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방탈출 카페에 가자?"
"가기 싫다. 안 간다."
"친구들이랑 방탈출 카페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아이들만 입장시켜주는 건 안 된대. 아빠가 같이 가야 돼."
"싫은데"
"같이 가 줘"
"좀 조르지 마라. 귀찮다."
"아빠아~"

옆에 있던 아내가 듣다 못해 한 마디 한다.

"방탈출 카페에 갔다가 갈맷길 데리고 가면 어때요?"

귀가 솔깃해진다. 아이들에게 길 걷는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딸아이는 극구 함께 가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갈맷길 아빠와 함께 가면 생각해 볼게."

딸아이는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낸다.

"아빠, 애들이 다 갈맷길 따라 간대."

"좋아, 그러면 가자."


방탈출 카페는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KGB에 붙잡혀 수감된 스파이가 탈출한 흔적을 찾아 똑같은 방법대로 방을 탈출해야 했다. 1시간 안에 탈출하지 못하면 실패다. 우다섯 명 모두 탈출 비밀을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는 갈맷길을 갈 차례다. 아이들과 39번 버스를 타고 송정까지 갔다. 송정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하나씩 먹고 다시 181번을 타고 대변으로 갔다.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계획에는 한치의 변경도 없다.


대변 척화비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아이들에게 척화비 안내문을 읽어 주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에서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친 흥선대원군은 쇄국 의지를 알리고 서양 오랑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대변에 있는 척화비는 일제 시대 부두 공사 때 바다에 버려졌던 것을 해방 후 인양하여 지금 대변 초등학교 교정에 옮겨놓았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我戒萬年子孫(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아계만년자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하자고 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이에 우리 자손만대에 경계 하노라."


아이들은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듯 시큰둥하다. 아이들에게 역사란 무엇일까? 반드시 알아야 할 자신의 뿌리이며 민족혼을 일깨우는 스승일까? 아니면 아이들은 아직은 역사를 알기에 이른 나이일까?


아이들은 척화비에서 죽도공원으로 가는 길에 거대 해파리를 보고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와~ 이렇게 큰 해파리는 처음 본다."

"이렇게 큰 해파리는 기장에서만 볼 수 있는 거야." 기장에서 나고 자란 한결이가 말한다.

아이들은 해파리의 독을 무서워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일회용 우산으로 해파리를 찔러보기도 하면서 신기해한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동물에 흥미가 많다. 하지만 식물과 풍경처럼 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진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들에게는 정적인 것이 아직은 눈에 들어오지 않나 보다. 언제쯤이면 정적인 사물이 눈에 들어오는 걸까? 나는 어땠을까 돌아보니 꽤 나이가 든 후에야 그랬던 것 같다. 역시 아이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리라.



죽도 공원으로 들어갔다. 갈맷길을 면한 동해안에는 섬다운 섬이 없다. 대변항에 있는 죽도가 유일한 섬이다.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다리가 놓여있어 죽도까지의 쉽게 들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섬은 사유지이다. 시온그룹이라는 종교단체의 소유로서 울타리와 철조망에 막혀 섬 중앙으로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이 섬을 개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소유자로부터의 반응이 없는 실정이다. 아쉽지만 우리는 갯바위를 밟고 아슬아슬하게 섬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죽도에 발을 들여놓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게 전부인 듯하다.

하루빨리 섬이 개방되기를 기원해 본다.  


섬 내부로 나 있는 커다란 대문 쪽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게 길이 있는 게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좁은, 그냥 발 디딜 곳을 조심스럽게 찾아 밟고 지나야 만 할 그런 길 아닌 길(?)이었다. 물이 들어오면 사라질 그런 길, 아슬아슬 밟고 지나갈 수 있는 길, 설마 이 좁은 공간을 지나 섬을 한 바퀴 돌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길, 이 쪽으로는 거의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지 않을 길, 오직 호기심 많은 아이들 같은 성격의 사람들만이 무작정 가 볼 마음을 가질만한 길, 하지만 수심이 깊지 않아 위험하지는 않았다.


섬 둘레를 1/4 정도 돌 때까지는 발 디딜 데를 찾아야 했지만 그 뒤로는 비교적 너른 갯바위 위를 밟고 지날 수 있었다. 그러다 섬의 저쪽 끝에서는 드디어 길이 끊어졌다. 물이 빠지면 운동화를 적시지 않고 지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발목까지 오는 물속을 덤벙덤벙 건너든지, 아니면 아슬아슬하게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작은 돌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야 할 형편이다. 자칫 징검다리 돌이 삐끗하면 발이 물에 빠질 것을 감수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좀처럼 건너오려 하질 않는다. 다시 돌아가겠다고 우긴다. 중학교 1학년인 한결이만 나를 따라온다. '여자 애들은 못 온다 쳐도, 진서 이놈! 너라도 따라와야지.' 속이 부글거린다.


먼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쪽으로 나오니 낚시꾼들이 무리가 보인다. 그리고 저 먼 바다 쪽으로 파도를 막아 주는 방파제와 그 끝에 어김없이 우뚝 서 있는 등대가 보인다. 이 방파제는 상당히 넓은 공간을 안고 있다. 변항은 생각보다 훨씬 큰 항이었다.


동해안의 등대는 대변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기념하는 월드컵 등대와 일명 마징가 등대 및 태권브이 등대라 불리는 장승등대가 죽도 앞바다에 우뚝하다.  


그리고 죽도와 오랑대공원 사이에 있는 닭벼슬 등대와 젖병등대. 이 다섯 등대는 제각각  다른 형상이다. 아이들 장난같은 모양의 등대 다섯이 한 눈에 보인다.


다음 행선지를 멀리 바라본다. 저 멀리 점점이 바닷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갯바위, 오랑대가 보인다. 어떻게 할까 순간적으로 갈등한다. 날씨가 무더운데, 빗방울도 떨어지는데, 아이들과 걷는 길을 여기서 마감할까? 어렵게 아이들과 함께 온 이 길인데, 어쩌지?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늘의 갈맷길 걷기가 오랫동안 남으면 좋겠다. '고생한 만큼 기억에 남는다'는 상투적인 상식에 기대어 조금 더 걷자고 마음먹는다.


"애들아, 힘들지."

"예"

"오늘은 저기 보이는 오랑대까지 갈 거다. 조금만 더 가자."

"와 저렇게 멀리요."

"멀어 보이지만 걷다 보면 금방이다."

"..." 


이제 오랑대 공원 입구까지는 시원하게 뻗은 일직선 도로이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걷는다. 아마도 이 더운 날에 갈맷길 따라와서 고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에 갈맷길에 나서자고 하면 아이들이 또 따라나서려고 할까?


"다음에 또 따라 올래?"

"방탈출 카페에 가면 따라올 수 있겠어요."

"하하하"

"저도요."

"그냥은 안 따라올 거예요."


그래. 아이들은 방탈출 카페가 더 마음에 들었구나. 그리고 갈맷길 걷기가 죽도록 싫었던 것도 아니었구나.



오랑대란 이름의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랑 벼슬을 하던 다섯 명이 기장에 유배된 친구를 찾았다고 이렇게 불린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인 해동 용궁사 부근의 시랑대도 그렇게 해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오랑대 바위 위에 걸터앉은 용왕단을 배경으로 태양이 떠 오르는 풍경은 사진작가들이 좋아하는 장면이다.


오랑대 용왕단 아래에 삼면이 바위로 둘러싸인 조그만 공간은 거의 삼십 년 전의 기억을 일. 한번 와본 듯한 장소, 하지만 기억과 다소 차이가 있는 곳, 여기가 그때 그곳이라면 분명 저 공간 가운데 큰 바위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기억에 남아 있는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한순간 되살아 나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때 동생이 하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행님은 손과 발이 완전 따로 움직이네."

