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

 

길막봉이

곽오주는 청석골 탑고개의 쇠도리깨도적으로 유명을 떨친다. 특히 아이들을 죽이는 나쁜 놈으로 악명을 얻는다. 울고 보채는 자기의 아이를 화김에 내동댕이쳐 죽게 한 이후에 가지게 된 병으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만 해도 미쳐버리는 병이 도지는 것이었다. 손씨형제가 탑고개를 지나다 큰 형이 쇠도리깨에 맞아 사람이 반병신이 되자 작은 손가는 원수를 갚을 생각으로 처형의 동생들을 찾아간다. 삼봉이와 막봉이는 장사이다. 특히 막봉이는 양주의 임꺽정이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 힘이 센 편이다. 손가와 삼봉이와 막봉이는 오주를 찾아가서 혼내주고 사로잡는다. 관가로 데려가던 중 탑고개마을의 주민들의 꾐에 빠져 이틀을 머무는 사이에 꺽정이와 양주에 갔던 유복이가 오주를 구하려 돌아온다. 꺽정이의 중재로 손가형제와 오주는 화해하고 손가형제는 청석골에 와서 같이 살게 된다. 한편 길을 떠난 막봉이는 도중에 양반행세를 하는 아니꼬운 박선달을 만나 골탕을 먹인다. 소금팔러 다니다 박선달의 동생집에 들러 그 집딸 귀련이와 연분을 맺게 되고 데릴사위로 들어간다. 하지만 장모의 등쌀에 못이겨 결국 쫓겨나고 하릴없이 막봉이도 청석골로 찾아든다.    

 

황천왕동이

황천왕동이는 임꺽정의 처남이다. 나이 서른이 넘어 아직 장가도 못가고 있는 노총각인데, 장기 고수가 있다고 하면 사양없이 찾아갈 정도로 장기 두기를 좋아한다. 청석골에 있던 손가가 탑마을에 손노인이라는 장기 잘 두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나섰다가 손노인보다 더 장기를 잘 두는 국수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하여 봉산에 있는 백이방을 찾아 나선다. 근데 백가에게는 과년한 딸년이 있는데, 사위를 보기 위해 사위취재를 한다고 한다. 황천왕동이도 마음이 혹하여 그 취재에 응하는데, 첫날부터 백가와 그 마누라의 눈에 들게 되었다. 취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혼례를 치른 황천왕동이는 백가의 추천으로 장교로 일하게 된다.

 

배돌석이

봉산읍에서 황산읍사이에 있는 새남에서 호환이 발생한다. 호환당한 사내의 늙은 어미가 관가에 가서 원수를 갚아줄 것을 탄원한다. 황산 관가에서 황천동이를 비롯한 장교와 사냥꾼들을 시켜서 호랑이를 사냥하게 하지만 호랑이를 잡지 못하고 황천왕동이가 호랑이에게 상처를 입히는데만 그치고 만다. 한편 다친 호랑이는 이리 저리 날뛰면서 황산부근을 뒤집는 중 경천 역졸하나가 호환으로 죽게되고 이로 찰방이 자기 수하의 원수를 갚느라고 배돌석이를 비롯한 사냥꾼들을 보낸다. 배돌석이는 이봉학이 왜란에 나갔을 때 재주를 겨루었던 돌팔매질을 잘하는 그 돌석이다. 배돌석이의 활약으로 호랑이를 잡게되니, 이에 보답할 요량으로 원수갚기를 소원하던 그 늙은이가 돌석이를 대접한다. 그러다가 배돌석이 늙은이의 수양아들이 되어 며느리와 부부의 연을 맺어 함께 살게 된다. 배돌석이는 마누라 복이 없는 사람이라, 이전에도 의붓 시어머니를 표독스럽게 대하던 아내를 쫓아버린 적이 있었고, 한번은 비부쟁이로 들어갔다가 주인 서방님과 자기의 처가 간통하는 것을 보고서는 양반네 이마와 간부의 눈에 먹으로 문신을 떠 넣고는 도망한 적이 있었는데, 이 번 부부의 연도 결국 살인으로 막을 내린다. 배돌석이는 유복이의 도움으로 압송되어 가던 도중 탈옥을 하여 청석골로 들어가고, 황천왕동이는 그에 공모한 죄로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이봉학이

봉학이는 관찰사 이윤경의 비장이 되어 전주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기생 계향이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다. 왜선이 출몰한다는 소식에 경계를 강화하고 왜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봉학은 군사를 데리고 연해 각읍을 돈다. 그 동안 부임한 새 부윤은 계향이에게 수청들라하나 계향이거절하고 이로 인해 곤욕을 치른다. 이후 봉학이 돌아 온 후 조용하다, 잔치에서 일어난 일을 빌미로 부윤은 계향이를 잡아가서 볼기를 치려하나 봉학이 이를 알고 관아에 들이닥쳐서 계향이를 데리고 간다. 이로 인해 화가난 부윤을 무마시키기 위해 이윤경은 아끼는 봉학이를 제주도 정의현감으로 발령이 나도록 힘써 준다. 제주에서 선정을 베푸던 중 황천왕동이의 제주 유배길에 함께 온 꺽정이를 만나 병해대사일이며, 유복이의 일, 황천왕동이가 겪었던 일, 오주, 길막봉이, 배돌석이등 청석골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다. 이야기중에 유복이 도둑이 된 것을 나무라는 봉학이 더러 꺽정이는 양반이 더 큰 도둑인 뒤집어져야 할 세상에 대한 울분을 토하는 것을 듣는다. 서울로 올라온 봉학이는 권세에 아첨하지 못하는 성정으로 벼슬에서 떨어진다. 그 당시 권세는 윤원형과 난정이이다. 난정의 시녀조차 큰 소리치는 세상이 되었다. 낙향하려는 참에 이윤경의 동생의 힘으로 군기시에 복직이 된다. 하나 여기서도 권력에 빌붙은 벼슬아치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임진별장으로 벼슬이 옮겨진다.

 

 

**** 이윤경

조선 명종 때의 문신(1498~1562) 자는 중길(重吉). 는 숭덕재(崇德齋). 1555년 을묘왜변 완산 부윤(完山府尹)으로서 완산침입한 왜구크게 무찔러 전라도 관찰사오르고, 도승지병조 판서지냈다.

 

역사소설을 쓰려면...공부해야 할 것도 많겠다. 기본적으로 그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들에 대해 알아야 하겠고, 그 당시의 제도, 관직, 문화등만아 아니라 지명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동헌이니 내아니, 감영이니, 수령, 방백, 현감, 등등 오늘날 쓰이지 않는 수많은 명칭들과 관직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정말 방대한 지식의 보고에 접근하지 않고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인 듯하다....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남녀관계는 그리 변한 것 같지는 않은 듯...ㅋㅋ 현대의 시각에서 본 모습이라 그럴까? 홍명희가 묘사한 것들이 과연 그 당시에도 그랬을까? 사람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뭐...그랬겠지.

 

- 찾아 본 단어들...

모르는 단어를 하나 하나 찾아보려니 너무 많아, 진도가 너무 느려...간간히 찾아보고, 때로는 기록하지 않고 설렁설렁 넘어간다. ....

 

다음 속담은 내가 직접 겪은 바가 있어 공감하는 바가 커서 적어놓는다. -오뉴월 화롯불도 쪼이다 물러나면 섭섭하다.

 

과만: 벼슬의 임기가 참

여의다: 딸을 시집보내다

시쁘다: 마음에 차지아니하며 시들하다

농삼장: 상자를 넣거나 싸려고 삼노를 엮어 만든 망태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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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 지음

 

1권 봉단편에서는 임꺽정의 아버지 시대를 다룬다. 꺽정이의 아버지 돌이, 그리고 양주팔이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오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돌이의 결혼으로 주인공인 꺽정이 태어나는 등 이야기의 기초가 다져진다.

 

2권 피장편에서는 양주팔을 중심으로 꺽정이의 인맥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천한 백정으로 갓바치이지만 당대의 인물인 조광조를 비롯한 개혁파인사들과의 교우를 나누는 양주팔. 그리고 갖바치아래서 동문수학하는 꺽정이와 봉학이, 유복이등이 등장한다. 또한 갖바치는 정희량에서서 학문을 배워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병해라는 이름을 가진 고승으로 거듭나게 된다. 꺽정이는 평생의 배필 운총이를 만나게 되고...이렇게 실제 주인공인 꺽정이 주위의 사람들의 관계가 드러난다.

 

3권 양반편에서는 주로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들이 설명된다. 윤원형과 김안로의 세력이 개혁파인 조광조 세력을 몰아내고 권세를 독점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양반들도 같은 양반이 아니다. 의를 위해 멸사봉공하는 사림세력이 있는가 하면 권력에 눈이 어두워 의를 져버리는 세력도 있다. 결국 깨끗한 개혁 양반세력이 몰락하는 것은 임꺽정과 같은 천하를 호령하는 도적이 등장하는 역사적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4권 의형제편 1 에서는 임꺽정과 함께 화적질할 두령들의 살아온 자취를 더듬는 편이다. 먼저 박유복편에서는 꺽정이의 동무 박유복이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곽오주편에서는 힘이 장사인 오주가 유복이와 엮어지는 과정, 결국 꺽정이와 맥이 닿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유복이

꺽정이와 봉학이가 오랫동안 생사를 모르고 지냈던 어릴 적 친구 유복이가 나타난다. 유복이는 그 동안 죽을 병에 걸렸다 간신히 살아났다. 안음뱅이 병에 걸렸지만 그 동안 큰 재주를 하나 발전시킨다. 표창의 명수가 된 것이다. 한 이인을 만나 병을 고치고 난 후 꺽정이를 만나러 양주에 오게된다. 그리고 죽산 칠장사에 있는 병해대사를 만난 후, 원수를 갚고 난 후 살인으로 쫓기는 몸이 된다. 그러던 중 산상골 최서방의 딸을 아내로 얻게된다. 유복이 부부가 맹주로 몸을 피해 달아나다 산 속에서 도적 오가네 부부를 만나 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곽오주

오가는 장꾼들을 털러 갔다가 곽오주를 만나 크게 경을 치고 돌아온다. 유복이 오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주를 만나 힘겨루기를 하다 정이 들어 서로 의형제를 맺게 된다. 탈미골에서 도적질하던 강가는 위치 좋은 청석골 오가의 근거지를 빼앗으려다 오히려 오주와 유복이에게 당하고 만다. 이로 인해 과부가 여인중에 신배골 과부는 자식도 없고 미모가 뛰어난 뭇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곽오주의 주인인 정첨지의 아들은 곽오주와 함께 신배골 과부를 보쌈질해 온다. 정첨지의 아들은 아비 정첨지와 부인의 강경한 반대와 신배골 과부의 맹렬한 저항으로 그녀를 첩으로 삼지 못하고 결국 오주와 부부의 연을 맺도록 한다. 이러던 중 오주는 유복의 소개로 임꺽정을 만나게 되고 사냥가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는 힘을 보이게 된다. 신배골 과부는 오주의 아이를 낳고 산후신열로 죽게되고 오주의 아이도 배고픔에 울다울다 죽고만다. 이로 인해 실성한 오주는 병이 낫고 난 이후에도 아이의 울음소리만 나면 무섭게 변하여 아이를 죽이려 든다. 결국 오주는 정첨지를 떠난 청석골로 들어가 도적이 된다. 오주가 청석골 두령의 한 사람이 되었을 때 각처에서 어린애를 무지스럽게 죽여서 "곽오주 온다"는 말는 우는 애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 "곽주온다, 곽쥐온다"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이리하여 청석골에는 오가, 박유복, 곽오주가 진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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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 지음/ 유명미 옮김/ 해제 우석훈/ 부록 주경복 / 갈라파고스

유엔 식량 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수많은 어머니의 눈물, 수많은 아버지들의 무기력하게 처진 손.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아의 선상에서 먹을 것을 달라는 울음조차 울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들, 아이들 무덤!

