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대 갈맷길은 바다와 숲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이기대 갈맷길도 멋있지만

이기대 동산 백련사 가는 길도 그 못지 않다.

이기대 바닷가 높다란 절벽에 위치한 백련사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이기대 갈맷길보다는 못하지만

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기대 장자산 장산봉에 오르면 좋을 듯하다.

장산봉는 높이가 220m 조금 넘는 작은 산이다.

 

장자산은 아주 조그만 산이지만

아주 깊은 산골에 들어 온 것만 같은 곳이다.

 

 

 

 

장자산에 있는 수많은 나무와 식물들, 꽃들... 

 

약수터에서 발견한 수국.

 

 

 

고사리도 눈에 많이 띄고

 

 

 

이건 가죽 나무 같고...

 

 

 

이 보라색 야생화는 뭘까???

 

 

 

노란꽃, 금계국은 아니고...?

 

 

 

요건 찔레꽃


 

 

 

 

꼬리처럼 생긴 까치 수염

 

 

 

 

 

자주 괭이밥, 붉은 괭이풀이라고도 한다.

 

 

 

닭의 장풀, 달개비...

http://blog.munjang.or.kr/blog/blog_main.asp?mbr_id=seokdang&art_no=117018

 

 

 

???

 

 

 

이기대 동산말 입구에 있는 섭자리포구. 장어 구이가 유명하다나...

 

 

 

이기대가 있는 마을은 용호동...옛날에 용이 되어 승천하고 싶었던 이무기가 살았던 못이 있어서

용소라고도 하고 용호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용호동이라 불린다.

일제시대때 부터 이렇게 불렸고

이전에는 '남촌면 분포리'였단다. 분포라는 이름은 분포초등학교와 같이 아직 남아 있다.

'분'이란 바닷물을 끌어 들여 소금을 만들던 웅덩이를 말한다.

'분포'란 이런 염전이 있던 포구를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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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한 발만 걸으면 풍광이 끝내 주는 계곡이 있다. 서울에. 도심에서 10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숨은 명소.

겸재 정선이 그린 산수화 '수성동'에 나오는 수성동 계곡.

(유홍준교수와 함께하는 서울 답사에서   ☞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791)

 

 

부산에서도 한 발만 걸으면 자연이 숨쉬고 있는 곳이 지천이다.부산은 천혜의 바다를 끼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름에서 보이듯 산이 함께하는 도시다.

부산,울산,마산처럼

 

조선태종실록에 보면 부산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오는데 그 때는 富山 이라고 표기되어있다.

성종(1470)때에 이르러 釜山 이라는 표기가 처음 등장하고

동국여지승람(1481)이 완성된 15세기말엽부터 이 명칭이 일반화 되었다.

 

釜山 은 원래 산 이름이었다. 산모양이 가마솥을 닮았다고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이 부산은 오늘날 동구 좌천동 뒤에 있는 증산이 그 산이다.

대한민국 제일 관문 부산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생겼났다. 

사실 부산에는 도심안에 산이 많아

그 이름이 딱 잘 어울린다. 

 

부산의 산을 따라 만들어진 갈맷길중 8코스는

오륜대를 지난다.

 

부산시내에는 수원지가 두개가 있다.

하나는 성지곡 수원지,

또 하나는 회동수원지(오륜대수원지).

양산 법기 수원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한번

가두어져 부산의 상수원지 회동수원지가 되었다. 

 

가톨릭 대학 앞을 지나 5분을 달리니

도심내에 이런 정다운 시골이 있을 줄이야...

오륜동이다.

 

부자유친()ㆍ군신유의()ㆍ부부유별()ㆍ장유유서()ㆍ붕우유신()

아버지와 자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와 친구 사이의 인간관계를 규정한 유교의 기본 도덕 규범.

 

옛날에 이 마을에는 오륜과 학식을 갖춘 선비들이

살았다고 하여 오륜동이라 불린다고.

 

오륜동 가까운 곳에 선동이 있다.

신선 선仙을 써서 선동인데,

오륜대와 인접하여 신선이 노닌 곳이라 선동이라 불렸다는 설도 있고, 

선돌[]의 한글 소리[]만을 취해 선동이 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단다.

오륜동에 사람이 살게 된 것은 아마도 산과 물이 함께하는 아름다움 경치도 한 몫 거들지 않았을까.

오륜동의 한 밥집에서 시골 풍경을 내다 본다. 

 

 

 

식사후 오륜대 황토길을 걷는다.

 

 

 

황토길에 면해 있는 수원지

 

 

얼마나 오래된 소나무일까?

휘어진 모습이 험란한 세월처럼 기괴하다.

선송이라 이름 지어 본다.

 

 

 

늪지에는 부들, 붓꽃등이 자란다.

 

 

 

 

 

 

여유로운 황토길을 걷고 나서 갤러리 카페에 들린다.

 

 

 

 

 

주인장의 작품인가?

 

 

 

갤러리 카페 옆에 있는

식샤를 한 밥집의 기와 지붕이 환히 보인다.

 

 

 

오륜대와의 짧은 만남의 기억을 마음속에 담고서

오륜동과 작별을...

 

 

그러고 보면 숨은 명소가 하나 둘이 아니다.

길은 갈래 갈래 여러 길이 이어져 있고,

그 모든 길을 걸을 수는 없어도

또 다른 길을 걷고 싶다는...

오륜대,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으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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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을 갔다온 분들이 한결같이 스위스가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

울산 울주군에 있는 영남 알프스는 수려한 풍광으로 스위스의 알프스에 비견된다.

 

 

 

 

가지산을 중심으로 1000미터 이상의 아홉개의 고산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영남 알프스.

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19m), 고현산(1034m), 운문산(1195m), 문복산(1015m)

이중 신불산, 가지산, 재약산, 운문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남한 100대 명산에 속한다.

 

 

 

 

영남 알프스를 향해 평지를 달리니, 앞에 서 있는 산이 웅장하다. 

달리는 차가 산속으로 빨려드는 양 산이 한 가득 마음 속에 들어오며 가슴이 꽉 찬다.

가슴이 뛴다. 산이 부른다.....

