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파괴로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한국의 아웃라이어들- 성공 고졸 17인의 신화, 그 안에서 창조적  DNA를 발견하라!

김영상 지음/ 북오션

 

Outliers 표본중 다른 대상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 -기준에서 벗어나 뛰어난 성공을 거둔 사람을 일컫는 말

 

대한민국에서 고졸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느새 우리 사회도 고졸은 마이너리티가 된 시대가 되었다. 대졸에 비해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며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 고졸출신자들.

이러한 상황에서도 고졸 신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고졸자들, 그 와중에서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일군 역경극복형 아웃라이어들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자발적 아웃라이어들, 즉 대학에 못 간 것이 아닌, 대학에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고졸 성공자들도 있다. 아마 문화대통령이라 불리는 서태지가 그 대표적 인물이리라.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성공 신화를 이루고 있는 자발적 아웃라이어들이 있다.

 

이들이 성공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일까?

학연이나 지연 또는 혈연에 기대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들은 도를 지나친 근면성실로 인정을 받았으며, 그에 더하여 창조적 노력등이 그 기반이 되어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게 되었다. 고졸이라는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기울였던 노력과 눈물과 땀은 대단한 것이었다. 어쩌면 고졸이라는 굴레가 그들로 하여금 더 분발하게 하는 에너지의 근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삶은 그 댓가를 받게 되는 법.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과연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남에게 인정받고,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갖는 것이 성공의 전부일까? 다소 철학적인 접근인 듯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쨌든 현대사회의 출세지향적인 어두운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꿈이란 어떤 추진력을 제공해 주는지 생각하게 해 준다.

 

꿈꾸지 않는 자는 꿈을 이룰 수 없다.

꿈을 이루는 첫 발걸음은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이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일단은 꿈꾸고 볼 일이다.

매일 꾸는 꿈은 꿈을 이루게 한다. 꿈에 대한 열망이 강하면 강할 수록 추진력을 갖게 된다.

꿈에 대한 열망을 강화시키는 책읽기는 중요하다. 책읽기는 또한 꿈 찾기 네비게이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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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저/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3명의 좀도둑은 기묘한 시간여행을 한다. 과거로 부터 온 상담편지를 받고, 과거로 그 답장을 해주는 기묘한 상황이 전개된다. 이러한 고민 상담은 30여년전에 이 잡화점의 주인이었던 나미야 할아버지는 우연찮게 시작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그 상담이 혹시나 다른 사람의 인생에 혹시나 나쁜 영향을 주지나 않았는지 고민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라 한다. 어쩐지 사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듯 전개되는 것에 우훗...하고 생각했었더랬다. 지난번에 읽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도 일본 소설이었다. 일본 소설은 그 유명한 [설국]외에는 읽은 적이 없었는데, 공교롭게 최근에 두권의 일본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일본 소설 특유의 뭔가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두 권의 책이 그런 유형이라서 그럴까? 다소 가볍고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그리고 어쩐지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오락거리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려 주며,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대사회는 소통 부재의 사회이다. 물질만능의 세태가 만연하면서 소통은 단지 피상적이며,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내려가지 않는다.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진정한 소통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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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미 엔 저/ 최고은 역/ 디앤씨 미디어

 

오래된 책을 취급하는 고서당과 예쁜 아가씨 주인은 뭔지 삐걱거리는 느낌을 준다.

현대인과 고서당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된 책은 내용만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진정 이야기하고픈 것은 책이야기라 아니라 책으로 맺어진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고서당 주인아가씨 시노카와 시오리코, 그리고 덩치좋은 종업원 다이스께 고우라...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시노카와, 책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고우라...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차츰 차츰 쌓여간다. 좋은 관계를 만들고자한다면 잘 듣는 귀가 필요하겠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 정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관계가 아닐까?

그리고 그 관계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사랑이고. 그러고 보면 고서당 사건수첩에 기록된 사건들은 모두다 책과도 관련이 있지만, 또한 사랑과도 관련이 있다. 숨겨진 사랑, 이루지 못한 사랑, 용서하는 사랑, 책에 대한 사랑과 집착.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관계의 기부에는 사랑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이 이야기는 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고우라가 시노카와에게 연정을 느끼는 것처럼 시노카와 역시 고우라에게 사랑을 품게된다. 이 이야기 초반부에 이미 이렇게 되리라고 보여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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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 이인규 옮김/ 민음사

 

원제는 Great Expectation.

 

위대한 작품을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일까?

인간 본성의 핵심을 드러내는 작품이라야 위대한 고전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거기에 더해 독자를 이야기속으로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이러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독자를 끌어당기는 구성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어린 핍이 습지에서 도망친 죄수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그 대미를 장식할 때까지 독자를 몰입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중간 중간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사건들이 발생하며, 그 결말이 궁금해 지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리라. 습지에서 도망친 죄수들끼리의 싸움, 부인의 죽음, 신비한 장막뒤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러...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의문스런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계속 독자의 흥미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데릭젠슨이 쓴 [네 멋대로 쓰라]에서는 글쓰기의 기본으로 '재미있어야 한다. 독자의 흥미를 끝까지 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궁금한 점에 대한 답을 끝까지 유보하라'는 제안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그러한 구조가 발견되었다. 또한 박경리의 [토지]도 그런 요소들이 있었다. 그렇다. 확실히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어가는 방법이 무엇인가하는 것을 이 소설은 분명히 보여준다.