 

'선별작업'으로 거부당한 아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 생존 가능성이 더 많은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거미같이 바짝 마른 팔다리를 한 아이를 안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 이야기를 읽을 때, 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기아라는 문제를 누누이 들어 왔었지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이 책에서 읽은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더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것은 '아옌데'와 '상카라'의 비극이다. 국민들을 굶주림과 가난에서 건져내려는 이상을 품고 투쟁한 사람들이 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만 하였는가? 그들의 이야기뒤에 숨겨진 더러운 진실, 추악한 현실은 너무 슬픈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어 왔고,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좌절과 절망만이 남아있다. 그들에겐... 

 

1970년 칠레의 인민전선은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 아옌데는 유아기의 비타민 및 단백질 부족, 소년소녀들의 건강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내건 공약이 분유의 무상배급이었다. 이 공약을 내건 아옌데가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분유와 유아식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 기업 네슬레가 이 지역의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네슬레는 우유공장을 경영하며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판매망도 장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옌데는 네슬레와의 원활할 관계가 필요했다. 하지만 1971년 스위스의 네슬레 본사는 칠레 민주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함으로 아옌데 정부의 공약을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왜 네슬레는 아옌데 정권에 협조하지 않았을까?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개혁 정책을 꺼리고 있었으며, 외국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나 칠레의 자립성을 높이고 국내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때문에, 키신저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칠레의 민주정부를 괴롭히려고 했다. 칠레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리고, 운수업계의 파업을 조종하고, 광산이나 공장의 태업을 부채질했다. 서구의 많은 다국적 은행이나 기업, 상사들처험 네슬레 역시 아옌데 정권의 개혁 정책을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결국 아옌데의 공약을 수포로 돌아갔다. 1973년 CIA는 피노체트의 군부쿠데타를 도왔다. 9월11일 대통령궁에서 마지막 저항을 하던 아옌데는 살해를 당한다. 피노체트의 무차별 탄압으로 수많은 대학생, 성직자, 노동조합간부,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기 전처럼 수만명의 아이들이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다.

 

토마스 상카라.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고자 노력했던 한 젊은이의 이루어지지 않은 꿈,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토마스 상카라이다. 4명의 젊은 장교들이 1983년 8월4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리더인 상카라를 비롯하여 블레즈 콩바오레, 앙리 총고, 장 밥티스테 링가이가 그들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등 외국의 사주를 받은 콩파오레가 1987년 다른 세명의 친구를 죽이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개혁은 끝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상카라의 인두세 폐지와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 등 개혁 정책에 있었는데, 이러한 정책에 의해 부르카나파소는 4년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정치부패로 권력을 유지하는 코트디부아르, 가봉, 토고등 인접국가들에게 이러한 변화가 퍼져나가는 것을 우려한 프랑스의 일부 세력은 상카라의 개혁 정책을 두려워했다. 아프리카가 정말로 자신들의 생산물로 어린이 기아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극심한 기아 속에서 선진국의 원조로 삶을 이어갈 것인가의 분기점에 놓였던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서른 아홉까지 살고 싶었던 상카라의 죽음과 함께 부르키나파소의 어린이들에게는 다시 굶주림이 찾아 왔고, 서부 아프리카에서의 변화는 끝내 찻잔 속의 태풍이 되고 말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리고 부패한 정치인들과 탐욕으로 가득찬 자본가들에 대한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지글러는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한다.'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 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에 대해 책임을 다히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속에 존재한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꺽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꺽을 수 없는 의지는 과연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이 의지의 발현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의지가 존재하는 한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극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탐욕, 거대자본의 횡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만큼 세계의 불행도 계속될 것이다. 이 부조리한 세상의 경제구조는 그 한계에 이르기까지 정의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시험할 것이다. 그 의지는 좌절을 경험할 것이나 또 다시 일어설 것이다. 눈물속에 피는 꽃처럼 거대한 힘 앞에 연약한 듯해 보이는 그것은 결코 뿌리채 뽑히지 않을 것이다.  

 

"오 여호와여, 도와 달라는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 눈물에 대해 잠잠히 계시지 마십시오." (시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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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상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한다. 하지만 새임금이 집상을 과도히 하여 초상부터 졸곡까지 미음과 죽 외에는 진어한 음식이 없고 밤에 침전에 눕지 아니하고 인산을 지난 뒤에도 오히려 상차를 떠나지 아니하였다.

 

윤안로, 윤원형 형제는 김륜을 불러 사주를 본다. 그리고는 김륜의 지시대로 윤원형은 남산 초막 속에서 상감을 방자한다. 윤임을 배경으로 하는 인종이 죽어야 그들의 조카, 문정왕후의 아들이 왕이 되어 그들의 세상이 되는 것이기때문이다. 

병해대사는 덕순과 꺽정이에게 편지를 보내어 "제웅을 사를 때 바늘들을 뽑아라. 나의 낯을 보아서 목숨만은 살리고 이 쪽지를 주어라"라는 알 수 없는 말만 적히고 륜개견이라고 쓰인 작은 봉지를 전해 받는다. (제웅:짚으로 만든 사람모양의 물건)

인종의 제웅을 만들고 바늘로 찔러 방자하도록 사주한 김륜을 살려주라는 것...

우연히 남산에 올랐다가 윤원형의 방자하는 초막을 만나 상감을 방자하는 것임을 알게 된 꺽정이는 원형과 김륜을 혼내준다.

인종은 몸이 나아졌으나 곧 다시 병이 위중해져 죽음을 앞두고 삼정승을 불러 경원대군에게 전위함을 말하고, 조광조를 복권시킬 것, 그리고 현량과를 복과할 것등을 명하고는 불과 왕위에 오른지 육개월만에 세상을 등지고 만다. 서울에서는 대비가 치독하여 인종을 죽게했다는 소문이 수군수군한다.

 

살육

인종의 뒤를 이은 경원대군이 명종이다. 나이 십이세에 불과하여 대왕대비가 수렴첨정을 하게 된다. 윤가 형제는 윤임을 눈에 가시로 미워하며, 좌의정 유관과 이판 유인숙을 꺼리고 두려워한다. 원형은 이기, 임백령, 정순붕, 허자와 같은 소인들과 함심하여 정적들을 없이하려고 꾀한다.

윤원형은 허무맹랑한 말로 그들을 무함한다. 왕이 승하하던 때 윤임이는 대군 대신 계림군을 추대하려고 하였고, 유관, 유인숙이 찬조하였다는 말을 지어내고 왕대비 박씨(인종의 왕비)에게 상서하는 것으로 편지를 위조하여 원형의 첩 난정을 통해 대왕대비전에 보인다. 대왕대비는 예판 윤원형에게 밀지를 내려 윤임,유관,유인숙을 죄주라고 명한다. 허자는 이웃이 살면서 교분이 있던 사간원 헌납 백인걸을 불러 밀지를 봉행하여 대신을 논핵할 것을 종용하나, 백인걸은 "대간 명색이 밀지를 가지고 대신을 논핵할 리야 있겠소."하고 뜻을 굽히지 아니한다. 허자는 깊이 한 숨을 쉬고 "내일이 자네는 군자가 되고 나는 소인 되는 날일세." 하고 말한다.

 

다음날 제좌하여 원의석을 차려 사간들이 탄핵문제를 논의한다.(제좌:관사에서 중대한 안건을 처리할 때 관원들이 가지런히 앉아 의논하던 일

원의석: 조선시대 감찰 업무를 관정하던 사헌부 관리들이 회의하던 장소)

.....사간들의 청렴결백, 강직함등은 선비 정신을 뚜렷히 보여준다....

윤임과 관련이 있다고 구초에 오른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국문장에서 어육을 당한다. 장하에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도 유관, 유인숙, 윤임은 부관참시를 당하고, 계림군은 참형을 당하고, 이덕응, 이휘는 효수를 당하였다. 백인걸, 유희준 외 여러 사람은 원찬을 당하고, 이중열, 김저 외 여러 사람은 삭탈을 당하고, 그중 가볍게 파직당한 것은 권발, 송인수등 여러사람이었다. 이때 정희등과 박광우는 악형아래 거의 다 죽게 되었으나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까닭으로 박광우는 황해도 봉산으로 정희등은 평안도 용천으로 각각 정배되었는데, 박광우는 겨우 돈의문 밖을 나가서 숨이 그치고 정희등은 귀양길을 떠나게 되었다. 정희등의 어머니는 "네가 평생에 정직한 것을 지키다가 마침내 정직한 것으로 하를 입었으니 맘에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정희등은 편안히 죽음의 잠에 든다. (인산:왕족들의 장례) 이 일이 을사사화로 불리는 사건이다.

 

익명서

살육이 난 지 이년 후 부제학 정언각이 익명서 한장을 바친다. "여자가 정사를 알음하고 간신이 권세를 농락하니 나라 망할 것은 서서 기다릴 수 있다. 이것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랴."

이 익명서로 인해 봉성군이 평창에 귀양가 있던 중 사약을 받게 되고 참판 송인수, 정랑 이약빙도 사약을 받는다. 목사 임형수, 좌랑 정황, 정언 유희춘, 정언 김난상, 찬성 권발, 찬성 이언적, 헌납 백인걸, 장령 이언침, 지평 민기문등은 안치 혹은 부처를 당하였다. 정언각의 독계로 임형수는 사약을 받게 된다.

이후에 안명세의 옥사, 그 다음에 이홍윤의 옥사, 또 그 다음에 이해의 옥사가 있었다.

 

안명세의 옥사 사건은 이러하다. 유관, 유인숙, 윤임들의 죽은 일을 사관이 사초에 올리기를 "중종 소상이 지나지 아니하고 인종 상사 발인하기 전에 위에서는 빈전 옆에서 고명대신 세 사람을 죽이다." 하고 적었고, 또 이기 등의 행동을 사실대로 적었다. 공신들이 이를 알고 이를 쓴 사관이 누구인지 조사하던 차에 홍문박사 안명세가 자수하고 나서서 그날로 능지처참을 당하게 되었다. 이를 슬퍼하며 눈물로 옷깃을 적시던 안명세의 친구 교리 윤결이 국문장으로 끌려간다.

 

이홍윤의 옥사는 이러하다. 안명세가 죽은 다음해 이홍윤의 옥사로 충주가 도륙난다. 이홍윤은 이약빙의 아들이요, 윤임의 사위라 그들의 죽음을 원통하게 여기고 간신의 무리를 일망타진하고 싶은 마음이 간혹 언사간에 발로될 때가 있었다. 이로 인해 홍윤과 홍윤에게 가까운 사람들이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이해의 옥사가 있었으니...

