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소식에 하마 벚꽃이 다 질까

나중에 좋은 꽃 구경 다 놓쳤다 아쉬워하느니

이 참에 벚꽃 구경을 나서자.


벚꽃이 좋다는 황령산을 오른다. 차로 드라이브다. 벚꽃길 드라이브.

 



황령산은 거의 정상 아래턱까지 2차로가 잘 닦여져 있다.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벚꽃이 한창이다. 지금까지 본 벚꽃길 중 가장 인상적이다.


 


황령산 청소년 수련원 위쪽에 구름산장 휴게실 앞 정원을 걷는다.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둘이 나누어 마신다. 


 


구름산장 아래 길이다.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정다운 길이다.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인가요?"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부산여상으로 내려가게 되요." 그렇구나. 이 길은 금련산 헬기장으로 가는 길이다.

길 아래쪽으로 인공 조림된 벚나무 숲이 이 길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듯 하다.  

벚나무 숲은 하얀 벚꽃으로 뒤덮여 있다. 하얀 벚꽃이 마치 구름처럼,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하얀 벚꽃 바다이다.


 


황령산을 내려와서는 남천동 벚꽃 거리로 달린다. 아뿔사, 남천동 벚꽃은 이미 지고 있었다. 남천동 벚꽃길을 통과하여 광안대로로 차를 올린다. 


해운대 달맞이길로 향한다.

해운대 달맞이 길은 벚꽃길 명소이다. 

4월 벚꽃이 날릴 즈음 봄비 오는 날, 뿌연 비안개 흐르는 수줍은 얼굴의 달맞이 벚꽃길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친 걸음에 달맞이 길도 달려보자. 


달맞이 길 들어서는 초입부터 벚꽃이 심상찮다.

바닷가 솔숲쪽으로 심겨진 벚나무는 유난히 굵은 가지를 도로위로 뻗치고 있다.

그 가지위에 얹힌 수많은 벚꽃들은 도로위에 꽃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해월정에 이르니 벚꽃 구경도 잠시 쉬어간다.


 


해월정을 지나 청사포 내려가는 길을 지나치자 해마루에 당도한다.

이제 해마루를 넘어서자 길은 구불 구불 이리 저리 휘어져 돌아간다. 

차를 천천히 몰면서 앞 차와의 간격을 충분히 벌여놓으니 앞 쪽 벚꽃길을 향한 시야가 시원하게 트인다.

도로 위를 뒤덮은 벚나무는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벚꽃 그림자를 마구 짓밟으며 달린다.




4월 벚꽃이 만발한 달맞이 길에 들어서면 절로 아래 턱이 떨어지며 소리없는 탄성을 발하게 되겠지만,  

청사포 지나 해마루 지나 송정가는 구불 구불 구비진 길의 벚꽃길을 보지 못했다면 달맞이 길의 숨은 모습을 놓친 것이다. 

미포에서 해월정까지 관광객으로 북적 북적하다. 그들은 결코 달맞이 벚꽃 길의 진풍경을 알지 못한다. 

해마루 지나 송정 내려가는 구비진 길을 달려본 사람만이 달맞이길을 이야기하라. 

뱀처럼 휘어진 길의 구비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비경이 열리고, 구비를 돌아갈 때마다 순간 기대감으로 숨이 가쁘다. 


이 길은 걸어도 좋을 그런 길이다.


달맞이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송정역.

동해남부선은 폐선되었지만 아직 그 철길은 남아 있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을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너른 송정역 앞 철길에 기차 두세량이라도 갖다 놓으면 멋지겠다.

송정역 바깥 벽에는 그림 열차가 달린다.


 


송정 해수욕장 해변도로에 조그만 길거리 카페 '목마와 숙녀'

빨간 차가 앙징맞다.


 


송정 바닷가...


 


어김없이 한 순간 바람에 날릴 벚꽃이다. 비방울의 두드림이 없더라도 곧 지게 될 벚꽃인데,

비가 온다고 하니, 화사한 벚꽃의 봄날이 그만 너무 빨리 지나갈 것만 같다. 

벚꽃의 봄이 지나기 전에 ~


수술과 암술을 아울러 꽃술이라 그러지.

꽃술의 아름다움은 단지 그 색상과 형태에만 있는 건 아니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꽃술의 힘이 아름다움이다.   


꽃잎의 아름다움도 그렇다.


어린 꽃술이 자라날 때에 꽃잎은 어린 꽃술을 감아 보호한다. 

때가 되어야 꽃잎이 벌어진다. 벌과 나비가 찾아들고 생명은 잉태된다.

꽃잎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생명의 태동을 듣는다. 


꽃잎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 목련이다. 

꽃술을 감싸고 있는 꽃 봉우리가 가장 아름답다. 


제 할 일을 다한 목련꽃잎은 느긋하게 활짝 늘어져 있다.    

꽃술을 떠나 땅에 널브러진 꽃잎에는 누런 검버섯이 피어있다.   

세월속에 주름진 얼굴이 그 속에 보인다. 


아직 피지 않는 꽃봉우리의 꽃잎이 가장 진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뜨거운 찻잔속 물 위에 꽃잎 띄우고 기다리면 피어나는 하얀 물안개속에 목련향이 사르르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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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15분 남짓 걷는 길이지만 봄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 길에서는 산수유나무, 매화나무, 동백나무, 벚꽃나무, 목련나무를 만날 수 있다. 날마다 죽어 있던 것 같은 나무가지에 꽃망울이 조금씩 올라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봄을 즐기는 나의 방식이다. 


올 봄 이 길을 걸으며 보게 된 바로는 동백꽃이 가장 먼저 첫 꽃을 피웠다.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아닐까들 생각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날마다 걷는 이 길에서 나의 두 눈으로 본 바는 그와는 달랐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동백나무에는 아직 피지 못한 꽃 몽우리가 있을 뿐이지만 양지 바른 곳에서는 이미 몇 일 전부터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동백나무의 두툼한잎은 갑옷 비늘처럼 번득이며 겨울의 찬 바람 맞으며 동백나무를 지켜왔다. 동백나무 잎은 겨울을 이긴 승장의 도도함이 있다. 하지만 봄이 오면 동백꽃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다. 봄 기운이 살랑이면 동백나무 가지 끝에는 마치 준비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조그만 연두색 몽우리가 부풀어 오른다. 봄 바람이 몽우리를 흔들면 몽우리 끝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봄 볕이 따사로워지면 꽃잎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불그스레 짙어져 간다. 붉은 빛이 짙어지면 온통 시선은 붉은 꽃에게로 모인다. 조명이 오롯이 무대의 주인공을 비치면 주인공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듯, 오로지 동백나무에는 붉은 꽃만 있는 듯 느껴진다. 밤을 지배하는 것은 까만 밤하늘이다. 그러나 그 밤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밤하늘에 총총히 박히 별들이다. 금모래를 뿌려놓은 듯 희뿌옇게 빛나는 별은 밤하늘의 주인공이요, 까만 밤하늘은 다만 배경일 따름이다. 동백꽃이 피는 그 때부터 동백나무는 새 신부를 위한 들러리요, 주인공을 위한 배경일 뿐이다.



매실이 매화나무의 열매라고? 정말? 그러고 보니 매실이란 매화나무 열매라는 뜻이 아니던가? 매화꽃은 동백꽃이 나올 즈음에 서로 앞서거니 뒤서니니 하며 거의 같이 피어난다. 화무십일홍이라고 꽃이 핀들 한 때이지만, 그래도 매화꽃은 동백꽃 보다 쉬이 진다. 강인해 보이는 동백꽃과는 달리 매화꽃은 섬세한 만큼 연약해 보인다. 부드러운 봄 바람에 매화향처럼 매화 꽃잎은 하늘거리며 떨어진다. 막 피어난 그 어린 꽃잎의 앙징맞은 모습이란...규중 처녀가 대문밖에 발을 내딛는 듯 하다.  


산수유. 매화꽃이 하나 둘 피어나면 그 때에 산수유 나무도 꽃 몽우리를 내민다. 끝에 노란 빛이 감돌다 어느새 피어나는 산수유. 산수유 꽃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 햇살에 선연한 노란빛깔은 마음 속에 봄 바람을 가득 불어 넣는다. 