개구리헤엄을 치던 나를 보고 하던 말이다.


한 여자애가 우리 보고 하던 말도 생각이 난다.

"아저씨, 제가 저 바위까지 헤엄쳐 가고 싶은데 혹시 제가 빠지면 구해줄 수 있나요?"

수영을 좀 하던 동생이 콧방귀를 뀐다.

결국 그 여학생은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기억의 메커니즘이 신기하기도 하다. 한순간의 인상이 잠자고 있던 기억을 일깨우다니. 그것도 큰 의미가 있는 기억도 아닌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에 보면 오래 전에 잃어 버렸던 시간을 일깨워낸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맛 이야기가 나온다. 그 기억은 잃어버렸던 것이 아니라 아주 깊은 구석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깊은 곳을 건드리는 찰나의 자극은 그 숨은 기억을 되살려 낸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 두뇌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아니야. 그럴 순 없지. 허공에 흩어져 사라진 기억이 설마 하나도 없으려고.


갈맷길 1코스의 남은 길을 가면서 찾아볼 것이 하나 생겼다. 송정까지 해안길을 따라가면서 그 옛날 기억의 장소를 찾아보는 것. 혹 이 곳 오랑대가 기억 속의 그곳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그 바위는?



오늘의 갈맷길 걷기는 여기서 마무리한다. 아이들과 함께 걸었던 덕분에 정말 짧은 길을 걸었던 걸음이었다.

이따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 길이었지만 비 때문에 더위를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며 그 비를 맞고 걸었어도 좋았을 것을.


다음 갈맷길 기행은 오랑대공원에서 시작하여 해동 용궁사, 시랑대, 송정을 거쳐 해운대 달맞이 고개까지이다.





    갈맷길 1-2코스는 기장군청을 출발하여 대변항, 해동용궁사, 송정을 거쳐 해운대 문탠로드 입구까지 21.4km의 길이다. 1시간에 3km를 걸으면 7시간이 걸리고, 1시간에 4km를 걸으면 5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갈맷길 안내서에 소개된 표준 시간은 6시간이다.

      

    잠자리에 들고서도 머릿속은 갈맷길 생각으로 설렘 반 걱정 반이다. '폭염이 예고된 7월의 마지막 날에 21.4km를 다 걸을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이번 기회에 1-2코스를 다 걷고 싶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그럼 해동용궁사까지 3시간 정도만 걷는 것은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걱정을 하다가 마침내 일정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고 생각한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래. 길을 많이 걷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길을 가면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하면 된다. 힘이 들거나 멈추고 싶으면 거기에서 멈추면 된다. 이 길을 걸으면서 나의 인내력을 시험하거나 나의 한계를 확인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자유롭게 걸을 뿐이다. 

     

    아침에 길을 나서려 할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여름 방학이라고 창원에서 조카 둘이 와 있다. 게다가 오늘은 나흘간의 휴가가 시작되는 날이다. 나 혼자 길을 걷자고 아내와 딸을 두 조카와 함께 두고 가자니 꺼림칙하다. 무슨 대답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 물어본다. "나와 함께 갈맷길 갈 사람? 은유야 같이 가자. 너희들 함께 가지 않을래?  당신은 어때?" 아무도 함께 갈 뜻이 없음과 나 혼자 나가는 것에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조금은 마음 편하게 집을 나섰다. 오전 9시이다.


    39번 시내버스를 탄다. 10시경 갈맷길 1-2코스가 시작되는 죽성 사거리에 내려 죽성로에 들어선다. 바람에 살랑이는 잎새처럼 이는 기대감. 봄 비 내리는 4월의 죽성로는 차창밖으로 그냥 그대로 한 폭의 초록 수채화였는데, 한 여름의 죽성로는 어떨까?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죽성로는 잠깐 쭉 뻗은 시원한 모습을 보여 주더니, 곧 뜨거운 여름 길이 되었다. 비에 젖은 사월의 죽성로와 뙤약볕쬐는 한여름의 죽성로가 같은 길일 거라고 애초에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인가가 드물어지면서 도로가의 보행로도 점차 없어지고, 좁은 이차선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에 신경을 쓰면서 갓길을 조심스레 걸어야 했다. 죽성로를 40~50분 걸었을 것이다.


    두호마을, 갈맷길 1-2코스에서 처음 들리는 마을이다. 두호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두모포라 불리었는데, 이곳은 연안방어를 위한 수군이 주둔했던 군사요충지였다. 지금도 두모포진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조한 왜성이 마을 뒷산에 남아 있다. 왜란 후 두모포진은 부산 수정동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북쪽에서 죽성천이 흘러드는 곳에 작은 지방어항인 두호항이 들어서 있다.


    마을의 언덕 위에는 노거수老巨樹 다섯 그루가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있으며, 그 가운데 국시당이라 불리는 서낭당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서쪽에는 봉대산이 죽성만을 내려다보고 있고 그 정상에는 봉수대가 남아 있다. 마을 동쪽에는 해안 암석과 어우러진 동해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해안을 따라 황학대, 기장 죽성 성당, 어사암이 있다.  



    기장 죽성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원한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해안 암석에 그림처럼 올라앉아 있는 죽성 성당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다. 이곳에서 예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조선시대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이 죽성을 자주 찾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죽성은 예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명소였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김없이 사람이 살다 간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이야기가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라면 더욱 흥미가 간다. 조선시대 시조문학의 대가였던 고산 윤선도가 여기에 있었다. 기장에서 7년간 유배생활을 할 때, 그는 죽성 해안의 작은 섬 송도의 아름다움에 끌렸다. 아름다운 바다, 시원한 바람, 코 끝을 스치는 바다 냄새와 해송 향기, 파도와 갈매기 소리가 그의 시름을 달래 주었다. 그는 이곳을 양쯔강 하류의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황학루에 비하면서 황학대라 이름하였다.


    봉대산 높은 곳에서 죽성만을 내려다보면 날개를 활짝 편 학 한 마리가 북쪽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기가 막히게도 방파제는 학의 긴 부리처럼 보인다. 해송이 드문 드문 자란 황학대는 학의 머리, 오른쪽 암석 해안과 왼쪽 해안은 좌우 날개를 펼친 모습이다. 푸른 학의 머리에 황금빛 암석과 모래사장이 두 날개가 되어 황학은 북쪽을 향해 날고 있다. 고산은 백성의 병을 치료할 약초를 캐러 봉대산에 올랐다가 죽성만을 내려다 보고 학의 모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옛날 유배생활의 시름을 씻어주던 황학대의 절경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고 30여 그루의 해송만이 옛날의 흔적을 지키고 있다. 10명 남짓 올라설 수 있는 6~7m 정도 높이의 조그만 바위 언덕 앞에 초라한 황학대 안내문이 안쓰럽다.  


    두호마을 전경


    아름다운 자연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짓이겨 버리는 인간의 몰지각함이 슬프다. 조선 최고의 시인 윤선도가 극찬한 황학대의 절경을 지루한 회색 시멘트로 덮어버리고, 볼썽 사나운 전봇대와 황학대 주위 공간을 가로지르며 시야를 방해하는 전기줄로 궁색하게 만들어 버리다니. 기장 군청에서는 하루 빨리 황학대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초라하게 남아있는 황학대에 올라 본다. 바다를 바라본다. 아! 아직도 여전히 황학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은 아름답다. 


    윤선도의 비 온 뒤 풍경을 그린 시 한수로 아쉬움을 달래 본다.  


