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뉴욕타임지에서 선정한 꼭 읽어야 할 책 100권의 고전에 도전해 볼 목표를 가져본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수많은 책들이 나왔다. 뉴욕 타임지에서는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추리고 추려서 100권을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하였다. 그 책들은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선택을 받은 것일까?

 

이미 그 중에 몇 권을은 읽어 보았다. 최근 영화 <변호인>에 등장한 덕분에 판매량이 늘었다는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비롯하여 <객관성의 칼날>,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야생의 사고>등... 그 결과 나름대로 이 책들에 대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어렵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씨는 <괴델,에셔,바하-영원한 황금노끈>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의 독서 역사에서 가장 난해한 책이었다고 토로하였다. 나에게는 <괴델,에셔,바하>보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가 더 어려운 책이었다. 또한 지금 읽고 정리하고 있는 찰스 길리피스의 <객관성의 칼날>의 어려움도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러한 책들은 최소 2~3번은 읽어야 이해가 될 정도이다. 덕분에 2번 읽기의 매력에 푹 빠지기도 했다. 사실 좋은 책은 2번이상 읽을 때 그 참 맛이 나오는 법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책들을 왜 읽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두번째 특징에서 발견된다.

 

그 둘째 특징은 이 책들은 '정신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것이다. 이 책들을 읽고 나면 왜 이러한 책들을 위대한 고전이라 일컬어지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 책들은 인류 지성의 향연이며, 그 지성의 한계에 대한 도전의 역사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는 자신이 '우물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더 넓은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 이성으로 파악한 그 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한 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굉장한 우문으로 생각하였었다. 정말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E H 카는 나의 생각의 한계를 단번에 뚫어버리고 말았다. 나의 초라한 지성의 한계는 드러내면서. 그들 사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새로운 시각, 창조적 파괴, 고차원적인 해박함 등은 평범한 이들을 놀랍게한다. <야생의 사고>에 담겨있는 논지의 역설은 충격적이었다. 서구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사회는 과학적 논리성, 합리성에 바탕을 둔 사고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야생의 사고>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뜨린다. 과학적 사고, 합리적 사고와는 다른 사고 체계 즉 야생의 사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명의 관점에서 원시사회라고 일컬어지는 곳에 존재하는데, 놀랍게도 그 사고체계는 고도의 정밀성을 지니고 있다. 이 책들은 '아하! 이럴수가!'하는 탄성을 발하게 한다. 

 

세째, 이 책들은 독자를 고민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독자들이 생각하도록 만든다.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존재에 대해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소박한 행복은 이 책들과 다소 거리가 있다. 소박한 행복은 저 멀리 멀어져 간다. 하지만 거기엔 다른 즐거움이 숨어있다. 공자는 그러한 기쁨에 대해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했다. 

 

생각을 자극하고 그 지평을 넓혀주는 책을 읽고 나면, 하늘과 공간, 빛과 자연, 삶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고전 100권은 세계의 지성들과의 만남이다. 그들과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눈다는 기대감으로 올해의 목표를 설정해 본다.    

 

* 뉴욕 타임지에서 선정한 읽어보아야 할 100권

 http://blog.daum.net/ccsj77/48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으로 시작한다. 모든 존재는 영원이라는 무한한 시간속에 무한히 반복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역사는 무한의 시간속에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원자론에 의하면 존재는 입자들의 특정한 배열이며, 모든 변화는 입자들의 재배열이다. 우리의 우주에 있는 입자의 수는 10^118개로 유한하다. 그러므로 그 입자 배열의 경우의 수는 2^10^118개로 엄청나게 크지만 여전히 유한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원의 시간속에 언젠가는 동일한 배열이 다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즉 동일한 존재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리학을 배경으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과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현대 물리학에서는 다중우주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니이체의 영원 회귀 사상과 닮아있다. 니이체의 그것이 시간의 흐름속에서의 무한 반복을 논하고 있다면 다중우주는 무한 공간속에 펼쳐진 무한 반복을 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절대적인가? 어떻게 보면 논리적 결론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논리에는 그 전제가 있다. 그리고 그 전제의 옳고 그름은 그 논리 전체의 옳고 그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영원회귀나 다중우주의 논리는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원자론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즉 최소의 입자,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입자 즉 원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현대 물리학은 원자가 최소 입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원자는 양자와 전자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양자는 그 보다 작은 소립자(쿼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소립자들이 발견되었다. 더 나아가 어떤 종류의 소립자들은 순식간에 생성되었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소립자들의 구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러한 소립자들은 끈의 형태로 되어 있을 것이라는 끈이론이 있으며, 심지어는 물질이 아닌. 정보 또는 수학적 구조들이 물질의 본질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무한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한히 커지는 수는 무한대의 개념을 쉽게 연상시킨다. 또한 그와는 반대되는 무한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한히 작아지는 개념, 제논의 역설 즉 아킬레스는 결코 거북이을 따라 잡지 못한다는 것은 무한소 개념을 이용한 것이다. 일정한 거리를 반으로 나누고, 그 반을 다시 반으로 나누고, 또 나누어진 반을 다시 반으로 나누는 과정은 수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 그와 같이 물질을 쪼개고 쪼개는 과정이 어느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한소처럼 한없이 쪼갤 수 있는 것이라면, 사실 이러한 생각을 반박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즉 원자론이라는 가설이 잘못된, 오류가 있는 전제라면 그것에 근거하여 무한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것일 수 없다. 입자를 무한히 쪼갤 수 있다면, 그 배열 역시 무한할 수 밖에 없으며, 동일한 존재가 무한 반복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이론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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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지음/ 한상숙옮김/ 삼성출판사

 

도서 반납을 연체하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책을 빌릴 수가 없어, 우리 딸애가 읽는 어린이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올리버 트위스트>인데...

 

이전에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읽을 때 그의 글의 매력을 느꼈었다. 그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독자의 관심을 붙잡는 힘이 있다.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 비밀이 풀릴 것인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는 내내 나를 붙잡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젊은 여인이 한 아이를 낳고 곧 죽게 된다. 이 아이가 올리버 트위스트이다. 이 아이는 고아원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다 런던으로 도망친다. 그리고는 페긴이라는 악당과 함께 생활한다. 하지만 정직한 올리버는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한편 멍크스는 올리버를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이 와중에 올리버는 죽을 위험에도 처하게도 되지만 친절한 브라운로와 로즈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단서가 등장한다. 브라운로의 집에 걸려 있는 초상화의 여자가 너무나 올리버와 닮은 것이었다.

 

혹 브라운로와 올리버사이에는 숨겨진 뭔가가 있는걸까? 멍크스는 왜 올리버를 범죄자로 만들려고 할까? 그리고 올리버를 도와주는 브라운로와 로즈는 어떤 사람들인가? 이야기는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로 좁혀들어간다. 올리버는 누구인가? 빈민구제원에서 올리버를 낳으면서 죽어갔던 그 여인은 누구인가? 과연 올리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독자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단숨에 이 책을 읽어 나갈 것이다. 단, 마지막 부분을 미리 보는 것은 반칙!

 

찰스 디킨스는 그의 시대상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있다. 빈민층의 비참한 생활, 반면에 부유한 사람들의 유복한 생활등이 비교된다. 우리 시대는 디킨스의 시대와는 다르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 빈부의 격차는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디킨스 시대와 다름없는 상황들이 존재하며, 심지어는 그 보다 더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 존재해 왔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스러운 마음이 정화되지 않는 한 그러한 나쁜 상황은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그러한 세계가 바뀌기를 바라겠지만...

 

인류에게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일까? 그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전히 그 희망은 유효한 것이라 믿어도 될까? 나는 그러한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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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준 지음/ 살림 출판사

 

프리메이슨! 세계 정복을 꿈꾸는 무서운 비밀결사단체! 세계를 뒤흔든 여러 세기적 사건들의 숨겨진 배후, 이른바 음모론의 중심에 프리메이슨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프리메이슨의 정체는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부터 프리메이슨이 시작되었을까? 그들의 비밀의식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들을 둘러싼 음모론은 사실일까? 그들은 왜 음모론의 희생자가 되었을까?

 

프리메이슨이란 말은 중세유럽의 석공 길드인 Free Stone Mason 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거의 3000년 전 지어진 솔로몬의 성전 건축 책임자인 티레 사람 히람에까지 이른다. 그가 죽임을 당했다가 다시 살아난 전설은 프리메이슨의 통과의식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프리메이슨은 ‘서구 신비주의 전통을 바탕으로 모든 종교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종교를 추구하며, 형제애를 강조하는 정신 또는 그 모임’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그 프리메이슨의 기본정신은 약 2500년전에 피타고라스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유래하였다.  기원전 6세기 크로톤에서 정치 개혁을 단행한 피타고라스학파는 엄격히 계급을 구분하였고 회원 간의 형제애와 비밀 체험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프리메이슨의 기본 정신과 통하는 부분이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신비적 전통을 이어받은 프리메이슨은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와, 사상적으로는 이성에 근거한 합리주의와 대립하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프리메이슨은 서구 유렵 주류의 관용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그 관용이 사라질 때면 템플기사단처럼 쫓기는 사냥감이 되고 말았다.

 

낭만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프리메이슨은 기지개를 편다. 자유분방한 정신, 주관적 체험, 감정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는 프리메이슨의 신비적 전통과 닮아있다. 낭만주의의 대가인 괴테도 프리메이슨에 이끌렸다. 프랑스 대혁명의 지도자인 당통도 프리메이슨의 일원이었으며, 많은 프리메이슨이 그와 함께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대혁명은 프리메이슨의 작품이라 주장하는 음모론은 거기에서 유래한다. 

