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길

부산 해운대에서 달맞이 고개를 넘어 송정으로 가는 세 길이 있다.

첫째는 달맞이 길, 아주 멋진 드라이브 길이다.

 

둘째는 동해남부선 폐선부지길이다. 동해안을 끼고 도는 철길이었으나

새로운 철길이 다른 곳으로 뚫려 산책길이 되었다.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같은 평행선을 그리며 달리는 철로 위를 걷는 것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다만 바닥이 울퉁불퉁한 자갈로 덮여 있어 오래 걷기에 좀 불편하다.

가장자리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흙길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세째는 달맞이 길과 동해남부선 사이에 있는 삼포길이다.

해운대 미포에서 출발하여 청사포를 지나 송정 구덕포에 이르는 길이라고 해서

삼포길이라 불린다.

문탠로드는 삼포길의 한 구간이다.

미포에서 청사포까지의 길에는 더러 인적이 보이지만

청사포에서 구덕포까지는 인적이 드물다. 

구덕포에 가까이 가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금 보인다.

 

내치는 길에 구덕포를 지나 송정역까지 걸어 본다.

 

 

 

 

 

 

 

 

 

 

 

 

 

미포 청사포 구덕포

낙엽 
 
가을은
꽃보다 단풍이 사무친다
꽃은 홀로 아름답고
단풍은 함께 조화롭다 
 
떨어짐이 패배라면
낙엽은 아름다운 패배 
 
떨어짐이 죽음이라면
낙엽은 장엄한 죽음 
 
노을은 다음날을 약속하고
낙엽은 봄날을 준비한다. 
 
낙엽은
몸 바쳐
훗날을 기약하는
가을의 사랑이다

 

2015-10-21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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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점심시간에 톰이 받았던 전화, 그 때 톰은 몹시도 화가 나었더랬는데, 그 전화는 바로 윌슨의 전화였군요.

윌슨은 자기 부인 머틀이 누군가와 불륜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는 서둘러 떠나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톰은 막 데이지와 개츠비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윌슨과 같은 처지에 있게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기분이 어땠을까요? 남의 아내를 빼앗은 톰은 자신의 아내를 남에게 빼앗기게 될 처지에 놓였군요.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요?

 

--------------------------------------------------------------------------

 

Then as Doctor T. J. Eckleburg's faded eyes came into sight down the road, I remembered Gatsby's caution about gasoline.

그 때 저 길 저쪽에 닥터 T. J. 에클버그의 색 바랜 눈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나는 개츠비가 휘발유가 거의 다 되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We've got enough to get us to town," said Tom.

"시내에 갈만큼은 충분해," 톰이 말했다.

 

"But there's a garage right here," objected Jordan.

"그래도 바로 여기 주유소가 있잖아요." 조단이 말했다.

 

"I don't want to get stalled in this baking heat."

"바깥이 이렇게 찜통같은 더운데 꼭 나가야 하나?"

 

Tom threw on both brakes impatiently and we slid to an abrupt dusty stop under Wilson's sign.

톰은 짜증을 내며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는 미끄러지면서 월슨의 간판아래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급작스럽게 멈추어 섰다.  

 

After a moment the proprietor emerged from the interior of his establishment and gazed hollow-eyed at the car.

조금후 주인이 그가 일구어 놓은 허름한 건물에서 나와 휑한 눈으로 차를 바라보았다. 

 

 

"Let's have some gas!" cried Tom roughly. "What do you think we stopped for--to admire the view?"

"기름 좀 넣어 줘!" 톰이 거칠게 소리쳤다. "뭐하고 있나? 우리가 뭐 풍경이라고 감상하려고 멈춘 줄 알아?"

 

"I'm sick," said Wilson without moving. "I been sick all day."

"좀 아파서요."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윌슨이 말했다. "몇일을 앓았어요."

 

"What's the matter?"

"무슨 일이야?"

 

"I'm all run down."

"모든게 끝장났어요"

 

"Well, shall I help myself?" Tom demanded. "You sounded well enough on the phone."

"그럼 직접 기름을 넣을까?" 톰이 말했다. "전화상으로는 멀쩡해 보이던데."

 

With an effort Wilson left the shade and support of the doorway and, breathing hard, unscrewed the cap of the tank. 

그늘진 현관 문간에 기대어 서있던 윌슨이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힘들게 헉헉거리며 기름탱크의 뚜껑을 돌렸다.   

 

In the sunlight his face was green.

태양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빛은 엉망이었다. 

 

"I didn't mean to interrupt your lunch," he said. "But I need money pretty bad and I was wondering what you were going to do with your old car."

"점심식사를 방해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하지만 절실히 돈이 필요한 형편이라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차를 팔 것인지 궁금했었죠."

 

"How do you like this one?" inquired Tom. "I bought it last week."

"이 차은 어때?" 톰이 물었다. "지난 주에 산 거야."

 

"It's a nice yellow one," said Wilson, as he strained at the handle.