한 켠에서는 솜털 가득한 목련 몽우리가 부지기수로 나무 끝에 매달려 있다. 우유빛 목편꽃이 피어난다. 꽃들도 피는 순서가 있나 보다.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산수유와 목련은 같이 올라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동백와 매화도 어울려 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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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 엘리아데/ 이은봉 옮기/ 한길사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꼭 읽어야 할 100권 ▶http://blog.daum.net/ccsj77/48

 

여러 번 <성과 속> 앞에서 멈칫거렸다.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100권 중 한 권이지만 흥미가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펴서 이리저리 뒤 적어 본 적도 있었지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제목도 생경하다. <성과 속>이라니. 하지만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책들 중 나를 실망시킨 책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손 끝으로 가만히 책장을 넘긴다. 기대감 때문일까? 마음이 잔잔하게 울렁인다. 이 책은 무얼 줄까?

 

책은 깨끗했다. 장담은 할 수 없으나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책인 듯 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김에 따라 왜 이 책이 이토록 깨끗한지 이유를 알겠다. 처음에 느꼈던 긴장감과 기대감은 점점 실망감과 지루함으로 변해갔다. 얼기설기 엮인 허술한 바구니처럼, 무언가 진귀한 것을 담은 그런 책은 아닌 것 같았다. 일단은 끝까지 읽었다.

 

자 이제 다시 한번 더 읽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한번 읽은 것으로 만족하고 덮어버릴 것인가? 나는 다시 한번 읽는 것을 선택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내가 감지하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읽는 <성과 속>은 처음과는 사뭇 달랐다. 다시 읽기를 잘했다. 이 책을 다시 읽고 난 후 이 책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달라졌다.

 

엘리아데는 원시문화 단계에 있는 다양한 종족들의 종교적 의례 및 그들의 신화를 연구하면서, 그 다양성보다는 공통점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 한다. 이 연구를 통해 엘리아데는 종교와 관련된 여러 의문들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신이나 영과 같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사후의 세계와 같은 초월적 세계에 대한 생각들은 또한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그러한 사상들은 어떻게 철학의 세계로 편입되었는가? 종교적 의례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종교적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은 어떠한가?  왜 그들은 그런 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가? 근대에 이르러 나타난 비종교적 인간이 가지는 실존과 존재에 대한 불안은 무엇 때문인가? 그 해결책이 있는가?

 

인간이 살아가는 '속俗'의 공간은 균질하다. '속'의 공간이 균질하다는 것은 방향성이 없다는 말이다. 중심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성聖스러운 공간이 이 '속'의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은 더 이상 균질하지 않게 된다. '성'의 공간과 '속'의 공간 사이에 단절면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공간은 비균질해진다. 이제는 성스러운 공간을 중심으로 방향성이 설정된다. '성'의 공간은 왜 성스러운 것일까? 그 공간은 신을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속된 세계를 벗어나 초월적인 세계와의 통로가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종교적 인간들은 이렇게 '성'과 '속'의 구분함으로 그들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그들은 세계의 중심인 이 '성'의 공간 가까이에 살기를 원했다. 그들은 이 '성'의 공간을 중심으로 생활공간을 확장해 왔다. 종교가 시작된 것이다.

 

고대의 종교적 인간들은 어떻게 초월적 존재(신 또는 영)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을까? 고대 사회의 종교적 인간들은 세계를 메시지로 가득 찬 존재로 보았다. 그들에게 우주, 자연은 그 자체로 신의 계시였다. 그들은 "신성성은 세계의 구조안에서 계시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즉 신들은 마치 자기의 존재를 세계 전체가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세계를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창조한 신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계시였던 것이다.

 

창공은 단지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것만으로 벌써 종교적인 체험을 불러 일으킨다. 하늘은 그 자신을 무한한 것, 초월적인 것으로 보여준다. 그 초월성은 인간이 그 무한한 높이를 단순히 인식함으로써 계시된다. 지고자의 개념이 저절로 신성의 속성이 된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지역, 별이 빛나는 영역은 초월자, 절대적인 실재, 영원성의 중대성을 획득한다. 122쪽

 

고대의 종교적 인간들은 우주의 다앙한 존재 양식 즉 우주적 리듬을 생의 신비를 밝혀주는 암호라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어 달의 변화 양상은 생의 신비를 계시해 주는 것이었다.  종교적 인간들은 달이 기울어지고 이지러진 후에 다시 차 오르는 것과 같이 생도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즉 죽음이 생의 마지막 종료가 아니다. 죽음은 단지 인간 생존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생의 비밀은 달의 존재 양식, 달의 차고 기우는 리듬에 계시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원시 사회의 인간들은 죽음을 극복하려고 애써 왔다. 그들은 죽음을 통과 의례로 변형시킴으로 그렇게 했다. 원시인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본질적인 것이 아닌 어떤 것을 버리는 존재, 즉 세속적인 생명을 버리는 존재에 지나는 않는다. 그래서 죽음은 최고의 가입식, 즉 새로운 영적 존재의 시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죽는 것은 죽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의 변화라고 생각함으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근대 과학의 영향으로 세계가 탈신성화의 길을 걸으면서, 종교적 인간과는 대비되는 비종교적 인간이 나타난다. 비종교적 인간은 초월성을 거절한다. 그들은 '실재'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재'의 상대성만을 인정할 뿐이다. 심지어 그들은 존재의 의미를 의심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또한 근대의 비종교적 인간은 새로운 실존적 상황을 상정한다. 즉 역사의 주체 및 동인은 오로지 자기 자신일 뿐,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초월적인 것을 거부한다. 성스러운 것, 즉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그가 자유를 획득하는 데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비종교적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그는 최후의 신이 살해되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183면

 

비종교적 인간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 신의 속박아래 자신을 묶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비종교적 인간은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적 자유의 추구는 결국 긴장과 불안으로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긴장감과 그 방향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절대적 자유에는 필연적으로 내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계가 없는 자유는 독이 든 성배와도 같다.

 

현대 사회의 모든 실존적 위기는 세계의 실재성과 세계 내에서의 인간의 현존을 다시 한 번 문제 삼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실존적 위기도 결국 '종교적'이다. 왜냐하면 종교란 결국 하나의 존재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란 모든 실존적 위기의 모범적 해결책이다. 이것은 위기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생존을 더 이상 우연이나 특수한 것에 맡기지 않는, 따라서 개인적 상황을 초월하게 만드는 가치를 향하여 마음을 '열게'만든다.

 

종교적 인간에게 우주의 존재 양상은 모범적인 삶을 모습의 계시이기도 하였다. 종교적 인간에게 성스러운 공간이 속된 공간에 방향성을 설정하듯 신의 계시는 인간의 삶에 참다운 방향과 의미를 부여해 준다. 탈신 성화된 비종교적 인간들이 겪는 긴장과 불안은 아마도 방향성의 상실 때문이 아닐까? 방향을 상실한 비종교적 인간들도 내심 그 깊은 속에서는 방향성을 설정해 줄 고정점, 즉 중심을 희망하지 않을까?  

 

상대성과 방향 상실에서 야기된 긴장과 불안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의 절대적인 지점을 산출시키는 징표를 사람들은 희망한다. 60쪽

 

엘리아데의 <성과 속>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탈신성화된 비종교적 인간들의 상황을 이와 같이 말하면서, 이들도 다시 옛 기억을 되찾아 종교적으로 실존에 대한 불안과 방향 상실로 야기된 긴장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근대 사회의 비종교적 인간은 종교성을 상실하였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와 신화는 그들의 무의식의 어둠 속에 '은폐'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비종교적 인간은 종교를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을 상실하였지만 그의 가장 깊은 존재 밑바닥에는 아직도 그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초의 타락 이후 종교적 감각은 분열된 의식의 차원으로까지 내려와 버렸다. 두 번째 타락 이후 그것은 더욱 내려와,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그것은 '망각되고' 말았다.