 

근대 프리메이슨은 1717년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영국을 거쳐 미국에 이르른다. 벤저민 프랭클린, 조지 와싱턴을 비롯한 많은 미국의 대통령 및 셀 수 없이 많은 유명인사들이 프리메이슨이었다. 미국은 프리메이슨이 설립한 나라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음모론은 어떻게 된 일일까?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몇몇 추문들은 좋지 못한 소문을 증폭시켜, 사악한 집단 심지어 악마숭배 집단의 이미지를 갖게 했다. 또한 현대 세계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실세들이 프리메이슨이라는 것을 근거로, 프리메이슨이 세계를 움직이는 커다란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음모론은 몇가지 단서를 기초로 구성된 상상력의 소산인 듯하다. 오늘날의 프리메이슨은 더 이상 숨겨진 조직이 아니라 공개되어 있는 조직이다. 오히려 프리메이슨은 역음모론의 희생자인지도 모른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영원한 프리메이슨
1. 프리메이슨 단의 원조, 피타고라스

2. 프리메이슨은 어떻게 중세 석공들의 조합으로부터 시작되었는가?
히람 아비프의 전설
집을 짓는 것은 우주를 건설하는 것이다
다시 히람의 전설로
템플 기사단과 프리메이슨

3. 프리메이슨의 비밀은 통과제의에 있다
고대의 통과제의
통과제의 의식의 절차, 그리고 변용된 모습들
추락의 모티브 |
시련의 모티브
부활의 모티브

4. 프리메이슨 단의 상징들
프리메이슨의 연장들
프리메이슨 의식의 의미

5. 왜 그들은 비밀 결사단체일 수밖에 없는가?

 

제2부 역사 속의 프리메이슨
1. 프리메이슨의 비밀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2. 고딕 성당과 프리메이슨

3. 낭만주의자들은 프리메이슨 단이었다

4. 역사적 격변기의 프리메이슨
프랑스대혁명을 주도한 프리메이슨
나치는 왜 프리메이슨을 탄압했는가?
유럽에 몰아친 탄압 열풍

5. 프리메이슨이 세운 나라, 미국
미국 독립과 건국, 그리고 프리메이슨
미국의 건국 정신과 프리메이슨

 

제3부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들

1.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범죄들
모차르트의 죽음
윌리엄 모건 사건
살인마 잭 사건

2. 암흑 속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프리메이슨

3. 프리메이슨, 사탄을 숭배하는 악의 무리

4. 역 음모론: 프리메이슨 단은 로마 교황청이 감추고 싶은 비밀을 보호하고 있다

 

에필로그 : 오늘날의 프리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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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lliver's Travels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한상숙 엮음/ 지경사

 

조나단 스위프트가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보다 화나게 하려고 이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 당시 유럽사회 아니 더 나아가 인간세계의 탐욕적인 면들을 풍자적으로 꾸짖고 있다. [걸리버여행기]는 <소인국 이야기> <대인국 이야기> <하늘을 나는 섬나라 이야기> <말의 나라 이야기>등 네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이야기에는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적 비판이 드러나 있다.

 

제1편 소인국 이야기

소인국 나라 '릴리퍼트'왕국은 평화로워 보였으나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아주 사소한 문제들이 그 이면에 깔려 있는데...굽이 높은 구두를 신느냐, 낮은 구도를 신느냐. 또한 달걀을 먹기 위해 껍데기를 깰 때 넓고 둥근 쪽을 깨서 먹어야 하는가 아니면 뽀족한 쪽을 깨어야 하는가 하는 아주 어이없는 문제들 때문에 혼란과 싸움 급기에는 전쟁이 야기되는 상황이 있게 된다.  

 

릴리퍼트에서는 도둑질보다 남을 속이는 것을 더 큰 범죄로 여겼다. 도둑은 조심하고 단속을 잘 하면 막을 수 있지만, 정직한 사람들은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기에 사기를 치는 사람은 언제나 사형에 처했다. 또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형벌을 가했지만,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이에게는 상을 주는 조항도 많이 있었다.

 

소인국 사람들은 남을 채용할 때 능력보다는 정직성을 먼저 보았다. 만약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 그것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하면 큰 비극을 가져 온다는 것을 알았기때문이다. 그들은 훌륭한 인품이야말로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 여겼다.

 

제2편 거인국 이야기

거인국의 왕은 유럽의 무역과 전쟁, 종교의 분열들에 대해 듣고는, 하찮은 벌레같은 사람들이 모여 살며 정치도 하고 무역도 하고 전쟁도 한다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배반한다고 조롱하며 비웃는다. 또한 영국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상원 의원에 선출되는 귀족은 진실로 훌륭한 사람들인가? 왕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은 아닌가? 하원의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월급도 없는데 그렇게 지원자가 많다는 것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큰 돈을 벌 수 있기때문이 아닌가?"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싸움이나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정치적으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키고 추방하다니, 참 더러운 역사가 아닌가!" 라고 말하며 "그대의 조국에 사는 사람들은 벌레들 중에서도 가장 나쁜 벌레들이야. 왜냐하면 그 벌레들은 생각할 줄 아는 머리를 가졌기때문이지." 라고 비판한다.

 

걸리버가 화약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제안에 거인국 왕은 "집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약을 만들어 내고는 잘난 체 하다니! 그대는 그런 약을 만들 줄 안다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야단치기도 한다. 또한 "정치를 하는 데 복잡한 기술은 필요 없다네. 수백권을 책을 읽고 백성들이 자기를 존경하게 하는 방법을 쓰는 사람보다는 곡식 한 포기, 풀 한 포기밖에 자랄 수 없는 땅에 곡식 두 포기, 풀 두 포기가 자랄 수 있게 하는 사람이 훌륭한 정치가라고 생각하네."라고 말하여, 영국이 정치한 책이 수백권이나 되는 문화 민족이며 학문이 발달된 나라라고 자랑하는 걸리버를 부끄럽게 만든다.

 

제3편 하늘을 나는 섬나라 이야기

하늘을 나는 섬은 '라퓨터'라고 불렸다. 이 나라 사람들은 늘 불안에 사로 잡혀 있었다. 대부분 천체의 움직임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 했는데, 예를 들면 언젠가는 태양이 지구를 삼켜 버릴 것이라든지, 태양이 계속해서 빛을 소모한다면 언젠가는 모든 연료를 다 써서 빛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들은 이런 여러가지 걱정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하였다.

 

라퓨타의 사람들은 수학과 음악을 제외한 다른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라퓨타의 수도인 지상의 라가도라는 도시에 내려왔을 때, 걸리버는 누더기 옷을 입은 사람들, 무너질 것같은 오두막집들, 황폐해 보이는 농지들을 보게된다. 라가도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라퓨타에서 수학에 대한 지식을 조금 배워온 이후로 그들은 농사일을 경멸하면서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수많은 연구소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연구소들에서는 황당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열사람 일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든다든지, 1주일에 새 궁전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든지. 심지어 대변을 다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드는 연구를 하기도 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한 현구소에서는 공부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가장 무식한 사람이라도 철학과 시, 정치학, 법률, 수학등에 관한 책을 쓸 수 있는 기계를 연구하고 있었다. 수많은 단어와 문법규칙을 적은 조각들을 다양한 배열로 바꾸어 가며 나타난 문장을 조사하여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이것은 엄청난 자료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의 학문과 과학 체계를 완전하게 만들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러는 동안 나라는 황폐해지고 말았다.

 

제4편 말의 나라 이야기

말의 나라는 휴이넘이라는 고상한 성품을 가진 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 나라에서는 사람과 비슷한 야후라는 동물이 있었다. 이들은 더럽고 야만적인 동물이었다. 인간 세상과 달이 휴이넘에게는 거짓말, 돈, 전쟁은 심지어 그런 단어 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휴이넘들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휴이넘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랑과 우정이었다. 그리고 절약과 근면, 건강과 청결등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휴이넘들의 생활과 생각을 알게된 후 걸리버는 그들을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휴이넘의 세계와는 다른 너무나 다른 자신의 세상, 영국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하지만 결국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 그는 한 동안 야후와 같은 모습을 한 인간들과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

 

여행후기

걸리버는 자신의 여행중에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하여 글을 쓰기로 작정한다. 그는 그가 경험한 일을 토대로 여행기를 쓰고자 결심한다. 이 여행기에 소개되는 소인국, 대인국, 하늘을 나는 섬, 말들의 나라등을 정복하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뿐더러 오히려 그들로 부터 명예와 정의, 진실과 도덕성, 충성과 순결, 우정과 사랑에 대한 정신을 배워 유럽사람들을 개화시키는 것이 더 좋은 생각일 것이라고 말한다. 