"멋진 노란 차군요," 윌슨이 주유 손잡이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Like to buy it?"

"사고 싶어?"

 

"Big chance," Wilson smiled faintly. "No, but I could make some money on the other."

"좋긴하지만 " 윌슨은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어렵고, 그 오래된 차는 돈이 좀 될 것 같습니다만."

 

"What do you want money for, all of a sudden?"

"갑자기 돈은 왜 필요한거야?"

 

"I've been here too long. I want to get away. My wife and I want to go west."

"여기에 너무 오래 살았어요. 멀리 가고 싶어요. 집사람이랑 서부로 가려고요."

 

"Your wife does!" exclaimed Tom, startled.

"당신 부인이 떠난다고!" 톰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She's been talking about it for ten years." He rested for a moment against the pump, shading his eyes. "And now she's going whether she wants
to or not. I'm going to get her away."

"집사람은 십년동안 계속 떠나자고 졸라댔죠." 윌슨은 주유기에 기대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제는 집사람 생각과는 관계없이 내가 집사람을 데리고 갈 겁니다."

 

The coup챕 flashed by us with a flurry of dust and the flash of a waving hand.

쿠페가 뿌연 먼지를 날리면서 휙 우리 곁을 지나갔다. 먼지속에 언듯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What do I owe you?" demanded Tom harshly.

"내가 당신에게 갚아야 할게 있나?" 톰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I just got wised up to something funny the last two days," remarked Wilson. "That's why I want to get away. That's why I been bothering you about the car."

"어제서야 기가 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떠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차에 안달 복달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What do I owe you?"

"얼마를 갚아야 하느냐고?"

 

"Dollar twenty."

"20달러요."

 

The relentless beating heat was beginning to confuse me and I had a bad moment there before I realized that so far his suspicions hadn't alighted on Tom.

사정없이 내리치는 열기로 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까지 윌슨이 톰을 의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았다. 나는 기분이 더러웠다.  

 

He had discovered that Myrtle had some sort of life apart from him in another world and the shock had made him physically sick.

윌슨은 알게 되었던 것이다. 머틀이 그를 속이고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충격으로 윌슨의 몸이 망가졌던 것이다. 

 

I stared at him and then at Tom, who had made a parallel discovery less than an hour before--and it occurred to me that there was no difference between men, in intelligence or race, so profound as the difference between the sick and the well.

나는 윌슨을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톰도. 톰이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자신이 윌슨과 같은 처지에 있게 된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불현듯 사람 사는 것이 매 한가지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지성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말이다. 이건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 사이의 차이만큼 심오하다.

 

Wilson was so sick that he looked guilty, unforgivably guilty--as if he had just got some poor girl with child.

윌슨은 너무 초췌하여 죄인처럼 보였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 마치 어떤 불쌍한 여자 아이를 범하여 아이를 가지게 한 것처럼. 

 

"I'll let you have that car," said Tom. "I'll send it over tomorrow afternoon."

"내 그 차를 주지." 톰이 말했다. "내일 오후에 보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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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륜대! 다섯 노인이 지팡이를 꽂아 놓고 놀았다는 오륜대! 오륜을 알던 사람들이 살았다는 오륜대! 

선동 상현마을은 갈맷길 8코스와 9코스의 시발점이다. 상현마을에서 선동교를 지나 철마천을 따라 걸어가면 철마를 지나 기장으로 이어지는 갈맷길 9코스, 회동수원지를 왼편으로 두고 가는 길이 갈맷길 8코스이다. 오늘은 상현마을에서 오륜대마을과 부엉산을 거쳐 오륜본동까지 걷는다. 초등5학년 딸아이랑...

 

 

 

 

선동교 위에서 저 쪽 숲을 보니, 숲 속 기와 지붕이 발걸음을 잡는다. 강릉김씨 상현당이다. 강릉김씨의 시조는 신라 혜공왕때 시중을 지냈던 김주원이라 한다. 조선초기 생육신이었던 김시습도 강릉김씨였는데, 생육신 사건 이후 김시습의 종제인 김검은 동래 수내동으로 와서 숨어 지내게 되고 김검의 아들인 김선은 동래 북쪽 선동 상현리에 자리를 잡는다. 단종이 죽은 후 김선은 선동 시냇가에 정자를 지어 북으로 문을 내어 절하며 스스로 호를 북계()라 하고 은둔하여 후학을 가르친다. 그 이후로 그의 후손은 이 곳을 터전으로 하여 대대로 살아왔다고 한다. 상현당은 강릉김씨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다.

 

상현마을 앞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수원지를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상현마을을 떠나 수원지 둘레길을 걷다가 호수 건너편을 보니 방금 출발했던 선동교가 보인다.  