 

      

 

<성과 속> 목차

001. 성과 속은 무엇인가· M. 엘리아데의『성과 속』
002. 서론
003. 성스러운 공간과 세계의 정화
004. 성스러운 시간과 신화
005. 자연의 신성과 우주적 종교
006. 인간의 실존과 성화된 생명
007. 연대기적 고찰
008. 엘리아데 연보
009. 참고문헌
010.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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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


성스러운 공간의 계시는 인간에게 고정점을 부여하고, 그리하여 혼돈된 균질성 가운데서 방향성을 획득하며 '세계를 발견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삶을 획득하게 된다. 이에 반하여 속된 경험은 공간의 균질성과 상대성에 머문다. 이 경우에는, 고정점이 더 이상 유일한 존재론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참된 방향성도 불가능하다. 즉 그것은 그날 그날의 요구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정확히 말한다면, 거기에는 어떤 세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흩어진 우주의 단편들, 무한히 많은 다소 중성적인 장소의 무형태적인 집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속에서 인간은 산업 사회에 편입된 존재로서의 의무에 의해 움직이고 지배당하고 조종받는다. 57쪽


상대성과 방향 상실에서 야기된 긴장과 불안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의 절대적인 지점을 산출시키는 징표를 사람들은 희망한다. 60


전통 사회의 하나의 특징은 그들이 사는 영역과 그 영역을 둘러싼 미지의 불확정적인 공간 사이의 대립을 상정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사는 영역은 세계이자 코스모스(우주)이다. 그 이외에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일종의 '다른 세계'이며, 유령과 악마와 '외인들'(이들은 악마와 죽은 자의 영들과 동일시되고 있음)이 살고 있는 이질적인 혼돈의 공간이다. 일견 이 공간의 단절은 사람이 거주하는 질서있고 우주화된 영역과 그 영역을 벗어난 미지의 공간의 대립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한편에는 코스모스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카오스가 있다. ...성스러운 것은 경계를 정하고 세계의 질서를 세운다는 의미에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하나의 영역은 그것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따라서 정화함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된다. 61~63 


오늘날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실재를 창조할 때 신들은 또한 동시에 성스러운 시간도 창조한 것이다. 90


그리스도 이전의 특히 고대의 여러 종교에서 주기적으로 재현된 성스러운 시간은 신화적 시간, 즉 역사적 과거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원초적인 시간이다. 그것은 또한 신화에서 이야기되는 실재의 출현 이전에는 어떠한 시간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앞에 선행하는 다른 시간이란 없으며, 갑자기 출현했다는 의미에서 최초의 시간일 것이다. 91


우주 창조 가운데는 시간의 창조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고대 문화의 종교적 인간에게 모든 창조, 모든 존재는 시간 안에서 시작한다. 즉 어떤 것이 존재하기 전에는 그것에 고유한 시간도 존재할 수 없다. 우주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우주적 시간도 없었다. 어떤 특수한 식물종이 창조되기 전에는 지금 그것을 성장시키고, 열매를 맺게 하고, 그리고 죽게하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든 창조를 시간의 시초에, 태초에 생겨났다고 상상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시간은 새로운 종류의 존재자가 최초로 출현함과 동시에 발생한다. 94~95


우리는 도시, 사원, 집의 우주론적 상징 구조가 세계의 중심이란 관념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배웠다. 이 중심의 상징에 내포되어 있는 종교적 상징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인간은 위로 열려 있는 장소, 즉 신들의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려고 한다. 세계의 중심에 가까이 살려고 하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가능한 한 신들과 가까이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종교적 축제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우리는 신들에게 가까이 접근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성스러운 기원의 시간을 회복하는 것은 신들과 동시대인이 되는 것, 따라서 신들의 현존 앞에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스러운 공간과 성스러운 시간 체험에서 읽을 수 있는 지향성은 원초적인 상황, 즉 신들과 신화적 선조가 현존하여 세계를 창조하거나 조직하거나 혹은 인간에게 문명의 기초를 계시할 때로의 회귀를 열망하고 있다. 105


기원에 대한 향수는 종교적 향수에 해당한다. ...그 때로의 주기적 회귀는 주로 태초의 완전성에 대한 향수로 설명할 수 있다. 낙원에 대한 향수 105



인간은 종교적이 되면 될 수록 그들의 태도와 행동을 인도할 모범적 모델을 더욱 많이 가지게 된다. 말을 바꾸면, 인간은 종교적으로 되면 될 수록 실재에 더 많이 들어가게 되고, 비모범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결국 그릇된 행동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 위험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108


신화의 최고 기능은 모든 의례 및 인간의 본적적 활동(식사, 성생활, 노동, 교육)에 대한 모범적인 모델을 확립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 존재로서 충분히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신들의 모범적 행동을 모방하고 그들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109



종교적 인간을 초인간적, 초월적 모델을 가진 인간 존재로 여기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종교적 인간은 신들이나 문화영웅, 신화적 선조를 모방하는 한에서만 자신을 진정한 인간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종교적 인간이, 속된 체험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적 인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신적인 모델에 접근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만든다. 111


종교적 인간이란 광기, 파렴치, 범죄의 영역과 접하는 행동에 열중하는 경우에도 신들을 모방하려 하고 또 모방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114 


우주의 종교성이 상실될 때...종교적 내용을 잃어버린 반복은 필연적으로 비관적인 이냉관으로 이끌려간다.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시간이 더 이상 태초의 상황, 신비로 가득찬 신들의 현존으로 회복하는 길이 되지 못할 때, 즉 탈신성화 될 때 순환하는 시간은 두려운 모습을 하게 된다. 즉 그것은 영원히 반복하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원환 주기가 된다. ...무한히 자신을 반복하는 순환적 시간에 직면하여 절망을 느낀 것은 주로 종교적, 철학적 엘이트들이었다. 이 영원회귀는 인도사상에서 보편적 인과율의 법칙인 업의 힘에 의한 실존으로의 영구적인 귀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은 우주적 미망(maya)에 상응하게 되고 실존으로의 영원한 회귀는 고통과 속박의 무한한 계속을 의미하였다. 종교적, 철학적 엘리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실존으로의 비회귀, 업의 단절이었는데, 다른 말로 하면 우주의 초월을 포함한 궁극적 해방이었다. 116~117


고대 및 동방의 여러 종교와 인도 및 그리스에서 형성된 영원회구의 신화적, 철학적 개념에 대하여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온 것은 유대교이다. 유대교에서 시간은 처음과 끝을 가지고 있다. 순환하는 시간이란 개념은 폐기되었다. 야훼도 이제 우주적 시간 안에서 현현하지 않고 불가역적인 역사적 시간 가운데서 현현한다. ...예루살렘의 몰락은...역사에 대한 사적인 간섭이고 ...그렇게 하여 역사적 사건은 새로운 차원을 획득한다. 그것은 신현이 된다. 118~119


그리스도교는 역사적 시간의 평가에서 이보다 더 전진한다. 신이 육화되어, 즉 역사적으로 제약된 인간 실존을 받아들인 이래 역사는 성화될 가능성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복음서가 환기시킨 그 때는 특정한 역사적 시간, 즉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 된 시대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성화되었다. 현대의 그리스도교도가 의례적 시간에 참여할 때 그리스도가 살았고, 수난받고, 부활한 그 때로 되돌아 간다. 그러나 그것은 신화적 시간이 아니고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를 다스렸을 때의 시간이다. ...역사는 마치 신화적 관점이나 원시 및 고대 종교의 여러 관점에서 그런 것과 같이 다시 한 번 성스러운 역사가 된다. 119


헤겔은 유대-그리스도교적 이념을 이어받아 그것을 총체로서의 우주적 역사에 적용하고 있다. 즉 세계 정신은 부단히 역사적 사건 가운데서 현현하고 오로지 역사적 사건에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역사는 그 전체가 신현이 된다. 역사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세계정신이 그렇게 하기를 욕구하기 때문에 그것이 행한 그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여 20세기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역사 철학에의 길을 열어 놓았다.


역사주의는 그리스도교의 해체에 의한 산물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에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그것은 그리스도교에 기원을 가진 관념이다) 거기서 구원론적, 초역사적인 의미를 계시해 주는 모든 가능성을 거부함으로써 역사적 사건 그 자체만을 인정하게 된다.


어떤 역사주의 철학과 실존주의 철학이 주장하는 시간 개념에 관해서는 다음의 관찰이 흥미를 끈다. 즉 시간을 더 이상 원환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현대 철학에서의 시간은 다시 인도 및 그리스의 영원회구의 철학에서와 같은 두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철저하게 탈신성화된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불안하고 덧없는 지속으로 나타난다. 120


제3장 자연의 신성과 우주의 종교

이 장에서 우리는 종교적 인간에게 세계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좀더 정밀하게 표현하자면, 신성성은 세계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계시되는가를 이해하고자 힘쓸 것이다. 122


창공은 단지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것만으로 벌써 종교적인 체험을 불러 일으킨다. 하늘은 그 자신을 무한한 것, 초월적인 것으로 보여준다. ...그 초월성은 인간이 그 무한한 높이를 단순히 인식함으로써 계시된다. 지고자의 개념이 저절로 신성의 속성이 된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지역, 별이 빛나는 영역은 초월자, 절대적인 실재, 영원성의 중대성을 획득한다. 122


천공 구조를 갖는 최고 존재자는 그 신앙 숭배로부터 점차 사라져가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서 멀리 있는 감추어진 신이 된다. ...차차 그의 지위는 신화적 선조, 모신, 풍요신 등과 같은 다른 신격들로 대체되었다. 125


신의 격절성은...[인간이] 좀더 구체적인(더욱 육체적인, 특히 열광적인) 종교 체험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원시인은 초월적인 천신에게서 멀어져 간다. ..삶과 훨씬 밀접하게 관련된 체험이 나타나면, 위대한 모신과 강력한 힘이 있는 신 혹은 풍요의 정령들이 창조신보다도 분명히 더 동적익 인간에게 더 가까운 신이 된다.