 

독후감

우리 딸 아이의 동화책을 읽었다. 우리 딸애도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고 나도 이렇게 글을 썼다. 그런데 딸애가 보는 시선과 내가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른다. 나의 딸 아이는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읽는 기쁨에 이 책을 읽었다면, 오히려 나는 좀 더 어른의 시선으로 조나단 스위프트가 본 인간세계의 모순등에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스위프트의 예술, 과학, 수학, 학문등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아마 그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학문에 대한 비판이라 받아들이고 싶다. 혹자는 철학은 흥미로우며 인간 사회를 올바로 형성해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이상학적인 철학의 세계는 비실용적인 면이 없지 않다. 라퓨타의 연구소에서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완전한 학문과 과학체계를 완성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 당시 베이컨의 귀납적 방식, 온갖 종류의 실험적 사실들의 방대한 수집은 과학을 완전하게 만들어 가는 기초가 될 것이라는 사상을 겨냥한 것일까?아니면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인 기계론적인 세계에 대해 풍자일까? 순수 이성에만 기초를 둔 철학은 때로는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순수 이성으로 세계에 대한 진리에 이를 수 있을까? 만일 진리에 이르렀더라도 그것이 진리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수많은 사상들이 등장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회귀적인 상황이 끝없이 연출되는데, 그 어느 것이 절대 진리임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 있어서 현대 물리학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의 물리학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 수학적, 철학적 논의로 점점 빠져든다. 초끈이론은 아름다운 수학이론이지만 실증을 요구하는 과학의 범주에 넣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또한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나 양자론에 기반을 둔 다중 우주, 평행우주의 개념들도 그러한다. 또한 우주의 4%만을 파악할 뿐 나머지 96%는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단지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로 부르는, 우리에게 알려지 있지 않은 미지의 것으로 가득찬 우주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고 논쟁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너무 오만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우주의 기원이나 역사, 그리고 그 구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큰 경이로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천한 지식을 근거로 독단적인 우주론을 주장하거나, 자신들의 이론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는 우주를 존재하게 한 '신은 없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수가 아닐까?

 

학문에 대한 스위프트의 비판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반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도 있다. 쓸데 없는 것 같은 연구들이 실용성을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때문이다.  20세기 초 유명한 영국의 수학자 하디는<어느 수학자의 변명>이란 책에서 자신이 연구하는 수학의 순수성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즉 비실용적인 수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데서 크나큰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수학자들 자신도 소수 연구를 비롯한 정수론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순수수학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연구들이 실용적인 기술과 접목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소수의 연구와 컴퓨터 암호화기술의 상관관계. 리만가설의 소립자세계와 연관성. 유명한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는 이를 두고 '수학의 비합리적 효용성'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본다면 적어도 수학에 대한 스위프트의 비판은 빗나간 화살인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아이들이 즐겨읽는 동화이지만 그 속에 풍자된 것은 깊이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많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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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 맨의 죽음    아서 밀러 지음 / 강유나 옮김 / 민음사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떨고 있는 비극적 상황 속의 현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배경은 미국, 대공황이 발생한 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윌리 로먼, 60세에 달한 그는 근 30년간을 한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일해 왔다. 대공황전에는 세일즈로 다소 풍족한 생활을 영위했지만, 대공황이 발생하고 그의 나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그의 일은 점점 힘들어 진다. 결국 그는 사장 하워드를 찾아가 내근을 할 수 있도록 조처해 달라고 평생 처음 부탁을 하게 되나, 매몰찬 거절과 아울러 해고 통보를 받게 되자 절망에 빠진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다. 그의 친구 찰스가 그의 회사에서 일을 하도록 제안하지만 그를 거절한다. 항상 그는 찰스에 대한 우월감을 가져왔었는데, 이제서야 그의 밑에서 일을 하다니, 그의 자존심이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그의 자동차를 몰고 과속으로 달리다 사고를 낸다. 자살!

 

그의 큰 아들 비프 로먼은 항상 아버지의 기대속에 칭찬을 받고 자라난다. 우수한 미식축구 선수로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수학과목에서 F를 받고 졸업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되면서, 그의 인생은 구겨지기 시작한다. 그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남의 지시를 들으며 일을 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은 아들 해피 로먼은 모든 관심을 형에게 빼앗겨 버리고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에서 소외된 채 성장한다. 이로 인해 그는 받지 못한 사랑을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보충하려 한다. 또한 그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경향도 지니게 된다.

 

비프는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절망에 압도되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아버지와의 대립각을 세운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는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게 된다. 참으로 비참한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그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는 그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거친 논쟁중에 '우리 집 식탁에서는 단 한마디의 진실도 없었다'고 소리친다. 아버지의 기대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그만 하라고 외친 것이다. 그리고는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쏟는다.

 

윌리는 아들의 눈물은 윌리 자신을 사랑하는 증거라 생각하고, 비프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남기기로 작정한다. 그가 죽고 나면 받게 될 보험금으로 비프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를 몰고 돌진한다. 쾅!

 

아서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 자식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부성애, 버릴 수 없는 알량한 자존심, 열등감, 경멸스러운 속물 근성... 

 

윌리는 물질주의 사회의 희생자임에 틀림없다. 그를 형성한 그리고 그의 삶을 관통하는 원리는 그 당시 팽배해 있던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이었다. 물질적인 성공만을 진정 가치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풍조는 거대한 해일과 같아서 한 평범한 소시민이 그 것에 맞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는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 피해자는 자기 자신과 그의 가족들이었다. 그 경멸스러운 풍조를 저항할 정신적 힘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잘못이었다.

 

<어느 세일즈 맨의 죽음>은 인간 존재가 얼마나 연약한 가련한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이 시대의 조류에 휘둘리는 소시민이 겪어야 할 결말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도 보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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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민음사

 

1968년 체코슬로바카아의 수도 프라하의 봄은 두브체크의 개혁정책으로 또 다른 봄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곧 뒤이은 소련의 침공은 모든 것을 무산시키고, 철저한 통제사회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유명한 외과 의사이며 바람둥이인 토마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그의 아내 테레사. 사비나는 토마스의 숨겨놓은 여자 친구? 그녀는 화가이다. 그녀는 토마스와 헤어진 후 대학 교수인 프란츠를 만난다. 테레사의 애완견 카레닌도 꽤 비중을 차지한다. 이 여러 등장 인물 사이의 사랑과 갈등이 이 소설의 뼈대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좀 당황스럽다. 이 소설의 첫부분은 니체의 무한회귀 사상과 그에 따른 존재의 무게가 가벼우니, 무거우니 하는 일견 쓸 데 없는 또 다른 한편으론 뭔가 심오한 논의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치고는 좀 생뚱맞다고 해야 할까? 이어지는 토마스와 테레사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토마스와 사비나와의 만남은 좀 소설답다. 하지만 이 소설적 진행에도 난해함이 숨어있다. 수시로 끼어드는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궁금하다. 또한 일종의 영화 기법과도 같이, 같은 상황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구성은 흥미로우면서도 어떤 의도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텐데...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의 삼각관계의 이야기는 더는 토마스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것은 테레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사비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동일한 이야기이지만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한 상황에 대한 합리적 이해는 종합적이어야 하며 단편적이어서는 안된다는 뜻일까? 또는 그 순간의 상황은 어떤 연속적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한 상황에 대한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느낌이 교차한다. 심오한, 비정상적인, 난삽한, 어지러운, 더러운, 놀라운 느낌들 그리고 가벼움과 무거움, 정조과 배신, 사랑과 정사, 영혼과 육체, 신과 똥, 존경과 경멸 등 수많은 대립적 생각의 편린이 스쳐간다. 쿤데라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여러 요소들을 대비시키면서 그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려고 내내 힘겨운 투쟁을 시도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때론 번뜩이는 섬광처럼 범인들을 놀라게 하는 경구들로 나타난다. 쿤데라의 놀라운 이성의 편린들!

 

토마스는 프라하의 봄이 짓밟히던 당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나쁘다고 인식하지 못한 채 정권의 명령을 받아 또는 자의적으로 타인을 해치는 일을 자행한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쓴다. 즉 '모르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을 벌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논하면서 오이디푸스를 언급한다. 오이디푸스는 모르고 행한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자신의 눈을 뽑아버린 신화속의 인물이다. 후에 소련 공산 당국으로 부터 그 기사를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토마스는 이를 거부하는데, 그 거부하는 이유도 모호하다. 타협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경멸적인 눈길이 무서워 그랬는지, 아니면 압박을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알량한 자존심의 발로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마음도 명분도 없었기 때문인지...아리송하다. 그의 결정은 여러 가능성 중에 선택된 하나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뭉뚱거려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어쨌건 이 거부로 인해 외과 의사로서의 그의 경력이 끝나게 된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고, 비천하게 보이는 유리창 닦는 일을 하게 된다. 그가 얻은 것은 체코의 시민들로 부터의 존경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면으로는 존경을 받을 만 할 지 모르지만 도덕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의 여전히 바람둥이 기질은 그칠 줄 모르고, 그는 도덕적으로는 경멸을 받을 만한 행동을 지지르기 때문이다. 그는 존경과 경멸이라는 양 극단이 서로 마주치는 교차점에 위치해 있는 존재이다.  

 

그는 한 기자로 부터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선언문에 서명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그 선언문으로 인해 정치범들이 석방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자는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이야기하며 그를 촉구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그래야만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그래야만 한다'는 외부의 도덕적 의무 또는 명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구속받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스탈린의 아들과 똥, 똥과 신학, 똥은 더러운 것인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인간의 똥이 더러운 것이라면 신도 이미 더러운 것이 아닐까? 만일 신이 거룩하다면 똥도 역시 더러운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논리는 한편 어이가 없으면서도 흥미롭기도 하다. 거룩함과 혐오스러운 것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려는 또 하나의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쿤데라는 때로는 신과 성서의 대척점에 서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 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펴나가기도 한다. 이것 역시 무경계 개념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리라.

