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읽고 있다.

이 책의 초반부에 하이젠베르크가 고등학교 졸업할 당시 친구들과의 원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한 요점은 '물질을 이루는 기본요소는 실제적인가? 아니면 비실제적 대상일 수도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일차적으로 물질을 영원히 잘게 쪼갤 수 있는가? 아니면 최소의 기본 입자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마주치게 된다. 최소의 기본입자가 있다고 할 경우에도 문제는 또 있다. 경험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사물의 특징들이 기본입자에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는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에 대해서는 실제론적 관점에서 보는 경우와 관념적인 관점에서 보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 아인쉬타인을 비롯한 일단의 학자들이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해석에 반대하며 주장하던 바는 실제론적 관점에서 보는 경우라 하겠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원리는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후자의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했던 하이젠베르크는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견해를 품고 있었던 듯 한데, 그가 읽은 플라톤의 책에서는 기본 입자의 구조가 4가지 정다면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에 대해, 처음에는 어이없는 주장이라 생각했으나, 결국엔 그 뒤에 숨어있는 의미는 수학적구조가 기본입자의 구조로 나타난 것이라 이해하게된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물질 세상과 그것을 이루고 있는 미세단위가 꼭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아는 '믈'이란 물질과 그 현상은 분명히 그 '물'을 이루는 산소나 수소와는 다른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감각되는 물질의 성질들은 말 그대로 우리의 감각기관과 그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일진데, 우리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미세세계의 기본입자들이 반드시 경험적으로 인지되어야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부분과 전체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물질들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원자는 전자,양성자,중성자등 같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온 만물이 같은 구성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구성물로 이루어진 존재들 모두가 다른 모습과 현상으로 우리에게 인지되고 있으니, 전체와 부분이 다르다고 할 수 밖에...

 

현대물리학은 물질은 최소단위인 소립자들이 실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비실체적인 것일 가능성에 큰 확신을 두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면 끈이론에서는 '진동'이 소립자들의 기본 구조일 것이라고 한다. 또한 아인쉬타인의 ,E=mc^2에서 보여지듯이 물질과 에너지는 동일하다는 견해에 비추어보면 소립자들은 '에너지'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는 물질이 아니다. 심지어 하이젠베르크의 책 초반에 나오는 투로 보아 그는 소립자들의 구조는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구조라고 주장할 듯 하다. 이것은 아마 그의 확률론적 양자역학해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듯 우리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세계도 있다는 것과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세계와는 또 다른 본성이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색다른 입장이 제기될 듯하다.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경험적인 것으로 신의 존재를 주장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경험은 주관적 색채가 너무 짙다. 그러면 선험적인 또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신의 존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신은 이 두가지 방법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논리적인 확신과 경험적인 확신이 아울러 믿음이라는 것을 형성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것들을 온전히 타인과 공유할 수 없기에 객관적인 증명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불가능하겠지. 이런 점으로 보아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믿음'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개인적 믿음은 경험적 확신이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타인에게 증명하고자 할 때에는 이성적, 논리적 판단의 잣대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기때문에 소위 증명을 통해 확신을 심어주기란 어려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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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골드스타인 지음| 고종숙 옮김 2012 9 18 읽음

 

"괴델이 누구죠?"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라고 부르다면 되레 모욕일걸세."

 

그 괴델의 생애와 그의 불완전성 정리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소심한 거인, 정신쇠약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쓸쓸한 죽음에 이른 천재 논리수학자의 특이한 삶

조용하게 세계를 뒤흔든 그의 불완전성정리

 

이 책을 다 읽고 덮은 후, 아무 생각도 없이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그리고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서 왜 이런 책들이 대단한 것인가 느꼈다. 이래서 고전이라 불리는구나하고 감탄을 했었다. 이 책들은 나의 생각의 한계를 단 번에 뚫어 버리는 발상의 참신성 및 독특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불확정성>을 읽고서는 그와는 또 다른 느낌 -  뭔가 알 수 없는 묵직한 좀처럼 사리지지 않는 무게의 힘을 느꼈다. 그의 초라한 죽음때문만은 아니리라.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의 쟁쟁한 당대의 내노라는 수학자 및 과학자들조차 경원시하던 인물이라서? 아니면 그의 놀라운 정리때문일까? "도대체 증명불능이면서도 참인 산술명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명제가 참임을 보이는 것 자체가 그것에 대한 증명이 될 것이며, 그렇다면 증명불능성을 증명했다는 주장은 모순이 아닌가????" 그도 아니면 그의 정리가 인간사고의 한계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핀 파장때문일까?