...[그러나] 공동체의 존속 자체가 문제가 되는 위급 존망의 상황에서는 평상시 삶을 보증해 주고 고양시켜 주는 신들을 버리고, 인간은 최고신에게로 돌아[간다]. 128~129


신들은 마치 자기의 존재를 세계 전체가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세계를 창조하였다....하늘의 신성성은 본래의 종교 생활에서 몸을 감춘 후에도 상징을 통해 계속 그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130


물른 가능성의 우주적인 총체를 상징한다. 그것은 일체의 존재 가능성의 원청니아 저장고이다. 즉 물은 모든 형태에 선행하며 모든 창조를 떠받치고 있다...다른 한편, 물 속에 가라앉는 것은 무형태로의 회귀, 존재 이전의 미분화된 상태로 되돌아감을 상징한다. 부상은 우주 창조의 형성 행위를 재현하고, 수몰은 형태의 해체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의 상징은 죽음과 재생을 포함한다. ...물은 분해하고 형태를 파괴하고 '죄를 씻어냄'과 동시에 정화하고 재생한다. 131-132

 

역사는 고대적 상징의 구조를 근본부터 바꿀 수는 없었다. 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지만 이 새로운 의미가 상징의 구조를 파괴하지는 않는다....우주적 신성성의 계시는 어떤 점에서 원초적인 계시이다. 즉 그것은 인류에게 종교적으로 먼 과거에 일어난 것이고, 그 후에 역사에 의해 도입된 변혁들도 그것을 폐기시킬 만한 힘을 갖지 못하였다. 136 -> 예를 들어 세례에 있어서의 물의 역할, 우주의 리듬-계절, 낮, 밤-과 부활


여성의 출산력에는 우주적 원형이 있다. 그것은 만물을 낳는 어머니인 대지의 출산력이다....여러 종교에서 우주 창조 혹은 적어도 그 완성은 천신과 지모의 성혼의 결과로 이루어진다....그 때문에 인간의 결혼식은 우주적 성혼의 모방으로 간주된다...곡물의 풍요를 위한 의례적 오르기도 다산력의 남신과 지모와의 성혼이라는 성스러운 모델을 가지고 있다....어떤 관점에서 보면 오르기는 창조 이전의 미분화된 상태에 상응한다. ...사회적 혼란, 성적인 방종, 진탕 마시고 노는 잔치는 세계 창조보다 앞선 무형태의 상태로 돌아감을 상징한다...신년 의례에서 우리들이 시간의 갱신과 세계의 재생으로서 발견한 갱신의 관념은 오르기적 농경 제의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여기서도 오르기는 생명의 완전한 갱신, 따라서 대지의 출산력 및 수확의 풍요를 보증하기 위하여 우주적 밤으로, 형태 이전으로, 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142-144

* 오르기: 망아적 도취의 축제, 방자한 술자리, 유흥, 방종


고대 사회의 종교적 인간들은 세계를 메시지로 가득 찬 존재로 보았다...가금 그 메시지는 암호로 되어 있으나 인간에게 그 암호의 해독을 도와주는 신화가 있다. ...인간 경험의 전체는 우주적 삶과 동일시 될 수 있고 따라서 성화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주는 최상의 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143


우주적 출산력의 여러 측면들이 계시하는 것은 결국 생산의 신비, 즉 생명 창조의 신비를 밝혀 주고 있[다]...종교적 인간에게 죽음은 생의 마지막 종료가 아니다. 죽음은 단지 인간 생존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이 모든 것은 우주적 리듬 가운데 암호로 기록되어 있다. 그 때문에 인간은 우주가 그 다양한 존재 양식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단지 해독할 뿐이고, 그렇게 해야 생명의 신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44


우주는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 그래서 자신을 주기적으로 갱신한다는 것이다. 끝없는 생명 출현의 신비는 우주의 주기적인 갱신과 결합하고 있다. 144


종교적 인간에게는 식물의 리듬 속에서 생명과 창조의 신비 그리고 갱생, 청춘 및 불사의 신비가 계시된다. 146


철저하게 탈신성화된 자연의 경험이라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고, 그것도 근대 사회으 소수, 특히 과학자들만 접근할 수 있는 경험이다. 147


신성한 우주의 경험이 ...엷어지고 변화해서 결국엔 완전한 인간적 감정-예컨대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감정-이 되기에 이르렀[다] 149


제 4장 인간의 실존과 성화된 생명

세계를 향해 열린 실존

고대 사회의 종교적 인간의 관점에다 우리 자신을 위치시키자마자 곧 발견하게 되는 것은, 세계는 신들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현존한다는 사실이다. 즉 세계의 현존이 이미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무엇인가를 '말하고자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말이 없는 것이 아니고 불투명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목적도 의미도 없는, 생명이 없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인간에게 우주는 '살아있고' '말을 하는' 무엇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어떤 문화 단계 이후부터 자신을 하나의 소우주로 보기 시작하였다....우리는 이 모든 상동성을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체득된경험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이해하도록 해보자. 명백히 그의 삶은 하나의 차원을 더 소유하고 있다. 즉 그는 인간적인 것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주적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초인갅거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적 존재 양식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열린 실존이라고 부를 수 있다. 종교적 인간, 특히 원시인의 실존은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다. 즉 종교적 인간은 삶 가운데서 결코 고독하지 않으며 세계의 일부가 그의 안에 살아 있다....세계로의 개방성은 종교적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종교적인 것이요 존재와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귀중한 것이다. 155-156


삶의 성화

신체 기관이나 그 기능들은 다양한 우주적 영역 및 현상과의 동일시를 통하여 종교적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인간-우주적 상동 관계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여러 실존 상황의 징표들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인간들이 열린 세계 가운데 살고 있으며, 그의 실존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고 말하[는 것은] 종교적 인간이 우주적이라고 일컬음직한 무한한 경험 체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57-58


여러 신체 기관과 생리적 생활의 신성화는 이미 모든 고대 문화 단계에서 풍부히 확인된다. 160


신체-집-우주

현대의 비종교적인 인간에게 우주는 불투명하고 둔하고 말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우주는 어떤 메시지도 전해 주지 않으며, 어떤 암호도 갖고 있지 않다....산업 사회의 그리스도교, 특히 지식인의 그리스도교는 중세시대까지 지녔던 우주적 가치를 오래 전에 상실해 버렸다...도시인의 종교적 감수성이 뚜렷하게 빈곤해졌다...그들의 종교적 체험은 더 이상 우주를 향해 열려 있지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이 되어버렸으니, 즉 구원은 인간과 그의 신에 관한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심지어 진정한 그리스도교라도 더 이상 세계를 신의 창조물이라고 느끼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164-165


좁은 문의 통과

우주의 모든 형태들-우주, 사원, 집, 신체-이 모두 위를 향한 출구를 가지고 있다....그 출구는 하나의 존재 양식에서 다른 존재 양식으로, 하나의 실존적 상황에서 또 다른 실존적 상황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한다...인간 존재는 일련의 '통과 의례', 간단히 말하면 연속적인 가입식을 통하여 완성에 도달한다[는 관념을 표현하고 있다]


위를 향한 출구는 하늘과의 교류, 초월을 향한 욕구를 나타내고 있다. 문지방은 안과 밖의 경계선을 구체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지대에서 다른 지대로(세속적인 것에서 성스러운 것으로)의 이행의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다리와 좁은 문의 형상은 위험한 통과의 관념을 나타내며, 이 때문에 가입 및 장례 의례와 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가입식, 죽음, 신비적인 엑스터시, 절대적 인식, 유대-그리스도교에서의 신앙,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존재 양식에서 다른 존재 양식으로의 이행에 해당하며, 참된 존재론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역설적인 이행(그것은 항상 단절과 초월을 가져오기 때문에)을 표현하기 위하여 다양한 종교적 전승에서 위험한 다리와 좁은 문의 상징이 아주 풍부하게 사용되고 있다. 166-167


