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오 카쿠/ 박병철 옮김/ 김영사

 

'우리가 알고 싶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

 

제1부 우주

현대 우주론의 역사를 조망해 본다. 거시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서술하는 상대성이론으로부터,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한 허블을 거쳐, 빅뱅설을 주장한 조지 가모브, 그리고 그의 대척점에서 정상상태우주론을 주장한 프레드 호일 - 아이러니하게 '빅뱅'이라는 용어는 호일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앨런구스에 이르러 '인플레이션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제2부 다중우주

블랙홀을 이용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그리고 시간여행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평행우주 카드를 내 보인다.

또한 평행우주의 존재의 근거로 양자이론을 조망해 본다. 최신의 우주이론이 끈이론, 초끈이론, 그리고 만물의 이론이라 불리는 M-이론등에서 예견하는 다양한 평행우주에 대해 살펴본다. 이러한 최신 우주론은 다소 공허하다. 엄밀한 수학적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검증가능성이나 예측성이 부족하다. M-이론이 성립하는 공간인 11차원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필자는 현대물리학의 첨단에 서있는 중력파감지기등이 그것을 해 낼 것이라 희망한다.

 

제2부는 다소 뜬 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다. 끈이론이 현대물리학의 대세를 이루고는 있지만, 이 이론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물리학적 근거인 예측과 검증이라는 시금석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제3부 초공간으로의 탈출

2부보다 더 허황된 공상과학소설 수준이다. 프리먼 다이슨을 몽상의 과학자라고 소개한 말이 생각난다. 우주론에 의하면 결국은 우주가 거대한 동결(Big Freeze)나 Big Crunch로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밝혀진 증거에 의하면 Big Freeze를 향해가고 있다고들 한다. 프리먼 다이슨은 그의 저서 '20세기를...'에서 우주의 지성이 이 파국을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그의 희망적인 전망은 긍정적임에도 그의 먼 앞 날을 조망하는 그의 정신세계는 다소 몽상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카쿠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우주가 거대한 동결로 끝나든, 빅크런치로 끝나든 생명체는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 평행우주로 탈출함으로써. 블랙홀을 이용하여 평행우주로 옮겨가는 작전이랄까? 현대의 기술수준이 이에 따르지는 못하지만 문명이 발달하여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지면 가능하리라고 생각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필자는 우주적 파국으로 부터 생명체를 보존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평행우주를 찾아내고 그로 탈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이다. "다중우주를 넘어서"

우주와 관련된 신학, 철학, 도덕적 논의는 빠지지 않는 것 같다. 자연과학 체계내에선 증명할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경계선세서 부터 형이상학적인 추론등이 시작된다.

 

"위그노의 해석이 등장한 후로, 의식은 물리학의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이런 극단적인 영역에서는 기계적 과정보다 정신적인 과정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우주가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거대한 의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위그노

 

"우주는 지각이 있는 생명체를 창조하여 그들이 자신을 관측하게 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고 있다."

 

최후의 관측자는 아마도 신이나 조물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자신을 바라보는 신이 있기때문에' 존재하는 셈이다.

 

구구한 증명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논의들은 아직도 물리학이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다. 설혹 만물의 이론이 밝혀진다해도 대답되지 않는 물음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우주는 자신의 발가벗겨진 실상 그 대로의 모습을 우리에게 밝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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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한계의 설정과 초월

 

이 장에서 본격적인 신의 존재에 대한 게르하르트 뵈르너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한계의 설정이란...자연과학논증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은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의 연구대상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객관적 실체이기때문이다. 신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기에 그 신의 존재에 대한 연구는 자연과학의 한계를 벗어난 이야기라는 것이쥐...그래서 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연과학의 한계를 넘어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뵈르너는 이러한 초월적인 사변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물론 전혀 엉뚱한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나름대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다음은 그의 논증들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우리는 세계 창조자로서 신의 존재를 자연과학적 논증으로 도출할 수 없다. 만물을 객관화하는 자연과학에서는 애초부터 물리학적 세계상에 주관적 구조인 정신이나 신이 들어가는 것을 배제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만물의 창조자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자연과학적 논증으로 반박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전능한 창조자는 아무 어려움 없이 세계를 물리학자들이 발전하고 탐구하는 것과 똑같게 창조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일상생활과는 배치되는 여러 과학적 사실들을 알게되었다. 빅뱅에서 공간과 시간이 발생하는 것, 블랙홀 내부에서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들. 이러한 것은 오로지 공간과 시간 속 사물들의 질서만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공간과 시간 자체가 가변적이라면 우리가 표상할 수 없는 다른 질서,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질서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경험에는 제약이 따른다는 명확한 깨달음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세계 설명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종교적인 의미를 믿을 길을 열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외견상 확고해 보이는 '실재'세계가 장이나 끈과 같은 실제로 만질 수 없는 대상들로 이루어졌있다. 그것은 에너지 집중일 뿐이다. 그 근본 요소들은 물질적 구조라기보다 수학적 구조나 관념에 더 가깝다. 심지어 우리는 만물의 기반에 물질적 토대가 아니라 정신적 원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이런식의 진술은 당연히 자연과학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지만, 나는 이 장에서 그런 한계를 몇 차례 넘어서려 한다.'

 

자연과학에 대한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 혼자만의 생각일까? 아니면 전체 자연과학자들의 견해인가?

"자연과학에는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과학은 자신의 영역안에서 절대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처한다."

"물리학은 불변의 진리를 소유했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물리학은 끊임없이 모형들을 고안해서 실험을 통해 계속 추궁하거나 폐기한다."

 

현대물리학에서 우리가 알게 된 것 중 한가지는 '상보성'이다. 양자역학의 대상들은 상보성을 가지기 때문에 외견상 모순적인 속성들을 드러낸다. 일상 언어에서 나온 개념들로는 그 상보성을 적절히 표현할 수 없다. "참된 진리는 일상 언어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고 따라서 역설을 치러야 표현할 수 있다."  종교적인 개념인 '공간과 시간밖에 있는 전능한 창조신' 이나 '영원'과 같은 개념은 우리의 일상경험으로 규정할 수 없다. 그것들을 일상경험에 귀속시키려는 시도들은 모순을 일으킨다. 세계의 심오한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그런 모순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현대 물리학에서 배울 수 있다."