 

 

 

 

배내고개를 넘어 배내길을 달리면서 계곡 너머 좌우로 펼쳐지는 병풍같은 산,

그리고 산등성이들이 기슭을 향해 평행선으로 달음박질하는 늠름한 산세가 대단하다.  

 

 

 

신불산 기슭에 자라 잡고 있는 조용한 신불산 폭포자연휴양림에 여장을 풀고

1 km 떨어진 곳에 있는 파래소 폭포로 향한다.

 

파래소에는 명주실을 한 타래 풀어도 끝이 닿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가뭄으로 풍부하지 않는 수량이지만 여전히 시원스런 물줄기가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서늘한 파동이 밀려들어 온 몸이 시원해진다

 

 

 

 

 

등산객들이 파래소 폭포의 시원함에 땀을 식힌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여념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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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데이지의 초대로 톰과 데이지의 집으로 찾아간 닉과 개츠비.

찌는 듯한 무더위는 앞으로 있을 갈등을 예고하는 듯 합니다. 닉의 귀에는 환청이 들리기까지...ㅋㅋ

닉은 혹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를 눈치챈 톰이 살해당하지나 않았을까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줄줄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온몸에 바른 분칠로 데이지와 조단은 온 몸이 하얗습니다. 마치 시체처럼요...

작가는 계속 불안감을 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쓰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만이 아니라 톰의 불륜은 누구에게나 공공연한 비밀인 듯 합니다. 데이지도 개츠비와 불륜의 관계로 빠져드는 것일까요?

이러한 관계는 어떻게 끝나게 될 지, 아마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될 것이 여러 방법으로 암시되고 있습니다.

 

------------------------------------------------------

. . . Through the hall of the Buchanans' house blew a faint wind, arrying the sound of the telephone bell out to Gatsby and me as we waited at the door.

... 개츠비와 내가 부캐넌의 집의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홀을 건너 불어오는 희미한 바람 속에 전화벨 소리가 실려 들려왔다.    

 

"The master's body!" roared the butler into the mouthpiece. "I'm sorry, madame, but we can't furnish it--it's far too hot to touch this noon!"

"주인님의 시체를요!" 수화기에 대고 집사가 낮은 목소리로 반발했다. "죄송합니다만, 부인. 날이 이렇게 무더워서야 어떻게 시체에 손이나 댈 수가 있나요?"

 

What he really said was: "Yes . . . yes . . . I'll see."

더위가 환청을 일으켰나 보다. 실제로는 그가 "예...예...알겠습니다."하고 말했을 뿐이었는데....

 

He set down the receiver and came toward us, glistening slightly, to take our stiff straw hats.

그는 수화기를 놓고 우리에게로 왔다. 그는 땀으로 번질거리는 얼굴로 우리의 모자를 받아들었다. 

 

"Madame expects you in the salon!" he cried, needlessly indicating the direction.

"부인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굳이 안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했다.  

 

In this heat every extra gesture was an affront to the common store of life.

잔뜩이나 더운데 이런 불필요한 동작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일텐데...

 

The room, shadowed well with awnings, was dark and cool.

방은 차양으로 그늘이 잘 쳐져있어서, 어둑어둑하고 시원했다. 

 

Daisy and Jordan lay upon an enormous couch, like silver idols, weighing down their own white dresses against the singing breeze of the fans.

데이지와 조단은 커다란 소파위에 허옇게 형상처럼 누워, 윙윙 돌아가는 선풍기의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하얀 드레스의 자락을 잡고 있었다. 

 

"We can't move," they said together.

"일어나서 인사하지 못하는 걸 용서하세요." 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Jordan's fingers, powdered white over their tan, rested for a moment in mine.

조단의 햇볕에 그을린 손가락은 흰 가루로 덮여 허옇게 보였다. 조단은 자기의 손가락으로 살며시 나의 손가락을 스치듯 만졌다.  

 

 

"And Mr. Thomas Buchanan, the athlete?" I inquired.

"어... 우리 폴로 선수 토마스 부캐넌은?" 내가 물었다.

 

 

Simultaneously I heard his voice, gruff, muffled, husky, at the hall telephone.

그 순간 나는 홀에서 톰이 전화를 받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거칠고 쉰 목소리를 잔뜩 죽여가며 말하고 있었다.

 

 

Gatsby stood in the center of the crimson carpet and gazed around with fascinated eyes.

개츠비는 진홍색 카펫의 한 복판에 서서 홀린 듯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Daisy watched him and laughed, her sweet, exciting laugh; a tiny gust of powder rose from her bosom into the air.

데이지는 그런 개츠비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여전히 달콤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웃음. 데이지의 가슴에서 하얀 분말가루가 공중으로 솟아 올랐다.   

 

 

"The rumor is," whispered Jordan, "that that's Tom's girl on the telephone."

"소문에요," 조단이 속삭였다. "전화를 하고 있는 여자가 톰의 여자라나요"

 

 

We were silent. The voice in the hall rose high with annoyance.

우리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톰이 짜증이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Very well, then, I won't sell you the car at all. . . . I'm under no obligations to you at all. . . . And as for your bothering me about it at lunch time I won't stand that at all!"

"좋아, 그렇다면 차를 팔 지 않을 수도 있어. 꼭 당신에게 팔아야 할 이유는 없잖아. 이렇게 점심시간에까지 전화를 해대다니, 귀찮아 죽겠어."  

 

 

"Holding down the receiver," said Daisy cynically.

"그냥 전화를 끊지 그래요," 데이지가 비웃듯이 말했다.

 

 

"No, he's not," I assured her. "It's a bona fide deal. I happen to know about it."

"안 끊을걸," 내가 말했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거래거든."

 

 

Tom flung open the door, blocked out its space for a moment with his thick body, and hurried into the room.

톰은 거칠게 문을 열치고는 큰 몸으로 잠깐 문을 막고 섰다가 방안으로 서둘러 들어왔다.

 

 

 

"Mr. Gatsby!" He put out his broad, flat hand with well-concealed dislike.

"개츠비씨!" 톰은 싫은 기색을 내색하지 않고 큼직하고 평평한 손을 내밀었다.

 

 

"I'm glad to see you, sir. . . . Nick. . . ."

"만나서 반갑습니다, 음...닉도 왔네..."

 

 

"Make us a cold drink," cried Daisy.