이상과 같은 가입식과 장례식의 몇몇 실례들이나 다리와 문의 형이상학적 상징은 일상 생활과 그에 속한 '작은 세계'-가구가 있는 집, 일상적 행위와 동작의 매일 같은 반복등-가 종교적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종교적 인간은 어디서나 징표를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가장 습관적인 동작까지도 영적인 행위를 의미할 수 있다. 길과 보행도 종교적 가치로 변형될 수 있다. 모든 길은 생명의 길을 상징할 수 있고, 모든 보행은 순례, 세계의 중심으로의 여행을 상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의 소유가 세계에서 안정된 상황의 선택을 의미한다면, 집을 버리는 순례자와 고행자는 그들의 보행에 의하여, 그들의 끊임없는 이동에 의하여 이 세계를 떠나, 어떤 세속적인 조건도 거부하려는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168


탐색, 중심으로의 길을 선택한 사람은 가족과 사회 안에서의 그의 위치, 즉 둥지를 포기하고 최고의 진리를 향한 보행에 전적으로 몸을 바쳐야 한다. 고도로 발달된 종교에서 그 진리는 숨은 신과 일치한다. 168



통과 의례

비종교적 인간에게는 탄생, 결혼, 죽음은 오로지 개인과 그 가족에게만 관련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비종교적인 삶의 관점에서 모든 통과는 그 의례적 성격을 상실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기된 종교적 실천이 희미한 기억, 혹은 심지어 그에 대한 동경 가운데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입식 의례는 종교적 인간이 '자연적' 단계에서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과 신화가 그에게 계시하는 이상적인 이미지에 따라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은 후대의 진보된 사회 윤리의 씨앗 가운데 이미 포함되어있다. 171


가입식의 현상학

신가입자가 유아적이고 세속적이며 부활 없는 생에서는 사멸하고 새롭게 성화된 실존으로 재생한다면, 그는 또한 인식과 지를 가능케 하는 어떤 존재 양식으로 재생한다는 것이다. 신가입자는 오로지 새로 태어난 자 혹은 부활한 자일 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자, 신비를 알고 형이상학적 계시를 받아들이는 자이기도 하다. 그는 숲속에서 단련을 받는 동안 성스러운 비밀, 신들과 세계의 기원에 관한 신화, 신들의 진짜 이름, 가입식에 사용되는 의례용 두구들의 역할과 유래를 배운다. 가입식은 정신적인 성숙을 의미한다. 신가입자 즉 신비를 체험한 인간은 지자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172



모든 고대 사회에서 영성에 대한 접근은 죽음과 새로운 탄생의 상징 속에서 그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174


남성 결사와 여성 결사


죽음과 가입식

우리는 원시 사회의 인간들이 죽음을 통과 의례로 변형시킴으로써 죽음을 극복하려고 애써왔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달리 말하면, 원시인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본질적인 것이 아닌 어떤 것을 버리는 존재, 즉 세속적인 생명을 버리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줄여 말하면, 죽음은 최고의 가입식, 즉 새로운 영적 존재의 시작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178


제2의 탄생과 영적 생성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려는 자는 항상 세속적인 조건에서는 죽고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181


근대 세계에서의 성과 속

원시 사회와 고대 문명의 종교적 인간이 지녔던 상황의 대부분은 역사가 진행되면서 오래 전부터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오늘날의 우리로 형성하는 데 기여해 왔으며 그럼으로써 결국 우리 자신의 역사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

종교적 인간은 그가 처해 있는 역사적 맥락이 어떠하든지 간에 항상 이 세계를 초월하면서도 이 세계 안에서 자신을 현현하는, 그럼으로써 이 세계를 성화하고 또 그것을 실재적인 것으로 만드는 성스러운 것, 절대적 실재가 있다고 항상 믿는다. ...


비종교적 인간은 초월성을 거절하며 '실재'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심지어 존재의 의미를 의심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근대의 비종교적 인간은 새로운 실존적 상황을 상정한다. 즉 그는 그 자신을 오로지 역사의 주체 및 동인으로만 간주하며 초월적인 것을 모두 거부한다....성스러운 것은 그가 자유를 획득하는 데 최대의 장애물이다. 그는 완전히 신비성을 잃어버릴 때에만 그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최후의 신이 살해되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근대의 비종교적 인간이 비극적 실존을 받아들이고 있다. 182-183


모든 실존적 위기는 세계의 실재성과 세계 내에서의 인간의 현존을 다시 한 번 문제 삼는 것이다. 실존적 위기는 결국 '종교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문화 단계에서 존재와 성스러운 것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창건한 것은 성스러운 것의 체험이며, 가장 원초적인 종교까지도 결국 하나의 존재론이다. ...종교란 모든 실존적 위기의 모범적 해결이다. ...종교적 해결은 위기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생존을 더 이상 우연이나 특수한 것에 맡기지 않는, 따라서 개인적 상황을 초월하게 만드는 가치를 향하여 마음을 '열게'만든다. 187-188


근대 사회의 비종교적 인간은 아직도 그의 무의식의 활동으로부터 영양분과 원조를 받고 있지만 세계에 대한 본래의 종교적 체험과 비전을 보여주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무으식은 그에게 그 자신의 삶의 어려움에 대한 해결을 제공하며, 이런 방식으로 종교의 역할을 수행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비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근대인들에게 있어 종교와 신화는 그들의 무의식의 어둠 속에 '은폐'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이러한 인간이 내면을 깊이 안에 생의 종교적 비전을 회복할 가능성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종교적 인간은 의식된 종교체험, 따라서 종교를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을 상실하였지만 그이 가장 깊은 존재 밑바닥에는 아직도 그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최초의 타락 이후에 그의 선조인 원초적 인간이 세계안에서 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인식력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과도 같다. 최초의 타락 이후 종교적 감각은 분열된 의식의 차원으로까지 내려와 버렸다. 두번째 타락 이후 그것은 더욱 내려와,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그것은 '망각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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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김효순 옮김/문학동네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때론 궁금했다.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 것이 좋은가?

김병완씨는 <48분 기적의 독서법>에서 3년 1000권 프로젝트를 권한다.  ☞ http://blog.daum.net/ccsj77/38

그는 1년에 1000권의 책을 읽고 '의식의 혁명'을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아마 김병완씨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많은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은 바로 그러한 생각을 대변한다.  


제1부 양에서 질로의 전환 (슬로 리딩의 기초편)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이란, 한 권의 책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책을 감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과 노력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책읽기 방법이다.


왜 슬로 리딩을 해야할까?

"쓰는 사람은 누구나 읽는 이들이 자신의 책을 슬로 리딩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글을 쓰"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 다양한 장치를 숨겨두고 있다. 소설 속의 다양한 묘사와 세세한 설정은 무의미한 것으로, 그리고 플롯을 파묻히게 만드는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러한 세세한 점들이 소설을 소설답게 만든다. 이러한 장치나 세부 설정에 유의함면 더 즐거운 독서가 가능해진다.


"<법의 정신>은 몽테스키외의 붉은 보르도이다." 스위스의 고명한 비평가 장 스타로뱅스키의 말이다.

최상의 깊은 맛을 내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정성이 필요할까?

일류 지성의 소유자인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저술하는데 이십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책을 단숨에 들이키면 그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천천히 읽으면서 이해하고자 노력을 기울일 때 책은 자신의 비밀을 조금씩 밝혀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비밀을 알아낸 지성만이 시간과 노력이 빚어낸 포도주와 같은 성숙을 경험할 수 있다.



제2부 매력적인 '오독'의 권장 (슬로 리딩의 테크닉편)


조사, 조동사에 주의하라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는 말과 '나는 사과를 좋아하기는 한다.'라는 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조사나 조동사의 사용에 따라 주는 인상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사전 찾는 습관'을 기른다.

지식을 심화하려면 귀찮아하지 말고 사전을 찾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잘 모르는 말이 나오면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말고 잠시 멈추어 반드시 사전을 찾아보는 것, 그것은 책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작자의 의도는 반드시 있다.

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설이든 에세이든 논문이든, 기본적으로 작품의 한 단어 한 구절에서부터 작품 전체에 이르기까지 '읽는 사람이 이렇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작자의 의도'가 반드시 있다. 이 의도를 찾아내려고 주의를 기울이라.


창조적 오독

한편,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작자가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을 미리 상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독자의 창조적 독서행위를 적극 권장하기도 한다. 일종의 '오독'이지만 이러한 '창조적인 오독'은 풍요로운 독서경험으로 이끈다. 

슬로 리딩을 통해 심사숙고한 끝에 '작자의 의도' 이상으로 흥미 깊은 내용을 찾아내는 것은 '풍요로운 오독', '매력적인 오독'이라 하겠다.