이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사람을 알았다는 정체모를 뿌듯함과 자부심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뭔가에 대한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는 은근한 힘의 느낌이라니...

 

제1불완전성정리

산술을 포함하는 형식체계가 무모순인 한 참이면서도 증명불능인 명제는 언제까지나 존재한다.

 

제2불완전성정리

산술을 포함하는 어떤 형식체계의 무모순성이 그 안에서는 증명불능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에 나오는 목록을 제시해 본다. 꿈꾼는 다락방의 저자인 이지성씨가 쓴 책에서 ...

다소 무리가 되는 목록이라 생각되지만 ....ㅋㅋ

이걸 언제 다 읽냐??? 열심히 읽으면 천재가 된다네....ㅋㅋ

 

<초등5학년>

유득공, <발해고> 송기호 옮김, 홍익출판사

최치원, <새벽에 홀로 깨어> 김수영 편역, 돌베게

이규보, <동명왕의 노래> 김상훈 옮김, 보리

이이, <격몽요결> 이민수 옮김, 을유문화사

공자, <논어>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명>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윌리엄 워즈워스, <무지개> 유종호 옮김, 민음사

 

<초등6학년>

김부식, <삼국사기> 이강래 옮김  한길사

이황 <자성록> 최중석 옮김, 국학자료원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박석무 옮김 창비

김시습 <금오신화> 이지하 옮김, 민음사

맹자 <맹자> 박경환 옮김, 홍익출판사

호메로스 <일리아스> 천병희 옮김, 숲

빌헬름 밀러 <겨울나그네> 김재혁 옮김, 민음사

 

<중학1>

허균 <홍길동전> 김현양 옮김, 문학동네

김만중 <구운몽> 송성욱 옮김, 민음사

허난설헌 <허난설헌 시집> 허경진 편역, 평민사

노자 <노자> 최재목 옮김, 을유문화사

주희엮음 <대학.중용> 김미영옮김, 홍익출판사

사마천 <사기본기> 김원중 옮김, 민음사

나관중 <삼국지> 황석영 옮김, 창비

호메로스 <오딧세이아> 천병희 옮김, 숲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왕> 강대진 옮김, 민음사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크 영웅전> 이성규 옮김, 현대지성사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최종철 옮김, 민음사

 

<중학2>

이이 <성학집요> 김태원 청어람미디어

이순신 <난중일기> 노승석 민음사

작자미상 <춘향저> 송성욱 민음사

박지원 <열하일기> 김혈조 돌베개

장자 <장자> 김학주 연암서가

사마천 <사기열전> 김원중 민음사

구우 <전등신화> 정용수 지만지

헤로도투스 <역사> 천병희 숲

플라톤 < 국가. 정체> 박종현 서광사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마로 <아이네이스>천병희 숲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민용태 창비

로트레아몸 <말도로르의 노래> 이동렬 민음사

 

<중3>

이익 <성호사설> 최석기 한길사

박제가 <북학의> 박정주 서해문집

김립 <김립시선> 허경진 평민사

묵적 <묵자> 박재범 홍익출판사

한비 <한비자> 김원중 글항아리

시내암 <수호지> 이문열 민음사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천병희 숲

단테 <신곡>박상진 민음사

괴테 <파우스트> 이인웅 문학동네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윤수인 외 민음사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김현 민음사

 

<고1>

류성룡 <징비록> 김홍식 서해문집

정약용 <목민심서> 민족문화추진위원회

매창 <매창시집> 허경진 평민사

순자 <순자> 김학주 을유문화사

이백 <이백시선>이원섭 현암사

오승은 <서유기> 임홍빈 문학과 지성사

아이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창우, 김재홍, 강상진, 이제이북스

키케로 <의무론> 허승일 서광사

데카르트 <방법서설> 이현복 문예출판사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신현철 문학수첩

스탕달 <적과흑> 이규식 문학동네

오스틴 <오만과 편견> 윤지관, 전승희 민음사

존 버니언 <천로역정> 김창 서해문집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방곤 범우사

보들레르 <악의 꽃> 김봉구 민음사

 