 

둘째, 인간 본성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동서고금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 에스텔러에 대한 핍의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 있음을 누구나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와는 다른 보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들에 마음이 당긴다. 조와 핍사이의 애정, 비디와 핍사이의 감정의 흐름, 허버트 및 웨믹과 핍과의 우정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에스텔러와의 사랑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긴장감을 갖게 하지만 조와 비디의 핍에 대한 사랑은 시골의 소박하지만 건강한, 그리고 깊은 안정감과 만족감을 주는 행복한 느낌을 전해준다.

 

또한 부는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부를 가지게 된 당사자나 그 주변의 사람들이 부를 가진 사람에 대해 나타내는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아니 부라는 조건에 관계없이 인간이 계속적으로 유지해야할 본성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핍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됨에 따라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 자신이 엄밀한 의미에서 신사인지 아닌지 드러나게 된다. 펌플추크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비열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매부 조나 허버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진정한 신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에서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큰 수확이라 하겠다. 이러한 다양한 모습중에서 아름다운 본성을 발전시키고, 지양해야 할 추악한 본성들을 제거하기 위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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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오랫동안 글쓰기는 마음속의 신기루였다. 신기루라고 생각했었다.

정말 나탈리의 글쓰기는 신기루처럼 아득하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은데, 실제로 쓰려고 하면 손가락사이를 빠져 나가는 모래처럼 느껴진다.  

 

나탈리의 글쓰기의 요체는 전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삶의 모습인 나의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그 때 그 때 그려보라는 것이다. 때로는 의식보다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을 파헤치기 위해서라도 쓰고 또 쓰고 또 쓰면서, 삶의 찌꺼기를 다시 뒤집어 엎고 또 엎는 '퇴비화 과정'을 통해 비옥한 글쓰기의 토양을 만들어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쓰레기같은 글도, 오물덩어리 글도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쓰고 또 쓰고 쓰면서 뼛속까지 내려가는 훈련을 해야만이 진정한 글쓰기가 가능해 진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보다 직접적인 글쓰기 방법으로 '습작을 위한 글감 만들기'에서의 제안은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세부묘사의 중요성과 주의할 점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장들이 도움이 된다. '세부 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라' '파리와 결혼하지 마라''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그냥 꽃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와 같은 장에서 세부묘사의 생명력과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체적으로 흐르는 나탈리의 글쓰기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마음속의 신기루는 오아시스로 바뀌어 나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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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전셰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혁명적인 글쓰기 방법론

뼛속까지 내려가서 내면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어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름 의미있어 보이는 부분들을 발췌해 보았다.

 

첫 생각을 놓치지 마라

글쓰기의 원칙

-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 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첫 생각이란? 우리 마음에서 제일 먼저 번쩍하고 빛을 낸 불씨이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불씨는 대개 우리 내부의 검열관에 의해 진화되어 버린다. 두 번, 세 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의 의식은 일상의 관념 세계로 다시 돌아와 맨 처음 피어난 신선한 불꽃과 교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첫 생각은 에고 또는, 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논리적인 메커니즘(세상은 영구불변하며,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은 생각이다. 세계는 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식 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실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글은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없다. 글쓰기를 가로막던 '에고'라는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 당신은 더 큰 조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잠재의식의 영역을 파고들라. 뼈속까지 파고들라.>

 

멈추지 말고 써라 

그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만 하자. 그저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지금 당장 자리에 앉으라.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뼈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걸리기만 바라면서 낚시바늘을 계속 드리우라. 쓰고 또 쓰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우리의 지각능력이나 판단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각과 판단력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를 거쳐서 나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을 '퇴비를 섞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인생이 남긴 쓰레기 더미는 자꾸 쌓여간다. 우리는 그 안에서 특정한 경험들만을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버린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경험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계란 껍질, 시금치 이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그리고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

이 비옥한 토양이 우리의 시와 이야기를 꽃 피워주는 자원이다. 하지만 비옥한 토양은 단시일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월이 필요하다. 유기적으로 이어진 인생의 모든 세부 항목들을 계속 뒤집고 또 뒤집어어 쓸데 없는 찌꺼기들을 걸러 내야만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계속해서 비료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비료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우리의 근육이 되어 준다면 우리는 위대한 우주의 조류를 타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글쓰기 훈련은 '퇴비를 섞는 과정'이다.>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그렇다고 첫 술을 들지 않고서는 배부를 수가 없지.>

 

습작을 위한 글감노트 만들기

글감 목록을 만들어 보는 일은 글쓰기 훈련에 있어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글쓰기의 재료들을 찾아 내는 훈련이 될 뿐 아니라, 글쓰기가 바로 당신의 인생과 그 인생에서 탄생하는 산물임을 깨닫게 한다. 이런 식으로 삶의 경험들을 삭혀서 퇴비로 만드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시작이다. 이렇게 글감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지난 경험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글쓰기는 끊임없이 당신의 삶속에서 진행된다.

 

글감노트를 만들고 활용하는 방법

1. 창문을 둟고 들어오는 빛의 성질에 대해 써보자

2.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어 본다. 그러다가 중요한 기억이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면, 바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내려간다.