책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은 타자와의 만남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의 생각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것, 이를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오독'을 즐기고 다른 판편으로는 '작자의 의도'를 생각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이는 슬로 리딩의 비법이라 할 수 있다.


'왜'라는 의문을 갖자

왜 이런 내용을 썼을까? 왜 굳이 이렇게 썼을까? 왜 이런 말을 썼을까? 내가 작가라면 어떻게 썼을까? 스스로 이런 자문자답을 하면서 읽자.

의문이 생기면 대충 넘어가지 말고, 혹은 일방적으로 책의 결함이라고 단정짓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그 구절에 귀를 기울여 보자.

좋은 책에는 어느 것에나 수수께끼가 존재한다. 그것을 푸는 기술은, 독자 개개인이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앞 페이지로 돌아가서 확인하자

모르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책을 계속 읽어나가더라도 이해도는 반감된다.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나서 다시 읽어나가는 게 좋다. 앞 페이지로 돌아가서 다시 뒤적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라.


보다 '앞으로'가 아니라 보다 '깊게'로

한 작가가 쓴 작품의 배후에는 엄청나게 광대한 말의 세계가 있다. 하나의 작품은 여태까지의 문학이나 철학, 종교, 역사들의 방대한 지식의 축적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서둘러 '앞으로'만 읽어나갈 것이 아니라, 보다 '깊게' 읽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 작품에서 나오는 다른 작가나 작품을 읽어보고, 또 그 작품에 나오는 다른 작가나 작품을 읽어보는 연쇄 고리 여행을 하는 것은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소리내어 읽지 않는다.


베껴쓰기는 비효율적이다.


남에게 설명할 것을 전제로 읽는다.

블로그에 독서 감상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밑줄과 표시

중요사항이나 기억할만한 구절등에 표시한다. 자신의 느낌이나 감상을 여백에 적어놓는다. 어려운 철학서나 평론을 읽을 때, 대명사가 가리키는 것을 표시한다. 접속사에 표시를 하며 읽는다. 특히 역접의 접속사에 유의한다.


'내 처지'로 바꾸어 본다.

진정한 독서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 주며, 주체적으로 참가하는 독서의 방법이기도 하다.


'재독'이야말로 가치가 있다.

"독서에는 시기가 있다. 책과의 절묘한 만남을 위해서는 대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나라는 소설가의 창작법>에서

1년, 5년, 아니 10년 후에 읽으면 또 다른 느낌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들이 많이 있다.


제3부 슬로리딩 실천편은 목차를 그대로 옮겨놓는다.


제3부 동서고금의 텍스트를 읽다(슬로리딩 실천편>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회화속의 '의문문'에 주의한다.

'위화감'에 주의한다.

'시대배경'과 '5W1H'를 생각한다.

다시 전체로


모리 오가이의 <다카세부네>

'부자연스러움'은 장면전환의 표시

'생각하는 틀'을 명확히 한다.

독자를 '잠깐 감정 고르기'로 유도한다.

'감정의 효과'를 놓치지 말자

조건을 바꾸어 다시 읽는다


카프카의 <다리>

'첫 문장'에 의미가 있다

'형용사와 부사'에 착목한다

'장면전개의 의미'를 생각한다

대담하게 해석하는 용기를 가질 것!

'오독력'을 즐긴다

느낌은 몇 번이고 바뀔 수 있는 것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왜 이런 신(scene)이 들어 있을까?

'사상의 대결'로서의 대화

'세세한 기술의 효과'를 감지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

'주어의 생략'에 주의한다

'일인칭 소설'은 경계해야 한다


가네하라 히토미의 <뱀에게 피어싱>

테마를 설정하여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본다

문장 표현을 '체감한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

'이미지의 중층성"을 놓치지 말자

'작자에 대한 반감'이 머리를 작동시킨다

싫증이 나면 쉰다


푸코의 <성의 역사1-앎의 의지>

어려운 평론은 '보조선을 긋는다'

'상식에 대한 도전'을 시각화한다

문장을 쓸 때 참고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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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년차>

001. 미합중국독립선언서(美合衆國獨立宣言書)

002 플라톤(Plato, 427-347 B.C.)/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003 소포클레스(Sophocles, 497-406 B.C.)/안티고네(Antigone)

00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정치학(Politics)

005 플루타크(Plutarch, 45-120)/영웅전(Bioi Paralleloi)

006 '신약(新約)'중 마태복음

007 에픽테투스(Epictetus, 55-135)/'인생담(人生譚)' 발췌

008 마키아벨리(Machiavelli, 1469-1536)/군주론(君主論)(The Prince, 1513)

009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멕베드(Macbeth, 1606?))

010 밀턴(Milton, 1608-74)/출판(出版)의 자유

011 스미드(Adam Smith, 1723-1790)/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1776)

012 패더랠리스트(Fedaralist)/미합중국헌법(美合衆國憲法)

013 토크빌(Tocqueville)/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 발췌

014 마르크스(Marx, 1819-91)), 엥겔스(Engels, 1820-95)/공산당선언(The Communist Manifesto)

015 소로우(Thoreau, 1817-62)/시민의 반항(Civil Disobedience, 1849), 월든(Walden, 1854)

016 톨스토이(Tolstoi, 1828-1910)/이반 일리치의 죽음



<제2년차>

017 에크레지아스티즈['구약(舊約)'의 일부]

018 호머(Homer, 850 B.C.)/오딧세이(Odyssey)

019 소포클레스(Sophocles, 497-406 B.C.)/오이디프스 왕(Oedipus the King),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Oedipus at Colonus)

020 플라톤(Plato, 427-347 B.C.)/메논(Meno)

021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444-380 B.C.)/니코마스 윤리학(Ethika Nikomacheia) 발췌

022 루크레티우스(lucretius, 95-52 B.C.)/우주론(Of the Nature of Things, 55 B.C.)

023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고백(Confessions, 397)

024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햄리트(Hamlet, 1594-1623)

025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방법 서설(Discourse on Method, 1637)

026 홉스(Hobbes, 1588-1679)/리바이어던(Leviathan, 1651)

027 파스칼(Pascal, 1623-1662)/명상록(暝想錄, Thoughs:Pensées)

028 스위프트(Swift, 1667-1745)/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1727)

029 루소(Rousseau, 1712-1778)/인간불평등기원론(人間不平等起源論, Discours sur I'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 1775))

030 칸트(Kant, 1724-1804)/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031 밀(Mill, 1806-73))/자유론(On Liberty, 1859)

032 트웨인(Mark Twain, 1835-1910)/허클베리 핀의 모험(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1884)



<제3년차>

033 '구약(舊約)' 중 '욥기'

034 아이스킬로스(Aeschylus, 525-456 B.C.)/오레스티아(Oresteia) 삼부작

035 투키디데스(Thucydides, 470-400 B.C.)/펠로포네소스 전쟁의 역사(The History of Peloponnesian War, 404-401 B.C.)

036 플라톤(Plato, 427-347 B.C.)/향연(Symposium)

037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444-380 B.C.)/'정치학(Politics)' 발췌

038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신학대전(Summa Theologica, 1267-73) 중 '법률론'

039 라블레(Rabelais, 1495-1553)/가르강뛰아와 팡타그뤼엘(Gargantua and Pantagruel, 1535)

040 칼빈(Calvin, 1509-1564)/그리스도교강요(敎綱要)(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1536)

041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리어왕(King Lear. 1605-6?)