이홍윤의 옥사가 있은 후 다음해 유신현(충주)의 최가 한사람이 거짓 고변하러 서울로 올라가려다 유신현에서 붙잡혔는데, 현감 이치가 감사 이해에게 보고하고, 이해가 추문하라고 명하여 최가가 형장에 맞아 죽게 되는 일이 있었다. 이홍윤의 형 이홍남이 이를 알고 이해와 이치가 역적을 두호할 맘으로 증거를 인멸하였다고 몰아서 이해와 이치가 금부로 잡혀가 형장아래 맞아 죽는다. 간신히 목숨이 붙어 있던 이해는 유배를 가는 중 결국 양주에서 죽고 그 시체는 버려진다. 돌이와 꺽정이는 관을 해 시체를 그 속에 넣어 둔다. 이해의 아우 이황은 형의 옥사 이야기를 듣고 양주로 찾아와 백정 돌이와 꺽정에게 감사를 나타내려고 하나, 꺽정이가 내친다. 이황이 앉아서 보자고 부를 때에, 또 찾아 와서도 문안에 발을 들여놓지 아니할 때에 덕 보인 값으로 욕본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 것이다. 또한 꺽정이 부자는 그 일로 인해 관아에 잡혀가 백정주제에 주제넘는 짓을 했다고 옥에 갇히고 형장 몇차례를 톡톡히 맞는다. 이러한 사건으로 꺽정이는 목사를 미워하고 양반을 미워하고 세상을 미워하는 생각이 뼈에 깊이 새기어졌다.

 

 

  (계림군: 성종의 세째아들 계성군의 양자, 을사사화때 죽임을 당함. 윤임이 인종이 죽고 난후 왕으로 추대하려고 모함받고 죽음   

(봉성군: 성종의 서자, 희빈 홍씨의 아들로 윤임의 조카로 을사사화로 인해 유배됨,)

 

보복-권세

임백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고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졸곡이 못되어 옥매향도 죽고 만다. 대상이 되기 전에 정순붕도 귀신 모를 죽음에 처한다. 정순붕의 아들 정렴은 총명하고 절등하여 아비가 죄를 짓지 못하게 막지만, 정순붕과 그의 둘째 아들 정현은 이를 무시한다. 하지만 30년 차이가 나는 아우 정작이는 형과 한 마음이다. 정현이는 정렴이를 해하려하고, 이를 안 정렴은 시골로 피한다.

 

유관, 유인숙, 윤임의 노비를 사폐받을 때, 정순붕은 갑이라는 계집종을 받게되는데, 이 갑이가 총명하여 정순붕의 총애를 받는다. 정렴이가 미간에 살기가 있다고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상노 계놈은 갑이와 연정이 싹트고...정순붕은 전가보물인 옥잔을 뇌물로 받게 된다. 갑이는 이 옥잔때문에 옛상전에 대한 나쁜 말을 하게 되어 그 옥잔을 미워하여 부수고 땅에 묻는다. 나중에 갑이가 의심을 받는데...  갑이는 방자를 행하여 옥잔을 찾는다고 게놈에게 이것 저것 갖다 달라고 부탁을 하고...결국 갑이는 이전 상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것이교, 정순붕은 어이없이 죽게 된다.

 

한편 허자와 민제인은 자신들의 소인배같은 행동으로 인해 치욕을 받는 것을 슬펴하며 한탄한다. 허자의 이러한 낌새를 알아채인 이기는 대사헌 진복창과 사간 이무강을 불러서 허자를 탄핵하도록 사주한다. 이기는 허자에게 가죄하여 사사하려 아뢰는 중에 쓰러져 죽고 만다. 이 때 "이해가 나를 죽인다"고 소리지르며 의식을 잃는다. 허자역시 배소에서 병들어 죽는다. 이제 조정은 윤원형의 세상이 된다. 그에 거짓 충성하는 자도 있었으니, 대사헌 진복창이 그와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독사같은 그도 결국 원형의 눈밖에 나서 쫓겨난다. 양재 익명서에 공로가 있는 정언각은 윤원형에 아첨하여 좋은 벼슬을 얻었으나 말을 타고 가던 도중 낙마한데다 등자에 발이 걸려 말에게 끌리어 다니다가 비참하게 죽고 만다. 이 말은 임형수의 말이었으니, "천도가 무심치 않ㄷ." "보복이 무섭다"라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원형의 권세는 높아만 가되 원로는 그렇지 못하여 항상 불평하여 원형의 원한을 사더니, 결국 원형의 사주를 받은 원형의 종질 병좌좌랑 윤춘년의 상소로 원로는 파직, 원찬되었다가 사약을 받게 된다.

원형의 첩 난정과 정실부인 김씨사이에는 서로 원한이 맺힌다. 난정이 김씨를 독살해 죽이나 원형의 권세가 무서워 형조에 고발조차 하지 못하고 때를 기다린다. 원형의 권세가 하늘을 찔러, 자식을 죽여도 치죄받지 아니하고, 그 종들도 호가호위하는데...

영남의 선비 조식이 상경하였다가 원형의 하인의 잘못된 것을 보고 혼내준다. 하지만 원형조차도 그를 어찌하지 못한다.

 

보우-왜변

조선초에는 사대부들도 불도를 좋아하여 불교식으로 재를 부치곤 하였다. 성종때 인수대비가 노산군 부인 송씨 단종왕비가 출가하였던 정업원에 새로 불상을 조성하였더니, 어느 유생이 그 불상을 태워버리는 일이 있었다. 인수대비가 몹시 화가 나었지만 성종대왕은 그 유생을 죄주지 아니한 일이 있었다. 이후 재상의 집이나 선비의 집에서는 드러내놓고 불공을 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와서 대왕대비(문정왕후)가 후생을 길을 닦으려고 정업원터에 인수궁을 이룩하고 불공을 올리게 되니, 민간에서도 불교가 성행하게 되었다. 대왕대비가 무차대회를 열기위해 명승을 구하였더니, 당시 영변 묘향산 보현사에는 청허당 휴정, 안성 칠현산 칠장사에 병해가 유명하였으나, 그들은 상경하지 아니하고, 춘천 청평산 문수사에 있는 보우란 중이 강원감사 정만종의 천거로 서울에 오게 되었는데, 그의 신수좋고 언변좋은 모습에 대비의 눈에 꼭 맞았다.

 

대왕대비가 보우의 말을 듣고 침체한 불법을 진작하려고 하여, 선종, 교종의 구별을 세우고 양종 선과를 설시하기로 작정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양사옥당(사헌부,사간원,홍문관)이 함께 나서서 불교를 숭봉하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다투기 시작하며 육조백관들이 보우의 죄를 말하며, 관학 유생들이 나서서 상소로 부우를 죽이자고 청하니, 그럼에도 대비의 마음은 굳건하였다.

 

각처에서 선과 초시를 치른 후에 회시를 치르기 위해 중들이 서울로 모여들었다. 선과에 급제한 사람을 선사라 칭하고 교과 급제는 대사라 칭하였는데, 이 때 선과의 장원급제는 청허당 휴정선사이고, 교과의 장원급제는 송운당 유정대사이었는데, 이 휴정이 그 유명한 서산대사이며 유정은 사명당이다.

 

이렇듯 불교가 왕성할 때. 이황과 같은 사람은 당소 서울 소식에 귀를 막고 듣지 않았지만, 남명 조식은 시골에 있지만 맘으로는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이라 원형에 보우까지 설쳐대는 것에 눈물을 흘리는데...오랫만에 찾아온 친구 토정 이지함과 세상이야기를 주고 받는 중, 병해대사와 임꺽정이의 별사람됨에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왕대비가 보우에 큰 신임을 두는 까닭에, 보우를 미워하는 조관과 선비들이 만 사람에 지나지만 오히려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차에, 함경도 어사 왕희걸이 장계를 올려 보우가 전에 지은 죄상을 적발한다. 보우가 황룡사에 있을 때 계림군의 하인 무응송과 부동하여 계림군을 숨겨주고서는 슬거머니 석왕사로 옮긴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 후에 계림군을 위해 재를 올리는 등 역적으로 몰린 계림군의 여당이라는 것이다. 또한 조양사에서 논계하고 대신들은 이것을 가지고 청대하여 보우에게 치죄하자고 주장하였으나 가납되지 않았으며, 판서 송세형이 혼자 서계를 올려 보우를 죄주자고 청하였으나 역시 불윤이라느 비답밖에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퍼지면서 보우가 역모에 뜻을 두었다는 소문이 나게 된 것이다.

 

보우의 권세가 방자함이 하늘을 찌를 듯 하여 원형도 이를 어쩌지 못할 형편이라, 기와를 몇 울 얻으려고 와서에 차지를 보내었다 정만종의 친척되는 별감과 다툼이 있어 난리를 친 일로 인해 보우에 미움을 받아 대왕대비전에서 원형이 이 일로 야단을 듣게 되기도 한다. 상감이 대왕대비전에 보우 일로 아뢰던 중 뺨을 맞는 일이 있고 난 후 난정이 기지로 대왕대비의 화를 가라 앉힌다.  이 때 경복궁에 큰 불이 나서 사정없이 궁궐은 타고 이 틈에 보우와 난정이 밀회를 한다.

 

경복궁이 불타 왕은 창덕궁으로 이궁을 하고, 경복궁을 중수하기 위해 중수도감을 설치하고 영상 심원연을 도제조로 임명한다. 보우의 거처문제에 대하여 원형과 상감이 의논하던 도중 보우를 궁에서 내보내는 것을 왕대비에게 권하기로 하여, 경복궁의 불이 보우의 요술에 의한 것이라는 의심을 아뢴다. 원형이 궁인에게 진주보패로 유혹하여 보우에게는 왕대비가 궁 밖에 보낼 의논을 한다고 이야기하게 하고, 대왕대비에게는 보우가 젊은 궁녀를 끼고 노는 품이 체통에 맞지 않다고 거짓을 고해 둘 사이를 이간하여 드디어 보우는 서울 근교의 광주 봉은사로 출궁하게 된다.

하지만 곧 보우는 대왕대비의 부름으로 궐내를 출입하게 되고 궐에 다시 거처를 정하게 되었다.

 

회암사에서 큰 법회를 하기 위해 수많은 중들 앞에 보우가 높은 자리에 올라 앉았을 때 병해대사가 나타나 보우를 꾸짖는다. 보우의 버릇을 가르치기 위해 온 것이다. 그 길에 꺽정이를 만나러 온 덕순이를 만나 지인들 이야기를 나눈다. 이장곤부부가 세상을 떠난 이야기하며...

운총이는 그 어미가 자진한 후 천왕동이와 함께 꺽정이의 아이를 데리고 양주에 와서 함께 살고 있다. 이름은 백손. 꺽정이의 아비 돌이는 중풍으로 반신불수의 몸으로 누워있고, 양주팔 병해대사의 아들은 저 세상 사림이며, 며누리이자 꺽정이의 누이인 섭섭이가 함께 살림을 살고 있다. 꺽정이의 이복동생은 팔삭동이, 섭섭이의 딸, 병해대사의 손녀, 애기가 함께 살고 있다.

 

병해가 오십년내에 큰 난리가 날 것이라 이야기하며 그 난리를 이겨낼 자가 자라고 있음을 이야기하자, 덕순은 그게 누구냐고 묻는다. 서울 어느 마을에 대장노릇하는 열살쯤 된 아이가 있을 것이란 말을 듣고 나중에 덕순과 꺽정은 그 곳을 찾아가 본다. 그리고 습진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대장아이를 만나 그 아이가 이순신임을 알게된다.