3.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주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골라서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글을 써 보라.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처럼 생각을 확장시켜야 한다. 다음에는 같은 것을 두고 싫어하는 시각으로 글을 적어보라. 이어서 끝어로, 완전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글을 써보라.

4. 한가지 색을 생각하며 15분동안 산책해보자. 산책하는 동안 주변의 자연과 사물에서 그 색을 발견할 수 있는지 주의깊이 관찰하자.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해 15분동안 적어보라

5. 오늘 아침 당신의 모습을 적어보라. 아침식사로 뭘 먹었는지, 잠에서 깨어날 때 기분이 어땠는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무엇을 보았는지등등 가능한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6.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라. 지금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 그런 다음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을 글로 담는다. 읽는 사람이 마치 그 장소에 와 있는 것듯한 착각이 들도록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그 장소를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표현 대문이 아니라, 글에 나타난 세부 묘사를 통해 당신이 그 장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해 주어야 한다.

7. 떠남에 대해 써보자. 이혼, 외출,전학, 실종, 친구의 죽음...어떤 것이든 떠남을 위한 소재가 된다.

8.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9.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10.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써 보라.

11.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묘사해 보라.

12.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은 금물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상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 수영하기

- 하늘에 떠 있는 별

- 당신이 경험했던 가장 무서웠던 일

- 초록빛으로 기억되는 장소

- 성에 대한 의식이 생기게 된 동기 혹은 최초의 성 경험

- 신의 존재나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개인적 체험

-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나 문구

- 육체가 가진 한계와 극복

- 당신이 스승으로 섬기는 인물

13.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아무쪽이나 펼쳐 마음에 드는 한줄을 골라 적은 다음, 거기서 부터 계속 이어서 글을 써보자. 쓰다가 막히면 첫 줄을 다시 적은 다음 새로 이어어 쓴다.

14.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요령으로 지금 당장 자신만의 글감 노트를 정리하고 활용해 보라.

 

세부 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케이크를 구우려면

세부 묘사를 사용하면 당신이 느기는 환희나 슬픔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세부묘사야 말로 글쓰기의 기본요소이자 단위이다.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글쓰기 역시 90퍼센트는 듣기에 달려 있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을 채우고 있는 내명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자연히 나중에 글을 쓸 때, 당신은 그 내면의 소리를 저절로 분출시킬 수 있게 된다. 내면의 진실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글쓰기에는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 없다. 당신은 그저 식탁 건너 편에서 당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곳의 분위기가 내는 소리와 의자와 문이 말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문 너머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도.  계절이 만들어 내는 음향과 바람에 실려오고 있는 온갖 색상의 음향을 받아들여라. 과거와 미래와 현재 당신이 있는 곳에 귀를 열어 두어라. 귀로만 듣지 말고 온몸으로, 당신의 위장과 심장과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들어라.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주고, 많이 써보는 것 세가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자세한 묘사와 제멋대로인 방종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다.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그 목표에 집중해 매달려야 한다. ...묘사도 자신이 정한 방향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의 감정에 푹 빠져서 글의 방향과 한없이 멀어져 나가서는 안된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글쓰기에 관련된 오래된 속담이 하나 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이를테면 분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무엇이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라는 뜻이다. 당신 글을 읽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글을 쓰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의 모습을 그냥 보여 주라는 말이다.

 

그냥 '꽃'이라고 말하지 말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 사물의 고유성을 만들어 주라.

윌리엄스는 '생각이 아니라 사물 속으로 파고 들라'고 말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순수의 전조'에서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모든 것의 이름을 배우라.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수시로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게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 보라. 당신이 종점이라 생각하는 곳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대, 당신은 제어할 숭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날 수 없다.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규칙적인 연습은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매일 글을 쓰라" 이 규칙대로 실행하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무감으로 했기때문이다. 규칙만 다지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만약 당신의 기본 자세가 이렇다면 당장 글쓰기를 중단하라.

모범생이 되기 위한 모범생은 되지 말라. 규칙에 얽매이면 글쓰기에 필요한 진짜 현실이라는 반석을 얻지 못한다. 그냥 옥수수밭으로 들어가라.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난 매일 글을 쓰겠어" 따위의 규칙으로 자신을 마비시키는 짓은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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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 유홍준 지음 /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씨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생각은 이 두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유홍준씨의 답사기는 떠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다. 더군다나 지금은 파릇 파릇한 봄이 아닌가?

 

2권에서 소개하고 있는 답사지는 다음과 같다.

 

1. 지리산 동남쪽 - 함양과 산청

 

농월정/박지원사적비/정여창 고택/학사루/함양상림/단성향교/단속사터

산천제/덕천서원/대원사/가랑잎국민학교/지리산

 

남명 조식(1501~72)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은 그의 서재였던 산천제, 남명선생을 모신 덕천서원등이 있다. 남명 선생은 퇴계 이황과 동갑으로 당대 도학의 쌍벽이었다. "경상좌도에 퇴계가 있고 우도에 남명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산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의 장엄은 천왕봉의 높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넓이와 깊이에서 나온다. 지리산 연봉이 이루어낸 계곡의 깊이를 우리는 가늠치도 못한다. 그 크기를 말하는 것도 남명선생의 대안목은 달랐다.