 

두 극단의 마주침이 발생시키는 현기증, 신과 똥의 조화, 가벼움과 무거움의 혼란, 경계가 모호한 개념들, 무수한 개념들 사이의 혼란. 그의 주제인 가벼움과 무거움에 기본적인 혼란이 숨어 있다. 무게가 없는 추상적인 것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논한다는 자체가 모호하다. 그 뿐아니라 어떤 것이 중요성에 있어 가볍다고 해야 할 지, 어떤 것이 더 무거운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지 판단도 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이 원운동처럼 회귀성을 가지고 영원속에 무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라면 그것은 무거운 것일까? 가벼운 것일까?  그와는 다른 직선적인 역사관으로 볼 때, 그 직선적인 역사에서 단 한번 발생하는 일회성의 역사적 사건은 무거운 것일까? 가벼운 것일까? 단 일회만 발생하는 일이기때문에 그것은 소중하다는 면에 있어 무거운 것이라 할 수 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겁의 세월 속의 일점으로 그냥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라고도 생각한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무한 반복되는 사건은 존재의 확실성으로 무거운 것이겠지만, 무한 반복이 의미하는 희귀성의 부재로 본다면 가벼운 것일텐데...

 

아마 쿤데라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혼란상이 아닐까? 세계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란,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키치란 본질적으로 동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에서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사비나는 공산주의가 뒤집어 스고 있는 아름다움의 가면, 달리 말하자면 공산주의라는 키치를 혐호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도 키치는 존재한다. "키치는 백발배궁 두 방울의 감동적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첫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 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 아이를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다워지는 것은 오로지 이 두번재 눈물에 의해서이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환상이며 키치로 인해 아름다워 보일 뿐인 그런 존재?... 위선이랄까? 세계는 뒤죽 박죽이며 때로는 우리의 이해가 옳을 수도 그럴 수도 있는 그런 세계라는 것? 쿤데라는 두 극단의 마주침 속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는 가벼운 것이 좋은 것인지,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인지 판단을 내릴 입장에 있지 않다. 그가 가벼운 것을 긍정적으로 무거운 것을 부정적으로 보더라도 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벼운 것은 무한대 속의 한 점처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세상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쿤데라는 존재의 의미는 비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다. 그것을 그는 참을 수 없는게다. 이 책은 또 다시 읽고 싶은 마음 반, 몸과 정신을 황폐시키는 책마냥 그냥 버리고 싶은 마음 반.... 묘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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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환 지음/ 삼성출판사

 

이성계는 독로강 만호 박의의 반란을 진압한다. 박의의 기구한 사연은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박의는 원래 종이었지만 여진족에게 사로잡혔던 부녀자들을 구해내지만 집 주인 박좌수의 딸 현아와의 연분으로 관청에서 매질을 당한다. 다행이 그의 공이 밝혀지는 바람에 면천되고 말단 무관의 벼슬을 제수받게 된다. 현아의 도움으로 글을 깨치고 병법을 익혀 훌륭한 장수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를 질시한 사람들의 모함을 받아 반역의 죄를 뒤집어 쓰게 되고 결국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후 이성계는 변방에서 오랑캐와 왜구를 막아내며 장수로써의 경력을 쌓아 나간다. 중앙의 정계에서는 무고로 홍건적 격퇴에 공이 있는 장수들의 목이 달아나고, 요승 신돈으로 인해 정국이 어지럽지만, 이성계는 동북면 변방에서 그 풍파를 비켜나간다.

 

하지만 그에게도 위기가 닥쳐온다. 그의 사촌 이천계의 무고로 반역자로 목이 달아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최영과 경천홍의 도움으로 간신히 누명을 벗게 되지만 사랑하던 금란화는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금란화는 여진족 나하추의 여동생이었다. 이성계는 여진족의 세력을 규합하여 역적질을 도모하고 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이를 안 금란화는 이성계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떠나버렸던 것이었다.

 

바다에서 왜구가 출몰하고, 북쪽에선 오랑캐가 침범하고, 이성계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여기 저기 출정하여 적들을 물리친다. 그는 수많은 전쟁에서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서, 그리고 현실을 도외시하며 말만 앞서는 중앙 정치를 보고서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중 그는 첩 지화의 '용기는 일생에 꼭 한 번 내는 것이다'란 말을 듣고 마음에 간직한다.  

 

동북의 전장터에서 호발도와의 전투후 이성계는 또 다시 무고를 당한다. 동북에서 노략질을 하다 이성계에게 혼이 난 무리들이 임금앞에서 이성계를 모함하는 것이다. 이들의 모략에 최영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다행히 이 사건은 무마된다. 이 일을 알게 된 이성계는 자신을 해칠는 무리들에게 언젠가 복수하리라 다짐한다.

 

고려왕의 칭신과 세공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는 사사건건 고려의 굴복을 요구하며 마구 밟으려 들었다. 이에 고려는 최영의 주도로 요동정벌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성계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 생각한다. 결국 요동정벌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떠난 이성계와 조민수는 결국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을 최영을 실각시키고 권력을 잡는다. 하지만 곧 조민수는 권력에서 쫓겨나고 모든 권한은 이성계에게로 쏠린다. 최영은 이성계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난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에서 그런 것들을 돌볼 만한 여유가 없었다. 정의에 불타는 이성계였지만 권력 앞에서는 정의도 불의도 없었다. 다만 권력의 쟁취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성계의 세력은 고려의 왕들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커지게 되었다. 왕을 물러나게도 하고, 새로운 왕을 등극시키기도 하며, 고려의 왕은 이성계의 꼭두각시에 불과하였다. 결국 이성계의 줄에 서 있는 젊은 관리들은 공양왕을 밀어내고 이성계으로 추대한다. 이 때 이성계의 나이 오십팔세! 이후 새로운 나라의 길을 도모하기 위해 도읍을 개경에서 계룡산으로 옮기기로 하지만 풍수학의 대가인 하륜의 주장대로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처음으로 완성된 경복궁, 이미 이성계의 첫째부인 한씨는 죽었고, 이후 얻은 지화라는 둘째부인이 현비가 된다.

 

현비는 추운 한 겨울에 도성공사를 하는 비참하고 불쌍한 백성들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성계가 왕이 되는 과정에 수많은 무죄한 사람의 피가 뿌려진 것에 대해서도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전장을 돌아다닐 때는 불쌍한 백성들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이성계가 왕이 된 후 그러한 마음이 없어진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성계도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권력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랫사람들이 그의 권세를 믿고, 그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 어찌할 수 없다고... 이러한 고뇌로 죽을 병에 걸린 현비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현비가 죽고 이성계는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며 최영에 대한 회한에 젖는다. 아버지와 같았던 최영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을 뉘우치며 그를 복위시킨다. 최영은 무민공으로 불리게 된다.

 

태조 이성계가 늙어 병으로 위중할 때 그의 세째 아들 방원이는 이숙번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세자인 현비의 둘째 아들 방석을 지지하는 남은과 정도전등을 제거한 방원일당은 결국 현비의 자식들인 방번과 방석을 모두 죽인다. 그리고 한씨부인의 아들들인 방과, 방의, 방간, 방원등은 방과를 세자로 내세운다. 그런 다음 늙은 태조를 상왕으로 물러 앉히고 방과가 왕이 된다.

 

타의에 의하여 왕에서 물러난 태조 이성계, 한 때는 세상을 호령했던 그는 아들들의 반란에 속수무책, 형제들이 살육을 보면서 진노하지만 권력은 그의 손에서 떠나 버렸다. 스산한 개경으로 물러난 이성계는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며 이 모든 것의 업보였음을 생각한다. 지난 날의 그로 인해 빚어졌던 수많은 희생들에 뒤 늦은 후회의 감정이 밀려들지만 지나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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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의 칼날 / 찰스 길리피스 지음

 

제6장 물질의 합리화

이 장은 화학혁명으로 인도한 라부아지에 당시의 화학사이다. 라부아지에 이전의 화학은 형이상학과 전승, 혼란과 무지, 연금술등에 빠져 있어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러한 화학이 객관성을 지닌 과학으로 발전해 나가는 흥미진진한 역사를 이 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주요인물로는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 근대화학의 아버지인 라부아지에, 화학적 원자설 돌턴이 있다. 

 

화학사를 읽으면서 전에 해 보지 않은 질문들을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 있었을까? 기체가 단일 물질이 아니라 혼합물임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산소라는 단일한 기체를 분리해 내고 그 성질을 파악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그 산소가 공기의 2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산소는 원자번호 8번으로 원자량이 8 인데,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산정해 낼 수 있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화학결합은 입자들의 결합이라는 모형에 익숙해 있다. 이러한 모형들은 누가 어떻게 제안했던 것일까?

 

학교에서는 과학적 사실의 원리나 과학적 발견등이 밝혀진 과정등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결과만을 과학적 진리로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과학적 사고는 위대한 발견으로 인도한 창의적 사고나 지성의 흐름등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우리는 일종의 세뇌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객관성의 칼날 제 6장은 바로 과학적 사고를 일깨워주는 지성들의 생각, 그리고 흥미진진한 실험등을 보여준다. 난 화학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객관성의 칼날의 이 화학사에는 진정 묘미를 느낀다.  

 

화학혁명은 라부아지에로 부터 시작하여 돌턴에 의해 완성된다. 물론 이 화학혁명은 라부아지에 혼자의 공은 아닐 것이다. 라부아지에에게 영향을 주거나 도움이 되었던 많은 화학자들과 실험들이 있다. 특히 조셉 블랙의 정량화학은 라부아지에의 화학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프리스틀리의 산소의 발견과 같은 실험들은 라부아지에의 이론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라부아지에의 연구는 뒤이은 돌턴의 화학원자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근대화학사에서 라부아지에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새로운 화학의 방향을 정립한 라부아지에

라부아지에(1743~1794)는 화학의 새방향을 정립하였다. 운동론의 갈릴레오, 물리학의 뉴턴, 생물학의 다윈등과 같은 사람들은 과학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 사람들이었다. 라부아지에는 화학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플로지스톤 이론을 몰아내었다. 연소라는 것이 플로지스톤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산소와의 화합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수학적 표현양식을 사요하여 오늘날의 화학 방정식과 유사한 독특한 결합양식과 그에 근거한 명명법을 도입했다.