    우후요 雨後謠

    구즌 비 개단 말가 흐리던 구룸 걷단 말가,

    압 내희 기픈 소히 다 맑앗다 하나산다

    진실로 맑디 옫 맑아시면 갇긴 시서 오리라


    궂은비 개인다 말인가 흐리던 구름이 걷힌다 말인가

    앞 시내 깊은 연못이 다 맑았다 하는구나

    진실로 맑디 맑아지면 갓끈 씻어 오리라





    황학대 옆에 황학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매력적인 정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희봉 님의 "한국 건축의 모든 것 - 죽서루"에 나오는 '한국의 누정은 밖에서 바라보는 건축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 누정의 존재 의미는 누정의 안 공간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데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줄줄 흐르는 땀도 식힐 겸 피곤한 다리도 쉬어줄 겸 신발을 벗고 황학정을 올랐다. 황학정의 계자 난간에 기대어 앉아 죽성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어느 듯 나는 400여 년 전 윤선도처럼 그 절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땀을 식힌 후 기장 죽성리 해송을 보기 위해 두호마을 뒷 언덕에 올랐다. 기장 죽성리 해송은  400년 수령의 거대한 해송 다섯 그루이다. 다섯 그루가 그 한 가운데 서낭당인 국수당을 품고 있다.  400년 전 이 언덕에 돌무덤을 쌓고 그 주위에 여섯 그루의 해송을 심어 국수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그러다 해방 이후에는해마다 정초에 마을을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서낭당이 되어 현재는 국수당이라 불리고 있다. 











    언덕 아래 두호마을의 벽에는 가지 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쉽다. 벽화보다는 오히려 황학정을 살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을 해 본다.









    두호마을 해안에는 또 다른 역사의 흔적이 있다. 마을 앞바다에 있는 널찍한 해안 바위 '어사암'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고종 때 대동미를 실은 조운선이 풍랑으로 죽성 앞바다에 침몰하였다. 굶주린 어촌 주민들이 이 곡식을 건져 먹었다가 절도 혐의로 기장 관아에 붙잡혀 가 문초를 받다 죽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이도재를 어사로 파견하였다.


    주민들은 기장 관기 월매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어사에게 호소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어사가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매바위(어사암)를 찾았을 때 월매가 동행하여 춤과 노래를 선보였고, 이곳의 절경과 월매의 교태로 흥이 난 어사는 흔쾌히 "그 불쌍한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소"하며 주민들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매바위 위에 "하늘은 비어서 다시 형상하기 어렵고, 바다는 넓어서 시를 짓기 어렵네. 세상 구만리에, 한 조각 갈대배로 항해해 갈 뿐이라네.(天空更無物 海闊難爲詩 環球九萬里 一葦可航之)"라는 시를 새겨 넣었다.


    어사의 은혜를 고맙게 여긴 주민들은 매바위를 어사암이라고 불렀다.






    두호마을 다음 마을이 월전마을이다. 두호마을에는 죽성드림 성당을 보러 온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월전마을에는 횟집 찾는 손님들이 붐빈다. 


    월전마을에서 대변항으로 가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해변을 따라가는 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작은 고개를 넘어가는 기장 옛길이다. 해변길은 많이 걸었으니, 이제는 산길을 걷자고 마음먹고 숲으로 들어선다.


    산길을 20~30분을 걸었더니 여름 소나기와 퍼붓는 햇살을 듬뿍 먹고 무성히 피어난 풀들이 길을 온통 덮어 버렸고, 길은 그 흔적을 잃는다. 이따금 나타나는 갈맷길 표식, 파랑 분홍 리본만이 여기가 길임을 알려준다. 풀숲에 숨어있는 뱀이 무서워 작대기를 휘둘러 풀을 이리저리 치며 걷는다. 진한 풀냄새와 흙냄새, 내리쬐는 햇볕, 줄기차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함께 걸었던 고생 길이다.  


    자연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한 편 무섭기도 하다. 자연을 벗어나 사는 인간은 원초적인 자연 속에서 무서움을 느낀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낀다. 


    길 / 고은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중략)


    '길이 없는 곳에서부터 진정한 희망이 시작된다.'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다시 사람이 지나 다니던 흔적이 보이고 산등성이 사이로 멀리 대변항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대변항이다. 갈맷길 1코스 중에서 가장 큰 항이다. 큰 해변이란 뜻의 대변. 해마다 대변 멸치축제가 열린다. 대변의 멸치회는 꽤 유명하다. 항구에는 수산물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몇몇 화가들이 대변항의 모습을 화폭에 옮기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모습을 찍어도 될까요?"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한 컷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으로는 너무나 쉽게 찍어낼 수 있는 장면을 화가들은 붓끝으로 일일이 터치를 해가며 마음속의 심상을 그려내고 있다. 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감흥을 표현하고 있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들과 함께 수산과학관을 갔다가 지금 송정 맥도날드에 와 있다. 와서 같이 점심 먹자." 폭염 속을 걷는 고생을 멈출 명분이 생겼다. 세 시간째 무더위 속을 걷자니 예삿일이 아니다.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멈출 때는 멈추자. 무리하지 말자. 혼자 걷는 길이 좋은 이유는 나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대변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대원군 척화비 앞에서 죽도를 바라보며 오늘의 갈맷길 답사를 끝내기로 한다.  다음 갈맷길 답사는 척화비에서 시작하기로 기약하고 181번 버스를 타고 송정으로 향한다. 

     



    한국건축의 모든 것 - 죽서루 / 이희봉 지음/ 한국학술정보



    태백산맥에서 발원한 물길은 오십구비를 돌아 삼척에 이르러 깍아지른 벼랑에 부딪히며 휘돌아 동해로 흘러든다. 이 벼랑가에 바짝 붙어 서 있는 누정 죽서루.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죽장사'라는 옛 절의 서쪽에 있었다고 해서 죽서루라 불린다. 죽장사는 대밭에 둘러 싸인 절이란 뜻인데, 아마 그 절은 없어도 아직도 대밭은 남아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 건축된 죽서루는 조선시대 들어서서 삼척도호부 객사 부설 누정으로 역할을 하였다.


    죽서루에서는 관청에서 주관하는 각종 연회가 열렸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노래와 춤, 그리고 술에 취한 선비들은 다시 한 번 죽서루 주위의 경관에 취했을 것이다. 서쪽의 아찔한 벼랑 아래를 내려다 보면 깊고도 푸른 오십천 물길, 그 맑은 물속엔 물고기들이 노닐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면 개울 건너편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 그리고 그 너머로 옹기종기 마을이 정겹게 보인다. 북쪽으로 비스듬히 시선을 돌리면 흘러내려오는 오십천 개울물이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두타산 자락이 아련하게 보인다. 절벽 반대편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멀리 봉황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은 관동팔경 죽서루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희봉님은 죽서루를 매개체로 하여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현재 건축은 공학으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건축은 공학이라는 편협한 테두리를 벗어나 전방위적으로 보아야 한다. 건축물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기에 사람이 살아가는 삶과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건축은 단지 건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건축학은 근본부터 인문학과 공학과 예술의 융합체였다. 건축이란 문화이다. 


    이희봉님이 죽서루를 바라보는 시각은 머리말에 여실히 드러난다. 


    이 책은...죽서루라는 자그마한 건물 하나를 가지고 온 세상을 보는 책이다.... 죽서루를 관광 문화 유산 답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층을 꿰뚫어 깊이 보는 책이다. 기존 보아오던 방식, 즉 문화재 안내판이나 학계의 방식을 뒤집는다. 기존 건축계에서 건물을 나무와 기왓장으로 구성된 구조체로 보는 병이 깊다. 세계 모든 건축은 장식이 구조와 통합되어 하나가 된다. 형태와 공간이 합쳐져 건축이 된다. 죽서루의 문양 장식은 사람의 뜻을 담고 공간을 삶을 담고 있다. 설계의도, 설계정신을 본다. 건축은 철학으로부터 나온다....죽서루는 흔히 하듯 밖에서 사진 찍는 감상용 대상물이 아니라 그 속에 사람을 담고 생활을 담는 공간이다. 자연을 내다보고 시를 읊던 건물이다. 노래와 춤이 있고 술마시고 여흥을 즐기던 공간이다. 과거 선조들의 사회가 있고 제도가 들어 있던 공간이다. 사물로만 보는 건축계의 유물론적 죽서루를 넘어 사람을 중심으로 죽서루를 본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를 통하여, 그림을 통하여, 또 관아 생활 속에서의 죽서루를 찾아낸다. 건축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총체적 체험이다."