"천석이나 되는 저 큰 종을 좀 보소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울리지 않는다오

허나 그것이 지리산만하겠소

(지리산은)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는다오"

지리산을 좋아하는 분은 채색 장식화보다도 수묵담채화를 좋아할 것이다.

 

도대체 지리산이 뭐길래 이렇듯 사람을 홀리는 말을 남기게 하나?

 

2. 영풍부석사

 

사과밭 진입로/무량수전/대석단/조사당/선묘각/부석

 

남한 땅의 5대명찰?

춘삼월 양지바른 댓돌 위에서 서당개가 턱을 앞발에 묻고 한가로이 낮잠자는 듯한 절은 서산 개심사이다.

한여름 온 식수가 김매러 간 사이 대청에서 낮잠자던 어린애가 잠이 깨어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듯한 절은 강진 무위사이다.

늦가을 해질녘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반가운 손님이 올리도 없건만 산마루 넘어오는 장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절은 부안 내소사이다.

한겨울 폭설이 내린 산골 한 아낙네가 솔밭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굴러가는 솔방울을 줍고 있는 듯한 절은 청도 운문사이다.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풍 부석사이다.  

 

언젠가 이 명소들을 가게되면 유홍준씨의 읊은 평을 판단해 보련다...

 

영풍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형용사로는 부석사의 장쾌함을 담아내지 못하며, 장쾌하다는 표현으로는 정연한 자태를 나타내지 못한다. 부석사는, 오직 한마디, 위대한 건축이라고 부를 때만 그 온당한 가치를 받아낼 수 있다.

한낱 여행객, 답사객의 눈으라도 풍요로운 자연의 서정과 빈틈없는 인공의 질서를 실수없이 읽어내고, 무량수전 안양루에 올라 멀어져 가는 태백산맥을 바라보면 소스라치는 기쁨과 놀라운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니 부석사는 정녕 위대한 건축이요, 지루한 장마 끝에 활짝 갠 맑은 하늘과 밝은 햇살 같을 뿐이다.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끝에 안양루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보기 위함이다.

 

유홍준씨는 해마다 거르는 일 없이 부석사를 가고 또 간 것은 사무치는 마음이 있었기때문이라는데, 또 궁금해 진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사무치는 마음을 갖게 했을까?

 

3. 아우라지강의 회상-평창 정선

이효석 생각/ 봉산서재/팔석정/아우라지강/ 정선아리랑/사북과 고한/정암사/자장율사

 

[메밀꽃 필 무렵]의 고향, 봉평

"이즈러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줄기)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설악산은 감성을 환기시켜주는 절경의 명산이라면 지리산은 감성을 심화시켜주는 깊이감을 갖고 있는 영산이라 할 만하며, 아우라지강을 찾아가는 길에 맞닥뜨린 태백산맥의 연봉들과 거기에 어우러진 큰 여울들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의 원형질을 대하면서 받는 자기 정서의 순화작용 같은 것이었다.

 

추억의 답사처를 회상하는데 골수회원들은 대다수가 아우라지강을 으뜸으로 꼽는데 신참 초보회원들은 전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고참들은 누구하난 무엇이 그리도 감동적인지를 신출내기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안타까워하면서 저희들끼리만은 한결같이 감성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었다. 철학자 데까르뜨가 아름다움을 판별하는 감성적 인식이란 이성적 사유와 달라서 분명하게는 인식하지만 판연하게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했던 얘기 같았다.

 

4. 토함산 석불사

창건설화/정시한의 석굴 기행/소네 통감의 도둑질/ 일제의 해체수리

박종홍/ 야나기/ 고유섭/ 요네다/ 이태녕/ 남천우/ 김익수 / 강우방

1963년 보수공사/ 전실문제/ 광창문제/ 보존문제/ 신라역사과학관/ 유치환시 /서정주 시

 

석불사의 석굴, 그것은 종교와 과학과 예술이 하나됨을 이루는 지고의 최미이다. 거기에는 전세계 고대인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절대자의 세계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지금도 석불사의 석굴 앞에 서면 숨막히는 감동과 살 끝이 저려오는 전율로 인하여 감히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조차 입 밖에 내는 것을 허용치 않으며 오직 침묵 속에서 보내는 최대의 찬미만이 가능하다. 우리는 석굴에 감도는 고요의 심연에서 끝도 없이 흐르고 있는 신비롭고 장중한 정밀의 종교 음악을 감지할 뿐인 것이다.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았기에 말할 수 없다."

 

"종소리는 때리는 자의 힘만큼만(에 응분하여) 울려지나니...(고유섭의 [우리는 고대미술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서 ) 

 

박종홍씨는 석굴암의 신비를 파헤치다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였으나, 일본인 야나기는 석굴암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예찬을 펼친다. 한국 미술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유섭씨 역시 야나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석굴암의 미학적 유산을 발견해 낸다. 요네다는 석굴암을 실측하여 그 과학성을 밝혀내었다. 이태녕교수는 석굴암 아래에서 솟아나는 샘물의 신비를 밝혀냈으며, 남천우박사는 석굴암의 습기문제 즉 결로현상을 극복하기위해서는 원형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태녕교수와 남천우 박사는 자연과학자로 신라인의 과학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조각가인 김익수교수는 석굴암의 구조를 상세히 연구한 후 석굴암의 창건자 김대성의 키가 170cm라고 주장했다. 반보 강우방 선생은 본존불의 정체를 밝히는 데 일조를 하였다.

