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어려서 부터 남다른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야망을 가진 아이, 하지만 탈출구가 없어 방황하던 아이였던 듯 합니다
하지만 그가 기회를 잡았을 때에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모습을 이미 만들어 놓았고, 그 모습에 따라 살아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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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time an ambitious young reporter from New York arrived one morning at Gatsby's door and asked him if he had anything to say.
이 무렵 어느날 아침 뉴욕에 사는 야심만만한 한 젊은 기자가 개츠비의 집 문앞에 와서는 개츠비에게 뭐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Anything to say about what?" inquired Gatsby politely.
"무슨 말을 하라고 그러는 겁니까?" 개츠비가 정중하게 물었다.
"Why,--any statement to give out."
"저 있잖아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시면, 무슨 말이라도 좋습니다."
It transpired after a confused five minutes that the man had heard Gatsby's name around his office in a connection which he either wouldn't reveal or didn't fully
understand.
그 남자는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해 하는 개츠비에게 5분정도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알면서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는 어떤 연줄로 개츠비의 이름을 일하다가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고 하였다.
This was his day off and with laudable initiative he had hurried out "to see."
쉬는 날이었지만,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무슨 일이 있는 지 알아보려고 서둘러 온 것이었다.
It was a random shot, and yet the reporter's instinct was right.
닥치는 대로의 시도였으나, 그 기자의 본능은 옳았다.
Gatsby's notoriety, spread about by the hundreds who had accepted his hospitality and so become authorities on his past, had increased
all summer until he fell just short of being news.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하였고, 거기서 개츠비의 과거에 대해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 개츠비의 좋지 못한 소문이야기를 퍼뜨리면서, 개츠비의 악명은 여름 내내 점점 커져만 갔고, 결국 뉴스 취재의 대상이 될 정도에 이르렀다.
Contemporary legends such as the "underground pipe-line to Canada" attached themselves to him, and there was one persistent story that he
didn't live in a house at all, but in a boat that looked like a house and was moved secretly up and down the Long Island shore.
"캐나다로 연결된 지하 파이프 라인"을 통해 금지된 술을 들여온다는 현대판 전설들이 개츠비를 따라 다녔고, 개츠비가 전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다만 집처럼 생긴 배를 타고 롱아일랜드 해안을 따라 몰래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꿍꿍이 짓을 한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떠돌았다.
Just why these inventions were a source of satisfaction to James Gatz of North Dakota, isn't easy to say.
북 다코타의 제임스 개츠는 왜 이러한 꾸며낸 이야기를 별 말없이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는 지는 말하기가 쉽지 않다.
James Gatz--that was really, or at least legally, his name.
제임스 개츠- 이것이 진짜, 아니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의 이름이었다.
He had changed it at the age of seventeen and at the specific moment that witnessed the beginning of his career--when he saw Dan Cody's yacht drop
anchor over the most insidious flat on Lake Superior.
개츠비는 17살때 그의 이름을 바꾸었다.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그 특별한 순간은 댄 코디의 요트가 수피리어호수의 가장 완만한 해안가에 닻을 내리는 것을 개츠가 목격한 바로 그 때였다.
It was James Gatz who had been loafing along the beach that afternoon in a torn green jersey and a pair of canvas pants, but it was already Jay Gatsby who
borrowed a row-boat, pulled out to the TUOLOMEE and informed Cody that a wind might catch him and break him up in half an hour.
그 날 오후 찢어진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해변가를 방황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제임스 개츠였지만, 작은 배를 빌려서 힘들여 노를 저어 투오로미호로 와서는, 코디에게 삼십분 후에 바람이 불어와서 그를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 바람은 다름 아닌 제이 개츠비였다.
I suppose he'd had the name ready for a long time, even then.
아마 그는 오랫동안, 심지어 그 때까지도 그 이름을 준비해 두고 있었던 것 같다.
His parents were shiftless and unsuccessful farm people--his imagination had never really accepted them as his parents at all.
개츠비의 부모님은 성공하지 못한 붙박이 농사꾼이었다. - 그의 상상속에서는 그들은 전혀 그의 부모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The truth was that Jay Gatsby, of West Egg, Long Island, sprang from his Platonic conception of himself.
제임스 개츠는 그의 부모님에게서 생명을 받았으나, 웨스트 에그, 롱아이랜드의 제이 개츠비는 플라톤 철학을 제 식대로 해석한 개념에서 태어났던 것이었다.
He was a son of God--a phras e which, if it means anything, means just that--and he must be about His Father's Business, the service of a vast, vulgar
and meretricious beauty.
개츠비는 신의 아들이었다.-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면, 개츠비는 신의 아들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명 즉 아버지의 사업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업이란 겉 모습만 번드르한 거대하지만 천박한 일일 뿐이었다.
*플라톤철학은 왜?
개츠비는 자신의 현실의 모습은 보잘 것 없지만,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자신의 본 모습은 이와는 다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가 해야 할 사명이란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주 천박한 것,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었을 뿐.
So he invented just the sort of Jay Gatsby that a seventeen-year-old boy would be likely to invent, and to this conception he was faithful to the end.
그래서 그는 17세의 소년이 만들 법한 그런 사람 제이 개츠비만을 만들어 내고는, 평생 이러한 사람답게 살았던 것이다.
For over a year he had been beating his way along the south shore of Lake Superior as a clam digger and a salmon fisher or in any other
capacity that brought him food and bed.
그는 1년이상을 수피리어호의 남쪽 해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조개도 캐고, 연어도 잡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His brown, hardening body lived naturally through the half fierce, half lazy work of the bracing days.
그 곳의 날씨는 차가우면서도 상쾌했다. 그의 갈색의 단단한 몸은 때로는 힘이 드는, 때로는 수월하기도 한 일을 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삶을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