 

흥미롭게도 뵈르너는 다이슨이 몽상적으로 상상했던 지적인 존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우주의 대파국과 함께 우주의 지적인 존재도 막을 내릴 것인가? "우리는 인간 정신의 잠재력이 만개하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태양의 폭발로 생길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연과학은 객관적 대상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데, 최근 밝혀진 바로는 주관적 요소들이 객관적 실체에 영향을 미친다는데, ... 이 불가사의한 의식이라는 실체에 대해서도 자연과학의 한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 외 우주론적 논증에 있어서 미세조정등의 문제에 있어 신의 존재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평행우주이론 역시 자연과학의 한계를 벗어난 초월적 이론이라고 지적한다. 펜로저의 10^10^12개의 선택가능한 우주중 우리의 우주가 특별히 선택되었을 것이라는 논증은 자연과학적 논증에서 다소 비켜나간다는 점도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뵈르너는 빅뱅이전의 세계에 대한 논의는 지금의 자연과학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이와 관련된 모든 논의는 초월적인 것으로 어느정도 믿음, 신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가는 개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그는 창조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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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우주를 말하다. 창조자 없는 창조?  게르하르트 뵈르너 지음  전대호 옮김 해나무출판사

 

영국의 저명한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신의 마음을 읽'는 일에 대해 말한바 있다. 그 당시 호킹은 우주의 창조자인 신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넌지시 비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위대한 설계]라는 책에서, 그는 우주가 무에서 생겨났으며, 우주의 창조와 관련하여 신의 역할을 없다고 이야기함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떨 지 몰라도, 창조자로서의 신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최신 물리학을 선도하는 물리학자 다수는 '무에서 생겨난 우주'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과연 이 경이로운 우주에 신의 손길은 필요없는 것이었을까?

 

프리먼 다이슨을 비롯한 몇 몇 저명한 물리학자들은 견해를 달리한다. 그들은 여전히 신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창조자 없는 창조?]의 저자 게르할트 뵈르너도 이러한 물리학자중 한 사람이다. 그는 거시세계-빅뱅에서 블랙홀까지-와 만물의 궁극적인 토대-양자세계와 기본입자-들에 대한 최신 물리학을 소개한다. 그리고 관측과 실험으로 그 타당성이 인정받고 있는 자연과학적 사실들을 토대로 신의 존재와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도록 권한다.

 

여러 물리학 교양서적을 통해 거시세계를 다루는 상대성이론과 더 나아가 우주의 구조, 그리고 미시세계인 양자세계와 그 세계를 이루는 입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아마추어적인 정보가 있는 나에게도 이 책은 쉬운 책은 아니었다. 특히 1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부록 부분은 그냥 건너 뛸 만큼 어려웠다. 역자도 이 책이 다소 어려운 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4장 '한계의 설정과 초월' 에서는 자연과학과 종교, 및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다소 철학적이면서도 어려운 저자의 견해들이 생각을 자극한다.

 

이 책에서 논하는 논증들을 몇가지 따라가 보기로 한다. 레너드 서스킨드? 는 [풍경이 있는 우주]의 초반부에 그의 편견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사실 그는 무에서 우주가 생겨났다고 믿는 대표적인 물리학자중의 한 명이다. 그의 편견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물리학은 신적 존재를 개입시키지 않고 우주의 발생을 비롯한 자연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신도 시인하듯이 이것의 그의 편견이다. 하지만 게르하르트 뵈르너는 다른다. 그는 편견없이 사실들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생각을 펼쳐나간다. 그의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먼저 그의 자연과학적 세계관이 어떠한지 알아야 하다.

 

"나는 자연과학의 영역 한에서 확실한 앎과 사변적인 이론을 명확히 구분하고 자연과학이 어디까지 유효한 지 그 한계를 명확히 긋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이 유효한 한계 내에서 자연과학은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규정하며, 자연과학의 지식은 무지에서 나온 주장에 의해 의문시 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자연과학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는 것을 당연히 전제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다중우주나 평행우주에 대한 현대의 이론들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실험이나 관측으로 증명할 수있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기때문이다. 또한 더 나아가 아름다운 수학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끈이론에 대해서도 그는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 끈 이론이 더욱 발전하여 관측이나 실험으로 증명될 가능성까지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기에 그의 논의는 나름 합리성 및 설득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최소한 그는 편견없이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빅뱅을 통해 탄생하 그 뒤 분산된 기체가 은하들의 시스템으로 진화하여 복잡한 우주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은  우리의 일상 경험을 훨씬 벗어나며 종종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시간과 공간도 빅뱅에서 탄생하고 블랙홀에서 소멸하므로 더 이상 우리 경험의 절대적 범주일 수는 없다. 혹시 우리의 시공간적 실존은 온전한 실재의 한 측면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신이 있다면 그는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일 것이라는 그의 추론은 이런 바탕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확고한 일상 세계는 물리학자들의 놀라운 지식이 열어젖힌 미시세계의 기본 입자들과 비물질적인 장들을 토대로삼는다. 그 입자들과 장들의 양자역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세계가 관찰자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의 물질세계의 미시구조를 파헤쳐감에 따라 우리는 놀라운 추론에 근접하게 된다. 물질세계는 비물질적인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적 세계관은 객관적 존재를 기술하는 학문인데, 양자세계는 그러한 객관적 세계가 아닌 관찰자의 의식이나 정신에 의존하는 주관적인 세계인 것 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슈뢰딩거의 파동함수의 붕괴와 관련된 코펜하겐해석은 객관적이어야 할 자연과학적 세계가 주관적인 세계로 해석되는 역설을 낳게 되니 말이다. [평행우주]에 언급된 한 유명한 물리학자는 '우주의 존재는 우주를 관측하는 눈 - 우주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초월적인 관측자가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는 취지의 이야기한 적도 있다. 