 

5. 민통선 부근-철원

한탄강/ 고석정/승일교/도피안사/궁예궁터

 

고석정은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의 명소로 한탄강에 임꺽정이 은신처로 삼았다가 관군에 잡혀 처형되었을 때 그의 혼이 꺽지라는 물고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다소 사실무근적인 데가 있다고 한다. 

 

철원이 내세울 미술사적 유물의 진수는 도피안사이다. 이곳에 국보 63호인 철조 비로자나불상이 있다. 이 철불은 하대신라 즉 9세기를 대표하는 두 불상중 하나이다. 그 얼굴을 보면 원만한 것도 근엄한 것도 인자한 것도 아닌, 도전적이고 씩씩하며 개성적이다. 이것이 이 불상의 큰 매력이며 신앙사적, 사회사적 의의를 보여준다. 이것은 9세기 철원지방의 호족이 지닌 자화상적 이미지이다. 왕권과 중앙귀족이 원하는 세계는 석굴암 본존불 같은 원만한 질서이다. 꽉 짜여진 틀 속에 모든 것이 종속하기를 바라는 보편성의 추구이다. 그러나 지방의 호족은 달랐다. 그 보편적 틀 때문에 자신의 인간적, 사회적 능력ㅇ르 제약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그 틀을 깨어 버려야 했다. 능력있는 자가 부처라는 이미지로 몰고 갔던 것이다. 궁예는 그런 호족의 하나로 드디어 왕을 자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6. 운문사와 그 주변

동곡의 선암서원/대천리 수몰마을/ 운문사 입구 솔밭

가슬갑사/이목소/운문적/일연스님/비구니 승가대학

새벽예불/벚나무 돌담길/운문사의 보물들/목우정/남매지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

첫째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 항시 사미니계를 받은 200여명의 비구니 학인스님이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장엄한 아침예불이 있기때문이다.

세째는 운문사 입구의 솔밭이다.

넷째는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이다.

다섯째는 일연스님의 삼국유사가 여기에서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해묵은 노송들이 시원스레 뻗어 올라 소나무 터널이 높이 치켜든 우산처럼 드리웢니 솔밭 사이를 여유롭게 걷는다. 저 청정한 솔바람 소리에 실려오는 낮은 소리를 들으며 무작정 걷는 순간 나는 법열에 든 스님보다도 더 큰 행복을 느낀다. 냇물이 흐르는 소리이든, 풀벌레 우는 소리이든, 바람에 스치는 마른 갈 대 몸 뒤척이는 소리이든, 노보라 속에 산죽이 춤추는 소리이든, 아니면 운문사 비구니의 염불소리이든 붉은 홍송은 하늘로 치솟고 소리는 낮게 가라앉는다. ...

 

운문이라! 그 내력은 운문선사에서 따온 것이지만, 문자 그대로 운문사는 구름문을 젖히고 들어오듯 안개가 짙게 내려앉는다. 그리하여 붉은 홍송줄기가 습기를 머금어 불그스레 피어오를 때 운문사 소나무들은 더욱 아름답다.

 

청도 운문사가 보존하고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은 새벽예불이다. 운문사이 답사는 반드시 새벽예불을 관람하거나 참배하는 음악이 있는 기행으로 엮어져야 제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운문사 답사는 미술사 답사가 아니라 음악이 있는 기행이다.

 

 

7. 미완의 여로-부안변산,농민전쟁의 현장

부안장승/구암리고인돌/ 수성당/ 내소사/ 반계선생 유허지/ 유천리 도요지/ 개암사

고부항교/백산/만석보터/말목장터/녹두장군집/황토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그 일번지를 놓고 강진과 부안을 여러번 저울질 하였다. 조용하고 조졸한 가운데 우리에게 무한한 마음의 평온을 안겨다 주는 저 소중한 아름다움을 끝끝내 지켜준 그 고마음의 뜻을 담은 일번지의 영광을 그럴 수만 있다면 강진과 부안 모두에게 부여하고 싶었다.

 

내소사쪽을 향아면 화려한 원생으로 단청한 일주문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데 그 안쪽은 한치도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공간 내부를 신비롭게 또는 호기심이 나게 유도하는 건축적 사고의 한 반영이었음은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에는 알게 된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답사객은 저마다 가벼운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전나무 숲길이 반듯하게 뻗어 멀리 앞서가는 사람이 꼬마의 키가 된다. 늘씬하게 뻗어 오른 전나무 옆으로는 산죽과 잡목들이 뒤엉키어 숲길은 더욱 호젓하고 한걸음 내딛고는 심호흡 한번, 한번 고개들어 하늘을 올려보고 또 한걸음 내딛고...전나무가 터널을 이룬 내소사 입구는 내소사 자체보다도 답사객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반계 유형원선생은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이다. 당신이 이룩한 실학의 전통은 성호 이익에서 다산 정약용으로 이어진다. 서울에서 태어난 반계는 나이 30세까지 벼슬에 드는 일 없이 곳곳을 전전하다가 32세에 이곳 우반동에 은거하여 20여년간 학문에 힘쓰다 숱한 저술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 우리는 [반계수록]26권만 알고 있을 뿐 목록으로만 전하는 경학, 지리학, 역사학, 음운학의 저서들은 그 행방조차 모르고 있다.

