계관의 표출이었다. 당시 통일신라의 왕권불교의 근간인 왕즉불의 엄격한 체계에 따른 논리와 질서를 송두리채 흔드는 충격을 안겨주는 외침이었다. 서라벌의 승려와 귀족들은 도의의 외침을 '마귀의 소리' 즉 위험한 사상, 불온한 사상이라 부르며 배격하였다. 그래서 도의는 서라벌을 떠나 북쪽으로 향해 먼 곳에 가서 은거할 뜻을 세워 설악산의 진전사에 이르렀다.

 

이러한 도의의 가르침은 체계와 질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침의 능력이 중요하고 스스로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약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인 지방의 호족들은 다투어 지방에 선종사찰을 세우고, 호족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약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의 진행은 호족 중의 한 사람인 왕건의 승리로 이어지고, 불교는 선종 우위의 확고한 전통이 세워지게 된다. 이 진행의 출발은 도의와 진전사에서 시작되었기에 지금은 없어진 진전사의 역사적 의의는 대단한 것이다. 진전사터에서 이러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사상의 힘을 느껴보는 것은 한층 수준 높은 답사가 가능하도록 해 준다.

 

또한 부도의 탄생은 선종에서 유래되었다. 선종에서는 "본연의 마음이 부처"이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곧 부처와 동격이 된다고 하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선사의 죽음은 부처의 죽음에 못지 않은 것이 된다. 석가모니의 시신을 다비한 사리를 모시는 것이 곧 탑인바, 이제 성불했다고 믿어지는 대선사의 사리도 그 만한 예우로 봉안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진전사 뒷쪽 산등성에 도의선사의 부도가 세워지게 되었다. 

 

답사에도 급수가 있다는데...

"초급자는 어디에 가든 무엇하난 놓치지 안을 성심으로 발걸음을 빨리 움직이며 골똘히 살피고 알아먹기 힘든 안내문도 참을 성을 갖고 꼼꼼학게 읽어 나간다. 그러나 중급의 답사객은 걸음걸이부터 다르다. 문화재뿐만 아니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는다. 그러면서 다른 곳에서 보았던 비슷한 유물을 연상해 내어 상호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곧잘 비교해 보곤 한다.초급자는 낱낱의 유물의 개별적,절대적 가치를 익히는 과정이며, 중급자는 그것의 상대적 가치를 확인해 가는 수준이다. 그러난 고급의 경지에 다다른 답사객은 얼핏 보기에 답사에의 열정과 성심이 식은 듯 돌아다니기보다는 눌러앉기를 좋아하고 많이 보기보다는 오래 보기를 원한다. 지나가는 동네분과 시답지 않은 객담을 늘어놓고 가겟방을 기웃거리다가 대열에서 곧잘 이탈하곤 한다. 허나 그것은 불성실이나 타내함의 작태가 아니라 그 고장 사람들의 살내음을 맛보기 위한 고급자의 상용수단인 것을 초급자들은 잘 모른다. 고급자는 문화유산의 개별적,상대적가치에 대한 이해를 넘어 그것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싶어하는 단계인 것이다. "

 

6. 문경 봉암사

 

희양산/봉암사/지증대사 부도와 비

정진대사 부도와 비/ 마애보살상/야유암

 

희양산 봉암사를 창건한 분은 신라 말기의 지증대사였다. 최치원이 쓴 지증대사비에 지증대사의 일대기와 봉암사의 유래가 소상하게 실려 있다. 지증대사비는 1,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모든 글씨를 다 읽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하게 남아있어 "남한에 있는 금석문중에서 최고봉"이라 한다.

 

 

7. 담양의 정자와 원림

 

소쇄원 /석영정/서하당/환벽당/취가정/명옥헌

광주직할시 동북방향 무등산 북쪽 기슭과 맞대고 있는 담양군 고서면과 봉산명 일대에 있는 참으로 많은 누각과 정자, 그리고 원림

면앙정,송강정,명옥헌,소쇄원,환벽당,취가정,식영정등 조선시대 정자문화를 맛볼 수 있는 답사코스이다.