 

"비록 나는 최종적인 대답을 제시할 수 없지만, 자연과학적 세계 서술의 한계를 탐구함으로써 신앙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을 통해 분명해 지기를 희망한다. 위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건 "아니오"라고 대답하건, 그 판단은 자연과학이 내릴 수 없는, 개인 각자의 결단이다."  최신 물리학이론을 바탕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현대의 자연과학은 그 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해 주기엔 아직 갈 길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과연 물리학이 신의 존재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날이 올런지, 그 때가 되면, "신은 존재한다"라고 백기를 들 것인지, 아니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을런지....

 

신의 존재를 논증하거나 부정하는 견해애 대한 자연과학의 한계와 그 초월적인 이론들을 원하는 사람은 1장과 4장을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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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 과학자의 눈으로 본 인간, 역사, 우주 그리고 신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 북스

 

프리먼 다이슨은 다이슨 방정식으로 유명하다. 노벨상을 받았어도 뭐라 말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는 리처드 파인만의 이론과 슈윙거의 이론을 통합하여 그 둘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라는 것을 밝힌 방정식을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의 이론 모두에 정통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자신의 말처럼 그의 특기는 독창성,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미 알려진 것들을 통합하는 능력이다. 그에게는 모범생의 냄새가 난다. 아울러 소심함이랄까, 소박함이랄까, 그런 모습...또한 자신의 강직하지 못한 여린 마음을 아파하는, 그리고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내세우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도 발견된다.

 

아주 어릴 때 부터 수학을 좋아하던 소년, 홀로 미적분 문제집을 구해서 파고 들던 학창시절, 이른바 모범생다운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영향일까? 세계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은 '우주적 합일'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정작 이러한 그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그의 소박함이랄까? 그의 '우주적 합일'은 2차세계대전때 그를 양심적 병역거부에 이르도록 해었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용기가 없었던 그는 전략 폭격 연구소에서 일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전쟁을 지원하는 일은 그의 우주적 합일의 이념을 희생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과거의 자신의 지행불일치의 행로를 회피하지 않는다. 그러한 자기 모순적인 행동들을 담담히 인정한다. 여기에 그의 소박함과 솔직함이 드러난다.  

 

오리온 계획이라는 핵폭발을 이용한 우주선 개발에 대한 열정과 그 포기의 역사, 그 뒤안길에 있는 핵군축 및 핵실험 금지와 관련된 정치적 역사의 현장에 그는 항상 함께 동행해 왔다. 핵의 개발과 사용을 통한 우주의 식민지화가 인류의 미래라는 그의 믿음, 그러나 핵참상을 막아야 한다는 그의 양심적 소리는 그의 내면에서 대충돌을 일으켰다.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가? 그의 관심사는 미래를 향해 있었다. 인류의 미래...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인지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는 사람, 그가 다이슨이다.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실험에 대한 찬반 의견도 이러한 바탕에서 이해될 수 있다. 

 

외계문명을 찾는 것, 문화와 언어의 다양성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 DNA 조작을 통한 인류의 잠재 다양성은 축복이 될까? 저주가 될까? 은하계 녹화 사업과 관련된 회색기술과 녹색기술, 오토마톤등 아직 우리가 이르지 못한 미래상에 대해 그의 많은 생각들이 드러나 있다. 왜 제목에서 처럼 그를 몽상의 과학자라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어쩌면 그의 모든 미래에 대한 논의들이 몽상일런지도 모른다. 많은 우주론을 다루는 책에서는 우주의 종말에 대해 말한다. 영원한 팽창으로 차갑게 얼어버린 우주 또는 수축으로 말미암은 대충돌로 무한대의 열로 끝나버리는 우주. 어떤 결말이든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죽음의 우주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이슨은 우주 식민지화 내지는 우주 녹화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이 우주를 향해 뻗어 나가는 미래, 오토마톤을 이용해 우주를 정복해 나가는 몽상을 꾸고 있다. 또한 지성적인 존재는 우주가 어떠한 결말로 향하던 그에 맞는 적응이나 진화를 통해 파국을 살아 남을 것이란 생각을 그는 피력하고 있다. 과연 인류는 우주의 종말마저 뛰어넘을 것인가?

 

흥미로운 논의 하나는 설계논증과 관련된 것이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다. "우주에 대해 조사하고 그 구조를 자세히 연구하면 할 수록 우주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출현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점점 더 많아진다." 그리고 우주적 정신에 대해서도 흥미있는 그의 견해를 볼 수 있다. 첫째, 아원자 물리학의 수준에서 관찰자는 불가피하게 관찰하는 대상의 정의에 참여한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의 붕괴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둘째, 우리 인간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자기의 마음을 의식하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마음과 정신이라는 것은 아주 독특하다는 것이다. 세째 우주의 구조 그리고 생명과 지성을 가능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독특한 조화는 정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적 정신이 존재한다는 그의 믿음으로 인도한다.  

 

다이슨은 이 점에 있어 용감하고 솔직하다. 그는 우주의 정신을 믿는다고 공언한다. 비록 그가 물활론자 또는 정령을 믿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해도 그의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꿈에 그는 신을 찾아가 만난다. 그가 왕좌에서 만난 신은 어린 아기였다. 그는 엘리야가 들었던 여린 소리를 이 어린 신에게서 들었다고 쓴다. 무슨 의미일까? 신은 어린 아이처럼 우리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신은 큰 소리로 우리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정신과 존재를 보여줄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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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finite Book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 가없고 끝없고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짧은 기록

존 배로 지음/ 전대호 옮김  해나무출판사

 

1장 이유있는 소동

 

무한에 대한 간략한 안내

 

무한을 생각하게 만드는 유혹은 강하고 단순했다.

무한은 매력적인 대상이다. 인간이 던지는 모든 근본적인 질문의 중심에 있다. 당신은 영원히 살 수 있는가? 우주에 끝이 있을까? 우주에 '경계'가 있을까, 아니면 우주는 한 없이 클까?

영원히 계속되는 수와 같이 생각하기는 쉬운 무한이 있는 반면, 무한한 온도나 밝기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무한이 있다. 무한한 힘과 지혜를 가진 신의 개념 또한 무한과 관련이 있다. 수학에서 논하는 무한이 있다. 이처럼 여러종류의 무한이 있다.