 

저기 정면에 보이는 산이 부엉산이고, 그 절벽이 오륜대이다. 숲 속길을 걷다 멈추어 귀를 기울이니,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마치 수달이 물장난치는 소리같다. 바람에 일렁거리며 기슭에 첨벙거리는 소리가 유리잔이 쟁거렁거리는 소러처럼 싱그럽게 귀전에 부딪혀 온다. 소리죽여 들어보니, 물소리만 아니라 귀뚜라미 소리, 찌르레기 소리등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이따금 산새들 소리도 들리고, 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가을 바람도 시원하지만 숲의 소리도 바람 못지 않게 서늘하다. 사진으로 풍경은 담을 수 있지만 소리까지는 담을 수는 없다. 그냥 흘려버리기에는 아까워 숲의 소리를 담아 보려고 조용히 동영상을 하나 찍어 본다. 쉿~!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에, 주인공 유지태와 김영애가 소리사냥을 다녔던 것 같은데... 누구에게나 잡아 두고 싶은 소리가 있는가 보다.  

 

상현마을을 출발한지 20~30분쯤 되었을까? 오륜새내마을에 도착했다. 지도에는 오륜대마을로 표시되어 있다. 이 마을에는 오륜대를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맛집이 있다. 옛사람들도 오륜대 가까이에서 풍류를 즐기지 않았을까?

 

가까이서 본 오륜대! 언덕이나 절벽을 가리켜 '대'라고 한다. 바다를 접한 부산에는 해안선을 따라 작은 바위언덕이나 절벽이 발달한 곳이 많다. 해운대, 이기대, 신선대, 태종대, 몰운대등이 그러한 곳이다. 오륜대는 바다가 아닌 호수를 끼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대가 많기도 하다. 대부분 바다를 끼고 있지만 오륜대는 호수를 끼고 있다.

 

 

 

오륜대전망대는 해발 175미터의 부엉산 정상에 있다. 평평한 길을 걷다가 산길을 올라가자니 숨이 차다. 딸 아이는 헉헉거리며 언제 도착하냐며 계속 묻는다. 힘이 드는 모양이다. 산길에 떨어진 도토리를 누가 많이 줍나 시합을 한다. 딸아이는 도토리를 찾아 줍느라 힘든 것을 잊어버린다. 이렇게 부엉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서 딸아이는 계속 재잘거린다. 숨이 차 힘들어 하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는다. 하하하...

 

드디어 부엉산 정상에 도착한다. 왔던 곳을 뒤돌아 본다. 호수 저쪽으로 우리가 출발했던 상현마을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부엉산 초입에 자리잡은 상수도 취수장과 오륜새내마을도 보인다. 오륜새내마을에서 차가 들어오는 길을 따라 나가면 걷기에 아름다운 길을 따라 오륜본동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어진다. 차가 다니는 이 길은 '아름다운 길'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숲길보다 아름다우랴. 취수장으로 들어서서 부엉산으로 오르면 전망대에 도착하게 된다.  

 

오륜대아래의 물길이 보인다.

 

 

 

부엉산 바로 아래에 우리가 갈 오륜본동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한반도 모양을 한 회동 수원지의 모습도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 전망대 포토존에서 사진을 몇장 찍고 벤치에 앉아 좀 쉬어간다. 딸 아이는 오히려 쉬었더니 다리가 풀렸다고 하면서 휘청거린다. 그리고 아빠 곁에 붙어서 산을 내려간다. 힘을 내라! 거의 다 왔단다. 하하하    

 

부엉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이 두개다. 하나는 수원지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 쪽 길이 험해 보여 걷기에 쉬워보이는 길을 택해 간다. 수원지쪽으로 내려가는 길 따라 가면 오륜본동의 황토길이 있는 곳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부엉산을 내려오는 길에 노랑나비 한마리가 길을 안내하듯이 팔랑팔랑 앞서간다. 한참을 앞서가더니 숲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노랑나비 이야기하느라 또 딸 아이는 힘든 것을 잊어버린다. 딸 아이는 또 재잘재잘 댄다. 아빠! 아빠! 고시랑 고시랑... 딸아이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오륜본동에 도착해서는 김민정 갤러리에서 시원한 빙수를 먹으면서 피로한 발을 쉬어준다. 갤러리 창가에 놓인 작은 그림 속의 아이가 꼭 숲속길을 걷고 있는 딸아이 같다. 상현마을을 떠난 지 1시간 10분정도 걸렸나 보다. 아주 기분 좋은 길을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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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톰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를 소상히 알지는 못하지만, 뭔가를 어슴프레 알게 됩니다.

톰은 본능적으로 개츠비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개츠비를 깍아 내리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Jordan and Tom and I got into the front seat of Gatsby's car, Tom pushed the unfamiliar gears tentatively and we shot off into the oppressive heat
leaving them out of sight behind.

조단과 톰과 나는 개츠비의 차 앞 좌석에 앉았다, 톰이 익숙하기 않은 기어를 밀어보았다. 그러자 차는 가혹하리만큼 뜨거운 열기속으로 내달렸고, 뒤에 남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모습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Did you see that?" demanded Tom.

"알고 있었어?" 톰이 물었다.

 

"See what?"

"뭘 말이야?"

 

He looked at me keenly, realizing that Jordan and I must have known all along.