<고2>

정철 <송강가사> 김갑기 지만지

유길준 <서유견문> 허경진 서해문집

이중환 <택리지> 이익승 을유문화사

신채호 <조선상고사>박기봉 비봉출판사

손무 <손자병법>유동환 홍익출판사

오긍 <정관정요> 김원중 글항아리

두보 <두보시선> 이원섭 현암사

주희 외 <근사록> 이기동 홍익출판사

아우렐리우스 <고백록> 김기찬 현대지성사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나종일 서해문집

존 로크 <통치론> 강정인 까치

루소 <사회계약론> 정성환 홍신 문화사

작톨스토이 <부활> 박형규 민음사

휘트먼 <풀잎> 유종호 민음사

 

<고3>

곽재우 외 <임진년 난리를 당하매> 오희복 보리

조식 <남명집>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한길사

강항 <간양록>김찬순 보리

작자미상 <숙향전, 숙영낭자전> 이상구 문학동네

이지 <분서> 김혜경 한길사

왕양명 <전습록> 정인재, 한정길  청계

오경재 <유림외사> 홍상훈 외 을유문화사

카이사르 <갈리아 전쟁기> 김한영 사이

파스칼 <팡세> 이환 민음사

밀턴 <실락원> 조선권 문학동네

마키아벨리 <군주론> 강정인 김경희  까치

베이컨 <학문의 진보> 이종흡 아카넷

칸트 <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아카넷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신재일 서해문집

밀 <자유론> 박홍규 문예출판사

이븐할둔 <역사서설> 김호동 까치

도스토옙스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이대우 열린책들

 

 

 

 

 

 

 

이지성 지음/ 문학동네    2012년 9월 17일  훓어봄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독서법

<48분 기적의 독서법>에서는 3년간 1000권의 책읽기는 엄청난 의식의 확장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인문고전을 읽음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 제안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1. 인문고전을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양의 고전인 <논어><맹자>등...그리고 한국의 고전인 이이의 <성학집요> 박지원의 <열하일기>등..그리고 서양의 고전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플라톤의 <국가>등...어려운 책을 읽으라는 것이지. 이해가 된다.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쓴 고전 즉 적어도 200년에서 1000년까지 읽혀온 작품들. 천재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사색 후에 나온 이러한 위대한 고전은 인간 이성의 결정체라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집약된 형태의 것을 손쉽게 앉아서 읽고 그것을 내재화한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노벨상 수상자 각 개인들로 부터 개인 교습을 매일 받는다고 하면 어떨까?

 

2. 통독한다.

먼저 1차로 통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엄청난 어려움이며 심지어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 왜냐? 대부분의 인문고전들은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한다. 재미도 없다. 이것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먼저 통독하는 과정이 필요하단다.

 

3. 정독한다.

통독후 내용을 파악해 가면서 정독해야 한다.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쥐.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만 천재적인 작가들로 부터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된다. 이것 역시 엄청 어려운 과정이 되겠다. 때론 그 책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책을 먼저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플라톤을 이해하려면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해야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려면 그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을 이해해야 할 경우도 생기게 된다. 하나의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 연쇄적으로 읽어야 할 것들이 엄청생길 수도 있다....

 

4. 여러번 읽는다.

5. 필사한다.

어떤 책은 전체를 다 옮겨적을 수도 있다. 때로는 중요한 내용만을 옮겨 적을 수도 있다 책에 중요한 내용을 밑줄치며 읽으면 나중에 중요한 점들을 필사하는데 도움이 된다. 연필로 직접써도 좋고, 컴퓨터로 써도 좋다. 어쨌든 이러한 필사를 통해 얻는 것이 많다.

 

6. 사색한다.

읽은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단계이다. 내재화하는 단계라고나 할까?

 

7. 토론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

깊이 있게 읽은 사람들과의 토론 또는 발표형식으로라도, 아니면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알게된 것을 이야기한다.

 

그냥 주루룩 훓어 본 내용이라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았는데...

이 가운데 필사한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 음...한 번 적용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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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지음/ 휴머니스트 출판사  2012년 9월 17일 읽음

 

당파싸움이 한창이던 때, 탕평책으로 나라의 기강을 세운 현군 영조

영조는 자신의 친아들이며 세자였던 사도세자를 뒤쥐에 가두어 죽이는데 왜 그랬을까?