 

무한은 사건들을 부적절하게 기술할 때 생기는 헛 것에 불과한 건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지, 우주의 논리적인 일관성을 지키는 숨은 원리에 의해 실재에서 추방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이 책에서 살펴볼 것이다. 수학자들이 무한을 실재 사물인 듯 익숙하게 다루며, 무한을 더하거나 빼고, 다양한 무한들의 목록을 만들고, 무한의 크기를 측정하고, 더 큰 무한과 더 작은 무한을 구별하게 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무한의 역설을 부각하는 이야기들도 간간히 듣게 될 것이다.

 

시간에 끝이 없다는 생각

시간의 끝이 있다면 그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확실히 가장 이상한 것은 유한한 세계이다. 유한한 세계는 그 세계 바깥의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그 무언가가 세계에 존재와 맥락과 이유를 주어야 한다.

 

순환

자연의 순환을 경험하면서 많은 문명들은 모든 변화가 순환적이라고 굳게 믿는다.

어떤 이들은 윤회라는 특별한 형태의 순환을 믿는다. 또는 부활과 재생 개념은 어떠한가?

 

최고의 존재

우주를 지배하는 최고의 존재에 대한 생각, 그 신이 공간과 시간도 지배한다면, 그 신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므로 영원해야 한다. 무한은 특정한 종류의 신에게 필수적인 속성이다.

어떤이는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을 초월한 어떤 것이 존재하기때문에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그 욕구가 인간 정신의 이례적인 발전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끝없는 공간

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공유한 가장 큰 경험은 밤하늘의 광경이다. 큰 우주속의 초라한 우리의 위치를 생각하며, 끝없이 이어진 어둠을 바라보며, 그 어둠이 언제, 어떻게 끝날 수 있을까? 우주의 끝을 생각하는 것은 끝없는 우주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끝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그 끝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육지의 끝이 있는 것처럼 공간의 끝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무가 아닐 것이다. 다른 무언가 다른 것, 우리가 공간이라고 부르지 않는 어떤 것이 터이다.

 

 

분할

어떤 것을 계속 분할하면 조각들은 점점 더 작아진다. 분할을 어디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연원히 계속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가장 작은 궁극의 조각이 있을까? 만물의 기반에 분할 불가능한 요소가 있을까?

무한히 큰 우주는 실젤 무한한 반면, 무한히작은 것은 대개 끝없는 분할 과정의 산물로 상상되어 잠재적으로 무한하다고 여긴다.

 

무한을 생각하는 정신은 무한한 걸까?

상상할 수 있는 무한과 상상할 수 없는 무한

유한한 무한과 무한한 무한

무한의 값...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신은 무한의 종결자? 무한히 쪼개어 나가더라도 결코 0 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무한소의 종결자는 0 임을 나타내는 걸까?  존재와 무존재가 만나는 곳은 무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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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읽기>를 마치고

 

데릭 젠슨은 이 책을 통해 나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줬다. 나의 삶은 어떠했는가? 자유로웠는가? 행복했는가? 라고 돌아보게 만드는 이 책은 그리 기분 좋은 책은 아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찝찝한 책이 될터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용기를 가진 자는 이 책을 통해 커다란 에너지를 부여받게 될터이다. 아니 용기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무모함이라 해야할까?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들- 태어나지 않은 존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학교라는 테두리에서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들을 말함이다 - 에게 이 책은 어떤 파괴적을 지닐까? 자신과 주위 세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얻는 길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까? 아니면, 통제도 질서도, 권위도 없는 무질서와 파괴의 미래로 그들을 인도할까? 과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모든 사람들을 올바른 자기 발견, 주위 세계에 대한 이해와 행복으로 인도하게 될까?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는 가면을 쓴 자기 혁명 선동물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떤 면에선 위험한 책이다. 아직 사리판단이 성숙치 않은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정말 학생들이 젠슨의 최면에 걸려, 뛰쳐 나가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스스로의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하거늘, 그 누가 그 무거운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단 말인가? 과연 그 책임을 감당할 만한 입장에 있는가? 자기 발견에 이르는 길은 험하고 험한 과정이 되겠지.

 

이제 보니, 젠슨이 장치해 놓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안전막이 하나 있는 듯 하다. 메세지가 충분히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난해함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한 학생의 말처럼, 스스로 핵심을 찾아야 한다는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주요 핵심도 마찬가지이다. 읽는 사람이 스스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번 읽기를 통해 그 강렬한 메세지를 찾고, 그 에너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자라나는 세대에서 그것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잘 해 나갈 것이다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런 혼란스러운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글쓰기의 첫걸음이 된다는 평이한 진리를 혁명적인 선동으로 연결하여 잘 짜여진 하나의 책으로 엮어 내다니 젠슨은 대단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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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실력이 형편없는 걸까? 최근에 두번 읽는 책들이 몇 권 있었다. 언젠가는 <두번 읽기>라는 주제로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

글의 전체 흐름을 알고, 다시 읽게 될 때, 군데 군데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문구들, 사건들이 눈에 띈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같은 글을 여러번 읽었다고들 하던데, 어쨌든 반복읽기의 매력은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진데,.. <네 멋대로 써라>도 꽤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었다. 뿌엿게 보이던 사물들이, 안개가 걷혀 뚜렷히 보이는 것과 같이, 두번째 읽기는 안개를 걷어주는 바람, 햇빛이라고나 할까?

 

<막히는것은 신나는 일이다>라는 부제에서 알려주듯이, 글쓰기가 되지 않을 때, 그 때는 신나는 경험을 할 순간이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 디뎌야 할 순간이란 말이지. 막히는 것은 네가 더 알아야 한다는 신호지.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신호란 말이다. 새로운 것에로의 탐험이 시작되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란 말이야.

 

누가 총을 머리에 대고, 이 글이 끝나면 쏠 것이라는 상황에서 글을 쓴다면,

이 글이 내 생애의 마지막 글인데, 내가 존재했던 마지막 증거가 될 글인데,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마디라 생각된다면

진심이 담긴 글이 될 것이다.