    기존 건축계에서는 죽서루가 원래는 5칸 맞배지붕 누정이었는데, 후대에 증축되어 7칸 팔작지붕 누정이 되었다고 본다. 증축설은 5칸의 건축형식과 양쪽 2칸의 건축양식이 다른다는 것에 근거를 두고있다. 이에 반해 이희봉님은 죽서루가 처음부터 7칸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 주장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죽서루의 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 그리고 죽서루를 그린 조선시대 그림들을 통해 '지어진 형식이 다른 것은 지어진 시대가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래 설계 의도에 따라 다른 형식으로 지어진 것이다'고 반박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여러 조선시대 연회도를 비교 조사한 후 그 분석의 결과를 죽서루에 적용시켜 이 죽서루의 각각의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여주면서 죽서루의 현재의 형태는 애초부터 의도된 것이었다는 논증이다. 


    여러 연회도를 비교해보면 주빈의 자리, 신분이 높은 사대부의 자리, 신분이 낮은 사대부의 자리, 주빈을 보좌하는 시종들의 공간, 잔치의 흥을 돋우는 기생과 무희들의 공간, 악사들의 공간, 호위 병사들의 공간등 신분과 계급에 따른 철저한 공간배치가 드러난다. 이러한 공간배치를 죽서루에 적용하면 7칸 팔작지붕의 누정은 이러한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한다. 단지 육안만으로 건축물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를 초래할 수 있다. 역사적인 나이를 갖는 건축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흘러간 시간속에 감추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저 현재라는 공간과 시간의 테두리안에서 남아 있는 건물과 그 구조만을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여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관습이나 풍습, 사회상등을 고려해야만 그 건축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건축의 모든 것 - 죽서루'를 읽고 옛 한국건축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기둥, 대들보, 포작(공포), 포대공, 종보, 대공, 종도리, 중도리, 주심도리, 외목도리, 장여, 서까래, 처마, 겹처마, 부연, 추녀, 주두, 첨자, 살미, 소로, 창방, 외기도리, 눈썹천장, 서까래노출천장(연등천장), 우물천장, 맞배지붕, 팔작지붕(합각지붕), 우진각지붕, 모임지붕, 주심포, 다심포, 익공식등 수많은 건축용어들을 알게 되었다.   


    어서 죽서루를 찾아보고 알게 된 사실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아니 죽서루가 아니라도 괜찮다. 기와 지붕이 올려져 있는 건물을 보게되면 언제나 고개를 들어 기둥위에 놓여진 대들보와 도리, 그리고 공포를 살펴보고, 천장의 모양을 살펴볼 것이다. 누정을 만나면 이제부터는 반드시 그 안 공간에서 풍류를 즐기는 한량이 되어 기둥사이로 찍히는 풍경에 취해보고 싶다. 예전 안동 병산서원을 들렀을 때, 만대루 기둥 사이에 펼쳐진 풍경이 떠 오른다. 멀찍히 돌아흐르는 강물과 하얀 모래밭, 그리고 우뚝 서 있는 병산의 우뚝선 벼랑이 마치 병풍의 화첩처럼 펼쳐져 있었더랬다. 누정은 밖에서 보는 눈 맛도 맛이려니와 그 안에서 내다 보는 풍경이 누정의 제일 존재 의미임을 잊지 말기.


       

    목차


    01 시작하면서

    02 죽서루 훑어보기

    03 라이트의 낙수장과 우리의 죽서루

    04 죽서루 건축물 자세히 보기

    05 옛 시와 그림의 죽서루

    06 현상학의 체험 죽서루

    07 유물론자의 죽서루

    08 연회도로 본 옛 생활

    09 관아 생활을 담은 죽서루

    우여곡절 끝에 임랑 삼거리에 도착했다. 버스가 떠나버린 빈 시골길에는 햇살이 가득하다. 저 건너 송림 위에도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낮엔 푸른 송림이 아름답고 밤엔 달빛 아래 은빛 파랑이 아름다운 임랑이다. 길가에 피어있는 노란 꽃 무더기 위에 흐드러진 햇살은 이미 자유다. 나는 자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10시 20분 드디어 임랑을 출발하여 갈맷길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임랑해수욕장을 나와 임랑교 옆에 있는 조그만 임랑마을 도시숲 공원을 통과하여 좌광천을 건넌 후 해안도로를 벗어나 바닷길 쪽으로 접어든다. 이제 내내 푸른 바다를 왼쪽 어깨에 두고 걸을 참이다. 차례로 문동리, 문중리, 칠암리, 신평리, 동백리, 이천리를 거쳐 일광까지는 계속 바다를 벗 삼아 걸을 것이다. 갈맷길 1코스에는 만나는 이 마을은 신평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포구를 끼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길을 떠나 만난 첫 마을 문동리는 조용한 어촌 마을이다. 마을과 바다 사이 너른 공터에 펼쳐 놓은 그물, 바다로 길게 뻗은 방파제, 그 방파제 끝에 있는 빨간 등대, 방파제에 설치된 하역작업용 소형 크레인, 여기저기 정박해 있는 선박들은, 인적이 드문 이 어촌 마을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문동리에는 조선시대 공납미를 보관하던 '해창海倉'이 있었다. 지금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고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이 마을은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치 마을의 담벼락 아래 시멘트를 뚫고 올라오는 질긴 잡초처럼 문동리는 질기게 그 생명력을 이어왔다.   


    갈맷길은 마을과 바다 사이에 있는 널찍한 시멘트 공터를 가로질러간다. 길이라기보다는 공터처럼 보이는 애매모호한 그 길은 그늘 하나 없는 회색 시멘트 길이다. 길 위로 사정없이 땡볕은 내리고, 바닥에서 퉁겨져 나온 허연 빛 속을 걷는 걸음은 곤혹스럽기도 하다. 바로 옆에 푸른 바다가 있음에도 뜨거움이 시원함을 압도한다.  


    포구 중간 부분에서 문중리와 문동리가 맞닿아 있다. 두 마을은 문동리 방파제와 문중리 방파제가 품은 잔잔한 바다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문중리를 지나자 칠암(七岩)리이다. '일곱 개의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서 칠암인 줄 알았다.  사실은 마을 앞바다에 '옻바위'라는 검은 바위가 있어서 칠암(漆岩)이라 불렀는데, 옻나무 칠(漆) 자를 쉬운 일곱 칠(七) 자로 바꾸어 오늘날 칠암(七岩)이 되었다.  

     

    칠암으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모습은 칠암 앞바다에 떡 하니 가로 놓여있는 방파제였다. 육지에서 길게 뻗어나온 칠암 방파제에서 떨어져, 칠암 앞바다 한가운데 일자로 서 있는 방파제. 칠암은 깊숙한 포구는 아니지만 먼 바다의 파도를 막아 주는 이 일자형 방파제 때문에 그나마 아늑해 보인다. 