톰은 조단과 내가 그동안 죽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느끼면서, 나를 날카롭게 쏘아 보았다. 

 

"You think I'm pretty dumb, don't you?" he suggested. "Perhaps I am, but I have a--almost a second sight, sometimes, that tells me what to do.

"내가 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톰이 말했다. "아마 그럴 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에게는 때때로 무엇을 해야할 지 알려 주는, 뭐랄까 미래를 내다보는 그런게 있어.


Maybe you don't believe that, but science----"

아마 믿지 않겠지만, 과학은...."

 

He paused. The immediate contingency overtook him, pulled him back from the edge of the theoretical abyss.

그는 말을 멈추었다. 우연찮게 톰에게 떠오른 생각때문에, 톰은 없는 이야기를 꾸며낼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I've made a small investigation of this fellow," he continued.

"내가 그 자식 뒷조사를 좀 했거든," 그가 말을 이었다.

 

"I could have gone deeper if I'd known----"

"더 깊이 팔 수도 있었어, 내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말이야."

 

"Do you mean you've been to a medium?" inquired Jordan humorously.

"신문사에 가 보았다는 말이겠죠?" 조단이 장난스레 물었다.

 

"What?" Confused, he stared at us as we laughed. "A medium?"

"뭐라고?" 우리가 웃자 어리둥절해 하며 톰이 우리를 노려 보았다. "신문사?"

 

"About Gatsby."

"개츠비에 대해서 말이예요"

 

"About Gatsby! No, I haven't. I said I'd been making a small investigation of his past."

"개츠비에 대해서! 아니. 난 그의 과거에 대해 조금 알아 보았다고 말했을 뿐이야."

 

"And you found he was an Oxford man," said Jordan helpfully.

"그러면 개츠비가 옥스포드맨이란 것을 알았겠네요." 조단이 거들듯이 말했다.

 

"An Oxford man!" He was incredulous. "Like hell he is! He wears a pink suit."

"옥스포드맨!" 톰은 믿을 수 없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날라리가 옥스포드맨이 될 수가 있지."

 

"Nevertheless he's an Oxford man."

"그렇긴 하지만 개츠비는 옥스포드맨인걸 어떡해."

 

"Oxford, New Mexico," snorted Tom contemptuously, "or something like that."

"뉴 멕시코의 옥스포드겠지, "톰이 코웃음을 치며 경멸적으로 말했다. "아니면 그런 것이겠지." 

 

"Listen, Tom. If you're such a snob, why did you invite him to lunch?" demanded Jordan crossly.

"이봐요, 톰. 당신이 그렇게 도도하다면, 도대체 왜 개츠비를 점심에 초대했어요?" 조단이 심사가 뒤틀어져 물었다. 

 

"Daisy invited him; she knew him before we were married--God knows where!"

"데이지가 초대했어. 데이지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그 작자를 알고 있었어.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We were all irritable now with the fading ale and, aware of it, we drove for a while in silence.

우리 모두는 이젠 김이 빠져가는 맥주에 싫증이 났고, 이런 분위기를 안은 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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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섬진강길. 
 
전라북도 진안군 상추막이골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임실, 순창, 남원을 적신 뒤 옥정호에 잠시 가두어졌다가 곡성, 구례, 하동을 지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옥정호에서 구례까지 섬진강과 동행하여 걷는 길을 섬진강길이라 부른다. 이 구간 중 섬진강 시인의 고향인 진뫼마을에서 시작하여 천담마을과 구담마을을 거쳐 장구목에 이르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이 길은 김용택 시인의 말을 빌리면 '눈곱만큼도 지루하지 않은 길'이다. 
 
천담가는 길   김용택 
 
세월이 가면

길가에  피어나는 꽃따라

나도 피어나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릴라요

세월이 가면

길가에 지는 꽃따라

나도 질라요

강물은 흐르고

물처럼 가버린

그 흔한 세월

내 지나온 자리

뒤돌아 보면

고운 바람결에

꽃 피고 지는

아름다운 강길에서

많이도 살았다 살았어

바람이 흔들리며

강물이 모르게 가만히

강물에 떨어져

나는 갈라요 
 
구담마을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과 TV문학관 <소나기>의  촬영지로 풍광이 예사롭지 않은 마을이라한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강과 나란히 달리는 길은 섬진강 벚꽃길로 불린다. 이 길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다. 
구례에서 흘러내리는 이 길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에서 막걸리 한사발 얼큰하게 걸치고는 느긋하게 <토지>의 고향인 평사리에 이른다.  
 
가을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500리길을 구비구비 휘돌아온 섬진강은 하동에 이르러 황금빛 머리결로 흐른다. 여기서 가을은 여우가 어린 왕자를 기다리던 노란 밀밭과 같은 횡금빛이 된다. 
 
긴 여정을 걸어온 길은 동행했던 강물을 흘려보내고 평사리 최참판댁 대청 마루에 걸터 앉아 가을의 구수한 향기가 물결치는 황금 들판을  바라보다가 노곤한 잠에 빠져든다. 
 