 

글 손질의 비법은 다른 이의 가슴이 어디에 자리 잡아 사는지 찾아 내는 것,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이 그곳에 닿도록 돕는 것이다.

기술적인 접근보다는 인간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엥...다음 제목이 <사랑 - 글 다듬는 법>이네...

초반부에 나오는 한 주말에 발생했던 마법적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란 것, 그럴 수도 있다. 글 다듬는 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까? 어떤 글이 표현하고 있는 상황은, 무수히 많은 상황중 한가지에 불과하다. 그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다른 상황들을 가정해 보고, 그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과정을 보여주려한 것일지도.

더 재미있고, 더 특정적이며, 실감나는 상황은 어떤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는 거지.

 

글다듬기 첫째 규칙은 글 다듬는 사람은 자아를 가지면 안된다. 글 다듬은 사람의 의견이 글쓴이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 나빠하면 안된다는 말. 글 다듬는 사람은 글쓰는 이가 쓰고 싶어하는 것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쓰도록 돕는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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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선생이라면 해야 할 꼭 한 가지 진짜 일은 학생들이 자기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는 깨달음...

 

수업 첫 날에 헌 양복 저고리를 입고 간 이유는?

첫 수업시간에 게시판에 붙은 광고지를 다 쓰레기통에 쳐 넣은 이유는?

"그거 다 재활용통에 넣어야 하지 않나요?"라는 학생의 반응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책을 다 읽고 다시 읽으니 보이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ㅋㅋ 이 모두가 다 권력, 현재의 체계에 대한 비꼼이겠지!

 

교육 education 은 '이끌어 내다' '끌어내다'를 뜻하는 라틴어 에두케레 e-ducere에서 왔다.

educe는 앞으로 끌어 주는 것이고, seduce(호리다)는 엇나가게 끄는 거다. 교육부는 seduce 하고 있다고 ... 초장부터 교육제도에 대한 풍자를 작렬시키고 있네... 젠슨이 그 토록 미워하는 비인간적인 산업산회를 떠 받들고 있는 기둥의 역할을 하는 현 교육체제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벌써 퍼붓고 있다. 특히 교육체제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예적 상황에 떨어지게 될 것임에도 그 상황을 오히려 자유롭다고 오도하게 만들 역할이 현재의 교육체제라나...이 내용은 뒷 부분 에필로그에서 언급되는 내용이다. ...

 

헛헛헛...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난 너무 수용적적이다. 읽는 것에 대한 설득되거나 공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스스로의 주관이나 심지 또는 가치관 아니면 그것을 방어하는데 약하다는 것이지. 젠슨이 제안한 대로, 하나의 주장을 두고 묻고 묻고 또 묻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 나의 생각은 너무나 허술한 데가 많다. 물어보자. 왜? 왜? 왜? 라고...

 

높이뛰기 코치로서의 성공적인 전략은 왜 이 장면에 썼을까? ? 칭찬전략, 자신감을 갖게 하기, ... 자기 자신의 발견?  칭찬으로 가르치는 비법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진실이 들어 있는 곳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내 글쓰기 학생들도 어떻게 글 쓰는지 배울 필요가 없음을 나는 금세 알아차렷따. 그 보단 차라리 학생들을 자신 속에 들어 있는 작가가 되도록 북돋아주는 게 더 필요한 것이었다.

 

첫 단계...학생들 각자에게 무엇을 사랑하는지 묻고 대답을 잘 들어 주는 것...그들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글쓰기와 삶, 삶과 글쓰기, 삶은 글쓰기의 바탕이고 글쓰기는 삶의 바탕이에요. 당연이 글쓰기 수업은 삶 수업-정열, 사랑, 두려움, 경험, 관계 맺음 수업이에요. ...지배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본능과 희열을 타고서 시간과 의식에서 풀려나 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데릭 젠슨의 글쓰기의 기저에는 인간 존중이 발견된다. 교도소에서 작가였던 한사람과의 논쟁에서 그것을 본다. 인간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약점보다는 강점에 중심을 준 칭찬식 교수법이 그렇다. 강점을 알면 자연적으로 약점도 알게될 것이다. 굳이 약점을 들먹이 필요가 없다?

 

교육체제가 학생들의 영혼을  파괴한다. 데릭 젠슨은 이 책 전체에 걸쳐 학교라는 교육체제에 대한 비판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왜 그런지 이해가 된다. 넌 누구냐? 네가 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냐? 다른 이기적 목적에 의해 틀에 잡히는 것보다는 자의에 의해 자기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것의 우월함은 무엇일까? 행복하기나 한 걸까? 어쨌든 후자의 경우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겠지, 남탓은 할 수 없을거야. 하지만 완전히 남 탓을 할 수 없을 만큼 혼자서 자신을 틀잡아 나갈 수는 있는 걸까? 그러면 모든 탓을 자신에게 돌릴 수도 없겠지. 어쨌든 인간의 삶이란 관계속에서 형성되어 나가는 거니까.

 

질문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돈을 갑자기 받는다고 하면 학교에 남아있겠습니까? 뭘 하겠습니까?"

질문 "이 많은 돈을 얻었는데, 1년후에 갑자기 죽게된다고 한다. 뭘 할건가?"

데릭젠슨 그 자신의 대답...질문1.. 하긴 뭘해? 좀 더 많이 밥먹으로 밖으로 나가겠지. 그 돈이 있다면 땅을 사서 그냥 가만히 놀려두고 땅이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어... 질문2...죽어라고 글을 쓸꺼야. 내 안에 책들이 두어권 남아있는 채로 죽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마지막 날엔 폭발물을 둘러메곤 가장 가까운 탬에 가서 들이받겠어. 그게 조금이나마 강과 연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겠지."

 

"내가 내 재능과 솜씨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얼까? 자신에게만 있는 재능을 써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알 때, 바로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알게된다.