"차가운 음료수 좀 부탁해요," 데이지가 큰소리로 말했다.

 

 

As he left the room again she got up and went over to Gatsby and pulled his face down kissing him on the mouth.

톰이 방을 나가자 데이지는 일어서서 개츠비에게로 다가가더니 그의 얼굴을 살짝 아래로 당겨 입을 맞추었다.

 

 

"You know I love you," she murmured.

"당신, 나의 사랑을 알죠." 데이지가 중얼거렸다.

 

 

"You forget there's a lady present," said Jordan.

"이제는 다른 사람 눈치도 안보네." 조단이 말했다.

 

 

Daisy looked around doubtfully.

데이지는 누가 다른 사람이 있나 주위를 둘러 보았다.

 

 

"You kiss Nick too."

"너도 닉에게 키스를 하면 되잖아."

 

 

"What a low, vulgar girl!"

"정말 저질이야!"

 

 

"I don't care!" cried Daisy and began to clog on the brick fireplace.

"난 상관없어!" 데이지가 소리치고는 벽난로 벽돌위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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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최인호 지음/ 열림원

 

최인호 작가는 <유림>을 쓰기 위해 3년동안 수십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유림이란 유학의 숲이란 뜻이다. 이 책 <유림>에서는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로부터 시작해서 맹자, 주자, 조광조, 이율곡, 이퇴계등의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정점은 퇴계 이황이다. 공자와 맹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주자, 주자로부터 시작된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이념이 되었고, 조선은 수많은 성리학자들을 낳는다. 그 중에 퇴계 이황은 주자의 '성즉리(性卽理)"의 사상을 충실히 발전시켜 성리학 최고봉의 자리에 앉아 '해동주자'라 불린다.

 

유학은 오랫동안 거대한 중국의 통치이념으로서 역할을 했고, 조선의 건국 이념이기도 했지만, 정작 우리네가 유학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많지 않다는데 순간 깜짝 놀란다. 서구 문명과 문물에 밀려 보이지 않는 구석에 초라하게 자리한 유학의 실체는 무엇일까? 예로부터 충효를 중시하는 정신은 유학에서 비롯된 것이며, 조선의 철학사를 풍미하던 성리학이니, 또는 양명학이니, 퇴계 이황의 이기이원론, 이율곡의 이기일원론이니 하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도대체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도통 알지를 못했다는 점을 실토해야겠다. 최인호의 유림 1~6권은 유학의 숲이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하여 아시아의 동쪽 작은 나라인 조선에서 이황에 의해 꽃을 피우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유림 1권은 유학의 왕도를 현실 정치에 접목하려다 실패한 정치가 조광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자가 자신의 사상을 정치에 접목하려다 실패하였고, 맹자 역시 동일한 길을 밟았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한일까? 조광조는 중종의 총애를 받고 혜성처럼 등장하여 유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정치를 개혁하려 하였으나, 훈구파에 밀려 생명을 내어 놓아야 했던 비운의 정치가이다. 조광조와 함께 한 사림파의 앞날이 촉망되던 수많은 젊은 선비들도 사화에 말려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간다.

 

 

 

유림 2권은 공자의 이야기이다. 최인호의 <소설 공자>와 거의 같다. 18년동안 수많은 나라들을 주유하며 자신의 뜻을 펴 보이려 했지만, 패도정치가 만연하던 춘추전국시대에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공자의 꿈은 허망하기만 하다. 고향 노나로 돌아온 공자는 현실정치에 대한 열망을 접고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며 저술에 힘쓴다. 

 

 

 

유림 3권은 퇴계 이황의 이야기. 퇴계의 불행했던 결혼생활과 노후에 나비처럼 날아든 사랑 - 퇴계를 향한 기생 두향의 일편단심을 이야기한다. 이황의 부인 권씨 부인은 어릴 때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자였다. 사화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퇴계는 권질이라는 분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유배되어 간 권질을 방문했다가 그로 부터 간곡한 요청을 받는다. 염치없지만 모자란 딸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퇴계의 부인 권씨부인은 바로 권질의 딸이었던 것이다. 퇴계는 정신적으로 모자란 부인때문에 평생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한 번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군자의 도로 한결같은 정성으로 부인을 대한다. 퇴계는 가정생활에서 먼저 군자의 도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자신을 수양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고 한다.

 

퇴계는 나이 사십후반에 임금의 명으로 단양군수로 부임하게 된다. 19세의 기생 두향은 퇴계를 존경하며 연모한다. 퇴계도 두향을 지극히 아낀다. 9개월간의 두향과 꿈같은 세월을 보낸 후 퇴계는 단양을 떠나게 되고 두향과는 영원한 이별을 맞는다. 고향으로 물러나 학문에 정진하고자 했던 퇴계에게는 두향의 사랑이 오히려 거침돌이 될 것이라 여겼던 탓이리라. 이후 두향은 퇴계를 그리워하며 평생 수절하며 지내다 퇴계가 죽은 해 물위에 몸을 날린다. 그리워하면서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던 그들. 퇴계가 두향을 이별하며 남긴 전별시는 가슴이 아린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더라

서로 보고 한 번 웃은 것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다 가려고 하는구나." 

 

 

 

 

 

4권은 맹자의 이야기, <소설맹자>와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맹자는 성선설로 공자의 유학을 형이상학의 경지로 끌어 올렸으며, 제자쟁명의 시대에 수많은 사상가들과의 논쟁을 통해 유학을 지켜내고 유학을 발전시킨 맹장이다. 맹자가 성선설의 근거로 제시했던 사단 -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에서 인의예지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공자는 성인이라 불리고, 맹자는 아성으로 불린다. 유교사상을 공맹사상으로 부를 정도로 유교에 대한 맹자의 기여도는 지대했다.

  

 

 

<유림> 5권은 율곡 이이의 이야기이다. 율곡의 어머니는 유명한 신사임당, 율곡은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명석함을 보여주었다. 태몽으로 용을 보았다고 해서 아명은 몽룡이었다. 율곡의 나이 15세에 신사임당이 죽고, 새로 들어온 새어머니와 형과의 갈등으로 가정에 우환이 있어 고통스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아마 나이 19세에 불문에 귀의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니련가. 하지만 1여년의 방황끝에 율곡은 다시 유교로 돌아온다. 율곡은 퇴계를 찾아가 2박3일을 머물며 이야기를 나눈다. 퇴계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은 율곡은 퇴계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유학에 정진하고자 하는 듯을 굳히게 된다. 이후 과거시험에 <천도책>으로 장원급제하게 되는데, 그 과거시험의 답안지였던 <천도책>이 소개되고 있다.  