    갈맷길 1코스에는 등대가 부지기수이다. 들리는 포구마다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처럼 서 있는 등대, 등대, 등대.그중 칠암에는 등대가 세 개나 있다. 칠암 부근의 문중 등대와 신평 등대까지 합하면 다섯 개의 등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 칠암이다. 더구나 칠암의 등대는 예사 등대와는 다른 모양으로 시선을 끈다. 붕장어(아나고)가 서로 얽혀 위로 향하는 듯한 형상의 노란 붕장어 등대, 떠 오르는 붉은 태양과 갈매기를 형상화한 빨간 갈매기 등대, 야구 배트와 글러브 모양으로 2010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을 기념하는 하얀 야구등대. 칠암에는 등대 여행을 와도 좋을 그런 곳이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문동리와 문중리에 비해 칠암은 단연 활기가 돈다. 건어물을 파는 상인들의 파라솔이 어지럽고, 다른 쪽 횟집거리는 시끌벅적하다. 칠암에는 붕장어 회를 먹으러 온 손님들과 등대 구경을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칠암은 사람 사는 냄새가 왁자지껄하다. 



    문동에서 칠암까지의 길은 포구를 따라 걷는 길이다. 그리고 멀리 일자로 뻗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잔잔한 바다의 모습은 단조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 단조로움 속에서도 변화가 있다. 눈여겨보면 바닷물 빛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바다의 깊고 얕음에 따라 바다의 색은 짙고 옅어진다. 또한 바다는 하늘의 색깔을 반영한다. 하늘이 찌푸리면 바다도 찌푸리고 하늘이 맑으면 바다도 맑아진다. 



    길가로 나 있는 방파제 위로 올라서면 거대한 바다는 끊임없이 일렁인다. 바다는 쉬지 않는다. 가볍게 찰랑거리는 물결은 얕은 물속 모래 바닥이나 자갈 위에 물결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물이 맑을수록 그림자의 무늬는 맑아진다. 바다는 언제나 그렇듯이 일렁이며 생동하고 있다. 



    칠암을 지나 신평리이다. 계속 포구를 따라 걸어온 길은 신평리에서 다른 모습을 갖는다. 손대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해안이다. 아이들은 얕은 자갈밭에서 물놀이도 하고 바위틈에서 게도 잡으면서 놀고, 어른들은 낚싯대를 드리운다. 신평소 공원이 아름다운 해안을 내려다보고 있다. 해안도로 저쪽에는 바다와 신평소 공원을 내려다보는 곳에 카페가 두서넛 들어서 있다. 


    울산 출신의 소설가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은 기장 일광면 학리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다. 거친 바다는 어부들을 삼키고, 갯마을에는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모여 산다. 그네들은 남편을 앗아간 바다를 떠나지 않고 바다를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간다. 갯마을 과부들의 애환이 담긴 '갯마을'은 영화로도 연출되었다. 영화 '갯마을'의 주요 촬영 무대는 일광면 이천리이다. 하지만 '해순'이와 '상수'의 밀회 장면은 이 신평소의 아름다운 해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걷기 시작한 지 거의 2시간이 흘렀다. 이제 길은 신평리를 뒤로 하고 동백리로 들어선다. 육지로 오목하게 들어앉은 포구는 아담한 동백항이다. 바다에서 동백항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어김없이 등대가 서 있다. 항구로 들어오는 입구의 등대는 언제나 왼쪽에는 빨간색, 오른쪽에는 하얀색 등대가 뱃길을 안내한다. 밤이 되면 빨간 등대는 빨강 빛을 비추며 오른쪽은 위험하니 왼쪽으로 입항하라고 신호를 준다. 하얀 등대는 녹색 빛을 비추는데, 왼쪽에 암초가 있으니 안전한 오른쪽으로 입항하라는 뜻이다.  



    동백리에 있는 부경대 수산과학 연구소. 예전에 일여 년간 기장에서 살 때 여러 번 이 연구소 앞을 지나다녔다. 아니 그때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부경대 수산과학 연구소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은 이 길을 걸으면서 처음 알았다. 수산과학 연구소 둘레를 도는 이차선 도로가 있다는 사실과 그 도로 아래 바닷가에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또 다른 작은 시멘트 길이 있다는 사실도, 수산과학 연구소를 지나 온정마을이라는 곳에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와 펜션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차를 버리고 걸어가는 길에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내 발바닥이 닿은 땅은 이제 나의 인식의 테두리 안으로 걸어 들어와서는 나의 세계의 일부가 된다. 내가 밟은 땅을 구석구석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는 이 느낌은 마음 한 구석을 뿌듯하게 한다. 천천히 걷는 길은 햇볕을 보지 않은 뽀얀 속살이 드러난 길이다.  



    온정마을을 지나 이제 갈맷길은 1코스 1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간다. 자갈밭을 가로지르는 길. 차를 타고 이 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해안도로를 지날 때마다 송림 사이로 보이는 이 해변은 마치 주문을 걸어 마법을 걸려는 마법사와 같았다. 더욱이 무더운 여름철 그 길을 지날 때는 당장이라도 수경을 끼고 물속으로 들어가 바닷속 비경을 보고픈 충동을 느끼곤 했지만 그때마다 난 간신히 그 마법에서 빠져나가곤 했었다. 


    이 해변을 이제야 두 발로 걷는다. 한가로운 일요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 해변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 때문일까? 물이 생각만큼 맑지 않다.  




    자갈밭 위를 걷는 발걸음이 피곤해진다. 푹신한 모래사장처럼 발을 붙잡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자갈 위에서 삐끗해지지 않으려는 발목에 힘을 주는 통에 피로해진다. 자갈길을 버리고 해안도로로 올라가 데크길을 걸으며 송림 사이로 바다와 해변을 보며 걷는다. 여전히 매력적인 해변이다.

       


    이동항이다. 이천리 동쪽에 있어서 이동이라고 하는 이동마을은 기장 미역 특구이다. 부두 바닥에는 미역 말리는 손길이 분주하다. 문동리와 문중리의 텅 빈 부두보다 사람 사는 냄새도 바다 냄새도 더 하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칠암과도 다른 느낌의 이동항이다.



    갈맷길 1코스 중에서 가장 특이한 길은 이동항을 지난 후에 나타난다. 한국유리공업 부산공장을 둘러가는 길이다. 이 길 특이하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인 듯 키높이의 수북한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는 길, 다만 한국유리공업 부산공장의 담벼락에 달린 파랑 분홍 갈맷길 리본만이 이 곳이 갈맷길임을 알리는 표지이다. 이 리본이 없으면 길인지 아닌지 당황스러운 길이다. 도로에서 이 곳 해변을 오려면 한참이나 걸어와야 하기에 여기는 참 여유로운 해변이다. 북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한가히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해변이 이곳이다.  



    소설 "갯마을"은 원래 일광면 학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갯마을"은 그 무대가 학리와 인접한 "이천리'이다. 이천리 해변에서 보이는 일광 앞바다 너머 학리의 풍경은 영화를 만든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다. 다만 영화에서 보던 예스러운 돌담 초가 어촌 마을은 찾을 길 없고, 지금은 현대식 양옥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에서는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그 모습이다.


    <영화 '갯마을'> https://youtu.be/BwbQgeavk-Y


    2시 30분에 가까워진다. 점심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아침에 임랑으로 가는 버스에서 본 열무 국숫집을 찾아간다. 길게 늘어선 줄의 의미를 놓칠 수는 없다. 마을 골목을 빠져나와 도로에 인접한 그 가게를 찾았다. 어라? 아직도 줄을 서 있다. 순간 기대감은 더 커진다. 나도 그 뒤에 줄을 선다. 주인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건다. "4시에 다시 영업 시작합니다."  이런 이런 이런... 안내문을 보니 2시 30분부터 4시까지 재료를 다시 준비하고 4시에 다시 시작한다고. 시계를 보니 2시 32분이다. 