 

세상 민심이 난리가 나야 한다는 쪽으로 흐른다. 심정 남곤이 망쳐놓은 세상, 지금은 요사스런 중때문에 시골 봉물짐이 사대문안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니, 망할 세상이 아닌가? 조대헌이 있을 때는 일년에 한 두번 볼까 말까한 봉물짐인데 말이다. 난리가 날 조짐이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왜변

병해대사, 덕순, 꺽정이는 죽산 칠장사로 놀러간다. 칠장사에 말을 사랑하고 잘 길들이는 허담이란 중이 있어, 말타는 기술을 달포가량 재미나게 배우다 난리가 났다는 소문을 듣고 꺽정을 찾아온 활을 잘 쏘던 친구 봉학을 만나 왜변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봉학이 꺽정이더러 함께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우자고 말하지만 꺽정이 한사코 거절한다. 병해대사가 장광도를 휘둘러 볼 것을 권하는 것과 허담이 말을 준다는 말에 꺽정이의 맘이 동한다. 하지만 군총을 뽑는 자리에서 꺽정이가 백정임을 알고 돌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꺽정이는 봉학의 성공을 도와줄 겸 왜진을 한 번 구경하려고 출전할 맘을 먹는다. 영암성에서는 이윤경이 수성장으로 훌륭하게 왜를 대적하고 있다. 좌우방어사 남치근과 김경석을 잘 갈무리하면서 성을 안정시킨다. 북문을 지키던 남치근이 성밖으로 나가 왜와 싸우다 절멸할 위기에 처했을 때 꺽정이 칠성마를 타고 달려와 왜진을 무너뜨리고 봉학을 비롯하여 남치근 일행을 무사히 귀환시키고 바람같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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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추천하는 이유가 다 있구나. 김용환씨의 왕비열전 문정왕후편에서 보았던 동시대의 이야기라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김용환씨의 필력도 다분히 수려하다. 특히 통속소설류의 가벼우면서도 신선한 표현들이 눈에 띄며, 그 당시의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의 배후, 그리고 관직등의 조선시대 제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였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벽초 홍명희의 이야기는 훨씬 무게감이 있으며, 다양한 주변의 이야기들이 중심적인 사건에 잘 융합되어 나타난다. 더구나 홍명희의 어휘가 놀랍다. 우리 말이 이렇게 풍부했나 할 정도이다. 이 작품을 크게 평가하는 이유가 다 있다는 걸 느낀다. 1편과 2편에서 보지 못한 재미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특히 3권에서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유학 정신에 투철한 선비들의 강직함과 그와는 또 다른 권력을 추구하며 부패한 냄새를 풍기는 썩은 양반들의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꺽정이가 싫어하는 모습, 아니 혐오하는 모습들이다. 이런 것들이 꺽정이가 난을 일으키는 요소들로 작용하겠지. 양반편의 마지막 장면에 드디어 꺽정이의 칼날이 번득이며 거침없이 왜병을 쳐부수는 장쾌한 모습이 등장한다.

 

* 찾아본 단어들  

 

취군:군사나 인부를 불러모음

신칙: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함

선성: 미리 고하는 기별

천둥벌거숭이: 철없이 두려운 줄 모르고 함부로 덤벙거리거나 날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물계: 어떤 일의 시세가 처지

모피하다: 피하려고 꾀를 내다

가뭇없이: 눈에 띄지 않고 감쪽같이

두류:체류

군기시: 조선시대 병기 제조를 관장하던 관청

조발; 군사로 쓸 사람을 강제로 뽑음, 징발

토반: 여러대를 거쳐 그 지방에  붙박이로 사는 양반

울력: 여러사람이 힘을 합해 일함

강미: 조선시대 서당 선생에게 보수로 주던 곡식

판도방: 절에서 고승이 거처하는 방

탑전: 왕의 자리 앞

빈청: 조선시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집무하던 곳ㅁ

비각; 물과 불처럼 서로 상극이 되어 맞지 않은 일

미타하다: 든든하지 못하고 미심쩍은 데가 있다.

만수받이하다: 아주 귀찮은 말이나 행동을 싫증내지 않고 받아주다

방장: 화상, 국상 등 고승이 거처하는 처소

좌장: 앉은 채로 겨드랑이에 받치는 정자 모양의 지팡이

패초하다: 조선시대 임금이 승지를 시켜 신하를 부르다.

편전: 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던 궁전

질정하다: 갈피를 잡아 분명하게 정하다.

대궁:먹다가 그릇에 남긴 밥

무차대회: 승려, 속인 할 것 없이 차별없이 모두가 참여하는 법회

오괴하다: 물정에 어둡고 괴상하다

속현: 새 아내를 얻다.

봉치: 혼인전에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채단과 예장.

채단: 푸르거나 붉은 비단

예장: 신부집에 예단과 함께 보내는 편지

호구별성: 집집마다 다니며 천연두를 앓게하는 여자귀신

장지: 방과 방사이, 방과 마루사이 칸을 막아 만든 미닫이 문

진동한동: 바쁘거나 급해서 서두는 모양

신칙: 단단히 일러서 경계함

사패: 조선시대 공신에게 산림,토지,노비따위를 내려주며 그 소유에 대한 문서를 내 주던 일, 또는 그 문서

작말하다: 가루로 만들다.

졸곡 :[명사] 삼우제를 지낸 뒤에 곡을 끝낸다는 뜻으로 지내는 제사. 사람이 죽은 지 석 달 만에 오는 첫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택하여 지낸다.
사위스럽다: 마음에 불길한 느낌이 들고 꺼리칙하다

대상:사망한 날로부터 만 2년이 되는 두번째 기일(忌日)에 지내는 상례(喪禮)의 한 절차.:

근친: 시집간 딸이 부모를 뵘, 출가한 승려가 부모를 뵘

상사:정사, 사신가운데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

절등하다: 아주 두드러지게 뛰어나다.

영절스럽다: 아주 그럴 듯하다.

전교:임금이 명령을 내림, 또는 그 명령

판수: 시각장애인, 점치는 맹인,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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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지음/ 삼성문화사

 

성종의 첫째 아들은 연산군이다. 둘째 아들은 진성대군으로 연산군의 이복 동생이다. 그가 연산군이 쫓겨난 후 중종으로 즉위한다. 대군으로 있을 때 이미 신수근의 딸 신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중종으로 즉위한 후 반정 공신들의 압력으로 신씨는 폐위되고 만다. 그녀의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반대하다 죽었기때문이다.   

 

폐비 신씨를 대신하여 왕비로 선택된 이는 여러 후궁중 윤임의 누이이며, 윤여필의 정실부인의 딸이던 숙의 윤씨이다. 희빈 박씨를 비롯한 다른 후궁들은 소실의 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윤왕후는 꽃다운 24세때 원자를 낳고 산고로 세상을 뜨고 만다.

 

당시 조정에는 공신세력, 과거를 통해 정계에 진출한 선비들을 배경으로 한 유림의 세력이 공존하고 있었다. 연산군때 무오사화로 거의 절멸되었던 유림파들이 연산군의 축출을 계기로 다시 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공신 세력은 차후 왕비를 후궁가운데서 뽑자고 주장한 반면, 유림파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원자를 보호하고 세자로 책봉되도록 하기 위해 폐위되었던 신씨를 복위시킬 것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유림파의 대표격인 다명부사 박상과 순창군수 김정은 신씨의 폐비건에 있어 임금에게 협박하여 압력을 가한 박원종, 성희안등을 대역죄로 단죄해 달라는 상소를 낸다. 하지만 공신 세력과의 알력에서 오히려 밀리면서 그들이 유배지를 향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남곤과 심정을 비롯한 대사헌 권민수, 사관 이행등의 후궁을 배경으로 한 공신세력과 사간원 정언 조광조을 위시하여 이판 안당, 병판 이장곤, 직제한 김안국등의 선비세력이 치열하게 대립하게 된다. 이 때 홍문관 직제학 김안로는 양시론을 내세워 조정의 갈등을 무마한다. 이에 중종은 그를 신임하여 중용하게 된다. 원자의 외숙인 윤임은 김안로가 왕의 신임을 받는 것을 보고 그와 결탁하기 위해 결혼 동맹을 맺는다. 윤임의 질녀 효혜공주와 김안로의 아들 김희의 혼사가 이루어진다. 결국 새로운 왕비는 윤임의 일가인 윤지임의 딸로 간택된다. 이는 윤임과 김안로가 그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계략의 일환이었다. 

 

한편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을 얻어 초고속으로 승진을 거듭하고,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통한 왕도정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조광조는 좋은 인재를 얻기 위해 현량과를 설치하여 양반이 아닌 가문에서도 학식을 갖추고 어진 사람이라면 벼슬에 참여할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만든다. 조광조가 대사헌이 된 이후 나라의 풍습과 관리의 기강이 바로 서면서 조광조에 대한 칭송이 백성들 사이에서 높아만 간다. 이에 심정, 남곤등의 공신 세력은 위협을 느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후궁들을 통해 중종과 조광조 사이를 이간질 함으로 유림파를 제거하려 한다.  

 

이즈음 혈기왕성한 젊은 선비들은 반정때 공신들에게 벼슬이 남발되었음을 주장하며 삭훈할 것을 상소하나, 중종이 이에 화답하지 아니하자 사림의 세력들은 빗발치는 상소로 중종에게 압박을 가한다. 심지어 중종이 간언을 듣지 않자 선비들이 모두 사직 사표를 내고 벼슬을 내던짐으로 삼사가 텅비게 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이러한 유림의 압력에 못이겨 중종은 할 수 없이 공신들의 삭훈에 대한 간언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중종은 사림세력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중종의 마음의 변화가 일 즈음, 공신 홍경주의 딸 희빈 홍씨는 심정과 남곤의 사주를 받아 주초위왕이라고 세겨진 나뭇잎들을 중종에게 보여주며 조광조가 역적모의를 하고 있다고 모함한다. 이미 죽은 공신 박원종의 딸 희빈 박씨도 이에 동조하여 조광조를 모함하자 중종은 홍경주, 심정, 남곤등에게 밀서를 내려 조광조의 무리를 제거토록 한다. 이리하여 조광조는 샤약을 받게되고 나머지 사림파의 선비들도 죽거나 쫓겨나고 만다. 또한 그들을 지지하던 병판 이장곤, 영의정 정광필, 우의정 안당등도 사직, 파직 당한다. 3사의 선비들은 모두 항의의 표시로 사직하고 곧 조정은 남곤, 심정의 일파로 가득차게 된다. 이 사건을 기묘사화라 한다. 

 

이즈음 왕후 윤비의 작은 오라버니 윤원형의 첩 난정이라는 요녀가 등장한다. 난정은 권력에의 욕심으로 똘똘 뭉친 요사한 여인이었다. 또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온갖 모략, 게략을 아끼지 않는 여인이었다. 난정은 윤왕후를 만나서 정치에 눈을 뜨게 만든다. 오랫동안 공주만을 번번히 생산하면서 정치 세력 다툼의 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윤비와 난정,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윤왕후의 이 세력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남곤, 심정일파는 물론 윤임, 김안로의 세력을 꺽어야 한다.   

 

난정의 예상과 같이 남정, 김안로는 심정 일파의 탁핵을 받아 귀양을 가게 된다. 한편 난정은 동궁의 생일날 죽은 쥐를 동궁 뒤담에 달아 놓아서 동궁을 저주하는 방자를 행한다. 이는 희빈 박씨와 복성군을 모함하기 위함이다. 이로 박희빈은 누명을 쓰고 폐위되어 궁을 쫓겨난다. 그리고 후에 김안로가 귀양에서 풀려나 고위직에 복귀하게 되었을 때, 경빈 박씨와 복성군, 그리고 심정을 함정에 빠뜨려 사약을 받게 한다. 그리고 이에 반대 상소를 냈던 영의정 정광필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직하게 되고 김안로는 영의정의 된다.