저 차 창밖의 길은 차 창으로만 보기엔 아까운 길이다. 물길을 따라 걸으면서 사진 박듯이 망막에 그려넣고, 시간이 지난 후 추억을 거슬러 다시 찾고 싶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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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산문/ 문학동네

 

소설가 되기? 소설가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굳이 소설가가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 같은 것일랑 필요 없어. 다만 소설을 쓰면 되지. 소설?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냐. 그냥 써 봐. 쓰는 것이 중요하지. 많이 쓰는 것이 필요해. 그런데 쓸 때 몇가지 알고 있으면 좋은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은 대충 이렇다. 아는 형이 추천해 주었더랬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읽어 보라고 하면서, 핍진성을 이야기하고, 설명보다는 묘사하는 것이 요령이라면서. 이 책을 읽고 자신도 소설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그렇다면 이 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나도 읽어 보고 싶었다.

 

'토고'라는 말에 평범한 사람은 위로를 받는다. 소설가 김연수는 '초고'를 '토고'라고 한다. 다시 읽어 보면 구토가 난다는 뜻이란다. 잘 나가는 소설가도 처음 쓴 글이 그렇게 부끄러울 만큼 조잡하다면, 그리고 초고를 고치고 또 고치고 고치면서 소설이 완성된다고 한다면, 범인들의 글은 오죽할까?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글쓰기 책은 글을 쓰고 싶도록 만드는 책이다. <제멋대로 써라> 또는 <뼈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은 둘 다 공통점이 있음을 뒤 늦게 깨닫는다. 요는 펜을 들고 써 내려 가라는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제멋대로 써도 괜찮고, 쓰레기같은 글을 써도 괜찮으니 말이다. <소설가의 일>도 같은 맥락이다. 글, 아니 소설을 쓰고 있는 순간, 그 소설이 명작이 될 지, 아니면 그냥 잊혀질 지, 아니 완성될 지 조차 알 수 없겠지만 쓰고 있는 그 순간만은 이미 소설가임을.

 

이연수는 몇가지 팁을 준다. 감정을 설명하려 들면 안된다. 마음 속 욕망도 마찬가지로 설명하려 하지 마라. 오직 주인공의 표정, 몸짓, 행동으로 그 욕망이 드러나도록 하라. 'A가 굉장히 화가 났다.'란 표현은 좋지 않다. 'A의 얼굴이 시뻘게 진다. 주먹을 쥔 손이 벌벌 떨린다.' 예를 들면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화가 났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주인공이 화가 났음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란 것이다. 독자의 생생한 감각에 호소하라.

 

"절망보다 중요한 건 절망의 표정 및 몸짓, 그리고 절망 이후의 행동"

 

<소설가의 일> 포스팅을 하려다 책 목차를 훓어보다 문득 눈이 멈춘다. '펄펄 끊는 얼음에 이르기 위한 5단계' 참 이상도 하다. 저렇게 딱 잘라서 몇 단계 이렇게 말하면 뭔가 아주 중요한 비결이 숨어 있는 것만 같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1.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자.

생각하다 보면 정작 글을 시작할 수가 없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면 좋을 지 고민만 된다. "그러니 생각하지 말자.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자." 한 문장이라도 쓰고 나면 이제는 그 문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표현을 달리 할 수 있을런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식으로 쓰야 할 것인지...."이렇게 한 글자라도 쓰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소설을 쓰겠다면 생각하지 말고 쓰고 나서 생각하자."

 

2. 쓴다. 토가 나와도 계속 쓴다.

"소설가의 첫번째 일은 초고를 쓰는 일이다. 그 초고를 앞에 놓고 이렇게 묻는다.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쓸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일단 모르는 것, 쓸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소설가의 두번째 일이고, 모르는 것을 알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게 세번째 일이다."

쓸 수 없는 것을 쓴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오랫동안 읽히는 책이 되기 위해서는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문장이 좋아야 한다. 미래에도 읽힐 수 있는 명문은 어떻게 쓰는걸까? 지금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쓰면 된다. 모든 위대한 소설가는 자신이 쓸 수 없는 것을, 몰랐던 것을 쓴 사람이다.

쓸 수 없는 것을 쓰기 전에 쓸 수 있는 걸 정확하게 쓰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3단계로...

 

3. 서술어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토해놓은 걸 치운다.

문장을 손 볼 때는 서술어 부분을 최대한 줄여야만 한다. '~을 하다.'를 '~하다'로 바꾸어 진짜 동사를 드러낸다. 가능하면 동사와 시제만 남도록 서술어 부분을 단순하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문장이 명확해 지면서 글의 내용의 빈약함이 드러난다. 이제서야 내가 무엇을 쓰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 쓰지 않은 걸 채우기 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하지만 그 순간 '토고'의 문이 열린다.

