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0일


장산에서 길을 잃었다. 


이 번 산행의 목적은 장산 정상에서 장산동국아파트까지 내려오는 최단길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성불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봉전망대를 거쳐 성불사 위 약수터에서 성불사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 길이 애매하다. 길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일까? 아니면 내가 길을 잘못 접어든 것일까? 너덜을 따라 가는 길은 그 흔적이 애매하다.


결국 너덜길에서 성불사 내려가다가 길을 잃었다. 길 위에서 길을 잃은 것이라면 걱정도 않겠지만, 이건 숫제 길 자체가 없음에야 초보 산행인에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길이 아닌 숲 속에는 거미가 사방에 거미줄을 쳐 놓았고, 가시 돋힌 망게 덩굴은 성긴 나무가지 사이에 실타래처럼 얽혀있었다.  
 
발 밑에서는 썩은 나무가 우지끈 부러지고, 돌 위에 내디딘 발은 미끄러지고, 풀위에 디딘 발은 움푹 풀섶속에 빠져들었다. 눈 앞에 길은 흔적도 없고 되돌아가려 몸을 돌려도 길이 없다. 
 
살다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길은 사라지고 어찌 해야할 지 앞이 캄캄할 때가 있다.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 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 
 
(고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이 없을 땐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희망이 필요하다. 절망에서 벗어날 유일한 출구는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이다. 희망이 없다면 인내는 무슨 소용이랴? 
 
'아픔을 이겨내는 건...희망을 기억하는 것이다.'
"희망 가운데 기뻐하십시오. 환란 중에 인내하십시오" (로마12:12)  
 
길을 잃었으나 깊은 산속이 아니니 어떻게든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는 사실에 그나마 마음 한 편을 다독거렸다.   
 
게다가 산에서 길을 잃으면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인가에 이른다는 말이 생각났다. 물길따라 젖은 바위를 조심조심 내디디며 내려가다 성불사에 이르렀다. 온 몸이 땀으로 후줄근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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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는 동양의 사상에 조예가 깊다.

가족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동양적 삶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처음에는 인도의 사상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인도 여행은 오히려 인도 사상에 대한 실망을 불러일으킨다.

오히려 인도 여행에서 만난 중국인들에게서 큰 감명을 받고 중국 사상에 관심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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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의 심리학을 알기 쉽게 풀어낸 책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파악하는 사람들은 칭찬을 받기 위해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게된다.

그리고 칭찬을 받지 못하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불행하게 된다.


해결책은 인간관계를 수평적으로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할 이유가 없다. 또한 다른 사람을 조종하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압박을 가할 필요도 없다.

각자의 일이 있는 법이고 각자의 일은 각자가 해야할 일이다.

나는 단지 공동체에 공헌하려는 마음과 그 일을 실행함으로 공헌감을 가지게 되면

자유로운 나만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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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송나라까지


삼황오제

하, 은, 주

춘추전국시대

진(진시황)

초한시대(항우와 유방)

한(유방)

후한(유수)

삼국시대(조조, 손권, 유비)

진(사마염)

서진

동진/ 5호16국

남북조

수(양견)

당(이세연)

송(조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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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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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La La Land

LA LA Land

LA LA LA and...


LA(로스엔젤레스)에서 꿈을 쫓는 두 젊은 남녀의 이야기


남자의 꿈은 자신의 재즈바를 가지는 것이다. 거기에서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재즈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지만 LA에서 재즈피아노를 연주하며 돈을 벌어 자신의 재즈 바를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활해 나가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현실은 남자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장르의 음악을 하도록 끊임없이 밀어붙인다. 


여자는 LA의 헐리우드에 입성하고 싶은 배우 지망생이다. 고향을 떠나 온 지 여러해가 되었지만 번번히 오디션에서 떨어진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그녀는 계속 이러한 생활을 해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여자는 레스토랑에서 남자가 연주하는 피아노를 듣고 호감을 느낀다.

서로의 호감이 점점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고, 여자와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픈 남자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려한다.


.....


.....


그리고 마지막 반전. 