 

이제 중종의 은총은 윤왕후에게 쓸리게 되고 결국 경원대군을 생산하게 된다. 임금의 사랑을 받는 윤비는 난정의 사주를 받아 중종에게 김안로와 윤임이 중궁을 폐하고 경원대군을 제거하려한다는 모함을 한다. 중종의 추궁을 받던 윤임은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김안로를 배신한다. 대역죄로 모함을 받은 김안로는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하나 하나 윤왕후의 정적들이 제거된다. 이제 마지막 남은 적은 윤임과 세자이다.

 

난정은 윤원형을 시켜서 세자의 동궁에 불을 놓아 세자를 살해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 일 후에 윤원형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윤원형은 극형에 처할 위기에 놓인다. 이 때 임백령이 나서서 윤원형만이 아니라 윤임도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로 인해 두 사람 다 처벌을 면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난정의 미리 세운 계책이었다. 중종은 병이 들어 회복하지 못할 것임을 깨닫고 세자에게 전위조서를 내린다. 중종이 승하하고 세자가 왕위에 오른다. 이가 인종이다.

 

인종은 어진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하지만, 6개월이 못되어 삼십세를 갓 넘긴 나이로 죽게된다. 중종의 죽음에 식음을 전페하고 슬퍼하며 몸을 보살피지 않은 때문이다. 또한 난정의 부추힘을 받은 윤대비의 진노로 말미암아 뙤약볕에서 석고대죄를 함으로 몸이 극히 허약해 진 것이다. 인종이 폐비 신씨를 위해 폐비집을 폐비궁이라 부르고, 폐비에게 먹을 양식과 나무를 공급한 것에 대해 윤대비가 진노했기때문이다. 인종은 죽음을 앞두고 왕비 윤씨의 아들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긴다. 이 경원대군이 명종이다. 명종은 불과 열두살에 왕이 되었기에 왕후 윤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한다. 왕후 윤씨가 대권을 잡게 된 것이다.  

 

난정은 마지막 남은 정적인 윤임을 제거한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이조판서 유인숙, 좌의정 유관등도 귀양을 보내어 사약으로 죽게 만든다. 이에 간관과 언관들이 연명하여 그 부당함을 상소하자 난정의 사주를 받은 윤대비는 선비들을 벼슬에서 쫓아 내고 귀양을 보낸다. 이것이 을사사화이다. 이렇게 을사사화가 끝나자 소인배의 무리가 조정을 가득채운다. 난정의 손 끝에서 모든 벼슬자리들이 나오면서 윤원형과 난정은 왕과 대비조차 따를 수 없는 권세를 누린다. 난정은 윤대비에게 함경도 설봉산에 있던 보우라고 하는 중을 천거하여 불교의 세력이 점점 커지게 된다. 

 

명종이 이십이 넘어 정치를 넘겨받은 이후에도 윤대비는 명종임금의 뒤에서 정치에 관여한다. 윤대비가 육십오세를 일기로 죽자 윤원형도 벼슬이 떨어지고 멀리 난정과 함께 피신한다. 그런데 이미 난정이 독살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윤원형의 전실 김부인이 형조에 이를 고발함으로 난정은 두려움에 떨던 중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고 만다. 윤원형 역시 금부도사가 잡으러 당도했다는 것을 알고 자결을 한다.

 

요녀 난정을 비롯한 모든 세력이 끝나고 다시 조정에는 조광조의 후예들이 자리를 잡는다. 윤대비가 죽고 난 후 시호를 문정왕후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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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후계 구도는 어쩔 수 없는 권력다툼을 일으키게 되어 있는 것일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에  연루 될 수 밖에 없는 건가? 어찌 그리 왕들은 어리석은 사람처럼 뻔해 보이는 모함과 계략에 속아 넘어가는가? 아니면 왕도 권력 투쟁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현실의 정치에 있어 가장 발달한 정치제도라하는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오늘날도 과거와 같은 권력다툼에서 진실은 외면당하고, 거짓이 난무하는 상황이 비슷하지 아니한가? 진정 백성, 국민들의 복지와 안위는 뒤전이고 사리사욕에 눈이 먼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그 옛날의 악몽을 보는 듯 하지 않은가? 진정 국민을 위하는 통치자를 찾기가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찾아 본 단어들: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가면 읽다보니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연부역강:나이가 젊고 기력이 강함

불차탁용: 계급의 차별을 밟지 않고 특별히 벼슬에 봉함

백의정승: 유생으로 있다가 단번에 정승에 오른 사람

산릉: 국장을 하기 전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새 능

여막: 무덤 가까이 지어놓고 상제가 거처하는 초막

대경대법: 공명정대한 원리와 법칙

시강원: 조선시대 왕세자를 교육하던 관청

홍두깨: 다듬이질 할 때 사용하는 나무로 된 방망이

체임:벼슬을 갈아냄

외전: 임금이 거처하는 전각을 내전에 비하여 부르는 말

안석: 벽에 기대놓고, 앉을 때 몸을 기대는 방석

별은전: 나라에서 특별히 내리던 혜택이나 대우

곤전:중궁전

편전: 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궁전

퇴선: 임금이 밥상에서 물린 음식, 제사가 끝나고 남은 음식

도제조 (都提調) [명사] <역사> 조선 시대에, 승문원, 봉상시, 사역원, 훈련도감 따위의 으뜸 벼슬. 정승이 겸임하거나 정승을 지낸 사람을 임명하였으나, 실무를 보지는 않았다.
지밀(至密) <역사>1.지극히 은밀하고 비밀스럽다는 뜻에서, 임금이 늘 거처하던 곳을 이르던 말. 대전.2.각 궁방(宮房)의 침실.
탈고신(奪告身)[명사] <역사> [같은 말] 수직첩(죄를 범한 벼슬아치로부터 직첩을 빼앗아 거두어들이던 일).
부처 (付處)[부ː처][명사] <역사> [같은 말] 중도부처(벼슬아치에게 어느 곳을 지정하여 머물러 있게 하던 형벌).

합문 [閤門] 고려 및 조선 초기 조회(朝會)•의례(儀禮) 등 국가 의식을 맡아보던 관서

사후 [伺候] ①웃어른을 옆에서 받들어 모심. ②동정을 엿보거나 탐색하는 것을 이름.

조체 朝體 :조정(朝廷)의 체면(體面)과 위신(威信)

(眞書) [진서] 
1. 예전에, 우리글을 언문(諺文)이라고 낮춘 데에 상대하여 진짜 글이라는 뜻으로 ‘한문3’을 높...
2. ‘해서6’(楷書)를 속되게 이르는 말.

영창 (映窓) [영ː창][명사] <건설> 방을 밝게 하기 위하여 방과 마루 사이에 낸 두 쪽의 미닫이.

협문 (夾門) [명사] <건설> 1. 삼문(三門) 가운데 좌우에 달린 작은 문. 동협문, 서협문 따위가 있다. 2. 대문이나 정문 옆에 있는 작은 문.

운권청천 (雲捲晴天) [명사]
(1.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갬)
(2. 병이나 근심 따위가 씻은 듯이 없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봉미선 (鳳尾扇) [봉ː미선]

[명사] <역사> 봉황의 꼬리 모양으로 만들어 의장(儀仗)으로 쓰던 부채.

망유기극 (罔有紀極)

[명사] 기율(紀律)에 어그러짐이 매우 심함.

정국공신 (靖國功臣) [정국꽁신]

[명사] <역사> 조선 시대에, 연산군을 내쫓고 중종을 추대한 공신들에게 내린 훈호(勳號). 중종 1년(1506)에 중종반정 유공자인 성희안, 박원종, 유순정 등 117명에게 내렸는데 뒤에 기묘사화의 원인이 되었다.

 (運平) [운ː평]

[명사] <역사> 조선 연산군 때에, 여러 고을에 널리 모아 둔 가무(歌舞) 기생. 이들 가운데서 대궐로 뽑혀 온 기생을 흥청(興淸)이라고 하였다.

재배:두 번 절함

입대: 궁중에 들어가 임금을 뵙고 자문에 응함

진알:높은 사람에게 나아가 뵘

합계: 홍문관, 사헌보, 사간원 중 세관사 또는 두관사가 합동으로 올리는 계사

계사:공사나 논죄에 관하여 임금에게 올린 글이나 말.

지방:신주를 모시지 않은 집안에 차례나 기제사를 지낼 때 종이에 써서 모신 신위

신위: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할 자리, 신주가 놓이는 자리

신주:죽은 사람의 혼을 의탁시키는 나무패

굴건제복: 상주가 상복을 입을 때 두건위에 덧쓰는 건과 제복

세자우빈객:세자를 보도(도와서 올바른 길로 이끔)하는 벼슬

후원: 승정원

은대: 승정원(고려시대의 한림원)

옥당: 홍문관의 부제학,교리,부교리, 수찬, 부수찬등의 벼슬 통틀어 일컫는 말

대관: 사헌부에서 대사헌 이하 지평까지의 벼슬

조보: 조선시대 관보

보교-두사람이 메도록 되어 있는 가마

사인교- 앞 뒤에서 각각 두사람씩 네사람이 메던 가마

덩- 공주나 옹주가 타고 다니던 가마, 덕응이라고도 함

연-왕이 거동할 때 타고 다니던 가마

부액-부축

삼회장저고리-깃,끝동,곁마기,고름를 본체와는 다른 색으로 한 저고리

침어낙안-미인을 보고 물고기는 물로 들어가고, 기러기는 땅에 떨어진다는 말...대단한 미인을 가르키는 말.

단순호치-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 말

염량세태-뜨거워졌다가 식어버리는 세상의 인심

스란치마-치마단에 금박을 박아 선을 두른 것, 용이나 봉을 새겼다. 예장용치마

 

내명부: 비빈(妃嬪) 중심의 궁녀조직을, 조선시대에 와서 궁중 여성의 풍속을 바로 잡으려고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재조직한 여관제도이다. 조선 초기 내관·여관 등으로 불린 궁녀조직이 성종대의 《경국대전》에서 내명부로 명시되었다.

이에 따르면 궁중의 여성 가운데 품계를 받은 자로서, 위로는 왕과 왕비를 보필하고 아래로는 잡역 궁인을 다스리는 자였다. 내명부의 기능은 내관과 궁관으로 크게 나누어지고, 품계에 따라 각기 고유한 직무가 부여되었다.

내관은 빈(嬪:정1품)·귀인(貴人:종1품)·소의(昭儀:정2품)·숙의(淑儀:종2품)·소용(昭容:정3품)·숙용(淑容:종3품)·소원(昭媛:정4품)·숙원(淑媛:종4품) 등의 정1품에서 종4품까지의 왕의 후궁이다

이조참의: 지금의 차관보

이조판서(정2품)-이조참판(종2품)-이조참의(정3품)-정랑(정5품)-좌랑(정6품)

정품은 문관, 종품은 무관

당상관 정3품이상의 벼슬을 가진 사람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직책에 있는 사람, 정사를 볼 때 대청(당)위에 올라가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사람에서 유래하였다. 당하관은 정책을 실행하는 기술직등이 이에 해당한다.

부마도위감- 임금의 사위에게 주는 칭호

판돈녕부사-임금의 외척을 관장하던 돈녕부의 종1품 관직

벽제소리-임금이나 고위 벼슬이 행차할 때 앞선 군졸이 길을 비키라고 큰소리를 내는 것

갑사댕기- 품질이 좋은 비단(갑사)으로 만든 댕기

모시행전- 바지 아래쪽을 묶는 각반과 비슷한것으로 모시로 만든 것

삼승버선-성글고 굵은 베로 만든 버선

아동판수 육갑외듯- 아무 뜻도 모르고 큰 소리로 그냥 외움

아동판수-어린 맹인

육갑-갑을병정...자축인묘...육십갑자.