 

4. 어느 정도 깨끗해졌다면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소설 속의 문장은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맡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이뤄졌다면, 소설 문장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나눠줄 때 아름다워진다.'는 문장 보다 '다른 사람을 안으면 둘 모두 따뜻해진다'는 것이 소설의 문장에 가깝다.

 

소설 잘 쓰는 법 30초 강의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 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든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이상 강의 끝" 

 

5.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이 세계를 감각하라.

글을 쓰기전에 소설가는 생각하지 않고 감각한다. '감각한다'는 원고를 쓸 때 사용하고, '생각하다'는 교정할 때 사용한다. 감각해서 알아낸 단어와 표현으로 원고를 쓰고, 그 원고에 대해 생각하면서 새로운 단어와 표현으로 교정한다.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은 재미있게 쓰여있다. 그리고 쉽게 읽을 수 있다. 오래 기억해 두고 싶은 말도 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소설은 아니더라도 감각적인 글을 쓰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메모한 글

 

우리가 욕망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에 그 욕망을 가리기 위해 짐짓하는 말들이 바로 문학의 말들이다.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건 대사와 행동과 표정과 몸짓같은 것 뿐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지 않은 자는 이 봄을 누릴 자격이 없노라. (이윤기)

 

문학적 표현의 본질은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표현하는 걸 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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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1 / 국토종주 편

글. 사진 / 김남희 / 미래인

 

"걷다 보면 생각은 담백해지고, 삶은 단순해진다."

 

걷기 여행 전문가 김남희씨는 땅끝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29일간 국토를 종단한 기록을 남긴다.

김남희씨는 여행도중 만난 아름다운 길, 숲, 사람들을 추억한다. 

 

여행도중 만난 순박한 사람들, 아직까지 인심은 남아 있구나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세월이 흘쩍 10년이 지났는데, 올해 2015년에도 그 인심은 여전할까하는 의문이 이는 내가 싫다. 

그 인심이 언제까지나 한결같기를 바래본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면서 끝까지 걸었던 정신은

여행의 낭만과 아름다움 속에 녹아들어 단지 스쳐지나가는 희미한 바람으로만 남아 흔적만 보일 뿐

<걷기 여행>은 걷고 싶은 원초적 욕망에 불을 붙인다.

 

도보여행이야말로 최고의 여행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마침 집 부근의 갈맷길을 걸으면서 걷기가 좋아지려는 차라 

걷기 여행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지도 모른다. 

 

'숨어있는 우리 흙길 열곳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2부 <가을 흙내음의 즐거움>은 아름다운 흙길 열 곳을 소개하고 있다.

1. 울진 소광리 금강 소나무 숲, 우리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가는 길

2. 정선 자개길, 아라리 한 자락에 종일토록 굽이도는 길

3. 섬진강 따라 걷는 길, 새들이 날아 오르는 호젓한 강변

4. 정선 송천 계곡 백 리 길, 곳곳에 이어지는 아늑한 숲길

5. 대관령 옛길, 연인의 손을 잡고 걷고 싶은 길

6. 인제 곰배령, 꽃 진 자리에 만개한 단풍 터널

7. 영월 동강,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상쾌한 산행

8. 인제 아침가리, 원시의 계곡처럼 청량한 숲길

9. 홍전 명개리에서 오대산 상원사까지, 단풍잎 도배지가 깔린 흙길

10. 송광사 굴목지재, 잡목숲 스치는 바람 따라 걷는 길

 

참, 이 분 많은 길을 걷기도 걸었다. 걸었던 길과 사랑에 빠진 여자. 사랑 편지를 쓰듯 써 내려간 이야기. 나 또한 그 길을 걷고 싶다.   

여덟 개 길이 강원도에 있고, 나머지는 섬진강 따라 걷는 길과 송광사 굴목지재. 이 두 길은 전라도에 있다.

기회를 잡아 가까운 곳에 있는 이 두 길을 먼저 밟고 싶다. 

 

언젠가 섬진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며 하동 가던 길이 생각난다.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그 길은 오랜 친구처럼 정다웠었는데.

차로 휙 지났던 그 길이 이제서야 아쉽다. 

 

그런데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이어지는 길은 왜 그리울까?

배가 살살 아파온다. 그러면 선암사의 해우소가 그립다. 선암사쪽으로는 쳐다 본 적도 없건만.

선암사의 해우소에 가면 아픈 배가 다 나을 것 같아서.

선암사 해우소 이야기를 아마도 김훈씨의 <자전거 여행>에서 보았을까?

아니면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 유적 답사기>에서 보았을까?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했다고 하는데...

선암사의 해우소엔 무엇이 있길래 저 야단들일까?

 

이 두 곳을 마음 한 쪽에 챙겨놓는다.

먼저 부산의 갈맷길을 맛보고 나서.

 

"길 위에 홀로 설 모든 사람들에게 나바호족 인디언의 인사말을 건넨다. 호조니- 당신이 아름다움 속에서 걷게 되기를" 

 

밑줄

잡목 숲을 스치는 이 기막힌 바람소리, 두레박 가득 이 바람 소리를 찰랑 찰랑 넘치게 담아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누군가의 귀전에 부어주고 싶다.