 

 

 

6권, 다시 이퇴계의 이야기이다. <유림> 6권에서는 조선 성리학 역사상 최대의 이슈였던 기대승과과 사단칠정논변이 전개된다. 한참 연배가 아래인 기대승과 편지를 통해

심도깊은 철학적 논의가 이루어진다. 퇴계의 사상에 대한 기대승의 의문제기에 퇴계는 자신의 사상을 돌아보고 미흡하고 잘못된 점은 겸손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이론을 수정한다. 참 대인배다운 모습이다. <유림> 6권에서는 이기론의 역사가 실려있다. 주돈이의 태극사상, 정이 정호 두 형제의 성리론, 유학의 전통과 당시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주희)의 성리학, 육구연으로 부터 왕양명에 이르는 양명학등등...일종의 정치사상으로 시작된 유학이 어떻게 형이상학적 철학으로 발전되었는지 그 경위를 흥미있게 보여준다. 성즉리(性卽理)는 성리학의 신조, 심즉리(心卽理 )는 양명학의 신조...양명학은 선불교와 유사하다. 주자 역시 젊어서는 선에 심취했으나 이연평을 만나 성현들의 책을 읽은 이후 유학의 오묘함에 눈을 뜬다. 아버지 주송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우던 중 아버지가 하늘을 가리키며 '천'이라고 이야기하자, 하늘위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질문한 주희는 어른이 되어 물질적인 우주의 배후에는 더 높은 근본 원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십년이 지난 후에 그것이 '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퇴계가 9살때 숙부로부터 '성즉리'를 배우다가, '리'가 무엇인가라고 숙부에게 물어 숙부를 당황케 하였다. 숙부는 대답을 미루고, '직접 생각해 보아라'고 말한다. 퇴계는 몇일을 생각한 끝에 '리'는 '마땅히 그래야 할 (시)라고 생각된다'고 숙부에게 대답한다. 퇴계는 이후 평생 '리'라는 화두를 붙잡고 파들어간다. 퇴계의 이기이원론의 원류는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매화를 극진히 좋아했던 퇴계는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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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김영우의 <다산, 그에게로 가는 길>에서 발췌 정리 

 

■ 당파의 발생과 당쟁

임진왜란에 앞서서 왜란의 발발 위험이 있다고 본 당파는 서인이었고, 왜란의 발발 위험이 없다고 본 쪽은 동인이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동인은 전쟁을 극복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이후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는데, 유성룡이나 이순신은 남인 계열이었다.

북인은 의병활동을 통해 나라의 위기 해결에 기여한다.

선조의 아들 광해군이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광해군은 후에 북인의 지지를 받아 집권하게 된다.   

광해군 때는 북인의 일당 독재 체제였다. 북인이 추앙하는 사람은 진주를 기반으로 하던 남명 조식선생이다. 남명은 퇴계와 쌍벽을 이루고 있던 야인 유학자이었다.

북인 정인홍은 당시 거유인 퇴계를 비판하고 나서면서 조식을 문묘에 올리자고 주장하나 이 요청은 수락되지 않고, 이후 정인홍의 권력도 위축된다.

이후 서인이 주도하고 남인이 동조한 인조반정이 성공함으로 북인은 몰락하고 만다.

연립정권을 구성한 서인과 남인은 자주 충돌하게 되는데, 북벌론이나 예송 논쟁이 그것이다.

당시 서인의 영수는 우암 송시열이었는데, 서인은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론과 송시열의 제자 윤중을 중심으로한 소론으로 분열된다.

남인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고, 노론은 신권을 더 중시하는 입장에 있었는데,

이로 인한 입장 차이가 예송논쟁의 격화에 원인이 된다. 왕의 예법을 신하의 예법과 동일하게 볼거냐, 아니면 왕은 특별한 존재이니까 신하의 예법과는 다르게

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별 역할을 못한 서인은 율곡의 십만양병설이나 오랑캐 나라 청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북벌론으로 자존감을 높이려 한다.

북벌론의 결과 서인은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을 수용하지 못하게 된다.  

 

■ 성리학의 이기론이란?

조선시대를 지배하던 유교 사상은 성리학이다. 송나라의 주자로 부터 시작된 성리학은 조선의 이퇴계에 이르러 그 꽃을 피우게 된다. 이퇴계는 '해동주자'란 별칭으로 불릴 만큼 주자를 따랐던 조선 최고의 유학자이다. 성리학의 이기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과 기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는 이론이다. 눈에 보이고 형체로 드러나며 운동하는 것을 '기'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새가 알을 낳는 것, 나무에 꽃이 피는 것, 이런 것이 모두 기의 작용이다. 그러나 새가 알을 낳기는 하지만 타조가 참새 알을 낳을 수 없는 것이고, 배나무에 꽃이 피지만 배나무에 사과 꽃이 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듯 타조는 꼭 타조 알을 낳고, 배나무에는 배꽃이 피도록 만들어 주는 어떤 원리나 법칙, 어떤 현상의 근거가 되는 것을 일컬어 '리'라고 한다. 

 

■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이기론

여기서 기를 더 강조한 것이 기발설, 이를 강조하는 것이 이발설이다. 퇴계 이황은 사단과 칠정이 모두 감정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사단은 완전히 선한 감정이기 때문에 '리'에 속하고, 칠정은 선악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감정이기 때문에 '기'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사단을 '리'가 발현한 것이며,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 사단은 <맹자>에 나오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가리킨다. 칠정은 '희노애구애오욕'으로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망'을 말한다.  