삼한갑족-예로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

동반:문관, 서반:무관, 호반이라고도 함

장지: 방과 방, 방과 마루 사이에 있는 미세기 문

곡배:임금을 뵙고 절을 함. 임금은 남쪽을 향해 앉고, 임금을 마주보며 절을 하지 않고 동쪽이나 서쪽을 향해 절을 함 

승후:웃 어른에게 문안인사를 드림

제조상궁: 큰방 상궁이라고도 하고 상궁중 가장 지위가 높은 어른 상궁이다. 정4품

어백미: 임금에게 바친던 흰 쌀

뒷배: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돌보아 주는 일

교전비: 옛날에 혼례를 치르던 신부가 시집가면서 데리고 가던 여자 종

섬돌: 뜰에서 오르내리는 돌 층계

청목당혜: 예전에 기름에 결은 가죽신, 흰바탕이나 붉은 바탕에 푸른 무늬를 놓은 것으로 여자 아이들이 신던 신

하관: 광대뼈를 중심으로 얼굴 아래 턱부분

무의무탁: 몸을 의지하거나 의탁할 데가 없음. 홀로 외로운 처지를 일컬음

습의:나라의 의식을 미리 배워 익힘

항아: 상궁이 되기 전의 어린 궁녀를 이르는 말

자비:가마, 남여, 승교, 초헌따위의 탈 것을 통칭하는 말

토사곽란: 위로는 토하고

미삼;인삼의 잔뿌리로 악재, 식료품, 기호식품의 재료로 이르는 말

주지: 주장이 되는 요지나 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

초사: 처음으로 벼슬을 함, 또는 그 벼슬

별좌: 조선시대 각 관아에 두었던 정.종오품의 벼슬

고수련: 앓는 사람의 시중을 들어줌

관격:먹은 음식이 갑자기 체하여 가슴이 막히고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대소변이 통하지 않는 위급한 증상 

당의:여자들이 저고리 위에 입는 한복의 하나.

출무성:위아래가 굵고 가는데가 없어 비슷하다

대혼:임금이나 왕세자의 결혼

의지: 왕세손이나 왕대비, 왕비의 명령

면복: 국왕이 제례시 착용하던 관복

활옷:조선시대 공주나 옹주가 대례복으로 입던 소매가 넓은 옷

전안:혼례때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지고 가서 상에 올려놓고 절하는 예

진사립:명주실로 촘촘하게 늘여 붙인 갓

원삼: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입던 예복

창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입던 옷. 두루마기 안에 입던 옷...

산후발:산후발한

국궁:윗사람이나 위패에 존경의 마음으로 몸을 굽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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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dy Long Legs  진 웹스터 지음/ 김양미 옮김 / 인디고

 

초등3학년인 딸 아이를 위해 샀던 책이다. 딸 아이가 2~3일만에 책을 다 읽고서는, 좀 어떠냐는 질문에 읽을만 하다고 하더니...과연 이 책에서 내가 받은 느낌과 나의 딸이 받은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기본적인 느낌은 비슷할 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생각을 디테일한 면을 보여주는 단서를 잡아내는 면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을까?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의 주인공은 고아원출신의 소녀 제루사 에벗이다. 제루사 에벗은 사소한 일상의 행복을 잘 표현하며 명랑하고 당찬 모습으로 후원자인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쓴다. 또한 보다 무거운 주제인 행복, 사회주의, 교육, 종교의 문제들에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 작가 진 웹스터가 제루사 에벗(주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행복이라는 문제에 시종일관 높은 가치를 두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사회주의 이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교육의 가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 있는 것임이, 제루사에벗의 편지에 잘 나타난다. 하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태로를 나타내면서,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로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종교에 의해 강요당한다는 느낌이 싫었을까? 아니면 교회내의 분열과 다툼에 염증을 느낀 걸까?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하는 진취적인 모습보다는 종교적 기반을 둔 운명, 체념등의 종교적 태도가 비록 신에 대한 믿음, 기도등으로 위장되어 있지만 그것들이 스스로의 삶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행복을 방해한다고 느꼈기때문일까?

 

제루사 에벗은 고아원출신의 여자 아이로서 추억에 남을 만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생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 밝은 모습을 시종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의 작은 행복들을 쌓아가며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정작 중요한 건 엄청난 즐거움보다는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자세랍니다. 전 행복해지는 진짜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과거에 얽매여 후회하며 산다거나 미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최대의 행복을 찾아내는 거죠. 순간 순간을 즐기고, 즐기는 동안 은 제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할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을 산다기보다는 경주하고 있을 뿐이예요. 지평선 멀리에 있는 목표에 도달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죠. 한창 헉헉대며 달려가느라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풍경엔 눈길 한 번 못 주고 말이에요. 그라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늙고 지혔으며 목표에 도달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전 위대한 작가가 못 되더라도 길가에 앉아 작은 행복을 쌍하 올리기로 마음 먹었어요"

 

정신없이 앞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삶은 비슷한 것일까?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를 살았던 진 웹스터가 그의 분신이 에벗 제루사를 통해 이야기한 것이 현대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똑같으니 말이다. 그래. 삶을 살아가면서  멈추어 하늘과 숲을 바라보며, 밝은 햇살가운데 살아있는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사치일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의 나의 삶은 어떤 행복의 빛으로 가득차 있는걸까? ...너무 낭만적인 생각인가? 현실을 외면한 이상의 세계에 빠져있는 걸까? 하지만 가끔은 멈추어 서서 자신과 주위를 돌아 보는 것이 행복에 도움이 되리라.    

 

행복에 대한 주디의 생각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또한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어려움은 결코 행복을 방해할 수 없다. 그렇게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 어느 것도 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 제루사 에벗의 생각이다. 

 

"고아원에 제 사랑을 전해 주세요. 진심 어린 사랑을요. 시간이 흘러 어렴풋이 돌아보니 고아원 시절도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처음 대학에 들어 왔을 때는 다른 아이들이 누린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분한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안 그래요. 고아원 생활이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으로 생각되거든요.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된걸요. 어른이 된 지금, 전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답니다. 전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여자아이들을 많이 알아요. 그 애들은 행복에 익숙한 나머지 행복을 느끼는 감각이 두뎌져 버렸지만, 전 매 순간 제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느낀답니다. 그리고 아무리 속상한 일이 생겨도 그 사실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일을 (치통이라 해도) 재미있는 경험이라 여기고,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내가 어떤 하늘을 이고 있든, 나에게는 모든 운명과 맞설 용기가 있다.'는 말처럼.

 

삶에 대한 긍정적 마음은 행복에 가까이에 있다. 제루사 에벗의 키다리 아저씨는 바로 옆에 있었다. 제루사 에벗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저비도련님이 키다리 아저씨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제루사 에벗(주디)는 오랫동안 은인인 키다리 아저씨를 만날 것을 고대해 왔다. 그것을 간절히 원했었다. 하지만 정작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주위에 있었다.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 먼 미래에 있지 않으며, 바로 지금 자신의 주위에 있다는 것. 진 웹스터는 시종일관 그 점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라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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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가 있는 사회와 역사가 없는 사회

그 차이란 무엇일까? 문자가 있는 사회는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회는 역사를 소유하지 못한 사회가 되는 것일까?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문자가 있고 없고를 떠나 그 사회 구조가 어떠한가가 문제시 된다. 즉 차별이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차별없는 사회인가? 우리는 차별이 없는 사회를 꿈꾸지만 그 사회의 결국은 어떠할 것인가? 차별이 있는 사회는 절대 악인가?

 

문자의 존재는 정보의 존재로 이어진다. 정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차별을 유발시킨다. 정보를 가진자는 권력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지배를 받게 되는 계층이 된다. 그러므로 문자의 존재는 차별있는 사회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일 듯하다. 그러면 문자가 없다고 해서 정보가 없는 것인가?

 

세종대왕때 한글 창제를 반대한 사대부들은 왜 그랬을까? 서민들은 어려운 한문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문을 배울 수 있었던 사대부계층만이 그를 통한 정보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는 그들의 권력이었다. 쉬운 한글을 만들어 서민들도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된다면 그들의 권력기반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글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면 한글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의 권력의 향방은 어떠한가? 권력층과 비 권력층 사이의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즉 사회계층사이의 간격이 좁아진 만큼 계층의 이동이 용이해지고, 그러므로 그 열망도 더 커지게 되었다. 이는 계층간의 투쟁, 그리고 뺏고 뺏기는 싸움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발전 또는 진보가 존재하게 된다.

 

그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차별이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차별은 극복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 차이가 너무 커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열의 이동이 일어나지 않고 차가운 사회로 탈바꿈하게 된다. 아니면 그 엄청난 차이를 극복할 영웅이 나타나야만 역사는 이루어지게 된다.

 

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그 차별이란 것은 항상 그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차별에 대한 분노가 특히 그러하다. 차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신분에 만족하는 자에게는 그 차별을 뛰어넘으려는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차별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자는 분출하는 에너지에 의해 크고 작은 혁명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들이 역사를 구성하는 사실들을 형성하게 된다.

 

역사는 도전하는 자와 응전하는 자 사이의 투쟁에서 생겨난다. 도전하는 자는 새로운 권력을 쟁취하려하고, 응전하는 자는 그것을 지키려한다. 그 다툼은 역사에 남을 만한 충돌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이른바 발전이라는 것이 결과로 나타난다. 투쟁이 없는 곳에 과연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원시사회는 오랜 세월동안 발전이 없이 원래의 원형질의 삶의 모습을 간직해 왔다. 수천년, 수만년전의 수렵과 채집의 생활이 그대로 배여 있다. 왜 그 사회는 발전하지 못했는가? 그들 사회는 기본적으로 차별이란 존재하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차별을 뛰어넘어려는 시도도 없을 뿐더러 차별에서 비롯되는 투쟁도 없을 것이다. 이러하여 그 사회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특별한 사건들을 소유하지 못한 사회가 되어 역사는 형성될 수 없는 입장에 있게 된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우리 모두 지향하는 세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사회는 역사없는 사회가 될 것이며, 발전이란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한 사회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비록 세계 곳곳에 그러한 사회들이 부분적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개인의 발전도 마찬가지이다. 차별받는 것에 대한 분노, 상위 계층으로의 열망등은 행동하려는 강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만족보다는 불만족이 그러한 열을 발생시키는 정도가 더 컬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을 진보하고 발전하게 만든다.

 

발전은 있지만 불평등한 세상, 평등하지만 발전이 없는 세계...어떤 것이 더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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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희 지음/ 사게절 출판사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벽초 홍명희는 월북작가로 북쪽에서 고위직까지 올랐던 작가이다. 그의 작품의 탁월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력으로 그의 작품들은 금서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언제나 그 이름에 값하는 명성을 얻는 법, 오래전 부터 임꺽정은 한국 문학의 한 거봉으로 인정받는 책이었다. 전 10권으로 되어 있는 이 대작을 과연 다 읽을 수 있으려나? 더군다나 읽다보니 꽤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꽤 생소한 어휘들이 많이 나오며, 예스러운 표현들 및 조선시대 생활과 관련된 용어, 그 당시의 관직등이 난해하여 때론 외국어로 된 책을 읽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않다. 그냥 쭉쭉 읽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ㅠㅠ ... 하지만 사전을 갖다 놓고 찾아 가며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듯, 옛문화에 대한 식견도 넓힐 수 있을 듯도 하다.