함께 걷는 그녀가 말한다. "풍경은 담을 수 있지만 소리와 향기는 사진에 담을 수 없어 아쉬워요."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어찌 소리와 향기뿐일까? 어깨를 어루 만지는 따스한 햇살의 감촉도 담을 수 없고,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며 깨어나는 내 생생한 감각도 담을 수 없다. 담을 수 없는 것을 담고자 하는, 남길 수 없는 것들을 남기고자 하는 어리석은 노력이 결국 시간일까?

 

따뜻한 슬픔 <홍성란>

 

차마, 사랑은 여윈 네 얼굴 바라보다 일어서는 것

묻고 싶은 말 접어 두는 것,

말 못하고 돌아 서는 것,

하필, 동짓밤 빈 가지 어둠 별에서,

소톱달에서 가슴 저리게 너를 보는 것.

문득, 삿갓 등 아래 함박눈 오는 밤  창문 활짝 열고 서서

그립다, 네가 그립다. 눈에게만 고하는 것.

끝내, 사랑한다는 말 따윈 끝끝내 참아내는 것,

 

 

물빛 1 <마종기>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 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 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청년과 함께 이 저녁 <허수경>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스칠 때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흔들고 갈 때

터닌 곳, 꿰맨 자리가 아무리 순해도 속으로

상처는 해마다 겉잎과 속잎을 번갈아 내며

울울한 나무 그늘이 돌 만큼

깊이 아팠는데요.

 

 

길 <고은>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감자꽃 피는 길 <김점용>

 

오늘 하루 얼마나 걸었을까

지는 해의 부르튼 발바닥이 보여

문을 잠근 그대여

너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테지

이 길의 두근거림

가도 가도 계속되는 흰 꽃들의 속삭임

 

 

        * 부산 서동의 작은 산 옥순봉에서 바라본 금정산, 그리고 옥순봉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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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명소 하면 해운대!  해운대하면 해수욕장! 이것은 일종의 화석처럼 변하지 않는 공식처럼 되어 있다.

여름에는 땀을 식혀주는 바닷 바람이며, 뜨거운 몸을 식혀주는 차가운 바닷물 때문이라도 해수욕장이 최고로 치이겠지만, 봄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달맞이 길이 가장 멋진 명소일 것이다. 한 쪽으로는 해송숲과 바다, 맞은 편엔 멋진 카페들이 즐비하니 어우러진 아름다운 언덕 길이 달맞이 길이다. 해운대 미포를 떠난 길은 해월정, 청사포를 지나 송정 바닷가에 이른다. 

 

4월의 달맞이 길은 아름답다. 벚꽃 잔치가 벌어지는 때는 물론이거니와 벚꽃이 가지를 떠나는 때라면 더 좋다. 그 때가 되면 소나무 무성한 숲 사이로 언듯 언듯 보이는 푸른 바다는 여느 때와 다름이 없으려니와, 도로 위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한 벚꽃의 하얀 향연은 운치를 한결 더해 준다. 더구나 꽃잎이 가지에 작별을 고하며 영원한 고향을 향해 떠나는 꽃잎들의 영결식은 더욱 찬란하다. 꽃잎은 일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공기의 흐름과 저항에 따라 몇번이나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짧은 공간을 횡단하며 떨어지는 꽃잎이 자세를 바꿀 때마다 눈물 어린 미소가 반짝거린다. 그리고 그 슬픔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마냥 행복하게 꽃잎을 머리에 이고 걷는 사람들...     

 

달맞이 길 정점에 자리한 해월정, 해월정에 달이 뜨면 해운대 앞바다는 보름달이 뿜어내는 마력에 홀린다. 하얀 달은 부드러운 빛을 질펀한 까만 바다에 뿌려대고, 부드러운 은빛가루는 바다 한 복판에 은빛 찰랑이는 길을 놓는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의 은빛 달길을 가지고 있다. 모든 길은 달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 앞 정면에서 시작되어 저 멀리 까만 하늘과 닿아 있는 수평선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다. 넓게 시작된 길은 점점 폭을 좁혀가다가 달과 가장 가까운 수평선에서 끊어진다. 은빛 달길위에는 수만 수억의 은빛 비늘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달빛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힘이 있다. 문득 벚꽃이 흐드러진 달 밤에 달맞이 길을 찾으면 어떨까? 갑자기 내년 봄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긴다. 

 

달맞이 언덕에는 아름다운 세개의 길이 있다. 첫째는 달맞이 길이요, 둘째는 동해선폐선 철길이요, 세째는 문탠로드이다. 달맞이 길은 차도와 보도가 어우러진 길이요, 철길은 기차가 달리지 않는 해안 폐선이요, 문탠로드는 달맞이길과 해안철길 사이 소나무 숲 속을 관통하는 오솔길이다. 문탠 로드는 달빛이 숲을 비출 때 가장 강한 마력을 뿜어대는 길이다. 달빛이 소나무사이로 달빛을 흘릴 때 이 길은 가장 신비한 생명력을 얻는가 보다. 숲 사이로 보이는 달빛 가득한 바다와 숲 사이로 비치는 달빛에 홀리고 싶은 마음을 한 쪽에 가두어 둔다. 추석 지나 다음 보름달이 뜰 무렵, 이 길을 걸어보자고 마음속으로 약속해 본다.