지인중 한 사람은 집에서 잠자리에 들 때, 당시에는 뜬금 없이 느꼈던 그 마지막 장면이 뒤 늦게 생각나서 먹먹해지는 가슴을 안고 잠들었다고 ...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이 바로 이 마지막 장면에 압축되어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산다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La La Land 를 보고나서 우연히 이 감독 전작 '위플래시'가 겹쳐져 보였다.

이 영화는 가능성이 있는 드럼연주자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마치 채찍을 휘둘러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흘리며 분투하도록 밀어붙여 그 잠재력을 폭발시키도록 하는 한 지휘자의 이야기이다. 이 지휘자의 조련을 견디다 못해 정신병을 앓고,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 드럼연주자는 극한을 이겨내고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현실에 안주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절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앞으로 밀고 나아가도록 하는 강력한 힘이다. 사랑한다면 꿈을 쫓도록,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야한다. 이렇게 본다면 La La Land는 제2의 위플래쉬인 셈이다.


LA LA LA ...nd 세 개의 꿈 그리고...나의 꿈이란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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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 지음


열대우림을 비숲이라 한다. 김산하는 한국 최초의 영장류 박사이다. 그는 긴팔원숭이를 연구하기 위하여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으로 찾아든다.

말로만 듣던 밀림, 정글은 그야말로 사람이 손길이 미치지 않는 처녀림이다. 이 숲 바로 바깥에 너댓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곳은 자연과 문명의 완충지대이다.

자연과 문명이 함께 할 수는 없는 것, 인간은 자연에 동화되지 못하고 그저 파괴할 뿐이다. 긴팔원숭이를 비롯한 열대우림의 원주민들은 절대 자연에 동화되어 그 스스로가 자연이다. 하지만 문명화된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이 될 수가 없다. 하늘을 가릴 지붕이 필요하고, 벗은 몸을 가릴 옷이 필요하고, 자연산이 아닌 재배하고 양식한 음식을 먹는 인간은 이미 자연을 떠난 존재이다. 자연에서 나왔으나 더 이상 절대자연 속에서는 불편해지는 인간. 그러나 인간은 원초의 자연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원초의 자연은 문명화된 인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인간은 원시자연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나아갈 길도 없고, 돌아갈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원시자연에서 생존하려면 그것을 문명화해야 한다. 절대자연에 손상을 끼쳐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물러서면 어느듯 세월은 인간의 흔적을 지우고 절대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자연을 대규모적으로 파괴하지 않는한 자연은 스스로 복구한다.


산 짐승도 자기들이 다니는 길이 있다. 자주 다니다 보니 자연 길이 생긴다. 인간도 자연에 길을 낸다. 그도 긴팔원숭이를 연구하기 위해 서식지를 가로 세로로 길을 낸다. 길이 없으면 다닐 수가 없고, 다닐 수 없으면 긴팔 원숭이를 쫓아갈 수 없고, 긴팔 원숭이를 쫓지 않으면 연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최소한의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원숭이를 쫓아 다닌다. 처음에는 원숭이들이 인간을 보고 무작정 도망을 간다. 연구팀은 죽어라고 그들을 쫓아간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여러달 이러한 쫓고 쫓기는 관계속에서 익숙함이 자란다. 어느날 긴팔 원숭이들은 돌연 쫓기는 것을 거부한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는다. 인간을 그들 주위 환경의 일부로 인식하게된다. 이 후로는 마음대로 긴팔원숭이를 관찰할 수 있다. 바로 나무 밑에서 이야기를 해도 긴팔원숭이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여우와 친해지는 방법이 바로 이러한 익숙함이었다. 익숙함은 그리움을 낳는다. 하지만 익숙함 속에는 독이 있다. 새로움, 신선함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삶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익숙함이라면 삶을 살만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새로움이다. 익숙함속에 새로움을 찾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대박이다.


김산하 박사는 비숲을 그리워할게다. 긴팔원숭이도 그리울게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연구팀이었던, 아리스, 싸리도 보고 싶을게다. 인간은 비숲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한다.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그들과의 인연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만약 김박사가 자연과 소통할 수 있었다면, 말하자면 그냥 자연을 관찰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니 관찰이 아니라 참여, 동화되어 살면서 진정한 소통이 가능했다면 어떤 기록이 나올 수 있었을까? 밀림을 벗어난 최소한의 문명인 밀림 옆 마을의 지붕이 있는 집이 아니라 밀림속에 얽기설기 거처를 마련하여, 긴팔원숭이들과 함께 절대자연에 동화되어 살았더라면...그게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그정도까지 할 마음이 있기나 했을까?