 

퇴계보다 36년 늦게 태어난 율곡 이이는 퇴계의 이론에 반론을 제시한다. '리'는 원리이니까 이건 '기'처럼 운동하는 것이 아니며, 운동을 하지 않으니 발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기'는 운동을 하지만, '리'는 운동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운동할 수 없는 '리'가 발현한다는 퇴계의 설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구분하는 데 치중했다면, 율곡은 기는 운동하지만 리는 운동할 수 없다는 것을 가지고 퇴계의 이발설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퇴계로서는 리와 기를 마음의 본성의 문제에 국한시켜 말한 반면, 율곡은 리와 기에 대한 규정을 들어 퇴계설을 바판한 것이다. 퇴계가 주로 인간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이와 기를 이해하고 있다면 율곡은 리와 기를 존재의 문제로 이해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퇴계의 '이기이원론'과 율곡의 '이기일원론'이 나오게 된다.

 

■ 정약용의 유교 사상

정약용은 실학자이기에 앞서 유학자였다. 그는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의 영향을 받아 리와 기를 달리 해석하였다. 율곡은 운동을 하느냐 안하느냐를 가지고 리와 기를 설명했다면, <천주실의>에서는 자랍성을 가지고 판단했다. 기는 자립적인 존재이고, 리는 그 자립적인 존재의 속성으로 보았다. 성리학에서는 최고의 존재 원리였던 리가 기의 속성으로 전락한 것이다. 리가 기의 속성이라면 운동의 주체는 기가 된다. 그러므로 기발은 성립하지만 리발은 성립할 수가 없다. 움직이는 것은 주체일 뿐, 속성은 그 주체를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약용은 율곡의 기발설에 더 가깝다고 보여진다. 

 

정약용의 철학을 말하라고 한다면 아마 성기호설쯤 될 것이다. 성리학은 본성이 리라고 본다. 성기호설은 본성을 리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기호라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기호설에 따르면 본성이 성향을 따라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굳센 의지, 구체적 실천, 이런 것이 종요하다. 성리학은 천(하늘)도 '리'라고 한다. 정약용은 천(하늘)은 '리'가 아닌 절대적 인격자인 상제(하느님)로 보았다.

 

정약용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내면의 인격만을 도야하는 것은 유학자의 수양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수기(자신을 닦는 것)이 반이고 목민(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반이라고 주장했다. 성리학의 내면의 수양으로는 수기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목자된 자의 윤리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약용의 주장이었다.

 

성리학을 비판하던 다른 실학자들과 정약용의 실학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약용은 이전 것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던 고전적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윤리적 수양론을 만들어 냈다는 데 특징이 있다. 박지원이나 박제가와 같은 북학파 실학자들은 청나라의 문물을 수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새로운 것으로 기존의 것을 대체하려 했다. 그들에게는 과거와의 연결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약용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전통을 재검토하고 그 바탕위에서 새로운 비전을 열려고 했다. 이런 점에는 정약용은 동양 지성사나 한국 사상사와 같은 맥락에서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정약용이 여러 실학자 중 한 사람이라는 말은 어떤 점에서는 맞지만 경학 연구를 놓고 볼 때, 학문적 전통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하고 거기서 출발한 것으로 보면 정약용은 분명히 실학의 중심인물이고 실학을 집대성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 정약용의 실학사상

박지원은 정약용보다 서른 살 정도가 많으며, 박지원은 노론의 자제로 당색도 달랐고 서로간의 교유가 없었다. 박제가도 정약용보다 10년정도 빠른데, 화성이 벽돌로 만들어 진 것은 박제가의 공로가 크다고 한다. 박제가의 <북학의>에 보면 벽돌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학자는 경세치용학파와 이용후생학파등 두 파로 나누어진다. 경제치용학파는 농업중심의 개혁론을 주장했으며, 이용후생학파는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여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힘쓰자고 주장했다. 정약용은 경세치용학파로 반계수록의 유형원, 성호 이익의 뒤를 잇는 실학자이었다. 한편 이용후생학파에는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이덕무등이 있으며 이들은 북학파로 알려져 있다.  

 

 

■ 정약용의 삼근

황상이라는 정약용의 제자가 배움을 중단하려 하면서 스승 정약용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가지 병통을 언급하였다. 

1. 머리가 둔하고

2. 앞뒤가 꽉 막혔고,

3. 분별력이 없다.

 

정약용은 황상에게 배우는 사람에게 있는 세가지 병통을 이야기해 준다.

1. 기억력이 좋은 병통은 공부를 소홀히 하게 하고

2. 글짓는 재주가 좋은 사람은 가벼이 들떠 허황한 대로 흐르게 하고

3. 이해력이 빠른 병통은 깊이 공부하지 않아 거칠게 된다. 

 

그런데 황상에게는 이와 같은 세가지 병통이 하나도 없음을 지적하면서 "머리가 둔하지만 공부를 파고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지고, 앞뒤가 막히나 그것을 뚫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어지며, 분별력이 없으나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빛이 난다. 이 세가지는 모두 부지런해야 가능하다. 부지런히 한다는 것은 마음을 확고히 하는데 있다. 이렇게 즉 네가 부지런히만 공부한다면 네가 생각한 병통들이 오히려 너의 장점이 될 것이다." 라고 조언한다. 황상은 이 말을 깊이 간직한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그러려면 마음을 확고히 하라." 마음을 확고히 하라는 듯의 '병심확'과 부지런히 하라는 '삼근'이 여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 정약용 연구 정약용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1930년대 조선학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운동의 일환으로 정약용 서거 100주년에 맞추어 정인보, 안재홍, 최익한의 주도로 정약용의 저술을 모아 <여유당전서>를 발간한다. 정약용은 이 세사람에 의해 조선 실학의 집대성자로 평가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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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 그에게로 가는 길> / 김은미 김영우 지음 / 동녘

 

정약용을 알고 싶어 한승원의 소설 <다산>을 읽었다. 하지만 정작 다산이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는 미진했었다. 이번에 읽게 된 <다산 - 그에게로 가는 길>은 정약용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인간 정약용의 모습을 가감없이 바라 볼 수 있도록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고 그의 약점이랄 수 있는 것까지 보여주고 있다. 구성 자체는 사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어 청소년을 위한 책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꽤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어 다산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생각되었다  

 

정약용의 고향 마재, 그 건축에 정약용이 일익을 담당했던 수원화성, 정약용이 결혼한 살았던 서울, 18년간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등, 네군데의 정약용의 주요 거점을 답사하며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태로 쓰여진 이 책은 읽기가 수월한 편이다. 