    일광천을 따라 강송정 공원 옆을 지나 일광 해수욕장으로 들어서서도 두리번거리며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일광해수욕장을 나와 기장 군청으로 향한 도로가로 나서니 열무 국수 식당이 눈에 띈다. 저기서라도 열 국수를 먹어야겠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좋다. 시원하게 열무 국수 한 그릇을 비우니 기분이 좋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시원하게 뻗은 기장 대로를 따라 땡볕 속을 걷는다. 삼사십 분을 걸었을까? 오후 4시에 목표점 기장 군청에 도착한다. 11시 20분에 임랑을 출발했으니 4시간 40분이 걸렸다. 갈맷길 1코스 1구간. 다리는 뻐근하고 몸은 다소 피로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몸을 감싼다.



    갈맷길 1코스 1구간은 바다와 어항과 등대가 함께 하는 길로 정의해 본다. 아름다운 길도 있었고, 평범한 길도 있었고, 당황스러운 길도 있었다. 해안도로, 포구길, 시멘트길, 자갈길, 나무 데크길, 오솔길을 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머릿속을 오가던 수많은 생각들은 사라지고, 다만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로 앞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 길이 험하고 가는 길이 길면 길수록 무념무상의 경지가 가까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길 위에 떨어진 수많은 생각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다음 달 말에는 기장군청에서 죽성, 대변, 시랑대, 해동용궁사, 송정, 달맞이길을 걸을 것이다.


    처음 읽는 한문- 계몽편, 동몽선습/ 이재황 지음/ 안나푸르나

     

    언제부터일까? 한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초등 6학년 때 친구 따라 신문 배달을 했다. 가까운 곳을 배달했던 나는 먼 지역을 배달하던 친구가 돌아올 때까지 신문지국에서 기다렸다. 

    아마 그 때였을 것이다. 신문을 보기 시작한 것이.

     

    그 당시 신문은 한자가 많이 섞여 있었다. 한자를 몰랐지만 어쨌든 신문을 더듬 더듬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기억 나는 건 '駐韓美軍'이라는 글자이다. 아마도 네 글자중 한 두 글자는 어떤 영문인지는 몰라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첫 글자 駐는 도통 음도 뜻도 모르는 글자였다. 사실 지금도 그 글자의 음이 '주'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이 '말이 머무르다'란 뜻이란 건 방금 검색해 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 단어가 '주한미군'이란 것을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아뭏든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춰가면서 신문을 읽었던 옛 기억이 아련하다.

    한자에 관심을 가진 것이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중학교에서 '한문'과목을 공부하면서 기본적인 글자와 '주술'관계니 뭐니 하는 문장의 구성에 대해 배웠다.

    누구는 참 싫어하는 과목이기는 했지만 난 적어도 한문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한자를 멋지게 쓰는 것을 좋아해서

    낙서를 할 때도 한자 낙서를 좋아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한시가 있다.

     

    春水滿四澤 춘수만사택

    夏雲多奇峰 하운다기봉

    秋月揚明輝 추월양명휘

    冬嶺秀孤松 동령수고송

     

    봄에 눈이 녹아 흘러든 물이 사방 못에 가득하고

    여름에 봉우리를 덮은 구름이 여러 모양이구나

    가을 창공에 뜬 달은 밝은 빛을 내 비취고

    찬 바람 부는 겨울 언덕위에는 외로운 소나무만 아름답구나

     

     

    아마도 중학교 한문시간에 배웠던 시 같은데, 마지막 연은 확실치 않다. 그래도 시 한 수만큼의 관심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 후 사회생활을 하다가 어느 때엔가 한자를 알면 많은 것을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실 때 그 한문을 풀어서 설명해 주셨더라면 더 잘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사 시간에 불상의 종류를 배울 때 나온 '반가사유상 , 이 이름을 외우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뜻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 의미가 '반만 책상다리를 하고 생각에 잠겨있는 불상'이라는 것만 알았어도, 그렇게 무작정 외우지는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뒤 늦게 이런 것을 알게 된 나는 딸아이에게도 한자를 가르치고 싶었다.

     

    그리고 나 자신도 한자를 좀 더 많이 알고, 동양의 고전을 원전으로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무위당님의 블로그 '나물먹고 물마시며'에서 천자문도 끝까지 읽어보고, 노자의 도덕경도 접해보면서 한문을 읽고 그 뜻을 파악하는 데 재미가 들렸다.

    처음으로 중국어를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중국어 회화, 중국어 문법을 훓어 보기도 했다. 

     

    서점에서 '처음 읽는 한문'이란 책을 발견했다.

    소설가 김훈님의 추천의 말씀.  "이제 , 이재황 선생이 펴내는 ... 이 책으로 공부할 때 우리는 서당에 갓 입학한 조선 시대의 어린이가 된다. 이슬비에 땅이 젖고 군불에 아랫목이 따뜻해지듯이, 따라가면 저절로 문리가 트이니, 작은 것을 바탕으로 큰 것을 알게 되고 배우면 스스로 즐겁다는 말이 진실로 옳다." 이 말에 홀랑 빠져서 덜컥 가져다가 읽다가 중단하고, 다시 읽기 시작하여 끝을 내게 되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냥 소설 읽듯이 읽었다. 한자를 외울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한문과 해석을 비교해가며 읽었다. 죽죽 읽었다. 공부는 하지도 않고.

     

    한자, 한문. 어렵다. 쉽게 이해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어려운 부분은 역시나 어렵다. 글자도 어렵거니와 문맥을 통해서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것도 어렵다.

    한자에는 정해진 품사가 없어서 더 어렵다. 한 문장에서 어떤 글자가 명사로 쓰인 것인지 동사로 쓰인 것인지는 순전히 문맥을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니 더욱 어렵다.

    한자의 음은 알지만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도 많다. 음과 뜻 둘 다 모르는 글자도 꽤 있다. 누군가의 말에 "맹자를 100번을 읽으면 문리를 깨친다"고.

    그래도 계몽편과 동몽선습을 읽고 나니 간단한 문장은 눈에 들어온다. 반복적으로 한문을 읽다보면 깨치는 것도 있겠지. 

     

    갈 길은 먼데, 방향과 방법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니라면 그 때 가서 궤도 수정을 해야겠지. 

    <위대한 개츠비>


    사랑하는 데이지를 뒤에 남겨두고 개츠비는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터로 가게 된다.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는 개츠비는 제대후 데이지에게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일이 꼬이는 바람에 옥스포드로 가게 된다.

    개츠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데이지는 점점 무너져 간다.

    사랑스러운 데이지를 갈구하는 남자들이 숱하게 데이지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톰의 출현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재력과 육체를 지닌 톰에게 데이지는 무너지고 만다.

    개츠비에게는 벼락같은 편지가 날라드는데....


    ---------------------------------------------------


    He did extraordinarily well in the war.

    개츠비는 전쟁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He was a captain before he went to the front and following the Argonne battles he got his majority and the command of the divisional machine guns.

    전방으로 가기 전에 대위가 되었고, 아르곤 전투 이후에는 기관총 사단을 지휘하는 소령이 되었다. 



    After the Armistice he tried frantically to get home but some complication or misunderstanding sent him to Oxford instead.

    휴전후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려 미친 듯이 온갖 애를 다 썼지만, 일이 어떻게 꼬였든지 아니면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는 집으로 가는 대신 옥스포드로 보내졌다. 



    He was worried now--there was a quality of nervous despair in Daisy's letters.

    이제 개츠비는 걱정스러웠다. 데이지의 편지에는 조바심이 섞인 절망감이 역력했다.     


    She didn't see why he couldn't come.

    데이지는 왜 개츠비가 올 수 없었는지 알지 못했다. 


    She was feeling the pressure of the world outside and she wanted to see him and feel his presence beside her

    and be reassured that she was doing the right thing after all.