 

반계 선생의 실천적 사고와 민에 대한 사랑, 투철한 현실인식은 실학이라는 이름의 전통이 되어 공재 윤두서,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환재 박규수로 이어간다. 그리고 단재 신채호, 위당 정인보로 이어지고 내 이루 이름을 열거할 수 없는 재야의 학인들이 그 정신적 뿌리를 여기서 찾고 있다. 20세기 한국 지성사에서 흔들릴 수 없는 재야학자들의 종가집이 바로 여기이다. 바로 그 자리 그분의 서재 툇마루에 우리는 걸터 앉아 있는 것이다.

 

이평이라고도 불리는 배들평야에 물을 대주는 작은 댐이 만석보이다. ..."배밭이 많아서 이평이 아니고 배가 여기까지 드나들었다고 해서 그냥 배들이라고 불렀는데 일제 때 지적도를 만들면서 면서기가 그 뜻은 모른 채 이평으로 적은 것이 지금껏 그대로 내려온 것입니다. 굳이 한자로 말하자면 선입이 되는 것이죠." 이태호교수의 설명이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의 현장이 바로 이 곳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가리키는 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서 파랑새란 곧 팔왕, 즉 전자의 파자라는 설이 나오고 실제로 지역에 따라서는 '팔왕장군'을 노래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절명시에서 그의 의연한 기상을 볼 수 있다.

 

때를 만나서는 천하도 힘을 합하더니

운들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

민을 사랑하고 의를 바로 세움에 나는 아무 잘못이 없었건만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을 그 누가 알아주리

필립 E. 존슨/ 이승엽. 이수현 옮김 /까치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이 과학 혁명의 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진화론은 정상과학으로의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제시한 점진적인 변화를 통한 새로운 종의 출현이라는 명제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과연 다윈의 이론을 대신할 새로운 패러다임인 '지적설계론'이 정상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놀랍게도 필립 존슨은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법학교수이다. 어떻게 그런 그가 과학적인 문제에 권위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존스는 리차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과 마이클 덴턴의 [진화론과 과학]이라는 두 권의 책을 읽고 진화는 결정적인 사실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진화론과 과학]은 불가지론 생물학자인 마이클 덴턴의 책으로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종교적 동기를 배제하면서 냉철한 과학적 분석으로 다윈주의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다윈주의를 실패한 이론으로 바라보고 있다. 

 

존슨은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을 읽으면서 진화론적 설명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갑자기 나는 이 책이 명석한 수사학적 기교로 쓰였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일은 변호사들이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증거는 없다. 다만 가설로서 결론을 받아들이도록 당신을 유도하고 논리의 명석함에 감동하게 할 뿐이다." 진화론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도킨스는 경험적이며 실제적인 증거로 진화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논리로 신다윈주의의 타당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존슨은 그가 비록 과학적인 교육은 부족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형법학과 수사학적인 전문지식으로 이 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법정논쟁의 수사학적 기교와 구조에 대해 강의했었고, 증거와 주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제시하며, 반대 주장 속에 담겨진 허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발견하는가를 가르친 전문가이었기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그는 광범위한 학술적 논문들과 과학적 에세이를 세심히 연구한 후 [심판대의 다윈]을 쓰게 되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는 과학적 연구에서는 반드시 신적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이다. 그는 존슨을 비평하는 가운데 '필립존스 교수는 현재 진화론에 대한 가장 비중 있는 학술적인 비평가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진화론 비평은 어떤 것인가?

진화론은 경험론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자연주의적 과학풍토에서 진화론은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과분한 대접을 받아왔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이 가져야 할 하나의 요소로 '반증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진화론은 '반증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사실들은 진화론내에서 합리화된다. 그리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증거들은 무시되어 버린다. 더 나아가 진화론은 하나의 다윈주의적 종교가 되어버렸다. 결론적으로 존슨은 진화론은 과학인가? 의사과학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과학자들과 대중은 진화론을 열렬히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과학적이려면 열린 마음을 가지고 그 반대되는 의견이나 증거들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객관적인 과학적 자세이기때문이다. 진화를 받아들이건, 그렇지 않건 이러한 자세는 과학을 더 신뢰할 만한 학문으로 그리고 객관성을 구비한 방법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책은 진화를 옹호하는 사람이나 창조를 믿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진화론에 대한 객관적인 비평에 접하게 될 것이다. 한편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과학도나 일반인들도 과학적 진화론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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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임스 지음/ 김재영 옮김 / 민음사

 

 윌리엄 제임스는 의학을 전공했으며, 심리철학자로 활동하였다. 그가 쓴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은 종교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유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은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읽고 감명을 받아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이란 책을 썼다고 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에 대한 통찰과 그의 글의 문학적 향기가 잘 어울러져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제임스는 종교를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종교적 경험에 대한 그의 견해는 어떠한가? 종교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인간의 종교성은 인간본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등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임스는 인간의 본성을 알기위해서는 제도화된 종교보다는 각 개인의 종교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모든 선험적, 관념적 체계나 철학적 방식을 배제하고 각 개인들의 실제적 종교적 경험에 근거한 연구를 진행함으로 인간의 종교성과 인간본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래서 책 전반에 걸처 종교적 경험들의 사례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특히 한 종교나 종파의 창시자들의 특별한 종교적 경험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종교적 경험들은 회심, 환상, 환시, 종교적 황홀감, 또는 자동증이라고 불리는 비정상적 육체적 반응등을 통해 나타난다.