 

1. 어디에서나 한강이 보인다. - 정약용의 고향 마재

다산, 사암, 열수...정약용을 부르는 다른 이름들이다. 정약용 선생은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 중 근 10여년간을 야생차가 많이 나는 만덕산의 기슭에 있는 다산초당에서 보냈다. 다산이란 '차가 많이 나는 산'이란 뜻이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이라 부른다. 한편 정약용의 일생을 다룬 <사암연보>라는 책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에 사암 정약용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정약용 선생은 고향 마재의 한강을 그리워했으며, 이 한강의 옛이름이 '열수'라고 고증하여 주장하면서 열수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열수'선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선생의 어릴 때 이름은 '귀농'이었다. 정약용의 아버저 정재원은 당파 싸움에 염증을 느끼고 귀농하여 마재에 살면서 정약용을 낳았기에 그렇게 불렀다 한다. 또한 어릴 때 마마(천연두)를 앓아 눈썹 위에 상처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한 쪽 눈섭이 두개로 보였다. 그래서 눈썹이 세개처럼 보여 '삼미자'라는 별명도 있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이 대부분 한강을 끼고 있는 지역에 포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아마도 물길을 따라 서울로의 접근성이 좋아 신 문물에 일찍 접할 수 있었다는 점과 서로 왕래하기에 편리했다는 점이 그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학의 집대성이라 불리기도 하는 정약용의 고향 마재 역시 한강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정약용은 18세(1784년)에 큰 형수의 동생인 광암 이벽을 통해 서학(천주교)를 처음 접했다. 이 서학은 정약용의 운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남인 정약용은 노론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게 되는데, 그 빌미가 된 것이 바로 서학이다. 서학은 유교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게된다. 천주교 탄압사건인 신유사옥때 정약용의 형 세째형 정약종은 사형당하고, 둘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가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 고향 마재에 살게된 정약용은 자신의 집을 '여유당'이라고 불렀다. '여유'란 <노자>에 나오는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 같은 조심스러움'을 뜻하는 말이다. 당시 노론이 득세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에서 남인 정약용이 삶을 부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2. 생각한 대로, 그대 생가한 대로 - 경기도 수원 화성

정조는 왕이 된 후에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겼고, 이로 인해 화성에 신도시가 건설되게 된다. 정조가 사도 세자의 묘에 참배하러 올 때 임시 거처로 머물 수 있도록 화성 행궁을 짓는데 있어, 정조는 3년 상중에 있던 정약용에게 화성의 설계를 맡겼고 정약용은 설계는 물론 거중기를 만들어 화성의 건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수원 화성에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된 군영인 장용영이 있었다. 장용영은 임금을 호위하던 친위병이었는데, 장용내영은 한양에, 장용외영은 수원 유수부에서 임금을 호위했다.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는 곳이 '장대'였는데, 서쪽에 있는 장대는 서장대, 동쪽에 있는 장대는 동장대라고 부른다.   

 

정약용은 삼년 상이 끝난 후 암행어사로 파견되었을 때, 서용보의 과실을 밝혀냄으로 이 때부터 평생 서용보와의 악연이 시작된다. 1801년 신유사옥때 서용보의 반대로 석방이 무산되는가 하면, 1803년 정약용을 해배하라는 명에 서용보가 반대하여 무산되었고, 1819년(58세) 정약용을 중용하려는 논의에서 서용보 반대하는 등, 이렇듯 결정적인 순간마다 서용보와의 악연이 질기게 정약용을 따라 다니게 된다.

 

정약용이 속해 있던 남인은 천주교에 우호적인 신서파와 천주교를 반대하는 공서파로 나누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 입지가 약한 남인에게 서학(천주교)는 아킬레스의 건이었다. 일찌기 서학에 접한 남인들 사이에 서학이 번져 나가고, 서학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자, 남인 사이에서도 서학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공서파의 서학을 싫어하는 경향은 당시 입지가 좁았던 남인의 세력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런지도 모른다. 정약용은 신서파에 속해 있었는데, 주문모 사건으로 공서파의 공격의 타켓이 된 정약용을 보호하기 방편으로 정조는 정약용을 외지인 금정찰방으로 보낸다. 중앙 정치에게 격리시켜 공격의 예봉을 피하게 하려는 수단이었다. 이 때 정약용은 정조에게 <변방사동부승지소>라는 글을 올려 동부승지를 사양하는 한편 천주교와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정조에게 고한다. '자명소'라고도 불리는 이 글에 정약용은 자신이 천주교 책을 읽은 적은 있으나 천주교 신자는 아니라고 밝힌다.

 

이후 정약용은 황해도 곡산 부사로 1년 11개월 부임하게 된다. 이 때의 목민관의 경험이 <목민심서>를 집필하는 데 기초가 된다. 곡산 부사로 부임할 당시 주세 거부 시위를 주동했던 이계심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였고, 호구 조사후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한 종횡표도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지석영 선생의 종두법이 나오기 전에 이미 홍역의 치료 방법을 소개한 <마과회통>도 쓴 것도 이 즈음의 일이었다.

 

곡사 부사 이후 서울로 돌아온 정약용은 형조 참의로 두달간 일했는데 그 때의 경험은 <흠흠신서>을 집필하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 후일 정약용은 자신이 접하고 조사한 사건을 바탕으로 <흠흠신서>를 쓰게 된다. '흠흠'이란 걱정이 되어 잊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재판을 할 때 아주 신중하게 생각하고 조사하여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3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정약용의 가족 역사는 천주교 초기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정약용의 세째 형 정약종의 가족은 온 가족이 모두 몰살당한다. 정약종은 물론이요, 그의 아들 철상, 하상, 며느리, 딸까지 온 집안이 모두 순교를 당하게 된다. 당시 천주교와 관련이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정약용과 인척 관계에 있었다. 처음 천주교를 책을 통해 배워 받아들인 이벽은 큰 형의 처남으로 사돈관계에 있었다. 이벽은 이승훈을 북경으로 보내 최초로 영세를 받게 하는데, 이승훈은 정약용의 매형이다. 그리고 천주교 백서사건의 주요인물인 황사영은 조카 사위, 모친상을 당하여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해서 죽임을 당한 윤지충은 정약용의 외사촌, 윤지충의 외사촌인 권상연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순교를 당하였다. 