제인구달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프리카에서 수십년을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생활한 학자인 제인구달은 침팬지를 자연의 대표로 생각하고, 자신을 인간의 대표로 여기며 자연과의 화해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역시 현재 인간은 자연과는 떨어진 문명의 존재이다. 문명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인간은 문명속에 살지만 자연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연은 인간 숨결의 원초적 근원이기 때문이다. 자연없는 삶은 상상할 수 가 없다. 단지 감정적 미학적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차원에서 그러하다. 인간의 생존에 자연이 필수불가결함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거꾸로 자연은 문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문명은 자연에 빚진바가 크다. 절대 부채를 지고 있다. 하지만 탐욕적인 인간은 자신들이 자연에 대한 권리를 가진 양 마음대로 파헤치고 파괴하려든다. 자연은 어느 선까지는 허허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면 자연은 신음 소리를 낸다. 자연이 불편해 하면 인간도 불편하다. 정도가 심해지면 자연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기제를 작동시킨다. 가이아의 보복이다. 파괴로 급변한 자연환경은 인간에게 전혀 보도 듣도 못한 재앙들을 가져다 준다. 현재 인간들이 경험하는 여러가지 자연재해들은 사실 인간들이 자초한 면이 크다.


인간 문명은 인간을 변모시켰다. 자연인에서 문명인으로 그리고 문명인에서 야만인으로.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들은 인간의 삶을 편하게 만들었다. 또한 인간들이 생존을 위한 고된 노동에서 구출해 주었다. 결과 인간은 시간을 부여받았고, 삶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 가능해졌다. 잉여의 시간들은 퇴폐속으로 빠져들었다. 인간속에 내재된 불건전한 온갖 종류의 탐욕을 부추기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문명의 도구들을 사용하여 잉여의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종류의 인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자기기에 빠져 인간성을 상실하고 퇴폐와 쾌락만을 추구하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동물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양산해 내었다.


인류의 생존이 계속되려면 인간의 자연성이 회복되어야한다. 문명이 그 나락의 끝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힘은 자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박사는 집 부근에 조그만 녹지들에 눈을 돌린다. 아주 작은 모자이크 조각일지는 몰라도 이 작은 녹지를 가꾸는 일을 통해 인간의 마음 속에 최소한의 자연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자연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야한다. 아이들의 교육에서 자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 자연을 괴롭히고 부수고 조각내고 분해하여 자연의 본질을 알려고 하는 과학을 자연이라 부른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자연 교육말고 참다운 자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자연과 문명의 조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우리 자신의 삶이 자연에서 비롯된다는 제반 사실들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생존이냐, 아니면 멸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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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지음/ 고미숙 옮김


연암 박지원, 조선의 글쟁이. 박지원의 글은 당시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고 한다. 신분사회의 폐단을 드러내다는 점에서 뿐아니라 그의 글은 전통적인 글쓰기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당시의 글쓰기란 전혀 창의적이지 않았다. 다만 옛글을 본 뜨는 것을 최고로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지원의 독창적인 글은 어떻게 보면 파격적인 것을 넘어 이단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박지원의 글은 당시의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다만 글쓰기만 그러하겠는가, 그의 사상 즉 양반사회를 비판하고 신분사회를 부정하는 그의 사상도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당시의 글쓰기에 대해 전혀 무지한 사람인고로 박지원의 독창성과 파격성을 느낄 수는 없다. 다만 열하일기에 나타난 박지원의 호방함과 재치, 그리고 해학적인 성품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열하일기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보자.


박지원은 조선 사신단의 일원으로 청나라 연경으로 간다. 청나라 황제는 그 때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열하에 가 있었다. 조선 사신단은 연경에서 700여리 떨어진 열하로 향한다. 청나라 황제의 70세 생일인 만수절에 맞추어 열하에 도착하기 위해 사신단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열하에 도착한다. 황제의 만수절 축하가 끝난 후 그들은 다시 연경으로 되돌아 온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 연경으로 가는 여정, 그리고 연경에서 열하로의 여정, 마지막으로 열하에서 연경으로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 여정에서 만나게 된 풍경, 사람들, 문화등이 열하일기에 녹아져 있다.