세자빈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의하면 사도세자가 정신병에 걸려 패악한 죄를 지어 그리되었다고 하는데,

영조실록과 그 내용을 검토해 보면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저자는 바로 그점을 파고 들며 역사의 어두운 곳에 숨겨져 있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이 책은 조선중기를 지나 후기에 이르는 조선왕실-숙종,경종,영조,정조-의 흐름을 다루고 있다.

후일 영조가 된 영잉군은 경종의 이복동생이다. 그는 노론파와 함께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영조는 자신의 통치하에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노론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다.

소론파에 심정적인 동조를 보였던 사도세자와는 대립각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영조도 노론의 세력에 힘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그에 휘둘린 것일까? 사도세자는 심지어 노론인 세자빈으로 부터도 버림을 받고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죽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

이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를 계승했을 때, 그의 아버지를 신원하고자 새로운 세력인 남인을 등용하여 노론을 견제하고자 했으나,

워낙 오랜세월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노론을 완전히 제거하기란 불가능했다. 오히려 결국엔 정조마저도 그 꿈인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는데, 정조를 견제하던 노론의 독살설도 여기에 연유한다.

 

몇년전 TV 드라마에서 정조와 관련된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당시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던 노무현대통령을 비한 드라마라는 말들이 있었던 것을 아는데, 아마 개혁을 향한 열망 그리나 지지기반이 허약한 정조와 노태통령의 입장이 유사한 것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역사를 이렇게 읽으니 참 흥미롭기도 하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또는 상호작용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노대통령 취임연도가 2003년이고, 이 책의 발행연도가 2004년이란 것이 왠지 우연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정조의 독살설은 노대통령의 죽음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사건일런지...비록 카는 순환적 역사이론에 동의하지 않고 진보하는 역사에의 믿음을 가졌지만, 어쩐지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이란 느낌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다른 결말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 그대여! 그대들은 역사로 부터 배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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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란 무엇인가?

2. 가이아

3. 율곡이이

4. 설국

5. 내 심장을 쏴라

6. 세상을 바꾼 열가지 과학혁명

7. 이야기 한국사

8. 과학혁명의 구조

9. 흑산

10. 단종애사

11. 7년의 밤

12. 다산

13. 미분이야기1

14. 미분이야기2

15. 인문학 공부법

16. 48분 기적의 독서법

17. 최고의 교수

18. 대칭과 아름다운 우주

20.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21. 평행우주

22. 창조자 없는 창조

23.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24. 네 멋대로 쓰라

25. 우주의 구조

26. 현대과학의 열쇠-퀀텀과 유니버스

27. There is a God

28.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29.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30. 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대답하다

31. 소수의 음악

32. 리만가설

33-34. 뇌1,2

35 -56. 토지 1-21

57. 순정만화

58. 몬스트 대칭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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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까치출판사  

 

좀 어렵네...

이 책을 집어들면서 '과연 역사란 무엇일까?'라고 생각과 함께, 어떻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 많은 지면에 풀어놓을까 궁금증이 들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고전으로 선정될 만한 자격이 있다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카는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차 있으며, 인간의 역사는 이 이성의 힘에 의해 계속 진보해 나갈 것이라고 낙관주의적 견해를 취하고 있다. 비록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역사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지성인들은 미래의 암울함에 비관주의 내지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은 구성은 이러하다.

1. 역사가와 그의 사실

2. 사회와 개인

3.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4.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5. 진보로서의 역사

6. 지평서의 확대

 

이 책을 읽고 나의 머리에 정리되는 부분은 이렇다.

 

첫째 역사와 과거,

역사란 '과거에 발생했던 사실들의 모음이다' 이러한 생각이 역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모든 과거의 사실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historian)가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선택한 사실들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역사사는 자신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에 근거하여 역사적 사실을 선택하고 이를 구성하여 역사를 기술한다.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 즉 역사적 사실과 역사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다.

 

둘째 역사와 현재,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historian)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다. 역사가는 역사또는 사회에서 분리된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는 없다.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historain) 자신은 현재의 상황이나, 현재의 사회, 이념등에 의해 제약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장 객관적인 역사가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가(historain) 자신이 바로 이러한 제한된 입장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전제된다.