 

제임스는 인간들을 두 종류의 유형으로 나눈다. 낙관주의적 성품(optimistic mind)를 가진 사람들과 고뇌하는 영혼(sick soul)을 가진 사람들.

낙관주의적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세계를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세계에 편만해 있는 모순, 악등의 존재를 무시해 버리고 오로지 선하고 밝은 면만을 편파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고뇌하는 영혼은 인생에 대해, 세계의 모순과 악에 대해 괴로워하고 고뇌한다. 이러한 고뇌하는 영혼은 분리된 자아 의식을 가진다. 여기서 그의 고뇌와 불행이 시작된다. 하지만 분리된 자아를 통합을 경험함으로 삶에 대한 의미를 되찾고 살아갈 원동력을 얻게된다. 분리된 자아의 통합이 종교적 경험의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고뇌하는 영혼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성을 나타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으로 평가한다.

 

종교적 경험은 개개인들로 하여금 성인다운 삶을 살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성인다움이 지나치게 되면 병폐가 나타나기도 한다. 신비주의에서 이러한 병폐가 관찰되기도 한다. 이러한 지나침은 종교성의 과대에 비해 지성의 편협함이 그 원인이 된다. 하지만 종교적 경험으로 인한 이러한 삶의 결과는 종교적 경험이 없이 나타나는 삶이 만들어 내는 세계에 비해 우월하다는 면에서 종교의 유용성이 있다.

 

제임스는 인간의 종교적 경험의 심리적 접근을 시도한다. 인간에게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잠재의식의 영역이 있다. 인간의 종교적 경험은 바로 이 잠재의식의 영역이 의식의 세계로 침입함으로 이루어진다. 잠재의식의 영역에서 에너지가 의식세계로 분출됨으로 다양한 종교적 경험이 산출된다. 종교적 경험의 원천은 잠재의식의 영역내에 있다. 그렇다면 종교적 경험의 제일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는 신적존재는 어떠한가?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이다. 종교적 경험이 순전히 심리학적 경험일 수도 있지만 만일 신적 존재가 있다면 아마 그는 바로 이 잠재의식의 영역에 작용하여 종교적 경험을 유발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문제와 관련한 그의 객관적 입장을 나타내는 표현이 있다. 그는 경험적 판단의 약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우리는 인간을 동물적 부분과 이성적 부분으로 뚜렷하게 나눌 수 없다. 우리는 자연적 작용과 초자연적 작용을 구별할 수 없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작용사이에서 어떤 것이 신의 호의이고 어떤 것이 악마의 작용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험적 체계에 의해 판단하는 것의 폐기 후에 우리는 결코 선명하고 학구적인 결과들을 기대할 수는 없다. "

 

제임스는 신학철학은 결코 인간의 종교성을 올바로 나타낼 수 없다고 말한다. 종교적 경험이 우선이며 철학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산물일 따름이다. 또한 신학철학은 곁코 인간의 종교적 삶에 그 가치를 부여해 주지 못한다. 실용적 관점에서 볼 때 신학철학이 논하는 문제는 인간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단지 심미적인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일반적 종교철학 대신에 종교학이라는 분야를 제안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신조들, 그리고 일반적 사실들을 사적인 종교적 경험으로부터 추출하려는 노력은 범종교적인 종교학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그리고 이 모든 지적 작업은 구조적이든 비교적이든 비판적이든 간에 직접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험적, 관념적인 것들을 모두 배제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이 그의 기본 연구 방침인 것이다. 

 

제임스는 그의 결론을 맺는다. 즉 때때로 과학적 자연주의등은 종교를 비판하고, 종교의 무용성을 주장하며, 종교가 곧 없어질 존재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의 경험세계는 객관적 부분과 주관적 부분이 있다. 객관적 부분은 보다 엄청나게 포괄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관적 부분도 결코 생략되거나 억제될 수 없다. 즉 종교적 부분은 여전히 그 나름대로의 영역을 지키게 될 것이다.

 

또한 종교는 궁극적으로 신이 아니라 삶, 즉 더욱 풍요롭고 거대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목적으로 한다. 모든 그리고 단계마다의 발전에서 삶에 대한 사랑은 종교의 추진력이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주관적인 이 평가에서 종교는 어떤 식으로든 그 비평가들로 부터 변호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단순한 시대착오와 잔존신앙일 수 없고, 지성적 내용이 있든 없든,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어떤 영원한 기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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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스콧피츠제럴드 / 김태우 옮김 / 을유문화사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에서 우리는 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부유층의 삶의 모습들을 보게된다. 그것은 삶의 의욕을 서서히 죽이는 황폐해져가는 모습들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상실된 세대의 삶은 잿빛 계곡과 같은 절망의 색조를 띠고 있다. . 