 

데릭의 글에는 흐름이 있다. 자기 자신을 찾으라는 말과 현대산업사회에 대한 맹렬한 증오. 자기 자신을 아는 것과 교육체제를 비롯한 스스로를 망쳐가는 현시스템을 파괴하려는 열망에는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우리의 존재 목적이 - 스스로 찾은 자기 자신의 모습은 그 파괴와 자연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란 말인가?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 아니라 선동이다. 혁명에의 선동, 이미 확립된 권력, 권위, 체계를 엎어버리라는 격문이다. 글쓰기는 이러한 것들을 포장하는 껍데기일 뿐이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 자아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며, 이 자아를 파괴하며 지배하려는 검은 세력을 폭로함과 동시에 그에 저항하고 그를 파괴하라고 은근히 밀어대고 있다.

 

글쓰기 규칙 여섯번째, 독자가 거기에 있는 것처럼, 아니 거기에 있도록 만들라. 세부사항, 온갖 감각을 느끼도록, 그 시골 방에 밝게 비쳐들어오는 빛을 보도록, 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도록, 그 바람 속에 묻은 풀냄새를 맡도록, 아...내가 여기에 있구나. 묘사는 그렇게 해야 한다. ㅋㅋ 한 참 전도하다 글쓰기규칙 하나...그의 글을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속임수가 글쓰기 규칙이라니...그의 글쓰기에 대해 알게되려면 얼만 더 혁명,저항에 대한 글을 읽어야 할까?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쩐지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 만큼 내가 울타리안에 갇힌 노예라고 말할테지. 그 속박을 떨치고 뛰쳐 나가는 것이 쉽지 않으리란 것도 그는 알까? 그래서 그는 두려움과 후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지. 해야할 일을 두려움때문에 하지 못했을 때, 또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두려움때문에 했을 때, 그 때 후회가 생기더란 거지.

 

글쓰기에 있어서 보편성과 특수성, 보편적인 글을 쓰고 싶다고...정말 그럴 수 있을까? 너 자신은 오직 너 자신일 뿐, 보편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지 않다는 말이지. 너 자신을 표현하려면 특정한 것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걸 기억해 "우리는 특수성이 모든 것이란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지닌 유일한 길이다."

 

그들이 보았던 바닷가, 그들이 앉았던 바닷가, 그들이 공을 차며 놀았던 바닷가를 그려보인다.

맨발바닥으로 모래사장위를 뛰어 간다. 발바닥이 따끔따끔하다. 좀 더 발을 일찍 뗀다. 종종걸음치듯, 나의 발을 허공에 보다 오래 붙들어 놓으려고,...습작...쉽지는 않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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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젠스,

[네 멋대로 써라]는 그가 한 대학교와 교도소에서 글쓰기에 대해 가르친 경험을 보여준다.

젠슨은 현대 산업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한 학교교육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의 강의는 특별하다.

그의 말대로 '어떡하면 가르치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핵심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 나간다. 학생들은 마지막 수업이 다가올 수록 스스로 생각하고, 권위를 의심하며,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핵심을 찾아 나간다. 젠슨의 교육방법은 특이하다.

 

가기 목소리를 내게하고

자유에의 갈망을 표면화시키고

창조성이 춤추도록 만들며

자의식을 떨쳐버리며 솔직한 자아를 드러내는 용기를 갖도록 하며

그저 재밌게 즐기도록

그러면서 중요한 핵심들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그의 수업은

뭔가 홀리는 것이 있다.

 

다시 한 번 읽어 보면서,

그의 수업을 한 번 더 따라가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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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묻고 묻고 또 묻자

 

왜? 왜? 왜? 왜? 왜?....

 

힘차게 내세우는 의견을 하나 마음에 두고는 스스로 다시 또 다시 물어라. 왜 네가 그런 식으로 느끼는지, 왜 그게 중요한지, 그것이 이것 저것, 네가 몰려서 정신이 아뜩해질 때까지, 아니며 네 의견을 세운 바탕이 되는 전제에 다다르게 될 때까지.

 

이 연습의 핵심은 - 버틸 수 있는 만큼 오래 계속 가보는 게 도움이 된다- 당신의 선입견에 살을 붙이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글 쓰는 이가 어떻게 하면 더 뚜렷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살펴보지 않은 가정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배우도록 돕는 것이 목표이다.

 

 

선택- 한 번 겪어 보고 쓰든지 말든지 해라.

 

여러분은 삶으로 부터 어떻게 배우는가? 내가 아는 가장 좋은 길은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해서 배우는 거다.

 

모방은 강력하고 흔한 배움의 도구이다. ...내가 글 쓰는 법을 혼자서 배우던 때, 나는 좋아하는 책에서 몇 쪽을 골라 전부 손으로 (정자로) 베껴 쓰곤 했으며, 천천히 써 내려가서 낱말들이 내 몸속을 지나도록 하자고 스스로 다그쳤고...이렇게 해서 나는 좋은 첫머리는 어떻게 느껴지며는지, 좋은 끝맺음은, 좋은 묘사는 어떤 느낌인지를 배웠다. "미숙한 시인들은 흉내내지만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엘리어트)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꽤 잘 해 왔다면 이제는 선택이다. 이제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해봐야 할 때다.

나는 여러분이 이이야기에 나오는 누군가의 관점에서 쓰기를 바랍니다. 그게 누군지는 상관않겠어요. 여러분은 포르티노일 수도 있고, 벽에 붙어 있는 파리일 수도 있죠. 총살대의 일원일 수도 있으며, 사진사일 수도, 카메라 또는 처형을 지켜보는 사람일 수도 있지, 길가에 서있는 한 마리 개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여러분이 솔직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누구에 관해 글 쓰건 그 사람이 되세요. 아니, 누군가에 관해 쓰지 말아요, 누군가로서 글을 쓰세요.

 

글쓰기는 정말로 옮겨가는 순간들에 간련되어 있어. 삶에서 죽음으로 옮겨가는 것, 태어남으로 옮겨오는 것.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 이해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 위대한 변모들은 위대한 글쓰기감이지.

 

뜻 깊음-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을 쓰라.