    데이지는 바깥 세상의 압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개츠비를 보고 싶었고, 그의 존재를 바로 옆에서 느끼고 싶었으며, 

    어쨌건 개츠비가 결국은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For Daisy was young and her artificial world was redolent of orchids and pleasant, cheerful snobbery and orchestras which set the rhythm of
    the year, summing up the sadness and suggestiveness of life in new tunes.

    데이지는 어렸던 것이다. 게다가 데이지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자 공들였던 모습에는 난초의 향기가 스며있었고, 상쾌 명랑함 속에 도도함이 깃들여 있었으며, 새로운 곡속에 인생의 슬픔과 유혹을 잘 표현한 그 해 최고의 리듬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같았던 것이다.    


    All night the saxophones wailed the hopeless comment of the "Beale Street Blues" while a hundred pairs of golden and silver slippers shuffled the shining dust.

    밤새도록 색소폰은 구슬픈 소리로 절망적인 가사를 노래하는 "빌 스트리트 블루스"를 연주했고, 수백 켤레의 황금색, 은색 실내화들이 어지러이 춤 추며 지나가면서 빛나는 먼지들이 피어올랐다. 



    <Beale Street Blues>


    At the grey tea hour there were
    always rooms that throbbed incessantly with this low sweet fever,
    while fresh faces drifted here and there like rose petals blown by the
    sad horns around the floor.

    홍차를 마실 시간이면 새로운 얼굴들이 슬프게도 데이지를 보려고 바닥에 날리는 장미 꽃잎처럼 이 방 저 방 떠 돌아 다니고, 이런 감미로운 미열로 두근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방이 한 둘이 아니었다.   



    Through this twilight universe Daisy began to move again with the season;

    suddenly she was again keeping half a dozen dates a day with half a dozen men

    and drowsing asleep at dawn with the beads and chiffon of an evening dress tangled

    among dying orchids on the floor beside her bed.

    이런 미명의 불확실한 상황을 지나자 데이지는 다시 제 철을 만난 양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는 다시 여러 명의 남자들과 하루에도 여러번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새벽이면 드레스 장식과 구슬이 서로 엉긴 것도 내버려둔 채 침대 옆 바닥에 주저 앉아 꾸벅 꾸벅 잠이 들었다. 다 시들어 가는 난초사이에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  




    And all the time something within her was crying for a decision.

    그리고 항상 데이지 안에서는 무언인가가 결정을 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She wanted her life shaped now, immediately--and the decision
    must be made by some force--of love, of money, of unquestionable
    practicality--that was close at hand.

    데이지는 이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싶었다. 그것도 즉시, 하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었고, 그것은 어떤 힘에 의해 결정되어야 했다. 사랑의 힘이랄지, 아니면 돈의 힘이랄지, 아니면 두말할 필요도 없어 실제적인 능력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코 앞에 놓여있었다. 


    That force took shape in the middle of spring with the arrival of Tom Buchanan.

    그 힘은 톰 부캐년의 등장한 봄 중순경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There was a wholesome bulkiness about his person and his position and Daisy was flattered.

    톰의 덩치도 그렇지만 그의 신분도 엄청났다. 그런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에 데이지는 우쭐해졌다.    


    Doubtless there was a certain struggle and a certain relief.

    의심의 여지없이 데이지의 마음속에는 한편으로는 투쟁,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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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 읽는 즐거움/ 박영규 지음/ 이가서


    도덕경은 무위당님의 블로그에서 일독한 적이 있다. ☞http://blog.daum.net/taoshi

    도덕경의 핵심 내용에 인상은 깊었지만,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도서관에서 서가를 뒤적이던 중 "도덕경 읽는 즐거움"이란 책을 발견하고 머리말을 보니 '노자와의 즐거운 전투를 기억하며'라는 표제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도덕경을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노자의 사상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였다. 또한 도덕경의 원문이 실려 있으며

    어려운 한자의 음과 뜻을 알려주어 한문 공부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제1부는 도덕경을 즐기기 위한 예비지식으로 도덕경에 대한 개관적인 정보, 노자와 공자의 본질적인 차이, 노자 이전의 도가 사상가들, 노자의 제자들, 열자와 장자의 삶과 사상을 다룬다.

    제2부는 지식으로 읽는 도덕경으로 1~20장까지의 내용을 세밀하고 해석하면서, 다른 주석서와 비교하고 있다. 또한 다른 종교와 철학을 노자의 사상과 대립시켜 설명하면서 객관적으로 도덕경을 조명하는데 주력했다.

    제3부는 명상으로 읽는 도덕경으로 21~37장까지를 다루면서 필자의 잛은 명상을 덧붙여 놓았다.

    제4부는 반론으로 읽는 도덕경이란 제목아래 덕경에 해당하는 38~81장까지를 다루고 있다. 각 장 아래 짧은 반론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도덕경 내용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비판적인 눈으로 도덕경을 보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생각나는 구절은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외 몇가지 밖에 없다. 

    하지만 도덕경에서 노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도'를 따르는 길이 어떠한가를 보여주고자 함이란 것을 알겠다. 

    그리고 노자의 '무위사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무위無爲'란 '하지 않음'으로 번역하는데,

    이 '무위'란 것이 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되는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뭔가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위'를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정의하려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가치있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일을 하는데 있어, 그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 '무위'가 아닐까? 즉 일을 함에 있어서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위사앙이 아닐런지.

    다만 자연의 순리에 맞게끔 일을 해 나가는 것이 '무위자연'사상일 것이다. 이렇게 일을 순리대로 자연의 도리에 맞게 해 나가는 행위를 '위무위爲無爲'일 것이다.

    이런 '무위자연' 또는 '위무위'를 실행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된 것이 자신을 한껏 낮추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하게끔 하라는 것일테다. 물론 일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 박영규님의 도덕경 연구는 초반부에 세심히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그의 도덕경 비판은 노자 사상의 올바른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노자의 생각의 틀과 박영규님의 생각의 틀은 상당히 달르다는 것을 느낀다. 서양철학의 영향 아래 있는 우리 시대의 생각의 틀은 이분법적이며 논리적인 면이 강하다. 하지만 동양사상을 서양사상의 틀에 따라 논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한 예로 '위爲'라는 글자 하나가 문맥에서 갖는 의미가 각각 다르다. 그러나 서양학문의 전제에서 본다면 두 개의 다른 개념에 하나의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아마도 도덕경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러함에 있는 것은 아닐까?

    <위대한 개츠비>


    데이지와 개츠비의 사랑이야기

    개츠비는 데이지가 접근할 수 없는 천상에 살고 있는 여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결코 그가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에 살고 있는 데이지를 보면서, 그녀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는 점점 빠져들게 되었고,

    개츠비가 데이지를 떠나기 전날, 그들은 말로는 이루 전할 수 없는 그런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 



    Her porch was bright with the bought luxury of star-shine; the wicker of the settee squeaked fashionably as she turned toward him and he kissed her curious and lovely mouth.

    데이지의 현관은 돈이 많이 든 호화로운 장식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데이지가 개츠비에게도 몸을 돌릴 때마다 버들가지로 만든 긴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 조차 아름다웠고, 개츠비는 자신을 향한 데이지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사랑스러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She had caught a cold and it made her voice huskier and more charming than ever and Gatsby was overwhelmingly aware of the youth and mystery
    that wealth imprisons and preserves, of the freshness of many clothes and of Daisy, gleaming like silver, safe and proud above the hot
    struggles of the poor.