 

라부아지에의 주요 저서 <화학원론>

라부아지에 이전의 화학은 용어만 무질서하게 모여 있는 과학이었다. 수학이나 역학은 공리와 정의로부터 결과가 명확하게 도출되는 학문이었다. 라부아지에는 화학을 그러한 명확한 학문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한 해에 <화학원론>을 출판하였다. 이 책의 목적은 화학을 올바른 방법의 기초위에서 출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화학을 새롭게 정리하는 일에 착수하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화확원론>은 단순한 방법론만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위대한 실험상의 발견들에 대한 설명들이 들어 있다. 18세기 초의 화학은 정량적인 특성을 갖지 못했다. 즉 화학실험실에서 무게 측정 광경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라부아지에의 실험은 달랐다. 그의 실험실에서는 과정이 중요시 되었다. 특히 신중하게 실험 전후의 중량을 측정하는 정량적 특성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그의 화학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플로지스톤 이론

기체의 존재 여부를 확실히 알지 못했던 18세기 화학은 플로지스톤이라는 것을 상정함으로 화학반응등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이 플로지스톤은 슈탈(1660~1734)의 생기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석탄, 황, 인등이 불에 타서 형태없는 잿더미로 되는 현상은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감으로 생기는 현상으로 생각하였다. 슈탈은 산소의 취득이 있는 곳에서 플로지스톤의 손실을, 산소의 손실이 있는 곳에서 플로지스톤의 취득을 보았던 것이었다. 이것은 거울에 비친 화학, 거꾸로 된 이론이었다. 플로지스톤은 올바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일종의 화학의 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화학은 연금술의 신비적인 숲을 탈출할 수 있었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화학적 현상에 대한 합리적 접근 방법이었지만, 정량적인 특성을 갖추지 못했으며, 1765년 이후  기체화학에서의 연이은 발견들과 조화되지 못하여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기체의 발견

영국 국교회 목사 스티븐 헤일즈(1671~1761)은 어떤 "공기"가 많은 유기 물질과 특정한 알칼리 토류에 "고정"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즉 공기가 그러한 물질과 결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공기는 지금의 이산화탄소였다. 이후 조셉 블랙(1728~1799)은 탄산마그네슘의 산화물을 얻기 위해 가열하면 언제나 일정량의 무게가 감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블랙은 불은 알카리 토류에서 공기 자체와 같은 무언가 탄성적인 기체 성분을 몰아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처음으로 발견된 이 기체를 "고정 공기"라고 불렀다.

 

블랙의 화학

화학자의 기술의 상징이 증류기와 레토르트로 부터 천칭으로 대체된 때는 블랙부터였다. 블랙의 독자성은 그의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량 분석 방법의 엄격성, 시약의 순도에 대한 주의, 어떤 연구에나 수반되는 끈기있는 추론, 실험 전술에 관한 철저한 작전 등에 있었다. 그는 정량 화학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고정 공기"를 발생시키기 위해 백악을 염산에 녹이면 그 무게의 40%정도가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소실되는 "고정공기"가 40%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악을 태워서 생석회를 만들때도 무게가 43% 감소한다는 것을 알아냈었다. 그 결과로 백악의 40%정도가 "고정공기"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중량 분석의 방법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고정공기를 모아 그것의 성질이 어떠한지를 탐구하지 않아 더 이상의 발전을 보지 못하였다. 

 

헨리 캐븐디시(1731~1810)

1765년 캐븐디시에 의해 기체에 대한 직접적, 정량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는 스티븐 헤일즈의 기체 수조에 들어있는 물을 수은으로 대치함으로 용해에 의한 손실 없이 이산화탄소를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가벼운 "가연성 공기"(수소)도 모았다.

 

프리스틀리(1733~1804)

1772년 프리스틀리는 "초석공기(일산화탄소)"와 "염산공기"(염화수소)의 발견을 보고했다. 또한 보통 공기의 성질을 시험하는 데 쓸 수 있는 다른 "초석공기"(아산화질소)도 발견했다. 그는 산화제2수은을 가열하여 어떤 "공기"를 얻었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그 속에 양초를 넣어 보았더니 그것은 횃불처럼 빛났다. 그것이 산소였던 것이다. 그는 실험에 있어 관례에 구애되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자기에게 화학 지식이 있었다면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으리라고 말했다. 산소의 발견도 아주 즉흥적인 행동으로 인한 것이었다.

 

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의 성격비교

프리스틀리는 독창적이고 열광적이며 소박하고 산문적이었다. 그는 관대하고 경솔한 면도 있었다. 그의 스타일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판단력과 품위의 부족을 드러내었다. 반면에 라부아지에는 숙련되고 과묵하며, 노련하고 비판적이었다. 그는 프랑스 전문 지식의 관료적 전통 속에서 자신과 국가에 봉사하는 데 야심적이며, 일련의 실험처럼 신중하게 어떤 정해진 틀 속에서 그의 생애를 계획했다.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수학 부문의 인물들, 라플라스, 라그랑주, 몽쥬 등과 교제했다. 그들은 개념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사람들이었다. 라부아지에가 당시 화학의 전반적인 불만족스런 이론 상태에 흥미를 느끼며. 플로지스톤이론이 가지고 있던 모순, 딜레마등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그들의 영향때문이었을 것이다.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처럼 새로운 기체의 발견등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더 큰 틀, 원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부아지에의 연구

플로지스톤 이론에 의하면 황이나 인을 태우면 플로지스톤이 빠져 나가기때문에 무게가 즐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그러한 경우 오히려 무게가 늘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실험 결과를 통해 연소중에 플로지스톤과 같은 것이 방출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다량의 공기가 흡수된다는 추론을 세웠다. 또한 그는 황과 인만이 아니라 연소와 하소로 무게가 증가하는 모든 물질의 경우로 이 추론을 확장했다. 그리고 실험들은 그의 추론을 확인해 주었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틀린 것이었다.   

 

라부아지에의 연구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연구와 실험의 방향은 결정되었다. 즉 그는 "발효나 증류 또는 모든 종류의 화학변화에 의하여 방출되는 기체에 관하여 그리고 아주 많은 물질의 연소를 통하여 흡수되는 기체에 관하여 계획하고 있는 일련의 긴 실험이 시작"한다고 기술하였다. 그는 이러한 실험등을 통해 연소의 원리, 산의 생성 원리등을 그의 주요 목표로 삼고 연구를 해 나갔다.

 

라부아지에가 직면한 난점

그는 연소와 호흡은 공기중의 그 무언가와 결합하는 것임을 확신했다. 바로 그 무언가는 산소였다. 그 당시이 언어로 말하자면 '고정공기'란 산소였던 것이다. 그런데 스티븐 헤일즈에 의해 확인된 "고정공기"(이산화탄소)는 예상과는 정반대의 성질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공기는 호흡과 연소의 재료가 아니라 그것들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었으며, 보통 공기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즉 "고정공기"의 정체에 대한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체가 발생한 모든 실험을 되풀이하여 그 기체의 생성 경로를 파악하려고 했다. 아마 라부아지에는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반응과 산소를 필요로 하는 반응을 구별하고자 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가 해야 했던 일은 연소, 녹이 스는 것, 호흡의 화학적 유사성을 밝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대기가 산소를 포함하는 혼합물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라부아지에의 한계

갈릴레오, 데카르트, 케플러, 뉴턴, 다윈등은 위대한 발견을 위한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발견을 위한 정열이 없었다. 그의 정신의 명석함은 오히려 상상력, 소박한 호기심, 예기치 못한 사물의 본성에 대한 공감등을 배제한 것일까? 그의 실험적 방법의 완전성 자체가 오히려 한계로 작용하였다. 예를 들어 연소중에 인은 방출될까, 화합할까? 무게를 달아보라. 그러면 천칭이 해답을 말해 줄 것이다. 증가한 무게는 대기로 부터 온 것일까, 아닐까? 측정해 보라. 그러면 감소된 부피가 해답을 말해 줄 것이다. 이처럼 모든 실험은 극히 적절한 물음에 대하여 그렇다 또는 아니다 하고 답할 수 있도록 유례없이 세련되게 계획되었다. 여기에 결함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 발견된 것의 논리였다. 여기에는 새로운 발견이나 미지의 것에 대한 모험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의 시너지효과

화학은 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의 묘한 공존 관계에서 이득을 얻었다. 프리스틀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데 뛰어났다. 하지만 그는 이론적 경향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프리스틀리는 그가 발견한 것을 이해 못했다. 라부아지에의 명석함은 발견의 수단으로써는 소용이 없었다. 그는 새로운 발견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 발견된 현상이나 사실들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새로운 발견들을 이해했던 것이다. 프리스틀리는 발견을 하고, 라부아지에는 그 원리를 파악하였던 것이다

 

산소의 발견

수은 산화물의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수은을 적당히 가열하면 수은은 붉은 산화물을 된다. 더 세게 가열하면 다시 수은이 된다. (2Hg + O2 -> 2HgO, 2HgO -> 2Hg + O2)  처음 가열과정에서 수은은 산소와 결합하고(연소), 두번째 가열에 의해 산소가 방출된다(환원). 대부분의 물질은 환원시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하지만 수은산화물만은 그와는 달라, 환원시 이산화탄소 대신 산소를 방출한다. 이런 것을 몰랐던 까닭에 1774년 2월 바이엔은 산화제2수은을 하소시킨 후 발생한 이 기체(산소)를 고정공기(이산화탄소)라고 보고했다. 잘못된 결론이었다.  칼 빌헬름 셀레(1742~1786)도 그 이전부터 산소 실험을 했으며, 산화제2수은과 산화은으로 부터 산소를 얻었다. 그는 이것을 "불의 공기"라고 불렀다.