 

어찌되었든 제 1권 봉단편...연산군 시대에 홍문관 교리 벼슬을 가지고 있던 이장곤이 1편의 주인공이다. 연산군에게 직언하다 밉보여 유배갔다가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도망하던 중 함경도 함흥땅에서 백정 양주삼의 딸 봉단을 만나 어찌어찌하여 결혼을 하게 되는데, ...

이 혼사는 양주삼의 동생 양덕팔이가 이교리의 사람됨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또한 봉단의 사촌인 임돌이... 이 돌이가 후일 임꺽정의 아버지가 된다. 이교리는 장모에게서 천대받고 백정 사위로 천시받아 가며 울분을 참아가며 지내다, 연산군이 좇겨나고 중종이 들어서면서 다시 옛 신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는 처 봉단을 잊지 않고 양주팔과 함께 한양으로 가게된다. 돌이도 봉단을 만나러 서울 왔다가 경기도 양주에 있는 백정 피선의 딸과 혼인을 올린다.

 

제2권은 피장편이다. 피장이란 동물의 가죽으로 물건을 만드는 장인을 이르는 말이다. 갖바치라고 불리기도 한다. 양주팔은 유명한 정희량에게서 배워 학식을 더하게 되고, 비론 천한 갖바치이자만 당대의 인물들과 교유를 나눈다. 그러나 사화로 인해 조광조 일파가 귀양가고 죽고들 난리가 난다. 그러한 와중에 갖바치 주위에는 여러 인맥들이 형성된다. 돌이의 딸 섭섭이는 갖바치의 아들과 결혼을 하고, 돌이의 아들 꺽정이는 갖바치를 선생으로 모시게 된다. 또한 꺽정이는 부평 구슬원의 노인에게서 검술을 배운다. 꺽정이는 백두산 구경을 갔다가, 거기서 운총이라는 처자와 장래를 기약한다. 그리고 남쪽으로, 제주도로 여행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임꺽정 이야기는 중종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 때 여러 사화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함께 숨쉬고 있는 터라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다지 흥미있게 다가 오지 않는다. 황석영씨의 <장길산>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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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환 지음/ 삼성문화사

 

성종은 태평성대를 열었던 왕이나, 여색을 좋아하여 수많은 비빈을 두었고 슬하에 스무명이 넘는 자녀를 두었다.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던 성종은  2년전에 혼례를 올린 한명회의 딸이 죽자, 궁녀 윤씨에 애정을 갖는다. 그리고 윤비에게서 연산이 태어나고 윤숙의는 왕비가 된다. 성종이 다른 후궁들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지자 중궁전 윤씨는 다른 후궁들을 모해하려 하지만 이로 인해 대비전에 미움을 사게 된다. 그리고 성종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냄으로써 결정적으로 폐서인되게 된다. 이후 인수대비(덕종의 비)와 정귀인, 엄소용의 계략에 의해 윤씨는 결국 사약을 받게 된다.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던 날, 사약과 전지를 전할 명을 받을 허종, 허침 형제는 입시할 때 종침교에서 낙마하여 다행히 폐비 윤씨의 사사에 연루되는 일을 피하였다. 이렇게 그의 누이 허부인의 선견지명으로 그들은 후일 연산이 자신의 모친의 복수를 할 때 목숨을 잃는 일을 피하게 된다. 그들의 이름에서 종침교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한 이극균과 이세좌는 서로 숙질간으로 후일 이 일로 인해 참화를 겪게 된다.

 

성종 38세에 승하하고 연산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연산이 왕이 된 후 폐비를 위한 사당을 짓고 효사당이라 이름한다. 예조참판이며 신숙주의 손자인 신종호가 이에 반대한다. 그리고 대사헌 김심, 대사간 안윤손등이 이에 동조한다. 더구나 친제에 대한 반발은 특히 심하다.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이 사관이 되어 세조의 찬탈을 사초에 기록한 일로 인해 김종직을 비롯한 사림파가 훈구파에 의해 숙청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를 무오사화라 한다. 이 때 연산의 황음을 규탄하던 많은 사림파 사람들이 죽게 된다. 

 

연산은 장녹수란 여인이 연산의 총애하며 연일 잔치, 향연등으로 국고를 낭비한다. 연산이 왕위에 오른 후 폐비의 모친 신씨는 임사홍을 찾아가 도움을 받는다. 임사홍은 장녹수를 잔치에 초대하여 신씨와 만나게하고 장녹수는 폐비에 대한 자세한 내력을 듣게 된다. 그리고  폐비의 피가 묻은 삼베조각을 받게 된다. 장녹수가 이를 왕에게 고한다. 왕은 폐비당시의 시정기를 가져 오게 하여 살펴보고 신씨를 입궐시켜 자초지종을 직접 들은 연후에 정귀인과 엄소용을 참수한다. 그리고 효사당을 찾아가 친제를 지내며 복원시키기를 제헌왕후라 하고 그 능을 회능이라 한다.    

 

.....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중종

성종의 부인 윤씨에게서 연산군이 났으며, 연산군이 좇겨난 후, 연산군의 이복동생 진성군이 왕으로 추대받아 중종이 된다. 중종때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가 다시 사화에 휩쓸려 죽어 나갔는데...최근에 읽고 있는 임꺽정이 활동하던 시대가 연산군으로부터 이어진 중종때인 듯 하다.

 

역사소설등을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대강의 흐름을 쫓을 수 있지만 때로는 모르는 내용을 찾아도 보고, 정리 기록해 나감으로 더 많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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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의 칼날 제2장 예술과 생명의 실험/ 해부학 및 베이컨 주의/찰스 길리피스 지음

 

17세기 천재들은 자연주의, 경험주의, 베이컨주의등을 과학의 기초로 사용하였다. 자연주의는 과학의 주요 요소가 되기 전에 이미 예술의 표현 양식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경험주의는 물리학보다 생명의 과학에서 더욱 명확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르네상스의 항해자, 기술자, 장인 등의 기술적 성취는 베이컨주의의 배경을 이루었다. 베이컨주의는 과학을 개념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실험과 관찰을 통해 귀납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학문으로 만들었으며, 자연의 힘을 조종할 능력은 자연을 이해한 보상으로 오는 것이라고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연주의와 해부학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자연을 순수한 탐구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나타냈다. 그러한 태도는 자연으로부터 윤리나 교훈을 끌어내려는 경향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를 자연주의라 부를 수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의 정신은 자연에서 기하학적 형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형상화하려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들은 입체기하학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과학일반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과학의 언어인 수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 있던 그 당시의 과학은 서술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기술적(묘사적) 과학은 사물을 관찰하여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3차원의 모습을 평면상에 재현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학의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 과학적 방법인 투시화법과 같은 방법들이 미술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한편 인체를 자연주의적(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르네상스의 취향은 인체 해부학 연구로 이끌었다. 

 

생명 과학의 발달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는 르네상스 해부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이 출판된 1543년 베살리우스는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그의 책은 인체의 멋진 목판화를 제공하고 있다. 과학과 미술이 자연주의 안에서 함께 어우러져 나타났다.

 

코페르니쿠스 이론은 인류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베살리우스의 사상을 비롯한 다윈 이전의 어떠한 생물학자들의 연구도 인류의 세계관까지는 바꾸지 않았다. 물리과학의 경우 이론의 심화는 사실의 확장에 선행하는 반면, 생명과학의 발전 순서는 그와는 반대였다.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으로부터 하비의 혈액 순환의 실증에 이르기까지 사고의 움직임은 물리학사의 어떤 에피소드에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흥미롭다. 하지만 그 업적에는 한계가 있다. 뉴턴은 중력이론으로 케플러의 행성 법칙과 갈릴레오의 역학을 통일하여 물리학의 전 문제가 망라된 운동하는 물체에 관한 수리 과학을 수립했다. 그러나 하비의 혈액 순환은 해부학과 생리학을 결합시킨 데 불과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은 나름대로 그 세계의 진리였다. 그의 분류학은 수백만의 생명 형태에 질서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은 기본 전제를 가지고 전개되었다. 그 기본 전제인 목적에 대한 고려, 기능에 대한 목적론적 분석은 다윈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을 지배하였다. 생물학은 물리학에 비해 볼 때 덜 급진적인 쪽이었다. 또한 생물학자들은 수리 분야의 학자들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기질의 소유자들이었다. 수리 분야의 학자들이 추상적인 것, 정확한 것에 주목했다면 이들은 오히려 생명과 육체에 중점을 두었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생명과학이 객관성을 지닌 과학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베살리우스의 강의 및 강의내용이 수록된 책은 세가지 요소로 인해 성공을 거두었다. 권위있는 지식, 해설적 방법 그리고 조직적 접근. 베살리우스의 주요한 공헌은 어떤 단일한 세부사항이나 방법에서의 독창성보다, 오히려 이 세 요소를 짜 맞추어서 해부 실습의 체계를 세운는 종합적 수완에 있었다. 베살리우스 자신은 책을 통해서보다는 시체로 해부학을 배우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이렇듯 베살리우스가 일으킨 혁신은 실물 교습의 방법이었고, 이후 그것은 자연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는 기법이 되었다.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는 고도로 체계적인 저작이다. 베살리우스가 체계적으로 저술했다기 보다는 그의 연구 대상이었던 육체 자체가 체계적이었다. 그의 연구 구조는 대상(신체)의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범적인 해부학 저술일 뿐 아니라, 모든 관련 사실이 질서 정연하고 자연으로부터 직접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과학의 역사상 최초의 저술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이론은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실이 거기에 있었다. 베살리우스 저술의 영향은 낡은 과학의 안정성을 무너뜨리게 되고 해부학 전체가 세심한 관찰과 독립적 사고방식에 의하여 재건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게 되었다.

 

갈레노스의 낡은 이론

의학사에서 갈레노스의 위치는 물리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치에 비교할 수 있다. 갈레노스의 목적론은 사물의 목적에 관심을 가진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적인 태도와 신이 모든 것을 완전히 계획하고 있다는 플라톤의 신비 사상이 결합된 것이었다.

 

갈레노스는 심장의 기능보다는 간장의 우월성을 지지하였다. 갈레노스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간장은 영양분을 위장으로부터 공급받고 영양분이 풍부한 피를 생산한다. 이 피는 심장의 팽창박동(수축이 아니라)에 의해 우심방으로 빨려들어가고, 심장이 수축할 때 일부는 폐로 가며, 나머지는 심장의 격막(좌심방과 우심방을 가르는 근육막)을 통해 좌심방으로 나온다. 그리고 거기에서 페정맥을 통해 운반된 공기와 섞여서 생명을 주는 유동체로 밝은 적색을 띠고 동맥속에서 밀려갔다 밀러오며 신체에서 물결친다. 여기서 갈레노스가 보기에 폐정맥은 혈관이 아니라 기관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간장에서 나온 정맥혈은 신체 중의 검은 자양분을 좀 더 서서히 운반한다. 갈레아노의 이론에는 혈액의 순환 개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갈레노스의 이론의 난점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갈레노스는 심장의 주된 역할이 흡인이라고 보았지만, 사실 심장근육의 구조는 심장의 역할이 수축과 분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둘째, 그는 폐정맥을 혈관이 아니라 기관으로 보았지만, 사실 폐정맥은 해부적으로 혈관이라는 것이다. 즉 폐정맥은 공기가 아니라 피로 가득차 있으며, 폐정맥은 혈관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폐정맥은 기관과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째, 심장 격막을 통해 피가 전달된다는 것은 완전히 비이치적인 주장이었다. 이 격막은 두껍고 강한 근육이다. 베살리우스도 이 격막을 조사했지만 구멍이나 통로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윌리엄 하비(1578~1657)의 혈액 순환 이론이 1628년 출판될 때까지 사람들은 이 오류를 받아들여 왔다. 