 

여러분은 이제까지 여러분의 수필과 잉기 글 속으로 읽는 이를 데리고 들어가는 끝내주게 멋들어진 일을 해 왔고, 이제 다음 단계로 갈 준비가 되어 있어요. 다음 단계는 읽는 이들에게 마음 쓸 거리를 주는 겁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은 한창 때나, 아니면 십년 전에 일난 어떤 일의 모든 피 튀기는 세부 사항을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사람들 애기를 죽 따라 왔습니다. 하지만 왜 그들이 그러고 그러고 또 그러고 있는지를 모르고, 그래서 여러분은 소리치고 싶을 따름입니다. 핵심으로 들어가자고! 여러분은 그릉이 어떤 정서적인 내용물, 정서적인 풍부함을 여러분에게 주길 바라죠. 여러분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은 읽는 이들을 거기에 데려가고 싶을 뿐 아니라. 그게 여러분에게 무얼 뜻하는지를 읽는이들이 알게 하고도 싶어합ㄴ다.

 

칭찬은 늘 진실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칭찬이어야 한다. 조건적인 칭찬은 창조성을 가로막는다. 칭찬 받는 이가 마음의 소리대신에 칭찬을 좇도록 하는 까닭이다.

 

잘못된 방식의 칭찬은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을 쓰는것이 아니라 칭찬받을 만한 의미있는 것, 또는 칭찬하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것을 쓰게 만든다. 좋은 글쓰기의 격려방법이 아니다. 또한 권위, 성적, 억압 따위들도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을 쓰도록 격려하진 않는다. 데릭은 글쓰기 선생으로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어쨋거나 선생으로서의 발언은 더 무게가 있기때문에 학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니 말이다.

 

 

통제를 그만 두기 - 쓰고 싶은 걸 실컷 쓰라

 

안전함이란 대체로 미신이다. 자연 속에는 존재하지 않고, 사람의 아이들도 전체적으로 그걸 겪지 않는다. 위험을 피하는 것은 긴 안목으로 보면 깡그리 드러내 놓는 것보다 더 안전한 일이 아니다. 삶은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헬렌켈러

 

흥미로운 칠판 대전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강의실의 칠판에 '걸상줄을 다시 맞춰놓아라!'라는 굵은 글씨로 대전은 시작된다. 느낌표와 '주세요'가 없는 점에 마음이 걸려

'누굽니까? ...우리를 위해서 걸상을 둥글게 맞춰놓아요.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위해서 줄을 맞춰 놓을 테니까요' 아주 공평한 처사였다.

'철없이 굴지 마라. 철 좀 들고, 의자를 제자리에 놓아두어라."

' 학생들과 의자들이 있어야 할 제자리는 맞춰놓은 줄이 아닙니다. 나라면 권위나 전통에 의문을 품는 일을 철없는 일이라고 부르지는 않겠다.차라리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건강하다는 신호라 하겠다. 유태인 대학살과 베트남 침고의 끔찍함에서, 그리고 갈수록 더해가는 지구 파괴에서 우리가 다른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면, 권위나 전통에 왜 그토록 맹목적으로 복종하는가 하는 것이 사람이 품을 수 있는 어떤 의문보다 휠씬 더 문젯거리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

'이 따위 허튼 소리는 집어치워라, 여긴 학교고, 뭔가를 가르쳐 보려고 내가 여기에 있는거다.'

'나 또한 그렇다. 바로그렇게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 거다. 이제 물음은 이렇게 된다. 당신은 무얼 가르치고 있는가?'

 

권위에 맞서게 만드는 이 일...의문에 따라 가는 일...

 

겉으로는 무슨 주제를 가르치고 있더라도, 진짜 핵심은 학생들이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고, 그들 자신의 열정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그 밖에 어떤 일도 학생들을  엇나가게 이끄는 것이고, 그들에게 실제로 해를 입히는 일이라는 것을...

 

내 최고의 글쓰기는 내가 통제를 그만 둘때, 작품이 제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끌도록 내버려 둘 때 나온다.  

 

 

넌 누구냐니까? - 말로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우리는 실제로는 관계와 검험들로 짠 망이다. 나는 내가 여태까지 겪은 모든 일, 내가 들이마신 모든 숨, 내가 여태까지 한 모든 말, 내가 여태까지 먹은 모든 음식 한 조각 한 조각과 더불어, 바로 지금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로지름입니다. 난 전혀 어떤 것이 아닙니다. 나는 과정입니다. 아니 심지어 그것조차 아닙니다. 우리 언어로는 나를 기술 할 수 없는데요...

 

 

뚜렷함 - 글쓰기의 네가지 비법

 

글쓰기의 일곱째 규칙은 읽는 이들이 생악해 보기를 당신이 바라는 걸, 읽는 이들이 생각해 보기를 당신이 바라는 일이고, 읽는 이들이 생각해 보기를 당신이 바라지 않는 걸, 읽는 이들이 생각하기를 당신이 바라지 않는 일이다. 가장 소박한 수준에서는, 뚜렷하게 말해야 된다는 뜻이다.  글 한 편을 쓰려고 할 때도 기본적인 조사를 해라. 당시이 읽는 이더러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바로  그걸 읽는 이들이 생각할 것이기때문이다. 독자들이 일이 결코 그런 시으로 되는 건 아닐 텐데"  하고 생각하게 만들 글 - 뭐랄까? 사실과 다른, 그래 공감하지 못하게 만들 글은 쓰면 안된다는 것이지. 설득려기 있어야 한다는 말. 당신이 주장을 펼치는 대로 독자가 따라 오길 원한다. 독자가 혼란스러워하건, 당신이 앞서 내다보지도 않고 대답도 마련하지 않은 반대 주장을 독자가 제기하길 원치는 않는다. 나는 학생들에게 글쓴이는 독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독자들의 반대 주장에 먼저 가 닿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아주 매끄럽게 해서 그 반대 주장들이 결코 나오지도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쓰기 여덟째 규칙은 토마토 케첩의 교훈이다.

우리는 서로 서로 오해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 뚜렷하게 해 놓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꽤 있다.말이 경험을 대신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틀림없이 그런 식으로 말이 오용될 수는 있더라도 그건 말이 할 일이 아니야. 말의 일은 우리가 경험 쪽으로 보도록 가리키는 거고, 경험을 머무르고, 경험을 손쉽게 하고, 그리고 적어도 그 경험의 파리한 그림자라도 사랑하하는 이들과 나눠지닐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야. 그리고 말의 일은 우리가 사람이 되는 걸- 그리고 행동하는 걸- 깨닫도록 돕는거야.