042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대혁신(The Novum Organum, 1620)

043 로크(Locke, 1632-1704)/정치론(Two Treatises of Civil Government, 1690)

044 볼테르(Voltaire, 1694-1778)/깡디드(Candide, 1758)

045 루소(Rousseau, 1712-1778)/사회계약론(The Social Contract, 1762)

046 기본(Gibbon, 1737-1794)/로마제국 쇠망사(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1776-88) 제15-16장

047 도스토에프스키(Dostoevski, 1821-1881)/카라마조프 가(家)의 형제들(The Brothers Karamazov, 1881)

048 프로이드(Freud, 1856-1939)/정신 분석의 기원과 발달(Introductory Lectures on Psychoanalysis, 1917)



<제4년차>

049 공자(孔子)/논어(論語) 발췌

050 플라톤(Plato, 427-347 B.C.)/국가(Republic) 발췌

051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444-380 B.C.)/여인의 평화, 구름(Clouds)

052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444-380 B.C.)/시학(Rhetoric)

053 유클리드(Euclid, 323-283 B.C.)/기하학제요(幾何學提要, Elements of Geometry)

054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자성록(自省錄, Mediations)

055 엠페이리코스/절대회의설(絶對懷疑說) 제1권

056 니벨룽겐의 노래(Volsunga Saga or Nibelungenlied, 1204)

057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신학대전(Summa Theologica, 1267-73) 중 '진실과 허위에 대하여' 발췌

058 몽떼뉴(Montaigne, 1535-1592)/수상록(隨想錄, Essays, 1580-88)

059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템페스트(Tempest, 1594-1623)

060 로크(Locke, 1632-1704)/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

061 밀튼(Milton, 1608-74)/실락원(Paradise Lost, 1667)

062 흄(Hume, 1711-76)/오성론(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748)

063 니이체(Nietzche, 1844-1900)/선악의 피안(Beyond Good and Evil, 1886)

064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프라그마티즘(Pragmatism, 1907)



<제5년차>

065 유리피데스(Euripides, 485-406 B.C.)/메디아(Medea), 히폴리투스(Hippolytus), 트로이아의 여자

066 플라톤(Plato, 427-347 B.C.)/테아이테투스(Thaetetus)

067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444-380 B.C.)/물리학(Physics) 발췌

068 베르길리우스(Vergilius, Virgil, 70-19 B.C.)/아에네이드(Aeneid)

069 성(聖) 프랑시스(St. Francis)/조그만 꽃(Little Flowees)

070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신학대전(Summa Theologica, 1267-73) 중 '인간론' 발췌

071 단테(Dante, 1265-1321)/신곡(The Divine Comedy)단테(Dante, 1265-1321)/신곡(The Divine Comedy, 1300) 중 '지옥편', '연옥편'

072 단테(Dante)/신곡(The Divine Comedy) 중 '천국편'

073 미란드라/인간의 존엄(尊嚴)에 대하여

074 버클리(Berkeley, 1684-1753)/인지원리론(人智原理論, The Principles of Human Knowledge, 1710)

075 뉴턴(Newton, 1642-1727)/프린키피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1687)

076 보스웰(Boswell)/새뮤얼 존슨 전(傳)(Life of Samuel Jhonson)

077 칸트(Kant, 1724-1804)/프롤레고메나(Prolegomena to any Future Metaphysics, 1783)

078 울먼(Jhon Woolman, 1720-79)/일기(日記, Journal, 1774)

079 멜빌(Melville, 1819-1891)/백경(白鯨, Moby Dick, 1846)

080 아인쉬타인(Einstein, 1879-1940)/상대성원리(The Theory of Relativity, 1916), 특수이론 및 일반이론



<제6년차>

081 아이스킬로스(Aeschilos, 525-456 B.C.)/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Bound)

082 플라톤(Plato, 427-347 B.C.)/파이드로스(Phaedrus)

083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444-380 B.C.)/형이상학(Metaphisics) 제7권

084 롱기노스(Kassios Longinos, 213-273)/숭고성(崇高性)에 대하여(Peri arkhon)

085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자연과 성총(聖寵)에 대하여, 성총과 자유 의지에 대하여

086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신학대전(Summa Theologica, 1267-73) 중 '신(神)에 대하여'

087 초오서(Chaucer, 1340-1400)/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sles, 1398) 발췌

088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리차드 2세(The Tragedy of King Richard Ⅱ, 1594-1623)

089 세르반테스(Cervantes, 1547-1616)/돈 키호테(Don Quixote) 제1부

090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윤리학(Ethics, 1675) 제1부

091 흄(Hume, 1711-1776)/자연종교에 대하여(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

092 볼테에르(Valtaire, 1694-1778)/철학사전(Philosophical Dictionary, 1764-73) 발췌

093 헤겔(Hegel, 1770-1831)/역사철학(Philosophy of History, 1837) 발췌

094 다윈(Darwin, 1809-1882)/종의 기원(The Origins of Species, 1859) 발췌

095 멜빌(Melville, 1819-1891)/빌리 버드, 파토프만

096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 1898)



<제7년차>

097 플라톤(Plato, 427-347 B.C.)/고르기아스(Gorgias)

098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444-380 B.C.)/영혼에 대하여

099 마하바라타/바가바드기타(Bhagavadg?tã)

100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철학의 위안(De consolatione Philosophiae)

101 마이모니데스/방황하는 자를 위한 지침

102 던(Jhon Donne, 1572-1631)/시집(詩集, Song and Sonnets, 1633)

103 몰리에르(Moliére, 1622-1673)/타르튜프(Tartuffe), 고객(顧客, Tradesman)

104 라이프니쯔(Leibnitz, 1646-1716)/형이상학(Discourse on Metaphysics, 1686)

105 칸트(Kant, 1724-1804)/도덕철학[실천이성비판,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1790)

106 괴에테(Goethe, 1749-1832)/파우스트(Faust, 1774)

107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lstellung, 1819-44)

108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55)/철학적 단편 후서(1846)

109 도스또에프스키(Dostoevski, 1821-1881)/죽음의 집의 기록(1861)

110 콘라드(Joseph Conrard, 1857-1924)/어둠의 속(The Heart of Darkness, 1902)

111 프로이트(Freud, 1856-1939)/꿈의 해석(Traumdeutung, 1900)

112 쇼(Shaw, 1856-1950)/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 1903)



<제8년차>

113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444-380 B.C.)/섬, 평화

114 플라톤(Plato, 427-347 B.C.)/파이돈(Phaedo)

115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444-380 B.C.)/물리학(Physics) 제2권

116 '신약(新約)' 중 '로마서', '고린도 전서'

117 가레노스/천부(天賦)의 기능 1 및 3

118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헨리 4세(King Henry Ⅳ) '1'

119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헨리 4세 '2'

120 하비(Harvey, 1578-1657)/혈액 순환의 원리(On the Motion of the Heart, 1628)

121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영혼의 목마름(The Passions of the Soul, 1650)

122 밀턴(Milton, 1608-74)/투우사 샘슨(Samson Agonistes, 1671)

123 피히테(Fichte, 1762-1814)/인간의 사명(Die Bestimmung des Menschen, 1800)

124 바이런(Byron, 1788-1824)/돈 주안(Don Juan), 칸토스 1-4

125 J. S. 밀(Mill, 1806-1873)/공리론(公理論, Utilitarianism, 1863)

126 니이체(Nietzche, 1844-1900)/도덕의 계보(The Genealogy of Morals, 1887)

127 헨리 아담스(Henry Adams, 1838-1918)/헨리 아담스의 교육(The Education of Henry Adams, 1918)

128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시14편



<제9년차>

129 호머(Homer, 850 B.C.)/일리아드(Iliad)

130 헤로도투스Herodotus, 484-425 B.C.)/역사(History) 8-9

131 플라톤(Plato, 427-347 B.C.)/소피스테스(Sophist)

132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444-380 B.C.)/분석론(分析論)

133 타키투스(Tacitus, 55-117)/연대기(年代記, Annales)

134 플로티노스(Plotinus, 205-269)/엔네아데스(Enneades)

135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라테아서평석(書評釋) 발췌

136 갈릴레오(Galileo, 1564-1642)/신과학대화(新科學對話, Dialogues Concerning Two New Sciences, 1638)

137 라시느(Racine, 1639-1699)/페드라(Phaedra, 1667-77)

138 비코(Vico, 1668-1744)/신과학(Principi pi una scienza nuova)

139 발자크(Balzac, 1799-1850)/고리오 영감(Le Pere Goriot)

140 마르크스(Marx, 1818-1883)/자본론(資本論, Capital, 1867) 발췌

141 입센(Ibsen, 1828-1906)/물오리(The Wild Duck)

142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심리학(Principles of Psychology, 1890) 21-22장

143 보들레르(Baudelaire, 1821-67)/악의 꽃(Les fleurs du mal)

144 포앙카레(Poincaré, 1854-1912)/과학과 가설(假說) 4-5장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으니

얼굴 가득 햇살이 내려 앉는다

스르르 눈을 감는다. 


눈꺼풀 속 세상엔

주홍 바다가 너울거린다

분홍 안개 구름이 일어난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나른하게 내려앉는 하느님의 선물


잠결 세상 속

햇살 가득한 봄 꽃 만발한 사이엔

봄의 여인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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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머틀 윌슨은 달려오는 자동차에 뛰어들어 잔혹한 죽음을 당합니다.

뉴욕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사고 장소에 이른 톰과 닉, 조단은 차를 멈춥니다.

사고가 나서 죽은 사람이 머틀 윌슨이라는 것을 알게 된 톰은 아연실색합니다.