 

갈매기와 길을 형상화한 이정표, 길이라고 읽는다. 갈맷길이라고 읽는 사람은 센스쟁이!

 

 

문탠로드 입구 표지판이다. 달빛 기운 가득한 길!

 

 

 

햇살이 스며드는 오솔길. 소나무는 아니 해송은 볼 때마다 더 멋져 보인다.

 

 

세찬 바다 바람이 숲을 휩쓸 때면 소나무 숲은 머리를 흔든다. 쏴쏴 하는 소리가 파도소리인지 바람소리인지...

 

 

문탠로드 전망대

 

저 앞 쪽에 보이는 해안은 이기대 해안, 이기대 왼쪽 끝에 점점이 멀어지는 섬들이 오륙도, 오륙도 너머 영도가 보인다. 영도에는 부산의 또 다른 명물 태종대가 있다. 

 

가까이 당겨본 오륙도. 왼쪽 끝에 뽀족한 등대가 희미하게 보인다. 등대섬이다. 그 오른쪽에 가장 큰 형의 모습을 한 굴섬과 송곳섬, 조금 떨어져 있는 수리섬, 그리고 조금 외롭게 떨어져 있는 우삭도. 우삭도는 왼쪽의 큰 솔섬과 오른쪽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방패섬 두개로 이루어져 있다. 밀물이 들면 우삭도는 솔섬과 방패섬 두개로 나누어지고, 썰물이 나가면 두 섬은 하나의 우삭도가 된다. 등대섬과 굴섬, 수리섬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서로 떨어져 있는 섬이다.

 

문탠로드는 또 다시 다섯개의 길로 나누나 보다. 이 길은 한 바뀌 순환하는 길이다.

 

삼포해안길은 해운대 미포, 청사포, 송정의 덕포로 이어진 길. 문탠로드는 삼포길의 일부, 삼포길은 갈맷길의 일부이다.

 

문탠로드 오솔길에서 청사포의 쌍둥이 등대를 바라본다. 바로 아래에 동해폐선길이 살짝 보인다.

 

문탠순환길에서 벗어나 동해폐선철길로 들어선다. 숲 사이로 나란히 달리는 철길은 영원히 만나지 못할 평행선이지만 결코 멀어지지 않는 선이기도 하다.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이렇게 영원히 함께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철길 나무 침목 위로 하얀 꽃을 피운 쑥부쟁이. 구절초와 비숫하다. 쑥부쟁이는 꽃잎이 더 가늘고, 구절초는 꽃잎 끝이 더 둥글다. 봄에 꽃을 피우는 데이지와 가을에 꽃을 피우는 구절초도 많이 닮아 있는 품이 서로 닮은 꼴로 달리는 선로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철길 옆에 장승들이 무더기로 서 있다.

 

햇살이 하얗게 내려 앉은 해운대 앞 바다. 해풍에 무심히 흔들리는 풀. 바람이 일면 풀은 눕는다든가.

 

풀과 나무, 숲과 바다와 함께 걷다가 인간이 만든 도시를 만나는 이 길은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하더라. 광안대교의 모습도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해선 아래 해안에는 분단의 아픔이 가시지 않은 철조망길이 보인다.

 

동백섬 너머로 해운대 마린 시티가 자연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온다. 그리고 해운대 백사장... 

 

가는 길 다르고 오는 길 다르다.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걸으면서 보는 풍경과 그 반대로 걸으면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 산을 오르면서 보는 산과 내려오면서 보는 산의 모습이 다른다. 고은 시인은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못 본 그 꽃'이라고 노래했지만, 난 '가는 길과 오는 길은 다른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범어사는 부산 금정산 기슭에 위치한 화엄종 사찰이다.

신라시대 당나라에 유학했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그 유구한 역사가 놀랍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동국해변에 금정산이 있고,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이나 되는 바위가 솟아 있는데,

그 바위 위에 우물이 있고 그 우물은 항상 금색이며 사시사철 언제나 가득 차 마르지 않고,

그 우물에는 범천으로부터 오색구름을 타고 온 금어()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금정산과 범어사라는 명칭이 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범어사 들어가는 차길은 숲속으로 길이다. 이 길은 범어사 앞을 통과하는 순환도로인데 

좋은 드라이브 코스이다. 10~15분가량 걸리려나...

범어사를 지나니 동쪽 하늘이 툭 터인 곳에 사람들이 달 구경을 하고 있다.

 

추석의 달을 보려고 서 있나 보다. 이 번 달은 슈퍼문이라고 하던데...

산위로 두둥실 떠 오르는 달을 찍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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