    데이지는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가 더 허스키했고 오히려 그 때문에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매력적이었다. 개츠비는 젊음, 그리고 부유함의 울타리 안에 보존된 신비스러움에 압도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 많은 새 옷들, 아니 그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다 보는 듯한 자만으로 가득찬 데이지의 은처럼 빛나는 싱그러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I can't describe to you how surprised I was to find out I loved her, old sport.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친구


    I even hoped for a while that she'd throw me over, but she didn't, because she was in love with me too.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나를 버리기를 바라기 조차했었어.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She thought I knew a lot because I knew different things from her. . . .

    데이지는 내가 많이 안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녀가 알 수 없었던 세계를 알고 있었으니까.


    Well, there I was, way off my ambitions, getting deeper in love every minute, and all of a sudden I didn't care.

    그런데 말이야. 나는 순간 순간 더 깊이 사랑에 빠져들면서 나의 야망조차 잊어버렸어. 그러다 갑자기 나는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게 되었지.


    What was the use of doing great things if I could have a better time telling her what I was going to do?"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데이지에게 말하면서 그렇게 행복했는데, 그 잘난 위대한 일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



    On the last afternoon before he went abroad he sat with Daisy in his arms for a long, silent time.

    그가 해외로 가기전 마지막 날 오후에 그는 오랫동안 데이지를 팔에 안고 말 없이 앉아있었다. 



    It was a cold fall day with fire in the room and her cheeks flushed.

    추운 가을날 이었다. 방안에는 모닥불이 타고 있었고, 그녀의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Now and then she moved and he changed his arm a little and once he kissed her dark shining hair.

    이따금 데이지가 움직일 때마다 그는 팔을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한 번은 데이지의 까맣게 빛나는 머리칼에 입을 맞추었다.


    The afternoon had made them tranquil for a while as if to give them a deep memory for the long parting the next day promised.

    그날 오후 그들의 평온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다음 날로 예정된 기나긴 이별을 위한 깊은 기억을 남겨주려고 계획이나 한 것처럼.



    They had never been closer in their month of love nor communicated more profoundly one with another than when she brushed silent lips against his coat's
    shoulder or when he touched the end of her fingers, gently, as though she were asleep.

    그들이 사랑했던 시간 중에서 이 순간처럼 그들이 가까웠던 적은 없었다. 데이지가 아무 말없이 그의 코트의 어깨깃에 가만히 입술을 스칠 때보다, 그리고 개츠비가 마치 잠든 데이지를 깨우지 않으려는 듯 데이지의 손끝에 자신의 손끝을 살며시 맞대었을 때보다 더 깊이 서로의 의사를 전달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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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프리초프 카프라 지음/ 김용정, 이성범 옮김/ 범양사


     

    노자의 도덕경의 첫 문구는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다. 이 말에는 <도>란 것은 언어로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비트켄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 마지막 말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지어다"라고 한다. 언어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건이나 사실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도구이다. 언어외에 다른 방법으로 생각이나 경험, 또는 사건들과 사실들을 표현하는 매체도 있기는 있다. 몸짓이나 음악, 또는 미술, 심지어 수학등도 그러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언어가 가장 나은 수단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어조차도 그 한계성으로 인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문학가들, 특히 시인들은 그 한계를 돌파하려는 지난한 과제를 향해 겁없이 돌진하는 최전선의 투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물며 일상의 것이 아닌 사실이나 사건, 또는 경험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앞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의 실체는 일상의 경험을 뛰어넘은 것이기에 말이나 글과 같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리라. 또한 비트겐슈타인도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리'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그러면 일상의 것이 아닌 사실이나 사건, 또는 경험이라 도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서로 다른 두 방향에서 경험되어진다. 그 하나는 동양의 신비주의적인 사상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현대물리학에서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동양의 신비적인 사상이란 동양의 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사상을 뜻한다. 즉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체에 대한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런 종교의 현자들이 수련이나 명상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궁극적인 실체는 일상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면에서 신비주의적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거시적 사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할 때, 또는 사물의 미시적 세계 즉 양자 세계를 관찰하고 연구할 때에도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관찰이나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 역시 일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카프라는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두 날개를 퍼득이며 거시적인 세계와 미시적인 세계를 아우르며 비상하다 문득 건널 수 없는 공고한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 공고한 벽이란 모순처럼 보이는 현상들이다. 일상의 경험에 근거한 논리나 언어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할 수가 없다.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시간과 공간, 질량과 에너지, 입자와 파동 등은 고전물리학에서는 별개의 실체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하이젠베르크등에 의해 시작된 양자론은 이러한 객관적 실체들이 사실은 한 실체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밝혀주었다.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실체로 시공간을 형성하고, 질량은 에너지로 에너지는 질량으로 환원가능하며, 미시세계는 때로는 입자로 때로는 파동으로 나타나는 실체들로 넘쳐난다.


    현대물리학은 일상의 경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현상에 직면해 있다. 진공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가 아니다. 입자와 공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소립자들은 '대상에 힘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의 상태' 즉 장(field)로 정의된다. 전기적인 척력은 광자의 교환으로 설명되고, 강한핵력은 강입자의 교환으로 설명된다. 물질의 최소단위를 찾아 궁극까지 파헤치려는 시도는 난관에 봉착한다. 파고 들수록 더 이상 물질은 없고, 현상, 과정, 구조등만이 남는다. 일상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도록 언어로 설명할 수도 없다.


    현대물리학이 찾아내고 있는 이러한 세계의 본질은 이미 오래전에 동양의 종교들에서 누누히 이야기해 오던 것들이다. 불교의 空, 유교의 氣, 도교의 道 등은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실체와 닮아있다. 이제 카프라는 동양의 세계관으로 돌아갈 것을 희망한다. 이제껏 현대 과학세계를 지탱해 왔던 이원론적인 세계관, 논리에 바탕을 둔 세계관은 인류를 절멸의 상태에까지 밀어부쳤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그것은 통일의 세계관이다. 나와 당신이 별개의 개체가 아닌 하나의 통일된 우주의 모습이라는 것, 나와 우주가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고대 동양의 세계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일각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으며 카프라는 이러한 흐름에 앞장서고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 고전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대신했다면 이제는 '부트스트랩'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계관에 근거한 과학 혁명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프라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의 사상 둘 모두에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세계관이 세계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세계관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공고한 틀에 사로잡혀 있는 세계가 그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런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현대물리학의 미래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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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최순우/ 학고재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 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271쪽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선생의 한국미를 사랑하는 마음이 쪽빛 바다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밀려든다. 우리 문화재에 흠결이 없을리야 없겠지만 선생의 눈은 찍고자 하는 대상만을 잡아채는 카메라의 눈처럼 한 치도 아름다움에서 비켜나지 않는다. 


    선생은 회화, 전통건축과 공예, 불상과 탑, 토기와 도자기 등 모든 분야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한국 문화재 전반을 통해 흐르는 한국의 미와 얼을 내내 찾고 있다. 그 한국의 미와 얼이란 한민족의 핏줄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간결미, 소박미, 절제미, 실용미 등이다. 중국과 일본의 것과는 다른 한국 고유의 멋과 미를 일러주는 것이 마치 선생의 사명인 양 선생은 아름다운 우리말로 정성을 다해 한국의 미를 노래한다.

     

    한국의 미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선생의 글도 그 못지 않게 아름답다. 우리 말이 이렇게도 아름다웠던가? 아니 이렇게 아름답게 글을 쓰는 선생의 마음 바탕이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수많은 작품들을 해설하는 선생의 글과 사진을 비교하면서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느새 아름다움을 보는 내 안목이 훌쩍 커 버린 느낌도 든다. 실로 남이 보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것도 세심히 살피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전문가의 향기가 내 몸을 스치면서 그 흔적을 남기기라도 한 듯 내 마음은 한결 뿌듯해 진다. 얼른 박물관에 들러 작품들을 하나 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한국의 미를 찾아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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