 

같은 언어를 쓴다하더라도 사실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녀와 데릭은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스해 달라는 말을, 그들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한 번도 키스를 하지 못하고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토마토 케첩의 교훈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글쓰기 아홉째 규칙

쫓아 가기 규칙이다. 독자의 초점이 낱말에서 낱말로,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주장에서 주장으로 옮겨 갈 때는, 반드시 매끄럽게 쫓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여인의 모습을 묘사할 때 쫓아가기 기법은, 묘사가 아무렇게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잡아서 머리칼에서 빰을 지나 입술로 턱으로 목으로 가슴으로 묘사가 매끄럽게 나아간다. 바라보는 사람이 그렇게 매끄럽게 바라보고 있게 만든다.

 

글쓰기 열번째 규칙

어떻게 하는 좋은 대화글을 쓸까? 사람들이 서로 서로 대답하도록 만들지 마라. 대화 쓰기는 발이 젖지 않고 건너 갈 수 있을 딱 그 만큼만 개울에 돌을 놓는 일에 비할 수 있다. 만일 돌을 너무 가까이 붙여 놓는다면 종종걸음을 쳐야만 한다. 돌을 너무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면 물에 빠진다.  예를 들어, "어떻게 지내냐?" "별로 좋지 않아." "왜?" "어저께 오십달러을 잃었어." "어쩌다?" "메츠팀에 걸었거든" "또 노름한거지, 그치"  이건 좋지 않은 대화글이다. 그러면 좋은 대화글은 "어떻게 지내냐?" "빌어먹을 메츠" "또 노름한 거지, 그지?" 이것은 더 적은 말로 똑 같은 정보를 전달한다. 대화로만 글을 이어나가면서 대화속에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런 빌어먹을 자동차들, 저것들 때문에 늘 천식이 더 나빠진다니까" 이 대화글을 통해 복잡한거리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묘사하지 않고서도 장면이 갖추어 지게 한다.

 

사랑에 빠지다 - 당신만의 그 곳으로 가라

 

일을 저질러 버리기까진, 머뭇거림과 그만둘 기회와 소용없겠지 하는 생각이 늘 존재한다. ...확실하게 일을 몸소 저지르는 순간, 신의 섭리 또한 움직인다. 저지르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도우려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결단으로 부터 사건의 온 흐름이 생겨나와, 한 가지 사건을 위해서 온갖 종류의 뜻밖의 사건들과 만남들과 물질의 도움을 일으키고, 어떤이도 꿈꿔보지 못한 일이 그에게 벌어질 것이다. 당신니 무엇을 하든, 당신이 무얼 꿈꿀 수 있건, 그걸 시작하라. 무모함는 그 속에 천재와 능력과 마법을 지니고 있다.  지금 시작하라

 -W. H. 머리

 

차가운 옹달샘에서 솟는 물처럼 말들이 퐁퐁 솟아 오르는 그곳으로 가는 문을 발견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말과들과 더불어, 이야기와 더불어, 과정과 더불어 사랑에 빠지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글을 쓰야 할 까닭이 있었다. 나는 마음을 전하려고 애스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내 뜻을 한가지 경험을 전해 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낱말을 쓰고 난 뒤 누군가 날 죽일 거라면 내가 쓸 그것이다. 이렇게 느낄 때, 말들이 퐁퐁 솟아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넌 누구니, 넌 무엇을 사랑하니, 넌 무얼 원하니? 그러면 당신이 무얼 쓰면 좋겠지는지 알게 될 것이다.

 

 

혁명- 당신의 힘으로 알아내라

 

나는 행복하다. 그들은 깨달은 것이다. 이 교실에서 한 모든 일은 바로 이런 순간, 학생들이 내 권위를 만들어내는 저들의 역할을 이토록 거부하는 순간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물 위로 걷다 - 저질러라 그리고 써라

 

만일 여러분이 죽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기억이 될까요?

여러분이 죽을 때, 사람들이 여러분에 관해서 무어라고 애길할까요?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가 물 위로 걸었다는 이야기를 압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불가능한 무언가를 하는 것에 관한 애깁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걸 할 수 없잖아요. " 그게 바로 핵심이예요. 선생님은 당신이 불가능한 일을 하길 바라는 겁니다.  "그래도 '바로 그 말 그래도 때문에 당신이 할 수 없는거예요" 일단 자신이 누군지 생각해 내고 그속을 들여다 본다면 그리고 일단 당신이 자신의 능력을 믿기 시작하면, 당신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 하던 놀라운 가능성들을 몸소 낳을 수 ...창조해 낼 수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훯씬 더 멋진 건, 일단 당신이 물 위로 걸을 수 있는 그 자리에 ㅂㄹ을 내딛기만 하면, 당신으 ㄴ갑자기 전에는 아무런 받침대도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 단다한 땅을디디고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받침대는 당신한테서 나오지 않고 당신을 둘러산 모든 것에서 나옵니다. 일단 당신이 이 자리에서 행동하기 시작하면 온 우주가 힘을 모아 당신을 받쳐 줍니다.

 

"하지만 난 해 봤어. 안 그래? 빌어먹을, 적어도 난 그럭 해 봤다고" 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를 골방에서 나오게 하라"

 

"알겠어요. 핵시은 선생님이 우리에게 핵심을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이예요. 우리가 그걸 우리 스스로 얻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에요"

 

에필로그 - 노예들의 나라

 

으으으...이 마지막 부분은 너무 지루하다. 데릭은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게지. 앞에서 재미난 이야기들이며, 글쓰기 규칙들로 우리가 책을 끝까지 읽도록 속여놓고는 정작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철학 핵심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어. 결국은 우리 모두가 노예들의 나라에 있는 노예라니까. 학교 교육은 바로 이 노예화과정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교육의 절대적 성공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우리가 노예라는 것 조차 망각한다니까. 오히려 자유롭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 끔찍한 상황을 젠슨은 이야기하고픈 거지. 여기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그것이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저질러 보라는 충동이요 선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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