 

세째 역사와 미래 

카는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들의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힘- 그 힘이 무엇이든간에- 에 긍정적이다. 역사는 순환한다는 토인비등의 주장 또는 역사란 목적지 없이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배와 같다 주장, 나아가서는 역사는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주장과 같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며 비관적인 견해가 아니라, 역사는 계속 진보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굳은 낙관주의적 희망을 버리지 않고 견지하고 있다. 

 

흥미있는 또 다른 점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역사도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켜야한다는 논의가 눈에 띄인다. 그는 역사학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역사학이 과학이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또한 역사에서의 우연의 역할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배여나온다. 그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건들의 인과관계는 역사가의 이성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또는 납득하기 어려운 우연의 요소들이 역사에 미치는 역할에 대해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우연의 요소는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기때문이다. 

 

그는 공산화된 소련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듯...그래서 '소련사'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는데... 당연히 마르크스와 레닌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예언자적 역할에 심정적 동조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사망할 당시까지도 서방세계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자본주의가 영향을 미치지 않던 지역 또는 자본주의가 영향을 미치기 막 시작했던 지역에서 그러한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의 예상과는 판이하다. 그리고 그의 사망 후 구 소련의 몰락등은 사회주의나 혁명에 의한 진보의 개념이 현실과는 맞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의 저변을 넓혀준다는 면에서 이 책을 추천할 만하다. 서울대에서는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하였었는데,  균형을 잡기위해서라도 카와는 의견을 달리하는 역사철학서도 함께 필독서로 지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진보진영에서는 한국 근대화는 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 시대의 부름이었으며, 그 시대의 소산물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시대를 바꾸는 것은 민중의 힘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한 힘을 집결시키고 분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지렛대와 같은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면에서, 한 개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카의 인과론에 근거한 역사관은 우연의 요소나 한 개인의 영웅적 역할에 대해서는 다소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 근거해 볼 때, 진보진영의 그와 같은 논리는 카의 역사의식과 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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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과 실학을 겸비한 실천적 지성 율곡 이이  황의동 씀  2012 9 10 읽음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 율곡과 그를 길러낸 신사임당

하지만 정작 율곡에 대해 하는 것은 십만양병설과 퇴계와 쌍벽을 이룬다는 말을 들은 것일 뿐.

 

율곡은 성리학자이다. 성리학은 공자,맹자로 부터 시작된 유학의 한 줄기로서 인간본성에 대한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연의 본성에 대해서도 연구하게 된다. 성리학은 주자학 또는 정주학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자와 맹자로 시작된 유학은 여러모로 발전해 나가다, 진나라의 분서갱유사건으로 대부분의 경전이 소실되고 만다. 이후 불교가 도교등이 학문의 주류가 되었으나 훗날 유학에 대한 학문이 다시 시작되는 바, 소실된 경전등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일이 우선시 되었다. 이 과정에서 훈고학이라는 유학의 한 분야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고증학의 성격이 강하였다. 이후 유학은 불교가 도교등 다른 철학사상과의 교류등을 통해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론적으로 정교해 진다. 이러한 흐름에 주된 영향을 미친 유학자는 주자이다. 그로 부터 확립된 유학을 주자학 또는 성리학이라 한다.  

 

성리학자로서 율곡의 사상은 무엇인가? 먼저 성리학자인 율곡의 사상을 알기위해서는 그 사상의 기본인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리학을 이해하려면 이기론을 알아야 한다. 성리학에서는 모든 존재가 형이상자인 이와 형이하자인 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연의 기본 이치나 원리는 이, 그 원리에 의해 발현되는 현상,상태등을 기라고 하며, 성리학에서는 모든 존재나 현상등이 이러한 이와 기에 의해 설명된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세계도 하나의 존재로 리와 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당시의 퇴계를 중심으로 한 주리론(근본이치인 이가 기에 우선한다는 이론)과 화담 서경덕을 중심으로 한 자연철학을 다루는 주기론(자연현상으로 나타나는 기의 흐름이나 발현에 초점을 두고 자연을 탐구하는 이론) 이 두가지 철학의 흐름이 있었는데, 사실 퇴계를 중심으로 한 주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율곡은 이 리와 기의 관계에 대해 당대의 위대한 학자인 퇴계의 논리와는 다른 독자적인 논리를 전개했었다. 율곡은 이 두 흐름을 조화시키는 입장을 취했다. 이것이 이기지묘, 기발이승, 이통기국등의 철학으로 표현되었다. 그의 저서 성학집요, 답성호원서(친구인 성호원의 질문에 대한 답),천도책(과거시험에 제출했던 답안지)등은 그의 철학사상을 잘 알려주고 있다.