 

천주교 박해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이는 딩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이 천주교를 빌미삼아 남인들을 공격한 것임을 알게 된다. 특히 남인이었던 정약용을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천주교 탄압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약용 은 자신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해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먼 유배길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정약용을 총애하던 정조가 죽은 이후 그를 막아줄 방패막이가 없었던 것이다.  

 

 

4 언제나 마음은 - 강진 유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어 갔을 때, 처음에는 거처를 구하기조차 힘이 들었다. 마침 주막집 노파가 방 한 칸을 내 주어 4년을 보내게 되는 데 이 방을 '사의재'라고 한다. '사의'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이후에 고성암이라는 절의 한 쪽 방인 보은 산방에서 2년을 거처했다가 제자인 이학래의 집으로 가게 되고, 유배당한 지 8년만에 다산 초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귤동마을에 살던 귤림처사 윤단과 그의 아들 귤원처사 윤규가 정약용을 다산 초당으로 초대하였다. 다산 초당은 윤단의 아버지 윤취서가 지었으며, 다산 초당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하였다.

 

강진은 정약용의 어머니 해남 윤씨의 고택이 가까운 곳이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가 유명한 화가 윤두서이고, 윤두서의 증손자가 정약용이다. 어쨌든 이 고택에는 엄청난 책이 있었고 정약용은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학문에 열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되어 있을 당시 수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강진에 있을 때 정약용이 친하게 지내던 아암 혜장이라는 승려가 있었으며, 혜장의 제자 초의 선사는 정약용과 친분이 깊었을 뿐 아니라, 추사 김정희,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와는 동갑으로 친구 사이였다. 강진에서 정약용을 수발하던 홍씨라는 여인이 있었으며, 정약용과의 사이에 홍임이라는 딸이 있었다고 한다. 정약용이 18년동안의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마재에 살고 있을 때, 홍씨와 홍임이 정약용을 찾아 왔으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다시 강진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정약용이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마재로 돌아온 때가 57세인 1818년, 그리고 그가 1836년 75세로 사망할 때까지 노소론계의 여러 학자들과 교우관계를 유지하며 학문에 매진하며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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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닉은 데이지의 초대를 받아 개츠비와 함께 톰의 집을 방문합니다.

한 여름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은 찌는 듯이 덥습니다.

이 뜨거운 날씨를 묘사하는 장면이 일품입니다만, 여기에는 뭔가 복선이 깔려 있는 듯 합니다.

이런 더위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도 하죠. 개츠비와 데이지의 사랑은 미쳐 갈 듯 합니다. 누가 뭐래도 상관하지 않는 그런 제정신이 아닌 열병과 같은 사랑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The next day was broiling, almost the last, certainly the warmest, of the summer.

그 다음 날은 찌는 듯이 더웠다. 아마도 여름의 마지막 가장 더운 날이었을 것이다.

 

As my train emerged from the tunnel into sunlight, only the hot whistles of the National Biscuit Company broke the simmering hush at noon.

기차가 터널을 지나 뜨거운 햇살아래로 모습을 드러내자, 지글거리는 정오의 정적 사이로 단지 점심시간을 알리는 비스켓공장의 사이렌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The straw seats of the car hovered on the edge of combustion; the woman next to me perspired delicately for a while into her white shirtwaist, and then, as her newspaper dampened under her fingers, lapsed despairingly into deep heat with a desolate cry.

짚을 채워넣은 객차의 좌석은 불이 붙기 직전이었다. 내 옆에 있던 여인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미세한 땀 방울들이 위 단추를 연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속으로 흘렀다. 그녀가 쥐고 있던 신문은 손가락의 땀으로 눅눅해 지고,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코를 골면서 깊은 열기 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  

 

 Her pocket-book slapped to the floor.

그녀의 포켓 북이 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졌다.

 

"Oh, my!" she gasped.

"어머나!" 그녀는 깜짝 놀랐다. 

 

I picked it up with a weary bend and handed it back to her, holding it at arm's length and by the extreme tip of the corners to indicate that I had no designs upon it--but every one near by, including the woman, suspected me just the same.

나는 천천히 몸을 굽혀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나쁜 의도가 전혀 없음을 보여 주려고 책의 모서리 끝 부분을 잡고서 팔을 완전히 뻗은 채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하지만 그 여자를 포함하여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하나 같이 미심쩍은 듯한 표정이었다.    

 

 

"Hot!" said the conductor to familiar faces. "Some weather! Hot! Hot! Hot! Is it hot enough for you? Is it hot? Is it . . . ?"

"덥다. 더워!" 차장은 매일 보는 낯 익은 얼굴들을 향해 말했다. "대단한 날씨네요! 덥다! 더워! 정말 덥다! 그렇죠. 덥죠? 정말...?"

 

My commutation ticket came back to me with a dark stain from his hand.

돌려 받은 나의 통근 티켓에 그의 손의 땀 자국이 남았있었다.  


That any one should care in this heat whose flushed lips he kissed, whose head made damp the pajama pocket over his heart!

열병에 걸려 머리에서 흘러 내린 땀이 파자마 상의를 적실 정도라면, 열로 상기된 입술에 누가 입을 맞춘들 상관할 사람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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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대 동산 기슭에 피어 있는 철쭉

세상의 모든 분홍색을 담은 듯

분홍빛이 깊어

눈길이 헤어나오지 못한다. 

 

 

 

 

 

동산 백련사 가는 길에 데이지가 지천이다. 

순백의 정결함,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도

이랬을까?

 

 

 

백련사로 가는 임도에서

환히 내려다 보이는 바다

외로운 배만... 

 

 

 

해송 사이로 광안대교도 보이고

 

 

 

자그마한 동산 정상에 나 있는 조그만 오솔길

 

 

 

백련사 지나 가파른 길을 내려 오면서

바라 본 갈맷길 출렁다리

 

 

 

 

이기대 갈맷길은

갈맷길 700리의 2코스.

갈맷길 2코스는 해운대 달맞이 길(문탠로드)에서

이기대 오륙도 선착장까지.