-----------------------------------------------------------


 

Michaelis wasn't even sure of its color--he told the first policeman that it was light green.

마이클리스는 차가 어떤 색깔이었는지 분명히 기억하지 못했다. 처음 만난 경찰관에게는 연한 초록색이었다고 말했다.

 

The other car, the one going toward New York, came to rest a hundred yards beyond, and its driver hurried back to where Myrtle Wilson, her life
violently extinguished, knelt in the road and mingled her thick, dark blood with the dust.

뉴욕으로 가고 있던 다른 차가 백야드쯤 미끌어져가다 멈추었다. 운전사는 급히 후진하여 사고 장소로 돌아왔다.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머틀 윌슨이 흘리는 검붉은 피는 흙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머틀 윌슨은 무릎이 꺽인 채 길에 나둥글고 있었다.     

 

Michaelis and this man reached her first but when they had torn open her shirtwaist still damp with perspiration, they saw that her left breast was swinging loose like a flap and there was no need to listen for the heart beneath.

마이클리스와 이 남자가 가장 먼저 윌슨 부인에게 다가갔다. 아직까지 땀으로 축축한 윌슨부인의 블라우스를 찢어 확인해 보니, 윌슨부인의 왼쪽 가슴이 늘어져 너덜너덜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 심장 소리는 들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The mouth was wide open and ripped at the corners as though she had choked a little in giving up the tremendous vitality she had stored so long.

입은 크게 벌어져 있었고 양 입가는 찢어져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간직했던 엄청난 생명력의 끈을 놓을 때 마치 목이 메였던 것처럼... 


We saw the three or four automobiles and the crowd when we were still some distance away.

우리가 아직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너대의 자동차와 군중들이 보였다.

 

"Wreck!" said Tom. "That's good. Wilson'll have a little business at last."

"사고다!" 톰이 말했다. "잘 됐군. 윌슨이 드디어 한 몫을 잡겠군."

 

He slowed down, but still without any intention of stopping until, as we came nearer, the hushed intent faces of the people at the garage
door made him automatically put on the brakes.

톰은 속도를 늦추었지만 차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차고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무 말없이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자기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We'll take a look," he said doubtfully, "just a look."

"무슨 일인지?" 톰이 궁금해 하며 말했다. "잠깐 보고 가자."

 

I became aware now of a hollow, wailing sound which issued incessantly from the garage, a sound which as we got out of the coup챕 and walked
toward the door resolved itself into the words "Oh, my God!" uttered over and over in a gasping moan.

나는 그 때 공허한 울부짖는 소리가 차고에서 그치지 않고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쿠페에서 내려 그 문으로 걸어갈 때에야 그 소리가 "세상에 이럴 수가"하는 말이란 것을 알았다. 이 소리는 숨넘어가는 신음소리와 함께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There's some bad trouble here," said Tom excitedly.

"여기 뭔가 심상찮은데," 톰이 흥분하여 말하였다.

 

He reached up on tiptoes and peered over a circle of heads into the garage which was lit only by a yellow light in a swinging wire basket overhead.

톰은 발끝으로 서서 둥그렇게 서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차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천정에 매달린 철사 바구니 속의 노란 전등이 차고를 밝히고 있었다. 

 

Then he made a harsh sound in his throat and with a violent thrusting movement of his powerful arms pushed his way through.

톰은 목구멍으로 듣기 싫은 소리를 내더니 억센 팔로 사람들을 마구 밀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The circle closed up again with a running murmur of expostulation; it was a minute before I could see anything at all.

톰을 비난하는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벌어졌던 길은 다시 사라졌다. 조금 지나서야 나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Then new arrivals disarranged the line and Jordan and I were pushed suddenly inside.

새로운 사람들이 밀려드는 통에 조단과 나는 갑자기 안쪽으로 쑥 들어가게 되었다. 

 

Myrtle Wilson's body wrapped in a blanket and then in another blanket as though she suffered from a chill in the hot night lay on a work table by the wall and Tom, with his back to us, was bending over it, motionless.

시체는 더운 밤 냉기로 덜덜 떠는 사람처럼 담요로 둘둘 말려 있었고, 그 위에 또 다른 담요가 덮여 있었다. 그것은 벽에 붙어 있는 작업대 위에 눕혀져 있었는데, 톰이 우리에게 등을 향한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시체위로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Next to him stood a motorcycle policeman taking down names with much sweat and correction in a little book.

톰 옆에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온 경찰관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서 작은 수첩에 이름들을 받아 적기도 하고 고쳐적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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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 백/ 김승욱 / 민음출판사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꼭 읽어야 할 100권  ☞http://blog.daum.net/ccsj77/48


인간의 탐욕은 어느정도까지일까? 가진 자의 탐욕을 언제까지 참아내야 하는 것일까? 인간성안에는 탐욕을 상쇄시키는 그 무언가 고귀한 것이 있는 것일까?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가진 자들의 탐욕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터지지 않는 분노가 가슴 한 켠에 자리잡는다. 언젠가는 터질 시한 폭탄처럼...


1930년대 어느 때인가 톰 조드는 막 출소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톰의 가족은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오랫동안의 가뭄으로 농민들은 땅을 모두 잃게 되었고,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톰과 그의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가면 좋은 일자리를 얻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긴 여행을 떠난다. 서쪽으로 가는 66번 도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나선 이들로 가득하다. 이 여행은 만만하지가 않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생스러운 여행중 숨을 거두게 된다. 드디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산위에서 바라본 캘리포니아 계곡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곳에서 일자리를 얻기는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웠다. 수많은 이주민들이 몰려든 탓에 노동력 공급 과잉으로 인해 품삯은 터무니 없을 정도이다. 이 품삯으로는 가족들이 먹고 살기에도 어려울 지경이다. 더구나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과 멸시는 참을 수 없는 지경이다. 이주민들은 공권력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불공정한 처사에 반대하여 파업을 하던 케이시는 몽둥이에 맞아 죽게되고 톰은 또 다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쫓기게 된 톰, 그리고 위기에 처한 톰이 가족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서 일자리는 더 이상 찾기 어렵고, 몇일동안 계속된 비로 주거지는 물에 잠기게 된다. 톰의 여동생은 우중에 사산을 한다. 비를 피해 자리를 옮기던 톰의 가족은 헛간을 발견한다. 그 헛간에는 어린 아이와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가 누워있다.     


산 너머 산이라더니, 톰의 가족이 그 꼴이다. 상황은 악화되어갈 뿐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농장주들, 그들이 심장에도 따뜻한 피가 돌까?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려고 하지않는다. 오히려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총을 사고, 독가스를 사고, 감시원들과 경비원을 고용한다. 가진 자들은 품삯을 낮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를 불러모은다. 이주민들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불공정한 조건에 기꺼이 합의한다. 악순환이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이주민들은 말보다 못한 존재이다. 일일 품꾼인 이주민들은 일하지 않는 계절에도 먹을 것이 주어지는 말들보다 못한 존재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대우해도 되는 것일까? 권리를 찾기 위해 뭉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며 린치를 가하는 사람들은,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무한한 탐욕을 그 근간으로 삼는 산업자본주의의 폐해는 인간 생명 경시에 분명히 드러난다. 인간 생명보다는 이익이 우선시 된다. 여기서 분노가 시작된다. 배고픈 자들의 분노.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오렌지를 불태운다. 굶주인 사람들 앞에서. 수확한 감자를 강물에 버린다. 굶주린 사람들이 감자 한 알이라도 건지려고 하지만, 감시원들이 그들을 막아선다. 공급 과잉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불꽃이 튄다.


'분노의 포도'를 읽으면서 톰의 가족의 상황이 나아지겠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조금 좋아지겠지 하는 허망한 기대를 수없이 가졌다. 하지만 끝까지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도리어 상황은 폭주 기관차처럼 절벽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는 톰의 어머니.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냥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는 생명력 특유의 끈질김이랄까? 그것이 생명력의 본질일까?


우리 시대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 영리를 최고의 신성한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은 인간 생명을 이윤 추구를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사유 재산이 신성하는다는 사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터무니 없는 꼼수이다. 사유 재산을 신성한 수준까지 높인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이다. 이 것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 보호하려는 꼼수이다. 돈이나 재산, 이윤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찾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꿈에 불과한 것일까?


'분노의 포도'를 읽고 아직 우리 사회는 불완전하며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직시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회을 바꾸려는 마음까지는 갖지 않더라도, 자신만은 그런 더러운 자들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아름다운 꽃을 피울 한 알의 씨앗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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