열하일기를 번역한 고미숙님은 열하일기의 광팬이다. 다시 말해 박지원에 대한 고미숙님의 애정이란 놀라움 그 자체이다. 그저 열하일기를 읽는 독자로서의 느낌과 열하일기의 번역자로서의 감회가 같을 수는 없다. 먼저는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같을 수 없을 것이며, 글에 표현된 작가의 심리를 읽어내는 정도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열하일기를 첫번째 읽을 때의 감상과 두번째 읽을 때의 감상이 확연히 다름을 느낀다면, 번역자가 느낄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경탄은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일 것이다.


그러면 박지원의 유머에 대한 고미숙님의 분석은 어떨까? 고미숙님은 박지원이 유머를 구사한 것은 고도의 글쓰기의 방법의 일환이라고 본다. 당시의 글쓰기 상황을 배제하고 그냥 생각한다면, 박지원의 글에 나타난 유머는 그저 스스로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방법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의 글쓰기와는 파격적으로 다른 그의 글쓰기의 특징이 유머라면, 고미숙님이 보는 것처럼 혁명적인 그의 사상이 당시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보다 거부감없이 접근하려는 고도의 방책이라 볼 수도 있겠다. 


우스개 소리는 일반적으로 천박하고 얄팍한 사유와 연관되기도 하지만, 박지원의 유머는 상당히 다르다. 그는 유머스러하면서도 그 사유의 깊이가 대단하다. 그는 스스로를 희화화한다. 자신이 독자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감의 발로라 할 수밖에 없다. 박지원은 풍채도 대단했다고 하는데, 성격도 그만큼 호방했던 모양이다.


열하일기에서는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의 논리가 들어있다. 그가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보고 알게된 청나라의 문물을 조선의 것과 비교하는 것도 모두 더 인간다운 삶이 있는 사회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던 그는 말년에 몇몇 관직을 얻게 된다. 경상남도 함양에 있는 안의 현감으로 봉직하면서 박지원은 청나라에서 보았던 물레방아를 실제로 설치하여 사용해 본다. 안의면 용추폭포 올라가는 길에 거대한 물레방아와 함께 박지원을 기리는 유허지가 있다. 함양을 물레방아골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언제가 함양에 갔다가 물레방아를 보고, 왜 박지원의 사적비와 물레방아가 여기에 있을까 하고 궁금해 했던 적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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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지은이 이문구/ 문학과 지성사


어이가 없다. 관촌수필이라 하여 수필인줄만 알았다. 연작 소설집이었다.


관촌수필에는 총 여덟개의 회고적인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 있었던 몇가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네글자로 된 한자로 제목이 붙어 있다. 이문구님은 우리 고유의 토속적인 어휘들을 많이 구사하고 있지만 한자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 제목에 각 이야기가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첫번째 이야기인 일락서산日落西山은 할아버지에 얽힌 기억들이다. 할아버지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 그리움은 지나간 시절, 돌아올 수 없는 시절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다. 세월이야 잡을 수 없고, 시간 속에 변하지 않는 것도 없을테지만, 그래도 아름다움은 남아 있어야 하건만, 지난 시절의 가치들은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유효한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작가가 고향 관촌을 찾은 날은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저녁 어름이다. 더 큰 시간의 영역에서 보면 지나간 시절의 전통적인 인간관계나 사회가 저물어가는 그런 때이기도 하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선 작가의 눈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를 향한 눈은 미래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


둘째 화무십일花無十日은 육이오동란중에 행랑채에 살게 된 윤영감네 이야기이다. 며느리의 가출과 윤영감 아들의 자살로 끝난 비극적 이야기이다. 윤영감네는 피난내려오다 부모를 다 잃게된 여자를 거두어 들인다. 그녀는 윤영감의 며느리가 된다. 국군이 북진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던 윤영감네는 작가의 집에 빌붙어 살게된다. 윤영감은 온갖 잡일과 들일을 다 돌봐 주면서 그 몫을 해내고, 며느리는 읍네로 가서 여관 부엌에서 할 일자리를 찾게된다. 어렵게 살아가던 중 찾아온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하면서 삶이 좀 나아졌나 싶더니, 며느리가 바람이 나 가정이 풍비박산이 난다. 며느리는 야반도주를 하고 아들은 뒤산에서 목을 매단다.   