 

1774년 8월 프리스틀리는 처음으로 산소를 분리해 내서 이 기체가 물에 녹지 않고 연소를 돕는 성질이 있다고 하여 이산화탄소와 구별했다. 그러나 그는 이 기체를 그가 잘 알고 있던 소기라고 잘못 생각하고 말았다. 1775년 3월에 그는 이 기체의 성질을 확인했으며,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의 완전한 조성도 이해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는 닥치는 대로 시험해보고 나서 이 새로운 기체가 연소와 호흡을 도우며, 소기(아산화질소)와 반응하여 부피가 줄어든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는 그 혼합물에 초석 공기(일산화질소)를 가했더니 놀랍게도 그것은 또다시 원래 양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신선한 시료(산소)를 가지고 소기에 대하여 시험해 본 결과 그는 그것이 보통공기의 4배나 5배의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은 보통 공기가 단순한 물질이 아니며, 그 부피의 20퍼센트는 "순수한" 공기(산소)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프리스틀리는 이 순수한 공기를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라고 불렀다. 프리스틀리는 산소라는 새로운 기체를 발견하고서도 프로지스톤 이론의 울타리안에 갇혀서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라부아지에는 산화제2수은 실험을 프리스틀리보다 빨리 이해했다. 그는 1774, 1775년 그 실험을 되풀이 하였다. 그는 수은산화물을 하소시켜 순 수은으로 환원시켰다. 처음의 수은산화물과 환원된 수은사이에는 54그레인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하소에 의해 발생한 기체의 부피는 78세제곱인치였다. 그러므로 78세제곱인치의 공기의 무게가 54그레인이라는 것, 그리고 1세제곱인치은 3분의 2그레인(54/78)에 조금 못 미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보통 공기의 무게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이로부터 그는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그는 이 기체가 이산화탄소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을 보통 공기라고 생각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것은 "보통 공기일 뿐 아니라 호흡이나 연소에 더 적합하며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공기보다도 순수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라부아지에는 <질산중의 기체의 존재 및 그 산을 분해하고 재합성하는 방법에 대한 보고>(1776)에서 모든 산에 공기가 들어있으며, 각각의 산에 특유한 성분에 의하여 각기 다른 산이 생성된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공기뿐만 아니라 공기의 가장 순수한 부분"이 모든 산에 들어 있으며, 그것이 "산성을 구성한다"라고 명기했다.  <쿤켈의 인의 연소에 대한 보고>(1777)등의 논문을 통해  "순수 공기"가 산의 원리라고 한 분석 방법을 인산과 황산으로 넓혔다. 그러나 그 요점은 그의 실험을 대기를 대상으로 하여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대기는 약 4분의 1의 플로지스톤 없는 호흡에 아주 적절한 공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머지 4분의 3은 유독한 공기, 미지의 성질을 가진 기체로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778년 <산에 관한 일반적 고찰>을 통해 "이제부터는 나는 화합상태, 즉 고정상태에 있는 플로지스톤 없는 공기, 즉 호흡에 아주 적절한 기체를 산을 생성하는 원리(acidifying principle)라고 부르겠다.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 더 좋다면 산을 생성하는 원리(oxygenic principle)이란 이름을 붙이겠다"... 그는 순수한 공기 즉 호흡에 아주 적절한 공기가 산을 구성하는 원소라는 가설을 힘차게 밀고 나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라부아지에는 아직 원소로서의 산소라는 생각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물의 합성

연소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라부아지에는 수소의 연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수소가 연소하면 무엇이 생길까? 처음에는 수소의 연소후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기때문에 가연성 물질의 소실은 연소의 결합설보다 연소의 방사설이 더 유용한 것처럼 보였다. 1781년 프리스틀리는 가연성공기와 보통의 공기를 전기불꽃에 의하여 폭발시켜 생성물의 무게를 측정하려 했지만, 생성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용기 내부가 축축해졌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1783년 캐븐디시가 이 실험들을 되풀이 했는데, 이 반응이 내부의 공기의 부피를 5분의 1정도 감소시킨다는 것을 알아 차렸지만 실험의 규모가 작았기때문에 생성된 이슬을 모두 모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이슬에 흥미를 느껴 확대된 규모의 실험을 통해 이 수분이 순수한 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영국의 제임스 와트, 그리고 프랑스의 가스파르 몽쥬도 똑 같은 발견을 독립적으로 거의 동시에 하였다. 캐븐디시는 물을 합성해 내었지만 그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반하여 라부아지에는 일견 극히 단순한 물질이고 고전적으로도 가장 직관적으로 파악되고 있던 원소인 물이, 라부아지에식 명명법을 예상하여 말하면, "물을 만드는 기체(hydrogenerative gas)"의 산화물이라는 것을 즉시 이해했다. 그는 50파인트의 가연성 공기와 25파인트의 산소를 연소시켜 660그레인의 물을 얻었다. 이 실험은 연소를 산소가 화합하는 화학반응으로 이해하는 개념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는 플로지스톤을 추방하는 싸움에서 결정적인 것이었다. 이처럼 산소의 결합적 역할을 중심으로 하는 화학의 합리화는 플로지스톤화학을 정면에서 공격하여 궤멸시켰다. 화학혁명은 라부아지에의 연소개념을 모든 화학 반응으로 확장한 것이었다. 그 화학의 연구 대상은 물질의 성질이 아니라 물질의 명확한 화합과 분리가 되었다. 이제부터 화학자는 양을 측정하게 되었다. 화학에 있어서 객관성의 기초는 어느 학문보다도 깊이 양적 관념에 자리 잡고 있기때문이다.

 

라부아지에의 질량보존의 법칙

과학자들은 라부아지에가 질량 보존의 법칙을 정식화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라부아지에 과학의 전제 조건이었지, 그의 과학이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과 인공의 어느 작업에서나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는다는 것, 실험 전후에는 등량의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공리로서 설정해야 한다" <화학원론>

 

라부아지에의 명명법

<화학의 명명법을 개혁하고 완성할 필요에 관한 논문>(1772) "화학의 연구와 교육에 도입되어야 할 중요한 방법은 그 명명법의 개혁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잘 만들어진 언어, 관념들의 변천 속에서 자연의 질서를 포착해낸 언어는 반드시 교수법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교육적이며 동시에 방법론적인 목적에 따라 라부아지에는 연구를 엄추고 동료들과 함께 화학 언어학을 도입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산화탄소, 염화나트륨등과 같은 명칭은 그의 화학언어학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라부아지에와 그의 동료들은  <화학명명법>을 논문집 형태로 1787년 출판했다.

 

라부아지에의 칼로릭설

그것은 뉴턴의 에테르처럼 이론의 구조속으로 구성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임의로 들어간다. 기체는 서로 반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쉽게 확산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열을 가하면 부피가 늘어난다. 즉 열은 반인력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체의 상태를 반인력으로서의 열의 삼투'라고 논한다면, 그 매질인 칼로릭은 반에테르였다. 열은 기체를 서로 반발하게 만드는 반인력의 성질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열을 전달하는 매질을 칼로릭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라부아지에도 뉴턴과 똑같은 이유에서 하나의 매질을 도입했던 것이다. 즉 능동적인 이론의 구성 요소로서가 아니라, 그의 이론을 쉽게 이해시키기 이한 목적으로 도입한 것이었다.

 

라부아지에와 공동으로 열을 연구한 라플라스는 열에 대해 라부아지에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라부아지에는 열의 칼로릭론자였고, 천체역학에서 뉴턴을 완성한 라플라스는 운동으로서의 열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는 열의 칼로릭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열의 본성에 관한 물리학자의 견해는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 전체에 삼투하는 유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물체의 온도와 열용량에 따라 각기 다른 정도로 물체를 투과한다. 그것은 물체와 결합할 수도 있는데, 이때는 온도계에 영향을 주기를 그치거나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자유롭게 흐르기를 그친다. 그것이 자유열을 형성할 때만 유리상태인데, 이 상태가 물체에서 열을 평형에 달하게 한다."는 것의 그의 칼로릭론이었다.

 

물질에 관한 과학은 어느 것이나 두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입자의 구성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에서의 현상의 전파이다. 라부아지에가 칼로릭을 도입한 것은 후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열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연속적인 매질이다. 후에 칼로릭은 에너지 역학으로 계승되며 사라져서 열역학이라는 비가역적인 대하 한가운데로 퍼지고, 그의 상응하는 에테르는 힘의 장과 동일시 되어 상대성 이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라부아지에 화학의 수학화의 실패

그는 금속 용액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일종의 공식을 만들었다. 이것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면 최초의 화학방정식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공식은 화학을 수학화하려는 라부아지에의 참신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라부아지에는 그를 지배하고 있던 과학철학의 결점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 과학철학이란, 뉴턴 물리학의 방법과 사물의 형상과 종을 분류하는 베이컨적 박물학의 논리가 섞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학철학에서 박물학의 논리는 이론물리학자의 추상과 수학화라는 정밀한 방법보다 우선하는 것이었다. 그의 <화학명명법>에는 이러한 화학 분류의 박물학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산에 관한 마지막 논문에서 화학의 수학화를 꾀했다. 그의 방정식은 오늘날의 화학방정식과 유사하지만 그의 방정식의 계수는 시약의 무게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라부아지에는 원자를 믿고 있었다. 그 원자의 개념을 사용하여 계수를 나타냈다면 오늘날 사용하는 화학식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을터인데, 그는 그의 화학과 원자를 결합시키려하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화학은 프랑스의 라부아지에를 떠나 영국의 보일에게로 이동하게 되었다.