 

그의 사상과 실학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성리학은 유학경전을 근거로 이를 논리적으로 해명하고 철학적으로 심화했다는 데 의미가 깊다. 하지마 지나치게 사변화되고 관념화되는 병폐를 안게된다. 유학은 본래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고 수기와 치인을 겸하는 것인데, 성리학은 실천보다는 이론, 치인보다는 개인적 수기에 치중하는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율곡은 유학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 성리의 이론과 실천이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수기에서 나아가 나라와 민생에 대한 책임과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로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통해 현실개혁의 기치를 들게 된다. 율곡은 정치,경제, 사회, 국방,행저,교육 등 현실문제, 민생문제, 부국강병에 관심을 갖게 되고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등을 제시하게 된다. 그의 십만양병설은 조정대신등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으나 바로 이러한 흐름에서 나온 것이다. 십만양병설을 반대했던 유성룡도 임진왜란이 터지자 그의 혜안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한다. 또한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인 만언봉사를 통해 그는 정확한 현실진단과 개혁방안들을 조목조족 제시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 교육용으로 저술한 그의 저서 격몽요결등은 교육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려준다. 또한 그의 저술 동호문답등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그의 논리가 피력되어 있다. 이리하여 그는 조선 중기의 이론적인 성리학과 조선후기의 실학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그의 실학정신은 다산 정약용에 의해 꽃 피게 된다.  

 

49세라는 짧은 삶을 살았던 육체적으로는 병약하였으나, 정신적인 거인이었던 그의 율곡 철학을 정리하자면 조화정신, 개혁정신, 실학정신, 이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짧은 책이지만 율곡의 삶과 사상, 그리고 성리학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어 나름의 득이 있었다 하겠다. 다음엔 퇴계 이황에 대한 책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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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러브록 지음/ 홍욱희 옮김  갈라파고스 출판사 2012. 9.8 읽음

 

가이아는 고대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을 이름이다. '파리대왕'이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윌리엄 골딩이 지구를 표현하는 명칭으로 가이아란 이름을 제안했다. 1970년대 무렵에 가이아이론을 내 놓았고 그 동안 수 많은 논란을 거쳐 현재 주류과학으로의 위상을 갖추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고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사의 화성 생명체 탐사 계획에 참여했던 러브룩은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어떻게 생명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까?"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주위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그 대사활동의 결과로 폐기물을 주위환경에 배출하게 된다는 가정하에

그는 생명을 둘러싼 가장 큰 환경인 대기를 조사해 보는 것이 생명체의 존재 유무를 찾아보는 가장 손쉬운 길이라는 결론을 내게 된다.

 

지구의 대기의 구성은 화학적 평형상태와는 큰 괴리를 보여준다. 예를 들며 화학평형상태의 대기 구성이라면 이산화탄소가 98% 질소 0% 산소는 0%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대기는 78%의 질소와 21%의 산소 그리고 이산화탄소는 고작 0.03%에 불과하다. 생명체가 존재하지 금성과 화성에서의 대기조성은 이산화탄소가 각각 98%와 95%에 달하며, 질소는 1.9%, 2.7%에 불과하다. 그리고 산소는 극미량, 0.13% 함량이다. 지구의 대기가 화학적 평형상태에 도달하지 않고 생물이 존재하기에 알맞은 대기조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적합하도록 환경을 조절하는 장치를 지구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그 대답이다.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과학분야가 있다. 시스템을 평형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순환회로가 존재하여 피이드백을 통한 자가조정을 하는 시스템에 대한 연구분야이다. 가이아는 거대한 전 지구적 규모의 사이버네틱스로 운영되고 있다

 

지구의 대기권의 적정한 산소농도는 생명의 존속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과연 무엇인 이 산소농도를 적정하게 유지하고 있는가?