세째 행운유수行雲流水는 노래 잘하고 씩씩하고 어린 '나'를 잘 돌봐 주었던 옹점이 이야기이다. 작품 전체에서 옹점이는 자주 등장하지만 이 편에서는 옹점이가 주인공이다. 옹점이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며 언니(누나)처럼 나를 위해 주었다. 옹점이에 대한 그리움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버금간다. 나이가 들어 시집갈 때가 되자, 옹점이는 눈물을 흘리며 시집을 간다. 잘 사는가 싶었더니, 전쟁나간 남편의 소식이 끊어지자 군식구를 줄이려는 시집 식구들의 등쌀에 못이겨 옹점이 집을 뛰쳐나온다. 옹점이 결국 떠돌이 패와 어울려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는 소문을 듣게 되는데, 결국 나는 시장판에서 노래하는 옹점이를 보고 눈물을 훔치며 되돌아 집으로 달려간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던 옹점이의 떠돌이 삶에 나는 슬픔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 글에는 옹점이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과 아쉬움이 철철 넘친다.


네째 녹수청산綠水靑山은 대복이 이야기이다. 행랑살이를 하던 대복이네 가족. 대복이는 친구라기 보다는 언제나 든든한 형처럼 나를 대해 준다. 대복이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복이는 나쁜 길로 빠져든다. 대복이가 절도죄로 유치소에 있을 때 공산군이 들어오게 되고, 그 길로 풀려난 대복이는 공산당의 앞잡이가 된다. 그러다 상 것인 대복이가 감히 넘어다 볼 수 없는 순심이란 처녀를 겁탈하려다 대복이는 다시 철창 신세를 지게 되고, 국군이 북상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대복인 자유의 몸이 된다. 공산치하에 아이들에게 혁명가등 노래를 가르치며 부역하던 순심이는 수복이 된 후 행적이 오리무중이 되고, 어찌된 일인지 대복이는 순심이네 집의 하인으로 자청하고 나선다. 몸을 사리지 않고 순심이네 가족을 돌봐주는 대복이는 전쟁터로 떠난다. 깊은 지하실에 숨어 있던 순심이는 떠나는 대복이의 뒤 모습이라도 보려고 몰래 나왔다가 사람의 눈에 띄어 경찰서로 잡혀간다.  