 

화학적 원자론의 확립

고대의 형이상학적인 원자론을 과학이론으로 승격시킨 것은 화학이었다.

 

베르톨레(1748~1822)은 화학 반응 속도와 진행 정도는 화학적 성질의 함수가 아니라 시약의 양과 농도의 함수라는 것을 밝혔다. 프루스트(1754~1826)은 혼합과 화합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구별했다. 그리고 화학의 발견으로서가 아니라 화학의 공리로서 현재 배수비례의 법칙으로 알려진 원리를 정했다. 이러한 발견등은 양적 화학의 개념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화학반응을 원자론적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의 실마리가 되었다.

 

존 돌턴(1766~1844)은 화학결합은 원자대 원자의 결합이라고 하는 가설을 내세웠다. 그의 과학스타일은 모형으로 사고하는 도식적 취향을 갖고 있었다. 화학적 원자론의 성공은 때에 따라서는 참신한 모형에 의한 사색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의 좋은 예가 된다. 그는 용해도 문제를 깊이 연구하는 가운데 기체 원자의 상대적 중량을 측정하기 위해 화학적 화합 당량으로 나아갔다. 돌턴은 "최대 단순성의 원리"와 함께 원자 가설을 화학에 도입했다. 이 가설에 의하면 두 원소가 결합하여 단 하나의 화합물을 만들 때는 AB라는 이원자 화합물이 된다. 몇 개의 화합물이 된다면, 이원자 화합물 다음에는 삼원자화학물을 만든다. 그는 상대적 중량을 도입하였다. 그래서 수소의 중량을 1로 하면 산소는 5.66, 질소는 4, 물은 6.66이라는 것이 돌턴이 얻은 결과였다. 이 결과는 개선되어 산소는 8이 되었다.

 

그는  이러한 더 나아가 결합을 하는 원자의 수에 대해 생각했다. 이리하여 서로 결합하는 모든 화학 원소의 수 및 무게를 결정하기 위한 일련의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다. <화학 철학의 새 체계>에서 돌턴은 입자의 크기라는 답할 수 없는 문제를 제쳐놓고 중량과 수에 주의를 집중한다. "단순 물질 및 복합 물질의 궁극 입자의 상대적 중량, 복합 입자를 구성하는 기본적 입자의 수, 이러한 것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 유용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목적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돌턴은 화학 혁명을 완성했다.

 

"최대단순성의 원리"는 오류이다. 돌턴에게 물은  HO였고 산소의 원자량은 8이었다. 그의 중량 측정은 대부분 부정확했다. 그러나 사실에서는 자주 틀렸지만 원리에 있어서 그는 옳았다. 과학의 진보에 있어서 화학이 중요한 위치로 이동한 것은 돌턴 부터였다. 돌턴은 라부아지에가 극복했던 모든 난문제, 즉 연소와 반응의 이론, 정량기술, 용어의 합리화등을 모두 이것들에 수반되는 화학 지식과 함께 당연한 것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돌턴은 그것들에다 17세기의 입자 철학을 읽고 얻은 옛 지혜를 그대로 적용했다. 

 

돌턴은 그의 원자론을 이렇게 말한다. "어떤 철학자들은 모든 물질이란 아무리 다른 것일지라도 같은 것이며, 그것들의 외양이 심하게 다른 것은 그것들에 전해지는 어떤 힘 및 결합이나 배열의 다양성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것이 그(뉴턴)의 생각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나의 생각도 그렇지 않다. 나는 서로 변형되는 일이 절대 있을 수 없는 기본적 입자라고 불리울만한 것이 상당수 존재하리라고 생각한다."

 

돌턴이 화학의 수학화에 기여한 것은 바로 그의 원자론이다. 화학의 수학화를 위해서는 유동체을 다루는 화학보다는 셀 수 있는 입자를 다루는 화학이 더 낫기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화학은 객관성을 지닌 과학으로 발전해 나간다.  

객관성의 칼날 /찰스 길리피스 지음

 

제5장 과학과 계몽사조

18세기 계몽사조는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두 갈래가 있다. 뉴턴의 사상이 이 계몽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합리주의는 뉴턴의 과학적 원리를 수용하여 그 철학적 원리로 삼았다. 그와 같은 사상가들은 볼테르, 로크, 콩디약, 콩도르세등이 있다. 반면에 낭만주의는 뉴턴 과학의 객관성의 결과로 나타난 몰인간성에 대한 반동의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낭만주의 사상가들은 루소와 괴테, 디드로가 있다.  

 

뉴턴을 계승한 합리적 계몽사조

계몽사조는 16~18세기에 유럽 전역에 일어난 사상으로 교회의 권위에 바탕을 둔 구시대의 정신적 권위와 사상적 특권, 제도에 반대하여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를 제창하고, 이성의 계몽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진보와 개선을 꾀하려한 혁신적 사상이다. 그 특징은 합리적, 인간적, 계몽적이라 할 것이다.

 

계몽된 인간들은 인간 세계에서 뉴턴의 조화와 질서의 세계와는 현격한 대조를 이루는 투쟁과 무질서, 미신등을 직시하게 된다. 이에 그들은 구시대의 질서를 버리고, 다른 시대를 만들어 갈 규범을 확립하고자 했다. 인간 세상의 질서의 원리를 발견해 내고 인간 본성의 법칙을 알아내어, 그것에 따르도록 촉구함으로 계몽된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계몽사조의 과학 이데올로기는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등이 지니고 있던 합리성이라는 특징을 공통분모로 한다. 베이컨의 분류에 기초한 박물학, 데카르트의 이성에 근거한 형이상학, 뉴턴의 원자론적이며 대수학적인 물리학등이 계몽사조 과학의 근간이 된다. 합리적 전통은 경험주의와 협력하고 인간을 자연에 맞추려는 과학 전통을 발전시킨다.

 

뉴턴에 반발한 낭만적 계몽사조 

과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가치의 영역에서 과학은 완전한 무능력이다. 앙리 푸앵카레는 <윤리와 과학>에서 '과학적 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도덕한 과학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계몽사조는 과학의 업적을 수용하기는 하지만 도덕과 교훈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 불만을 느낀다. 그들은 그 이상을 과학에 요구한다.   

 

뉴턴의 과학은 객관적이다. 그것은 진술적이이다. 규범의 의미 즉 "그래야 한다"라는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뉴턴 과학에는 인간이 설 자리가 없다. 인간성 회복을 부르짖는 낭만파 전통은 풍부한 의미와 목적을 지닌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들은 기계론적 자연으로부터 유기체적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리고 자연을 인간에 적합하게 하려는 과학을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에서 생물학이 발생하게 된다. 낭만주의자들은 뉴턴 과학의 객관성에 맞서는 과학의 주관성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계몽사조의 합리주의적 사상가들에 미친 뉴턴의 영향

볼테르

볼테르는 해방자로서의 뉴턴을 신봉했다. 뉴턴의 과학은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의 독단론을 깨부수었다. 볼테르에게 있어서 자연의 객관화는 자연 상실의 비극이 아니라 사상의 해방을 의미했다. 그의 좌우명 "사실로 하여금 승리하도록 하라"는 그가 형이상학으로부터의 해방을 간절히 원했음을 잘 드러낸다.

 

로크

로크의 <인간 오성론(1690)>에서는 인간성의 연구에 뉴턴식 과학이 접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볼테르는 로크에 대해 "여기 마침내 겸허하게 혼에 대하여 기술한 현자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로크의 인간본성에 대한 연구는 "기술" 즉 객관적인 진술적 성격을 갖는다. 이 진술적 성격은 뉴턴과학의 객관성과 맞닿아 있다. 그와는 다른 규범적 성격의 법칙이나 원리는 물리과학과는 다른 사회과학의 특징이다.   

 

그는 물리학적인 논의와 추론 규칙으로 그의 사상을 펼쳐나간다. 로크는 "이 논문의 목적은...지식을 탐구하고, 어떻게 정신이 그 지식에 도달하는 지를 물을 뿐, 사물의 원인이나 생성 방식에 대해 묻는 것은 아니다...단지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의 다양한 양, 형, 수, 구조, 운동을 발견할 뿐이다."라고 말함으로 그의 연구 대상은 본성이 아니라 그것의 작용에 관한 지식임을 밝힌다. 이는 뉴턴의 중력의 법칙이 중력의 본성이나 그 원인을 밝히는 데 있지 않고 그 작용에 대해 진술한 것이라는 점과 평행을 이룬다.  

 

로크의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는 물리학을 모법으로 삼고 있다. 그는 정신을 설명하기 위해 뉴턴적 물질관을 기초로 삼는다. 즉 뉴턴의 원자론을 그의 연구에 적용시킨다. 그의 원자론적 정신에 대한 논의는 다음과 같다. 정신에는 기본적인 관념들이 있는데 이는 원자들 처럼 미립자적인 관념들을 형성한다. 이러한 원자적인 관념들이 입자처럼 서로 반발하거나 결합하여 새로운 관념을 형성한다. 이 관념의 연합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응하는 '지성의 운동론'에서의 법칙이다.