해양의 염도는 해양생물의 생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생명에 필요한 광물들-황,인,요오드등이 해마다 엄청난 양이 대양으로 흘러드는데, 염도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증가하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또한 지상의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물질들이 어떻게해서 대양에 지속적으로 축적되지 않고 육지로 순환되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전일적인 관점에서 연구조사를 하게 되며 가이아라는 실체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은 전체적으로 생물권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생물권들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협력하여 하나의 목적 즉 생명을 위한 전지구적인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가이아가 지성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을 위한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가이아의 부분은 대륙붕, 열대우림, 습지등이다. 이곳에 살아가는 수많은 미생물들과 식물들은 자연의 순환에 깊숙히 관련되어 활동하고 있기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이러한 지역을 파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인간이 자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되고 있기때문에, 인간들 스스로 가이아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녀와 협조하여 복구불가능의 상태를 만들지 않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상이 간결하게 정리해본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하나의 병폐라 하면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시야를 가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 가이아 이론은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시각이 필요하다. 대기학, 해양학, 생물학, 생태학 등 모든 분야들을 아울러 연구하고 통합해서 바라보아야만 한다. 이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야 할 길이리라.

이 분야는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점들이 너무나 많아 대부분의 내용들은 가정과 추측, 또는 합리적인 논리로 진행되고 있음이 아쉬우며, 향후 새롭게 밝혀지는 내용들에 의해 세부적인 내용이 조정될 여지가 많다는 느낌이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비추어 볼 때, 가이아 이론은 이제 정상과학의 자리를 서서히 잡아가고 있으며, 이제 이 패러다임내에서 수많은 현상들에 대한 세부적인 이론들이 나오면서 점점 발전하게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여러 학문분야에서 한 분야가 아주 세부적인 분야로 나뉘어 가는 추세이다. 한 분야에서만도 연구해야 할 것이 불감당인 정도인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통합적인 연구가 비록 어려울지라도 필요하리란 생각이다.

수학과 물리학도 마찬가지이다. 1900년대 초 힐베르트를 거의 마지막으로 하여 수학전반을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때때로 수학의 여러 분야들을 결합해서 연구하는 것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정수론 논문을 심심풀이로 읽던 군론 수학자는 이 둘 사이의 유사성에 놀라게 된다. 또한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았던 정수론이 소수이론이 물리학의 소립자연구부분에 아주 놀라운 일치점을 보여주어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통합과학에서 세부과학으로 진행되던 경향은 다시 통합으로 나아가야 새로운 지평을 열게될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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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지음/ 도서출판 은행나무 2012 9 7 읽음

 

'7년의 밤'은 '내 심장을 쏴라'로 이어졌다. 제 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란 타이틀과 '7년의 밤'이 주었던 인상이 이 작품으로 손을 내밀게 했다.

 

"제게도 활공장이 필요했습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수명이가 심판위원들 앞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운명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신병원 실습을 마친 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나 자신 스스로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든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운명은 나의 삶을 침몰시키고 있는가?

 

운명과도 같은 상황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승민, 그를 바라보다 깨닫게 되는 수명...결국 둘 다 새로운 길을 가게된다. 활공장....

 

우리 모두는 일종의 잠재적 정신병자이다. 온 세상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소통의 부재- 타인과의 소통만이 아니라 자신과의 소통의 부재 그리고 진실을 숨기려는 모든 심리적 요소들은 정신병의 징후이다. 수명이가 활공장의 필요를 느낀 것은 바로 진실을 마주대하고 자신과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때문이었다. 진실을 뒤덮고 그 뒤에 숨으려는 정체모를 본능, 그것을 깨고 자신의 본 모습과 대면할 때 자기가 해야 할 바를 깨달게 되는걸까?

 

그녀의 작품 2권을 읽으면서 그녀의 글쓰기에 대해 느낀다. 어떻게 쓰는지.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은 아닌듯, 하지만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조사하고 탐구하고, 쓰고 또 쓰고, 다시 쓰는 정제의 과정을 거쳐 글을 쓰는 듯하다. 그녀 자신이 말했듯이 초고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의 스타일이다. 상황이나 주변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후에 그것을 묘사하는 기법 또한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남다름을 보여준다.

 

아뭏든 후반부로 접어들며 탄력이 붙어가는 이야기가 흥미로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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