 

 혈액의 소순환을 밝힌 미구엘 세르베토(1511~1553)

혈액이 폐를 거쳐서 우심실에서 우심방으로 이행하는 혈액의 소순환은 1553년 출판된 세르베토의 <기독교의 부흥>이라는 책에 기술되어 있다. 그는 자연신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연을 읽고 파악함으로 신의 말을 통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신의 단순한 말을 통해 신학자들에 의해서 생긴 허영과 부패를 뛰어 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칼빈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고 화형을 당하고 말았다. 

 

세르베토는 격막을 통한 전달은 없다고 말했다. 그 대신 "이 피는 교묘한 기교를 써서 폐 속의 어떤 도관을 통과한다. 폐에 의하여 그것은 밝은 색을 띠게 되며 폐동맥에서 폐정맥으로 옮겨 간다. 다음에 그 정맥에서 공기를 흡입하는 사이에 공기와 섞이며 배기할 때 불순물을 씻어낸다."라고 썼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피가 순환할 가능성을 영향력있는 누군가에게 암시하는 일은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그것은 피가 격막을 통하여 심장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스며 나오고 그 동안 생명의 영에 의해서 깨끗해진다고 하는 설을 폐 우회설로 대치시켰을 뿐이었다.

 

파브리키우스(1537~1619)의 판막 발견

파브리키우스는 1603년 정맥에서 발견한 판막에 관하여 기술한 해부학 저술을 출판했다. 그것은 피를 한 방향 즉 심장으로만 흐르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시대까지는 해부학자들은 혈액의 순환을 올바로 파악하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혈액의 소순환, 그리고 판막의 존재, 심장의 근육의 구조등은 모두가 혈액 순환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혈액의 순환을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 방법이었다.

 

윌리엄 하비(1578~1657)의 혈액 순환 이론

하비는 논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기본적인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관찰과 실험을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탐구의 무기는 경험 그리고 그것을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이론이 결정되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진실하고 풍부한 결실을 맺는 자연철학은 모두 이중의 사닥다리, 즉 상승하는 것과 하강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실험에서 공리로 상승하는 사닥다리와 공리로부터 새로운 실험의 고안으로 하강하는 사닥다리다" 라고 그의 방법론을 설명한다. 하비는 이러한 상승하는 사닥다리와 하강하는 사닥다리를 적절히 사용한, 탐구와 경험주의를 잘 배합된 방법으로 혈액 순환 개념에 다다른다. 

 

윌리엄 하비의 <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하여>(1628)은 귀납적 과학의 고전이다. 그 책은 귀납적 추론의 모범을 보여준다. 각 장마다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한 간결한 요점이 적혀있다. 예를 들면 그는 냉혈동물 생체해부를 통해 심장근육의 수축은 펌프작용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관찰은 폐순환의 정당함은 물론 더 나아가 동맥에서 정맥으로 흐르는 전체적인 혈액 순환이 합리적 결론임을 시사하였다. 그리고 혈액의 순환에 대한 결정적 논의가 피의 양에 관해서 전개되었다. 심장의 용량, 속도 및 박동으로부터 계산해 보면 심장은 한 시간에 인간의 체중보다도 많은 양의 혈액을 뿜어낸다. 이 양은 사람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물의 최대량으로 만들어진 것보다도 많은 양이다. 이 많은 양의 피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혈액이 순환한다는 것이야 말로 이러한 의문점에 대한 단 하나의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혈액은 심장의 박동에 의해 순환로를 끊임없이 도는 일종의 순환운동을 한다는 점이 필연적으로 제시되었다. 하비의 혈액 순환 이론이 완성된 것이었다.

 

모세혈관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 혈액 순환 이론의 단 하나의 난점은 피가 세동맥에서 세정맥으로 어떻게 흘러가는가이다. 그러나 하비는 모세혈관의 존재를 가정했으며, 1661년 말피기(1628~1694)가 현미경을 사용하여 개구리의 폐기관에서 모세혈관을 확인함으로 그의 가정이 증명되었다. 

 

하비의 견해는 말피기의 발견이 있기 이전 30년간이나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비에 반대의 강력한 이유는 피의 흐름의 수력학은 단 하나의 자연 현상을 확증하기 위하여 신체의 철학 전체를 파괴해버렸다는데 있다. 하비의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서로 부터 이어져 오던 목적론적 견해와이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비 업적은 갈릴레오의 업적과 같은 과학의 선구적 개념이 되었다. 그의 과학은 측정에 기반을 둔 객관적인 새과학이었으며, 성질, 체액, 목적, 내재적 경향 등을 중심으로 하는 옛 과학을 대신했다. 그의 과학적 사고와 질서에서는 주관성과 개성적인 것이 배제되어 있었다. 갈릴레오는 물리학으로부터 생물학적 비유를 추방했다. 하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계론적인 사고를 유기체 연구에 도입했다. 이윽고 데카르트가 인간속에서 기계론를 발견하게 되었다.   

 

베이컨의 실험주의 및 실용주의

하비와 베이컨의 관계는 과학을 실천하는 자와 그 방법에 관하여 논의하는 자의 관계이다. 베이컨은 하비의 혈액순환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도, 케플러의 행성의 법칙도 수용하지 않았으며, 갈릴레오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천재적인 과학자라기 보다는 과학세계에서는 평범한 한 사람의 시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새 과학의 철학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서 지식을 조직하는 새로운 확파를 창시하였다. "내가 과학의 발견을 위하여 제안하는 과정은 지혜의 예리함이나 힘에는 거의 의존하지 않고 재능이나 이해력 여하를 막문하고 모두 동일한 수준에 놓는 것이다." 베이컨 철학은 과학이 공공적으로 그리고 공중에의 관심에서 수행되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주장하였다.

 

베이컨 저작의 주제는 세가지, 즉 학문의 가치와 존엄의 실증, 학문을 쇠퇴시키고 쓸모없게 만드는 장애의 분석, 학문을 개혁하고 진보시키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베이컨은 과학의 학도는 아니었지만 대단히 날카로운 인간학의 학도였다. 지성 자체에 대한 지성의 방해 작용을 논하는 점에서 그점이 잘 나타난다. 그는 우리 오성의 구조 자체에 정신의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고 보았다. 베이컨은 이 생득적인 눈가리개들을 "우상"이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있다.

 

베이컨의 우상

먼저 "종족의 우상"은 우리의 공통된 천성으로부터 오는 왜곡이다. "인간 이해력에는 의지와 애정이 스며든다....인간은 스스로 진리라고 믿는 것을 실제의 진리보다도 쉽게 믿어버린다."

 

또한 "동굴의 우상"은 만인 공통의 이 오해의 경향(종족의 우상)과 개인의 편견 및 정열이 복합된 것이다. 각 개인은 "자연의 빛을 굴절시키고 색을 상실케하는 그 자신의 동굴 내지는 은신처를 가지고 있다."

 

"시장의 우상"은 "사람들의 교제나 연합에 의하여 형성된 우상이다. 말의 부적절한 선택은 오성을 놀랄 만큼 저해한다." 말에 가득찬 오류를 확인하는 것은 수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그때 이후로 과학 언어에 정확성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소홀히 여겨진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은 철학자의 체계적 독단론이다. "모든 기성 체계는, 비현실적이고 연극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이 창조한 세계를 표현하는 연극에 불과하다." 데카르트는 고대 철학들의 근거 없는 많은 가정 - 원의 완전성, 자연에 내재된 목적이라는 생각등의 근거없음을 한 사람의 철학자도 지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언어의 분석과 관련된 이 "체계의 추방"이 18세기 계몽사조의 과학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이것은 과학에 상당한 건전성을 가져 왔지만 지나치게 건전하게 보이게 하는 결점도 조장했다. 말하자면 상상력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것은 미세한 사실의 축적을 장려하였지만, 이론을 막았다. 그리고 박물학을 장려하였지만 추상적인 일반화를 억눌렀다. 베이컨에게는 사소한 사상이나 추론을 확장하여 세계 체계에 도달하려고 하는 케플러,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태도가 없었다.

 

베이컨의 과학 방법론

베이컨에 의하면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과학적 방법은 세개의 서로 다른 단계로 이루어 진다. 귀납적 방법의 적용, 보편적인 박물학의 창조, 과학의 공공 연구 조직이다.

 

귀납은 과학의 절차를 바꿈으로 공허한 합리주의를 뜯어 고치고 새롭게 출발하게 한다. 스콜라학파는 원리에서 출발하여 결론을 연역한다. 그러나 베이컨은 개별 사실에서 출발하여 모든 관련 사실들을 망라하여 차츰차츰 일반적 원리로 높여간다. 베이컨의 근대과학에의 큰 기여는 실험에 대한 강조에 있다. 17세기 이후의 과학을 르네상스 및 그리스 과학으로 부터 명료하게 구분하는 것은 실험이다. 자연의 관찰 결과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연의 인공적 재현 즉 실험의 관찰을 중요시 한다. "자연을 노하게 하면, 그것은 가면을 벗고 진면목을 드러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진정한 박물학이 창조된다. 베이컨의 완성하고자 했던 방대한 박물학은 협력과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과학은 인간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때문에 과학을 유지하고 조직하는 것은 국가의 임무이다. 이렇게 과학은 공공 연구조직을 갖게 될 것이다.  

 

베이컨 이후의 과학의 발전 방향

갈릴레오 이후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이 지향하는 바와 같은 인간적인 면을 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베이컨의 과학은 인도주의의 모습을 띠게 되었으며 이는 많은 과학자들에게 매력적인 생각이었다. 과학은 부분적으로 베이컨이 의도했던 대로 되었지만 베이컨의 방법에 따라 이루어진 발견은 전혀없었다. 그리고 과학사상도 베이컨이 예상했던 것보다 혹은 베이컨이 뜻했던 것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우아하며, 지적인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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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예술에 도입된 자연주의는 인체의 연구에 큰 영향을 주면서 해부학의 발달에 기여하였다. 인체에 대한 오랫동안의 잘못된 이해는 하비의 혈액 순환 이론에 의해 바로 잡히게 된다. 그리고 베이컨에 의한 실험주의, 실용주의 과학관이 주장되면서 근대과학의 큰 특징이 형성된다.

 

베이컨의 우상이론은 흥미롭다. 지성의 올바른 작용을 방해하는 요소들...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인간의 경향, 진리를 찾고자 하나, 실체에 다가가기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믿어버리는 인간 특유의 경향은 진리를 밝히는데 큰 걸림돌이다. 거기에 더해 개인적인 편견-다양한 환경이나 상황에서 생성된 편견등이 진리로 부터 얼마나 우리 자신을 멀리 떨어지게 하는지 개탄할 만하다.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 부터 받는 영향들, 그리고 사용하는 언어의 불완전함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지는 진리와의 갭, 더더구나 특정한 체계속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그 체계밖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기 어렵게 되는 상황들...

 

그렇다면 인간의 이성으로 객관적 실체를 발견하기란 너무 지난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베이컨이 주장한 것처럼 귀납적인 방법 역시 그 한계가 있어 실체로 가는 길을 밝혀줄 수 없다면, 그 무엇으로 하여 그 길을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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