 

갈맷길 전체 지도의 위치 안내도

 

 

한반도의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해파랑길.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를 끼고 올라가는 700km의 해파랑길의 시발점이

이기대 갈맷길이다.

 

 

자연과 함께 걷는 길은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기도 하다.

도시의 길과는 다른 길.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

맑은 물속으로 뛰어드는 기암절벽들

넉넉한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울창한 숲들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

한겨울에 시들어 버렸다가

봄이 되면 다시 생명을 꽃피우는

이름모를 들꽃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잡풀 조차도

동행이 되어 주는 길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달린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길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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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맹자> / 최인호 지음

 

■ 묵자와 양자

 

■ 묵자의 사상 

 

묵자는 중국 역사상 가장 특이한 사상가이다. 묵자는 유가의 제자였으나 유교의 문제점에 실망한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발전시킨다. 묵자가 공자에게 느낀 최초의 불만은 봉건제도가 지닌 모순으로 부당하게 고난을 겪어야 되는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떴던 데 있다묵자 자신도 천민 계층 출신으로 동일한 고난을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가가 통치계급의 입장을 옹호하며 예악을 위주로 하여 서주 초기의 봉건 사회를 재현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큰 반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묵자는 사람들의 가깝고 먼 관계와 존비 관계를 엄격히 따져 봉건 계급 제도를 확고히 하려는 유가의 태도, 그리고 예악이나 따지며 귀족이나 제후들에게 기생하는 유가의 비생산성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묵자의 사상을 전하는 책 <묵자>는 유가의 모순을 공격하는 통렬한 비판적 성격을 띠고 있다. 

 

묵자의 사상의 핵심은 '겸애'이다. "자기를 죽여 천하를 보존케 할 수 있다면" 그 길을 따라 "자기를 죽여 천하를 이롭게 하"려는 사상이 묵자의 사상이다. '천하의 모든 나라도 하늘의 고을이요 천하의 모든 사람도 하늘의 신하이니, 하늘은 모든 신하들인 만 백성을 차별없이 공평하게 사랑하고 있다.' 이러한 공평한 하늘의 사랑은 겸애라는 사상으로 발전된다. '겸'이란 자기와 남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 자기와 남의 구별이 없는 것차등을 두지 않고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묵자의 겸애론은 나와 너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묵자의 사상은 평화와 사랑을 기치를 드 높인다. 묵자의 평화는 비폭력 평화가 아닌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여 평화를 이루려는 현실참여적 평화였다. 묵자의 사상을 따르는 제자들은 하나의 학파를 초월한 일종의 종교 집단을 형성했다.

 

 

 

■ 양주의 사상

 

양주는 노자가 주창한 자연주의 옹호자로 도가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다. 양주는 '삶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은, 인위적으로 방해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삶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고 주장함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 바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며, 이는 남이 아닌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지나친 집착과 탐닉은 지나친 자기 억제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고, 남을 돕든 사랑하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하는 안정될 것이다." 라는 말은 노자의 사상인 '무위'를 강조한 말이다. 저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더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야 말로 세상을 구할 방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야말로 실로 못하는 일 없이 다 하고 있다'(무위무불위) 노자적 무위사상에, '내 터럭 하나로 온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해도 내 터럭 하나라도 뽑아 주지 않겠다.'는 철저한 무위를 덧붙였던 것이다. 양주의 눈으로 보면 묵자의 겸애는 '유위'의 극치였다.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양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자로 간주된다. 반면에 묵자는 극단적인 이타주의자집단주의자엄격한 율법주의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양주는 백가쟁명의 시대에 학문의 진리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또 하나의 횃불이었다. 양주와 관련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다기망양'이란 고사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어느날 양자가 사는 이웃집의 양 한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이웃 사람은 자기 집 사람들을 다 동원하여 양을 찾으러 나서도록 한 후 양주에게도 찾아와 사람을 보내달라고 도움을 청하였다. 그저라 양자는 이렇게 물었다. "허허, 양 한마리를 찾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단 말이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웃 사람이 대답하기를, "양이 갈림길이 많은 길 쪽으로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이말을 들은 양자는 갑자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하루종일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다. 이를 본 양주의 제자 심도자는 왜 그런지 궁금해 하는 후배 맹손양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린 것처럼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또 학문은 원래 근본은 하나인데, 그 말단에 와서 이처럼 달라지고 만 것이다. 따라서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라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보자면 양자를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쾌락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양자도 여러 갈래의 길로 사라진 잃어버린 양, 즉 학문의 진리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백가쟁명의 난세 속에 타오르던 또 하나의 횃불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다.

 

 

■ 유학과 묵자, 양자

 

유학은 이타적인 묵가의 겸애사상이나 이기적인 양자의 사상과는 달리 자기를 위하면서도 남을 위하는 중용을 내세우고 있다. 유가에서 말하는 사랑은 차별성을 유지하고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다.  유가의 사랑은 인간 본성에 근거한 것으로 만천하에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륜관계는 반드시 친소(친함과 소원함)와 원근이 있는 것처럼 사랑을 펴는 데도 또한 선후의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가의 논리였다.

 

맹자는 굳이 묵자처럼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꿈치의 털까지 다 닳아 없어질 만큼 두루 사랑하고, 사람을 두루 이롭게 하기 위해서 분골쇄신하지 않아도, 인간의 심성속에 는 선천적인 선의 뿌리인 선근(양심)이 있어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선한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여 '성선지설'을 주장한 것이었다. "측은 지심, 수오지심, 공경지심, 시비지심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이요, 수오지심은 의이며, 공경지심은 예이고 시비지심은 지이다. 인의예지가 외부에서 나에게 스며드는 것이 아니요, 내가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 묵자와 양자

 

묵자가 유가에서 파생되었다면 양주, 즉 양자는 노자에서 파생되었다. 묵자가 유가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극대화 시켰다면 양자는 노자의 사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극대화 시켰다. 묵자와 양자는 심각한 양극단의 대립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양자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묵자의 겸애론을 실현 부가능한 공리공론으로 보고 맹렬히 비판한다. 맹자는 이 두 유파를 모두 비판함으로 유가를 더 우위의 사상으로 정립하고 있다 

 

 

■ 영화 '묵공'내에 나타난 묵자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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