 

콩디약

콩디약은 '과학은 곧 언어'라는 명제 아래 대단히 독자적인 언어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언어를 경험에서 유래한 기호의 인습화로 보았다. 그리고 언어는 정신의 가장 고상하고 복잡한 작용의 표현임과 동시에 그 원인으로 파악한 것이었다. "추론의 기술은 언어를 잘 배열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그의 말에 드러나듯이, 그는 학문을 개조하는 길은 언어의 개혁에 있다고 믿었다.

 

뉴턴 법칙이 수학적이었던 것처럼, 콩디약은 대수학을 그의 언어 이론의 모범으로 삼았다. 대수학과 언어는 기호라는 공통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조직적인 명명법을 고안하여 사물과 관념, 자연과 기억을 명확시 결합시키고자 했다. 그렇게 함으로 언어를 대수학의 기호처럼 과학을 위한 정확한 도구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러한 콩디약의 이론은 분류학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칼 폰 린네(1707~1778)의 식물학 체계는 명확한 명명법을 그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는 꽃의 형태를 사용하여 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명명하였다. 그의 이러한 방법은 동물학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콩도르세(1743~1794)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의 역사적 전망에 대한 개관>에서는 언어는 인간을 미개상태에서 공동체로 발전시켰으며, 경험의 공유가 인간 사회를 진보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무지, 미신, 광신등에 의해 무지에 빠진 인민들은 권력자들에게 의존적이 되었었다. 모든 역사는 이 무지의 극복의 역사이다. "정치와 윤리의 모든 오류에는 철학적 오류에 근거해 있고, 더 나아가서 이것들은 과학적 오류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종교 체계와 초자연적인 방종는 모두 자연 법칙에 대한 무지에 근거해 있다고 말한다.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그러한 오류를 시정할 수 있다면 이것은 무지를 극복할 수 있으며, 이 무지의 극복으로 인간의 완성 가능성에 다가갈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놀랍게도 과학은 산업혁명을 일으킨 복잡한 기술 혁신과 거의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18세기에 이론 과학이 산업에 제공한 것은 과학적 방법이었다. 뉴턴의 과학적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뉴턴은 모든 측정가능한 요소들을 분석하고 분해한 후, 이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였다. 디드로(1751~1772)의 평생의 업적인 <백과전서>의 기술에 이와 같은 방법론이 적용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과학-기술-직종에 대한 분석 사전>인데, 이 책은 그 자체가 산업의 박물학이라 할 만 하였다. 이 책에서는 산업의 여러 요소들을 분해하고 다시 재조립하며 그에 대한 정확한 명명법을 적용하는 등의 과학적 방법론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계몽사조의 낭만주의와 뉴턴 과학의 대립

낭만주의는 뉴턴의 과학에 대해 반대선상에 놓여있다. 낭만주의 정조가 계몽사조의 한 갈래임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낭만주의의 기본 정신 즉 인간성의 회복을 생각해 볼 때 뉴턴 철학에 대한 반발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괴테는 낭만주의 최대의 정신이라 불린다. 그는 문학적 지성을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과학에 대한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학 저술에서 그는 뉴턴주의에 대해 전면적이며 체계적인 반발을 보여주었다. 그 외에 루소, 그리고 디드로등이 뉴턴의 수학적인 물리학이 보여주는 인간소외의 정신, 몰인간적인 자연관에 대한 심한 혐오를 느끼며 뉴턴과는 다른 자연상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러한 낭만주의의 과학 정서는 주관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그것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과학의 주류로 자리잡지 못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었다.

 

루소

루소는 자신의 논문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도덕을 부패시켰는가, 향상시켰는가?"에서 과학은 인간성과 도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뉴턴적인 과학이 인간성의 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가슴에 불타는 낭만주의적 정신은 인간을 소외한 객관성을 지닌 과학이나, 또는 그러한 정신, 그러한 과학자나 지성인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디드로

디드로의 <백과전서>는 뉴턴의 과학적 방법의 틀로 저술되었지만 그 안에는 낭만주의적 정조를 담겨 있었다. 즉 그 컨텐츠만큼은 낭만주의적이었다. 또한 <숙명론자 자크>에서 디드로는 "물리적 세계와 도덕적 세계의 구별이 ...무의미한" 그런 자연철학을 제시한다. 디드로 과학의 대상은 자연에서 생겨나는 덕이며, 질서의 원천은 전우주적인 인격이었다. 그것은 스토아 학파적인 것이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자연으로부터 행위의 법칙을 찾아내며, 우주와 인격체간의 교감과 조화를 중요시하였다. 뉴턴의 물리학의 객관성과는 다른 주관적으로의 회귀의 모습이 디드로의 자연 과학 철학에 나타났다.  

 

데카르트는 자연을 알기 위해 자기 자신을 연구하였다. 하지만 디드로는 자기 자신 즉 인간을 알기 위해 자연을 연구하였다. 그에게 있어 과학의 무기는 수학적 추상이 아니라 도덕적 통찰이었다.   

 

브넬

브넬은 <백과전서>의 화학항목을 저술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 당시 시작된 화학은 디드로의 자연관을 닮은 스토아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자연과 교감을 중요시하는 공감적인 화학이었다. 그러한 화학은 뉴턴적 물리학에 의해 속성이 박탈된 물체에 그 속성을 회복시켜주려 했다. 화학자들은 화합과 분리등의 여러 현상들에서 "자연의 생명"을 감지하려 하였다. 생명이 배제된 뉴턴적 자연의 빈곤을 다시금 충만케 하기 위해서 말이다. 

 

괴테

괴테는 분석, 분해, 분류등의 원자론적 방식에 본능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결합, 동화, 조화였다. 그에게 있어 린네의 식물학은 형태에 따른 몰인간적인 분류의 원리일 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사상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바취라는 박물학자의 체계를 좋아했는데 바취의 방법은 존재의 연쇄 속의 진보에 대응하는 형상에 따라 식물을 배열하는 것이었다. 

 

괴테가 뉴턴의 <광학>에 반대하는 색체이론을 주장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뉴턴의 빛의 분석은 원자론적인 것이었다. 즉 단일한 것으로 여겨지던 빛을 다양한 광선으로 분해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프리즘을 통과시킴으로 얻게 된 결론이었다. 하지만 괴테는 "본능적으로" 뉴턴의 색채론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의 기본 사상은 분석이 아니라 조화였기때문이다. 그는 빛의 가장자리가 어둠을 두들길 때 색채가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색채는 빛과 어두움이라는 양극 사이의 긴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빛은 실재의 흐름이고, 내재하는 신성의 현현이며, 영혼과 마찬가지로 분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암흑은 고뇌이고, 비존재며, 죽음이었다. 이 사이의 긴장이 색채로 자각되는 것이었다. "색채는 빛의 고뇌이다"라는 그의 말은 시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진술은 괴테의 과학적 진술이기도 한 것이다.  

 

뉴턴의 방법은 자연을 수학에 의하여 추상화하고, 망원경, 프리즘, 거울 등의 도구로 자연을 괴롭힘으로써, 결국 자연을 핀에 꽂힌 나비처럼 숨을 거두게 하고 만다. 괴테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넓은 하늘 밑에서, 번거롭고 인위적인 기교도 부리지 않고, 일생동안 공감적인 지각으로써 관찰하려고 하였다. 그것이 괴테의 낭만주의적 정서였다.  

 

괴테의 과학은 모두 그의 개성과 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베이어드 테일러는 "그의 지성은 인간과 자연, 즉 개인과 종족과 세계를 하나의 일관되고 조화적인 조직으로 결합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시, 산, 꽃, 조상이 모두 동일한 성장 법칙을 따랐다."고 말했다. 시인 괴테나 과학자 괴테에게서 이 목표는 바뀐적이 없었다. 그의 과학에 대한 주관성은 바로 이러한 그의 정서의 결과물인 것이다.  

 

괴테와 디드로의 뉴턴 과학에 대한 공격은 잘못된 흐름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은 자연의 통일과 현상의 다양성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였으며, 이 둘 사이의 조화를 위해 오랫동안 나름의 방식으로 일종의 주고 받는 대화를 지속해 왔다. 하지만 낭만주의 정조를 바탕으로 한 이러한 흐름은 분명히 잘못된 방향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낭만주의와 객관적 과학

낭만주의 정조의 뿌리는 인간성, 도덕성이었다. 이에 대한 열망은 물리학에 대한 반역의 동기가 되었다. 뉴턴의 물리학은 자연을 객관화하였다. 뉴턴의 물리학은 계량적, 수량적 과학이었다. 하지만 낭만주의는 인간과 자연이 합일할 수 있는 과학을 지키고자 이에 대항하였다. 낭만주의는 과학의 중심에다 물리학 대신 생물학을 놓으려고 했다. 낭만주의는 질서의 모범으로서 기계론 대신에 유기체를 놓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과학이 자연에서 발견한 것 이상을 자연에게서 기대하고 있었다.

 

낭만주의는  디드로의 자연주의적이고 도덕적인 과학, 괴테의 자연의 인격, 워즈워드의 시, 알프레드 노드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 가장 고상하게 꽃을 피웠다. 또한 과학에서 질적이고 심미적인 자연 인식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의 정신을 모두 고취하는 면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길은 과학의 길은 될 수 없다. 다만 예술이나 역사주의의 길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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