 

8. 고창 선운사

 

동백숲/상갑리 고인돌/낙조대/칠송대 암각여래상/백파선사비

4월말 5월초 최고 추천 답사지는 고창 선운사이다. 그때쯤 한창 만발한 동백꽃의 아름다움이 있기때문이다. 여기의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오백년 노목의 기풍을 자랑하고 있다.

 

선운사의 최대명물은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선사의 비문이다.

세상사람들이 추사체를 일러 '웅혼한 힘'을 보여준다고 표현들 하는데, 유홍준씨는 백파비문에서 그것을 처음 실감하였다 한다. '송곳으로 강판을 뚫는 힘'으로 붓끝을 강하게 내리 꽂았다고 한 것도 거짓이 아님을 확인했다한다. 이 비문의 글씨는 추사 말년의 최고 명작으로 손꼽히는 금석문이다.

 

유홍준씨가 황지우 시인에게 "지우야, 나는 이 비를 볼 때마다 추사보다 더 위대한 것은 석공의 손 끝이었다고 생각한단다. 글씨 획의 강약리듬에 맞추어 힘준 곳은 깊이파고 흘려내리듯 그은 것은 앝게 새겨 추사체의 울림을 남김없이 입체화 시켰잖니."

황지우 시인 말하기를 "세상엔 고수가 많아요, 잉, 형님, 그래도 나는 추사가 석공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네요. 석공은 입면에 리듬을 새겨지만 추사는 그것을 평면에 했잖아요." 

 

 

 

 

이 책을 읽고 난 후....

 

대부분은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감상에 있어 아래의 몇가지 점들을 알게 되었다.

석탑을 왜 짓게 되었는가? 부도란 무엇이며 왜 그것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는가? 불교의 사상의 어떻게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는가?

건축양식의 변화등은 시대의 흐름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등등이다.

또한 수많은 문화재는 그냥 그대로의 볼거리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적 인물들과 얽혀 있어 그 배경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흥미로운 일임을 느낀다. 이러한 시각은 문화재의 예술적 감상만이 아니라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역사공부의 일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

 

수많은 정보를 다 외울 수는 없고, 나의 문화재에 대한,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일천하므로, 차후의 여행을 위한 안내서 및 지침서로 이러한 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개개의 문화재에 대해 흥미롭게 설명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감상도 적혀있어 간접적 감상의 경험을 하게 되어 좋았다. 더군다나 간간히 흑백사진이기는 하여도 사진들이 함께 있어 읽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고 느껴진다. 초반 남도일번지는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서정적인 글들이 심금을 자극하더니, 뒷부분에 이르러는 불교문화와 조선선비문화에 대한 지적 읽을 거리를 제공하여 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노무현정부시절 유홍준씨는 문화재청 청장을 역임했다하며, 문인들 사이에 말 잘하기로 소문난 말장이라 하더니만, 그의 박식함과 글 솜씨는 참으로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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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암 지음/ 이문열 옮김

제1권 일탈의 군상들

 

생각보담 재미있네. 예전에 한 번 읽어보려다 몇장을 읽고나서 손을 놓았었는데...

이문열씨가 썼다는 말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본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난 후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거쳐 변량에 도읍을 정한 송조 사백년이 시작된다.

송 휘종에 이르러 고태위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팔십만 금군의 교두 왕진

구문룡 사진

노달...나중에 조원외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지심이란 법명을 받고 승려가 된다. 노지심...

동경의 금군 창봉교두 임충.

1권에 나오는 주요인물들은 아마 이들이겠지...양산박에 먼저 발을 내딪는 임충...2권의 내용이 기다려진다...

 

각설하고 한자를 알면 중국소설을 읽으면서 명칭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듯....한자를 열심히 공부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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