다섯째, 공산토월公山吐月은 석공의 이야기이다. 우리 집 맞은 편에 사는 석공은 어릴 때부터 돌을 그렇게나 좋아했었다. 쓰임새가 있을 만한 돌을 모아 마당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가 사람들이 각종 일에 쓰임새가 있을 때는 기꺼이 그 돌들을 내어주곤 했다. 대복이와 석공은 서로 닮은 듯 다른 듯, 나를 위해주는 형과 같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았지만, 석공은 대복과는 달리 시종 성실하고 착실하기만 하다. 석공이 나이가 들어 섬처녀를 색시로 맞아들이던 날, 마을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나'의 아버지가 석공의 마당에서 술을 쭉 들이키고는 한바탕 소리를 뽑고 춤을 덩실덩실 춘다. 마을 사람들만이 아니라, 나도, 아니 나의 어머니도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을 처음 본 것이다. 석공이 아버지의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거나 행동대원으로 활동하지도 않았건만, 왜 아버지가 아랫것인 신씨네 집의 혼사에 그런 정을 주는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석공과 그의 가족은 이에 우리 가족에 한층 더 깊은 사랑고 존경심을 갖게 된다. 전쟁을 지나면서 우리집 가세가 기울고 어려워질 때에 석공은 한결같이 온갖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는다. 공산치하에서 면사무소의 펜대를 쥐게 된 석공을 보고 석공의 아버지는 평생 원해왔던 일을 구하게 되었다고 좋아한다. 그것이 비록 아무 힘도 없는 말단의 일이었지만서도. 하지만 공산당이 물러간 후 석공은 부역자로 몰려 갖은 고문을 당하게 되고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형기를 마치고 나온 후 성심을 다해 마을을 위해 일하고 성실하게 집안을 일구어 나간다. 그 와중에 몰락한 우리 집은 모든 가산을 팔고 도시로 이사하게 된다. 고향에 사는 모든 사람과의 연락은 끊어졌지만 석공의 가족과는 끈끈한 이어짐이 계속된다. 석공의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가세는 일어서게 되고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게 왠 일? 석공은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진다. 백방이 무효라고, 석공은 도시로 나와 큰 병원에 입원하지만...결국 백혈병에 걸려 죽을 운명임을 알게 된다. 석공이 도시로 나와 병원을 알아보고 치료받는데 여러 편의를 돌봐 주면서 나는 석공에 대한 감사와 따뜻함을 나타내지만, 석공이 죽을 지경이 되도록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석공이 임종을 앞 두고 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석공이 창문 너머로 나의 손을 잡을 때, 느닷없이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도저히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여섯째, 관산추정關山芻丁 일제 징용갔다 돌아온 유천만. 몸이 좋지 않아 집안일을 하지 않는 그 집의 기생충같은 존재였지만, 마을의 대소사에 몸을 아끼지 않던 사람, 닭이나, 돼지를 잡을 때면 언제나 보수도 바라지 않고 발 벗고 달라들든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복산이...


일곱째, 여요주서與謠註序 어릴 적 친구였던 신용모, 어릴 때 어리석은 용모는 어른이 되어서도 변한 것이 없다. 죄를 뒤집어 쓰고 말을 잘못하는 바람에 더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여덟재, 월곡후야月谷後夜 귀향한 김희찬이라는 친구와 그의 동생 수찬이. 희찬이는 도시에서 짜집기 책을 만들며 펜대를 굴리다 귀향한 나의 친구이다. 시골에서 과수원을 가꾸며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타지에서 이주해 온 결핵에 걸린 한 남자가 자기 초등학교 딸아이의 친구를 범하게 된다. 들통이 나자 어떻게 어떻게 돈을 써서 소녀의 어머니와 합의를 보고 감옥에 가는 것을 용케 피하지만 이 마을의 젊은이들은 이를 묵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응징하고자 하는데....


이문구님의 관촌수필에서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여져 있다. 그리고 옛것이 사라지고 변화해 가는 시대의 흐름이 담겨져 있다. 작가의 심중에는 변화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보여진다. 옛 것에 대한 애모가 깊을 수록 변화는 부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인가보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변모해가는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친 것은 일단은 자연과의 교감이 옅어지는 점이다. 관촌수필 곳곳에 어린 시절 자연과의 교감이 드러나 있다. 더구나 석공의 혼인식날 밤 휘영청 밝은 달빛을 훔쳐가던 기러기 그림자를 묘사하던 밤의 풍경은 읽는 독자로서도 잊을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관촌부락과 가까운 갯벌의 추억도 그렇고, 냇가에서 고기를 잡던 추억도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주던 이웃의 형들과 언니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끈끈한 정이 그리운 것이다. 현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사라진 이러한 지나간 것들의 가치를 아까워하고 아쉬워함은 현대 문명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온전히 동네에서 존경받고 재산께나 있는 문벌좋은 양반네의 손자로서의 대우받고 대접받는 입장에 매몰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천한 것, 상 것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삶의 팍팍함과 어려움을 읽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문구님이 관촌수필에서 느낀 것 또 한가지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이다. 토속어, 사투리가 가득하여 우리말이지만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작품인데, 우리말의 어휘가 이렇게 풍부했나 싶을 정도로 놀랍니다. 이 책은 다시 한 번 사전을 옆에 두고 읽으면서, 찾은 어휘들을 노트해 가면서 읽고 싶은 작품이다. 또한 이문구님의 표현 또한 감탄스럽다. 곳곳에 암초처럼 드러난 아름다운 표현들은 차마 소설이나 수필이라기 보다는 시라고 해야 올음직할 정도이다. 받드시 다시 한 번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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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개츠비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텐데도,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화도 없었다.