경멸스러운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톰 뷰캐넌은 아름다운 아내 데이지가 있음에도 윌슨머틀과의 내연관계에 빠져든다. 또한 개츠비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파티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은 개츠비에 감사함은 커녕 그의 뒷소문에 열광한다. 그들 모두는 개츠비의 죽음에 모두들 모른채 등을 돌려버리는 비정한 세대이다. 개츠비의 사랑 데이지도 그의 죽음을 외면해 버린다. 숭고해야만 할 사랑마저도 개츠비를 져 버리는 것이다. 오로지 개츠비의 데이지에 대한 집념적인 사랑이 돋보일 뿐, 모두가 잿빛 모습들이다.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사랑은 엄청난 에너지의 원천이다. 가난으로 인해 데이지와 헤어지게 된 그는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를 쌓아 올린다. 그 부의 축적과정이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지만 정황적인 증거로 볼 때 도덕적이거나 합법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하다. 그는 데이지를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기위해 데이지가 사는 지역 부근에 대저택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녀의 자연스러운 관심을 끌기위해 그 지역사회에 아주 널리 소문이 날 사교 파티를 개최한다. 또한 데이지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는 데이지의 사촌인 캘러웨이에게 접근한다. 결국 데이지와 만나게 된 그는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는 데이지와의 사랑을 이루기위해 톰과 단판을 짓는다. 혼란에 빠지 데이지는 운전중에 자동차로 뛰어든 톰의 정부인 윌슨머틀을 치게된다. 개츠비는 자신이 데이지를 대신할 것이라 결심한다. 그러나 결국 이 사건때문에 개츠비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 비극적 죽음의 배후에는 톰과 데이지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데, 사실 데이지의 배신은 충격적이다. 아프다. 사랑을 배신한 것이기에....

 

<위대한 개츠비>...개츠비는 정말 위대한가? 무엇이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가? 나 자신은 개츠비가 위대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인 피츠제럴드는 그다지 위대해 보이지 않는 개츠비를 왜 위대하다고 불렀을까? 여기에 작가의 위대한 통찰력과 재치의 번득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츠비가 죽기전에 캐러웨이가 개츠비에게 남긴 말은 여기에 빛을 던져준다.  

"They are rotten crowd," I shouted across the lawn. "You're worth the whole damn bunch put together." I've always been glad I said that. It was the only compliment I ever gave him, because I disapproved of him from beginning to end.

 

개츠비는 경멸스러운 인간이었다. 캐러웨이도 개츠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라리 경멸스러운 개츠비가 위대한 개츠비로 보일 정도로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경멸스러웠다. 그래서 캐러웨이는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경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츠비를 향해 "당신은 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라고 소리친 것이다. 이것은 그의 경향으로 볼 때 파격적인 찬사였다.

 

피츠제럴드는 가치관을 상실한 전후세대에 대한 지독한 경멸과 조롱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이것을 해 "위대한" 개츠비라는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의 시대에 대한 통찰력을 물론이거니 그의 비꼬는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라 판단된다.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나 자신 문학자도 아니요, 글 쓰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 나름의 방식으로 이 소설을 평가하자면, ....

훌륭한 작품은 그 구조가 아주 치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소설에서는 그냥 한 번 읽으면 그냥 흘려 버릴 수 있는 부분들이 뒷 사건과의 연관성 또는 암시등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꽤 있다. 그러한 부분들은 숨겨져 있는, 말로는 직접 서술되지 않은 상황들을 감지하게 해 주고 있다. 사실 피츠제럴드는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다만 부분적인 상황들을 단편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독자는 그 단편들을 모아서 하나의 스토리로 꾸며야 하는 입장에 있게 된다. 어떤 일본 작가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 읽은 사람만이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데, ... 그 점에 백프로 동감이다. 독자 스스로 상황들을 연결시켜 가며 하나의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해 보이며 그냥 지나칠만한 미묘한 점들을 알아채려야 한다. 그러려면 그 정도는 읽어야 하겠지. 그렇게 완성된 <위대한 개츠비>를 볼 수 있을 때에만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데릭젠슨" 이 쓴 [네 멋대로 쓰라]라는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그는 글쓰기의 첫번째 덕목은 글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독자의 주의의 끈을 끝까지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한가지는 궁금증을 일으켜 놓고는 그 답을 보여줄 듯 보여줄 듯 하면서 계속 유보하는 것이란다. [위대한 개츠비]에 그러한 구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부분을 읽을 때 첫 느낌은 '어라...이 이야기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이지? 개츠비는 언제 나오는거야? 개츠비가 도대체 누구야?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대답을 찾아 계속 읽어 나가게 된다. 그리고는 조금씩 조금씩 개츠비에 대해 알게된다. 피츠제럴드는 한꺼번에 개츠비에 대한 것을 많이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호한 상태로 전달된다. 결국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대략적인 흐름은 알겠는데, 도대체 어찌된 상황인지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문득 깨닫는다. 사실 정보들은 내가 파악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이 주어져 있었구나.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었을 뿐...  

 

피츠제럴드의 글쓰기는 너무 교묘해서 나를 놀랍게 한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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