오직 데이지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던 탓일까?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도 한 참 후였다.

윌슨의 시체도 함께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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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telephone message arrived but the butler went without his sleep and waited for it until four o'clock--until long after there was any one to
give it to if it came.

전화는 없었다. 하지만 집사는 4시가 되기까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전화를 기다렸다.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개츠비가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된 후로도 한 참 시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 


I have an idea that Gatsby himself didn't believe it would come and perhaps he no longer cared.

내 생각엔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않았을 성 싶다. 개츠비는 아마 더 이상 전화가 오든 안 오든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If that was true he must have felt that he had lost the old warm world, paid a high
price for living too long with a single dream.

내 생각이 옳다면 개츠비는 자기가 예전에 누렸던 정이 있는 세계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또한 데이지만 바라보면 단 하나의 꿈만을 쫓아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댓가를 이렇게 치르게 되는구나 하고 느꼈을 것이다. 



He must have looked up at an unfamiliar sky through frightening leaves and shivered as he found what a grotesque thing a rose is and how raw the sunlight was
upon the scarcely created grass.

개츠비에게는 놀란 나뭇잎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하늘이 퍽이나 낯설었을 것이다. 그리고 올려다 보이는 장미란 것이 얼마나 기괴하게 보이는 지, 그리고 사위어가는 풀 위에 내려앉은 햇빛이 얼마나 생생한지 알고서는 부르르 몸을 떨었을 것이다.  


A new world, material without being real, where poor ghosts, breathing dreams like air, drifted fortuitously about . . . like that ashen, fantastic figure gliding toward
him through the amorphous trees.

딴 세상,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 허망한 꿈을 들이마시는 불쌍한 유령들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곳, 그런 세계가 주위에 표류하고 있었다. 저 흐릿해져가는 나무들 사이로 그를 향해 점점 내려앉는 잿빛의 기괴한 모습처럼.



The chauffeur--he was one of Wolfshiem's prot챕g챕s--heard the shots--afterward he could only say that he hadn't thought anything much about them.

울프심의 패거리에 속한 운전기사는 총소리를 몇 방 들었지만 그는 나중에 그 소리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I drove from the station directly to Gatsby's house and my rushing anxiously up the front steps was the first thing that alarmed anyone.

나는 역에서 막바로 개츠비의 집으로 차를 몰고와서 터질 듯한 심정으로 계단을 박차고 올라갔다. 놀랍게도 내가 찾아온 첫번째 사람이었다. 


But they knew then, I firmly believe.

그러나 그 때쯤 그들이 알았다는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With scarcely a word said, four of us, the chauffeur, butler, gardener and I, hurried down to the pool.

말 한 마디 내뱉지 않고 우리 네 사람, 운전기사, 집사, 정원사 그리고 나는 수영장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There was a faint, barely perceptible movement of the water as the fresh flow from one end urged its way toward the drain at the other.

한 쪽 끝에서 흘러드는 물이 다른 쪽 끝에 있는 배수구쪽으로 향하면서 물은 거의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With little ripples that were hardly the shadows of waves, the laden mattress moved irregularly down the pool.

뭔가가 실린 매트리스가 풀장 저 쪽에서 물결이라고도 볼 수 없을 미세한 흔들림에 실려 고요히 움직이고 있었다.  


A small gust of wind that scarcely corrugated the surface was enough to disturb its accidental course with its accidental burden.

끔찍한 것을 실은 매트리스가 수면에 거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희미한 바람에 밀려 가던 방향을 바꿀 정도로 물은 고요했다.   


The touch of a cluster of leaves revolved it slowly, tracing, like the leg of compass, a thin red circle in the water.

물 위에는 떨어진 잎들이 한 더미를 이루어 떠 있었다. 매트리스는 여기에 맞물려 콤파스의 한 쪽 다리처럼 흐린 핏자국를 따라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았다. 

 

It was after we started with Gatsby toward the house that the gardener saw Wilson's body a little way off in the grass, and the holocaust was
complete.

우리가 개츠비를 데리고 집으로 출발할 때에 정원사는 풀 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윌슨의 시체를 보았다. 비극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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